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3 꽃이 지다 =========================================================================
BGM-Libera-Time (뜰에 준비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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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하늘은 다시 한 번 비명을 지르며 붉은 피를 흘렸다. 다시 한 번 태양이 사라지고 밤과 낮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드디어 말룸이 도래했노라 말했다. 수도에 기거한 국왕과 귀족들은 교황이 만들어 놓은 선 너머로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붉은 피안개가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서, 성녀님은!”
불안하게 성녀를 찾는 귀족을 한심하게 쳐다본 린도가 조용하게 말했다.
“이미 안에 들어가 있소.”
말룸이 나타나는 도시의 끔찍함은 일찍이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불안에 떨었던 겁쟁이 같은 교황들은 성녀와 말룸의 싸움터를 지나치게 넓혀버렸기에, 사람들은 말룸의 위험성을 체감하지 못했다. 말룸의 진득한 독기가 모여 붉은 피안개를 만들어 내 습진 공기가 비릿한 내음을 풍겼다. 그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울진데, 주변은 그들이 불안하게 떠드는 것 보다 더욱 적막했다. 검을 든 살수가 바로 등 뒤에 있는 것처럼 등줄기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반면, 성기사들은 백금의 갑주를 입고 린도가 배치한대로 서 있었다. 그들은 비장한 각오로 서서 성녀와 말룸의 마지막 전장을 지키려 하고 있었다. 그들은 경건한 표정으로 저마다 신에 대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린도는 신에게 평생을 바친 기사를 보고 속으로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저들은 에셀먼드가 마귀가 건 최후의 발버둥에 저주를 받아 말룸이 되었다는 것만 알고 있지 신의 무능함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끝이로군요.”
샤를의 말에 린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샤를은 애써 덤덤한 표정으로 성기사들로 이루어져 있는 줄 너머 에르멘가르트 후작가를 응시했다. 에르멘가르트 후작가는 왕성을 기준으로 수도의 서부에 위치해 있었고, 그들은 서부와 동부의 경계선에 선을 마련하여, 마지막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올렛은 자신이 나름 방법을 마련해 두었으니, 안전할 거라 말했다. 그러나 위험 여부에 상관없이 샤를은 이 싸움을 자신이 꼭 봐야하는 싸움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핏빛의 빛기둥이 내려앉았다. 그 괴이한 빛에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커졌다. 샤를도, 린도도, 그리고 모든 이들도 그 빛기둥 안에 있는 거뭇한 것에 시선이 갔다. 그들은 그렇게 끔찍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말룸’이었다.
그것은 커다란 몸을 가졌고 박쥐와 같은 날개를 가진 붉은 눈을 가진 생명체였다. 모든 이들이 그것을 두려워 해 벌벌 떨었다 그것은 생명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다 위협을 느끼는 허무신의 저주의 결정체였다. 그들은 심장을 짓누르는 옥죄는 듯한 악기와 절망감을 느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들이 그 저주받은 생명체에 놀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다시 핏빛으로 물들어 버린 하늘, 멸망의 노래를 부르는 괴이한 울음소리. 모든 귀족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저들은 그제야 말룸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왜 이것을 없애기 위해 성녀가 필요한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은 아그레시아의 성녀를 그동안 핍박해 왔다는 것도.
“스, 스승님은 저곳에……괜찮으신겁니까?”
샤를이 그 악기에 겨우 말을 내뱉자 린도가 침착하게 말했다.
“악기라면 저번에 나타난 말룸의 절반도 안 됩니다.”
린도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귀족들이 몸을 떨었다. 지난번에 나타난 말룸의 악기의 반도 안되다니! 그들은 아주 어렴풋이 느끼던 말룸의 무서움을 직접 체감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몇 천 년 만에 말룸의 얼굴을 처음 보는 외부인들이었던 것이다. 말룸과 성녀의 전설이 거짓이라 떠들거나, 성녀가 있어 말룸이 있다는 소리를 외치고 다녔던 이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 전설은 거짓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 했던 것이다.
이 나라는 성녀의 나라, 성녀의 수호로 세워졌다. 그들은 가끔 왜 여자의 이름으로 나라가 세워졌냐고 웃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라도 저것을 보면, 그리고 저것에 대적하는 사람을 경외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을 것이다. 저것과 대치하는 것이 검을 든 기사가 아니라, 그 가녀린 여자라니. 그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처음으로 비올렛에게 빌었다. 비록 두려움에서 비롯되었지만 비올렛의 무사 생존과, 말룸의 퇴치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말룸이 어느 한 지점을 보며 비명을 저주에 찬 악을 내질렀다. 그때 반짝이는 새하얀 빛줄기가 말룸의 날개를 꿰뚫었다. 성녀였다!
사람들은 그 날카로운 빛줄기가 그렇게 반가웠던 적이 없었다. 아아, 자신들의 성녀는 어쩜 이렇게나 고결한 것인가!
하늘에 떠있던 말룸이 빠른 속도로 지상으로 다시 추락하기 시작했다. 작은 빛이 한번 반짝였다. 그 영문 모를 빛에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거지?’ ‘다 끝난 건가?’라고 말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안가 새하얀 빛이 강렬하게 폭사되었다. 그들이 가진 모든 불안함과 악기를 해소하는 그 따스한 빛에, 사람들은 또다시 성녀를 찬양하고 있었다. 저 무서운 것을 두 번이나 물리친, 성녀를 이번에는 진심으로 경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빛이 사그라들고 하늘이 맑게 개였다. 파란하늘, 서쪽하늘에는 해가지고 있었다. 맑은 새소리가 들렸다.
린도는 하늘을 보았다. 황금색 노을을 바라보며 그는 직감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것이다. 어쩐지 눈물이 흘렀다.
*
비올렛은 내밀어진 화살과 검을 허리춤에 찼다. 에셀먼드는 후원에 나가있었다. 비올렛은 활을 보았다. 이전, 그가 속삭여준 말이 기억에 났으나 그녀는 도리질 치며 그것을 기억에서 지우기로 했다.
비올렛의 생일을 이주일 남기고, 에셀먼드는 결국 이지를 잃었다. 그의 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끈적끈적한 실들이 자라났다. 그는 사람의 모습을 점점 잃어갔다. 그리고 그 악기가 노골적으로 짙어진 순간 그는 비올렛을 밀쳐내고 저택 바깥으로 뛰어갔다. 비올렛이 그를 재빨리 쫓았으나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저택의 후원에서 발견되었다. 그의 몸에서 자라난 실들이 그를 고치처럼 휘감고 있었다. 또다시 울보처럼 울음이 나오려 했지만 비올렛은 그것을 참았다. 그저 약속한 시간이 다가온 것뿐이었다.
비올렛은 언제고 오늘을 위해 준비했던 무기들을 장착했다. 성력을 심어 넣은 화살, 그리고 검. 준비할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사용인들은 그 겨울, 첫눈을 맞은 이후로 모두 내보냈다. 그리하여 그들은 꿈과 같은 사흘을 보냈다. 이제 그 마지막이 온 것이다.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비올렛은 걸어 나갔다. 이젠 마지막이었다.
*BGM 틀어주세요.
홀로 그를 죽이러 가는 길은 너무나 고독했다. 나가기 전 비올렛은 후작가의 복도를 바라보았다. 이곳은 그의 집이었는데 이제 그가 사라지게 된다. 비올렛은 조용히 계단으로 내려갔다. 조심스럽게 현관을 열고 나가자 모든 꽃이 시들어버린 정원이 보였다. 어렸을 적, 이곳에서 그를 기다렸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젠 퇴궁하는 그를 다시는 보지 못하겠지.
어서 말룸을 없애러 가야 한다.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그저 다른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아이가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미루는 것처럼, 그녀도 그러는 것이다. 그저 그런 것 뿐이다.
비올렛은 그 정원을 보다 후원으로 향했다. 에셀먼드가 서 있었던 곳에 자리 잡은 그 알과 같은 물체를 보며 비올렛은 한참동안 그 앞에 앉아 기다렸다. 겨울이 다가와 땅은 얼어붙었고, 이제 말라 비틀어진 꽃은 바스라져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말룸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직전 에셀먼드는 이곳에서 무엇을 생각했던 것일까. 알 수 없다.
고치가 터지는가 싶더니 붉은 핏빛기둥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것을 에워쌌다. 그 기둥이 내려오자 엄청난 악기가 비올렛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말룸이 강림했다. 비올렛이 할 것은 너무나 명확했다.
이제 상처, 상처를 입지 않고 그를 데려가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예견 된 것이었다. 방법도 이미 마련해 두었다. 비올렛은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 그, 아니, ‘말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검은색의 그림자가 그 빛기둥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익숙한 그 모습이 눈에 보였다. 거대한 몸에는 박쥐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저번 말룸과 다른점이 있다면, 성녀들의 죽은 시체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이 변이한 것이라 악취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길고 날카로운 발톱은 청동색으로 번쩍거렸고, 그 두 눈은 진득한 살의를 담고 있었다. 말룸이 비명을 질렀다. 가장 가까이에서 있는 비올렛은 그 목소리에 달린 살의를 몸소 느끼고 있었다.
비올렛은 무감한 표정으로 말룸을 바라보았다. 하늘 높이 악마의 날개를 펄럭이는 그 괴물은 자신이 저주하는, 그리고 자신이 멸망시킬 대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단 하나 남은 자신의 대적자, 비올렛도. 비올렛은 그 붉은 눈동자를 가진 말룸을 보고 있었다. 신을 저주하는 괴물은 포효했다. 괴이한 비명소리가 들리며 땅이 울부짖었다. 비올렛은 그 끔찍한 괴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말룸이 쏜살같이 솟아오르다 비올렛에게 달려 들었다. 비올렛은 준비되어 있는 화살을 쏘았다. 그것이 재빨리 말룸의 날개를 찢어버렸다. 덕분에 한쪽 날개를 잃은 말룸은 땅으로 추락해 버렸다.
말룸이 분노에 찬 비명을 내뱉으며 비올렛에게 달려들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움직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다리를 나무뿌리들이 휘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괴물이 뿌리에서 벗어냐려 했지만 땅에서 솟아오른 풀들은 말룸을 휘감고 놓아주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의 말룸은 성녀였던 말룸이 아니라 식물을 지배할 수가 없었다. 비올렛의 성력이 닿았던 식물들은 비올렛의 명령만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상처를 입지 않고, 식물을 다루지 못하는 말룸을 없애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비올렛은 나무에 묶인 그 거대한 말룸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활과 화살을 그대로 들고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그토록 달콤했던 시간은 종막을 고했다. 비올렛을 그 환한 금빛으로 빛나던 그녀의 기억들이 부서져 내렸다. 어린 기억, 어른이 된 기억, 이곳에서 그에 대한 사랑을 깨달았을 때, 절망에 눈물을 흘렸을 때. 모든 기억들이 아름다운 꽃잎처럼 산산이 흩어졌다. 행복했다고? 그와 함께 했던 몇 달동안은 너무나 행복했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으며, 서로밖에 없는 것처럼 절실하게 사랑했다. 지금은 불행한가? 라고 물으면, 그녀는 대답할 수 없었다.
비올렛이 나무 뿌리에 묶인 에셀먼드의 근처에 섰다. 그때 비올렛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를 뻔했다. 묶여있던 말룸이 한쪽 팔을 휘둘렀던 것이다. 저항하는 힘이 워낙 거세 나무뿌리를 잡아뜯었던 것이다. 그 날카로운 발톱이 비올렛을 노렸다. 설마, 이렇게 상처를 입는가. 갑작스러운 기습에 비올렛은 이미 늦었다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기다렸던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비올렛은 자신의 코앞에 멈춰 있는 말룸의 손톱을 바라보았다.
마치 경련이라도 일어난 듯 말룸의 손톱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비올렛은 한발자국 뒤로 물러가 그 손길을 피하며 말룸을 지켜보았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듯 그는 팔을 계속 움직이려 했다. 그것은 손톱을 휘두르려 하기도 하며 멈추려고하기도 했다. 비올렛의 명령으로 나무뿌리가 뻗어나와 말룸의 마지막 팔을 다시 결박시켰다. 나무뿌리가 단단하게 말룸의 사지를 옭아맸다.
크나큰 실수를 할 뻔 했다는 것 보다는 비올렛은 아릿한 가슴의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또다시 깨달아 버린 것이다.
“에드.”
말룸이라 여기려 했다. 그 부화한 괴물은 이제 에셀먼드가 아니라 저주에 잠식된 괴물인 것이다. 비올렛은 억지로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기에. 그러나 저 괴물은, 말룸은 에셀먼드였다.
“당신이 날 죽일 수 없을 줄 알았어요.”
비올렛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에드’라는 말에 말룸, 아니, 에셀먼드가 팔 뿐만이 아니라 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마치 그 말을 알아 듣는 것 같았다.
“왜냐면 당신은 에드니까.”
비올렛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눈을 부릅 떴다. 시야가 흐려질 것 같아 눈을 쓱쓱 닦고, 활을 들어 화살을 쏘려 했다. 그러던 비올렛은 다시 활과 화살을 바닥에 떨궜다. 챙그랑 소리가 나며 화살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비올렛은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전 린도가 그런말을 한적이 있었죠.”
이제 그는 이지를 상실해서,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비올렛은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활을 쏘는 것은 살생을 한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려 하기 위한 행위라고.”
“…….”
“당신은 그걸 위해 내게 활다루는 법을 가르쳐 줬죠.”
“…….”
그르릉 거리는 말룸의 위협적인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비올렛은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어떻게 당신이 가르쳐준 방법으로 당신을 죽이겠어요. 제가!”
활을 쓰는 법을 알려 준 것은 에셀먼드였다. 그래서 비올렛은 말룸에게 상처를 입지 않을 수가 있었다. 결국 활이 그녀를 저주에서 구해준 것이다. 그런데 그가 알려준 방법으로 어떻게 에셀먼드를 죽일 수 있겠는가. 어떻게! 비올렛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비올렛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활을 배우라 한 것이다. 자신을 죽일 수단이 될 거라 생각하지 못하고 알려준 것이다. 아직도 기억난다. 그는 무뚝뚝 했지만, 언제나 비올렛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의 사랑이 담긴 것이었다. 그래서 비올렛은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는 말룸이 아니었다. 자신의 눈 앞에 결박당한 그는 ‘에셀먼드’였다.
비올렛은 흐느끼듯 말했다.
“나는 못해요, 정말로 못한단 말이야. 내가 어떻게……”
비올렛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땅바닥으로 흘렀다. 새하얀 빛이 나며, 바닥에 제비꽃이 한송이 피어났다. 그러나 비올렛이 몸을 움직이자 그 작은 제비꽃은 비올렛에 의해 짓밟혀버렸다.
“나, 당신을 죽인 죄책감에서 벗어날 생각은 없어요.”
고통어린 비올렛의 얼굴에서 다시 표정이 사라졌다. 그리고 비올렛이 결연한 표정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스릉, 하는 서늘한 소리와 함께, 성력을 머금은 검이 은색으로 반짝거렸다.
나무 뿌리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던 에셀먼드는 비올렛이 검을 들고 천천히 다가가자 그 발버둥을 멈추고 가만히 보았다. 그리고 비올렛은 검을 들어 말룸의 배를 찔렀다. 새하얀 빛이 한번 반짝였다. 썩은 피가 아닌, 따뜻한 붉은 피가 말룸에게서 뿜어나와 바닥을 흘렀다. 비올렛은 그것을 보고 있었다. 그의 몸이 기울자 비올렛은 다시 검을 뽑아들어 살짝 성력을 머금은 빛으로 또다시 그의 배를 찔렀다. 말룸은 괴로움에 비명을 질렀으나 몸부림치지는 않았다. 악기에 물들었으나, 비올렛은 저 안에 에셀먼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에셀먼드를 찔렀다. 그의 몸에서 튄 피가 비올렛의 얼굴과 볼에 튀었다.
비올렛은 손을들어 그를 결박한 나무 뿌리를 풀어 에셀먼드를 땅에 눕혔다. 비올렛은 마지막으로 그의 심장을 찔렀다. 그가 꿈틀거리며 움직였으나 심장을 찔린 그의 움직임은 너무나 미약했다.
“에드. 그거 알아요?”
비올렛이 쓰러진 에셀먼드를 보고 조용히 말했다.
“당신 없이 행복을 찾을 거라 했잖아요.”
차가운 비올렛의 눈에 눈물은 말라붙어 있었다. 비올렛이 그의 심장에 꽂힌 자신의 칼을 뽑아 들었다. 피가 몸체에서 뿜어서 바닥을 흘렀다. 비릿한 냄새가 비올렛의 코를 가득 채웠다.
“다 거짓말이었어요.”
비올렛은 무릎을 꿇으며, 난도질당한 에셀먼드의 앞에 섰다. 처참한 꼴로 누워있는 괴물은 생명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그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붉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고 있었잖아요, 당신이 내 세상이라는 걸.”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동화를 읽어주는 것처럼 나긋하고 조용하며 신비로웠다. 비올렛이 은색의 검을 들었다. 검을 든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다신 하지 말라했는데, 미안해요.”
비올렛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는 주저없이 자신의 배를 찔렀다. 푸욱 소리가나며 기다란 검은 비올렛의 배를 관통해, 붉은 피가 검을 타고 흘러내렸다. 비올렛이 검을 뽑아 들자, 그녀의 배에서 피가 흘러나와 에셀먼드를 적시고 있었다.
비올렛은 자신의 어깨로 흘러내린 은발의 머리카락이 갈색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말룸을 없앴는데 파멸해가는 창조신이 자신의 힘을 거두지 않을 리가 없었다. 몸에 다시 고통이 덧그려졌다. 비올렛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녀가 흘린 성혈이 점점 땅에 스며들었다. 비올렛은 최후의 신어를 외웠다.
“крајот”
-종말
새하얀 빛이 폭사하며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 하얀 빛은 한참동안 신의 기적을 보여주며, 세상을 밝게 물들였다. 그 성결한 빛은 모든 창조물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리고 빛이 사그라지고 비올렛은 또다시 에셀먼드의 배 위에 피를 토하며 고꾸라졌다. 비올렛은 싸늘해져가는 그의 몸 위에서 꿈결과도 같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다. 보라색 물결이 그녀의 흐릿해져 가는 시야에 가득 찼다.
후원에 제비꽃이 가득 피어있었다.
비올렛은 그 아름다운 풍경에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 괴로웠던 그녀의 최후를 보상하기라도 하듯, 그녀가 흘린 최후의 성혈로 피워낸 그 제비꽃은 그녀가 태어나면서 봤던 그 어떤 꽃보다 아름다웠다. 눈을 감은 비올렛의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녀에게 안식이 찾아왔다.
[드디어 세상은 구해졌고, 아그레시아는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단다. 그러나 자신의 세상을 잃어버린 성녀는 검을 들어 자결했다. 그녀의 육신은 싸늘하게 식어가는 자신의 연인의 시체 위에 쓰러졌단다. 숨이 끊기기 직전 그녀가 최후로 본 것은, 후원에 핀 제비꽃이었단다.]
============================ 작품 후기 ============================
https://youtu.be/3EPBxiKxq80
->요기 주소입니다...댓글을 못달아요.왜냐면 저는 자고있으니까 ㅠㅠ 누군가 용자님이 댓달아주시길.. ㅠㅠ
1. 다음편이 완결입니다.
2. 에드가 말룸이 되기전에 죽여야한다는 말이 있으신데 ㅠㅠ
성녀들이 말룸이 되어 죽음을 바랐던게.. 말룸이 되기전 성녀를 죽어도 저주가 남아 말룸이 되었던건데 어떻게 말룸이 되기전에 에드를 죽이면 같은 꼴나죠.. 게다가 설령 아니라 해도 말룸이 되기전에 에드를 죽이면 비올렛이 그동안 위선적인 지도자들과 뭐가 다르나요 ㅠㅠ 여러분들이 생각하는거 저도 다 생각해봤어요 성녀가 말룸이 되기 전에 죽여서 이 사달이 벌어진건데... 에드를 왜 안죽이냐 물어보시면..ㅎㅎ.. 에드는 시체가 되어도 죽지 못해서 말룸이된답니다 ㅠㅠ 이건 너무 당연한지라 알아주실거라 해서 서술하지 않았던것 ㅠㅠ
2. 혹시나해서 코멘보고말씀드리는데 좀비바이러스에 영향받았지만 혈액감염이있다고 한번도서술하지않았답니다. 에드한테 상처만안입었으면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