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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핀 제비꽃-186화 (179/208)

00186  꽃이 지다  =========================================================================

그때, 자신의 숙적인 말룸을 죽이고 새하얀 빛이 시야를 가득 채웠을 때, 그 아름다운 빛무리 안에서 비올렛은 자신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길을 느꼈다.

“고마워.”

다정한 손길, 익숙한 목소리. 비올렛은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여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말룸, 꿈속의 여자, 아나스타샤가.

“날 죽여줘서 고마워.”

아아. 이 여자는 자신에게서 죽기 위해 끊임없이 비올렛을 찾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어린 비올렛을 찾고 또 찾았던 것이다.

체자레의 말이 진실이라 믿었던 이유는 이곳에 있었다. 비올렛은, 그것이 진실임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나스타샤와 연결되어있던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비올렛이 자라는 세월 동안 끊임없이 비올렛에게 죽여 달라 애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어서도 안식을 찾지 못하고 영원하며 완전한 죽음을 원하는 아나스타샤. 아나스타샤는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비올렛의 미래라고.

*

비올렛은 오랜만에 음식을 먹었다. 십오일동안 제대로 영양을 섭취하지 않은 몸에 억지로 음식을 욱여넣자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으나 애써 음식을 넘겼다. 그에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자 비올렛은 그제야 자신이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참 저 사람들도 극진하구나.

그것이 세상을 구원한 사람에 대한 호의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비올렛이 당장이라도 허무신의 손길 하나에 말룸이 되어 그들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변할까? 비올렛은 여러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그녀가 이곳에서 떠나야 했다는 것이다.

린도는 분명히 체자레에게 진실을 들었을 것이다. 성도에 돌아오지 않고 수도로 간 것은 불안했으나 비올렛은 린도가 자신을 죽이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러했다.

떠나야 했다. 모든 것들로부터. 에셀먼드로부터. 마음이 아팠지만 그것이 맞았다. 비올렛은 자신의 연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의 아내가 되겠다는 행복한 미래가 어그러졌음에도, 생각보다 원통하지는 않았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그랬다. 원래 그래야 했던 것 같았다. 애초에 그저 그런 그녀의 인생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는 평범한 인생을 사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떠난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그는 비올렛을 붙잡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가 단호한 태도를 취하면 에셀먼드는 두 번 다시 비올렛을 잡지 않을 것이다.

모두에게 진실을 말하고, 이 나라에서 사라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아나스타샤가 영생을 살 수 있다면, 그녀 역시 꽤나 오랫동안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아까까지 원망하던 원망의 마음은 사실 사그라든지 오래였다. 얼마동안 살아오며 비올렛은 많은 인연을 만들었다. 물론 그들중 악연은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어떠한 죄도 없었다. 하녀임에도 비올렛을 살뜰히 보살펴주던 앤, 그녀를 친동생처럼 생각하는 에이든, 친한 친구인 시수일레, 비올렛을 잘 따르는 시녀 리체. 비올렛을 스승이라 부르며 꼬박꼬박 따랐던 샤를, 비올렛이 웃는 게 제일 좋다는 린도. 그리고 그녀가 사랑하는 에셀먼드.

그래도 얼마동안 세상이 비올렛에게 꽤나 다정했던 것은 사실이니, 그녀는 그들의 애정을 가지고 살아가라 했다. 체자레는 틀렸다. 모든 이들에게 잔인하게 배신당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분명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 존재했다. 그녀의 세상은 이토록 잔인했지만, 그녀가 사랑하는 이들의 세상은 아름다워야 함이 옳았다.

그래, 이제 이 나라를 떠나면 된다. 린도와 샤를에게 진실을 고하고 에셀먼드에게 작별인사를 해야겠지. 머리는 멍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는 차곡차곡 정리되어가고 있었다. 린도와 샤를은 비올렛을 죽이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올렛은 그것을 힘겹게 되뇌고 있었다. 그들이 그럴 리가 없었다.

이 나라를 떠나서 어떻게 해야할까. 좋아하는 바다도 보고,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는 것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본다면 어쩌면 세상을 사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나스타샤가 긴 세월을 살며 버텨냈던 것처럼 비올렛도 그리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짧은 시간이나마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분에 넘치도록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래, 사실 그것만으로도 비올렛은 세상을 사랑할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이젠 더 바랄 것도 없었다.

어차피 매년마다 해왔던 것이다. 비올렛은 이미 그를 몇 번이고 포기했었다. 세속의 연을 끊고 신전에 갔을 때도, 모든 진실을 알고 가디언 계약을 해지했을 때도. 그리고 지금. 그리고 이제 정말 그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주 조금, 긴 세월을 혼자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이것 역시 그를 지키는 방법이라 생각하자 비올렛의 마음은 가벼워졌다.

수도에 갈 채비가 완료되자 비올렛이 방 바깥을 나섰다. 비올렛은 오랫동안 방을 둘러보았다. 그들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이곳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바로 떠나야 할지도 몰랐다.

“성하께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연락이요?”

“곧 수도에서 내려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요? 기다리라고 전하세요. 곧 만나러 간다고.”

그 말에 로디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케이든 경이 웃으며 말했다.

“아, 성녀님. 에셀먼드 경이 공작 성까지 쫓아왔다는 것을 아십니까?”

“네?”

비올렛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로디온이 케이든을 서늘하게 노려보았다. 비올렛의 심장이 쿵쿵하고 뛰었다. 그가 비올렛을 쫒아왔단 말인가. 그러나 그것에 대한 기쁨과 설렘보다 비올렛의 마음에 있는 것은 불안함이었다.

“성녀님이 돌아가신지 하루정도 지나서 에르멘가르트 후작이 공작성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케이든이 비올렛의 기운을 차리게 하려고 했던 말이었으나. 비올렛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에셀먼드 경이 공작성에 갔다고?

“경은 성하와 수도로 돌아가신 듯 합니다. 아무래도 성하가 단단히 화가 나서……. 수도로 끌고가신 게 아닐까요?”

케이든 경이 비올렛을 향한 농담이랍시고 했지만 비올렛은 웃지 않았다. 왜? 에셀먼드가 왜 공작성에 찾아왔단 말인가? 아니,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비올렛을 찾아올 수도 있었으니까. 어떻게 된 일인가. 설마 에드가 체자레와 만난 것이 아닐까? 진실을 알게 된 것이 아닐까? 만약 진실을 알게 되었다면, 그렇다면 왜 비올렛을 만나러 오지 않은 것일까? 만약 진실을 모른다 하더라도 애초에 비올렛을 쫓아 공작성에 간 것이라면, 왜 비올렛을 쫓아오지 않았던 것일까.

“성녀님?”

침묵에 잠겨있던 비올렛에게 로디온이 재촉하듯 물었다. 비올렛은 정신을 차리며 마차를 대령하라 명했다. 머릿속이 심란했다.

*

수도로 향하는 짧은 여정동안 비올렛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리체가 옆에서 비올렛을 향해 걱정의 시선을 보냈으나. 비올렛은 뜬눈으로 몇 번이나 밤을 지새야했다. 그러고 보니 보름이 지났어도, 에셀먼드에게서는 연통하나 없었다. 원래 그가 편지를 보내는 성격이 아님이 알고 있음에도 열흘이 넘도록 연락이 없다면 무언가가 이상했다.

비올렛은 불안했다. 여러 복잡한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했다. 수도가 가까워 오자 불안감이 더욱 마음을 옥죄였다.

그때 마차가 멈추었다. 수도 내부로 들어가는 관문에서 검문 때문에 멈추는 듯 했다. 어차피 신전의 문양이 찍힌 마차였으니 검문은 쉽게 통과 될 것이었다. 비올렛은 자신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비올렛은 자신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언성이 높아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스릉, 하며 칼이 뽑히는 소리도. 그녀는 깜짝 놀라 마차 안 커튼을 열었다. 눈앞에는 왕실기사단의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말을 탄채로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비올렛이 마차에서 내렸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사람들이 일제히 비올렛을 보았다. 비올렛은 이 상황이 믿겨지지 않았다. 외성의 수비는 기사들이 아닌 병사들이었고, 전시가 아니면 소수의 기사들만이 외성에 근무했다. 하지만 이들은 지나치게 많았다. 그리고 왜 저 검을 든 사람들이 비올렛을 향하고 있는 것인가. 성기사들이 험악한 분위기에 검을 빼들고 있었다.

“성녀님.”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비올렛이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자 칼츠 경이 서 있었다. 분명 그녀와 자주 보았던 기사중 하나였다. 칼츠 경은 찝찝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굴을 찌푸린 그가 내키지 않는 얼굴로 입술을 열었다.

“폐하께서, 국외 추방령을 내리셨습니다.”

그 말에 비올렛은 무언가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국외 추방령’이라고? 나라 밖을 떠나란 말인가? 그 말에 납득하지 못한 성기사들이 발끈 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성녀님을 국외추방이라니!”

“성하께서도 동의하신 바입니다.”

케이든이 비올렛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옆에 있는 로디온 경에게 다가가 문서를 건넸다. 한눈에 보기에도 금방이라도 분노를 터트릴 듯 일그러지던 그의 얼굴이 그 종이를 보자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비올렛을 한번 바라보더니, 내키지 않은 듯 한숨을 쉬며 성기사들을 보고 말했다.

“성하의 명이시다.”

“로디온 경!”

“경!”

성기사들이 반발했다. 하지만 로디온 경은 단호한 표정이었다. 비올렛은 이들의 변모를 믿을 수가 없었다. 린도 역시도 이 일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성하께서 명을 내리셨습니다. 성녀님. 나라 바깥으로 나가주셔야겠습니다.”

비올렛이 그들을 보며,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연유가 무엇입니까.”

그 말에 케이든이 말했다.

“그 이유는, 성녀님께서 더 잘아시리라 믿는다고 하셨습니다.”

샤를과 린도는 비올렛을 죽이지 않았다. 그래, 그들은 비올렛을 죽이지는 않았다.

“이렇게 되어 유감입니다 성녀님.”

그러나 버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

비올렛은 아그레시아의 국경에 서 있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것은 꽤나 많은 양의 보석이었다. 그러나 지금 비올렛은 멍하게 서 있었다. 그녀는 수도에 발걸음도 하지 못한채 쫓겨났다. 심지어 수도에서 쫓겨난 것이 아닌, 열 여덟해동안 살았던 자신의 고국에서 쫓겨난 것이다.

왜? 라는 물음이 쓸모없다는 것은 잘알고 있었다. 비올렛은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알았으니. 그들은 비올렛을 죽이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추후 말룸이 될 비올렛의 위험성을 경계해서 나라 바깥으로 추방해버린 것이다. 체자레에게 들은 비밀을 린도가 샤를에게 말했다는 것을 가정하면, 샤를이 내릴법한 결정이었다.

비올렛은 사람이 사라진 국경에서 그저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아직도 자신의 운명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운명을 이미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샤를루스와 린도가 정말로 그런 것일까? 그녀는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아그레시아의 국경을 바라보았다. 기사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녀가 들어가려 한다면 여지없이 무력을 써서라도 그녀를 쫓아낼 것도. 순간 성력이라도 써서 들어갈까 싶었지만 성력을 쓴다면 사람들은 더 방어적으로 나올 것이고, 비올렛 역시도 말룸이 되는 시기가 가까워질 것이다. 안된다. 말룸이 되면, 많은 사람이 다치지 않은가. 이 와중에도 자신들을 둘러싼 사람을 생각하는 자신의 성격에 자조가 나왔지만, 비올렛은 에셀먼드를 생각했다.

세상이 멸망해도 그를 위해 살기로 다짐하지 않았던가. 오히려 샤를이 쫓아내준 것이 더 좋을수도 있었다. 그의 얼굴을 봤다간, 결국 그를 떠나지 못할지도 모르니, 잘된 것이었다.

비올렛은 자신이 걸어가야 할 수풀을 바라보았다. 이곳이 어디인지는 몰랐지만 아그레시아와는 멀어져야만 했다. 그저 조금 일이 쉽게 된 것 뿐이다. 비올렛은 몇 번이고 되뇌었다.

어찌되었든 비올렛을 소중히 여겼던 사람들이다. 그 마음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비올렛은 한숨을 내쉬며 길을 걸었다. 그녀의 키와 같은 풀을 헤쳐 지나가자 메마른 땅이 보였다. 불안함을 느낀 비올렛이 발걸음을 떼고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풀들이 드문드문 나 있었다. 그리고 어느순간 그녀는 멈추며 숨을 들이켰다.

햇빛에 빛나는 모래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 광활한 모래의 땅을 보며 비올렛은 그것이 ‘사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황량하고 건조한 땅은 본적이 없었다. 비올렛은 직감적으로 이곳에 생명이 얼마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저곳을 갔다간 분명히 고생할 것도. 물도, 음식도 없다. 그저 남아있는게 금화와 보석뿐인 비올렛은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문득 아그레시아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녀는 이윽고 자신이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차피 모래로 된 곳이다. 조금만 지나면 무언가가 나오겠지. 아니면 모랫속에 파묻혀 죽어버렸으면. 혹시 아는가. 그녀를 가엽게 여긴 허무신이 그녀를 죽여줄지.

숨을 들이마쉬고 모래에 발을 들이자 땅이 푹 꺼지며 비올렛의 발목을 잡았다. 생각보다 모래에 발을 디디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하물며 치마에 구두를 신었다는 것도 한몫했다. 태양이 따갑게 비올렛읠 얼굴과 팔을 내리쬐었다. 그녀는 금방 목이 말랐다. 그제야 비올렛은 사막에 갈때는 물이 필수라는 것을 기억해 냈다. 한 번도 이곳에 온 적이 없어서 몰랐던 것이다. 사막이라는 지형에 관한 서적을 찾아보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비올렛이 배웠던 것은 아그레시아의 정치와 지형에 관한 것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우물안 개구리였는지 깨달았다. 비올렛은 다시 샤를과 린도에 대해 생각했다. 문득 그들에 대한 원망이 울컥, 하고 올라왔으나 비올렛은 그 마음을 가라앉혔다.

샤를과 린도의 생각은 너무나 타당했다. 아니, 오히려 온정을 베푼 것이었다. 차라리 비올렛을 죽였다면, 그녀의 시신이 움직이지 못하니 앞으로 다음 성녀가 나올때까지 그만한 기간이 생긴다. 그러나 살아있는 것은, 언제 그녀가 신을 저주해서 말룸이 될지도 모르니 상당한 위험부담을 내포했다.

그들이 좋은 마음으로 그녀를 추방했을리는 없었다. 얼굴을 끝까지 내비치지 않았던 것도 그런 연유에서 였다. 마음약한 그들이 비올렛에게 그리할 수는 없었던 노릇이었다. 샤를은 ‘왕’으로서, 린도는 ‘교황’으로서 타당한 선택을 한거다. 그렇지만.

“…….”

그렇지만, 왜 시야가 이렇게 흐리단 말인가. 비올렛은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운다는 행위를 하고자 함이 아님에도, 코가 시큰해지며 눈물이 저절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비올렛은 계속 사막속을 걷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이 무자비한 태양은 그녀의 눈물마저 금방 말라버리게 만들었다. 건조한 모래가 휘몰아치며 비올렛은 사막 안으로, 안으로 걸어갔다. 발밑의 모래가 푹푹꺼져 그녀의 발을 잡았다. 뜨거운 모래가 비올렛의 발을 익혀버릴 듯 뜨거웠다. 그녀가 입고 있던 하얀 성복은 모래에 더러워진지 오래였다. 비올렛은 끝이 없는 황량한 대지를 걷고 또 걸었다. 그녀의 눈물을 품은 모래에서 서서히 새싹이 돋아났다. 그러나 비올렛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어딘지 모를 아득한 사막의 끝을 향해 걸었다.

그때 하늘 위에서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햇살이 대지 위에 검은 새의 그림자를 그렸다. 매인가, 그녀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머리 위를 맴돌고 있는 새를 보았다.

“여기다! 여기다! 여기다! 여기다! 여기다!”

“……무슨”

“여기다! 여기다! 여기다! 여기다!”

제 주인을 향해 목청을 높이는 매의 소리를 무시하며 걸으려 했지만 매는 그녀의 걸음을 따라 계속 소리쳤다. 분명 다른 이들에게는 날카로운 공격의 음성으로 들릴 매의 울음소리는 비올렛의 귀에 그 실체를 드러냈다.

“시끄러!”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저 가만히 있겠다는 것이다. 그저 떠나겠다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모든 것을 지고 사막 안에 발을 디뎠다. 왜 이 시간마저 방해받아야 하는가.

“여기다! 여기다! 여기다! 여기다!”

“시끄러워! 닥쳐!”

비올렛은 매를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그녀가 돌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던져 쫓아버리고 싶다고 생각할 즈음이었다.

푹!

그녀의 발치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바람에 흙먼지가 가득 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서 휘어진 곡도를 휘두르며 처음 보는 동물을 탄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뛰어 오는 것이 보였다. 그제야 비올렛은 저 매가 사람에게 훈련된 매라는 것을 깨달았다. 빌어먹을 모든 것들은 잠시도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이제 모든게 다 싫었다.

그녀는 지쳐있었다. 피하고 싶었다. 이젠 그만 하고 싶었다. 저들을 피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려던 그녀는 제 발이 무언가로 묶여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힘을 주면 줄 수록 줄은 그녀의 발을 옥죄여왔다.

비올렛이 자신의 품에 단도가 있나 찾으려는 순간이었다. 남자 중 한명이 빠른 속도로 그 짐승을 몰아 달려오더니 그녀의 허리를 낚아 자신이 탄 짐승 앞에 앉혔다. 갑작스레 벌어진 일에 비올렛이 본능적으로 발버둥을 쳤지만 남자는 그녀가 버둥거릴 수록 그녀를 잡아 챈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붉게 충혈된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정말 끔찍하게도 가만 놔두지 않는구나. 그녀의 몸에 성력이 둘러지기 시작할 때였다.

“피아케, 그만때려라. 아프다.”

비올렛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발버둥을 멈추었다. 비올렛이 위를 올려다 보자 남자가 두건을 벗었다. 구릿빛 피부 안에 있는 녹안이 보였다. 어쩐지 긴장이 탁 풀렸다.

“이자카?”

비올렛이 깜짝 놀라 그의 이름을 불렀다. 너무나 기가 막힌 우연에 그녀는 치밀어 오르던 짜증도, 분노도, 슬픔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래 나다.”

마치 확인시켜 주듯, 이자카는 웃으며 말했다.

“여긴 어떻게……”

“사막까지가 우리 국경이다.”

아, 그래. 사막은 구자르트 쪽이었다. 비올렛은 그제야 조금 정신을 차렸다.

“너, 아그레시아 바깥에 나와있다.”

이자카가 말했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비올렛이 물어보려 했지만 이자카가 비올렛의 허리를 끌어 자신의 앞에 밀착시켰다.

“이젠 내가 주운거다.”

“잠깐!”

비올렛은 이자카가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알아서 버려주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굳이 약탈할 필요도 없었겠구나.”

“안 돼요 이자카! 저는!”

“난 공용어를 모른다.”

“이자카!”

지금 이게 무슨 말이야! 공용어를 모른다는 말을 공용어로 말하고 있으면서! 비올렛이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남자는 막무가내였다. 비올렛이 발버둥쳤지만 남자는 그 모른다는 공용어로 그만때려라, 아프다는 말을 하며 동물을 몰았다. 말이 데려간 것이지 사실 그녀의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납치나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비올렛은 예상치 못하게 구자르트로 끌려가버렸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이자카 납치! 이자카만 나오면 분위기가 택없이 밝아짐.

긴 장문의 코멘트, 단문의 응원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정말로 글이 미워졌었는데. 여러분들덕에 힘이 솟아나요. 오랜만에 비축도 마련해 놨어요. 지금 따라와주신 분들은 이제 무슨일이 벌어져도 절 따라와주시리라 믿습니다.

믿

요.

추천!! 코멘트 부탁드립니다!! ㅑㅋ캬캬캬캬캬

사실 이자카는 넘나 재밌어서 1919드립넣다 지우고 별 생쇼를 다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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