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9 꽃이 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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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나르 족 시녀가 가져온 옷은 비올렛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입기 힘들었다. 여기 이 구자르트의 복식은 가슴이 더욱 패였으며 치마역시 풍성하게 부풀린 아그레시아의 옷과는 달리 성복과 달리 시원스러운 직선으로 뻗어내린 드레스였다. 더운나라여서 그런지 속치마가 한겹도 없어 꼭 잠옷을 입은 것 같았다. 비올렛은 너무 파여 강조된 자신의 가슴이 창피했다. 허전한 목은 카칸이 선물로 주었다며 파란 보석이 달린 은목걸이로 장식되었다.
언제나 틀어올려야 했던 머리 역시 땋아내려 화려한 핀으로 장식했다. 구자르트식으로 꾸민 자신의 모습이 어색해 보였다.
비올렛이 시중이 안내한 곳으로 나가자, 커다란 방이 나왔다. 연회장, 이라기 보다는 커다란 식사인 것 같았다. 비올렛은 들어가자 마자 굳어 있었다. 가운데에 앉는 것은 이자카였고, 그의 오른편과 왼쪽에는 여자들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비올렛은 저 여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 호기심 어린 시선과 무관심, 적의어린 시선들이 자신을 향했다.
이자카가 일어나 비올렛에게 다가왔다.
“나의 손님이다.”
이자카의 말에 비올렛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이름을 소개해야 하는 것인가? 자신을 소개시켜준 이자카를 따라 비올렛이 일어나 아그레시아 식 예법으로 살짝 무릎을 꿇으며 어색한 구자르트 어로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비올렛은 자신들의 이름들을 여자들을 보았다. 안타깝게도, 비올렛은 구자르트 어가 익숙한 편이 아니었고, 어디서부터 어디가 이름인지 구분이 불가했다. 그리고 여자들역시 그것을 배려해주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그것을 보던 이자카가 비올렛의 손목을 잡고 자신의 옆에 이끌었다.
여자들의 시선이 모두 비올렛을 향해 날아와 꽂혔다. 덕분에 비올렛은 이자카가 내밀어준 음식들을 제대로 씹어삼킬 수가 없었다. 이자카가 입맛에 안맞냐 물어보았으나 비올렛은 자신이 식욕이 없다 말했다. 아그레시아에서 이런 시선을 받는 것은 익숙했다. 그러나 타국 사람들의 시선을 이렇게 받는 것은 비올렛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이방인들은 이런 시선을 받았구나. 비올렛은 이자카를 바라보다 앉아있는 아홉의 여자들을 보았다. 저 여자들이 바로 이자카의 첩들일 것이다. 모두 다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화려하게 치장을 한 그 모습을 본 비올렛은 그들의 시선이 그녀가 입은 옷에 향해있다는 것을 알았다. 비올렛이 입은 옷은 이자카가 선물했던 청옥과 똑같은 색이었다.
비올렛이 눈을 마주치자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비올렛을 보며 옆에 있는 여자와 킥킥거렸다. 멀리서 보아 어떤 대화인지는 모르지만 비올렛은 자신이 대화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식사를 마친 후 이자카는 비올렛에게 다가왔지만, 그의 보좌관인 라이니그가 난감한 얼굴로 이자카를 만류했다. 이자카는 얼굴을 찡그리며 무어라 말하다 비올렛이 오늘은 쉬고싶다 말하자 저녁에는 왕궁의 정원을 구경시켜주겠노라 말한 후 정무를 하러 가버렸다. 가면서 라이니그가 감사의 표시로 허리를 살짝 숙였다.
비올렛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 회랑을 걸을 때, 비올렛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저기, 엉덩이 예쁜 아가씨!”
“....?!”
분명 아그레시아 공용어였음에도, 그 말하는 단어가 너무나 의외의 단어라 비올렛은 눈을 깜빡이며 ‘엉덩이, 예쁘다.’ 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했다. 비올렛이 몸을 돌리자 한 여인이 비올렛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자카의 아홉명의 여자들 중 한명, 아까 비올렛을 보며 킥킥거렸던 그 여자였다. 그 여자가 아그레시아 공용어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지만 비올렛은 그녀가 말하던 표현에 더 놀랐다.
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붉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여자는, 아름다운 에메랄드색 눈을 부드럽게 휘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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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으로 들어와요!”
여자가 손짓하자, 비올렛은 어색하게 머뭇거리며 티 테이블에 앉았다. 그녀는 자신을 아홉명의 첩중의 하나, 민드나스의 베이러베이(구자르트의 땅의 통치자를 이르는 말, 베이러베이, 베이, 티마리오트, 와지르, 순서대로 후작, 백작, 남작, 자작과 유사한 뜻을 지님.) 의 딸, 세히라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비올렛은 주위를 돌아보았다. 하렘이라고 해봤자 건물이 조금 화려한 것일 뿐, 카칸궁과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다만 어딘지 모르게 폐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그레시아 식으로 테이블을 놓기를 잘했어, 어때요? 괜찮아요? 저기 앉으면 다리가 아플 거 아니에요.”
그녀가 가르킨 곳은 화려한 카펫위에 놓인 높이가 낮은 탁자와 의자였다. 비올렛은 구자르트가 좌식생활이라는 것을 기억해 냈다. 비올렛은 금색이 번쩍거리는 잔을 보았다. 아그레시아식 하얀 테이블 위에 번쩍번쩍한 구자르트식으로 세공된 금잔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비올렛은 그녀가 내민 잔을 마셨다.
“피부하얀 사람은 오랜만에 보네. 줄곧 만나고 싶었어요.”
“저를요?”
비올렛이 되묻자 그녀가 웃으며 무엇이라 말하려 할때였다.
“세히라!”
누군가가 이곳으로 뛰어 들어왔다. 비올렛은 깜짝 놀라 그쪽을 바라보았다. 조금 날카로운 목소리였음에도, 세히라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았다.
“라히라 언니, 화를 내면 이분이 놀라시잖아?”
“지금 내가, 화를 내는게 그 이유 때문이잖니, 세히라! 저분은 아직 오신지 얼마 안되셨다고. 우리가 말을 거는 것도 부담스러우실거라고 했니 안했니!.”
“에이, 그렇다면 더욱 더 내가 붙어 있어야지. 친구도 없이 얼마나 외로우시겠어?”
세히라의 뻔뻔스러운 말에 라히라가 고개를 저었다. 라히라는 비올렛의 시선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려 허리를 살짝 숙였다. 세히라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제 언니에요, 이름은 라히라랍니다.”
비올렛의 시선이 뒤이어 온 여인을 향했다.
“안녕하세요, 성녀님.”
라히라 역시 유창한 아그레시아 어로 비올렛에게 말을 건넸다 비올렛이 어색하게 그녀의 이름을 발음하자 라히라가 활짝 미소 지었다. 세히라와는 다르게 라히라는 차분한 검은색 머리카락에 밝은 갈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여인이었다. 비올렛은 이 여자들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쩌다 보니 초대받게 되어 하렘에 오게 된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웠는데, 이자카의 첩들을 둘이나 만났다. 비올렛은 이 상황이 적응이 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그녀들은 우호적이었던 탓이었다.
“저도 성녀라고 불러야 하나요?”
세히라의 말에 비올렛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어차피 성력을 잃어버릴텐데 어떻게 성녀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비올렛이라 불러 주세요.”
“비올렛. 아무리 그래도 카칸처럼은 못부르겠어. 사람을 보고 ‘제비꽃’이라잖아.”
사실 아그레시아어로 제비꽃이 비올렛이라고 한다. 그러나 로즈나 릴리가 사람의 이름으로 허용이 되듯, 비올렛도 그러한 범주였다. 라히라가 뭐라 하자 세히라가 키득거리며 웃더니 비올렛을 보았다. 라히라가 말했다.
“줄곧 보고싶었답니다.”
“저를요?”
비올렛이 눈을 크게 떴다. 세히라도 그렇고, 라히라도 그렇고, 비올렛을 보고 싶었다고 한다. 저들이 아그레시아의 성녀를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것인가?
“카칸이 유일하게 마음에 담은 여자잖아요.”
그 말에 비올렛의 두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자카에게 들었을 때도 그러했지만, 남의 입으로 들으니 더욱 더 낯이 뜨거워졌다. 비올렛의 얼굴이 빨갛게 익어버리자 세히라가 그걸 보며 웃으며 말했다
“코끼리를 타고 왔다 했을 때 얼마나 재밌었는지 몰라요, 그렇지 라히라 언니? 과연 카칸이 사랑하는 분이라니까. 사리타가 질투하는 모습은 솔직히 재밌었어.”
비올렛은 궁궐에 들어올 때 상황을 생각하며 얼굴을 붉혔다. 역시 그 덩치 큰 동물과 들어오는 것은 요란한 일이었다. 이놈의 얼굴은 가라앉지 않았다.
“정말 동물을 다루실 수 있는 거예요? 그 타르크놈도 혼자서 붙잡아버렸다는데 진짜 그런거죠?”
그 말에 비올렛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히라가 탄성을 지르며 라히라에게 설명해주었다.‘ 라히라 역시도 와아, 소리쳤다. 세히라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비올렛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비올렛의 팔을 잡아 끌어 일으켜 세웠다. 그녀의 시선이 이마의 푸른 성흔을 향했다. 그녀가 손가락을 들어 비올렛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보았다. 비올렛은 이마를 쿡 찔러오는 손가락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한번도 이런 식의 대우는 받아본 적이 없었던 탓이었다.
“세히라!”
라히라가 소리쳤다. 세히라가 웃으며 말했다.
“지워지나 보려는 거예요. 세상에 정말 안지워지잖아?”
라히라가 사과하자 비올렛이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호기심 어린 시선에 익숙해졌지만, 이런 순수한 종류의 호기심은 처음이었다. 불쾌하다기 보다는 재미는 있었다. 누군가가 직접 접촉해서 호기심을 채우는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남자라면 불쾌했겠지만 여자라면.......
그러다 비올렛은 갑작스러운 감촉에 꺅, 하고 비명을 질렀다. 세히라의 손이 비올렛의 가슴을 밀가루 반죽처럼 주물럭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비올렛은 놀라서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가슴은 내가 더 큰데? 그래도 적당한 크기라서 카칸이 좋아하셨을거야, 그렇죠?”
“네!?”
비올렛이 깜짝 놀라 세히라를 바라보았지만, 세히라는 비올렛의 몸을 탐색하기에 유념이 없었다. 그녀의 손은 비올렛의 가슴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주물주물, 주물주물, 비올렛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일그러졌다. 지금 이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는건가.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으음, 감촉도 괜찮고. 엉덩이는 어떨까?”
세히라가 비올렛의 엉덩이에 손을 뻗자, 보다못한 라히라가 나섰다. 세히라는 왜, 어때? 여자끼린데. 예쁜 엉덩이 좀 만지면 안돼!? 구자르트 어로 말했지만 비올렛은 그 말을 이해했다. 라히라가 없었따면 여기서 옷이 벗겨져서 낱낱이 분석당하고 있었을 지도 몰랐다.
“미안해요, 제 동생이 조금 어려, 아니 무례해요.”
라히라의 말에 비올렛이 괜찮다 말했다. 그러나 비올렛의 붉은 얼굴은 사라지지 않았다.
“엉덩이를 못만진 건 아쉽지만 예쁘네, 솔직히 나는 인정해.”
그녀가 구자르트어로 말하며 라히라 옆에 다시 앉았다. 비올렛은 그 말에 감사하다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카칸이 좋아할만 하다고. 친델라와 파드말라는 못생겼다 말하는게 이해가 가지 않아. 피부도 설탕처럼 하얀게 뭐가 나빠? 나는 충분히 예쁘다고 생각해.”
“세히라, 당연히 질투가 아니겠니? 저분을 괴롭히는 건 그만 둬.”
“괴롭히다니, 예쁜 사람을 보면 만지고 싶은건 당연하잖아? 카칸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사람인데.”
“그래도......”
“어차피, 하렘에 들어와 살거잖아?”
비올렛은 저 사람들이 자신이 구자르트 어를 어느정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제발 알아주길 바랐다.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얼굴이 붉어진 비올렛을 본 라히라가 그녀를 가리켰다.
“실례했어요, 비올렛.”
그녀가 호호호, 입을 가리며 웃었다. 비올렛은 마주보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런 종류의 사람은 처음 보았다. 여자 친구랑 시수일레 밖에 없던 비올렛은 세히라의 강한 성격에 말려 들었다.
“저랑 친하게 지내는 거예요? 저, 아그레시아 사람들 무척이나 좋아해요. ”
“.......”
“그리고 카칸이 왜 당신에게 반했는지 그 이유도 알고 싶으니까.”
이자카가 비올렛에게 반했다는 것도 낯뜨거웠지만, 이자카가 비올렛에게 반한 이유를 알아내겠다는 것도 낯뜨거웠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여자가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비올렛은 세히라의 솔직함이 누군가가 떠올라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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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들어서고, 후작가의 후원에는 제비꽃이 져 가고 있었다. 방문자는 후원에 있는 제비꽃을 보다, 한숨을 쉬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주인의 방에 들어갔을 때, 그는 포도주색 벨벳 휘장이 쳐진 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무심한 표정에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아, 방문자는 남자의 표정에서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넌 언제나와 똑같군.”
그 말에 남자는 줄곧 바라보던 벽에서 고개를 돌렸다.
“제게 무엇을 바랍니까?”
“........”
“이미 떠난 사람입니다.”
남자의 어투는 서늘하고 냉정했다. 그에 방문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정말, 너는 때론 나보다 더 인간이 아닌 것 같아.”
“.......”
“가끔 가다 소름끼칠 정도야.”
그 말에도 남자의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남자의 눈을 본 방문자는 얼굴을 괴롭게 일그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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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예약합니다. 예약템 이거 너무 좋은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