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원에 핀 제비꽃-198화 (191/208)

00198  꽃이 지다  =========================================================================

<중요한 공지있으니 후기 꼭봐주세요!>

마귀가 내려보낸 그 괴물은 아그레시아에 의해 사라졌고, 세상은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괴물에 의해 나라를 잃은 자들이 금안을 가진 청년, 리산드로스의 통솔아래 규합되었다. 사람들은 신을 찬미했다. 그리고 아그레시아를 찬양했다. 사람들을 이끄는 자였던 남자 리산드로스, 신앙을 이끄는 자였던 테르베아, 그리고 신에게 선택받은 성녀 아그레시아. 이 셋은 나라를 세웠다.

무력한 지도자가 아닌, 자신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울타리를 원하는 자들, 신앙을 가진 자들, 성녀의 기적을 목도한 자들의 낙원, ‘아그레시아’를.

“괴물이다, 괴물이 나타났다!”

아그레시아를 세운 그들에게 난관이 봉착했다. 그 괴물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나라는 다시 혼란에 빠졌다. 불운하게도 괴물이 나타난 장소는 아그레시아가 그 괴물과 대치할 때 그녀를 보호했던 기사의 집이었고, 그 기사는 어찌된 일인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그 독기에 이형의 생명체가 되기 시작했다. 아그레시아 건국 1년도 채 되지 않아 벌어진 참상이었다.

그녀는 어렵지 않게 자신에게 찾아온 괴물을 다시 죽일 수 있었다. 두 번째 괴물은 첫 번째 괴물에 비해 너무나 약했고, 심지어 아그레시아는 상처 하나도 입지 않은 채 그 괴물을 격퇴했다. 그러나 이 와중에, 곁에서 그녀를 엄호하던 기사 몇이 상처 입었다.

초대 국왕 리산드로스도, 신앙의 지도자 테르베아도, 아그레시아도 안심했다. 그저 마귀가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노라며 무용한 발버둥이라 웃을 수 있었다. 신은 인간을 너무도 사랑했는지, 내려준 그 힘이 너무도 방대했기에 아그레시아의 성력은 약간의 소실만 있을 뿐 거의 회복되었다.

그러나 그 괴물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그것의 독기에 태어난 자들은 이형의 생명체(creature), 크리처가 되어버어  신을 숭상하는 자들이 가진 힘에 의해서 처리가 가능했으나, 거대한 그 ‘괴물’은 오로지 아그레시아에게만 퇴치가 가능했다.

테르베아와 리산드로스는 마침내 괴물이 나타나는 법칙을 발견해버렸다.

괴물은 ‘나타나는’게 아니었다. 크리처들처럼 ‘변이’ 되는 것이었다.

그 괴물이 흘린 독기에 감염된 이들은 크리처가 되는 저주에 걸린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괴물과 접촉한 이들은 모두, 똑같은 말룸이 되었다. 독기에 감염된 크리처들에게 상처를 입은 인간들이 똑같은 크리처가 되는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다만, 그 악기가 너무나 강해 변이의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 미처 몰랐던 것이었다.

괴물이 될 전조는 크리처들과 같았다. 그들의 눈 색은 서서히 붉은색으로 변이해 갔다. 리산드로스와 테르베아는 그들을 관리 하였다. 물론, 그들은 아그레시아에게 비밀로 했다. 아그레시아가 첫 번째 괴물에게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리산드로스는 성녀와 괴물의 싸움에 간섭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들의 충성스런 백성들은 그 명령을 따랐다.

너무나 순진한 성녀, 아그레시아만이 그 비밀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비 없이 그 괴물들에게 신의 철퇴를 내렸다. 괴물이 되어 아그레시아를 찾아온 자들이 자신과 함께 싸운 동지이며, 죽음을 구걸하러 그녀에게 나타났다는 것도 모른채. 그 괴물들의 퇴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마침내, 그 ‘괴물’에게 상처 입은 자가 한명 밖에 남지 않았다.

말할 필요도 없이 아그레시아였다. 리산드로스와 테르베아는 그녀를 어찌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녀의 이마에는 성흔이 사라졌고, 그 머리카락은 검은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을 담았던 아름다운 푸른 눈이 자색이 되어 붉게 변이해하고 있었다. 전조는 이미 드러나고 있었다. 그녀 역시 같은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괴물이 된 사람들은 모두 힘이 없는 ‘일반인’이다. 만약, 엄청난 힘을 가진 성녀가  괴물이 된다면 나라는 어찌될 것인가.

리산드로스의 고민의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충성스러운 기사들과 함께 성녀를 나라에서 제거했다. 신에게 선택받은 성녀는 신의 곁으로 돌아갔다며, 일반 백성들 사이에 섞여 아직도 자비를 베풀고 있노라며 미담을 동화처럼 조작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너무나 쉽게 믿었다. 그만큼 아그레시아는 따스한 여자였으니, 그들 곁에 살며 그들을 사랑하며 보살펴주리라 믿었다.

그녀가 나라를, 세상을, 신을 저주하며 죽은지도 모른채.

신에게 선택받은 여성의 피로 이룩된 나라, 아그레시아의 죽음과 저주로 이루어진 나라, 아그레시아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

“그것을 어떻게 아신겁니까.”

샤를이 린도에게 물어보았다. 린도가 파리한 입술을 열었다. 그는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초대 국왕이 내린 법령에 의해 모든 것들이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초대 교황 테르베아 역시도 진실의 파수꾼으로서, 역대 교황들만 열람이 가능한 문헌을 남겨, 교황들에게 진실을 전달했습니다.”

그 예외가 린도였다. 린도는 그러한 문헌의 존재를 모르고 살고 있었다. 지금도 교황성의 깊숙한 곳에, 그 문헌이 잠들어 있다고 체자레는 린도에게 말했다.

“교황들은 자신들에게 내려진 진실을 철저히 감추었습니다. 당연합니다. 성녀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나라인데, 성녀가 말룸이 된다니, 자신들의 입지가 위험해지니까요. 그 문헌에서도 초대 국왕의 금계는 따라야 한다고 명시되어있다고 합니다. 아니면 나라가 멸망하는 재앙이 일어날 것이라고, 교황들은 그것을 철저하게 지켰죠.”

“…….”

“서른 세 번째 성녀의 싸움까진 모든 것들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성녀와 말룸의 신성한 싸움에 누구에게서는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아그레시아의 절대 금계는 뼛속까지 국민들에게 스며들었습니다.”

샤를마저도 성녀와 말룸의 싸움에는 절대 끼어 들어서는 안 된다는 문구가 적힌 책을 몇 번이고 읽은 적이 있었다. 마치 그것은 세뇌처럼 그들에게 자리 잡아 있었다. 성녀와 말룸이 나타난지 120년이 지나도 남아있는 의식이 성녀와 말룸이 약 50년 단위로 나타나는 세상에선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했을지는 뻔했다.

“그러나 단 한명이 그 규칙을 어겼던 겁니다.”

“……”

“그 남자는, 성녀와 말룸의 싸움에 끼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상처를 입었지요.”

샤를은 그것에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그가 가까이 있던 덕분에, 성녀는 말룸에게서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남았습니다.”

“……”

120년이 지난동안, 초대 국왕과 교황이 걸었던 암시는 서서히 풀렸다. 그리고, 그 암시를 정면으로 어겨버린 남자가 있었다.

그는 말룸과 성녀의 신성한 싸움에 끼어들었고,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가 치유되었다. 샤를은 그 남자를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샤를은 그 전장으로 남자를 몬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샤를은 이 엄청난 사실을 부정하려 애썼다. 그가 쥔 주먹이 하얗게 질렸다. 샤를은 지금 그 장본인과 눈이 마주치고 있었다. 그 남자, 에셀먼드가 말했다.

“지금 저주에 걸린 것은 저입니다, 폐하.”

“후작!”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고있던 라이셀 백작이 소리쳤다. 그 역시도 모든게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거짓말이라면 최악의 거짓이 틀림없다. 어쩌면 나라를 전복시키기 위해 교황과 에셀먼드가 공모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그들이 한 이야기는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저주를 풀이하는 것은 너무도 간단합니다.”

에셀먼드가 입을 열어 샤를을 보며 말했다.

“말룸이 된 저를 상처입지 않고 죽이면, 모든게 끝납니다.”

이 냉정한 남자는, 담담하게 자신의 죽음을 말하고 있었다. 샤를은 그것에 모든 것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믿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초대 왕은 왜 우리에게 유언을 내리지 않았던 겁니까! 만약 그렇다면, 더욱 더 저주는 빨리 풀렸을 겁니다!”

초대 왕이 어떤 이유로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저 후세에 그것을 전하기만 했으면 되었다.  겨우 한마디! 말룸에게 상처 입지 않고 그것을 죽이라 말하면 되었던 것이다. 왜 초대 왕은 고작 성녀와 말룸의 싸움에 간섭하지 말라는 금계만 내렸던 것인가! 후손들을 위해 당연히 남겨야만 마땅했다! 말이 안되지 않은가?

“아버지, 티게르난 공작께서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린도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초대 성녀의 이름으로 세워진 나라의 국왕이, 그 초대 성녀를 죽였다는 사실을 밝힐수가 없었을거라고.”

“……”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세상에 찌든 어른이라면 금세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상처’를 통해서 저주가 전이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국왕은 그것을 은폐한 책임을 져야 했다. 그들을 도와준 기사들은 명예롭게 전사한 것으로 되었으나, 성녀에게 개죽음 당하는 것이 알려지는 것이었다. 나라는 건국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초대 국왕의 지지기반은 강한 것이 아니었으니, 그는 성녀를 ‘죽였다’는 오명을 뒤집어 쓸 수 없었다. 그러나 후에 나타난 두번째 성녀와 말룸으로 인해서, 그는 아주 최소한의 명령, ‘성녀와 말룸의 싸움에 절대 접근하지 말라’는 절대적인 금계를 내렸던 것이다. 초대 왕은 두 번째 성녀가 말룸이 되어버린 첫째 성녀를 살해하도록 만들고, 또 상처입은 두 번째 성녀를 죽였다. 성녀들의 시체가 쌓이고 아그레시아의 역사는 지속되었다.

“겨우 그런…!”

그러나 샤를 역시도 그것이 진실임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의 아버지가 상식적으로 행동한 적이 있었는가. 세상이 이성과 논리대로 돌아간적이 있었던가? 아니, 세상은 의외로 단순했다. 정의대로 흘러가지 않고 개인의 지극히 이기적인 욕구대로 흘러갔다. 초대 왕은 진실을 대면하고 잘못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던 자이다.

이 나라는 도대체 신에게 선택받은 대리자에게 얼마나 많은 죄악을 범했던 것인가. 모든 것을 희생하는 그 가엾은 영혼들에게 끝까지 얼마나 잔인했던 것인가.

체자레가 모든 것을 혐오하여, 나라를 전쟁으로 불살라 버리려 했던 것이 이해가 갈 정도였다. 이 나라는, 이 왕조는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소년 샤를의 이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자랑스럽게 여겼던 선조들의 모습, 동화와 같은 아름다운 자애로 이루어진 나라의 추악한 실체를 목격하자. 구역질이 났다.

그리고 이상이 무너져 내린 샤를의 모습을 어른들은 말없이 지켜보았다.

너무나 이기적인 사람들의 이기적인 행태에 이렇게 저주가 이어져 내려오고, 이렇게 모두가 고통받아왔던 것이다. 허무신이 진정한 악인가? 아니면 저주를 이렇게 까지 이끌어 왔고, 모든 진실을 은폐하던 그들이 악인가, 알 수 없었다.

샤를의 얼굴에 비올렛의 모습이 스쳤다. 감정을 표현하는데에 서툴렀으나 너무나 다정했던  그 여자의 모습이. 그가 에셀먼드를 바라보았을 때 샤를루스는 에셀먼드의 눈이 아주 약간 보라색으로 물든 것처럼 보였다.

샤를은 깨달았다. 아그레시아에 말룸과 성녀가 태어나는 것이 반복한 것은, 아그레시아가 내린 저주가 아니었다. 그들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샤를은 문득 스쳐지나가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말룸이 되어 죽는다고 하셨소?”

샤를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하나가 떠올랐다. 에셀먼드가 너무나 담담히 말해서 눈치채지 못했지만 단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었다 .

“누가, 경을 죽여야 하는 것이오?”

‘죽인다’라는 말을 겨우 발음한 샤를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에셀먼드를 보았다.

“제가 성녀님께 죽어야, 저주가 사라집니다.”

에셀먼드의 말에 그제야 사람들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 저주의 진정한 끔찍한 결과를 알아버린 것이다. 샤를이 하얗게 질린 입술을 깨물다가 겨우 말했다.

“……어떻게.”

에셀먼드가 내뱉은 말이 너무나 잔인해서, 샤를은 그것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세상은 이렇게 철저하게 그들에게 잔인해 지는가!  말룸과 성녀, 그 이야기와 저주 때문에 정작 성녀 ‘비올렛’에 대해 모두가 다 잊고 있었다.

“스승님은….”

“아마, 성도에 있을 겁니다. 어딜 가든 기사들이 따를 예정이니 괜찮을겁니다. 비올렛은 후작이 저주에 걸린 것을 모르고 자신이 저주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린도가 조용히 말했다. 비올렛이 저주에 걸리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다행한 일인가? 만약, 비올렛이 에셀먼드가 자신 대신 저주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리고, 에셀먼드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비올렛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언제나 허세를 부리지만 언제나 여리고 여려, 톡 꺾여 부러질 것 같은 제비꽃 같은 여자의 모습이. 말룸을 없애고 홀가분한 듯 웃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번 해의 봄, 그녀는 세상을 다가진 것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못합니다….”

샤를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그 소리를 누가 스승님께 어떻게 말한답니까. ”

옆에 있던 라이셀 백작이 그들의 관계를 짐작한 듯, 그저 침음을 내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머리가 팽글 팽글 돌아 쓰러질 것 같은 샤를을 보며, 린도는 잠시동안 굳은 입매를 열려다 닫다, 다시 열려다 닫았다.

“스승님은 죽을 겁니다. 차라리 죽을지도 모릅니다.”

왕이되며 샤를 역시도 비올렛에 대해 들으며 그녀가 후작가에서 자살시도를 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성녀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배를 찔러 자해한 것도 알고 있었다. 전쟁을 멈추는 조건으로 린도에게 ‘자결하겠다’라고 위협한 것도 알고 있었다. 비올렛은 삶에 대해 별로 미련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핏빛 미래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때 맑은 청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폐하.”

“……”

“제가 있습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던 것은 린도였다. 이번엔 에셀먼드 역시 놀란 표정으로 린도를 보고 있었다.

“저를 성녀의 대용으로 사용하면 됩니다.”

린도가 결론을 내리기 까지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그저 반사적으로 자신을 이용하라는 말이 나왔다. 그것이 자신이 어떻게 될줄은 알면서도, 어쩌면 린도는 그것이 자신이 태어난 이유가 아닌가 생각했다.

성녀를 대신할 대체제인 린도가 여기 있었다. 그리고, 말룸이 되어버릴 기사가 이곳에 있었다. 그에게 성력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기에 아마 그가 말룸이 되는 속도는 길어봐야 몇 개월 정도.

린도의 생명력은 아나스타샤의 성력과 성혈로 이루어 졌다. 성녀보다는 약하지만 일반인에서 말룸이 되는 에셀먼드는 다른 말룸들보다 약할 것을 예상한다면, 린도가 에셀먼드를 죽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가장 강한 성력을 지닌 아나스타샤가 말룸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보자면 일반적이지 않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린도가 차분하게 말했다.

“죽은 자들까지 일어나게 하는 힘, 말룸과 같은 커다란 몸집을 가진 크리처의 등장, 성력으로도 듣지 않는 역병의 창궐. 아나스타샤가 역대 가장 강한 성력을 지녔기에, 말룸이 되어서도 강한 영향력을 가졌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린도의 시선에 에셀먼드를 향했다.

“성력이 전혀 없는채로 말룸이 된 후작의 힘은 약할겁니다.”

“……”

“제 생명력은 성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제 피 하나하나는 아나스타샤의 피로 이루어져있습니다.제 힘은 비올렛보다는 약하겠지만, 말룸 역시 다른 말룸보다 약하다 예상되면 할 수 있을 겁니다.”

성력으로 이루어졌기에 머리카락 역시도 신성으로 물들어 있었다. 린도는 비정상적으로 강한 성력을 가지고 있었다. 가짜 성녀를 행세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강한 힘을. 그리고 에셀먼드 역시 성력이 없기에 말룸이 된다 해도, 역대 말룸들보다 약할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계획인 것인가. 진짜 신이 전능하다면 마치 그것을 위해 안배했다 생각할 정도로 절묘했다. 그들이 사랑하는 여자의 손을 빌리지 않고, 상처입히지 않고 그들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러니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비올렛에게 그런 짓은 하게 두지 않겠습니다.”

린도가 단호하게 말했다. 에셀먼드는 그것에 대답하지 않았다. 샤를은 입을 열려다 말았다. 생명력이 성력으로 이루어졌다면, 성력을 다 쓰면 생명력또한 없어진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것은 결국 ‘죽음’으로 다가간다는 것이 아닌가. 샤를이 무엇이라 말을 뱉어내려 하자 린도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예전, 비올렛과 약속한 게 있습니다.”

“성하.”

“책임을 지는 겁니다. 모든 것의 책임이요.”

*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믿으라고 하는 건가.”

아그레시아의 왕궁 회의실에 앉아있는 이자카는 그 매와같은 날카로운 얼굴에 여과없이 불쾌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회의장 안에 위압감이 내려 앉았다. 그의 두 눈이 건너에 앉아있는 샤를과 린도를 향했다.

“너희들의 교리로 이루어진 전서를 보내 믿으라 하는 것은 너무나 무례하다 생각지 않는가? 어린 카칸.”

그는 잔뜩 구겨진 얼굴로 샤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샤를의 얼굴은 무섭도록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우리라고, 카칸을 부르고 싶어 부른 것이 아니요.”

그의 옆에 앉아있던 린도가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이자카의 매서운 시선이 린도를 향했다. 그러자 린도가 싸늘한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례하다고 말하는 것 치고는, 꽤나 빠른 속도로 달려온 모양이로군.”

이자카와 린도 사이에 긴장이 맴돌았다. 샤를은 린도의 비틀린 심기를 이해했다. 결국 찾아낸 답이 카칸이라니, 신에 대한 신앙은 둘째 치고라도 군나르족에 의해 아우베르트가 한번 불탔던 일에 린도는 구자르트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당연한 것이 아닌가, 너희들은 너희들의 귀중한 보석을 내게 준다 하고 있다.”

“주는 게 아니라, 잠깐 맡아달라……!”

“그만하십시오, 성하. 그리고 카칸.”

샤를의 말에 이자카와 린도가 대치를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샤를은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

“믿지 않아도 상관없소. 그저 부탁을 들어주시면 되오.”

불과 1년전만 해도 총총히 빛나던 소년의 눈은 어느새 탁해져 있었다. 이자카는 저 소년이 왜 저렇게 된 건가 생각했다.

“제발 부탁이니 스승님을 맡아주시오.”

그러나 그 부탁만은 꽤나 절실하여, 이자카가 그 말에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린 카칸, 내게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라. 그대가 보낸 서한은 납득이 불가하다. 피아케를 데려가 달라는것도 그렇다. 피아케의 동의를 구한 것인가?”

“아니, 그것은 성녀가 끝까지 몰라야 할 내용이오.”

점점 더 알 수 없는 설명이었다. 이자카가 서한을 받아 알고 있는 사실이란 성녀가 상처를 통해 다음대 말룸이 되는 것과 비올렛이 우연히 상처를 입지 않아 말룸이 되지 않았고, 대신 아그레시아에 우환이 생겼으니 비올렛을 맡아주어야 한다는 정도였다. 이자카는 그 터무니 없는 말에 실소했다. 샤를이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서 교황에게 휘둘리는 것인가 생각까지 했다. 그래도 명시하고 있는 내용이 보통 내용이 아니기에, 위대한 정신이 이전에 내린 예언과 맞물려 찾아와 본 것이었다.

“왜 몰라야 하는가?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아야 한다. 게다가 저주가 풀렸다면 아무 이상도 없지 않겠는가?”

“저주가 풀렸다는 것은 조금 더 있다가 알려주시면 될 일입니다.”

“대체 왜그러는가?”

“왜냐하면…….”

샤를이 입을 열어 이야기 하려 할 때 뚜벅 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장신의 남자가 회의실을 보고 있었다. 이자카는 반가운 듯 그 방문객에게 미소를 짓다 얼굴이 서서히 굳어갔다.

“너, 눈 색이 이상하다.”

이자카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에셀먼드의 두 눈색은 완전히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들의 진정한 저주에 대해들은 이자카는 그 날카로운 눈으로 아그레시아의 세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사실이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에셀먼드의 등장에 키아라가 준 수호의 보주가 깨져버렸던 것이다.

“너희들은 미쳤다.”

“……”

“나중에 피아케가 알면 미칠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있다면 울다 죽을겁니다.”

샤를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자카는 샤를의 얼굴에 이제 눈물조차 말라붙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충분히 절망하고, 울부짖어 그럴 기운조차 나지 않은 것이다. 이들의 희생정신에 경의를 표현해야 하는 것인가? 그러나 이 나라가 그 성녀라는 존재에게 범해왔던 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리고 또 앞으로 비올렛에게 범할 죄는? 비올렛은 끝까지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숨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카칸께 부탁드리는 겁니다. 다른 나라에 있으면 적어도 일이 끝날때 까지는 완벽하게 숨길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너희 둘의 죽음을 나보고 알아서 잘 숨기라고 하는건가! 나는 네놈들의 희생으로, 피아케를 얻으라고!”

이자카의 말은 너무나 직접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회피하려 했던 사실이기도 했다.

“구자르트의 카칸이여 그대는…….”

“곧 죽을 놈은 입을 닥쳐라!”

지나치게 화를 내고 있는 이자카에게 린도가 무어라 말하자 이자카가 핏줄이 벌겋게 선 눈으로 소리쳤다.

“이게 너희들이 말하는 최선의 방법인가! 두 놈 다 목숨을 잃는 것!”

그가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이자카의 말에 이미 존칭과 예의는 없었으나 지금 그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다. 이자카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린도와 에셀먼드는 죽음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대가 내 목숨을 걱정할 줄은 몰랐소.”

린도가 웃으며 말했다. 이자카는 진저리가 난다는 얼굴로 에셀먼드를 보다 린도를 바라보았다. 이자카는 그들이 생명을 버린다는 행위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대에게 이해를 바라지 않소. 어차피 내게 남은 방법이란 이것일 뿐이오.”

에셀먼드가 저주가 걸렸다는 것이 판명되는 날, 린도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스쳐지나갔던 것은 비올렛이었다. 비올렛. 비올렛이 에셀먼드를 죽이면 된다. 단, 상처 하나 없이. 그렇다면 모든 저주가 풀리게 된다.

만약 비올렛이 이 사실을 알았다간 어떻게 되는 것일까. 린도는 단언할 수 있었다. 비올렛은 에셀먼드를 죽이고, 세상을 저주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을 것이다.

그런 비극적인 미래정도는 알 수 있었다. 너무나 자명하지 않은가. 에셀먼드가 린도의 말에 부정하지 않았던 것은 기본적으로 그도 린도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 이렇게 '자신'이라는 해답이 놓여있지 않은가. 마치 저주의 끝을 고하는 것처럼 절묘한 운이 딱 들어맞았다.

“비올렛을 그렇게 탐낸 그대니, 그저 데려가기만 하면 되는게 아니겠소?”

“그건 비겁한 짓이 아닌가!”

이자카가 이를 갈며 말했다. 린도는 그 말에 서글프게 웃었다.

“너흰 피아케를 존중하고 있지 않다. 피아케에게 사실을 알려야만 한다.”

이자카가 단언하며 에셀먼드를 바라보았다. 에셀먼드가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그녀가 그 모든 것을 떠안아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너, 따라나와라!”

이자카가 참지 못하고 고함을 쳤다. 이자카가 에셀먼드를 스쳐지나갔다. 에셀먼드는 회장을 보다가 이자카를 따라 복도로 나갔다. 묘한 침묵이 그들을 자리했다.

*

이자카는 그 저주에 대해 반신반의 하고 있지만, 그는 어렴풋이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위대한 정령의 계시란 바로 오늘을 위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자카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일단 따라오라며 성큼성큼 나가긴 했으나, 이자카가 왕궁의 지리를 알 리가 없었다 덕분에 에셀먼드가 안내한 접견실로 그가 성큼거리며 따라가야 했다. 방 안에 들어서자 에셀먼드는 아치형의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선택한게 너라고 들었다.”

이자카의 으르렁거리는 듯한 말에도 에셀먼드가 무감한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와 성하께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닙니까.”

“너는 참 태연하다. 그 허무맹랑한 저주를 너도 믿지 않는 건가?”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은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에셀먼드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자카는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나를 이겨내고 나온 결과가 이건가? 결국 피아케를 내게 주는 것?”

“주는 게 아닙니다. 맡아 달라 말하는 겁니다.”

그 말에 이자카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 비릿한 조소가 어렸다.

“난 내 손아귀에 들어 온 것은 놓아주지 않는다. 하물며 내가 가장 탐했던 것을 놓아주리라 생각하는가?”

명백한 도발임에도 에셀먼드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자카의 뒤에 있는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웃을 수 있다면 상관없습니다.”

이자카는 에셀먼드의 시선을 따라가, 그가 바라보는 것을 보고 불쾌한 듯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녀를 주지 못해서 팔을 잃을 각오로 내게 덤벼든 네가 아닌가. 결국 너는 내게 패한거다. 결국 내가 가지게 된 거다.”

“……”

에셀먼드는 그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소름끼치도록 생경한 자안으로 이자카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녀를 존중하지 않는다 분노하던 카칸이 아닙니까. 그녀는 제게 승리와 패배의 상징이 아닙니다. 그녀를 전리품처럼 말하지 마십시오.”

그 음성에는 은은한 분노가 실려 있었다. 에셀먼드의 서늘한 얼굴을 보며 이자카는 입매를 굳혔다. 그는 처음으로 비올렛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자카는 저 냉정한 사내가 억누른 감정을 내비치는 것을 보았다. 에셀먼드는 처음으로 길게 말했다.

“검을 맞댔을 때, 왜 제게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 의문에 답할 수 없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서로 조우했을 때도 그는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때 에셀먼드는 초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쟁터에서도, 카칸께서는 그녀가 제 곁에 머물 생각이 없다 말했습니다. 카칸께서 대답을 듣기 위해 절 도발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자카는 얼굴을 찌푸리며 에셀먼드를 보았다. 처음에는 자신의 감정을 모르는 애송이가 이유도 모르고 덤벼드는 게 가소로워 그랬고, 두 번째는, 자신에게 승리했으면서도 그녀의 곁에 머문채 그 얼굴을 어둡게 물들인 것에 대한 도발이었다. 이자카는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에셀먼드가 답답했다. 자신과 같은 욕망, 아니, 자신보다 더욱 커다란 욕망을 가졌으면서도, 깔끔한 얼굴로 비올렛을 괴롭게 하는 그가 가증스러웠다. 그래서 이자카는 그 대답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그를 도발했다. 이자카가 감정을 드러냈듯, 저 남자도 그 감정을 드러내는 꼴을 보고 싶었다.

이제 에셀먼드는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에셀먼드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에셀먼드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창문 너머에는 서글픈 곡선을 지닌 은색의 그믐달이 떠 있었다. 그것이 누구를 연상시키는지는 너무나 명백했다. 그의 행동하나하나가 이젠 대답이 되어, 이자카에게 보여졌다.

“나는 언제나 그녀에게 고통에 맡서 싸우라 종용했습니다. 그 의무를 벗어날 수 없게 한다면 적어도 끝까지 함께있겠노라 맹세했습니다.”

그가 드디어 자신의 말을 말하고 있었다. 그는 어둑해져 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나로 인해 겪을 고통은 도저히 함께 견디자 할 수는 없더군요.”

“……”

이자카는 입을 다물었다.

“끝까지 함께 해줄 수가 없습니다.”

이자카는 이 남자의 그릇의 크기를 보았다. 에셀먼드도 전사들의 가치관과 다르지 않았다. 그역시 맡서 싸우는 것이 진리라 배워왔으며, 그렇게 자랐다. 그리고 비올렛에게도 그것을 강요해왔다. 그러나, 그렇게 강요하면서도 그는 언제나 비올렛과 함께해왔다. 그 의무에서 벗어나게 하진 못했을지언정, 언제나 그녀의 곁에 있었다.

그리하여 에셀먼드는 비올렛으로 인해 대신 저주를 받은 것이다.

성녀와 말룸의 싸움에서, 처음으로 일반인이 개입을 함으로서, 상처를 입어야 할 비올렛 대신 에셀먼드가 상처를 입었다. 만약 비올렛이 저것을 안다면 어떻게 될까. 분명히 절망하고 자기자신을 저주하게 되겠지. 회의실에 비올렛에게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것은, 비올렛을 물건처럼 여기는 것에 화가 나서 내뱉은 말이었으나, 국왕과 교황, 그리고 저 남자가 하는 말은 옳았다. 이자카역시 비올렛의 성격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여린여자가 감당할 수 있는 진실이 아니다. 그 진실을 알았다간 그녀는 정말로 자신을 저주해 울다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구자르트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그녀의 행복을 위하는 지름길이었다.

“행여나 그녀가 이 고통을 견디더라도, 제가 그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

이자카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너는 참 알기 어렵다.”

이자카가 에셀먼드를 온전히 이해할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절망에 빠진 비올렛을 나라에서 추방시킨다면. 세남자, 아니, 이자카를 포함한 네 남자가 짠 대본이 완성된다.

그 누구도 에셀먼드의 마음은 알지 못했다. 그저, 그들은 에셀먼드가 자신의 마지막을 비올렛과 함께하고 싶지 않다는 것만 받아들였다. 에셀먼드를 죽여야 하는 비올렛, 연인이 연인을 죽여야 한다는 잔혹한 진실에 눈이 가려, 에셀먼드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자카에게는 그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표면으로만 보면, 잔혹한 운명으로부터 연인을 도피시키려는 남자의 순애보일지도 몰랐다. 미움받으면서까지 그 사랑을 유지하려는 그의 순애보에 감탄하며, 그것을 절절한 사랑이라 해야 하는 것인가?

“그러나 나는 안다, 너는 너만 생각하고있다.”

에셀먼드의 행동은 괴로워서 눈물을 흘리는 비올렛을 보고싶지 않아 하는 이기심에 기반했다. 그에 비올렛에 대한 존중따윈 없다. 그는 모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기적이었다. 너무나 이기적이었기에, 지극히 이타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네 치졸한 마음을 위해서라면 그녀에게 미움받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자카는 에셀먼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겨우 알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그의 그릇이 자신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이었다.

미움받기 싫어서 강제하지 않는 것과 강제하여 미움받더라도 괴로워 하는 것을 보고싶지 않은 이기적인 마음.

그 어느쪽도 사랑이라면 사랑일 터,

“이런 방식도 있는겁니다.”

에셀먼드가 나직하게 말했다. 이기적인가, 치졸한가. 겁쟁이인가. 이자카는 에셀먼드에게 그런 비난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자카는 자신 역시 이기적이며, 치졸하며 겁쟁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이 기회를 기뻐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기뻐하며, 그 기회를 얻으려 하고 있었다. 결국, 그녀의 싸움에 함께 했었던 것은 저 검을 든 전사였음에도.

이자카가 사막으로 추방당할 비올렛을 데리러 아그레시아를 떠나 사막으로 먼저 출발했을때도, 에셀먼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잘 부탁한다던가, 행복하게 해달라던가하는 그런 낯뜨거운 인수인계를 말하는 것이었다. 에셀먼드는 이자카가 그녀를 어떻게 대우할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이자카의 손에는 그토록 바라던 것이 떨어지게 된다. 너무나도 바라던, 첫 만남이후로 한시도 잊지 않았던, 결국 패배하여 포기하려했던 여자가 손에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이자카는 그것에 고양감을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치졸한 자신에 대해 열패감을 느꼈다. 결국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비올렛을 손에 넣은 것이다.

이자카는 에셀먼드를 바라보았다. 이자카는 저남자가 애송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애송이는 자신을 뛰어 넘었고, 이제는 영광스러운 죽음의 방식마저 완벽하게 패해버렸다.

애초에 저남자를 이길수는 없었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1. 아나.. 회상편이 한편 더있네요, 저도 한편에 끝내려 했는데 50키바가 넘어벌였다구.. 출판사 담당자님과 다른 작가님들이 어이없어하심..

나 : 글이 너무 안써져요 흐어엉엉 ㅠㅠ

친구작 : 야 어떡해 ㅠㅠ 너 멘탈 정말 약한가보다 ㅠㅠ 많이 쉬어

(다음날)

나: 야.. 나 멘탈때문이아니고 글이 안써진게 아니었어..

친구: 왜?

나: 아... 나 회상씬만 50키바가 넘었어..글은 착실히 쓰고있었는데 스토리가 안끝나서 그런거였어.. 내글쓰는 속도는 여느때와 같았던 거임... 그냥 많이써서 느려보였을 뿐..

친구: 신이시여 저새끼 총으로 쏴도 되나요?

2. 자 여러분, 아그레시아 졸렬레시아로 이름붙인분들 너무 사랑합니다. 저도 사실 친구들에게 졸렬레시아라고 하고 다녀요. 너무나 졸렬해서.

6.25때도 다리를 끊고 도망가듯이,개인을 위해 다수를 희생하라 하면서 결과적으로 지도자들은 자신을 희생하는것을 굉장히 꺼려하죠. 잃을게 너무나 많으니까요.

3.저 멘붕 좀 회복됐어요 하핫;

4. 후제꽃은 4월 10일까지 완결낼 예정입니다. 그리고 14일 저녁 11시에 1,2부는 습작될 예정입니다. 원래는 전부 습작처리될 예정이었으나. 협의끝에 15일부터 예판에 들어가는 1,2부만 습작하고 3,4부는 23일에 습작될 거예요. 이부분 미리 보시라 공지 드립니다.

5. 어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러는데 후제꽃은 디앤씨미디어, 블랙라벨 클럽과 계약된 작품입니다. 15일 예판, 25일 출간입니다.

6.교정스케쥴때문에 내일까지 올리고 하루만 빼고 올리도록하겠습니다. 생각해보니 다다음편도 브금이 있었네요.

7. 아 BGM정보 책에 실어달라 하셧죠?! 매우 감사하게도 출판사에서 권마다 작가소개에서 실어도 된다 허락하셨답니다!

+추가

8. 아 근데 이와중에 아무도 린도에게 관심..안주심  린도..죽는대요 여러분..ㅠ.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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