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2 꽃이 지다 =========================================================================
세상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신의 휘광이 내려 앉아 그들을 따스하게 어루만졌다. 빛의 기둥이 점점 더 세를 불려나가 하얗게 퍼졌다. 악의 저주가 깃든 그 모든 것들이 사그라 들었다. 모든 신의 피조물들이 그 빛을 맞아들였다. 그 빛을 맞이하는 자는 누구나 다 신을 찬양할 수 밖에 없었다. 창조주의 힘을 경외하고 찬양하는 것은 생명의 본능이었다.
죽어있던 것은 사라지고, 생명이 다시 평화롭게 노래할 수 있는 때가 도래했다. 나라의 모든 이가 그 신의 광휘를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저주가 내려앉은 도시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 성기사들, 그리고 교황 뿐이었다. 시야를 멀게 하는 하얀 빛에 눈을 뜨지 못하자, 이곳에 서 있는 신을 섬기는 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신에게 기도했다. 이것은 신께서 약속한 우리의 승리니라! 그 빛속에서 피조물들은 환희하고 또 환희했다.
핏빛하늘이 사라져도 잿빛 구름이 껴 어둑했던 하늘에 서광이 드리웠다. 하늘은 이전처럼 푸르렀으며 그곳에는 솜과 같은 구름이 평화롭게 흘러갔다. 마침내 태양이 드리우자, 그들은 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신이 승리를 약속하여, 신의 대리인을 보내었다. 그리고 그 성녀는 승리를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따스한 빛무리속에서 오로지 린도만이 얼굴을 굳히며 그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기사들 역시 서서히 기도를 마치고, 서서히 손을 내렸다. 환희의 달콤한 여운은 계속 남아 있었으나. 도시 입구에 서 있던 성기사들의 얼굴 역시 서서히 굳어갔다. 신의 광명 후에는 씁쓸한 뒤처리만이 남아있었다.
“에셀먼드... 아니, 에르멘가르트 후작에 대해서는 어찌 하실 겁니까.”
린도의 옆에 서 있던 로디온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본디 그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그 성스러운 싸움을 수호하기 위해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에셀먼드를 그 성녀와 말룸의 전장안에 집어 넣어버렸다. 그러나 그들도 나름의 변명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다.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흑마를 타고 쏜살같이 질주해 오던 그의 모습을 보며, 검을 든 기사들은 그 눈을 차마 마주하지 못했다. 그들이 본 것은 에셀먼드의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이었다.
“성하, 왜 그를 들여보낸 겁니까.”
로디온이 린도에게 물었다. 린도는 그저 빛이 천천히 사라지는 도시를 보고 있었다.
“에르멘가르트 경이 죽기라도 바란겁니까?”
그 말에 린도의 얼굴이 찡그러졌다. 서늘한 시선이 로디온에게 향했다.
“그대들도 막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
“그대들은 죽기위해 온 자를 막을 수 있었나?”
그 말에 성기사들 역시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비록 신전의 기사도와 왕도의 기사도가 다를지언정, 그들은 같은 기사도를 가지고 있었다. 가디언의 맹세를 깼든, 어쨌든 간에, 에셀먼드는 그곳에 들어갔다. 분별없는 자가 아니었으니, 분명 들어가는 것은 말룸에게 죽으나 사형당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입맛에 씁쓸함이 남았다. 그들은 에셀먼드를 질투했다. 그러나 모든 작위를 버리고 진실하게 성녀 하나만을 지키려던 그를 흠모하기도 했다. 성기사들도 그 진실된 것이 마냥 고귀한 기사도의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짐작했다. 그러나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 목숨을 거는 행위가 잘못된 것인가.
겨우 열여덟이 넘은 여자를 저 지독한 악기에 밀어넣고, 자신들이 한짓이란 고작 도시주변을 에워싸 그곳을 감시하며 성녀가 그녀의 의무를 끝내기를 기다린 것이었다. 그것이 옳은 행위인가?
의연한 얼굴로 들어가던 비올렛이 억지로 태연을 가장한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들의 성녀는 언제나 무표정했으나,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다정한 같은 사람이었다. 그 두려움을 물리치고. 고귀한 희생으로서 이 나라를, 더 나아가 이 세상을 지켰다.
성기사들은 가치판단을 오로지 신에게 두었다. 그렇다면 신은 왜 나약한 여자아이에게 힘을 주었으며, 그 혼자만이 말룸과 대적하게 만들었는가. 차라리 젊은 남자에게 그런 힘을 주었다면, 어쩌면 그들은 이런 찝찝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빛의 기둥이 실과 같이 가늘게 변하고, 이내 사라지자 린도가 발걸음을 떼었다. 로디온을 비롯한 성기사들이 자연스럽게 뒤를 따랐다.
“나 혼자 가겠다.”
린도가 따라오려는 성기사들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따라오지 말라는 뜻이었다
“아직 말룸이 사멸했는지 아닌지는 모르는 법이다.”
“위험합니다 성하.”
그리고 린도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 교황이 할 일이다. 제일 먼저 그곳을 향하는건 교황의 역할이라 되어 있어.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으면 나중에 문헌에서 보던지.”
린도가 그렇게 말하자 성기사들은 따라갈 수 없었다.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린도가 천천히 도시에 들어갔다. 린도의 새하얀 옷이 도시 안에 빨려드는 것처럼 사라졌다. 참으로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말룸을 격퇴하러 간 성녀가 들어갔을 때, 이곳은 마치 성녀를 집어삼키려는 듯 그 붉은 아가리를 벌리고 성녀를 삼켰다. 그러나 모든게 끝난 도시는, 초록싹이 덮여 미소지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맑은 새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그들도 직감적으로 이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새파란 하늘아래서 죽어있던 도시는 그렇게 초록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렇게나 나타난다 안나타난다 의견이 분분했던 말룸은 나타났고, 이번에도 성녀에 의해 격퇴되었다. 결국 신은 또 한번 승리한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안도가 퍼져나갔다.
*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쿨럭 하고 피를 토해낸 비올렛은 몸을 바르르 떨었다. 하얀 신의 빛이 폭사되고, 비올렛의 앞에 서 있었던 말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눈앞은 그저 말룸이 있었던 흔적인 검은 재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비올렛은 그제야 그녀가 완벽하게 승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피를 토하고도 내장이 끊어진 듯 아파오며 구역질이 났다. 갑자기 비올렛의 허리를 누군가 감는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 묵직한 무게가 비올렛의 등 뒤에 실렸다. 그리고 미약하나 뜨거운 숨결이 귓가에 닿았다. 비올렛은 허리를 보았다. 피묻은 남자의 손은 달달 떨리며 비올렛을 안으려 하고 있었다. 차마 뒤를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아 비올렛은 그 팔을 보며 멍하게 서있었다. 팔이 힘없이 툭 떨궈지며 완벽하게 사람의 무게가 비올렛의 등에 실렸다. 온 몸에 힘을 잃은 비올렛역시도 그 무게에 같이 넘어져 버리고 말았다.
에셀먼드의 몸이 비올렛의 몸 위에 쓰러졌다. 배에 축축한 느낌이들었다. 에셀먼드의 배에서 흐르는 피가 묻은 것이다. 비올렛의 정신이 아연해졌다. 그녀는 젖먹던 힘까지 들어 에셀먼드를 살짝 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안돼.”
한눈에 봐도 에셀먼드의 몰골은 참혹했다. 말룸의 손톱은 멀리서 보는 것보다 더 무자비하게 에셀먼드의 배를 파헤쳐 버린 것이다. 그의 몸이 뉘여있는 대지에 에셀먼드가 흘린 피가 계속 적셔나갔다. 에셀먼드의 시선이 비올렛을 향하고 있었다.
“안돼, 안돼!”
눈에서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비올렛은 달달 떨리는 손을 들어 성력을 쓰려 그의 배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나 모든 성력을 소모한 비올렛의 손에서는 희뿌연 빛만 나올 뿐 더 이상 성력이 나오지 않았다.
도시를 가득 채운 신의 휘광도 겨우 도시 안에 깃은 짙은 저주를 물리치고 죽어가는 작은 생명들을 살리는게 고작이었지, 에셀먼드의 상처를 낫게 할 수는 없었다. 자신에게 향한 에셀먼드의 시선을 보며 비올렛은 에셀먼드에게 사정했다.
“제발......”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정하는지 몰랐다. 그저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일을 해결할 수 없는 무력한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에셀먼드의 손이 움찔거리며 비올렛의 볼에 닿으려다 힘없이 떨구어졌다. 그에 비올렛이 놀라 에셀먼드의 얼굴을 바라보자 피에 젖은 입술이 무엇이라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가 눈을 감았다. 그러나 비올렛은 그것을 듣지 못했다. 그저 무언가를 말한 그의 입모양이 멈추었고, 그가 눈을 감았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내가 당신 살려내서, 진짜 그렇게 죽고싶으면, 내가 어떻게든 어떻게든 할테니까......!”
제발 죽지 말아요. 비올렛이 눈물을 쏟아냈다. 출혈은 더욱 커져 비올렛이 꿇고있는 무릎까지도 피가 닿았다. 비올렛은 알 수 있었다. 에셀먼드는 곧 죽을 것이다. 그러나 비올렛은 에셀먼드가 차마 죽는 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가 죽는단 말인가. 비올렛은 에드를 구해내려 세상을 구해낸 것이다. 세상을 구해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에셀먼드가 없는세상이 아닌가. 이곳에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 잘난 성력도, 에셀먼드를 위해 쓸 수 있는게 남지 않았다.
“알잖아요, 에드, 내가 뭐 때문에 노, 노력했는데, 제발. 내가, 뭐 때문에 이렇게 ....”
호흡은 계속 가빠져 오며 비올렛은 그저 무력하게 눈물만 흘렸다.
“모르죠? 모를거야, 응? 당신은 모르잖아. 제발 에드, 당신이 내 세상이라서, 내가 이렇게 노력한거야, 응? 알잖아요, 아니 모르지, 당신은. 몰라서 이렇게 잔인한거야.”
죽기위해서 왔다고, 그렇게 가슴을 찢어놓고 정말로 죽어버린다. 얼마나 자신을 미워하면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는 것일까. 그를 지키기 위한 모든 그녀의 행동을 무력화시키고, 이렇게 그녀를 혼자두겠다 말하며 이기적이게 이런 짓을 벌이고 있다.
손에서 나오는 성력이 사라져간다. 비올레의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간다. 그녀역시 한계에 부딪혔다. 몸에 피를 내볼까? 그렇다면 그의 상처가 나으려나? 비올렛은 자신의 목 언저리에 손을 뻗었다. 이미 피는 위험할 정도로 나고 있었으나 비올렛은 신경쓰지 않았다. 화, 화살, 화살을 들어서. 목을 한번만 더 찌르면 될거야.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화살을 들어 목을 찌르려 했다.
“비올렛, 그만해.”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린도가 서 있었다. 그는 마치 순백의 사자처럼 서 있었다. 신의 가호가 내린 곳에, 신을 섬기는 사제의 하얀 신관복이 바람에 부드럽게 나부꼈다. 이 순간 린도는 마치 절대자처럼 보였다.
린도는 알 수 없는 금안으로 비올렛과 에셀먼드를 동시에 바라보고 있었다. 비올렛은 린도가 에셀먼드를 죽이러 온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곳에 비올렛 외에 살아있는 자는 필요 없으니, 그렇게 죽이러 온 것이다.
분명히 그런 것이다. 이렇게 그의 숨결은 식어가는데, 그 아까운 숨결마저도 앗아가려 온 것이다. 그러나 절망적이게도 비올렛은 지금 에셀먼드를 지킬 힘이 없다.
“린도 제발... 부탁이야.”
제대로 열리지도 않는 입술을 열어 비올렛은 린도에게 사정했다. 비올렛은 이 순간 무력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처럼 울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그저 비굴하게 빌며 울었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해보지 않았는가, 아무 힘이 없어서 구걸하는것. 그녀는 준비가 되어있었다.
“제발, 내가 모든지 할게. 제발 부탁이야 린도. 이 사람이 없으면 나도 죽고 말거야. 제발..”
무엇을 부탁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비올렛은 빌고, 빌고 또 빌었다. 성녀와 교황이 동등하다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에셀먼드가 죽어가는데. 그렇게 지켜오던 그녀를 지탱하는 둑이 무너져 가는데. 마음이 이렇게 부서지고 있는데.
원래 비올렛은 그러했다. 성력이 없는 비올렛은 이제 천민이 되었고, 교황에게 비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비는 것 따윈 아무렇지도 않았다. 린도는 마치 인형과 같은 표정으로 비올렛의 비굴한 애걸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그의 입술이 열렸다.
“넌 참 잔인하구나. 비올렛.”
린도가 조용히 말했다. 고저 없는 음성이 울려 퍼졌다. 린도가 천천히 몇 발자국 더 다가왔다. 비올렛은 자신도 모르게 에셀먼드의 머리를 끌어안고 방어적인 표정을 지으며 린도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린도는 비올렛의 맞은편, 에셀먼드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하얀 성복이 피로 더러워졌다. 린도가 비올렛의 푸른눈을 보며 입술을 열었다.
“바로 내 앞에서 네가 죽는다는 말을 하다니 말이야.”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비올렛이 눈을 크게 뜨며 린도를 바라보자 린도의 금안이 부드럽게 휘었다.
“어떻게 내가 네 부탁을 거절할 수 있겠어?”
그리고 린도의 손에서 하얀 성력이 뿜어져 나왔다. 비올렛은 그 일련의 과정을 멍하게 지켜보았다. 린도의 새하얗고 부드러운 손을 타고 나온 하얀 성력은 순식간에 에셀먼드의 상처를 메꾸었다. 순식간에 창백했던 에셀먼드의 안색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
로디온은 무척이나 불만어린 시선으로 린도를 보았다. 지금 교황은 미친게 틀림 없었다.
“그 말을 믿으라 하십니까?”
“무엇을 말하는가? 감히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건가?”
“눈앞에서 에셀먼드 에르멘가르트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를 잡아들여 사형시켜야 합니다.”
“그래, 그랬지.”
린도는 귀를 후비적거렸다. 성기사들 몇이 린도의 의중을 눈치 챈 듯 웅성거렸다. 그러나 로디온은 이것을 넘어갈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린도는 귀를 후비다 말고 로디온을 보며 말했다.
“에셀먼드 에르멘가르트는 그곳에 없었다. 성녀는 쓰러지기 전, 에셀먼드 경이 물러나라는 성녀의 명령을 듣고 사라졌다 했다. 이것이 무엇이 이상한 것인가?”
“성역을 침범한 사람입니다.”
“쯧쯔.”
린도가 팔짱을 끼며 로디온을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초대 왕과 교황의 칙령은 성녀와 말룸의 싸움에 그 누구도 끼어들지 말라고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에 부속된 것으로서 생긴 법령이 성역에 접근한 사람에 대한 처분인데 경은 융통성이라는게 머릿속엔 있는가?”
쯧쯧하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린도는 도저히 안되겠는지 아, 아, 하고 목을 풀었다.
“만약 그딴 짓으로 그 멍청한 기사를 처형했다고 하면, 비올렛이 얼마나 화를 내겠어? 그대, 감당할 수 있어?”
린도의 말에 로디온도 할말을 잃은 듯 했다. 로디온은 아무리 그래도 비올렛에게 약했다. 성녀라는 여린 존재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성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비올레에게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곳 사람들을 몰살시킬정도로 거대한 힘을 가졌지만 약해보이는 본모습, 그리고 그녀 나름의 필사적인 처연함은 로디온의 신념을 흔들었다. 예를들어, 말룸을 물리치러 도시에 들어갔던 비올렛을 보며 신의가 이상하다 말하는 것이 그러한 반증이었다.
“로디온 경, 그 명령을 내린 것은 신이 아니라. 초대 국왕이라는 인간이지. 우린 성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신의 명령을 따른거야. 그리고 그 멍청한 기사 역시 마찬가지지. 신의 말에 따르자면 에셀먼드 경은 잘못한 것은 없어.”
린도의 말에 로디온이 못마땅한 듯 했다. 그러나 그로서도 린도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아그레시아의 절대 금기를 따르지 않은 것이라면, 이야기는 다르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렇게 중요시하던 국왕과의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초대 국왕이 내건 금기를 어기는 것이다.
“성하.”
“다시 한 번 말한다. 그곳에 에르멘가르트 경은 없었다.”
이곳의 책임자는 교황이었고 그가 직접 에셀먼드가 이곳에 없다 선언했다. 설령 교황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떻게 잘못된 것이겠는가.
“성녀님의 치료가 끝났습니다.”
“그래? 마차로 모셔라.”
린도의 명령에 대답을 들은 의원이 손짓했다. 그리고 설치된 간이 막사에서 비올렛이 걸어나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비올렛을 향했다. 비올렛은 흐릿한 눈으로 그들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그때 로디온의 시선이 비올렛과 린도를 번갈아 보았다. 린도의 성복은 거의 피로 물들어 있었다. 반면, 비올렛의 상처는 린도의 옷에 묻은 출혈량에 비해 다소 적었다.
“비올렛!”
린도가 달려가 비올렛을 부축했다. 비올렛은 린도에게 몸을 기댔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비올렛을 향했다. 그때 린도가 몇 명의 기사들에게 눈짓을 주자, 그들이 몰래 도시 안으로 향했다.
“괜찮아?”
“참을만 해.”
경장을 벗어버린 비올렛의 얇은 옷에는 군데군데 엄청난 양의 피가 묻어 있었다. 얼굴에 서린 생채기와 목에서 흘러내린 피를 보고 성기사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분별있는 자들이라면 바로 눈치챌 것이다. 상처에 비해서 비올렛의 옷에 묻은 피도, 린도의 성복에 묻은 피도 지나치게 많았다. 로디온이 비올렛에게 다가갔다.
“성녀님……. 이제…….”
“수도, 수도로 갑시다.”
비올렛이 로디온의 말을 끊고 대답했다. 식은땀을 흘리는 그녀의 눈과 로디온의 눈이 마주했다. 로디온은 경악스러웠다. 지금 이 몸상태를 가지고 수도를 가자고 하는 것인가. 수도로 가려면 약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걸린다. 몸이 버티지를 못할 것이다. 그러나 비올렛은 이상하게도 수도로 가자고 주장하고 있었다. 마치 이곳을 빨리 떠나기를 원하는 것처럼.
로디온은 비올렛의 파란 눈을 보았다.
이제 이들은 평화로울 것이다. 다음 대 말룸이 나타나고, 다음대 성녀가 나타날때까지. 성녀는 말룸만을 위해 키워졌고, 그 임무를 완수했다. 이젠 모든게 끝났다. 그리고 이 소녀는 초라하게 쓰러진 채 린도에게 기대고 있었다.
로디온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이룩한 평화, 그들이 숨쉬고 사는 세상은 저 소녀에 의해 지켜진 것이다. 비올렛의 체구는 너무나 작았고, 그녀의 팔은 너무나 가늘었다. 고통을 참는 듯 새하얗게 질린 얼굴에 푸른 눈만이 간절하게 로디온을 보고 있었다. 로디온이 조용히 대답했다. 로디온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교황의 눈짓에 몰래 들어간 기사에 대해 추궁해야 할지, 이곳에서 몸을 쉬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픈 몸으로 수도로 가자는 비올렛에게 쉬어야 한다고 말해야 할지. 로디온이 주위를 둘러보니, 성기사들 역시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분명 그들도 교황의 석연찮은 주장과 수도로 가자는 성녀의 고집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그럼에도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고 있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성녀님, 나의 신의 대리자시여.”
그래, 에셀먼드 에르멘가르트는 그 신성한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다. 설령 끼어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벌하는 것은 신이지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초대 국왕이 내린 금기는 인간의 것, 신이 내린 계시가 아닌 것이다.
============================ 작품 후기 ============================
다다음편이 제가 제일 쓰고싶은 편이라.. 좀 많이 썼어요! 여러분!! 오늘 추천 천!! 코멘 백개 넘으면 내일 저녁에 또 갈게여! 물론!! 내일 모레도 가서 오늘, 내일, 내일 모레 소설이 올라갈거에요... 그리고 아마 설연휴+2부교정때문에 휴재를 때릴 것 같지만 뭐 어때여!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지만.. 네.. 배에 구멍 뚫린 에드 살았어! 살았다니까!
(심각할정도로 아무도 긴장하지 않았다..)
(이미 에드가 살아있다는 4부 예고를 내가 손수 했다.)
후 1부 제가 읽는데 진짜.. 마치 초딩시절의 내 일기를 보며
으으으ㅡ으..흑역사아아아흐으으윽.. + 교정의 압박까지 살려주세여 제가 잘못했어여!!
맞춤법 고치는건 별로 안힘드는데. 미숙한 문장과 해리포터 패러디만 쓰다 와서
약간 번역체였던 문장을 고치려 노력하고 있어요.
그동안 해포패러디만 써서. 번역투 느낌나게 일부러 문체를 썼더니 이렇게 고착화 되어버린거 그래도 지금은 안정되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흑.
역시 교정은 좀 빠른게 아닌가? 할때 시작하라는게 진리네요. 2월 1일을 목표로 교정하고 있었으나 결국 2월 5일에 제출하게 될것같은 슬픈 예감. (나혼자수다를 떤기분이다.)
우유로 잼만들 수 있어요! 우류 한 500에 생크림 100미리, 설탕 적당히 섞으면 우유잼이 만들어져요! 빵에 발라먹으면 진짜 완전 짱맛있어요. 저 사실 제가 만드는 연성물 칭찬안하는 편이지만 이건 맛있답니다.
제 특기는 얼그레이 잼이랑, 녹차잼, 우유잼, 노잼 이에여(이상한드립) 나머지 초코잼, 커피잼은 먼가... 초코잼은 걍 뭐 제티맛. 커피잼은 더위사냥맛난다는 소리들엇..
+ 그리고 이건 확실히 말씀드려야 할것같아 말씀드리는데. 지금 후제꽃 표지같은 경우엔 커미션 안맡아주신 독자님께 그냥 제가 돈낼테니 빨랑 그려줘이잉 제바아알 찡찡하고 만들어 준거랍니다.
설령 커미션을 맡겼다해도, 그사람들은 그냥 돈에 대해 그림으로 대가를 지불한 것이지 그림에 대해 평가를 들으려 그림을 올린게 아닐거에요. 제 글이 여러분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시간을 내어서 주신그림마저 이건이렇고 저건 저렇고의 지적사항은 지양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분들은 인터넷으로 연재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선물받은 물건에 대해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평가하는거.. 솔직히 좀.. 아닌것같은데요.. 또 남이 돈주고 산 물건에 왈가왈부 하는것이 매너에 어긋난다는 말은 차치하고서라도 대가가 있어서 커미션이라고 했지 반 팬아트에요. 왜 저분은 밤을 지새서 그림을 그리고 모르는 사람에게 머가 어색하다는 평을.. 들어야하는지...?
가상캐스팅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안되는걸 팬심으로 시간을 내주셔서 해주신거에요. 저분들은 소설에 대한 애정으로 제게 보낸것이지 누군가에게 평가받으려고 올린게 아닙니다. 그분들은 그게 어울린다 생각해서 열심히 한건데 안어울린다 하면 당연히 힘이 빠져요. 마동자카빼고. 그건 안어울린다 소리들어도 쌈
싫은소리 해서 너무나 죄송합니다. 제 마인드는 유료든 무료든간에 돈을 지불해도 서로간에 매너는 지켜야 한다 생각해요....
싫은소리 해서 죄송합니다!
그럼 여러분! 오늘 추천수 천 넘길수 있을까요?!!!!!
+ 아 맞다.. 또 후원쿠폰!!
아라벨리아님, 마뉴엘님,마파~~두부님(저이거짱좋아함),아리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저 원래 항상 늦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