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2 꽃이 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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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르트는 아그레시아와 같은 연회가 열리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다른 귀족들을 초대해서 대규모로 사교의 장을 만드는 파티문화가 없었던 것이다. 대신 그들은 ‘가족’의 연회를 마련하여, 먹고, 마시고 즐겼다. 어쩌다보니 비올렛역시 이곳에 초대되어 버렸다. 정확히는 초대되었다기 보다는, 테라스에서 바람을 쐬고 있다, 사리타에게 머리채를 잡혀 끌려온 것이었다.
“어서 마셔라! 이번 술은 맛이 좋구나! 자, 친구여!”
껄껄껄! 호탕하게 웃는 웃음소리에 비올렛은 정신이 팽그르르 돌았다.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사리타가 그녀를 옆구리에 끼고 다시 술을 주었다. 비올렛은 그것을 받아 마셨다. 라히라와 세히라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사리타, 그러다 비올렛이 취할 거예요.”
“괜찮다! 취하면 내가 방까지 데려다 주겠다.”
“…….”
그런 말은 보통, 아그레시아에서는 남자가 하는 말로 기억하는데. 비올렛은 그렇게 생각 하며 붉은 술을 마셨다. 잘 익은 포도주는 의외로 향긋하니 맛이 좋아 자꾸 홀짝이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맛있는 것 좀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재밌는 구경하네, 절대신 신자들은 술이 들어가면 저렇게 피부색이 붉게 변하구나. 꽤나 흥미로워.”
“라위야. 너는 언제 와 있었니?”
세히라가 물었다. 비올렛은 밝은 갈색머리를 두갈래로 땋아내린 여자가 비올렛을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비올렛을 보고 있었다.
“카칸이 또 뭐라 하시지 않을까? 벌써 취했는데?”
파드밀라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자카가 참석하기로 되어있으나, 이자카는 트루아 부족들과의 면담이 길어져 아직까지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사리타의 곁에 서서 미소를 지었던 틴들이 비올렛을 보고 있었다. 못마땅했지만 호기심이 존재하는 시선이 보였다. 아그레시아 보다는 알기 쉬운 순수한 시선인지라 비올렛은 활짝 웃었다. 악의 없이 짓는 그 웃음에 틴들이 당황해서 서로를 마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리타의 상처를 치유하고, 처벌까지 내리지 않은 관대한 여자다. 저렇게 자신에게 활짝 웃어주는 여자애를 아주 미워하기에는 그들도 양심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오오, 신기해라, 성녀라는 사람은 분명 몸을 자체 회복시킬만한, 치유의 마력이 있다 하는데, 술기운은 전혀 치유시킬 능력이 없었군. 새로운 발견이야. 이건 적어둬야겠는데.”
“라위야. 사람을 앞에 두고 연구하는 건 실례에요.”
“어머, 라히라 언니, 너무 티가 났나요?”
비올렛은 멍한 눈으로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저기 저 자신을 연구하는 여자애가 라위야, 라히라, 세히라, 사리타, 저기 화려한 옷을 입은 여자가 루드밀라, 청동색 머리색이 인상적인 여자는 록셀란, 커다란 다이아목걸이를 하는 것은 친델라, 보라색 깃털 머리장식을 한 여자가 탈리아. 모인 틴들은 여덟명, 분명히 아홉 명이라 들었는데, 왜 여덟 명일까.
“사리타”
“왜그러느냐, 친구!”
사리타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틴들 중에 나머지 한분은 어디 계세요?”
혀까지 꼬여서 서투르게 구자르트 어를 말하는 비올렛의 모습은 틴들도 인정하기 싫었지만 나름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절대신을 믿는 족속들은 위대한 정령을 믿는 자들을 야만인이라 생각하고 천대한다 들었지만, 눈앞에 여자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던 것이었다.
“아, 키아라를 말하는 거로구나.”
사리타가 말했다.
“키아라는 원래 이런데에 잘 나오지 않는다.”
“그래요?”
“네, 비올렛, 키아라는 조금 특이한 경우예요, 하렘이 아닌 무녀궁에 거하고 있답니다.”
“무녀궁이요?”
비올렛이 물었다. 사리타가 대답했다.
“그 앤 아무에게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아마 네가 온 것도 모를 거다.”
“진짜요?”
“맞아요, 비올렛 우리도 키아라를 볼때가 드물어요. 키아라와 이야기를 나누는 건 사리타정도라고나 할까?”
“그래, 그 앤 내가 아끼는 동생이니까.”
사리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비올렛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올렛이 사리타의 어깨에 기댔다. 숨이 헐떡 거렸다.
“비올렛, 술이 약하면 약하다 말하지 그랬어요.”
라히라의 말에 비올렛이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저, 술 처음먹어봐요.”
“네?!”
이 말에는 틴들 전부가 놀랐다. 비올렛의 나이가 열여덟이다. 성년이 지났으므로 술을 마셔도 진작 마셨어야 할 나이다.
“웃음거리가 될까봐 술…은 못 마셨어요.”
“비올렛이 왜 웃음거리가 돼요?”
그 말에 비올렛이 그저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눈물이라도 떨어트릴 것 같은 비올렛의 얼굴을 보고 틴들은 조용히 그녀의 얼굴에 집중했다. 어, 어떡하지 울면 어떡하지? 기본적으로 구자르트 사람들은 전사들인지라 ‘울음’이라는 약한 감정을 표현하며, 대하는데에는 굉장히 서툴렀다.
“신전에 가서는 혹시라도 그……사람한테 실수하게 될까봐…마시지 못했어요.”
“…….”
“좋아한다고 말해버리면 어떡해요.”
방금 말은 아그레시아 공용어라 라히라와 세히라만이 알아 들었다. 비올렛이 횡설수설 하더니 서툰 구자르트어를 섞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또래 여자애들과 술 마신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다 절 싫어해서…….”
“…….”
“그래도 같이 마셔서 너무 기뻐요. 이거, 맛있네요…….”
비올렛이 홀짝 거리며 술을 마시며 말했다. 그에 찡, 하고 분노한 사리타가 소리쳤다.
“이이잇! 다음부터는 언제든지 마시게 해주마. 넌 내 영혼의 벗이니, 언제든지 날이 좋으면 술을 마셔야 한다.”
“…….”
그 말에 비올렛이 미소를 지으며 정말요?라고 물었다. 사리타가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비올렛이 풀린얼굴로 헤헤, 웃더니, 눈을 감고 꾸벅꾸벅 잠들었다.
“우와, 방금 의식을 잃었다. 숙취도 치유가 될까?”
“라위야.”
세히라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틴들이 조용히 쓰러진 비올렛을 보았다. 사리타의 어깨에 기댄 비올렛의 뺨은 장미색처럼 붉었다.
“술, 처음마신다고…….”
친델라가 어이없다는 듯 옆에 있는 파드밀라를 보며 말했다. 록셀란 역시도 얼굴을 찌푸렸다. 탈리아가 말했다.
“우리 호감을 사려고 그러는 줄 어떻게 알아?”
그렇지만 그 말을 하는 탈리아역시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비올렛이 호감을 굳이 사야 할 필요가 없었던 탓이었다. 카칸이 아름다운 보석과 옷을 갖다 바치려 해도, 저 여자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적정 선을 지키려 한다는 소리는 들었다. 혼인하기 전부터, 이미 저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는 소리역시 들었다. 사실 잘 보여야 할 것은 비올렛이 아닌, 자신들 쪽이었다.
그럼에도 저 여자는, 자신들을 적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었다. 타 문화라고 무시하며 배척하지 않으며 언어 역시 배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비올렛의 구자르트어 실력은 나쁜 수준은 아니었지만 때때로는 서툴렀다. 서툰 말을 하는 외국인은 어쩐지 아기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녀들이 가장 불쾌해하고 질투해야 할 사람이라는 것이 비올렛이라는 것을 그녀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저 여자가, 자신들의 남편과 맺어진다면, 툰으로 올라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러나 가장 질투심이 많은 사리타가 마음을 쉽게 열 정도로 저 여자는 착한 여자였다. 본 바탕이 나쁜 사람이 아닌지라, 미워하기는 꺼려졌다. 그것이 틴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비올렛이 구자르트로 온지 두달, 그녀는 알게 모르게 이곳에 녹아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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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렛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나 더웠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침대위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 술이 깨지 않은 듯 심장이 두근거렸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머리가 핑, 돌았다. 비올렛은 창문을 열고 테라스 바깥으로 나가 시원한 밤바람을 쐬었다.
밤의 어둠이 내려앉은 카칸궁은 너무도 고요했다. 비올렛은 밤새들이 지저귀는 것을 듣고 있었다. 비올렛이 손가락을 뻗어들자 샛노란 새가 앉아서 노래하고 있었다. 비올렛은 멍하게 그 새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난간에 몸을 기대 테라스 아래를 바라보았다. 왠지 그 어둠속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까딱하면 떨어질 위태한 자세였으나, 비올렛은 개의치 않았다. 그녀의 몸이 기울었다. 그때 누군가가 비올렛의 허리를 낚아챘다.
“피아케!”
이자카의 목소리였다. 그 격앙된 목소리에 비올렛은 깜작 놀랐다. 비올렛은 이자카의 품에 안겨 있었다. 등 너머 이자카의 빠른 심장소리가 들렸다. 비올렛이 몸을 바르작대자 이자카는 그 안에 힘을 주었다.
“왔어요?”
비올렛의 목소리에 이자카가 비올렛의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취한건가?”
“안취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비올렛은 자신의 뺨이 아직도 붉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자카가 한숨을 내쉬었다.
“술은 적당히 마셔야겠다.”
“아니에요, 맛있었어요.”
비올렛의 다정한 말에 이자카가 미소지었다.
“연회에 가보셔야죠 이자카.”
비올렛의 말에 이자카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내가 연회에 갔다가는 너는 또 뛰어내릴 거다.”
“…….”
“너는 테라스를 참 좋아한다. 언제나 갈 때마다 거기 서 있다.”
“바람이 불어서 좋은걸요.”
비올렛이 나른하게 웃으며 말했다. 희미한 등불에 비친 비올렛의 얼굴은 잘 익은 사과처럼 붉은 홍조가 어려 있었다. 노출이 많은 구자르트 드레스 사이로 드문드문 드러난 비올렛의 새하얀 속살은 술 때문에 입술을 덧댄 흔적과도 같이 붉은 반점이 꽃처럼 피어 있었다. 너무나도 매혹적인 모습에 이자카는 잠시 동안 호흡을 고르며 태연하게 말했다.
“옷이 잘 어울린다, 피아케.”
“그런가요?”
비올렛은 자신이 입은 옷을 바라보았다. 시원한 재질로 이루어진 구자르트식 드레스는 예전에는 허전했으나 지금은 익숙해졌다. 어느새 구자르트에 온지도 두 달이 지났다. 비올렛은 치맛자락을 들어올렸다. 그에 아주 살짝, 가느다란 종아리가 장난스럽게 치마 아래로 보였다 사라졌다. 이자카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아직도 술기운에 비올렛은 풀린 얼굴로 무방비하게 웃고 있었다. 이자카는 그 아찔한 모습에 매혹되어 비올렛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비올렛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열기 띤 눈동자가 비올렛을 향했다. 그가 비올렛의 뜨거운 뺨을 감싸며 얼굴을 가져다 댔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비올렛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잡아 빼며 그를 밀었다.
비올렛과 이자카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이자카는 화를 내지도 않고, 씁쓸한 얼굴로 비올렛을 보고 있었다. 아직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안아봐도 되나?”
“네?”
“그냥, 안아보는 거다.”
비올렛이 멍한 얼굴로 머뭇거렸다. 비올렛이 고개를 들자, 이자카가 굳은 표정으로 비올렛을 보고 있었다. 이자카의 얼굴이 흐려보였다. 그는 괴로워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비올렛은 술에 취한 와중에도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이자카는 확실히 가라앉아 있었다.
비올렛은 한참을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자카가 그녀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이자카가 비올렛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의 숨소리가 드러난 쇄골을 간지럽혔다.
“피아케.”
“네, 이자카.”
덩치도 산만한 사람이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술기운에 몽롱한 와중, 비올렛이 평소답지 않게 팔을 뻗어 그의 등을 매만졌다. 서툰 위로에 이자카가 낮은 웃음소리를 냈다.
“피아케, 그거 아는가?”
“네?”
“난 평생 이길 수 없을 거다.”
“……무엇을요?”
“내가 널 강제하지 않는 것은 네게 미움 받기 싫어서이다.”
“…….”
“널 위해서가 아니라 날 위해서인거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일까. 비올렛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그건 결국 저를 위한 게 아닌가요?”
“…….”
“이자카가 내게 미움 받기 싫다는 건, 이자카가 그만큼 절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거잖아요.”
비올렛의 차분한 말에 허리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난 비겁하다.”
이자카는 한참동안 비올렛을 끌어안고 있었다. 비올렛은 이자카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왜 이자카는 자신을 경멸하고 있는 것일가. 알 수 없다. 그저 그는 친절한 사람일 뿐인데. 비올렛이 웃으며 그를 보자 이자카는 비올렛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췄다. 그리고 그녀를 안아 들어 침대에 눕혔다. 비올렛이 이자카를 보자, 이자카가 그 옆에 서 있었다.
“자라.”
그는 조용히 말하며 비올렛이 다시 잠들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비올렛은 그의 한숨소리를 자장가 삼으며 잠이 들었다.
*
비올렛은 난감한 표정으로 방을 보고 있었다.
“에잇, 이런건 다 필요 없다, 놀러가자 비올렛!”
예쁘게 다듬어지고 있던 비올렛의 머리는 순식간에 산발이 되고야 말았다. 방금 무슨 일을 당한거지? 내가 머리채를 잡힌 것인가? 비올렛이 멍하게 생각했다.
“꺄악, 사리타! 뭐하는거야!”
머리를 만져주던 세히라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비올렛의 긴 은발을 만져주는 것을 즐기던 세히라는 상당히 짜증이 난듯했다.
“그런 머리에 공들여서 뭐하나, 어차피 망가질텐데.”
“밥은 왜먹니? 다시 배고파질텐데.”
세히라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할 말이 없어진 사리타는 끄응, 하며 비올렛의 머리를 보고 있었다. 비올렛은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사리타는 라히라와 세히라보다 빈번하게 비올렛을 찾아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해 주었다. 구자르트 어를 완벽하게 하지 못했어도, 사리타는 짧은 말로 비올렛을 제법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라히라는 그걸 보고 사리타를 길들였네요, 라고 말했지만 세히라는 질투가 난지, 매번 티격태격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가롭게 머리나 다듬다니, 자신을 다듬어야 하지 않겠는가.”
겨우 다시 다듬어 묶이려던 머리가 사리타에 의해 풀렸다.
“사리타, 지금은 전시상황이 아니야. 이런 때일수록 여유롭게 즐겨야 한다고.”
보통 이쯤되면 라히라가 가운데에서 말려주었지만 라히라는 이자카의 정무를 도와주러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세히라가 사리타가 움켜쥔 비올렛의 머리카락을 뺏어왔다. 비올렛은 이 두 여자에게 졸지에 머리채를 잡히고 있었다. 이게 괴롭히는 방법이라면 지능적인 방법이었다.
“전쟁이란! 언제나 알 수 없을 때 터지는 것! 세히라, 너도 단련이 부족하다.”
“나는 그쪽에 소질이 없는걸.”
세히라가 다시 비올렛의 머리를 뺏었다. 새히라가 다행히 두피에서 잡아당겨지지 않게 다른 한쪽 손으로 머리카락을 잡았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머리가 뽑힐 것처럼 아플 게 뻔했다. 약이오른 사리타가 비올렛의 머리 끝을 붙잡았다.
“사리타, 고집 피우지마.”
“너야말로!”
“그거, 제 머리….”
왜 줄다리기의 줄이 비올렛의 머리카락이 되어야하는가. 그것을 바라보던 비올렛이 그들을 말리려 할 때 머리가 뽑힐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섬뜩한 투둑소리가 들리며 비올렛의 머리카락이 끊어졌다. 한 움큼의 은색 머리털이 사리타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사리타가 멀뚱하게 머리카락과 비올렛을 번갈아 보았다. 세히라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비, 비올렛?”
그것을 본 비올렛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두분 다 제 방에서 나가주시겠어요?”
“…….”
언제나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면, 비올렛은 이해의 범위가 상당히 넓은 편에 속했기에 무덤덤한 편이었지, 그 범주를 넘어선 부분에 항상 친절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겨울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겨울의 미소를 체감하고, 알아서 깨갱 하며 바깥으로 나갔다. 참고로 그녀는 매우 짜증이 나있던 상황이었다.
시무룩한 얼굴로 사과를 하던 사리타외 세히라가 사라지자 비올렛은 끊겨버린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며 성력으로 길렀다. 끊어진 머리가 꼬불꼬불한 모양으로 참담한 모양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살짝 성력을 쓰자 다시 본래대로 길어진 머리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에 화가 풀리지 않은 비올렛은 가만히 앉아 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원이라도 돌아봐야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아서였다.
복도를 걷던 비올렛은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어쩐지 기묘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으나, 뒤를 돌아보자 아무것도 없었다. 기분 탓인가, 다시 등을 돌려 몇걸음 걸은지 얼마 되지 않아 비올렛은 오싹 하고 소름이 끼쳐왔다. 그녀가 다시 뒤를 돌자 아무 것도 없었다. 이 기운을 무시할까 아니면 그냥 걸을까 고민하던 비올렛은 결국 그 기운을 찾아 헤맸다. 사실 찾을 것도 없었다. 그 기운 덩어리는 바로 기둥 뒤에 있었던 탓이었다.
한 소녀가 기둥 뒤에 서 있었다. 그녀는 검은 눈동자를 깜빡, 거리며 비올렛을 보았다. 처음 보는 여자 아이었다. 그럼에도 저 여자 아이가 가진 기운은 무엇인가. 힘으로 따지자면 수련을 거듭한 대신관들이 가진 성력과 비등한 성력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
비올렛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가 손을 뻗어 비올렛의 옷자락을 잡았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검은색의 두 눈동자가 마치 거울처럼 맑았다. 그녀의 볼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마치 무엇인가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아 비올렛은 한참을 기다렸다.
“사리타를… 살려주셔서 감사해요.”
무슨 일? 이라고 생각하다 비올렛은 하렘 안의 연무장에 벌어진 사건을 말한다는 것을 알았다. 벌써 그 일이 보름 전에 일어났던 일이었다.
“아뇨, 천만예요.”
비올렛이 음, 하며 말을 골랐다. 소녀는 말이 느린 편이라 비올렛이 의사소통하는데 딱히 큰 지장은 없었다.
“카칸이 좋아하던 여자가 왔다는 것은 사리타에게 들었는데, 그렇게 큰 힘을 가진 분일줄은 몰랐어요 용서해주세요, 전 위대한 정신이외에 남들에게 관심을 잘 가지지 않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 당신일줄은 몰랐어요.”
수줍게 말하며 조그마한 입술이 흔들렸다. 그러다 비올렛의 ‘누구?’라고 붇는 얼굴 표정을 보며 말했다.
“저, 저는 카칸의 아홉 번째 틴, 키아라에요.”
============================ 작품 후기 ============================
0.조아라 서버가 문제를 일으켜서 5키바만 등록되었네요. 수정했습니다. 와 올라간거 보다가 너무 황당해서;
1.여러분 죄송해요... 구자르트편 두편으로 분리 안됨. 3편임... ㅎ... 잘못했음요. ㅠㅠ 제가 사랑하는거 알죠? 내일은 쉬겠지만 내일모레도 찾아오깨오...
2. 몸은 완전히 회복세입니다. 진짜 많이 좋아졌어요. 저 독자님들 말보고 너무 감동먹었어요. 그래도 이렇게 몸 안좋을때를 대비해서 비축을 쌓아둔거죠, 안그래요 여러분들? 헤헷
3. 오늘 구자르트편까지 비축 장전 완료했습니다. 그래도 4월 초에 완결 내는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것... 몇달동안교정교정 교정!!교어ㅓ어어어정!! 교정자님께서부족한 원고때문에 넘나 고생하시는것. 다음부턴 완결내고 집중하는걸루..
4.19금 개인지에 대해서는 출판사에 문의한결과 계약건 때문에 개인지를 못낸대요...흑..너무나 슬프다. 그래서 방법을 알아보려고 해요.
예를들어 종이책 4권을 모두 구매하시는 분들에 한해서 1권231쪽 다섯줄에 나온 첫단어!/2권에 114페이지 20줄 첫단어!/3권/4권 뭐 이런식으로 해서 암호를 조립하는거?
이북도 해결책을 마련해보는!!그런 방향으로!! 이기획 넘나 좋은데..흑..
4. 여튼 이제 제일 쓰기 재밌었던 구자르트와 작별할 시간.. ㅠㅠ
5.이루미나님, lesmis님, 유나맘님, 자게꿍님, 멜봉님, thdgml8089님, keilledge님, lalala1님 후원 쿠폰 너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