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원에 핀 제비꽃-180화 (173/208)

00180  꽃이 지다  =========================================================================

비올렛은 시수일레의 수다를 들어주고 있었다. 예전 비올렛은 시수일레의 수다가 귀찮다고 생각했으나, 신기하게도 지금은 별로 거슬리지는 않았다. 비올렛이 외국 대사들과의 만남 때문에 대신전이 아닌 궁전에 며칠동안 묵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시수일레가 찾아왔다. 시수일레는 연신 에이든에 대해 재잘거리고 있었다.

“결혼식 때 드레스는 새하얀 옷은 재미없어. 그래서 에이든을 닮은 사파이어를 곱게 가루내어 드레스 위에 은은하게 뿌리게 할 거야. 그러면 햇빛에 드레스가 푸르게 보이겠지?”

시수일레는 그야말로 새신부의 모습이었다. 이번 여름도 아닌, 내년 여름에 벌어지는 결혼식에 벌써부터 가슴 설레하는 것은, 라이셀 백작이 본격적으로 에이든과 시수일레의 결혼을 허락해 혼사를 추진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거 예쁘겠네.”

비올렛의 말에 시수일레가 헤헤, 하고 미소를 지었다. 시수일레가 비올렛의 손을 잡고 비올렛에게 말했다.

“그래서, 후작님은 어때?”

“응?”

갑작스럽게 찾아와 에이든에 대해 하소연, 칭찬, 그리고 결혼식 준비에 대한 이야기만 들어주고 있던 비올렛은 예상치 못한 시수일레의 질문에 깜짝 놀랐다. 비올렛은 시수일레를 보았다. 언제나 순진해 보이던 시수일레가 묘한 웃음을 띠고 비올렛을 보았다. 비올렛은 처음으로 라이셀 백작부인의 딸이 시수일레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 묘한 미소는 백작 부인이 자주 짓던 표정이었던 것이다.

“후작님이랑 찐한 사이 아니었어?”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비올렛, 정말 거짓말 못하는구나?”

비올렛은 자신이 시수일레를 얕봤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수일레는 이런 쪽에 눈치가 빨랐던 것이다.

“후작님 얼굴 말이야, 너랑 성하와 이야기만 나누고 있어도 후작님 얼굴에서 불꽃이 튀는걸?”

“그게 보이니?”

비올렛이 보기에는 똑같은 얼굴일 뿐이었다. 불꽃이 튀기는! 그저 못마땅한 듯 힐끗 비올렛을 보는 것을 어떻게 봐야 불꽃이 튀긴다는 것인가!

“내 눈엔 다 보여. 우와, 후작님도 그렇게 질투를 하는구나.”

“…….”

비올렛의 두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타인이 에셀먼드의 질투에 대해 말하자 어쩐지 민망했다.

“고백하고 마음이 막 통한거지, 그런 거지?”

“시스.”

“이야기 해주라, 후작님은 어떻게 고백했니? 빨리 말해봐! 나도 이야기 해줄게!”

에이든이 어떻게 시수일레에게 고백을 했는지 따윈 비올렛은 별로 듣고싶지 않았다. 비올렛은 고개를 저었다.

“응? 응?”

시수일레가 계속 졸라댔다.

“아니면 후작님한테 직접 물어볼 거야.”

“시스!”

“진짜야, 내가 설마 못할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비올렛이 뭐라고 소리치려 하자 시수일레가 말했다.

“에이든이 그랬다? 후작님이 의외로 물어보면 다 대답해 준대. 후작님이 무서우니 아무도 그렇지 않아서 문제지만. 그런데 나도 이제 가족이 될 건데, 알려주지 않겠어?”

비올렛은 그 말에 시수일레가 호기심이 반짝 거리는 눈으로 에셀먼드에게 ‘어떻게 비올렛에게 고백하셨어요?’ 말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난감해 하는 에셀먼드의 모습도. 그리고 가여운 이 남자는, 또 에이든과 시수일레에게 놀림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가르쳐 주라 비올렛.”

비올렛은 그 말에 침묵을 지켰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비올렛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비꽃.”

“응?”

“제비꽃을 심어서 고백했어.”

“와, 제비꽃이 비올렛의 이름이니까?”

그러고 보니 비올렛의 이름은 제비꽃이었다! 그걸 후작가에 심었다니, 후작가 후원 전부 다 ‘비올렛’으로 도배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면 굳이 꽃말이 아니더라도 제비꽃은 에셀먼드의 마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던 것이었다. 왜 그걸 여태껏 몰랐는지, 비올렛의 얼굴이 확, 하고 달아올랐다.

“아, 아니, 보, 보라색 제비꽃의 꽃말이….좀 낭만적인가봐.”

차마 보라색 제비꽃의 꽃말을 말할 수 없었던 비올렛은 애써 뭉뚱그려 말했다. 시수일레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호들갑을 떨줄 알았더니? 그 고백방법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던 걸까, 시수일레를 바라보니 시수일레의 두 뺨 역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시스?”

“후작님 너무 멋있다.”

“…….”

“너무 낭만적이야, 세상에.”

벌겋게 물든 두 뺨을 볼로 감싼 시수일레는 잠시 넋이 나가있는 것 같았다.

“그러는 너는, 에이든이 어떻게 고백했는데?”

그러다 시수일레는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다물었다.

“말 안할 거야.”

비올렛은 기가 막혔다. 시수일레는 심통이 난 듯 입술을 툭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굳이 알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손해본 기분이었다. 굳이 비올렛이 조르지 않자 비올렛의 눈치를 힐끔 보던 시수일레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이제 비올렛은 떠나는거야?”

“응?”

“아버지가 말하기를, 에이든이 다시 작위를 물려받게 될거라는데?”

“…….”

비올렛은 입을 다물었다. 에셀먼드는 벌써 그것까지 준비해 둔 것이구나. 어차피 물려줄 자리라면, 다시 에이든에게 물려줄 것이 옳았다.

“낭만적이다, 진짜로!”

시수일레가 해맑게 말했다. 그것을 본 비올렛은 그게 과연 낭만적인 일인지 생각에 잠겼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비올렛을 선택하겠다고 단언했다. 그것이 과연 낭만적일까, 끝까지 그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모든 것에 벗어나, 자신의 의무를 에이든에게 떠넘기게 되는 그가 후회하지 않을까? 비올렛은 알 수 없었다.

“아, 시스, 그런데 어떻게 네가 에이든과 결혼할 수 있게 된 거니?”

비올렛의 물음에 시수일레가 음, 하며 말하다 얼굴을 붉혔다.

“자, 자식을 많이 낳으면 된대.”

“뭐?”

“그, 그 이상은 물어보지 마!”

비올렛은 그것이 몹시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때가 되면 알 사실이기에 묻지 않기로 했다.

*

축제가 끝나고, 성녀와 말룸에 대한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초상화도 이미 초본이 완성되었고, 비올렛의 석상역시 제작이 될 예정이었다. 열기가 식자, 비올렛이 할 일 역시 자연히 줄어들게 되었다.

“스승님, 차 맛이 어떻습니까?”

“새로운 맛이네요, 맛있어요. 찻잎을 가루내어 우유와 섞는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맛이 더 부드러운 것 같아요.”

“그렇죠?”

샤를과 비올렛이 차를 마시며 행복한 미소를 짓자 린도가 뚱한 표정으로 입술을 내밀며 말했다.

“성도에서 꼭 이거랑 똑같은 차를 내오라 할게.”

린도는 성도에 없는 차가 수도에 있다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하는 것 같았다. 빤히 보이는 그 감정에 샤를과 비올렛이 서로 눈치를 보며 킥킥 웃었다. 뾰루퉁한 표정을 지은 린도 역시도 차 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홀짝이며 불만에 찬 시선으로 샤를과 비올렛을 쳐다보았다. 너무나 드물게도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비록 그들의 시간 역시도 누군가의 시중과 보호가 필요했기에 시종과 호위기사들이 서 있었지만, 그들은 지금의 이 시간에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었다. 비올렛은 호위기사로 서 있는 에셀먼드를 보고 싶었으나, 왠지 모르게 호위기사들을 등지는 자리에 앉게 되어서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이제 곧있으면 여름이 다가오겠군요.”

“그러게요.”

봄을 알리며 피어나던 꽃들도 서서히 꽃잎이 져 떨어지고, 이제 나무를 장식 하는 것은 오색의 꽃이 아닌, 녹색의 나뭇잎이었다. 그에 린도와 비올렛이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어라, 두 분 다 왜 그러십니까?”

한숨을 쉰 비올렛과 린도도 놀라서 서로를 동시에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 둘은 한숨을 쉬었던 이유가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올렛과 린도가 동시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 샤를이 불안한 얼굴로 아까부터 곁에 서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에셀먼드를 바라보았지만. 에셀먼드를 등지고 있던 비올렛은 샤를이 누구를 바라보는지 보이지 않았다.

“여름이 생명들의 소리를 여과 없이 들어야 하는 게…….”

“맞습니다.”

여름은 생명들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시기이다. 여름은 더운 날씨 때문에 보통 창문을 열어놓는데, 생명들이 우는 소리는 비올렛에게는 언어로 들리기 때문에 비올렛은 초여름에 진입하면  전에 잠을 못자는 고통스러운 적응기를 겪고는 했다. 그것은 린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두분 다 뛰어난 성력을 가지고 계시니 그런 모양이군요.”

샤를이 흥미롭다는 얼굴로 그 둘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린도도 비올렛도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런데, 본디 성력을 가지면 동물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그 말에 린도와 비올렛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런 것은 따로 생각하지 못했다.

“성력이 가장 강한 게 성녀니, 이론적으로는 성력이 가장 높으면 성녀님처럼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린도가 비올렛이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답을 말했다. 샤를은 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저도 성력을 연마하면 그렇게 되는 걸까요?”

그의 눈빛이 초롱초롱한 것을 봐서, 샤를은 동물과 대화하는 것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듯 했다. 린도와 비올렛은 고개를 갸웃했다. 샤를이 성력을 연마하면 동물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이것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영역이었기에 비올렛은 확답을 내리지 못했다.

“어,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아그레시아의 왕족은 어느정도 성력이 있다고 하니, 뭐……”

그 ‘아버지’라는 말에 샤를과 비올렛의 얼굴이 굳었다. 린도 역시 자신이 체자레에 대해 말을 꺼냈다는 것을 알고 표정이 굳었다. 그들 사이에 정적이 자리했다.그 불편한 침묵을 깬 것은 샤를이었다.

“공작과 안부를 주고받으십니까?”

그 조용한 말에 린도가 고개를 저었다.

“제 편지에 답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군요.”

샤를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차를 바라보았다.

“폐하.”

린도가 샤를을 보고 말했다.

“다음 주 중, 성도로 내려가는 길에 은밀히 공작령에 찾아갈 생각입니다.”

샤를은 눈을 크게 떴다. 교황파의 거두로 활동했던 체자레를 교황이 찾아간다는 것은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혹 이 일을 대신들이 알게 된다면 다시 국왕파와 교황파의 대립을 일으키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만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샤를이 다정하게 말했다. 린도는 그 말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체자레. 다시 심장이 두근거렸다. 린도는 비올렛에게 굳이 갈 필요가 없다 말했었다. 모든 게 끝나고 의무까지 끝났는데 굳이 그를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모두가 나를 궁금해 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나를 궁금해 하는 것만큼 저도 저에 대해 잘 모릅니다.”

모든 일이 끝났지만 린도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았다. 그의 어머니는 누구인가, 왜 그는 나이를 먹지 않는 소년이었는가, 왜 체자레는 그를 교황으로 내세웠는가. 문제는 그것을 린도 자신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린도는 다섯 살 때 교황위에 올라 어린 나이로 신전에 유폐되다 시피 했다. 모든 진실에 대한 의문점은 나중에 ‘성녀가 올 것이다’라는 체자레의 말에 막혀버렸다.

린도는 이제 진실을 마주하러 간다. 비올렛은 린도의 얼굴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비올렛도 그에게서 알아내야 할 진실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을 외면해도 되는 것일까. 비올렛의 가슴이 불안하게 두근거렸다.

*

호출을 받은 에셀먼드가 왕궁에 나타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곳으로 걸어가던 복도에서 거울과 마주한 그는 자신의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그곳으로 가는 걸음걸이는 생각보다 길어서 그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똑똑, 하는 노크소리와 함께 들어오라는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테라스에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올렛은 에셀먼드를 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어서 와 앉아요, 에드 경.”

그를 만나고 싶다 한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이곳에 와준 그의 모습을 보고 비올렛의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정중한 인사 후 에셀먼드가 미리 마련되어 있는 소파에 앉자 비올렛 역시도 그의 건너편에 앉았다.

차를 직접 내겠다며 시녀들을 물렸기 때문에 비올렛과 에셀먼드는 방 안에 단둘이 앉아 있었다. 에셀먼드의 짙은 푸른 눈이 비올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호출 한시간만에 온 주제에, 에셀먼드는 얄밉게도 귀족적인 몸짓으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어쩐지 그 모습이 여유로워 보여 비올렛은 속으로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러나 그 모습조차도 비올렛에게는 가슴벅찰 정도로 근사했기에 비올렛은 서운함을 참기로 했다.

“비가 올 건가 봐요.”

열어놓은 창문 너머로 습진 바람은 비가 내리기 전 특유의 비릿한 내음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정오가 겨우 지났음에도 꼭 새벽녘처럼 세상은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우르릉 거리는 소리와 함께 먹구름이 품은 번개가 이따금 번쩍였다.

비올렛이 꺼낸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에셀먼드는 비올렛을 보고 있었다.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그 시선에 비올렛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호출의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비올렛은 혹시라도 에셀먼드에게 누가 될까, 그를 함부로 따로 부른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처음으로 에셀먼드를 호출했다. 에셀먼드가 그 호출에 빨리 응했던 것은 비올렛을 보기 위해서도 있지만, 그녀가 그를 호출한 것은 거의 없었던 일이기에 그러했던 것이다.

“보고 싶어서요. 그렇게 말하면 안 될까요?”

“비올렛.”

그 딱딱한 말에 비올렛이 웃었다. 그러나 에셀먼드에게 그 말은 통하지 않았다.

“제게 에드라는 이름을 언제나 부르게 해준다 하셨죠?”

그 말을 하자 에셀먼드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무엇을 예감하기라도 하는 것 같은 얼굴로 비올렛을 보았다. 그때 마침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토독 거리는 소리가 고요한 방안을 울려퍼졌다.

“그렇습니다.”

에셀먼드의 대답에 비올렛이 행복한 얼굴로 환하게 미소지었다. 그 미소에 그가 한결 편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비올렛이 말했다.

“경의 계획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에드.”

“…….”

“내일 린도를 따라 티게르난 공작령으로 갈 생각입니다.”

그 말에 에셀먼드의 푸른 눈이 서늘한 빛을 머금었다. 예상과는 한치도 벗어나지 않은 반응에 비올렛이 쓰게 웃었다.

“이제 성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이고, 모든 것이 끝날 예정이에요. 모든 것이 끝나기 전,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밝혀진 진실만으로도 충분한데 말입니까?”

그 말에 비올렛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내려놓는 이 자리가 어떤 비밀이 있는지,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는지 모든 것을 알아야 겠어요. 그래야 진정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가 있다고 생각해요.”

비올렛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단호한 힘이 있었다. 에셀먼드의 시선을 피해 비올렛이 비가 내리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처음에 린도가 혼자 가겠다 했을때는, 그렇게 두고 싶었다. 비올렛은 행복했고, 그 행복을 깨고 싶지 않았다. 이것으로 충분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비올렛은 자신 앞에 있는 진실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진실을 알기 전까지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니었다.

“나는 지금 성녀에요.”

비올렛은 아직 성녀였다. 그리고 체자레가 알고 있는 일기장의 진실, 그 진실에 다가가야 한다 생각했다. 에셀먼드와 함께하며 그녀의 인생은 최고로 찬란하게 빛이 났다. 그녀가 품은 행복은 너무나 달콤해,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하지 않은, 일시적인 행복이었다.

그녀는 그 달콤한 행복을 누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밝혀지지 않은 진실에 대해 평생 생각할 것이다. 어렸을 적과 똑같았다. 체자레는 그녀가 모르는 진실이 있음을 암시했고, 그 진실을 알려하지 않는 이상, 그녀는 ‘기만의 탑’위에 살아가는 것이었다.

비올렛은 진실을 갈망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조금 더 당당하게 그 진실과 마주하고 싶었다.

비올렛은 체자레를 알고 있었다. 1년이 못되는 기간이었지만, 비올렛은 그 누구보다, 심지어는 린도보다 체자레를 가까이서 보고 있었다. 비올렛은 체자레가 두려웠으나, 그가 정말로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이 되지는 않았다. 그는 때로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담은 채 슬픈 얼굴로, 동정하는 시선으로 비올렛을 보았던 것이다.

체자레는 비올렛을 상처주며 누구보다 비올렛이 입을 상처와 슬픔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왜 체자레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몰라도, 비올렛은 성녀로서 자신을 둘러싼 진실을 알아야만 했다.

에셀먼드는 서늘한 얼굴로 비올렛을 바라보았다. 그런 반응을 보일줄 알고 있었다. 비올렛은 자리에 일어나 천천히 에셀먼드의 곁에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옆에 앉아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비올렛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고 대신 비올렛의 손을 꽉 쥐었다.

“꼭 그러셔야 합니까?”

에셀먼드가 물었다.

“네.”

비올렛이 대답했다. 그것은 처음으로 비올렛이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그리고 모든 진실을 알고, 완벽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비올렛은 쇼파에 손을 짚고 무릎으로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에셀먼드의 얼굴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까슬한 그의 입술의 감촉이 느껴졌다 입술을 뗀 비올렛은 아주 가까이서 그의 얼굴을 보았다.

“모든 걸 버리고, 당신의 옆에 평생, 함께할게요.”

“……”

에셀먼드가 두 팔을 뻗어 비올렛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 창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더욱 거세졌으며 빗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비올렛은 에셀먼드의 따스한 품을 느꼈다. 옷을 입었음에도 그의 품은 뜨거웠고,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가 옷 너머로 느껴지는 것 것 같았다. 세찬 빗소리는 그들과 세상을 분리시켰으며, 그들은 금방 사라져 버릴 그 세상속에서 한참동안 서로의 존재를 깊이 느꼈다. 에셀먼드는 한참동안이나 그녀를 안은 팔을 풀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다음편 부터 4부 본격 시작이네요. 여러분들이 달달을 얼마나 소중하는지 직접 눈으로 목격한 저는 너무나 기쁨니다.

후제꽃이 이제 드디어 로판이라 불려서 제가 얼마나 기쁜지.. ^.^..

비록

고구마물->발암물->성장물->멘붕물->공포물->좀비물->전쟁물->추리물->배틀물->이제야로판(NEW!)

이렇지만 뭐.. 로판이 들어갔으니 로판 아니겠습니까? 헤헿

1. 이벤트 상품 발송되었는데 받으신분들 어떤가요? 다들 소식이 없는거시다.. 잘 간건가... 내 음식에 탈나지는 않은거신가..(이럴줄알고 아이스팩을...넣어서...포장해서...)

2. 스포일러성 댓글 추측성댓글은 다시한번 말하지만 남기지 말아주세요!  무통보 삭제들어갑니다. 특히 174화, 후원에 핀 제비꽃 부분을 94화에서 남긴분들이 계시는데...너무나 죄송하게도 삭제처리 했습니다. 정주행 하시는 분들을 배려해주셔요!

3. 교정은 1부2차교정 끝, 그러자 마자 2부 2차 교정. 두번 다시는 연재와 교정을 병행하지 않겠습니다 사람이 미쳐가는듯. 특히나 완결부분은 집중해서 빠르게 써내리는 편인데 진짜 글쓰는게 끊겨버리니 게다가 그것도 과거부분을 봐야하니 돌겠네여.

4. 본디 2월 20일, 아니면 오늘완결예정인데. 이미 시간은 넘어가버렸고. 3월달에 완결낼지도 미지수이고.흑..

5. 체자레 과거를 본편에 끼워넣으려 했는데, 완결후에 외전으로 넣을 것 같습니다. 자, 잠깐! 화내지 말구! 아니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어요! 아니 난 넣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넣을부분을 찾을수가 없었다고. 보면 이해할거여요!

6. 여튼 그래도.. 제가 추구하는게 굳이 외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그 자체로도 짐작으로서 완성되게하는 소설인지라...뭐.(수더수, 밤별격 보시면 아실듯)

7. 자꾸 편수 끝날때마다 후제꽃 오늘자 반응, 이러고 글올려주는데 자꾸 이러시면 오예입니다 오예 ㅡㅡ 트위터 서치해서 알티하는 재미가 있음.

8. 교정하다 틈틈이 언더테일 하다가.. 너무나 빡쳐서 안되겠다 시퍼서....방송을 봤는데..흑..흐으윽..

정말 왜 명작. 왜 '직접'플레이하라는지 이해했습니다. 근데 저 그런게임에 젬병이라...

후원 쿠폰 주신 lovepink님, Ariy님, 버선코님, 푸우우우우우웅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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