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4 꽃이 지다 =========================================================================
BGM- Fate staynight ost/夢の終わり(yumeno owari-꿈의 끝)뜰에 마련되어있습니다.
-후기 작성합니다. 질문사항 있으시면 해주세요! 1시간 뒤에 에필로그 올리구 같이 합산해서 작성해드릴게요!
“이것이 동화 속에 가려진 진실이란다.”
이야기를 더 하려던 남자는 훌쩍거리던 소리를 듣고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했다.
“마, 말도 안 돼. 그러면 성녀와 기사는 주, 죽은 거예요?”
아이들의 얼굴에는 눈물과 더불어 콧물이 흘러내렸다. 훌쩍 거리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남자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미, 미안,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
그들의 손에 들린 동화 ‘성녀와 기사’이야기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흥분해서 말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심취되어 아이들에게 그 장대한 이야기를 흥분해서 해댔다. 그는 언제나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주는 것을 원했고, 그는 비로소 꿈을 실현시켰다!
“그, 그래서 성녀와 기사는 다음 생애서 만난 건가요?”
그 말에 남자의 얼굴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글쎄? 그럴지도 모르겠지.”
그 말에 소년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소녀에게는 다르게 다가온 모양이었다.
“그게 뭐예요!”
“어?”
남자가 소녀의 앙칼진 말에 당황하자 소녀가 말했다.
“뭐 다음 세상에서 만나서 행복하게 살았다니, 그런 유치한 결말이 어딨어! 그건 결국 이들의 삶이 불행했으니 다음 생애는 행복했으려나아, 하고 적당히 만족하는 거잖아요?!”
“그. 그렇지? 하지만 다음 생애에선 진짜 행복할 수도…….”
“아니, 그 사람들의 생애가 불쌍했다는데 대체 후생이 무슨 소용이에요! 기사와 성녀가 불행했다잖아! 결혼도 못하고! 사랑도 제대로 못하고! 그냥 죽은 거잖아! 다음 생애 태어난 기사와 성녀가 무슨 기사랑 성녀겠나요. 다시태어난 시점에서 이미 같은 사람이 아닌데! 이게 무슨 개소리야!”
그렇게 거칠게 말하는 소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이 이야기가 너무나 슬퍼서, 화를 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남자는 그것을 보며 웃었다.
“그래, 그 말이 맞구나.”
“…….”
“현생에서 행복하지 못했던 걸, 후생에서 행복해 지리라 말하는 것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아. 결국 그 사람들의 생애는 비참했는걸.”
남자가 의외로 시원스럽게 인정하자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년은 훌쩍거리며 울고 있었다. 불쌍한 기사, 불쌍한 성녀. 꺼이꺼이 우는 남자아이의 소리에 남자는 ‘아이고 이런, 혼나겠다.’고 중얼거렸다. 각기 다른 표정으로 훌쩍이는 두 아이를 보며 남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애들아, 그런데 후생의 이야기를 하기엔 너무 빠르지 않니? 나는 아직 이야기를 다 안 끝냈는데.”
“네?! 죽었다면서요! 숨이 끊어졌다면서!”
소녀가 억울한 듯 소리쳤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남자의 머리채를 쥐어 잡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맞아, 그리고 실제로 벌어진 역사라면서요!”
소년이 소녀를 따라 소리쳤다. 그 귀여운 아우성에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이런, 내가 말하지 않았니? 이 이야기를 하는 건 너희들이 슬퍼하길 바라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서란다.”
“…….”
“그냥 이런 거란다. 굳이 새로 다시 태어날 이유가 없이. 동화 속 인물은 의외로 평범하게 우리 곁에서 살아갈지도 몰라.”
“그게 무슨 소리에요?”
소녀가 고개를 갸웃 했다. 남자는 더욱 짙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기사와 성녀라는 동화에서, 성녀는 아름답게 묘사되지만, 뭐 사실은 엄청 단 것을 좋아하는 여자일수도 있고, 기사는 우직하며 냉정하게 묘사되지만 사실 아내에게 맥을 못 쓰는 이상한데에 허술한, 예컨대 거스름돈도 몰랐던 사람일수도 있다는 거지.”
“에엑, 그게 뭐야. 거스름돈도 모르다니.”
“바보 아니에요?”
소년이 언제 울었냐는 듯 킥킥거리며 웃었다. 소녀역시 이번에는 그의 농담이 좀 재미있었는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러니까, 더 쉽게 풀어 말하자면, 성녀가 제비꽃을 좋아하는 네 어머니일 수도 있고, 기사가 지금쯤 너희들을 찾으러 왕실 기사들을 전부 동원하는 에르멘가르트 대장군일수도 있다는 거야.”
“어……?”
아이들의 두 눈이 커졌다. 동화 속에 나온 제비꽃은, 어머니가 좋아하는 꽃 색이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머릿속이 어떠한 결론이 다다르기도 전에, 남자의 입이 열리며 동화의 마지막 부분을 이야기 했다. 아이들의 얼굴이 슬픔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다시 환하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니? 때론 역사에 새겨진 진실이 동화보다도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단다.”
방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폐하, 라는 남자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이 꿈과 같이 아득한 시간이 끝났음을 짐작했다. 남자는, 아니 국왕 샤를루스는 아이들의 제비꽃색 눈동자를 보며 미소 지었다.
문이 열리고, 남자에게 달려간 아이들, 기사와 그 기사의 아이들을 보며 샤를은 아이들에게 해주었던 마지막 이야기를 회상했다.
[모든 것이 다 끝나고, 육체가 두 구가 놓여 있었단다. 성녀는 그 제비꽃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내세에서 다시 만나길 소망했단다.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없는 해피엔딩이 그곳에는 있으리라 생각했지. 그녀는 눈을 감았단다.]
비올렛의 흘린 피를 뒤집어 쓴 이형의 괴물의 몸이 점점 회복되기 시작했다. 파헤쳐진 내장, 갈라진 살이 다시 붙어, 찔린 심장이 다시 뛰며, 그 이형의 괴물에게서 하얀 빛이 났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단다.]
괴물은 다시 자신의 몸으로 들어갔다. 몸을 지배하던 고통이 사라지고, 다시 심장이 맥동하기 시작했다. 짐승의 울음소리 같던 숨결은 다시 인간의 숨결이 되었고 발톱은 사라져 남자의 거친 손이 되었다.
[죽음을 바라고 모든 성력을 가져다 쓴 성녀의 피가 말룸을 적셨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연인의 피를 뒤집어 쓴 그가 죽기는커녕 사람으로 돌아와 버린 거야, 이상하지 않니? 어, 안 이상하다고? 아, 아니, 이상하게 생각해주라. 이미 힌트는 내가 그동안 말했잖니. 생각해봐, 너무나 간단하고 어이없을 정도로 쉬운 이유였으니까.]
남자가 이윽고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는 저주를 상징하던 불길한 붉은 빛이 아닌, 언제나처럼 어두운 바다의 빛을 띤 짙은 푸른색이었다. 그는 돌아오지 않는 시야에서 눈을 깜빡였다. 어쩐지 머리가 아팠다. 아직까지도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죽음에 이르기 전, 그는 자신에게 향하는 질문을 들었다. 그것은 마지막 발악과도 같은 질문이었다.
-어때, 너는 신을 저주하지? 그렇지? 연인의 손에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다니 말이야. 너만큼 비참한 사람은 없을 거야.
그가 대답하지 않아도 그 의지는 남자의 머릿속과 가슴속을 후벼팠다. 마치 그의 마음에 남아있던 일말의 어두운 감정을 캐내기라도 하는 듯, 샅샅히 읽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남자는 허무신의 대답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사실은, 너무나 간단한 이유였단다. 기사는 신을 단 한번도 저주하지 않았던거야.]
그에게는 신을 원망할 수 있었지만, 저주하며 증오할 어떤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간단한 일이었다. 그는 오히려 신에게 감사했다.
신이 있어서 그녀를 만났고,
그녀를 대신하여 저주를 대신 받았다.
그 죽음마저 연인의 손으로 받아냈고
자신이 죽음으로서 그가 지키고 싶었던 모든 것을 지킬 수 있었다.
그에게 내린 운명이 잔혹했을지라도, 그가 아니었으면. 아니, 그앞에 벌어진 모든 우연이 아니었으면, 신에게 태생된 비올렛은 그 잔혹한 운명을 지니고, 혼자 남아 신을, 세상을 저주하며 세상을 멸했으리라. 그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렇게 만나게 된 것에 감사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왜 신을 저주해야 하는가? 그는 언제나 죽음을 생각하던 기사였고, 자신에게 닥친 운명이 조금은 원망스러울지언정, 저주스럽다는 감정까지는 도저히 들지 않았다. 오히려 비올렛의 얼굴을 볼때마다 그는 저 여린 여자가 저주에 걸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심해왔던 것이다.
[기사는 너무나 신에게 감사했단다. 신이 있기 때문에 성녀를 만날 수 있었고, 그리하여 그녀가 앞으로 겪었어야 할지도 모르는 지옥을, 그가 대신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자신을 죽이는 것이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죽음에 만족했지. 기사는 또한 너무나 오만한지라 자신이 사랑하는 것만큼 성녀가 자신을 사랑하리란 사실을 몰랐단다. 그것이 잔혹한 최후라 해도, 성녀는 자신의 행복을 찾아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 그래서 그는 원망할만한 이유가 없었던거야.]
남자는 분에 차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죽어버리라는 분에 섞인 외침이 들려왔다. 죽어가는 그의 몸에 끼얹어진 따스한 피가 끼얹어지며 그의 상처가 회복되었다. 왜냐면, 그가 그 질문에 대답한 순간부터, 그는 저주가 걸린 말룸이 아니라,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말름에게 독으로 작용해야 할 비올렛이 흘렸던 성혈은 인간에게 적용되는 것과 똑같이 그의 상처를 깨끗하게 치료했다.
[그래, 저주는 언제나 끝을 고하게 되어 있어. 저주에 매개가 있어야 했던 것처럼, 저주를 푸는 해법이 있어야 하는 것이 세상의 법칙이었지. 저주를 푸는 조건도, 창조신이 내기에 이기는 조건과 동일했어. 절대로 불가능한‘끝까지 신을 저주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조건 말이야. 이건 복잡한데. 저주가 풀리면 원래는 상처입은 남자는 그대로 죽었어야 했단다. 그러나 성녀가 성혈을 그 위에 뿌렸기 때문에, 남자의 상처가 나아버린 거야.]
그의 시야에 노을져 황금색으로 물든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가 눈을 깜빡였다. 이곳은 새로 태어난 곳인가, 아니면 내세인가, 아니면 사후에 있다는 세계인가. 시야를 인지하자 그는 자신의 몸을 감싼 옷의 촉감을 느꼈다. 팔을 뻗어 움직여 시야 안에 자신의 손바닥을 보자, 그는 이곳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누워있는 자신의 옆에 피어있는 제비꽃을 보았다. 그 아름다운 제비꽃을 한참이나 바라본 남자의 배에 무거운 감촉이 느껴졌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의 배 위에 쓰러진 여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자신의 배 위에 쓰러진 성녀를 보았다. 그러나 성녀는 더 이상 성녀가 아니었어.]
쓰러진 여자의 머리카락은 황금색 햇살에 비쳐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낯선, 그러나 언제나 그리던 그 머리색깔, 언제나 성흔이 자리했던 이마는 깨끗했다. 남자는 눈을 감은 그녀의 옆모습을 보았다. 그 얼굴은 사랑하는 여자, 비올렛의 얼굴이었다.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팔을 뻗어 여자를 안아 들었다. 여자의 가냘픈 몸은 힘없이 축 늘어졌다. 그는 자신의 연인을 깨우려 몸을 흔들었다. 언제나 꿈꾸었던 그 예쁜 보라색 눈동자가 그를 바라보길 바라며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비올렛. 이라는 부르기도 너무나 아까운 그녀의 소중한 이름을.
그러나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남자는 축 늘어진 그녀의 손에 잡혀 있는 피가 묻은 긴 검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그 검이 그녀의 배를 찔렀다는 것도.
그는 그제야 지금 자신에게 벌어진 끔찍한 일을 인지했다. 말룸이 되어 죽임을 당했던 자신은 살고, 그녀는 죽었던 것이다. 그가 다시는 하지 말라 했음에도, 그 말을 비올렛이 어긴 것이다.
자신이 이 세상에 남고, 그녀가 가버린 것이다! 그는 낮은 비명과도 같은 탄식을 내뱉었다. 무언가가 끌어올라 흘러넘치고있었다.
그는 짐승이 우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남자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여자를, 비올렛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가 익히 알고 있던 시체의 감촉이 느껴졌다. 이 순간에도 그의 이성은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을 믿을 수 없어 했다. 그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감정에 미친 듯이 괴로워했다.
[기사는 연인을 끌어 안았다. 그리고, 기사는 눈물을 처음으로 눈물흘리며 아이처럼 울었단다. 그 강철같은 기사가, 난생 처음으로 그렇게 울어 버린거야.]
그의 두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눈을 감은 비올렛의 얼굴을 어룽어룽 적셨다. 그는 눈물을 참지 않았다. 그리고 가슴 깊이 몰아쳐 오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았다, 아니, 억누르기엔 그 슬픔이 너무나 커서 억누르지 못했다. 두 눈에 흐르는 것은, 그의 슬픔이었다. 비통한 신음소리가 목 아래에서 끓어나왔다. 그 강철같은 남자, 에셀먼드는 무너져 내리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는 계속해서 울었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깊고 깊었지만 감히 표현할 수 없었던 그의 마음을 표현한 곳, 언제나 수심에 잠겼던 여인이 웃길 바라 서투르고 비밀스럽게 바쳤던, 그의 집 후원에 핀 제비꽃들 속에서.]
그는 비올렛을 끌어안으며 그녀의 몸에 남아있을 온기를 느끼려 했다. 하지만 세상은 잔혹하게도 비올렛의 온기를 앗아가버렸다. 이곳, 이 후원에 핀 제비꽃에서 네가 죽어 있었다. 미칠듯하게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그렇게 지키려고 했던, 그의 삶의 목표이자 의미였던 비올렛이 죽어 있었다.
하늘은 그때처럼 금색으로 빛나고, 새들은 지저귀고, 네가 좋아하던 제비꽃은 이렇게 후원 가득 피어있는데, 왜 너는 죽어 있는가.
왜,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름답다 생각하는 너는 죽고 없는 것일까. 그에게 아름다움을 뜻하는 단어는 비올렛 뿐이었다. 그녀가 없이는 아름다움이라는 단어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오만을 깨달았다. 붉은 공작이 말했던 것처럼 정말로 그는 오만했던 것이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결코 얕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녀가 자신을 떠나 살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행복하게 살것이니 걱정말라고 말하던 그녀의 말을 믿어버렸던 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눈물로 만들어낸 처연한 거짓인 것을 알면서도, 그가 그녀의 세상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그녀의 마음을 너무 쉽게 생각해버렸다. 자신은 얼마나 잔인한 짓을 그녀에게 저질렀던 것인가. 그저 세상에 그녀가 사라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숨쉬는 것이 괴로운데. 이런 잔인한 짓을 저질러 놓고 그녀가 살아있길 바랐던 것이다.
아, 아 아아!
그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나 나오는게 어려운 줄 알았던 눈물은 생각보다 쉽게 흘러내렸다. 짐승의 괴로운 비명같은 소리를 내며 그는 숨을 헐떡였다. 그 아름다운 주홍색 노을을 뒤집어 쓴 그녀의 죽은 육체는 그 자체로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서글퍼 그는 소리내어 울었다. 에셀먼드는 그녀의 죽음을 실감했다.
BGM.
그때 어디선가 은색의 빛을 띠는 구체들이 그들에게 날아왔다. 그들은 마치 위로하듯 에셀먼드와 비올렛의 주위를 맴돌아 아름답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비올렛을 품에 안고 그녀의 목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었기에 에셀먼드는 그것을 볼 수 없었다. 하얀 빛이 따스하게 비올렛을 감쌌다.
[그런데 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그를 위로하듯, 어딘가에서 은색의 동그란 빛덩어리들이 날아온거야. 그 은색의 빛들은 목숨을 잃은 성녀의 주변에 맴돌 더니, 아주 상냥한 빛을 뿜고 그녀의 주변을 밝혀주었단다.]
*
“참으로 웃기는군.”
허무신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기가 기이한 양상을 띠더니, 그가 마련한 룰, 창조신이 선택한 아이와 저주를 받는 아이가 달라지는 현상이 생겨버렸다. 첫 번째 아이가 있었을 적에도 있었던 일인지라 그는 신경쓰지 않았지만, 이 인간들은 그 저주의 해법을 알아내고, 내기 자체를 무효화 시키려 했다. 그 피조물들이 결국 신들의 내기를 자신들의 세계에서 제거했다는 것도 어이가 없을진데―
“내가 졌다.”
자신이 져버렸다. 그래, 저 아이에게. 그러니까 알지 못하던 저 인간 남자놈의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말이다. 허무신은 그 불행하다고 욕심을 부리는 피조물들이 그 ‘사랑’이라는 감정을 속삭이며 삶의 기쁨을 가끔씩 노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이라는 게 그 무엇보다도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허무신은 피조물인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역시도 허무할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내기에서 승리할 거라 생각했다. 내기가 이상하게 되어버렸지만, 이번 내기, 이번 내기만 지나면 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기자체가 무효화가 될 뻔하더니, 이제는 결국 패해버렸다. 세상에 신을 향한 사랑이 아닌, 사랑하는 상대 대신에 저주를 받았기에 신을 저주하지 않다니! 허무신은 자신 역시 인간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허탈해 하며,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때 허무신 주위에 있던 영혼들이 흔들렸다. 허무신은 그 영혼의 구체들을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너희들은 영원한 안식에 넣어주겠다. 저 고통스러운 세상에 보낼 일은 없을 거야.”
같이 허무로 돌아가자 약속하며 거두었던 서른 세 개의 영혼들은 허무신 주위를 뱅글 뱅글 맴돌았다.
“너희들도 나와 함께 허무로 돌아가자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가고싶다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구체들이 이야기를 하듯 진동했다. 허무신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더니, ‘하’ 하고 실소를 내뱉으며 말했다.
“그렇구나.”
그는 납득한 듯 세상으로 통하는 길을 열었다. 그리고 그가 연 길을 따라, 서른 세 개의 영혼들이 두둥실 떠오르더니 그들이 있는 곳을 벗어나 다시 세상으로 나아갔다.
허무신은 여자를 끌어안은 채 오열하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운도 좋기도 하지. 내기에 진 분풀이로 죽을 운명이었던 놈을 창조신의 아이가 되살려버렸다. 그리고 결국 저 여자가 죽어버렸지. 결과적으로 저 남자 역시 죽는 것보다 더 괴로움에 처할 것이다. 하지만 서른 셋의 신의 아이들은 멍청하게도, 그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괴로워하는데도 다시 자신들을 배반한 세상에 가겠다고, 그에게 아우성 치고 있었다. 참 인간은 알 수 없는 존재이다.
“이건 내 선물이다.”
그렇게 말하며 허무신은 입을 열고 신어(의지를 실현시키는 권능)를 썼다.
“цут”
그 선물이 무엇인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들도 나중이 돼서야 알게 되겠지, 아주 재미있는 선물이 될 것이다. 어쩐지 유쾌한 기분이 들어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저 발칙한 피조물들을 바라보았다.
만물은 자신의 분신을 잉태하며 세상은 순환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욕구가 있는 이상 그들의 불행의 아우성은 지속된다. 그리하여 허무신은, 그들을 욕구조차 없는 무의 세계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것이 허무의 의지, 허무신이였다. 이것이 존재해버린 자들에 대한 그의 사랑법이었던 것이다. 그래 그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디에서나 존재했다. 자신에게도, 심지어는 저 녀석에게도.
그는 자신의 뒤에 있는 이미 실체화 할 힘도 잃어버린 창조신을 바라보았다.
“너 치고는 꽤나 자비로운 대우였어. 일부러 힘을 거둬간 거지? 네 아이가 죽지 못해 괴로워 미치는 꼴을 보지 않도록? 넌 언제나 죽은 아이들의 영혼의 힘을 회수하지 않았잖아. 이미 영혼이 된 저 애들을 파괴해야했으니까, 그렇지?”
창조의 의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야 좀 알 것 같군. 네가 네 살을 깎아가면서 아이를 만들었던 것, 그것 자체가 네 나름의 사랑의 방식이었던 거야.”
허무신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허무신은 아직도 존재하려는 의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허무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존재가 비존재를 이해할 수 없듯, 창조역시 파괴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때로는, 그 붉은 머리카락을 지닌 아이처럼, 어떤 존재도 허무로 향하는 지극히 파괴적인 갈망을 지니는 것이다.
살아있는 존재가 허무로 향하는 의지를 가질 수도 있듯, 허무의 존재역시 삶의 의지를 인정할 수 있었다 둘은 반대이되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아닌 것이다.
욕구는 욕구를 낳고, 그 욕구는 불행을 낳는다. 그들은 그들이 만든 것에 대해 언제나 고통받고 괴로워 할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인간의 군집이 만들어 낸 것에 스스로 고통 받아도, 또 그 고통에서 그들을 해방 시킬 것은 너무나 간단한 것이었다. 그 엄청난 저주가 사실은 ‘신을 저주하지 않는다’는 말에 간단히 풀려버릴 만큼. 그들의 마음은 의지가 되고, 의지가 된 마음은 강력한 힘을 가져, 이 추한 세상을 또 아름답게 유지시켜 나간다.
그것이 창조신이 만든 세상이었으며, 인간이 이 세상을 유지하는 이유였다. 그래 저 터무니없는 제비꽃이 가져온 기적 처럼, 저 작고 하잘 것 없는 가치는 그들이 만들어나간 고통스러운 지옥을 천국으로 바꾼다.
언제나 처럼 창조신은 어리석은 피조물들의 아우성을 방관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지켜보는 것도 또 하나의 애정이나니, 허무신은 그저 조용히 파멸로 향할 순간을 다시 기다릴 것이다.
앞으로도 저 생물들은 그렇게 살아가겠지. 그것에 울고 웃고 떠들며, 또 어리석게도 신을 부르짖을 것이다. 아니면 그들은 더욱 놀라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지도 몰랐다.
“아, 재밌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기를 종료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게 허락된 시간이 끝나는 약속의 시간 까지, 내기에 패한 허무신은 그 기다림을 선택했다.
*
린도는 사람들을 바깥에 세우고 혼자 후작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싸늘한 겨울이어야 함에도 따스한 훈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마치 비올렛의 마음처럼. 그러나 그는 일부러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 어떤 결과가 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비올렛은 상처를 입지 않고 에셀먼드를 죽이는 것을 실패했을지도 모르고, 에셀먼드를 죽이는데 성공한 비올렛이 엉엉 울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에셀먼드를 죽이고 비올렛도 자결했거나.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비올렛의 마지막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린도는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트렸다.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자신은 비올렛을 죽음으로 몰아넣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후작가에 가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결과도 마찬가지의 확률. 그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일이 벌어졌다 사라졌다.
린도는 조용히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는 그 무너져가는 도시 속에 떠도는 아름다운 구체들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흔들리며, 그 구체들은 부드럽게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린도는 넋을 잃고 그 아름다운 빛덩어리들을 보았다. 그것이 가진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친근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따. 린도는 자신도 모르게 한 빛덩어리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 구체가 그의 손 끝에 다가왔다.
[린도.]
그 부드러운 목소리의 울림에 린도는 당황했다. 애정이 담뿍 담긴 그 목소리는 낯설었으나 이상하게도 그립게 느껴졌다. 누구의 목소리인지도 모른채 린도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의 두 뺨에 부드러운 손이 닿았다.
린도가 고개를 드니, 아름다운 금발의 여성이 그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순간 신이 현계한 것인가, 생각하며 린도가 뒤로 물러서려 했다. 하지만 그 따스한 빛의 여인은 린도의 볼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아주 잘 자라주었구나.]
누구냐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어쩐지, 알 것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린도는 너무나 겁쟁이라 그것을 소리내어 부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가 삼십년을 평생 입에 담아보지 못했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입을 뻐끔 거리며, 속으로 그 이름을 외쳤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듯 여자는 부드럽게 웃었다.
[나는 이곳에 남아 언제나 세상을, 너와 네 아버지를 사랑할거야.]
그리고 그 영혼은 린도를 향해 미소 지었다. 린도는 손을 뻗었다. 따스하게 손을 잡아주는 감촉이 들었다. 마치 작별인사와도 같았다. 린도는 그것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 따스한 작별인사를 하는 그것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다른 빛의 구체들이 스쳐지나가고 린도는 멍하게 서있었다. 그의 턱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서른 세 개의 영혼들은, 모두 한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오랜만에 나온 세상을 둘러보았다. 그 미친 듯이 저주스럽고 사랑스러운, 그녀들이 평범하게 발붙이고 살아가길 원했던 세상을.
그들은 나뭇가지가 앙상한 산을 돌았고, 파도가 이는 푸른 바다를 돌았다. 어떤 것은 붉은 공작의 무덤가에 서 있다 그것을 지켜보며 사라졌으며, 어떤 이는 자신이 사랑했던 초대 왕과 처음 만났던 곳으로 향했다. 그들은 저마다의 의미가 있는 곳을 떠돌아다니며, 그들의 삶이 있었던 장소를 돌아보았다. 몇백년이 지나버린 자신이 존재했던 그 세상을, 다시 살아가기 위해.
세상을 구경한 그 빛의 덩어리들은 드디어 한곳에 모여 가장 마지막 아이에게 다가갔다. 가장 가련하며, 애처로운, 그러나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았던, 그리고 또 행복한 삶을 살 마지막 서른넷째 신의 자식을 향해. 아이의 영혼은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서른세 번째 영혼이 그녀를 깨웠다. 나의 아이야, 이제 일어나. 일어나. 어서, 비올렛. 어서.
그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잠든 영혼이 깨어났다. 그 애처로운 영혼을 향해, 서른셋의 영혼들이 속삭였다. 우린 네 숨결 속에서, 네 삶의 일부가 되어 세상을 사랑할거야. 불쌍하게 죽어버린 여자들은 다들 자신의 소원을 마지막 아이에게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이 미치도록 아름다운 세상에서 숨쉬며, 그녀 자신의 소망을 이루라고. 그리고 마지막 영혼, 비올렛은 고개를 끄덕였다.
*
에셀먼드는 사랑하는 여자를 끌어안고 울었다. 그 찬연하게 피어난 제비꽃 속, 여자는 그렇게도 슬프게 죽어 있었다. 그녀의 곁을 떠돌던 빛의 구체들이 서서히 그녀의 입술 안으로 들어갔다. 뻣뻣한 시체였던 그녀의 죽은 육신이 다시 부활하기 시작했다.
상처 입은 그녀의 배가 서서히 아물고, 따스한 온기가 생겨났다. 창백한 두 뺨에는 생기가 돌고 보드라운 콧망울과 작은 입술에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에셀먼드는 울고 있느라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슬픔이 완벽하게 이성을 지배했고, 연인을 잃은 상실감에 통곡하고 있을 뿐이었다.
에셀먼드는 자신의 등을 감싸는 손을 느꼈다. 그는 몸을 들고 그제야 여인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에셀먼드는 굳은 표정으로 비올렛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셀먼드가 보았던 어떤 신의 기적도, 그날의 기적만큼 아름답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조심스럽게 감겼던 그녀의 눈동자가 떠지며 남자를 눈에 담았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비올렛의 불에 떨어졌다. 이윽고, 눈을 뜬 비올렛은 자신의 세상을 보며 따스하게 미소를 지었다.
보라색 제비꽃의 물결은 황금빛에 물들어 유려하게 흩날렸다. 그 미칠듯한 아름다운 향기 속에서 그들은 지극한 행복 속에 잠겨 서로의 눈을 바라 보았다.
[내가 말하지 않았니? 때로는 역사에 새겨진 진실이 동화보다도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단다. 눈을 뜬 여자의 눈동자 색은 후원에 핀 제비꽃 색이었단다. ]
후원에 핀 제비꽃 完
============================ 작품 후기 ============================
1시간정도 후에 에필로그와 후기 올리겠습니다. ^^ 좋으신만큼 추천. 이번에 추천수 코멘트!! 19금 이벤트 할 생각이니까... 그건 후기에 올릴게여!
아 후기 작성하기 전에, 질문 혹시 있으시면 해주시겠어요? 후기에 답껏 질문해드리겠습니다.
아 이 꿈의 끝이라는 노래는 아일랜드어로 만들어졌다고 하네요(확실치 않음) 가사는 이렇습니다.
별이여, 별들이여, 꿈은 영원
별이여, 별들이여, 잠은 희망
별이여, 별들이여 수천의 낮과 눈물
별이여, 별들이여, 수천의 밤과 환희
구름의 흐르고 태양과 달이 교차하네,
이제야 말로 약속의 시간
꿈의 끝, 바람이 잠든 장소의 새벽녘,
꿈의 끝, 생명은 되살아나고 눈물이 흘러넘치네
꿈의 끝, 바람이 잠든 장소의 새벽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