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원에 핀 제비꽃-200화 (193/208)

00200  꽃이 지다  =========================================================================

이번편 브금은  Kalafina-05-春は黄金の夢の中 (Haruwa Koganeno Yumeno Naka _ 봄은 황금빛 꿈속) 입니다! 링크 코멘트에 달아둘게요!뜰에도 유투브 재생가능합니다!!

틀어달라는부분에 틀어주세요

*

“비올렛, 비올렛!”

자신을 뒤흔드는 소리에 비올렛은 몸을 일으켰다. 몸이 한번 부서졌다 이어진 것처럼 아팠다. 멍한 시선으로 고개를드니, 린도의 얼굴이 보였다. 눈이 부었는지 눈을 뜨기 힘들었다. 온 몸에 열이 피어올랐다. 뭐라 말하려 했지만 목이 부어 아파올라왔다. 비올렛은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황금색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에드는?”

린도앞에서조차 그를 부르는 호칭이 에셀먼드에서 에드로 바뀌어 있으나, 비올렛은 이제 그런 것에 신경쓸 수가 없었다. 린도는 입을 꾹 다물고 비올렛을 바라보았다.

“만나게 해줘.”

그에 린도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에셀먼드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그때, 에셀먼드의 붉은 눈을 보고 오열하고 있었을 때 에셀먼드는 린도와 같은 얼굴로, 아니, 무표정으로 자신을 데려가라고 했었다. 다시 돌려보내라고. 그녀를 뒤쫓아온 린도는 어두운 표정으로 성기사들을 불렀다. 몸을 가눌 수가 없이 울음을 터트렸던 비올렛은 그에게 다가가려 애썼다. 팔을 뻗으려 했지만 그는 서늘한 뒷모습으로 외면했다.

달콤한 재회를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일 것이다. 그러나 비올렛은 이렇게 절망적인 재회는 기대한 적이 없었다. 이럴수는 없었다. 이렇게 신이 자신을 절망으로 떨어트릴 리가 없었다. 행복을 바라고 노력하진 않았지만, 불행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그녀 나름의 만족을 위해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인가. 왜 저 남자가 붉은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가. 생각은 망가지고, 이성역시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그는 차갑게 외면했다.

“널 만나고 싶지 않대.”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린도가 말했다. 비올렛은 그에 불구하고 간절한 시선으로 린도를 바라보았다. 린도는 그 얼굴이 보기 힘든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비올렛, 이제 그만해.”

“…….”

“너희 둘, 아니 나까지 셋다 힘들 뿐이야. 마지막에 네 얼굴을 보니 정말 나도 힘들어.”

“…….”

“다시 구자르트로 돌아가.”

그게 무슨 소리지. 비올렛은 멍한 표정으로 린도를 바라보았다. 린도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비올렛이 표정이 변했다. 린도는 무어라 변명하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제 모든 진실이 드러난 시점에서 비올렛은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챘을 터였다. 실제로도, 그녀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린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할게.”

“…….”

“내가 할게, 그러니까. 너는 그냥, 그대로 있으면 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무엇을 ‘한다’는 것인가. 비올렛은 린도에게 대답을 구하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린도는 비올렛이 몸을 일으킨 침대 곁에 걸터앉아 비올렛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비올렛, 아주 예전에, 네가 성도로 왔을 때 기억나?”

“…….”

“예전에 네게 약속했지? 네가 하기 싫으면 안하게 해주겠다고. 여차하면 말룸도 내가 직접 죽이겠다고.”

“…….”

“그 약속을 지키는 것뿐이야. 비올렛.”

말라붙은 비올렛의 눈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비올렛이 고개를 저었다. 고통스러워 견딜수가 없었다. 구자르트에서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꼈던 자신의 마음을 갈갈이 찢어버리고싶었다. 말룸을 없애는 게 쉬울 리가 없다. 린도의 생명으로 이루어진 성력을 다 쓴다면 린도의 목숨이 어떻게 되는지는 너무나 명백했다. 비올렛이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열 때 린도가 비올렛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이제 널 만나는 일은 없을 거야. 정말로 얼마 안 남았거든.”

“아…아아.”

비올렛은 입을 벌리며 무엇이라도 말하려 했지만 왈칵 밀려오는 울음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저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계속 발버둥칠뿐입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린도는 비올렛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풀지 않았다.

“왜 다시 이곳에 왔어. 나는, 후작처럼 강하지 않단 말이야.”

비올렛이 고개를 저었으나. 린도는 그것을 알면서도 비올렛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울음을 참고 있는지 그의 등이 들썩이는 느낌이 들었다. 비올렛은 린도가 상당히 말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셀먼드도 저주에 걸렸고, 린도 역시 죽는다고 한다. 비올렛이 무어라 말을 하려 할 때 린도가 재빨리 말했다.

“비올렛, 나는 마지막으로 널 봐서 기뻐. 아마 후작도 기뻐할 거야.”

“린도…제발.”

“나도 널 보내기 싫어 비올렛.”

그의 목소리가 작게 떨려왔다. 린도가 그 허리에 감은 팔을 풀고 그녀를 떼어놓았다.

“린도 부탁이야.”

비올렛이 울먹이며 그의 이름을 부르며 애걸했다. 린도는 언제나 비올렛의 부탁을 들어 주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들어주겠노라 맹세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들어주지 않았다. 린도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비올렛 그거 알아 내가…….”

그는 말하려다 목이 매인 듯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아니, 아니야. 아무것도 몰라도 돼.”

그는 비올렛의 양 어깨를 잡으며 문 바깥에 서 있는 성기사들을 불렀다.

“성녀님을 모셔라.”

성기사들이 머뭇대며 비올렛에게 다가왔다. 비올렛은 눈물을 흘린채 그를 보고 있었다. 린도가 등을 돌렸다. 비올렛의 시야에는 울음을 참느라 들썩이는 그의 등밖에 보이지 않았다.

“미안해 비올렛, 먼길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비올렛이 린도에게 손을 뻗었지만 린도는 단호했다. 성기사들이 비올렛의 팔을 잡고 억지로 그녀를 들어올렸다. 비올렛의 몸이 기우뚱 했다. 힘이 풀려버린 비올렛을 보고 성기사들이 나지막히 탄식했다.

“성녀님 제발  이러시면 안됩니다.”

“성녀님 제발.”

눈물을 쏟아내는 비올렛을 보고 성기사들이 안타까움에 말했다. 그녀가 필사적으로 그들을 뿌리치려 했다. 이대로 떠날 수는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그녀 없이 모든 것을 멋대로 결정하고 멋대로 끝내겠다고 그런 것인가. 믿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에셀먼드의 붉은 눈이 눈에 선연했다. 린도가 울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은 다른 나라에서 웃어야 한다고? 비올렛은 마지막으로 그에게 빌기로 했다. 너무나 추했지만 다시 자결을 하겠다고, 아니면 모든 성력을 쏟아붓겠다고 할 심산이었다.

“린……!”

“멈추시오.”

변성기가 온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기사들이 비올렛을 억지로 끌어내려 하던 행동을 멈추었다. 비올렛이 고개를 드니 문가에 샤를이 서 있었다. 샤를이 비올렛에게 달려왔다.

“스승님!”

그러나 비올렛은 그 목소리에 반가워 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녀는 그녀만의 비탄에 젖어 있었다. 비올렛은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서 사라지길 간절히 빌었다. 이 잔인한 현실이 꿈이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비올렛은 또 에셀먼드를 만나고 싶었다. 샤를이 달려와 비올렛의 팔을 잡고 무너지려는 비올렛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자그마했던 소년은 불과 몇 년만에 비올렛의 키를 훌쩍 따라잡았다.

“폐하.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비올렛을 어서…….”

못마땅해 하는 린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구자르트라면 어렵게 되었습니다. 성하.”

떨리는 음성을 애써 억누르며 샤를이 말했다.

“구자르트의 카칸이 앞으로 스승님의 입국을 허용치 않겠다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

“모든 일이 끝날 때 까지, 그녀가 원하는 대로 두라는 게 그의 전언입니다.”

샤를이 그렇게 말하며 비올렛을 다시 침대위에 앉혀 놓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낯이 익었다. 후작가에 있었을 때 기거했던 비올렛의 방이었다. 눈에 열이 올랐다. 샤를이 손수건을 들어 비올렛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

샤를과 린도는 비올렛의 처우에 대해 입씨름 하다 같이 방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방 안에 힘없이 쓰러져있던 비올렛은 한참을 흐느꼈다.

겨우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난 비올렛이 다시 방 밖을 벗어나려 했으나, 린도가 시킨 것인지 성기사들이 비올렛을 막았다. 그녀가 보내달라 애원하고 명령도 내렸지만, 성기사들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설령 자신들이 보내드리더라도 에셀먼드 경이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비올렛을 방 안으로 보내버렸다.

에셀먼드가 자신을 거부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비올렛은 용기를 잃어버렸다. 너무 많이 울어  짓무른 눈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노라면 앤이 들어와서 비올렛의 시중을 들어주고는 했다. 앤이 비올렛에게 무어라고 말했지만 비올렛은 그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비올렛의 신경은 오로지 바깥에 나가는 것과, 그녀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에 집중되어있었다. 그녀는 틈만 나면 바깥으로 나가려 했지만, 그때마다 에셀먼드가 만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단호한 대답만 들었다. 그러면 언제나 울다 지친 그녀는 잠들다, 깨다 잠들다를 반복했다.

비올렛은 에셀먼드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만나기 두려웠다. 안간힘을 써서라도 찾아가고 싶었지만 그가 비올렛을 단호하게 내쫓은 것은 그의 의지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레기우스 살바나에서 끝까지 비올렛의 치료를 받지 않았던 것처럼.

차라리 이대로 세상이 무너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서로 죽고 죽이기 전에 괴로움에 떨기 전에 모두 함께 사이좋게 죽는다면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몰랐다. 지금 세상이 무너진다면, 이대로, 어떤 비극도 경험하지 않고 세상이 끝날 테니까. 세상은 비극이 벌어지지 않는 세상으로 남는 것이다…….

비올렛은 신에게 저주를 퍼 붓다가, 신에게 애원했다. 이젠 형체밖에 남지 않은 창조신이라는 것을 알면서, 제발 부탁이니 에셀먼드를 살려달라 말했다. 결국 신의 대리자라는 자신도 사랑받는 아이가 아닌, 겨우 허무신과의 내기에서 이기기 위한 장기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비굴하게 빌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처럼 간절하게 기도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하늘은 어두워지고 밝아지고를 반복했다. 며칠이 지난지는 모른다. 이따금 샤를이 찾아왔으나 비올렛은 그를 볼 여력이 없었다. 샤를은 때때로 무언가 속삭였지만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만의 절망의 늪에 빠져 있었다. 그러면서도 에셀먼드를 찾아 계속해서 나가려 했다.

비올렛이 침대에 또 쓰러져 울고있자 방문이 열렸다. 빛이 들어오고 있음에도, 비올렛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어둡게 가라앉은 방과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향기가 느껴졌다. 비올렛은 그 익숙한 향내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들지 않았다.

“비올렛.”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비올렛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말끔한 모습을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침대에 엎드린채 울고 있는 비올렛을 향해 남자가 다가왔다. 조금 힘이 남아있었더라면 비올렛은 그를 경계하며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올렛은 도저히 어떤 행동을 할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가 손을 들어 비올렛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 하지만 비올렛이 팔을 들어 그의 팔을 쳐냈다. 그녀의 눈엔 파란 독기만이 서렸다.

“이제 만족하십니까.”

오랜만에 낸 목소리는 잠겨 있어서 웅얼거리는 것으로 들렸으나, 남자는 확실히 그 의미를 알아챈 듯 했다.

“스승님, 이제 만족하시나요?”

비올렛은 자신의 스승을 보았다. 그들이 함께했던 이 방에서 얼마 만에 만나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약 6년 전, 체자레는 이곳에서 비올렛에게 진실을 알려준 후 그녀를 나락으로 떨어트렸던 것이다.

“비올렛.”

그의 목소리는 이제 비올렛에게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그는 이미 진실을 밝혔고, 어떤 비밀도 없는 이상, 체자레는 비올렛에게 어떤 사람도 아니었다. 체자레가 비올렛의 어깨를 잡고 일으켜 세웠다.

“꼴이 말이 아니군요. 아름답지 않은 모습입니다.”

체자레가 혀를 차며 말했다. 이 순간에도, 아름다운 모습을 따지는 것인가.

“제가 신을 저주하길 바란다 하셨죠. 스승님, 저는 이미 신을 저주하고 있었습니다. 스승님은 성공하셨습니다. 아쉽군요, 저주를 받은건 제가 되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렇죠? 차라리 세상이 멸망해 버리는게 나았을 거예요, 그렇다면 모두에게 좋았을테니까!.”

비올렛이 비웃음을 지으며 체자레에게 말했다. 체자레는 굳은 표정으로 비올렛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비올렛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 신을 저주한 적이 없습니다, 스승님. 눈을 뜰때마다 숨을 쉬는게 저주스러워요, 내가 사라졌으면, 아니면 세상이 사라졌으면 바라고 또 바랍니다! 신을 저주하는 것,  세상을 저주하는 것, 그 저주하는 마음으로 따지자면 저는 이미 말룸이 되었을 겁니다 .”

그렇게 말하던 비올렛이 기침을 했다. 먹을 것을 먹지 않았기에 그녀는 기침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비올렛은 숨을 헐떡이다 체자레를 노려보았다.

“괴로우십니까, 비올렛?”

“……알고계시지 않습니까.”

“나도 그랬습니다.”

비올렛의 날카로운 대꾸에 체자레가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뱉는 숨결 하나하나를 증오하여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저주해서 그것을 멸하려 했다. 신을 저주하는 성녀가 저주에 걸리면 바로 말룸이 되어버리니, 어린 비올렛을 몇 번이고 나락에 빠트리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제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 온겁니까.”

비올렛은 더 이상 저 남자를 보고 싶지 않았다. 동질감을 느낀다한들 그래서 무엇이 어쨌다는 건가? 이 절망을 비웃기라도 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계획이 실패로 끝나고, 이젠 저주의 연쇄를 끊는 해법까지 드러나 버려서 분하다고 호소하려 온 것인가?

“이런, 생각보다 멀쩡한 모양입니다. 저는 일주일을 그렇게 지냈는데 말입니다.”

“…….”

“린도도 제겐 어떤 위로가 되어주진 못했지요.”

체자레는 비올렛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비올렛은 그 손을 쳐내려 했으나 이내 포기하기로 했다. 비올렛은 정말로 그럴 기력마저 없었다. 체자레의 손길은 언제나처럼 다정했다. 어린 비올렛은 언제나 그것에 속아넘어가곤 했었다. 체자레는 비올렛의 헝클어진 머리를 단정히 정리해 주며 말했다.

“허무하군요.”

“…….”

“저주라는게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될줄은 몰랐습니다.”

“…….”

“이렇게 허무하게 풀릴 줄 알았다면, 당신을 괴롭게 하진 않았을 겁니다.”

“…….”

비올렛은 체자레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의 혼잣말을 듣고 있었다.

“후작이 나를 찾아왔을 때, 그리고 아나스타샤의 마지막을 이야기 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

“아나스타샤는 몇백번의 죽음에 이미 신을 저주해버렸고, 말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몇백번을 죽으며 고통 속에서 신을 저주하면서도, 세상이 살아있기를 바랐습니다.”

“…….”

“그리하여 아나스타샤는 린도를 낳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신을 저주해 말룸이 되어야 했으나, 말룸이 되기 전에 여느 성녀들처럼 되기 위해 자살한 아나스타샤. 비올렛도 체자레 역시도 그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 새삼스러운 사실이었다.

비올렛은 그 가여운 여자에 대해 떠올렸다. 꿈속에 나타난 그녀는 비올렛에게 언제나 힌트를 주고 있었다. 성녀 증명 때 그녀에게 외치라 했던 신어, 서로가 서로의 신이라는 애매한 말. 그녀는 자신을 알리고 비올렛을 어서 성장시켜 자신을 죽여달라 하고 있었다.

“참 이상합니다. 신은 저주스럽지만 신이 만든 세상은 언제나 추악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빌어먹게도 말이지요.”

그의 입에서 험한 소리가 나왔으나. 비올렛은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녀는 린도를 내게 맡기려 죽음을 택한 겁니다. 하지만 나는 린도가 증오스러웠습니다.”

“…….”

“이제야 알았습니다. 저는 린도를 사랑하고 싶지가 않았던 겁니다. 트라이덴처럼 말입니다.”

체자레는 비올렛의 어깨를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비올렛의 무릎에는 체자레의 따스한 눈물이 떨어졌다. 그의 고해성사를 들으면서도 비올렛은 그저 멍하게, 아, 이사람역시도 따스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뿐이었다.

“그를 사랑하게 되면, 난 세상을 저주할 수 없어질테니까요. 그 아이가 있는 곳을 사랑해버릴 테니까요.”

체자레가 다시한번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그가 짓는 미소는, 가면을 쓴 듯 인위적인 미소가 아니라, 울음을 참고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그런 나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필사적으로 린도를 살리려 했던 겁니다. 뱃속에 있던 그 아이는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었지만 억지로 남아있는 성력으로 생명력을 충당한 겁니다.”

“…….”

“그래서, 그녀는 내게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가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더 세상을 미워했고, 린도를 미워했습니다. 그 녀석을 사랑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체자레는 창을 바라보았다. 여름의 하늘은 너무나 깨끗하고 푸르렀다. 그는 한참동안 그 하늘을 바라보다 비올렛을 보며 미소 지었다. 체자레의 두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늦어버렸군요.”

그 말에 비올렛은 체자레가 무슨 말을 하는지 파악했다. 체자레는 비올렛에게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말하고 있었다.

“사랑하지 않는 게 내겐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 짙은 감정에 비올렛이 눈을 크게 떴다. 체자레가 비올렛의 두 뺨을 감싸고 그 금안을 마주했다. 짙은 그의 향기가 확 풍겨왔다.

“당신에게도 시간이 필요할겁니다.”

“……스승님?”

비올렛의 불안한 물음에 체자레가 미소지었다. 비올렛의 이마에 입술이 내려앉았다. 눈물로 젖어 축축한 입술의 감촉에 비올렛이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체자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문가에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비올렛은 체자레가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를 묶은 끈, 그의 귀에 걸린 귀걸이, 그의 손가락에 걸린 반지 하나하나가 반짝였다.

“린도를, 그 아이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비올렛은 그제야 이 남자가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 챘다. 대체 왜, 왜? 비올렛의 얼굴이 무엇이라고 말하려 할 때, 체자레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비올렛.”

“무슨 짓을 하려는겁니까.”

비올렛의 물음에 체자레가 언제나처럼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아름다운 것이 좋습니다.”

문이 열리고 체자레가 바깥으로 나갔다. 비올렛은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쫓아가려 했으나 성기사들이 그것을 막았다. 비올렛은 제법 힘차게 발버둥 쳤으나, 체자레의 언질을 받은 것인지 이번에 성기사들은 목뒤를 내리치는 거친 방법으로 비올렛을 기절시켰다. 스러져가는 의식속, 비올렛은 체자레의 발걸음이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고해성사를 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비올렛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

*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샤를이었다. 비올렛의 외침과 더불어 성기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올렛의 방 쪽을 힐끔거리는 샤를과는 달리 체자레는 그쪽에 시선 한줌도 주지 않았다.

“방문을 허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작을 신용해서 그런 게 아니오. 아버지가 아들을 봐야 한다는 말을 거절할 명분이 없기에 그런 것이오.”

샤를은 체자레와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그 어린날, 언제나 겁에 질려있던 왕자는 사라졌다. 또렷한 호박색 눈이 체자레를 응시해 왔다. 체자레는 그에 미소를 지었다. 세월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그러나 그 성장은 누구 때문인걸까.

“폐하. 그거 아십니까?”

샤를은 고개를 갸웃 했다. 체자레는 언제나처럼 다정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체자레는 언제나 그에게 상냥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샤를은 어렸을때도 그 무섭다는 티게르난 공작이 꺼려지면서도,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공작?”

샤를의 물음에 체자레가 말했다.

“폐하는 트라이덴의 어릴적 모습을 꼭 닮으셨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샤를은 순간 체자레가 자신을 놀리는지 진지하게 생각했다.

“‘약속’을 끝까지 못 지켜서 미안하다고 전해주시겠습니까?”

샤를이 눈을 뜨며 물어보려는 순간 체자레가 샤를을 지나가 에셀먼드가 기거하는 방에 들어갔다. 아버지를 닮았다니? 샤를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눈은 금안의 왕족치고는 또렷하지 않은 호박색이었고, 머리 역시도 붉은 색이 아닌 저녁 노을색이었다. 자신은 아버지와 닮지 않았다고 어렸을적에도 놀림을 많이 받았던 것이다.

게다가 선왕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꼭 어렸을 적 선왕과 친한 것 같지 않은가.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서로를 싫어했는데. 또 약속은 뭐지? 선왕과 무슨 약속을 했던 것일까? 선왕은 단 한 번도 샤를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중요한 약속일지도 모르니 샤를은 그가 방에서 나오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샤를은 방에 들어가기 전 자신을 향했던 그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아버지에게도 받지 못한 시선이었다. 그는 왜 그런 시선으로 자신을 보는것인가. 언제나 체자레 티게르난은 샤를에게 알 수 없는 사람으로 통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유언마저도.

*

“아버지?”

린도는 의외의 사람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체자레는 린도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에셀먼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참 추한 모습이로군요.”

체자레가 혀를 차며 에셀먼드의 방으로 들어갔다. 린도가 얼굴을 찡그리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에셀먼드는 포악하게 모든 것들을 부수고 있었다. 쨍그랑 소리가 들리며 그의 방안에 있는 모든 것이 또다시 망가졌다. 에셀먼드의 붉은 눈은 이미 이지를 상실한지 오래였다. 기껏해야 그에게 남은 시간은 사흘. 이젠 숨겨지지 않는 악기를 느끼며 체자레가 말했다.

“그런 꼴이면 비올렛도 후작을 좋아하진 않을 겁니다.”

비올렛, 이라는 말에 에셀먼드의 움직임이 멎었다. 세로로 길어진 동공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이런, 이런, 비올렛이라는 이름이 효과가 있던 모양이군요.”

“아버지, 그를 자극하지 마십시오.”

린도의 말에 체자레가 미소를 지었다.

“자극하는게 아닙니다. 보십시오. 어느정도 이성을 차리시지 않았습니까?”

에셀먼드가 익숙한 서늘한 빛으로 체자레를 응시했다. 비올렛이라는 이름은 에셀먼드의 말룸화를 늦춘다. 다만, 그가 너무나 괴로워 해, 혹여나 마음을 무너트려 신을 저주할 염려가 있으니 되도록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너무나도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라 차마 눈뜨고 봐줄 수가 없군요.”

흐트러진 옷매무새, 헝클어진 머리. 얼굴과 살 여기저기에는 핏줄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당신이, 당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여자에게 얼마나 비참한 행동을 저지른 것인지 자각은 있습니까?”

“…….”

에셀먼드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건 공작이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이미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에 체자레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고 말했다.

“……이미 모든 진실을 알아차린 그 귀한 성녀님이 나처럼 변해가는데도 말입니까?”

체자레가 에셀먼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에 에셀먼드가 입을 다물었다.

“살아있는 숨결 하나하나 저주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또 모든게 무너지길 바라는 마음을  가진채로 살아간다 했습니다. 당신은 그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까? 썩어문드러진 가슴으로, 세상을 살아갈 그녀의 모습이요?”

“…….”

“구자르트에 보내서 저주를 받은 것을 숨기려 했다지요? 그렇지만 그녀가 정말로 진실을 끝까지 몰랐을거라 생각하진 않았을 겁니다.”

“…….”

“진정 행복하리라 생각했습니까? 이 얼마나 겸손한 사람인지. 후작의 사랑은 그 무엇보다 깊다 생각하면서. 비올렛이 품는 마음은 언제나 당신보다 얕다 여기지 않습니까. 이제보니 겸손한 게 아니라 오만하군요. 애당초 성녀님을 품을 자격이 없던 남자지 않습니까.”

“아버지!”

에셀먼드를 감싸는 기운이 흉폭해지자 린도가 체자레에게 주의를 주었다. 체자레는 그에 개의치 않고 날이 선 맹수와도 같은 에셀먼드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후작이 나보다 뛰어난 남자인건 인정할 만 하군요.”

“…….”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린도는 체자레의 손에서 뿜어나오는 기운을 느꼈다.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시간을 벌려는 겁니다.”

새하얀 빛이 손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에셀먼드 역시 그 손을 보고 체자레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린도.”

체자레가 린도를 바라보았다. 린도는 처음으로 듣는 그의 다정한 음성에 깜짝 놀랐다. 심지어 린도는 체자레가 성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활짝 웃고있는 남자의,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당신에게는 항상 미안합니다.”

“아버지?”

“언제나 당신을 비올렛에게 떠넘겨 버리는군요.”

“잠깐……”

린도가 막아서려 했지만 체자레의 빛이 더 빨랐다. 후작의 방에 빛이 폭사되었다.

에셀먼드가 그 공작 성에서 저주에 걸린 것이 자신이라고 밝혔을 때, 그리고 그 셋 모두가 저주의 정체를 알아차렸을 때, 그는 한참동안이나 웃음을 터트렸다.

몇십년 동안을 준비해 오던 것이었다. 린도보다 더 애타게 기다려 온 성녀였다. 그리고 그녀가 안식을 가져다주길 바랐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나 허망하게 부서져 버렸다. 겨우 기사의 움직임 하나, 겨우 금계를 깬 그 움직임 하나에 모든 것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겨우 그 금계, 체자레는 생각도 하지 못한 초대왕의 금계만 깼었다면 저주는 너무나도 쉽게 풀릴수 있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천년이 넘는 동안 에셀먼드처럼 행동하지 않았기에 이 어처구니없는 저주가 이어져 내려왔던 것이다.

린도와 에셀먼드가 수도로 떠나고 나서 그는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저들이 겪을 운명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자신들과 같은 비극을 겪을 사람들에 대해. 서로 살아가는 것이 죄라는 듯, 세상은 그와 아나스타샤를 몰아갔고. 그리고 비올렛과 에셀먼드도 그렇게 몰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체자레는, 린도의 선택을 들었다. 성녀를 사랑하게 만들었더니, 성녀를 위해 죽겠다고 했다. 비올렛이 구자르트에서 수도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체자레는, 샤를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모든 것을 비올렛에게 걸 생각이었다.

방대한 양의 성력을 성력의 형태로 인간에게 이식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에 속했다. 일반적으로 성력은 생명력으로서 주입되기 때문이었다. 크리처의 독기를 해독하는 간단한 것이 아닌 허무신의 저주와 상대하는 것이다. 그에게 걸린 저주는 비올렛도 없앨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약화시키는 것은 가능하리라. 물론 그 대가가 엄청날 것도 체자레는 알고 있었다.

*BGM 틀어주셔요!!

새하얀 빛은 붉은 머리카락의 미남자의 외모를 점점 시들어가게 했다. 너무나 순간적인 일이라 그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의 젊은 피부를 유지했던 피부가 흔적을 점점 머금어 주름이 졌고, 생명력은 눈앞에 있는 청년에게 빠져 나갔다.

그의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무엇일까. 너무나 애매해서 그 무엇으로도 말하기 힘들었다. 썩어문드러진 마음을 안고 증오를 품었으나. 그는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한 것이 없었다,

그 증오스러운 아그레시아를 멸망시키고 싶었지만 나라를 지켜보겠다는 약속 때문에 나라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애정을 품었다기엔 그는 너무나 이 나라를 증오해서 전쟁을 일으켰다.

한 소녀가 신을 증오해서 이 세상을 멸망시켜줄 파괴자가 되길 원했다. 그는 잔혹한 역사를, 추악한 세상을 멸망시키기를 원했으나 차마 그 여자아이를 완벽하게 이용할 수 없었다.

남자는 그 제비꽃과 같던 소녀를 도저히 지옥으로 몰아넣을 수가 없었다. 왕족이되 노예의 태에 태어나서 업신여김당하고 소외받았던 그, 소녀역시도 성녀이되 천출이라 멸시받았다. 어쩌면 그래서 그는 그 소녀가 업신여김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멸시받고 울고 있는 어린 소녀는 어린날의 자신이었으며,

소녀의 어린 모습은 체자레가 보지 못한 아나스타샤의 모습이었으며,

성장한 소녀는 아나스타샤와 같은 비극의 길을 걸을 가련한 존재였으며

활을 든 소녀는 아나스타샤를 진정으로 죽음으로 몰아갈 증오스러운 존재이자, 안식을 가져다 줄 구원자였다.

그래서 체자레는 비올렛을 완벽하게 증오로 몰아넣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이미 지옥에 떨어진 그녀의 삶을, 더더욱 고통받게 둘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는 그녀가 고통 받기를 바랐다. 너무나 많은 모순 속에서, 그의 아들이 명확하게 그를 정의해 주었다.

-아버지도 비올렛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잔혹하게 괴롭히는 것이 사랑이라면, 사랑한다며 말했던 그 허망한 울림이 진정 사랑이었다면, 어쩌면 그랬을지도 몰랐다.

-스승님.

소녀는 수줍은 듯 그를 스승이라고 불렀다. 자신이 어떤 추악한 마음을 가졌는지도 모른채. 그 작은 입술에서 나온 ‘스승’이라는 말 하나가 그를 얼마나 괴롭게 했는지 모를 것이다.

-성녀님, 성녀님을 뭐라 불러야 합니까?

-저를요?

-네, 성녀님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나스타샤는 눈을 동그랗게 뜨다, 이내 수줍은 듯 말했다.

-그, 글쎄, 굳이 말하자면 스승님이라는 말이 낫겠군요.

-스승님이요? 알겠습니다, 다음부턴 스승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스승님.

스승이라고 불러달라 한 것은 아나스타샤임에도 그녀의 두 뺨이 붉게 물들었다. 체자레는 그녀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스승님!

-전하, 뛰지 마십시오.

자신을 스승이라고 부르던 소녀는 또 다른 소년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작은 소년은, 자신의 스승이라는 사람을 신뢰깃든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의도한 것인가, 아닌가.

“대체 왜.”

남자의 두 눈색이 붉은색에서 보라색으로 돌아왔다. 허무신이 내린 저주를 한낱 인간인 그가 물리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체자레는 아나스타샤에게 받은 자신의 힘을 모두 쓰고 있었다. 그에 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저는 아름다운 것이 좋습니다.”

그가 노인의 목소리로 말했다. 에셀먼드는 자신에게 들어오는 힘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 앞에 있는 남자가 점점 사라져 가는 것도.

“공작!”

빛은 계속 해서 터져나와 에셀먼드의 독기를 다시 갈무리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니 부디 아름다운 이별을 하십시오.”

붉은 머리카락이 타들어가 며, 그의 피부가 새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손끝이 바스라내리는 것을 알았다. 린도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모든 것이 허물어지기 전, 그는 환상을 보았다.

-대체 왜 이러십니까. 그런 꼴을 당하고서도 어떻게 나라를 사랑할 수가 있답니까! 저는 스승님의 자애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체자레, 나는 아름다운 것이 좋아.

-…….

-하늘은 파랗고, 꽃은 피어나고, 새들은 아름답게 지저귀는 세상이 얼마나 사랑스러운데.

-…….

-나는 너도 아름다워서 좋아.

그 봄날, 그렇게 하늘은 파랬고, 꽃은 피어나고, 새들은 아름답게 지저귀는데 그 세상에는 너만 존재하지 않았다.

미안해 아나스타샤. 네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용서할 수 없었어.

그러나 그 저주스러운 세상에도 사랑만은 남아 있었다. 아나스타샤, 그녀에게 바치는 자신의 복수는 애매한 형태가 되어 종말에 다가서려 하고 있었다.  그들은 결국 성녀를 죽이지 않기로 선택했고, 그 결과를 오롯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눈물짓는 국왕

목숨을 건 교황

사랑에 절망하는 성녀와 사랑을 안고 죽으려는 기사.

그는 세상에 서있는 올곧은 이들의 가련한 발버둥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발버둥은 결국 이렇게 썩어 문드러진 아그레시아의 저주를 끝냈다. 결국 끝은 잔혹하더라도. 적어도 그들은 고통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추악한 세상이더라도,

사라져가며 그는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만들어낸 알에서 깨어나 도약하고 있는 그의 가련하며 사랑스러운 아들이.

그는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는 아들의 어리석음을 조소했다. 아들 역시 증오스러운 세상의 일부였기에 그러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단 한번도 건네지 않은 말을 마음속에 외치며, 그는 그날의 따스한 봄날을 그리며 잠이 들었다.

아, 아직도 너를 만나려면 얼마나 먼 세월을 견뎌야 하는 걸까.

폭사하던 빛이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방 안에는 두 남자만이 서 있었다.

*

비올렛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을 느꼈다.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을 뜨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러자 그 손이 비올렛의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잠시동안 비올렛은 숨을 쉴 수 없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보라색이 이렇게 저주스러운 적이 있었던가. 비올렛은 멍하게 생각에 잠겼다. 자안을 가진 남자는 누워있는 그녀의 어깨를 잡아 올려 일으켰다. 바로 앞에 서 있는 남자가 비올렛을 보며 그녀의 뺨에 입을 맞췄다.

“보고싶었어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말하려 했지만, 그 말과 동시에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울컥 밀려오는 울음에 비올렛은 입을 막고 흐느꼈다. 그녀는 자신을 감싸는 따스한 손길을 느꼈다.

============================ 작품 후기 ============================

완결까지, 제게 선추코! 부탁드려요! 제 원동력이 됩니다!! ㅠㅠ

드디어.. 한건 끝냈네요. 가장 쓰기싫어서 발버둥친 편입니다.

그리고 쓰고나서 저도 많이 울었어요.

체자레는 후제꽃에서 가장 제가 애정하는 캐릭터에요. 스스로 모순을 안고도 자각하지 못하고, 결국 나중에서야 모순을 깨닫고 산화해버리는.

언제나 이타적이며, 선한성품이기에 나중에 악행을 저지르고서도, 결국 완벽하게 악해지지는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특히나, 아그레시아를 전복시킬만한 권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는 트라이덴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그 나라를 지켜보죠. 그러면서 그를 언제나 시험에 들게하고.

체자레의 의도를 아무도 몰랐는지는 명확합니다. 그는 어디서도 진심이 아니었고, 또한 어디서도 진심이었기에 그런거죠. 어떤 부분도 명확한 동기가 있으나, 그것이 '이익'이 아닌 '감정'에 기반된거라. 오히려 사람들이 파악하기 힘든거라 생각됩니다. 비올렛을 위한건 정말로 위했고, 비올렛을 망가트리고 싶어서 지하실을 보여준건 정말로 그러했으니까요.

체자레의 죽음은 저도 정말 힘드네요. 이부분을 쓰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동안 멘붕이었네요.

후제꽃에서 가장 알기 어려운 캐릭터는 체자레라고 생각해요.

언제나 모순된 캐릭터이니까.

오늘의 브금 kalafina노래가사는 (제가 어떤분이 번역한걸토대로의역했음) 이거에요

조용한 산사나무의 기도처럼,

홀로 흔들리고 있는 쓸쓸한 달무리.

지금 활짝 핀 꽃잎, 영원의 봄

아직도 너와 만날 수 있는 날까지

얼마나 먼걸까

마음에 담아 둔 것은 산울림의 선율

너의 아름다움이 멀리서 울려.

자 잘자렴, 금빛 꿈에서 놀자.

아직도 너와 만날 수 있는 날까지

얼마나 먼걸까.

지금 만개한 꽃,

그 안에서 꿈에서 놀고있나니,

아직도 너와 만날 수 있는 날까지

얼마나 먼걸까.

얼마나....

+

또한 완결이 다가가는 시점에서 몇몇 소리좀 하자면.

-비올렛이 꽃의거리에서 능욕당해야했다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때 비올렛이 여섯살에서 아홉살인거 알고 계시죠..?

-또한, 완결까지 휴재를 하지 말아달라하시는데.. 저번에도. 몸상태+멘붕이 와서 휴재를하겠다고 했던건데 아파서 그런건데 그걸 싫다말하시고. 또 다른것도 아닌교정때문에 하루만 휴재하겠다는건데 싫다말하시면. 먼가 저 서운함.. ㅠㅠ 저 타자기가 아니라 인간이에여 ㅠㅠ  저도 몸이 아파서 글을 산출못하구, 할일이 있어서 글못쓸때두 있어여 ㅜㅜ  저한테 짜증안내셨으면 좋겠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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