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원에 핀 제비꽃-178화 (171/208)

00178  꽃이 지다  =========================================================================

“괜찮아 비올렛?”

비올렛은 엎드려 누운 채로 손만 까딱거렸다.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어렸을 적 검술 훈련을 받아도 이렇지는 않았다. 아침에는 초상화 모델에, 점심에는 타국의 대사와의 회담을 가지고, 저녁이 되면 대신전에서 그녀를 보고 싶어 하는 평민들에게 얼굴을 내보여야 했다. 특히나, 평민들의 알현 요청 같은 경우는 비올렛이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 했기 때문에 가장 신경 쓰이며, 가장 피곤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비올렛은 평민들이 그녀를 만나길 간절히 열망하고 그것을 위해 돈까지 바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한 두 사람만 만나던 것을 한꺼번에 여러 명과 만나는 것으로 방식을 변경했던 것이다.

그저 비올렛이 했던 것은, 그들의 앞날에 신의 축복이 있길 바란다는 의례적인 인사를 했다. 그러나 자신의 말 한마디에도 이들은 정말로 인생의 앞길이 평탄해질 거라고 믿는 듯 밝은 얼굴을 했기에, 비올렛은 차마 그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비올렛은 결국 알현요청을 몇 번이고 받아들여 이렇게 엎드린 채 누워 있었다. 비올렛이 고개를 돌려 린도를 보니, 린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비올렛을 보고 있었다.

“린도, 너도 피곤하잖아.”

“아니야. 괜찮아. 난 그래도 남자인걸.”

그 말을 하자 비올렛이 피식 하며 웃었다.  그에 린도의 표정이 뚱해졌다.

“왜, 그렇게 안보여?”

“아니.”

왠지 남자라는 말이 재미있었다. 린도는 비올렛의 손을 잡았다. 비올렛의 손은 린도의 손에 비해 너무나 작았다. 예쁜 손이었지만 과연 남자의 손이었는지 손등에는 핏줄이 튀어나와 있었다. 가만히 그의 손을 바라보던 비올렛은 린도의 얼굴을 보려 고개를 들었다. 린도는 묘한 얼굴표정으로 입을 다문 채 비올렛을 보고 있었는데 비올렛과 눈을 마주하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가끔씩 린도는 알 수 없는 얼굴로 비올렛을 보고는 했다. 린도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다 생각한 비올렛은 그것을 보며 린도가 자랐다는 것을 실감하고는 했다. 물론 린도는 그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비올렛은 린도가 나이를 먹긴 했지만, 여전히 나이보단 젊어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다섯 살 때 교황에 즉위했다고 한다면, 적어도 그는 비올렛보다 열일곱 살이나 많은 나이인 것이다. 비올렛이 현재 열여덟이었으므로 린도의 나이는 자그마치 서른 다섯이나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 나이에 비해 젊어보이는 외모역시 체자레에게 물려받은 것일까.

“왜? 비올렛.”

자신을 뚫어져라 보자 린도가 웃었다. 그 모습이 아이처럼 순수하고 맑아, 비올렛은 차마 그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문득 비올렛은 처음 봤을 때 아주 작은 소년이었던 그 모습을 기억해 냈다. 남성적인 선이 없던 그때의 얼굴을 보고 비올렛은 처음에는 그가 여자라 생각했다.

“예전에, 널 봤을땐 네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 생각했어.”

“내가?”

린도가 물었다.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너무 예뻤거든.”

그 말에 린도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해서 비올렛이 미소를 지었다.

“그거 남자치곤 듣기 이상한 칭찬인데.”

“예쁘단 말은 좋은 말인걸.”

린도가 비올렛을 바라보았다.

“나는 네가 더 예뻐, 비올렛.”

비올렛은 잠기운에 취해있어서. 그 말에 서린 열기를 느끼지 못했다. 그저 언제나 그에게 듣던 의례적인 칭찬에 웃을 뿐이었다. 아마 린도는 비올렛이 어떤 외모를 하고 있어도 그녀에게 예쁘다 말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비올렛, 나는 말이야. 널 처음 봤을 때, 기뻐서, 기뻐서 어쩔줄 몰랐어. 네가 발견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너무나 흥분되어서 몸이 떨렸지. 그리고 아버지에게 조르고 졸라 수도로 찾아가서, 너를 몰래 만났지 뭐야.”

“정말? 그때도 몰래 나왔던 거였어?”

신전에 감금당하다 시피 했던 것 치고 린도는 참 재빠르구나, 비올렛이 웃었다.

“응, 내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데. 성녀만 온다는 아버지 말만 믿고. 그렇게 계속 너만 기다려왔는걸. 그런데 바로 앞에서 널 못만난다는데, 내가 어떻게 그대로 기다려? 나중에 혼나긴 했지만 후회하지는 않아.”

“그런데도 용케도 날 납치하지 않았구나?”

그 말에 린도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조금 억울한 듯이 말하는 것이다.

“그거야 당연한걸. 네가 가기 싫다고 했잖아.”

비올렛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린도를 바라보았다. 그때 신전에 억지로 끌려왔다 생각해서, 잊고 있었다. 린도는 언제나 비올렛을 데려올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데려오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았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린도는 아주 어린 비올렛이 가기싫다는 말 한마디에 그녀를 강제하지 않았다. 그가 강제했을 때는 그녀가 가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그것을 거부하자 그녀를 강제한 것이었다.

“난, 비올렛 네게 미움받는 게 끔찍하게 싫어.”

“……널 미워하지 않을게.”

“그거 너무 기쁜 말인걸.”

그 말에 린도가 웃었다. 그는 비올렛이 누워있는 침대에 쭈그려 앉아 턱을 괴고 눈을 마주쳤다. 린도의 아름다운 금색 눈은 마치 보석과도 같이 영롱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아버지가 말했어. 엄마가 없는 대신 성녀가 있다고. 네가 교황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신을 믿는 자들을 그렇게 잘 이끈다면 성녀가 내려와 반드시 널 좋아해줄 거라고. 교황의 자리가 성녀와 가장 가까우니 걱정이 없지 않겠냐고. 그렇게 말했어. 성녀는 신의 사랑을 베풀어 줄 거라고, 그렇게 내곁에서 날 영원히 사랑해줄거라 말했지.”

“…….”

“하지만 비올렛, 이젠 알아, 그건 잘못된 일이었어.”

린도는 미소를 지으며 흘러내린 비올렛의 머리를 귀뒤로 부드럽게 넘겨주었다.

“네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지만, 난 사실 너무 화가 났어. 그래서 널 결국 억지로 데려오려 했지.”

비올렛의 애정은 린도에게 있어 당연히 받아야 했던 애정이었다. 어렸던 그가 신전에 갇혀있다시피 살면서 모든 것을 인내하는 대가라는 것이 바로 비올렛이었기 때문이었다. 비올렛은 린도를 이해했다. 성인이 되고 약속된 시간에도 신전으로 가지 않는 비올렛에게 어렸던 그는 조바심이 나 어쩔 줄 몰라했을 터였다.

“그렇지만 그것도 잘못된 것이었지. 네가 아팠으니까.”

린도는 팔을 뻗어 비올렛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그 조심스러운 손길에 비올렛의 눈이 졸음기를 띠었다.

“난 두 번 다시 널 다치게 하지 않을 거야.”

“어차피 다칠 일도 없는데 뭐.”

비올렛의 웃음섞인 대꾸에 린도가 피식 웃었다.

“그러긴 해.”

린도는 아주 다정한 손길로 비올렛의 긴 머리를 쓸었다. 그 손길에 비올렛이 졸리기 시작했다.

“모든게 정리되면, 아버지를 찾아가보려고 해.”

“어?”

비올렛은 그 말에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생각해보니 비올렛은 체자레를 찾아가려 했었다. 아나스타샤의 일기장에 대한 것.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그러나 그것은 까맣게 잊은지 오래였다.

“넌 갈 필요 없어. 지금 이대로도 행복하잖아?”

그 다정한 말에 비올렛이 린도를 올려다보았다. 그래, 비올렛은 지금 이 순간도 행복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눈물겨울 정도로 커다란 행복을 맛보고, 그것을 누리고 있었다. 린도의 다정한 말에 어쩐지 다시 졸음이 서리는 듯 했다.

“말룸은 사라졌고, 네 의무는 끝났어, 비올렛.”

그 말에 두근거리던 심장박동이 다시 느릿하게 흘러갔다. 그래, 말룸을 없앴다. 분명 이 손으로 사라지게 했다. 이제 와서 무엇이, 어떤 진실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래,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그 손길에 비올렛의 눈이 꾸벅 꾸벅 감겼다. 그렇게 눈을 감으며 비올렛은 내일의 일정을 점검하고 있었다. 이제 연회가 벌어지고, 오랜만에 그를 만날 것이다. 스쳐지나가듯 만나 이야기도 제대로 못했는데, 그땐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길 바라며 비올렛은 눈을 감았다.

“그래도 비올렛, 나는 벌써 널 떠나보내는 게 두려워. 조금 더 나와 있어주면 안 돼?”

우울한 목소리가 비올렛의 귓가에 울려퍼졌다.

*

비올렛은 한숨을 쉬었다. 이리 둘러봐도 저리 둘러봐도 없었다. 조금 애가 타서 주위를 둘러보아도 짙푸른 머리카락은 보이지 않았다. 이게 무엇인가. 샤를도 린도도 있는데 에셀먼드만 없다. 비올렛은 드레스 자락을 걷었다. 몇 번째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귀족들을 상대한 그녀는 상당히 지쳐 있었다.

귀족들은 비올렛에게 그제야 관심과 공경심이 생겼는지, 비올렛더러 자신의 영지에 방문해서 식사라도 한번이라 해달라 요청했다. 물론 비올렛은 그것을 언젠가 시간이 나면 가겠노라 말했다. 개중에는 그것이 은유적인 거절이라 알아들은 자들도 있었지만, 눈치 없이 비올렛을 설득하려 집요하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이 연회가 삼일동안 계속 된다니, 생각만 해도 미칠 것 같았다. 비올렛은 살짝 짜증이 난 상태였다.

“성녀님을 뵙습니다.”

그 목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비올렛은 화색이 돌아 뒤를 돌아보았다. 에이든이  서 있었다. 그 말은 에셀먼드도 이곳에 와 있다는 말이었다. 에이든이 장난기 어린 미소로말했다.

“너, 상당히 짜증이 난 모양이다?”

“뭐가.”

그가 옆으로 따라 붙어 소곤거렸다. 키득거리는 그의 말에도 비올렛은 화를 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럴 만도 하지, 이거 삼일 내내래. 얼굴에 짜증이 그득하구나. 이 오빠 눈엔 다 보인다.”

그가 웃으며 말하자, 비올렛은 으음, 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표정관리를 하고 있는데, 저 바보에게도 보일 정도라니, 다른사람도 그것을 느꼈나 걱정되었던 탓이었다. 그렇게 살짝 한숨을 쉬자 에이든이 말했다.

“왜, 쓰러진 척 하고 형이랑 농땡이 폈을 때가 좋았지?”

“에이든!”

“그 어울리지 않는 가발을 쓰면 내가 못 알아 볼 줄 알았냐? 진짜 느낌이 이상하긴 하더라. 내 형이랑 내 여동생이 연애라니. 그래도 형이 꽁지가 빠져라 달아나는 건 확실히 처음 봐서 놀리는 재미는 있더라. 형이 그렇게 부끄러워하면서 화내는 건 처음 봤다니까?”

아, 역시 들킨 모양이었다. 비올렛은 한숨을 쉬었다. 불쌍한 에셀먼드는 에이든에게 계속 놀림받은 모양이었다. 에이든의 놀림은 집요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이성의 끈을 끊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 놀림이 드디어 에셀먼드에게 향하다니.

그런데 이 불쌍한 비올렛의 연인은 어디 있는가. 비올렛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에셀먼드를 찾을 수 없었다.

비올렛은 에이든에게 에셀먼드에 대해 물어보려 했다. 그런데 이 에이든이 시수일레를 보며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음이 조급해진 비올렛이 에이든을 붙잡으러 뛰어가 그의 옷깃을 잡았다. 생각 외로 세게 잡았는지 그의 옷이 팽팽해졌다.

“야, 옷 찢어질 뻔했잖아! 동생아, 이건 상당히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이다! 난 목숨을 잃을수도 있어!”

에이든이 작게 소리쳤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비올렛이 어이가 없어 에이든을 보자 에이든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너 형이 날 죽이는 걸 원하는 거지?”

“널 죽인다는 그 형은 어디 있는데?”

비올렛이 다짜고짜 캐묻자 에이든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심각한 얼굴로 속삭였다.

“그러게?”

비올렛은 그 말에 진짜로 화가 났다. 에셀먼드를 만나면 에이든부터 어떻게 해달라 말하고 싶었다. 그 얼굴을 본 에이든이 킥킥거리며 말했다.

“아직 안왔나 봐.”

“아직?”

아직이라니? 에셀먼드가 늦는다는 것일까? 에이든은 비올렛의 얼굴을 보며 장난스레 웃었다.

“응, 형 늦잠 잤어.”

비올렛은 에이든의 장난에 화를 내려 했다. 그렇게 칼같은 남자가 늦잠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게다가 연회는 오후였다. 설마 그가 낮잠을 잤단 말인가?

“아 좀, 봐주라. 형 며칠간 철야근무했단말이야. 오늘 아침에 들어왔어.”

“…….”

철야 근무라니, 피곤할 만도 했다. 그렇지만 그가 이런 일에 늦다니? 게다가 늦잠을 자다니? 그런 것이 실제로 벌어질수 있는 일인가. 비올렛이 알기로 에셀먼드는 완벽주의자였다. 그는 절대 이런곳에 늦을 리가 없었다.

“그만큼 마음이 풀어졌다 이 말이 아니겠어? 형에게도 봄바람이 분거지.”

에이든이 비올렛을 보며 키득거렸다. 그게 왜 자신 때문인가. 자신 때문이라면 적어도 일찍 일어나서, 일찍 준비를 해서 일찍 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이라도 그를 오래 보려고 피곤해도 서둘러 준비했던 시간이 무색해졌다. 그럼에도 비올렛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그가 안쓰러웠다.

“아까 일어났을 때 형의 얼굴을 봤어야 했어. 진짜, 놀랐다니까. 심지어 나한테는 왜 빨리 안깨웠냐고 짜증까지 냈어. 아니 원래 약속은 칼같이 지키는 사람인데, 내가 늦잠을 자고 있을지 어떻게 알아.”

에이든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늦잠, 그래, 늦잠이라니. 에셀먼드가 늦는 이유를 알자 맘이 풀렸으나 어쩐지 조금 허탈해졌다.

“자, 그러니 형은 조금 늦을 거야. 혹시 형 머리좀 봐, 막 자다 일어나서 눌린 그대로 올지도 몰라.”

“에이든.”

비올렛이 나직하게 말하자. 에이든은 킥킥 거리며 시수일레에게 뛰어갔다. 비올렛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아픈 몸이 다 나은 지 얼마나 됐다고 샤를은 그를 혹사시키는가. 샤를이 에드의 부상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비올렛은 어쩐지 그가 원망스러웠다. 샤를쪽을 바라보니 샤를과 눈이 마주했다. 샤를은 스승의 얼굴을 보고 미소를 지었으나 비올렛이 뚱한 얼굴로 고개를 홱 돌려버리자 깜짝 놀랐다. 뭔가 자신이 실수라도 한 것일까. 그는 갑자기 비올렛을 만나고 나서 지금까지 했던 행동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이곳에 더 있다간, 사람들이 계속 말을 걸어올 것이 틀림없다. 비올렛은 그렇게 생각하며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 생각될 때 테라스로 나갔다. 유리 문을 열고 닫으니 음악소리는 멀어졌고, 사람들의 떠들썩한 목소리 역시 작게 들렸다. 혹시 그녀를 찾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커튼까지 치고 문을 닫았으니, 아무도 그녀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비올렛은 따스한 저녁바람을 맞아들였다. 입구 쪽에 위치한 테라스라 아마 별다른 일이 없다면 에셀먼드는 쪽으로 올 터였다. 비올렛은 조용히 그를 기다렸다.

생각해보니 이곳은 열여섯, 그녀가 성년이 되던 날, 에셀먼드와 재회한 곳이었다. 비올렛은 그때 자신을 찾아와 무릎을 꿇은 에셀먼드를 보고 그를 차갑게 대했었다. 그때 에셀먼드는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었을까. 그가 그런 것을 말하지 않으니 알 수 없었다. 기껏 그가 마음을 제대로 드러낸 것이 겨우 후원에 피운 제비꽃이지 않는가.

비올렛은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의 얼굴이 너무 그리워졌다.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아프다고 엄살을 떨걸 그랬다. 며칠간 함께 붙어있다 계속 떨어져 있으니 그가 그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비올렛은 저 먼 곳에서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마차가 멈추는 것을 보았다. 저 마차의 문양은 에르멘가르트 후작가의 문양이었다! 비올렛은 귀를 쫑긋 세우고 그가 걸어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가 고개를 들어 부디 테라스에 있는 비올렛을 봐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에셀먼드는 비올렛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고 바로 건물 입구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에 마음이 조급해진 비올렛은 자신도 모르게 성력을 썼다. 봄을 맞이하여 피어난 꽃들이 활짝 피어나기 시작했다. 마침 꽃잎이 날리며 꽃향기가 화악 퍼졌다. 에셀먼드가 그제야 이상을 눈치챘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눈과 비올렛이 눈이 마주쳤다. 비올렛은 그를 보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손을 흔들까 했지만 어쩐지 부끄러웠다. 그때 에셀먼드가 테라스 바로 아래로 다가왔다. 비올렛은 궁전에 묵었을 때, 테라스 아래에서 그를 목격했던 때가 떠올랐다. 이상하게도 에셀먼드는 그때와 똑같은 무표정이었다. 오랜만에 봤는데 기쁘지도 않단 말인가. 늦잠까지 자다니 사정이 어떤지 알면서도, 그가 괘씸했다.

비올렛은 뚱한 표정으로 테라스 아래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대화를 하려면 조금 크게 소리쳐야 할 것 같다.

그냥 당장 달려가서 그에게 안기고 싶었지만, 그를 만나러 내려가려면 연회장을 또 지나가야 했다. 그렇게 된다면 또 사람이 붙을 것이다. 왜이렇게 그를 만나기 힘들단 말인가. 비올렛은 진심으로 답답해졌다. 그렇게 고민하던 비올렛을 바라보던 에셀먼드가 갑자기 두 팔을 벌렸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팔만 벌리는 그를 보고 비올렛은 깜짝 놀랐다.

“……?”

저게 무슨 의미인걸까. 왜 갑자기 그가 두 팔을 벌린걸까. 그는 비올렛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팔을 벌리고 있었다. 저게 무슨 의미지? 마치 꼭 뛰어들어와 안기라는 것 같은……. 세상에! 비올렛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 남자가, 정말!

이 뻔뻔한 남자가 지금 비올렛에게 뛰어내리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곳은  뛰어내린다면 못 뛰어내릴 정도의 높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러나! 뛰어내릴 수 있다고 이것이 부끄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저렇게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그 부끄러운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라니, 비올렛의 얼굴은 귀까지 빨갛게 물들었다. 비올렛이 뛰어내리지 않으면 저 남자는 계속 팔을 벌린채 시위하듯 비올렛을 보고 있을 것 같았다. 그냥 연회장 안으로 들어간다면, 음, 이젠 그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했으니, 그가 삐지지 않을까? 비올렛은 생각에 잠겼다 비올렛도 그와 만나고 싶어 몸이 달은 상황이었다. 정말 진짜. 비올렛은 투덜거리며 난간에 올라섰다. 다행히 난간의 창살이 넝쿨모양으로 세공되어 있어 발을 디디고 올라서는 것은 쉬웠다. 난간 위에 서자 시야가 더 높아져 뛰내리기에 조금 높지 않을까 두려웠지만, 에셀먼드는 여전히 뻔뻔한 얼굴로 비올렛에게 뛰어내리라 하고 있었다. 아마 그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비올렛을 잡아주겠지. 비올렛은 그렇게 생각하며 뛰어 내렸다.

그럼에도 눈을 꼭 감았으나. 비올렛은 금방 허리를 단단히 잡아주는 손길을 느꼈다. 비올렛은 꼭 감던 눈을 뜨며 자신을 안아든 에셀먼드를 보고 있었다. 상당히 무거울 텐데도 그것이 별로 그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지, 비올렛의 두 다리는 허공에 떠 있었다.

그는 말없이 비올렛을 보고 있었는데, 비올렛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기다린 듯 했다. 비올렛은 이 괘씸한 사람을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조금은 부끄럽지만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입술에 살짝 입을 맞췄다. 에셀먼드가 그것에 잠시 놀란 듯 굳은 표정이었다. 그가 비올렛을 천천히 땅위에 내려주자 비올렛은 발돋움한 채로 그의 목을 감싸야 했다.

“오랜만이에요, 에드.”

비올렛이 환하게 웃자 에셀먼드가 잠시 비올렛을 바라보더니 이내 허리가 꺾어질 것 처럼 농도 짙은 입맞춤을 선사했다.

============================ 작품 후기 ============================

그대들은 달달함을 원하면서 달달함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지.

추천, 코멘 모든것이 반토막, 아니 1/4토막이 났던 것이었어!!!!

*아 당첨자분들 주소가 모두 모였네요. 그런데 제가 지금 교정때문에 눈물콧물 쏙빼고 있어서 빨리 보내드리진 못할것같아여!!빨랑하고 보내드리겠습니다!

*슝아라님, 아리님, 후원쿠폰 너무 감사드립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