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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핀 제비꽃-188화 (181/208)

00188  꽃이 지다  =========================================================================

오랜만에 육지에 땅을 디디자 비올렛은 땅마저 울렁이는 느낌이 들어 잠시동안 걸음을 멈추어야만 했다. 이자카가 손을 뻗어 비올렛을 부축했다.

“괜찮은가 피아케?”

“아니에요, 괜찮아요.”

비올렛은 그때까지도 정신이 없었다. 어지러운 시야, 배멀미, 마음 속에 있는 걱정. 이자카가 비올렛을 번쩍 들어 말 위에 그녀를 올려 주었다. 이자카가 비올렛의 뒤에 타겠노라 했지만, 말이 '안돼, 내가 죽고 말거야.' 라고 애원하는 것을 들은 비올렛은 고개를 저어야 했다. 말은 그에 대한 보답인지 최대한 안정적으로 비올렛을 태워주고 있었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며 비올렛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는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도시의 풍경은 아그레시아와 완벽하게 달랐다. 높은 벽돌 집이 가득했던 아그레시아와는 달리, 흙으로 만들어진 낮은 집들이 깔려 있었다. 사람들은 헐렁한 옷을 입었으며, 상의를 탈의한 사람들도 있었다.

달라진 공기, 기온, 사람들. 심지어 냄새마저도 달라져, 이국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비올렛은 그제야 자신이 다른 나라에 온 것을 실감했다.

사람들은 그들의 카칸의 행렬을 구경하려 모여들었다.

따가운 햇살이 내려쬐고 있었다. 배에서는 피부가 하얀 사람들과 갈색인 사람들이 선원이었기에 몰랐지만 사람들은 모두 갈색의 피부색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밀가루처럼 피부가 새하얀 비올렛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비올렛의 머리색과 눈색은 아그레시아에서도 눈에 띠었지만 피부가 어두운 군나르 족들 사이에 있으니 더더욱 눈에 띠었다.

심지어 카칸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그 옆에 있는 비올렛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 시선에 서린 것은 이방인을 향한 뜻모를 적의와, 경계, 호기심이었다. 비올렛은 옆에 있는 이자카를 보고 생각했다. 그도 아그레시아에서 이런 시선을 감내했구나. 비올렛이 힐끔 이자카를 바라보았다. 이자카는 하얀 옷에 금색의 실이 수놓인 카칸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위엄있는 얼굴로 앞을 보고 있었다.

비올렛은 이 순간, 이자카가 이 사람들의 왕, 카칸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는 샤를과 같은 얼굴을 하고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비올렛과 시선이 마주했다.

“몸이 아픈건가?”

그저 카칸의 모습으로 있는 그가 조금은 낯설어 보여서 라고 이야기 할 수 없었던 비올렛은 고개를 저었다.

“어서 가서 쉬자.”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이자카는 비올렛에게 가자고 말하고 있었다. 비올렛의 입술이 살짝 떨렸다. 이곳은 비올렛이 태어나고 자란 장소가 아님에도, 그는 비올렛에게 함께하자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의 찌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짐나 비올렛을 향하는 시선은 이자카가 아그레시아에서 받아왔던 시선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비올렛은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들을 견딜 수가 있었다.

한참을 궁으로 걸어가던 비올렛은 말이 겁에 질려하는 것을 들었다. 무언가 오고있어. 무언가가.라고 말하며 말이 불안해 했다. 이자카 역시도 무언가 느낀 듯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멀리서 비명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쿵, 쾅, 쿵, 쾅, 무언가 지면을 진동하고 있었다 사랍들 사이에 긴장이 서렸다. 비명소리는 가까워 져, 사람들이 골목으로 뛰쳐나왔다. 이자카는 행진을 멈추라 지시하고 뛰어온 사람들 중에 창을 든 병사를 발견하고 물었다.

“무슨일인가.”

비올렛은 달려온 병사들이 군나르족 언어로 빠르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자카의 표정이 달라진 것을 보니 무언가 심각한 일이 일어난 것 같았는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지? 비올렛이 불안감을 느꼈다. 쿵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뜨득, 하며 무언가 뽑히는 소리가 들렸다. 비올렛은 저 건물너머 난생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뿌리채 뽑힌 나무를 보았다.

나무는 비올렛쪽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건물 한복판에 쿵, 하고 떨어져 집을 부숴버렸다. 그 파편이 튀자 이자카가 비올렛을 보호하듯 감쌌다. 불길한 쿵쿵 거리는 소리가 지면을 진동했다.  전사들이 샴쉬르를 뽑아들었다. 이자카가 심각한 얼굴로 비올렛에게 말했다.

“여기 기다리고 있어라.”

이자카가 군나르족 병사들에게 무어라 지시하며 말을 타고 사라졌다. 무슨 일인지 모르니 두려웠다. 비올렛은 호위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공포를 본 비올렛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자기 때문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건가? 어쩌면 크리처라도 나타난 것이 아닐까? 이자카의 표정이 심각했다. 심지어 도망나온 사람들마저 공포에 질려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비올렛은 자신에게 무기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다못해 검이라도 있어야 안심일 텐데 그것도 없었다.

그때, 비올렛의 바로 옆 건물에서 쾅!하는 소리가 나며 건물이 후두둑 무너져 내렸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곳으로부터 도망쳤다. 쿵쿵쿵쿵 거리는 소리는 점점 비올렛에게 다가왔다. 흙먼지에 둘러싸인 짐승의 그림자는 비올렛따윈 한입에 집어삼킬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군나르족 전사들이 말을 탄 채로 흙먼지 너머 그 짐승에게로 달려갔다. 그러나 퉁, 퉁 하며 튕겨나가 버리고 말았다.

그에 비올렛 가에 있던 전사들이 짐승의 영향권으로 부터 물러났다. 그러나 전사들은 자신이 지켜야 할 여자가 멈춰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나 겁에 질린 말이 움직이지 못하고 굳어버렸던 것이다. 전사들이 제때 물러나지 못한 비올렛을 보고 이리 오라 고함을 질렀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긴장에 비올렛의 머리끝이 쭈뼛 하고 섰다. 흙먼지가 조용히 가라 앉았다.

“베오 왔쪄요! 뿌우우우! 베오가 왔어요! 뿌우우!”

시야를 가리던 흙먼지가 사라지고 나타난 것은 이상한 회색의 짐승, 아니, 괴물같은 어떤 생명체였다. 회색의 색도 이상했으나 귀는 하늘을 날아갈 수 있을 것처럼 커다랗고 얇았다. 게다가 가장 기괴했던 것은 그 코, 그 코였다.

“베오 왔쪄요! 뿌우!”

비올렛은 참, 세상이 넓다는 것을 깨달았다. 코로 자신에게 창과 검을 들이대는 전사들을 쓸어버린 그 생명체가 쿵쿵거리며 비올렛에게 다가왔다. 저 거대한 짐승은 해맑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문제는 저 크기가 너무나 거대해서, 저 긴 코를 신나게 흔드는 것만으로 집이 파괴되고, 나무가 우지끈 쓰러져버린다는 것이 문제였다.

“피아케! 뒤로 물러나라!”

어느새 다시 이쪽으로 다가온 이자카가 멀리서 소리쳤지만 짐승과 비올렛의 거리는 너무나 가까웠다. 아마 저것이 마음만 먹고 달려든다면 비올렛을 죽일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비올렛은 물러나기는커녕 말에서 내렸다. 말이 미쳤냐고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비올렛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도망간 사람들이 비올렛과 짐승을 번갈아 보았다. 그녀는 오히려 물러나지 않고 그 짐승에게 다가갔다.

“베오, 이제 다시 가버려.”

그러자 생명체가 뚝, 하고 발랄하고도 무자비한 긴코 휘두르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비올렛을 향해 다가왔다. 비올렛은 자신의 앞에 있는 코가 긴 동물을 보았다. 그 기다란 코가 비올렛을 탐색하듯 훑어보았다.

“피아케!”

이자카가 소리쳤으나 비올렛은 굳은 얼굴로 그 탐색을 받아들였다.

“와, 인간, 말이 통한다 뿌우우!”

“…….”

비올렛은 후우 하고 한숨을 쉬어 그 기다란 코에 손을 뻗었다. 긴 코가 콕콕 하고 비올렛의 손바닥을 찔렀다. 그 막대같은 코 끝부분에 두 개의 콧구멍이 벌름거리는 것이 보였다. 코는 비올렛의 손바닥을 뻡, 뻡 빨아들이는 느낌이 나 비올렛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 생명체가 비올렛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비올렛은 겁에 질렸지만 발들 디뎌 그 코 주름을 쓸었다. 짐승의 검은 눈이 장난기로 반짝이고 있었다.

“악!”

그 기다란 코가 비올렛의 허리를 휘감고 들어올렸다. 사람들의 경악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비올렛은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 생명체가 비올렛을 자신의 등에 태웠던 것이다.

“인간을 태웠으니 베오는 이제 얌전히 걸어야겠다. 뿌우우”

이 생명체는 또다시 경쾌한 걸음으로 길을 걸었다.. 이자카가 말을 타고 달려와 비올렛에게 내려오라는 듯 팔을 뻗었지만 비올렛은 고개를 저었다. 아마 비올렛이 내리면 이 제멋대로인 커다란 생명체는 다시 날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사람들이 길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카칸이 데려온 흰피부 여인이 신비한 힘을 지녔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었다.

그 동물, 코끼리는 아주 얌전하게 비올렛의 말을 잘 들었다. 결국 비올렛은 미쳐 날뛰는 코끼리를 신비한 힘으로 굴복시킨 여자가 되었다. 경외의 시선또한 익숙했던 비올렛은 애써 태연한 척 궁으로 들어갈 때까지 코끼리를 타야했다.

*

비올렛은 멍하게 궁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역시 편견에 휩싸여있음을 인정했다. 부족국가로서 국가를 이루었다 생각하여 문화가 그닥 발달하지 않을거라 생각했지만, 구자르트의 궁은 무척이나 훌륭했다. 대리석 사이사이로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크림을 짜놓은 듯한 둥근 지붕은 황금으로 둘러싼 듯 햇빛에 번쩍이고 있었다.

이자카를 마중나온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자기에게 날아와 꽂히는 것을 보았다. 특히나 여자들, 화려하게 치장한 여자들이 비올렛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품는 노골적인 적의에 비올렛은 그쪽에 시선도 주지 못했다.

“카칸, 저 여자분은.”

“카칸궁 내에 방을 마련하라.”

“무슨!”

“내 손님이다.”

사람들 사이에 술렁임이 일었지만 다른 언어를 말하고 있어서 이해할 수 없었다. 비올렛이 이자카를 보았지만 이자카는 비올렛에게 미소를 지으며 따라오라 했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아 그것이 이례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눈에 봐도 아그레시아의 왕궁과 확연히 다른 화려한 건축물들을 보던 비올렛이 궁 내부로 들어갔다. 비올렛이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궁 내부를 관찰하자 이자카가 그것을 보며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시종이 다가왔다. 이자카는 비올렛의 손목을 잡고, 시종이 안내한 곳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방에 거의 도달하자 이자카를 따르던 보좌관들과 시종들이 그들로부터 멀찍이 물러났다. 비올렛이 의아한 듯 눈을 깜빡였다. 이자카가 방 문을 열어주었다.

비올렛이 안내된 방은 커다란 창문이 인상적이었다. 더운 나라라서 그런 것인가. 구자르트는 대부분 나무 문을 열어놨으며, 자수정 구슬로 장식된 주렴과 투명한 커튼을 달아 그것을 내문(內門)으로 대신 썼다. 바닥은 카페트가 아닌 옅은 장미색의 대리석이 깔려 있었고, 벽도 아그레시아의 신전처럼 새하얀 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대리석이나 기둥마다 섬세하게 양각되어 있는 구자르트 양식의 문양은 무척이나 정교하고 아름다워 밋밋해 보이는 방은 화려해 보였다.

“마음에 드나 피아케? 들지 않으면 더 넓은 방으로 바꿔주겠다.”

그 말에 비올렛은 고개를 저었다. 방은 마음에 들었다. 따스한 바람이 귓가를 간지럽혀졌다. 달라진 공기를 몸소 느꼈다. 사르락 거리며 창문 쪽 커튼이 팔랑였다. 이자카의 배려 때문인지 방은 아담해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다.

“예뻐요.”

비올렛의 말에 이자카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비올렛의 얼굴이 사르르 어두워졌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것일까. 진정으로, 여기 살아도 되는 것일까? 비올렛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이자카가 비올렛에게 다가왔다.

“네가 있을 곳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된다.”

“정말로 마음에 들어요, 기뻐요 이자카.”

“기쁜 표정이 아니다.”

뚱해 보이는 얼굴에 비올렛이 피식 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던 이자카가 말했다.

“피아케, 그렇게 함부로 웃고 다니면 안된다.”

“네?”

“예뻐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비올렛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거 아는가? 저들이 물러난 이유?”

이자카의 말에 비올렛이 고개를 저었다. 이자카는 피식 웃으며 비올렛의 허리를 감쌌다. 그리고 자신의 허리를 숙여 비올렛의 귀에 낮게 속삭였다.

“네 몸을 취할거라 생각해서 그런거다.”

그에 비올렛이 몸을 움찔 했다. 그녀가 놀라서 이자카를 바라보자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피아케, 걱정하지 말아라. 나는 네가 여기 있다 해서 그 어떠한 것도 네게 강제로 요구할 생각은 없다. 그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원하는 대로 살면 된다. 노래 해도 좋고, 춤을 춰도 좋다. 책을 읽어도 되고, 잠을 자도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며 어떤 것도 해도 된다.”

“.......”

“물론 네가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건 자유다.”

“.......이자카.”

너무도 친절한 말에 비올렛이 무언가를 이야기 하려 했지만 이자카가 고개를 숙이며 비올렛의 어깨 위에 이마를 대었다. 부드러운 압력이 느껴지며 이자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게 마음을 주는 것도 자유다.”

============================ 작품 후기 ============================

예약아이템으로 글 씁니다. 잘 올라갔길 바라며.

오늘 1부 교정 끝냈어요! 수정사항 몇개가 더 있겠지만, 이제 큰건 끝나고 2부만이 남았네요.

다시한번 말하지만 후제꽃은 1,2부 먼저 출간됩니다.  헿

오탈자 지적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잘거니까... 바로 확인 못할거야...

생각외로 이자카 쓰는게 즐거워서 편수가 아주 약간 늘어날지도 모르네요 20화 후에 완결이라 했지만 또 30화 후에 완결일지도 모르는것.. 이거 출간예정일까지 완결은 나는 거신가... ㄷㄷㄷ..노력해보겠음다.

그리고 코끼리는.. 넘나 등장시켜보고싶었어여...

그동안 너무 무거운 분위기라 가벼운 편 한번 넣어봤습니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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