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원에 핀 제비꽃-177화 (170/208)

00177  꽃이 지다  =========================================================================

비올렛은 얼굴에 홍조가 이는 것을 애써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비올렛은 장담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 어느 것보다 힘들었다.

“조금 더 웃어 주시겠습니까?”

비올렛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왜 이 짓을 해야 하는 지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어색하게 이, 하며 이를 드러내보였다. 웃음을 터트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올렛의 눈썹이 살풋 찡그려지며 그쪽을 향했다.

“너무 어색하지 않습니까, 스승님. 조금 더 환하게 웃어보세요.”

“아, 저 모습도 내 눈엔 귀여운 것 같은데. 저런 모습도 그려주면 안 되는 것인가?”

비올렛의 얼굴이 결국 와그작 구겨졌다. 의자에 앉아 어색한 자세로 어색하게 웃고 있는데 이걸 하루에 몇 시간동안이나 해야 한다니, 게다가 이렇게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서! 비올렛의 얼굴을 본 샤를이 다정하게 말했다.

“스승님, 조금 참으십시오.”

“…….”

누가 누구를 달래는지 모르겠다. 비올렛은 샤를을 보았다. 샤를의 얼굴이 장난기로 물들고 있었다.

“성녀님 얼굴을 다시 이쪽을 봐 주십시오.”

린도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비올렛은 다시 화가와 눈을 마주쳐야 했다. 앞날이 깜깜했다. 린도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화공은 그림을 몇 장 더 내게 바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신전, 내 기도실, 대연회장 여기저기에 다 걸어둘거거든.”

“린도!”

비올렛의 말에 린도가 웃었다. 샤를루스가 말했다.

“왕궁에 하나, 교황성에 하나 걸면 되는 것 아닙니까? 이미 그렇게 일렀습니다. 성하”

“비올렛의 초상화를 거기만 걸 생각입니까? 한 장 은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흐음, 듣고 보니 그렇군요. 저도 스승님 초상화라면.......”

비올렛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자신의 얼굴이 담긴 초상화가 후세에 전해진다니. 비올렛은 울고 싶었다.

말룸을 무찌른 성녀들은 모두 초상화를 그렸다. 비올렛도 신전에서 아나스타샤를 제외한 이들의 초상화를 본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초상화 역시 그곳에 걸릴 예정이었던 것이다.  이제 왕궁에 성녀 ‘비올렛’으로서 자신도 성녀들의 옆에 초상화가 걸린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화가가 매서운 눈으로 비올렛을 보았다. 비올렛은 흠칫, 하며 다시 자세를 바르게 했다. 비올렛은 이 화가가 상당히 무서웠다. 궁정에 고용된 유명한 화가라 하더니, 과연 그 눈빛부터가 남달랐다.

사각거리며 검은 목탄으로 비올렛을 그리는 화가에게서는 보이지 않는 열정이 그 주위로 불타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저사람이 신관수련을 하게 된다면 성력이 넘쳐 흐르는 대신관이 되지 않을까. 비올렛은 생각했다. 아그레시아의 국왕과 교황이 지금 이곳에 있었지만 화가는 비올렛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열심히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화가는 이 방의 지배자였던 것이다. 샤를과 린도가 그 기세에 질린듯 바깥으로 나갔다.

“성녀님은, 제 인생 최고의 모델입니다!”

별로, 저 사람의 인생 최고가 되는걸 원하지는 않는데. 비올렛은 조금 실례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그레시아의 성녀가 깨어나서 공식적으로 먼저 한 일은 초상화를 남기는 것이었다.

*

오늘의 작업시간을 마친 비올렛은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바깥으로 나왔다. 성기사 몇몇과 린도가 따라붙었다.

“비올렛, 많이 피곤했지?”

린도가 다정하게 말하자 비올렛이 후우, 하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한 장을 더 그려야 하면, 내가 이걸 한 번 더 해야 한다는 거야?”

“아니? 똑같이 그리는 건 쉽다고 들었어. 걱정 마.”

린도가 비올렛에게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보통 때라면 거절했을지도 모르나 린도의 손길이 의외로 단단해서 비올렛은 그 손길에 뻐근한 어깨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손가락과 목이 닿은 느낌이 미묘했지만 린도야 원래 그런 것에 무지하니 그러려니 생각하며 비올렛은 알현실쪽으로 걸어갔다. 오늘 낮은 대신들과의 회합이 있었고, 오후에는 축제가 시작이 되어 행진해야했다. 그 다음날부터는 타국에서 온 나라의 대사들을 만나야 했으며, 대신전에서 알현을 신청한 평민들의 얼굴을 봐야 했다. 물밀 듯이 밀려오는 일정을 생각하던 비올렛은 회랑 건너편에 걸어오던 왕실기사단 사람들을 보았다.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었다. 에셀먼드가 맨 앞에 서서 걸어오고 있었다. 비올렛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맨 앞에 걸어오는 그의 모습은 누구보다 훤칠하며 준수해보였다. 그들이 비올렛과 린도를 보며 인사했다. 무릎을 꿇으려는 그들의 인사를 허리를 숙이는 약식인사로 하라고 말해놓고, 비올렛은 에셀먼드와 눈을 마주했다. 그러나 그는 평소와도 같이 서늘한 얼굴로 비올렛을 바라보고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오랜만입니다 성녀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칼츠 경이 반가운 듯 비올렛에게 말을 건넸다. 비올렛이 웃으며 대답했다.

“네, 괜찮습니다.”

칼츠 경이 눈을 깜빡거리며 비올렛을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동동 띄워져 있었는데, 비올렛은 자신이 무슨 이상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성기사들이 어쩐지 섭섭하다는 얼굴로 비올렛을 보았다. 뭘까, 이 분위기는. 비올렛이 무엇을 말하려 할 때 비올렛은 어깨의 고통을 느꼈다.

“아!”

린도가 비올렛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주물럭거린 것이었다.

“린도!”

예전 같았으면 그대로 눈이 마주쳐야 했으나 비올렛은 키가 훌쩍 큰 린도를 올려다 봐야했다. 린도는 비올렛의 바로 뒤에서 짓궂은 웃음을 지으며 비올렛을 내려다보았다. 린도의 아름다운 은발이 반짝였다.

“왜, 비올렛 초상화 그리다 와서 목이 뻐근하다 그랬잖아.”

“칼츠 경이 물어본 것은 그게 아니잖아. 린도.”

그 말에 린도가 계속 장난스럽게 어깨를 주물렀다. 이렇게 보는 눈이 있는데, 조금 철이 드나 했더니. 비올렛이 그만하라고 손목을 잡자 린도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아니요, 초상화 때문에 몸이 힘드시다면 쉬셔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칼츠 경이 말하자 뒤에 서 있는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올렛은 나름 자신을 걱정해 주는 기사들에게 감동했다. 슬며시 기대감을 가지고 에셀먼드를 보니 에셀먼드는 기사들이 하는 양을 무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기사들은 하나 둘 씩 이야기를 꺼냈다. 심지어는 뒤에서 소외되었던 성기사들까지 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남자는 말이 없었다.

“맞습니다. 내 이 화가를 그냥!”

“그림 때문에 사람이 힘들다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초상화를 그리는게 그렇게도 성녀님의 성체를 피곤하게 하실줄 몰랐습니다.”

“당장 그 화가에게 주의를 주어야 합니다.”

비올렛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겨우 초상화를 그리려 가만히 있었던 것 뿐이다. 저들은 그런 것 보다 더한 고행도 많이 겪었을 텐데, 저렇게 분개할 일이라도 되는 것인가. 그들의 걱정은 감동할 만한 것이었으나 분노의 이유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성하와 성녀님의 앞이다. 발언에 주의하라.”

그때, 에셀먼드의 음성에 기사들과 성기사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기사들은 기사단장인 그의 말에 복종했고, 성기사들은 가디언으로서 에셀먼드를 아직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비올렛은 에셀먼드의 시선이 비올렛을 향하다 린도를 향하는 것을 알았다. 린도는 헤헤 웃으며 다시 비올렛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 정말, 비올렛이 옆으로 돌아서 그의 손목을 어깨에서 떼어놓았다. 그녀가 에셀먼드를 보려 돌아보는 순간 에셀먼드가 먼저 걸어 나갔다. 아무리 그래도 눈이라도 마주쳐 줘야하는거 아닌가. 비올렛은 속으로 꽁알거려 눈을 마주치려 애썼지만 에셀먼드의 싸늘한 뒷모습만이 보였다. 린도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에도 비올렛은 살짝 기분이 상해있었다.

*

자신들에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대신들을 보았다. 이전 자신을 천민이라 업신여기던 그들이었으나 그런 불손한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그들은 성녀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신의 의지를 대신하여, 나라와, 세상을 구한 성녀님께 감사드립니다.”

비올렛은 그것을 멍하게 보고 있었다. 고개를 수그린 귀족들, 과연 이 사람들은 이 ‘천민 성녀’에서 ‘성녀’라는 이름이 제거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비올렛은 그들의 인사를 받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그들이 비올렛에게 올리는 인사는 진심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비올렛은 조용히 말했다.

“마땅히 신의 대리자로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과연 저들을 구한 것이 가치 있었던 일인가, 비올렛은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비올렛은 저기 서 있는 저 남자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대들은 내게 허리를 숙일 필요도, 감사를 표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다정하지만 한편으로는 칼로 잘라내듯 서늘하게 들렸다. 저들을 구하기 위해 한 것이 아니니 저들에게 감사를 받을 필요는 없었다. 비올렛은 알고 있다. 저들은 가장 먼저비올렛에 대해 잊어버릴 것이다. 120년간의 세월동안, 성녀의 위치에 대해 가장 빨리 잊어버렸던 것이 바로 귀족들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 귀족들 중에는 에셀먼드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비올렛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마음으로, 비올렛에게 마음을 고백한 것일까 궁금할 따름이었다.

샤를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신에게 쏟아진 시선을 보며 비올렛은 멍하게 생각했다. 아그레시아의 귀족들이 평민과 결혼한 경우는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귀족 사회에서 반발을 사 작위를 반납해야 했다. 그러나 천민과 귀족이 맺어졌던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다.

당연하겠지만, 전대 성녀들이 결혼했던 경우 역시도 단 한 번도 없었다. 비록 성녀들이 성직을 택한 것이 아님에도, 언제나 그러했던 것이다. 비올렛은 에셀먼드의 각오를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작위따윈 이미 비올렛 때문에 한번 버렸으며, 목숨까지 바치려 했다.

붉은 비로드 옆에 선 에셀먼드는 누구보다 귀족의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같아 보였다. 새삼 이곳이 그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것을 깨닫자 비올렛은 우울해졌다. 그때 비올렛은 에셀먼드와 눈이 마주쳤다. 그 시선이 어째서인지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비올렛은 그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

비올렛이 가두행진을 위해 창이 뚫려있는 마차를 탔을 때, 린도가 재빨리 다가와 비올렛의 옆에 앉았다. 옆에 신관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린도.”

“왜애. 나도 비올렛이랑 이런 마차 타고 싶었단 말이야.”

여전히 나이가 먹어도 아이다운건 변함이 없는 듯 했다. 원칙적으로는 성녀가 홀로 수도를 돌아다니며 손을 흔들어야 했건만 린도는 비올렛의 옆에 꼭 붙어 있었다.

“그렇다면 폐하도 불러와야 할 거야.”

성녀와 교황만이 딱 붙어 있는 것은 모양새가 이상할 테니. 비올렛이 그렇게 말하며 샤를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샤를은 마침 뒤에 있는 마차를 타려고 하고 있었다.

“폐하, 같이 타시지 않겠습니까?”

신이 난 린도의 말에 샤를이 난감한 얼굴을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떤 왕이 마차를 누군가와 나누어 타겠는가. 린도가 조금 특이하고 생각이 없는 것이었다. 샤를이 입을 열었다.

“셋이 타기엔 마차가 너무 좁지 않겠습니까?”

아. 비올렛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타지 않는다는 이유가 그런 이유가 아닌, 마차가 좁아서라니.

“여긴 넓습니다. 폐하.”

“정말입니까?”

린도가 웃으면서 자리를 옮겼다. 놀랍게도, 이 마차는 겉보기와는 달리 내부가 상당히 넓었다. 게다가 쿠션역시 폭신해서 승차감도 나쁘지는 않았다.

“폐하!”

“그냥 앉아만 보는겁니다.”

샤를이 그렇게 말하며 비올렛의 옆에 앉았다. 아아. 정말. 비올렛은 얼굴을 붉혔다. 선왕비가 몸이 안좋아서 행진에 참여하지 못해서 망정이지, 알았다면 경을 쳤을지도 모른다.

“와, 딱 맞습니다.”

마차는 부족함 없이 딱 맞는 크기였다. 아니 이사람들이 왜, 그녀의 마차가 뭐라고 이렇게 앉아야 하냔 말이다. 이 마차에 금칠을 한 것도 아니고, 그러다 비올렛은 마차에 황금색으로 도금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폐하, 다시 마차로 돌아가는게 좋지 않을까요?”

“으음, 생각해 봤는데 말입니다 스승님 역시 셋이 함께하는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까요?”

샤를이 초롱초롱한 얼굴로 말했다. 비올렛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린도에게 말했다.

“린도, 셋이 같이 타면 말들이 힘들지 않을까?”

“아, 그러겠구나?”

그 말에 린도가 웃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드디어 내리는구나, 생각하던 비올렛은 린도가 내리자 마자 말들에게 다가가 성력을 부여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갑자기 생기를 얻은 말들이 궁둥이를 씰룩였다. 비올렛이 한숨을 쉬니 샤를이 웃음을 터트렸다. 린도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비올렛의 옆에 다시 탔다.

“오늘은 나라의 성녀와 함께 행진할 것이다. 내 마차는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 이르라.”

샤를이 시종에게 말했다. 참고로, 신관들은 차마 린도를 설득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미 그는 비올렛의 곁에 마차를 타기로 결정했다.

왕과, 교황, 성녀가 한 마차에 탔기 때문에 다시 그에 맞추어 사람들이 준비하기 시작했다. 호위를 담당하는 에셀먼드와 대장군이 다시 진영을 짰는데, 에셀먼드와 살짝 눈이 마주친 비올렛은, 에셀먼드가 상당히 짜증이 난 상태라는 것을 알았다. 그에 비올렛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피했다. 조금 억울했다. 아무리 아랫사람이 고생이라지만 이게 내 탓이 아니지 않는가! 교황을 호위하는 성기사들 역시 한숨을 내쉬며 그들의 지시를 따르기 시작했다.

다시 진영을 맞춘 마차가 왕성에서 출발했다. 성력을 주입한 탓인지 말들은 활기가 넘쳤다. 그들이 거리를 나가자,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샤를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국왕이 되어서인지 샤를은 제법 위엄있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비올렛은 멍하게 그 얼굴들을 보았다. 사람들은 비올렛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지붕위에 있는 소년 소녀들이, 신이나서 색종이 가루를 뿌렸다. 따스한 오후의 햇살이 그들을 내리쬐었다. 그에 비올렛의 머리가 환한 금색으로 물들었다.

“손을 흔드십시오, 스승님.”

샤를이 소곤거렸다. 비올렛은 잠시 머뭇거렸다.

“무슨 일이야? 어디 불편해?”

린도가 비올렛에게 물었다. 그러자 비올렛은 고개를 저었다. 비올렛은 저들을 구하려 했던게 아니라, 에셀먼드를 구하기 위해 말룸과 싸웠던 것이다. 과연 그런 그녀가 저들의 축복과 찬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일까? 살짝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비올렛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린도가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비올렛, 자 봐봐, 네가 구한 사람들이야.”

“.......”

“이유가 어찌 되었건, 네가 구한 사람들이야.”

그리고 갑자기 린도가 비올렛의 손을 잡고 팔을 흔들었다. 그에 와아, 하고 다른이들이 함성을 질렀다. 비올렛의 두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억눌린 함성도, 기도도 받아보았지만, 비올렛은 오로지 자신만을 향한 이 활기찬 환호를 처음받아보았다. 샤를이 그것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비올렛은 자신의 잡힌 손을 린도에게 떼네고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린도도, 샤를도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목이 떠나가라 함성을 지르며 그녀를 맞이했다.  그러다 비올렛은 저 멀리 가는 에셀먼드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는 이상하게도 단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비올렛! 손을 흔들어야지.”

린도의 말에 비올렛은 자신의 양 옆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샤를과 린도를 보았다. 비올렛은 그들을 보고 아그레시아에 진정한 평화가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그레시아 만세!”

“신의 사랑이 머무는 땅이여, 영원히 번영하라!”

“아그레시아에 영광있으라!”

“성녀님께 축복있으라!”

먼 발치에서만 보이다 처음으로 제대로 모습을 드러낸 은둔한 교황도, 어려보이는 신왕도, 그리고 그 가운데에 있는 비올렛도, 모두들 웃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전쟁도 끝나고 말룸도 격퇴되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희망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아그레시아에 새로운 역사가 쓰이려 하고 있었다.

*

“으음.”

비올렛은 얼굴을 찌푸려지려는 것을 애써 예쁜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초상화가 그려지는데 찡그린 얼굴로 그려진다면 그것만큼 두려운 일은 없었다. 역대 성녀들이 다 신비한 미소를 머금었는데 비올렛만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면 그것만큼 창피한 일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바로 어제는 얼굴만 찌푸려도 국왕과 교황 앞에서도 나는 나만의 길을 가겠노라라고 시위하듯 비올렛에게 웃으라 외치던 이 정열적인 화가는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면서 슥슥 비올렛이 입은 옷을 그리고 있었는데, 비올렛은 그 중얼거림에 귀를 기울였다.

“삼주 내에 그림 세장을 어떻게 그리냐.”

“삼주 내에 그림 세장을 어떻게 그리냔 말이다.”

“삼주 내에 그림 셋을 어떻게…….이건 밤을 새워도 안 된다.”

그림 세장? 린도가 한 장 더 그려달라 한 건가? 비올렛이 입을 열었다.

“화공, 교황께서 그림을 무리하게 요구하셨다면, 제가 일정을 조율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린도의 막무가내에 이 가여운 화가는 겨우 삼주 내에 그림을 셋을 완성해야 할 극악한 상황에 처해있는 모양이었다. 비올렛이 동정이 서린눈으로 화가의 얼굴을 보며 말하자, 화가가 비올렛에게 억울함을 토로하듯 말했다.

“아, 아니요, 성하가 그러셨다면 제가 거절했을 겁니다! 바로 작품의 질을 위해서지요!”

“네?”

그렇다면 누가? 그렇다면 샤를이 한 장 더 달라 한 건가?

“아, 국왕께서 그러셨어도 제가 어느 정도는……”

비올렛이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화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폐하께서도 그런 게 아닙니다!”

국왕도 교황도 아니라면, 그 누가 성녀의 초상화를 함부로 원한단 말인가. 비올렛은 살짝 불쾌해져 오려 했다.

“에르멘가르트 후작님입니다 후작님!”

“네?”

거기서 갑자기 에셀먼드 이야기가 왜 나오는 것인가. 비올렛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후작님은 그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절 죽일 겁니다. 그리도 살벌한 표정은 처음 보았습니다.”

비올렛은 멍하게 권력자의 행패에 핍박당하는 가련한 화가의 모습을 보았다. 세상에, 그 권력자의 모습이 에셀먼드라니! 비올렛은 얼굴을 찡그렸다. 이 사람이 진짜!

“후작 령의 산스트 지방에서 나오는 붉은 염료가 귀한 것인데…… 그걸, 그걸…그걸 평생 무상으로 제공해주겠다 하셨습니다!”

아. 비올렛은 잠시동안 입을 벌릴 뻔했다. 그게 어째서 죽인다는 말이 된단 말인가!

“그렇지만 안 된다고 말할 수가. 후작님의 표정이 어찌나 무서운지. 그렇지만 염료가…….”

비올렛은 한숨을 쉬었다.

“그게 시간이 촉박하다면 화공의 제자들과 함께 그려도 무방합니다.”

“그, 그렇다면 후작께서 진노하실 겁니다. 성녀님께만 말하지만 저는 폐하와 성하보다는 후작님이 더 무섭습니다.”

이사람은 린도의 본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음이 틀림없다. 사실 더 무서운건 린도임에도, 저사람은 에셀먼드가 더 무섭다 말하고 있었다. 물론 언제나 웃는 상인 린도보다, 서늘한 인상의 에셀먼드가 무서운 것은 당연했다.

에셀먼드가 어떤 표정으로 초상화를 하나 더 그려달라 요구했는지는 몰라도, 아마 그 서늘한 얼굴로 말했음이 틀림없었다. 딱봐도 어떤 얼굴로 그리라 했는지 상상이 잘 갔다. 염료를 준다 함에도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죽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음이 틀림없다. 여하튼 이 화가는 대가를 얻는다는 말에도 에셀먼드의 말을 협박으로 느끼고 있었다.

“제가 말했다 하면 괜찮을 겁니다.”

비올렛이 말했다.

“그냥 제가 말했다 하고, 제자에게 하나 더 그리라 하세요. 물론 그 제자도 부족함이 없어야 할것입니다.”

그 말에 화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되었건, 그 인간은 비올렛의 초상화만 얻으면 상관이 없을 인물이었다. 비올렛은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어제부터 대화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눈 한번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관계가 없었던 것처럼 비올렛과 눈을 마주하지 않았다. 그에 슬그머니 들었던 불안감이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이런 행동을 벌이고 있다니. 비올렛의 얼굴에는 살풋 미소가 지어졌다.

“성녀님, 바로 그 표정입니다!”

그 말에 비올렛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금 좋은 표정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화가는 열심히 캔버스위에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볼에 발그레한 홍조가 올라왔다. 억지로 지어졌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이것이 그에게 가는 초상화라면, 조금 더 예쁘게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항상 이상한 쪽에서 맹목적인 사람이다. 비올렛은 수줍게 미소지었다.

============================ 작품 후기 ============================

머야.. 뭐 쓰지도 않았는데 왜 24키바야..

아 맞다. 이벤트 당첨자있어요!!! 이벤트 당첨자들 제게 쪽지 안보내줄거여요?!!! 쪽지 부탁드립니다!!

출판사에서 2차 교정본이 왔어요. 후후후!1그래서 당분간 또다시 격일연재입니다!!! 후제꽃 1부는 에피소드가 아주 약간 추가될것!

요거 기억해주세요!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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