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인간을 향한 인어의 저주
어둠 속에 묻힌 배는 꽤 분주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에 보이는 것은 하늘에 떠 있는 황황한 달과 금방이라도 배를 집어삼킬 듯한 바다뿐이었다.
거대한 바다는 마치 배의 횡단을 허락하기라도 하듯 무서울 만큼 고요하고, 잔잔했다. 이 고요함을 깨고, 한 사내가 횃불에 불을 붙여 검은 바다를 향해 들이밀었다.
그러자 주변에 흩어져 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횃불에 불을 붙여 바다를 살폈다. 불꽃이 바다 위로 하나둘 튀었다.
“생각보다 멀리 나왔습니다, 대감마님.”
“쯧쯧, 바다가 오늘처럼 길을 내주기가 어디 쉬운 줄 아느냐?”
인간에게 이처럼 광활한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속의 깊이도 알 수 없을뿐더러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허나 자칫 잘못하여 길을 잃기라도 한다면 큰 낭패입니다.”
“그럴 것을 염려하여 큰돈을 주고, 길잡이를 둔 것이 아니냐?”
“그렇긴 하지만…….”
“괜한 염려 말고, 바다의 움직임이나 잘 살펴라.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그것을 잡고 말 것이다.”
맑고 깨끗한 바다 안에선 밖의 모습이 속속들이 보였으나 밖에서는 어둠에 물든 바다가 까마득하여 그 속을 볼 수가 없었다.
배에 탄 이들이 입을 모아 대감마님이라 부르는 자가 있었다. 이자의 두 눈은 탐욕이 강하게 자리 잡혀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저, 저기! 저기 뭐가 보입니다!”
“어서! 어서 불을 밝히고 망을 던져라! 남은 이들은 서둘러 창을 준비해라!”
“예! 대감마님!”
뱃머리 끝에 있던 사내의 외침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몇 사내는 어망을 능숙하게 바다 위로 뿌리고, 다른 몇은 불로 바다를 밝히며 끝이 뾰족한 창과 화살을 준비했다.
배에 탄 이들은 각자 맡은 일을 해내며 인어 사냥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그들의 눈은 시뻘게져 인어를 찾느라 혈안이 되었다.
“저……. 저 빛깔이다! 틀림없어!”
“이번에야말로 볼 수 있는 것입니까?”
“틀림없다. 저것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주변으로 창과 활을 던져라! 어서!”
어둡기만 하던 바다에서 찬란한 빛이 일렁였다. 이내 그 빛은 길을 잃은 듯 어지럽게 움직였다.
마치 물고기인 듯 유연하게 움직이는가 싶더니 이내 바닷물에 붉은 피가 섞인 채 출렁거렸다.
그 순간 쳐 놓았던 어망이 무거운 무게를 느끼며 아래로 쳐졌다.
“때를 놓치지 마라! 어서! 어서 망을 올려라!”
사내는 서서히 그 실체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광기를 보였다. 사내는 생의 반을 이것을 잡기 위해 바다에서 지냈다.
이미 넘쳐나는 재물에도 결코 포기하지 못한 인어 사냥이었다. 모두 인어가 멸종됐다며 허탕을 치고 돌아왔지만 사내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래전 황금빛 비늘을 지닌 채 유유히 자신의 어망을 빠져서 나가던 인어를 잊을 수 없었다. 손에 담을 수 없는 빛과 신비로움에 몸과 마음이 묶여 버리고 말았다.
사냥꾼들이 잡아 온 인어 사체를 보면 그는 먼저 긴 꼬리의 색을 살폈다. 황금빛 인어의 사체는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비로소 너를 내 손아귀에 넣는구나!’
잔잔하기만 하던 바다가 크게 일렁이며 파도를 쳐 댔다. 배에 몰려들어 있던 이들은 일제히 중심을 잃고 혼란을 탔으나 사내는 난간을 부여잡으며 버티라고 소리를 질렀다.
점점 더 거세지는 파도에 배는 산산이 조각나 부서질 듯 길을 잃고 흔들렸다.
“어망을 올려라! 어서!”
결코 놓칠 수 없었다. 수십 년을 돌고 돌아 이 자리에 온 것이다. 그리고 오늘, 평생의 소원을 풀게 되었으니 제정신일 리가 없었다.
“어서 힘들 쓰라고!”
“읏차!”
“정신 차리고 어망을 들어 올려라!”
여기저기서 죽는소리가 나왔으나 사내는 동요치 않았다. 일렁이는 파도가 지나가고, 바다가 평정심을 찾아갈 즘 던졌던 어망이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저, 저, 저것이 뭡니까!”
“내가 뭐라 했느냐?”
“…….”
“분명히 살아 있을 것이라 했지.”
팽팽하게 바다 위로 건져 올린 어망 안에는 가련하게 힘을 잃고 피를 흘린 채 고통스러운 얼굴을 한 인어가 들어 있었다.
길게 풀어 헤친 인어의 머리카락은 가슴을 덮었고, 아름다운 곡선의 황금빛 꼬리는 불 없이도 천지 사방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너를 처음 봤던 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
“내 너를 놓치면서 기필코 다시 잡겠노라 다짐을 했지.”
-윽…….
누군가가 던진 창에 큰 부상을 입은 인어는 자신을 잡았노라 눈을 일렁이는 사내를 쳐다보며 고통의 신음을 뱉었다.
-나도 기억한다.
“말을 할 줄 아느냐? 인어 따위가?”
-인간들의 눈을 피해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우습구나. 어차피 죽을 것들이 말을 배워? 핫하하하!”
사내는 이미 죽어 가는 인어가 우습고 재미있다는 듯 조롱했다. 이자의 가문은 대대로 인어사냥을 하며 배를 불려 천민에서 양반이 된 족속이었다.
-네 손에 내 부모님과 동생들이 처참하게 죽어 나갔다.
“인어가 인간들에게 큰돈이 되는 것을 원망하고 탓해라.”
-그랬겠지. 그래서 인어의 씨를 말렸겠지.
“잘 알고 있구나. 나는 너를 죽여서 그 피와 비늘, 기름 하나까지 남기지 않고 모조리 팔아넘길 것이다. 너는 황금 인어니 나는 곧 장안에 화제가 될 것이다!”
한창 떠들고 있을 때 죽어 가던 인어가 무슨 생각인지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피가 묻은 가느다란 손은 자신을 잡아 달라 외치고 있었다.
이 손을 잡으면 안 될 것 같았지만, 이끌리는 마음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인어는 요물입니다! 저 손을 잡았다간 큰 사달이 날 겁니다!”
“우리 가문은 인어를 사냥하는 가문이다. 저것을 만져서 사달이 났단 소리는 들어 보지 못했다. 그리고 저 죽어 가는 것이 이제 와 무슨 힘을 쓰겠느냐?”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이 땅의 마지막 인어니 잡아 두어 나쁠 건 없지.”
희희낙락 혼잣말을 지껄이던 사내가 가까이 다가가 어망에 힘없이 들려 있던 인어의 손을 잡았다.
이제 곧 죽고 사라질 것, 사내는 입꼬리 한쪽을 올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내 눈을 똑똑히 봐라.
“…….”
-이날만을 기다리며 동족들이 죽어 가는 이 바다 아래서 숨죽이고 있었다.
“나를 기다렸단 말이냐?”
-그래, 네놈을 기다렸다.
매서운 눈빛과 말에 사내는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을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 매서운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이 손에 죽어 나간 인어들이 몇인 줄 아느냐?
“…….”
-살려 달라 그리 비명을 치며 애원했거늘.
“입 닥쳐라! 한낱 요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 어디 감히!”
-우리들은 오랫동안 이 바다를 지키고 다스리며 인간을 지켜 주었다.
“흥! 죽을 때가 되어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그 대가가 이리 참혹할 줄이야.
“이것의 숨통을 끊어라!”
-내 인고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구나.
제 손을 놓지 않고 꽉 부여잡은 인어의 힘에 놀란 사내가 서둘러 죽이라 명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날아든 화살이 자비 없이 가녀린 인어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네놈 가문에 앞으로 태어날 계집아이는 모두 인어가 될 것이다.
“뭐, 뭐라?”
-네놈도 당해 봐라. 너희 족속이 얼마나 잔인하고, 포악한지!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 얼마나 발버둥 쳐야 하는지도……. 큽……!
인어의 입에서 피가 줄줄이 흐르고, 눈에서는 빨간 피눈물이 흘렀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사내의 손을 놓지 않고 붙들고 늘어졌다.
-네 자식이…… 인어여도……. 몸을 갈기갈기 찢어 팔 것이냐?
피와 눈물이 어지럽게 섞이며 흘렀다. 인어의 눈에는 고통으로 지냈던 회한의 세월이 지나갔다. 인어는 서서히 숨이 끊어져 갔다.
죽음의 문턱에 이른 인어가 손에 힘을 빼자 사내가 뒤로 나자빠지며 넘어졌다. 그는 이 저주가 예삿일로 넘길 것이 아님을 알았다.
인어가 요물이 된 것은 사냥하는 자들이 일부러 퍼뜨린 소문이었고, 진실은 예부터 인어는 영물이라 불리며 바다를 지배한다 하여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괜찮으십니까?”
“…….”
“대감마님! 정신 차리십시오!”
그러는 사이 어망 줄이 투둑!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어망에 담겨 죽어 가던 황금 인어는 어망을 벗어나 바다에 빠졌다.
성한 곳 없이 활과 창에 찔려 피를 흘리는 인어가 힘없이 바닷속 깊은 곳을 향해 빠져 들었다. 물고기들이 주변으로 몰려들었으나 이미 비극은 벌어진 후였다.
‘이 저주를 풀기 위해선 인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를 만나야 할 것이다. 허나, 피도 눈물도 없이 잔인한 인간들이 그리도 할 수 있겠느냐? 눈이 시뻘게져 팔아넘길 테지.’
황금 인어는 자신이 소멸되어 가는 중에도, 저주를 물려받을 죄 없는 후손을 생각하며 저주의 실마리를 풀 수 있게 해 주었다.
‘만일 그런 인간을 만나게 된다면 저주는 그 대에서 끝나고, 그 인어는…….’
인간이 속한 땅에 태어나 오랫동안 영물로 바다를 지키며 살았으나 탐욕스러운 인간의 눈에 띄어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아 사냥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겨우 몸을 숨기고 목숨을 유지했으나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었다.
그리하여 이 땅에 남아 있던 마지막 인어마저 인간의 손에 처참히 살육되어 눈을 감게 되었다.
* * *
인어 사냥을 위해 배에 탔던 이들은 육지로 무사히 돌아왔다. 하지만 병의 원인을 알 수 없이 갑자기 말문이 막혀 벙어리가 되거나 비명횡사하여 죽는 일이 생겨났다.
모두가 인어의 저주라며 벌벌 떨었으나 배의 우두머리, 대감이라 불린 자만이 이 저주를 피해 갔다. 벙어리가 되지도, 비명횡사하지도 않았다.
그 사내는 머지않아 늘그막에 늦둥이 자식을 얻게 되었다. 무슨 일인지 아무 문제 없이 애가 들어서지 않아 근심하며 양자라도 들이려던 참에 들어선 아이였다.
피도 눈물도 없던 대감은 눈물을 보이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굶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양식과 옷감을 내주었다.
모두의 기다림과 축복 속에 산모의 진통이 시작되고, 머지않아 아이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태어났구나! 태어났어!”
태어난 아이는 계집아이였다. 아들이든 딸이든 중요한 것은 자신의 핏줄이 세상 빛을 봤다는 것이었다. 대감이 눈물을 닦으며 오매불망 염원했던 아이를 품에 안았다.
“눈도 코도, 입도 모두 어미를 닮지 않았느냐?”
“아이가 그리 못났습니까?”
서로를 닮은 듯 태어난 아이를 가운데에 두고 바라보았다. 다정한 부부는 오랜 시간에 걸쳐 귀하게 태어난 아이를 보며 웃음을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울음을 터트린 아이가 좀처럼 그치질 않았다. 우는 아이를 안아서 달래 주려는데 데구르르,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것은 진주가 아닙니까?”
“갑자기 진주가 어디서 났단 말이오?”
“아이에게서 떨어진 것 같은데…….”
대감은 부인의 말에 당황하여 말문이 막혔다. 이윽고 보란 듯이 아이에게서 몇 개의 진주가 더 떨어져 내렸다.
“그럴 리가…….”
대감이 서둘러 바닥에 떨어진 진주를 집어 들었다. 환한 빛이 드는 곳에서 올려다보니 틀림없는 진주였다.
‘네놈 가문에 앞으로 태어날 계집아이는 모두 인어가 될 것이다.’
대감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아이를 잡아 물이 받아져 있는 대야로 가져가 숨을 참고, 아이를 물속에 담갔다.
환한 빛이 일고, 순간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큰 소용돌이를 일으킨 빛이 사라졌다.
“아악!”
“…….”
“이…… 이것이…… 무엇입니까?”
“허…….”
“인어가 아닙니까? 으아악!”
산모는 대야에 담겨 있던 아이를 보고는 연신 비명을 지르더니 결국에는 기절을 하고 말았다. 그 곁에 앉아서 대야에 담긴 아이를 바라보는 대감의 눈빛은 초점을 잃었다.
부모의 절규를 모르는 아이는 대야에 담겨 천진난만하게 작은 꼬리를 펄럭이며 환하게 웃어 주었다.
인간의 태에서 저주를 받은 인어가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