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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핀 제비꽃-173화 (166/208)

00173  꽃이 지다  =========================================================================

비올렛은 눈을 떴다. 보드라운 침대에 깨끗하게 된 몸이 누여 있었다. 자고 있는 사이에 어떻게 했는지 머리카락에는 향기가 배여 있었다. 비올렛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움직일때마다 몸이 약간 욱신거렸지만 움질일만 했다.

익숙한 방의 모습을 보며 비올렛은 이곳이 수도의 대신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 결국 도착했구나. 비올렛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도시 주변에 있던 성기사들과 신관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비올렛은 가누기 힘든 몸으로 수도로 출발했다. 덕분에 수도로 도착하는 것은 이틀이나 걸렸다.  조금은 고된 일정이었는지, 비올렛은 결국 하루가 지나자마자 의식을 잃었다.

“어, 깼구나, 비올렛?”

테이블에서 엎드려 자고 있던 린도가 잠에서 깬 듯 비올렛을 보았다. 린도는 밝은 표정이었다. 비올렛은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에드 경은?”

“거의 사흘만에 깨어나서 하는 말이 겨우 그거야? 에드 경은?”

비올렛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때는 정신이 없었는데 린도에게 부탁하며 무슨 말을 했긴 했었다. 그것이 혹시나 잘못된 건 아닐까. 비올렛은 불안함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린도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비올렛을 보았다. 비올렛이 안달나 뭐라  할 무렵, 린도가 말했다.

“케이든경, 하이트경, 루시트경, 소프너 경이 열심히 고생해서 후작 가에 던져놓지 않았을까?”

“후작 가? 수도에?”

린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봐, 에셀먼드 경이 있던 곳은 수도였으니, 하루빨리 수도로 되돌아가는 편이 안전했을 거야. 그래서 그들을 시켜서 수도로 옮겨놓으라 했어.”

“아…….”

린도가 자의로 모든 것을 알아서 할 수는 없었다. 에셀먼드를 옮기는데 성기사들의 도움은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납득했을까? 신을 따르는 자들이다, 분명히 에셀먼드를 보았을텐데. 그녀는 걱정에 빠졌다. 그것을 본 린도가 말했다.

“걱정 마, 입이 무거운 녀석들이니 아무문제 삼지 않을 거야. 아까 만났는데, 오히려 반성했다고 그렇게 말하더라. 옳은 일을 했다던데?”

비올렛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성기사들은 에셀먼드를 싫어한다 생각했지만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그 역시 일 년동안 가디언으로서 성도에 있었으니, 알게 모르게 성기사들과는 감정의 교류가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에드 경은…….”

“배에 구멍 뚫린 것을 겨우 피만 막아놨으니, 아무리 그녀석이 대단해도 아직도 쓰러져 있을 거야. 말룸에게 당한 상처인걸, 나도 완벽하게 치료는 못했어.”

그 말에 비올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린도가 가볍게 말하는 것을 보면, 그래도 목숨에 지장은 없었다는 말이겠지.

“네가 치료해줘야 할 것 같아.”

“내가?”

비올렛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하지만 비올렛에게 남아있는 성력이 없었다. 그때도 사라진 성력 때문에 에셀먼드를 치료하지 못했다. 그런 그녀에게 무슨 치료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비올렛이 무심결에 손을 보며 성력을 집중했다. 너무나 당연하게 손바닥에 새하얀 빛이 났다.

“어?”

“비올렛?”

“아니, 아니 아무것도.”

비올렛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흘 동안 잠만 잔 것 때문일까. 폭발하듯 썼던 성력은 어느 정도는 돌아와 있었다. 비올렛은 침대에 걸터앉은 몸을 일으켜 방을 걸었다. 린도가 의아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으나 비올렛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머리색은 여전히 은색이었고, 눈 색도 그대로였다. 그리고 이마의 성흔 역시도.

“이상하네.”

“뭐가?”

“나, 성력이 회복됐어.”

“당연한 거 아니야?”

린도의 물음에 비올렛은 고개를 갸웃 했다. 일단 성력은 성력이지만 몸 역시 찌뿌둥한 것 빼고는 괜찮았다. 이상하다. 분명 두 달은 못 움직이리라 생각했었다. 비올렛이 등 뒤를 돌았을 때 린도가 갑자기 성큼 다가와 비올렛은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다.  린도가 재빨리 그녀의 어깨를 잡아 주었다. 비올렛은 새삼 린도가 완전한 청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만났을 때 조금 키가 큰 소년이었던 린도의 어깨는 이전보다 더 넓어졌으며, 조그맣던 손 역시도 커졌다. 게다가 이렇게 두 손만으로 비올렛의 몸을 여유롭게 받치고 있었다.

“비올렛?”

린도가 비올렛을 일으켜 세우자 비올렛은 린도를 바라보았다. 비올렛의 시선은 린도의 목에가 있었다. 린도의 몸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아아. 그제야 비올렛은 깨달았다.

“너, 매일 나에게 피를 줬구나.”

“아? 아, 뭐 그렇지. 일어나면 아플 거 아니야.”

린도가 미소지었다. 그 미소에 비올렛은 잠시 동안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비올렛이 손을 뻗어 린도의 목을 어루만졌다. 린도는 가만히 비올렛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금방 나을거야.”

“알아, 하지만 아프잖아.”

비올렛의 말에 린도는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에셀먼드 때문에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린도의 큰 도움을 받았다. 우선 에셀먼드의 목숨을 살리고, 사형을 당할 뻔한 것을 구했다. 그리고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 놓았다. 생각해보니 고맙다는 인사부터 해야 옳았다.

“고마워 린도.”

예전, 그가 비올렛에게 품었던 애정이 부담스럽다 여겼던 적이 있었다. 그를 께름칙하게 여겼던 것이 미안해 질 정도였다. 린도는 에이든처럼 든든한 사람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비올렛이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항상 서서 그녀를 도와주었다.

갑자기 린도가 목을 어루만지던 비올렛의 손을 잡았다. 일순 비올렛은 린도에게 손을 붙잡힌 채 그를 마주했다. 린도의 황금색 눈이 묘한 시선을 가지고 비올렛을 보고 있었다. 죽어가는 에셀먼드를 붙잡고 울고 있었던 비올렛을 보고 있었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 린도의 황금색 눈은 어째서인지, 화를 내는 것 같이 느껴졌다. 잠시 동안 그의 숨결이 닿았다. 자신의 손목을 쥔 린도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그가 입술을 달싹이는 듯 하더니, 그가 힘을 풀었다.

“그걸 알면, 좀 더 고마워해줘야지! 비올렛.”

소년시절의 말투처럼 그의 얼굴이 찡찡거렸다. 갑작스럽게 숨막힐듯한 긴장이 확 풀렸다. 기분탓이었나, 비올렛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 고마워.”

“그거 한번만 말하기야?”

“그럼 여러 번 네가 듣고 싶은만큼 말할게. 정말 많이 고마워.”

그 말에 린도가 입술을 툭 내밀며 말했다.

“나중에 성도에 가면 이 빚은 확실히 받아 낼 거야.”

비올렛이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앞으로 성녀로서 린도의 옆에 서 있을 때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성력조차도 아마 린도의 피 때문에 일시적으로 회복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비올렛을 빤히 쳐다본 린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정신을 차렸으니, 후작가로 지금 가봐, 비올렛.”

“응?”

에르멘가르트 후작가로 가라니, 린도의 입에서 나올 거라 상상하지도 못한 말이었다. 비올렛은 눈을 크게 떴다.

“너의 에드 경, 눈을 아직 못떴다잖아. 빨리 눈을 뜨려면 나나 네가 치료를 가야 하는데, 내가 징그럽게 그녀석 집에 왜 가겠어?”

“…….”

그렇게 말하는 린도의 표정은 어색한 얼굴이었다. 에셀먼드를 싫어하던 린도가 아니었나. 게다가 에셀먼드와 비올렛이 붙어있는 것을 더욱 싫어하던 그였다. 왜 굳이 그녀보고 후작가로 향하라고 하는 것인가? 묻고싶었지만 린도는 의외로 간단하게 대답해주었다.

“네가 걱정할 거잖아. 그리고 네 가족도 만나야 하지?  에이든 경 말이야. 네가 깨어났다는 소리가 들리면 나라가 또 축제가 될 거고. 정작 너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못할걸.”

비올렛이 무엇이라 더 말하려 하자 린도가 손을 휘휘 저었다. 린도가 대화를 먼저 끊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 가도 되고, 난 사실 네가 매일 가도 이젠 상관없어. 성녀는 공식적으로 잠들어 있는걸로 할 테니까. 알았지?”

비올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막 밤새고 외박하고 그러면 안 되는 거다. 앞으로 며칠동안 고생할거니까 미리 내가 봐주는거야.”

그렇게 말하며 린도가 문쪽으로 걸어갔다.

“어……. 린도, 나가려고?”

“응, 깨어나는 것만 보고 나가려 기다리고 있었어. 아무래도 나도 처리해야 할 게 있어서 왕궁으로 좀 가봐야 할 것 같아.”

비올렛은 린도가 어쩐지 힘겹게 미소짓고 있다 생각했다. 비올렛이 무언가 물으려 할 때, 린도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비올렛, 난 정말 네가 좋아. 널 정말 사랑해.”

그 따스한 얼굴에 비올렛은 무엇이라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나는 네가 우는 게 싫고, 웃는 게 좋아. 진심이야.”

그 따스한 황금색 눈이 비올렛만을 담았다. 갑작스럽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니 두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참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언제나 비올렛에게 에정을 보여주며 비올렛의 애정을 갈구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린도는 어느새 변했다.

예전에는 자신이 준 애정만큼 비올렛이 자길 사랑해 주지 않는다며 곧잘 아이처럼 투정을 부렸다. 어느새 부터인가, 린도는 비올렛에게 애정을 구걸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비올렛은 린도가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자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린…….”

“나 가볼게.”

그녀가 붙잡기도 전에, 아니, 행여나 붙잡기라도 할까봐 린도가 방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문이 열렸다 닫히고, 비올렛은 방에 혼자 남아 있었다. 린도의 태도가 혼란스러웠으나 린도가 웃고 있었으므로 비올렛은 괜찮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이미 몸은 깨어났고, 그녀는 그녀 자신의 고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후작가라…….”

비올렛은 멍하게 중얼거렸다. 린도가 말해두었으니, 이제 어디로 가는 데엔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다. 에셀먼드가 그곳에 있다. 아직 성력이 회복되지 않아 치료가 되지 않을텐데. 아니, 생각해보니 성력은 이 상태 그대로 남아 사라져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얼마 남지 않은 성력을 그를 치료하는데 쓰면 되지 않을까? 비올렛은 자신의 손을 보며 생각했다. 만약 이것이 마지막 성력이라면, 그를 위해 쓴다면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 바보 같은 남자 따윈 죽게 내버려두고 싶지만, 또 그렇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창을 보니 이제 시간은 정오를 지난 때인 것 같았다. 해가 지기 전에 들렸다 가는 게 좋을 듯 했다.

*

후작 가에 다녀오라는 린도의 추진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비올렛은 딱히 방문하겠다는 서찰을 보내지 않고도 어렵지 않게 후작 가에 찾아갈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후작가의 앞에 선 비올렛은 잠시 멍하게 그곳을 보았다.

완전한 남으로서 이곳 앞에 서니, 참으로 낯설고도 익숙했다.

이곳에 열 살부터 열여섯 까지 육년을 살았다. 그곳에서 살았던 육년보다. 신전에 거했던 2년이 더욱 길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어린 비올렛은 후작가가 세상의 전부였고,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살아왔다. 예전에는 저 곳이 넓다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곧이어 철문이 열리며 집사가 걸어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성녀님.”

집사가 나와 비올렛을 맞이했다. 비올렛은 모습을 숨기기 위해 머리에 썼던 두건을 벗었다. 모자를 벗자 아름다운 은발이 찰랑였다. 비올렛은 자신의 앞에 보이는 노인을 향해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클래하들.”

비올렛이 잔잔히 미소지으며 말하자 집사는 눈을 크게 떴다. 그는 비올렛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 듯 했다. 클래하들은 묘한 눈으로 비올렛을 보았다.

“후작은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셨나요?”

“그러합니다. 아무래도 임무 수행 도중에 다친 상처가…….”

사람들은 에셀먼드가 임무수행도중에 다쳤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가 말룸이 나타났던 도시에 나타났던 것은 린도와 비올렛, 그리고 성기사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딱히 큰 외상이 없으신데 저렇게 의식을 못찾으시니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렇군요.”

비올렛이 쓰러졌던 것은 사흘, 에셀먼드도 똑같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린도가 했던 말이 맞았다. 말룸에게 다친 상처가 쉽게 나을 리가 없었다.

“안내하세요.”

비올렛의 말에, 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올렛은 집사의 안내를 따라 천천히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봄이 온 것인지 후작가의 정원에는 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그 정원길을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사용인들이 한명도 없었다. 아마 성녀가 이곳에 온 것을 숨기기 위해 별관으로 숨긴 듯 했었다. 앤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보는 것은 무리이지 싶었다.

비올렛이 안내 된 곳은, 후작의 침실이었다. 당연하겠지만, 후작의 방은 에셀먼드의 방이 되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최소한의 가구만 놓은 간결한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후작의 침실엔 들어가 본적이 없었지만, 아마 후작이 있었을 때도 이것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니 새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와 함께 에셀먼드가 누워 있었다. 그는 잠들어 있었다. 그때 집사가 말했다.

“그럼 전 이만.”

이만 이라니? 비올렛이 무엇이라 말하기도 전에 집사가 빠르게 물러났다. 비올렛은 얼굴에 물음표를 띠웠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비올렛은 조용히 눈 앞에 있는 에셀먼드를 보았다. 손을 가져다 대니, 그의 규칙적인 숨결이 느껴졌다. 혈색이 약간 돌아왔으나 에셀먼드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바보같은 사람.”

비올렛이 조용히 중얼거리며 에셀먼드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식은땀에 살짝 젖어있는 에셀먼드의 짙은 푸른 머리카락을 쓸었다. 단 한 번도 제대로 만져본 적 없는 그의 얼굴의 감촉을 기억하려면, 이정도 심통을 부리는 것은 나쁘지 않으리라. 그녀의 손가락이 눈썹사이를 내려가, 오똑한 코를 쓸어내리고 옆으로 미끄러져 내려가 그의 뺨을 쓸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이 머뭇거리더니, 뺨에서 입술로 내려왔다.

손가락 너머 까슬한 입술의 감촉과 함께,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비올렛은 마치 처음보는 것처럼 에셀먼드의 감촉을 기억했다. 이윽고 비올렛의 손이 그의 목을 타고 내려왔다. 그녀의 손이 목을 쓸자 딱딱한 쇄골이 느껴지며 그 후로는 부드러운 옷감의 감촉이 느껴졌다. 환자 앞에서 너무 욕심을 부렸다 생각한 비올렛은 손을 뻗고 조심스럽게 배의 단추를 끌렀다. 탄탄한 근육이 잡힌 그의 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린도의 처치로 겉보기에 그의 몸은 멀쩡해 보였다.

비올렛은 지체하지 않고 그의 배에 성력을 쏟았다. 이상하게도, 성력은 힘이 약하기는 했으나, 비올렛이 아직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기에 약해진 만큼 오랫동안 그의 배를 치료할 수 있었다. 희뿌연 빛을 그의 배에 불어넣고, 비올렛이 고개를 들어 잠들어 있는 에셀먼드에게 말을 건넸다.

“무슨 꿈을 꾸고있어요?”

그러나 에셀먼드는 당연히 대답하지 않았다. 얼굴을 찡그린 걸 보니, 별로 좋은 꿈은 꾸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적어도 그 꿈이 자신에 관련된 꿈이 아니기를 빌었다.

이 사람은 자는 것도 이렇게 인상을 쓰면서 잔다. 자는 것을 별로 보지는 못했지만 그랬다. 비올렛은 검지를 들어 장난스럽게 그의 미간을 찔렀다. 나중에 깨어난 그가 아무것도 변한게 없다는 것을 깨달아주길 바라고 또 바랐다. 이젠 다시 그녀의 앞에서 목숨을 거는 멍청한 짓 따윈 하지 않기를 바랐다. 아니, 이제 목숨을 걸만한 일따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비올렛은 이제 성력을 잃고 평범한 여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거대한 가문의 수장으로서 살아갈 그는 마땅히 누려야 할 영광의 길을 걸을 것이다.  이제 그와 그녀의 접촉점은 얼마 남지 않을 것이다.

성력을 쓰면 쓸수록 에셀먼드의 혈색은 좋아지고, 미약한 숨 역시 숨통이 트인 듯, 그의 숨결에 따라 탄탄한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배의 상처쪽을  마친 후 어깨와 목에 있는 상처도 천천히 치료한 비올렛은 허리를 일으켰다. 창가를 보니 해가 지려 하는지 짙은 주홍색으로 물든 하늘이 보였다.

비올렛은 에셀먼드의 얼굴을 보았다. 하루종일 보라면, 하루종일 봐도 질리지 않은 얼굴일 것이다. 비올렛은 잠시동안 에셀먼드의 자는 얼굴을 보았다. 아까와는 달리 편해보이는 얼굴이었다. 문득, 충동적으로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는 환자에게 사욕을 채우려 그런 짓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설령 그것이 마지막일지 모르더라도. 미련만 남을뿐, 비올렛은 더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비올렛은 미련없이 몸을 돌려 방 바깥으로 나갔다.

복도로 나가니,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집사 역시 어디로 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후작의 방에서 나온 비올렛은 저택의 계단을 내려갔다. 바로 아래층은 비올렛의 방이 있는 층이였다. 비올렛은 자신도 모르게 계단으로 마저 내려가지 않고, 복도로 걸어갔다.  복도 왼쪽 끝에 있는 방이 비올렛이 묵었던 방이었다.

비올렛은 그 방문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신전으로 갈 때 미련을 버리고자 두고 간 것이 많았다. 이자카가 선물해 준 벽옥 장신구라던가, 에이든이 가끔가다 선물해준 이상한 유머집이라던가, 어렸을 적, 에셀먼드가 처음으로 사주었던 싸구려 동화 세닢에 샀던 목걸이라던가.

그 목걸이를 가져가지 않았던 것은 역시 조금 아깝지 않았나, 비올렛은 후회했다. 어렸을 때를 떠오르니, 비올렛은 그때의 에셀먼드가 떠올랐다. 어린 비올렛에게 에셀먼드는 어른처럼 보였지만 그도 이제 갓 열여섯이 된 소년이었다. 그때 비올렛은 그를 무척 두려워하긴 했었다.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 아직도 그녀의 앞에서 죄인들의 목을 자른 에셀먼드는, 비올렛에게 너무나 두려운 기억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그가 열여섯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도 사실은 무척 어렸던 것이다. 아무리 후계자이며 천재라 칭송받아도, 그는 서툴렀고, 어쩌면 비올렛을 어떻게 대해야 했는지에 대해 무지하여 그랬을 수도 있다. 어릴때를 생각하자 비올렛은 자신의 방이 보고 싶었다. 방 문 앞까지 선 비올렛이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한번 들어가시지 그러세요, 아가씨?”

반가운 목소리에 뒤를 보았다. 앤이 활짝 웃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오늘 자정에 올린다 말씀드렸는데 기다리시면 어또케요 ㅠ.ㅠ......

사기치지 않았는데 사기치는 느낌이 드는것.

-앤이 등장했다! 아 앤 너무좋아요!

-에드는 등장했지만 드르렁..드르렁....

1. 우유잼이 되게 큰..반향을 불러일으키네..좀 만들기 번거롭긴 하지만 만들면 맛있어요 이벤트로 열까요? ㅋㅋㅋ마침 공병도 사놨는데... 근데 여러분 그거 유통기한 2주밖에 안돼요... 우유랑생크림을 집어넣은거라서...당연하겠지만 짧습니다..막 탈도 날지도 모르고 그래요...ㅠㅠ 진짜 맛있지만 여러분들 속에 탈날까봐 못한다능..

2. 흠. 그동안의 전개가 꿈도 희망도 없이 암울해ㅓ 아쉬운 감정은 이해합니다만 코멘트에 도를 지켜주셨으면 하네요. 가끔 표현이 넘 직설적이고 노골적이라 상처받은적이 많아요.

이러면 상처입은 금꽃은... 달달씬을 10개를 쓸걸 하나만쓸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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