소설리스트

후궁,왕을적시다 (3)화 (4/93)

제 3 화 저주 속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인어

대궐 밖의 도화군 사저는 대비 조 씨가 세간의 이목을 신경 써 꽤나 좋은 곳을 내주었다. 다만 사저의 크기가 넘치게 커서 백성들에게 과하다는 소리를 더불어 듣게 했다.

과하게 큰 도화군의 사저에 납신 강은 미리 전갈을 받고 마중을 나온 도화군의 손을 잡고, 그의 처인 군부인에게 살갑게 제수씨라 부르며 인사를 했다.

안채 문밖에 서 있던 상선은 안에서 새어 나오는 강의 웃음소리에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을 가진 절대 권력의 강은 대궐 안에서 이렇게 웃는 법이 없었다. 대궐에서의 강은 그저 살얼음 그 자체였다.

“이름이 선이라 했지?”

“예, 형님.”

“어디 이 형님이 좀 안아 봐도 되겠느냐?”

그리 말하면서 선을 향해 손을 뻗자 선을 안고 있던 군부인이 다가와 아이를 넘겨주었다. 

“어디 보자. 우리 조카 얼굴 좀 보자.”

“모두들 부인을 닮았다고 합니다.”

“그래, 내가 보기에도 그렇구나.”

“사내 녀석이 얼굴선이 고와 걱정입니다.”

그 말에 선은 마치 걱정 말라는 듯 소리를 내며 해맑게 웃었다. 이에 강이 귀엽다는 듯 호탕하게 웃으며 아이의 볼을 쓰다듬었다.

“제수씨.”

“예, 아주버님.”

“왕가의 일원이라 하여 아이의 재능을 꺾어서 키우지 않아도 됩니다.”

“…….”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아이가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 능력을 키워 줘야 합니다.”

선을 품에 안은 강이 걱정했던 것을 풀어놓자 군부인이 애써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왕가의 일원은 왕을 제외하고 모두 한량으로 살아야 했다. 작은 재능이라 할지라도 어떤 방면이든 뛰어나면 역적으로 몰이를 당해 몰살을 당할 수도 있었다. 

“아우를 닮았다면 필시 학문이 뛰어날 겁니다.”

“예, 아주버님.”

“이 녀석 눈이 또랑또랑한 것을 보니 틀림없을 겁니다.”

처음에는 강을 어려워하던 군부인이었지만 점차 도화군과의 형제애를 곁에서 살피며 강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 

하여 꼬박꼬박 전하라 부르던 호칭도 강의 말에 따라 가족끼리 있을 때는 아주버님이라 부르게 된 것이었다. 

“선이가 연신 입맛을 다시는구나.”

“배가 고픈 모양입니다.”

그리 말하면서 도화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선이를 품에 안았다. 그러고는 유모에게 젖을 물리고 오겠다며 안채를 떠났다.

“선이가 태어난 일로 어마마마께 꾸중을 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 아니옵니다.”

“크게 마음 쓰지 않아도 됩니다. 아우는 일찍 친모를 여의고, 외롭고 쓸쓸하게 자랐습니다. 그것이 항시 마음에 걸렸는데 이렇게 제수씨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일구니 마음이 놓입니다.”

왕의 핏줄을 이어받아 귀하게 태어났으나 후궁의 자식이었기에 그 친모가 죽자 대비 조 씨의 입김으로 철부지 취급을 받아야 했다. 

“아주버님께서 누구보다 서방님에게 마음을 써 주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도화군을 잘 부탁합니다, 제수씨.”

“예, 아주버님.”

어려서부터 대비 조 씨의 눈칫밥을 먹으며 제대로 허리도 펴지 못하고 자란 도화군이 늘 가엾고, 안쓰러웠다. 

어쩌면 그런 시절을 겪으며 형제애가 돈독해진 것일 수도 있었다. 

문밖에서 의도치 않게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된 도화군은 붉어진 눈가를 손등으로 문질렀다.

* * *

정월 대보름을 맞아 야시장이 꽤 크게 열렸다. 떠들썩한 분위기에 덩달아 신난 사람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고, 목소리를 높여 분위기에 취했다. 

하늘 위로 줄을 잇고, 등불을 달아 놓은 덕에 은은한 불빛이 가득했다. 그 속을 유유히 거닐고 있는 강의 모습이 보였다. 

홀로 걷고 싶어 하는 강의 마음을 읽은 상선은 저만치 떨어져 걷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림자 연극이 한창인 곳에 걸음이 멈췄다. 밖에서는 이야기꾼이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며 이야기를 이어 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효성 지극한 어부는 어머니의 병을 고치려 바다에 나갔습니다. 거센 비바람을 뚫고, 높은 파도를 지나 바다의 깊숙한 곳에 당도한 어부는 바다를 향해 낡은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밝은 불빛에 검은 그림자 인형이 드리워졌다. 나룻배와 어부 모양의 그림자가 너울거리고, 철썩이는 파도도 함께 넘실거렸다. 

“그물이 무거워지자 어부는 있는 힘을 다해 그물을 들어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물을 들어 올린 어부는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저 시답잖은 연극 이야기라 생각하고, 다시 길을 가려던 강은 이야기꾼의 말소리에 다시금 자리에 멈췄다. 

“어부의 그물 속에는 인어가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어부가 인어를 잡았네!”

“맞습니다.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큰돈이 필요했던 어부가 인어를 잡은 것입니다.”

어부와 인어의 이야기였다. 인간의 손에 멸종당한 인어, 강은 그림자 연극이 한창인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물 사이에 잡혀 있는 인어의 모습이 보였다. 인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살려 달라고, 자신을 바다에 돌려보내 달라 애원을 했다.

“하지만 어부는 인어에게 첫눈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힘들게 잡은 인어를 바다에 놓아주게 됩니다.”

이야기 속의 어부는 실제 사람들과 달랐다. 인어만 보면 눈이 뒤집혀 살육하기에 급급했던 현실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한창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던 강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옆 사람은 자신만큼이나 연극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사내치고는 작은 체구였지만 행색은 영락없는 사내였다. 얇은 복면으로 보일 듯 말 듯 얼굴을 가린 이, 도아였다.

하늘에 달린 등불을 따라 은은한 불빛이 도아를 비췄다. 강은 그윽한 눈으로 이야기에 몰입한 도아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인어는 어부가 자신을 바다에 놓아주자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어부에게 물고기를 잡아다 주고,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게 바닷길을 열어 줍니다.”

착하고 어진 어부와 순수한 인어의 사랑 이야기였다. 사랑이 깊어 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듣고 있던 관객들은 두 손을 마주 잡고, 빠져들었다. 

“어부를 따라 육지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은 인어는 위험을 무릅쓰고, 어부를 보기 위해 바다를 전전했습니다.”

“아휴,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 눈에 띄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인어가 자신을 기다리는 줄 모르던 어부도 바다에 나갔다가 인어의 꼬리에서 나오는 불빛을 보고 인어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인어는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저버리고, 사랑에 물들어 갔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들과 다른 생명체인 인어에게 관심이 많았다. 아마도 그림자 연극에서 인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모두 아시겠지만 어부는 땅에 살고, 인어는 바다에 삽니다. 두 사람의 앞날이 어찌 되었을 것 같습니까?”

“명 짧은 사람은 다 듣지도 못하고 죽겠네!”

“이놈 돌아가는 길에 탁주로 목이라도 축일 수 있게 도와주시면 이야기를 풀어 드리겠습니다.”

한창 이야기를 이어 가던 사람이 관객들에게 물었다. 곧 연극의 막내를 맡고 있던 앳된 소년이 바가지를 들고 관객들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림자 속 어부는 배에 탄 채로 인어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죽겠지.”

그 속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한마디를 던졌다. 이에 다시 강은 고개를 돌려서 곁에 서 있던 도아를 쳐다봤다.

“죽을 길을 알고 간 거야.”

“……?”

“멍청이.”

듣는 귀가 없을 줄 알았던 도아는 무언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곁에 서 있던 강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뱉은 말과 다르게 도아는 울고 있었다. 모질게 뱉어 버린 말과 다르게 눈물을 보이니 강은 황당했다.

강의 시선을 느낀 도아는 고개를 틀더니 황급히 자리를 떠나 버렸다.

“못 볼 것이라도 봤다는 건가.”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도아의 반응에 퍽 기분이 상한 강이 중얼거리다가 바닥에 떨어진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바닥에 떨어진 이것은 ‘진주’였다. 그리고 강은 이것이 조금 전 도아가 흘리고 간 것임을 직감하여 도아가 간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이보시오!”

뒤에서 소리를 치며 몇 번이나 불렀으나 도아는 돌아보지 않았다. 

“저기! 거 좀 서 보시오!”

손을 앞으로 뻗어서 도망치듯 달아나는 도아를 잡아 세웠다. 돌아 세워진 도아는 놀란 눈으로 꽤나 기분 나쁘게 강을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 강은 서둘러 잡고 있던 도아의 팔을 놓아주었다.

“이거 떨어뜨리고 갔소.”

“…….”

“주인 아니시오?”

그가 앞으로 내민 것은 진주였다. 

“버렸소.”

“진주를 말이오?”

“난 필요 없으니 가지려거든 그러시오.”

“내가 거지요? 남이 필요 없어서 버린 것을 가져가게.”

서로가 부드럽게 말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툭툭 던지듯 말하는 도아의 말투에 기분이 상한 강의 눈매도 화가 나 보였다.

“아무도 갖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버리면 되겠네.”

그러더니 강의 손바닥에 놓여 있던 진주를 집어 들어 무신경하게 바닥에 집어 던졌다. 

알 수 없는 행동에 미간을 찌푸린 강이 한 소리 하려고 입을 열려고 할 때,

“그림자 연극을 보러 간다더니 어딜 간 것이야?”

목소리에 바로 반응한 도아가 화들짝 놀라며 강을 향해 입을 다물라는 뜻에서 검지로 제 입술을 가렸다.

“……?”

바닥에 떨어진 진주를 주우려던 강을 급기야 잡아 세웠다. 

“갑자기 왜 이러시오?”

강이 신경질을 내며 손길을 뿌리치려는데 빈약한 덩치와 다르게 도아는 아주 힘이 좋았다. 

“놓으시오!”

덕분에 도아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하고 모양새 웃기게도 질질 끌려가고 말았다.

* * *

진주를 아무렇지 않게 버리던 사내에서 도망자 신분이 되어 버린 도아는 제 손아귀에서 빠져서 나가려는 강의 반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음지로 숨어들었다.

인적이 북적거리던 곳을 벗어나 조용한 곳으로 도망 온 도아는 벽 뒤에 숨어서 주변을 살피더니 그제야 강의 손을 놓아줬다. 

“이게 뭐 하는 짓이오?”

“그쪽이 시끄럽게 굴지만 않았어도 이러지 않았을 것이오.”

“뭐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나는 조용히 혼자 있고 싶었던 사람이라.”

이게 무슨 개소리지? 강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넌 혼자 있고 싶은데 내가 끼어들었다?

“그럼 당신만 도망가면 될 일이지 나는 왜 끌고 오냔 말이오!”

“아? 그런가. 그러네.”

“술에 취했소?”

“입에도 대지 않았소.”

뒤를 둘러보니 상선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사람들 속에서 도망을 치다가 강을 놓친 것 같았다.

허리춤에 손을 얹은 강이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바닥에 뒹굴던 진주를 못 본 척 갔더라면 이렇게 엉키진 않았을 것이다.

“이제 갈 길 가시오.”

“어딜 그냥 가시오?”

“그럼 뭘 하고 가야 하는 것이오?”

“사과해야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강이 도아에게 사과를 하라 들이댔다. 

“사내가 속이 좁아서는.”

“이보시오!”

“그래서 어디 장가는 가겠소?”

“그쪽이 신경 쓸 일이 아니지.”

여간해서는 지는 성격이 되지 못하는 도아는 성질을 내는 강을 보고도 콧방귀만 뀌었다.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달리면서 느슨해져 있던 갓을 잡고 있던 끈이 풀리면서 바닥으로 갓이 떨어지고 말았다. 

갓이 벗겨지자 가리고 있던 신비로움이 드러냈다. 도아를 사내라 생각했던 강은 물음표를 그렸다. 

“사내인 줄 알았는데.”

“무슨 소리요? 아, 아…….”

“여인이었군.”

고작 갓 하나 벗겨졌을 뿐인데, 강은 이미 도아가 여인임을 눈치챘다.

“왜 사내처럼 하고 다니는 것이오?”

“말하고 싶지 않소. 그쪽한테 말해야 할 의무도 없고.”

“말끝마다 그쪽이라네.”

“난 가 보겠소.”

철저한 무시였다. 도아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닥에 떨어진 갓을 주워서 골목을 벗어나려 할 때, 갑자기 얼굴을 가리고 있던 복면이 벗겨져 나갔다. 

뒤에 있던 강이 너무도 손쉽게 복면을 묶었던 매듭을 풀어 버렸다.

“이게 뭐 하는 짓이오!”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뒤를 돌아보자 복면을 들고 있는 강이 보였다. 

남장을 하느라 한 올의 머리카락도 남기지 않고 올려 묶은 탓에 오히려 이목구비가 남달라졌다.

‘인어…….’

도아의 얼굴을 제대로 본 강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아주 오래전 자신에게 입을 맞추던 인어와 겹쳐 보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인어의 얼굴을 온전히 보지 못해 희미했던 기억이, 도아를 보자 마치 각인이라도 되듯 강렬하게 새겨졌다. 

“복면 이리 주시오!”

‘이 여인은 인어가 아니라, 사람이잖아.’

오랫동안 망상에 빠져 살아 그런 것 같았다. 그러나 눈길이 거두어지지 않았다. 

“복면을 돌려 달라는 말이 들리지 않소?”

“우리 본 적 있소?”

“이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여인을 꾀었는지 모르지만 난 됐소. 끼고 싶지 않소.”

“그게 아니라…….”

“호색한.”

“뭐요?”

도아는 가까이 가서 강의 손에 잡혀 있던 복면을 가져가려 손을 뻗었다. 

그런데 되레 그의 손아귀에 잡힌 꼴이 되었다. 강은 도아의 손을 잡아끌어 제 품에 가까이 끌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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