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9 꽃이 지다 =========================================================================
[알고 있니? 생명은 언제나 살고자 하는 갈망이 있단다. 신이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이지. 그래, 창조의 의지를 가지며 무언가를 만드는 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우리가 숭배하는 신이라면, 파괴의 의지, 그러니까 우리가 본래 있었던 허무(虛無)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신 역시 존재한단다. 하지만 생명에게,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있어서 그 파괴의 의지는 생존의 의지와는 반대 되는 것, 즉 그들의 '생명'의 목적인 '살아가는 것'을 '죽음'으로 위협했단다. 그리하여 피조물들은 그것을 악(惡)이라 규정짓고 그 허무를 원하는 신, 그를 마귀라 불렀지, 구자르트는 그 존재를 디아볼로스(diávolos-악마)라고 부르더구나.
우리의 신이 떠오르는 해라면 마귀는 저무는 달이었고, 우리의 신이 타오르는 생명이면, 그 마귀는 꺼져가는 죽음이었으며, 우리의 신이 유동(遊動)의 불꽃이라면 마귀는 극지(極止)의 얼음이었고
우리의 신이 우릴 창조했다면,
마귀는, 우리를 다시 허무로 이끌 '또 하나의 신'이었지.
말룸을 보낸 자를 단순한 ‘마귀’라 부르는 것은 잘못된 말이야. 왜냐하면 그 역시 ‘신’이었기 때문이지. 우리 인간들이란 얼마나 바보같은 존재인지. 신이라는 존재가 우리를 사랑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지. 생명들을 무로 돌리며, 창조와 다르게 허무로의 회귀를 바라는 존재 역시 ‘신’이라는 것을 우린 몰랐던 거지. 아,아아아아! 미안! 이야기가 너무 어려웠나? 우, 우리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 꾸나! 그래 어디까지 했지? 그래, 이제 악신의 대리인인 말룸이 나타났구나!]
“아아.”
자신의 성 테라스에 선 남자가 길고 가느다란 손을 하늘로 뻗었다. 지옥의 문을 지키는 괴수가 세상을 탐식하려 벌리는 아가리 의 점막 색과 같은 새빨간 하늘은 그의 손가락마저 집어 삼키려는 것 같았다. 드디어 그의 붉은 증오가, 비탄이 하늘을 붉게 물들었다.
드디어 그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때가 도래한 것이었다.
그는 하늘을 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가 비탄했고, 사람들이 비탄에 빠졌고, 이젠 하늘역시 비탄의 붉음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늘과 같은 빛깔의 머리색을 한 남자는 금안을 부드럽게 휘었다.
“공작 각하. 이것이!”
그의 수하들이 몰려들어와 하늘을 보았다.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했는가, 이 피로 물드는 하늘을 얼마나 바랐는가. 하늘을 보라 저 붉음은 마치 신이 흘린 피 같지 않은가. 그의 황금색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드디어, 자유로워질 시간이구나.”
그가 속삭였다. 흘러내린 맑고 투명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턱에 고여 떨어졌다. 그 공포스러운 붉은 빛이 구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는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성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부드러운 목소리가 목을 타고 흘러나갔다. 그에 그 옆에 서있던 집무관이 대답했다.
“말룸이 나타날 곳이라 추정되는 시스벨 남작령에 내려갔다고 합니다.”
“그래요?”
눈물을 흘리는 체자레의 모습에 당황한 듯 잠시 말을 더듬었다. 공작이 왜 울고 있는 것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아닌, 처음으로 활짝 웃고 있었다. 집무관들이 그 모습을 보고 어딘지 모를 위험을 느꼈다. 광기라는 것이 행동을 통해 나타난다 하지만, 체자레 티게르난의 황금색 눈동자는 묘한 열기와 이상한 희망으로 반짝거렸다. 그것은 평범한 반응은 아니었다.
그들은 체자레를 지켜보다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혼자 남은 체자레는 서서 피비린내가 머금은 바람을 느꼈다. 그 붉은 머리카락이 어두운 루비색의 머리카락을 흐트려 놓았다.
“비올렛.”
그는 잠시 동안 그 성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새하얀 은발의 소녀는 고독한 싸움에 혼자 걸어 갈 것이다. 그 곁에는 누구도 자리하지 않으며, 그 고독한 싸움은 오로지 그녀만의 것 이었다. 그것이 법도였고, 정의였으니. 그 생명들의 추잡한 생존에대한 갈망을 이뤄주기위해 그 고결한 발걸음으로 그녀만의 성전에 나가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얼마나 고결한가,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이 얼마나 숭고한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생명은 다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증오스러운 생명 역시 존재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그 두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
몸을 감싸던 아름다운 드레스는 이미 벗은지 오래였다. 그녀는 새하얀 성복을 입은채 알현실 가운데에 서 있었다. 귀족들은 불안한 얼굴로 서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백이십년동안 나타나지 않던 그 불길한 하늘이다. 밤과 낮의 경계가 사라진 하늘은 계속 붉은빛을 내뿜었다.
저들중 비올렛을 무시한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천민이라고 무시하며 국왕의 편에 붙어서 비올렛을 처형하자고 한 무리들도 이 날이 다가오니 간절한 얼굴로 비올렛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사뿐한 걸음으로 샤를루스의 앞에 섰다. 샤를루스는 왕좌에 앉아있지 않고 내려와 비올렛을 보고 있었다. 샤를루스의 호박색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스승님.”
공식적인 자리인지라, 공대를 써야함에도 불구하고 샤를루스는 비올렛을 스승이라 불렀다. 비올렛은 샤를루스가 걱정과 공포, 미안함이 뒤섞인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웃는 것 밖에 없었다. 그것이 다였다. 샤를루스가 무엇을 말하려 했지만 비올렛이 얼른 입을 열었다.
“천민인 제가 폐하를 감히 마주할 영광을 누렸던 것은, 바로 오늘을 위해서입니다.”
어렸을 적, 말룸이 바로 내일이라도 찾아오면 어떻게 하나 겁에 질려 잠들었던 적이 있었다. 말룸이 온다면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지 되풀이 해서 생각했다. 물론 결과는 모두 그녀의 죽음이었다. 그녀의 삶을 상징하는 것은 없었지만, 그녀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은 바로 말룸이었다.
그 실체없는 공포와 비올렛은 언제나 싸워왔다.그리하여, 오늘날이 온 것이다. 무섭다. 두렵다. 그리고 이 다음에 벌어질 고통스러운 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이 아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후련하기도 했다. 그녀의 일생에 이루어야 했던 그녀만의 성스러운 의무를 이제 이행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비올렛의 차분한 말에 샤를루스가 아무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울보인 그가 울음을 참는 것이 그녀의 눈에는 보였다.
“그리고,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이유가 바로 지금을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비올렛이 린도를 보았다. 린도는 창백한 얼굴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아그레시아의 제 1의 금기. 말룸과 성녀의 신성한 싸움은 그 누구도 끼어들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약 천년전의 아그레시아를 세웠던 초대 왕이 세웠던 율법으로서, 역사서 한페이지에 언제나 붉은 글씨로 쓰여져 있는 것이었다. 그 신성한 싸움을 더럽히는 자가 있다면, 그 신을 모시는 자들을 이끄는 교황은 성녀의 싸움을 모욕한 자에게 손수 죽음을 내린다. 성녀가 교황의 곁에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싸움을 위한 교황의 안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린도는 물끄러미 비올렛을 보았다.
그녀는 이제 그 옛날처럼 딱딱한 표정이 성녀가 정말로 지을 법한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에 여유마저 어려 있어, 공포로 경직 된 알현실의 분위기가 점점 풀리고 있었다.
“폐하, 성하, 약속 드립니다. 다른 전대 성녀들과 마찬가지로 제가 패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녀의 단호한 말에 사람들 사이에 서린 긴장과 공포의 기색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러나 샤를루스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폐하?”
샤를루스는 그저 입을 꽉 깨물며, 손을 뻗어 비올렛의 손을 잡았다. 그 따스한 손길만으로도 그가 어떠한 감정으로 손을 잡은지 알고 있었다. 그 두 눈에 눈물이 어렸다.
“돌아오셔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다치셔도 안됩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비올렛은 여전히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았다. 그에 샤를루스가 쓴 웃음을 지었다.
“폐하께서 더 이상 걱정하지 않도록, 이 나라의 위험의 징조를 제 손으로 없애겠습니다. 신의 선택을 받아, 제게 주어진 성스러운 의무를 다하며 신위(神威)를 이 땅, 아니 모든 대지에 발을 디디는 생명들에게 보이겠습니다.”
그녀는 샤를과 린도에게 주었던 시선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알현실에 서 있는 이들 한명 한명을 보았다. 갑작스럽게 다가서는 성녀의 시선에 귀족들은 깜짝 놀랐다. 어렸을 적, 그렇게 무시하고 경멸했던 천민 소녀는, 지금 이 순간, 교황과 왕, 신과 인간의 경계에 넘어선 아득히 높은 자리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절대자와 같은 시선으로, 성녀는 무심하게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이 에이든에게 닿았고,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에르멘가르트 후작에게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그리고 비올렛의 입가에는 미소가 맺혔다.
그것이 여유의 미소인가 체념의 미소인가는 모른다. 그러나 처음으로 모든 것들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그 생존의 공포 속에서, 그녀가 존재하며 그녀가 우선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준비되어 있는 적절한 때에, 이렇게 준비되어 있는 성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한 것인가. 공포에 질리면서도 그들은 그 공포에 대신 맞서 싸워 줄 이가 있다는 것에 안심하고 있었다.
“걱정 말아요.”
모든 이들을, 신의 사랑을 대신 전하는 그 성녀가 따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순간, 탐욕스러운 자, 비열한 자, 거만한 자, 신앙이 없는 자, 모두 비올렛을 경외할 수 밖에 없었다. 남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자,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불살라야 하는 자. 하얗고 아름다운 감정으로 이루어진 자, 그녀는 진정 신이 내려 보낸 성녀였다.
*
분명 수도로 들어왔을 때에는 따스하고 흥겨운 축제 분위기였으나, 붉은 하늘 아래에 자리잡은 수도의 모습은 살풍경하게 변한지 오래였다. 그녀는 성을 바라보았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말룸과의 싸움을 끝으로, 그녀는 그녀의 의무에서 벗어난다.
마차에 오르기 직전 에이든이 뛰어왔다. 그는 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무척이나 놀란 듯 아직도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비올렛.”
마차에 오르기 전, 에이든은 비올렛을 불렀다. 그것이 마치 전쟁터를 나가는 아비를 배웅하는 아들의 모습인지라 비올렛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데려가줘.”
“응?”
에이든의 말에 비올렛은 눈을 크게 떴다.
“물론 지켜보기만 할 거야 딱히 널 방해하진 않을 거고.”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비올렛이 단칼에 거절했다. 에이든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그가 도와 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 말로도, 비올렛의 마음이 따스하게 물들었다. 그것은 충동적인 일이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에이든의 손을 잡았다.
“오빠.”
언제나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나이차이가 나지 않아 때로는 친구처럼 느껴졌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비올렛은 이 순간 에이든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절절하게 느끼고 있었다. 성녀들도 이런 과정을 거쳤던 것일까.
죽으러 가는 것임이 아니더라도, 그들이 짊어질 의무를 함께하고 싶다는 가족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에이든은 자신을 ‘오빠’ 라고 부르는 비올렛을 보고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비올렛의 얼굴을 멍하게 보고 있었다.
에이든은 좋은 사람이었다. 비올렛이 그녀의 불행에 너무나도 쉽게 신을 저주했다면, 에이든은 그 불행의 원인이 비올렛임에도 여전히 비올렛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너무나도 선한 사람인지라, 그녀를 걱정하여 그 여리고 선한 마음이 상처입기를 바라지 않았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하는 것이다.
“나 혼자서 잘 할수 있어. 알고 있잖아?”
이 엄청난 진홍의 하늘의 속에서, 그녀만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에이든은 그 성결한 성녀의 모습이 아닌, 어린 소녀를 보고 있었다. 크리처들이 나타났을 때, 그녀는 혼자 그 거대한 괴물과 맞서 싸웠다. 그때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말로 싫었던 것은, 그것이 ‘당연하다’생각하며. 혼자 싸우라고 그녀를 보냈던 것이다.
에이든이 울음을 참으려 이를 악물자, 비올렛은 그것을 보고 있었다. 미안해 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비올렛은 그 옛날, 그녀가 후작 가의 모든 일원들을 증오했을 적, 말룸에 의해 죽으려 했었던 때를 떠올렸다. 그렇게 죽음으로서 세상을 버리고 그녀의 의무로부터 도망가려 했었다. 결국 에이든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더니 얼굴에서 눈물이 차올랐다.
“이제 내 의무도 드디어 끝나는 거야. 기뻐해야지.”
“야, 너는 어떻게, 꼭 말을 그렇게 하냐. 진짜 내가 기쁠 것 같아?”
목이 메인 상태로 눈물을 뚝뚝흘리는 에이든을 보고 비올렛도 순간 울컥 하고 무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울 시간도 없다.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 그렇다면 이것이 정말로 ‘마지막’을 뜻하는 것 같지 않은가. 설령 이것이 진정한 끝이라도,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
“에드 경, 잘 부탁해.”
“.........”
그 말에 에이든이 비올렛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다 안색이 변했다.
“잠깐만. 비올렛, 너 설마.......”
에이든은 비올렛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무엇을 더 말할까, 어떤 말을 해야 할까는 몰랐다. 그는 궁을 바라보았다. 샤를루스는 알현실에 있을 것이며, 그 옆에는 에셀먼드가 함께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살아 숨 쉬는 세상이다. 그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거머쥐기를 소원한다. 설령 이루어질 수 없다 하더라도, 그를 위해 인생을 바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렇게 성녀가 아닌 그를 사랑한 여인으로 남아 있을 것이었다.
“부탁할게.”
그래도 만약, 욕심이 있다면. 이후에 그를 한번이라도 더 보는 것이다. 가슴은 아프겠지만, 그것이 그녀가 유일하게 품은 욕심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성결한 성녀라 치켜세운다. 그것이 공포에 지배되어 마치 허세를 부리는 것 마냥 말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전설 속 말룸이 이렇게 실제로 나타나버렸으니, 이들은 다시 전설속 성녀가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말하며 자신들을 안심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성녀의 실체는 상처받은 마음에 세상을 버리려 한 이기적인 여자였으며, 세상을 지킨다는 고결한 목적의식 따윈 없이, 그저 사랑하는 이가 살아숨쉬기 위한 수단으로 세상을 지키는 저열하며, 저속한 한 여자였을 뿐이었다.
“응?”
다시 한 번 강요하듯 묻자 에이든은 그저 비올렛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비올렛은 그 모습을 웃으며 지켜보았다. 그래, 에이든이 쫓아와서 좋은 점은 있다. 그는 에드를 닮지 않았나. 그 짙은 푸른 머리와, 눈동자는 점점 에셀먼드와 닮아가고 있다. 그를 볼 수는 없지만 그와 닮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그마한 작별인사를 하고, 비올렛은 마차에 올랐다. 마차가 출발했다.
본디 말을 타고 행진을 해야 옳았지만, 선두에 서서 말을 타고 있는 것은 린도였고, 대신 그녀는 피곤할지도 모른다는 린도의 주장에 의해 지붕이 없는 마차에 앉아 사람들에게 그녀의 모습을 노출시켰다.
큰 길의 입구에 들어서자, 비올렛은 길 옆에 나열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 성녀의 행렬을 인지하고 고개를 들었다. 선두에 서있는 교황의 위엄, 그가 타고 있는 새하얀 백마. 성 기사들 특유의 백금 갑주.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신의 문양이 새겨진 마차, 그리고 붉은 하늘과 다르게 혼자 고고하게 하얗게 빛나는 것 같은 성녀의 모습. 그 성스러운 행렬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전부 조용히 손을 모으기 시작했다. 마치 비올렛이 진정한 ‘신’이라도 되는 듯이 경건하게, 그 기도들은 하나하나 절실한 기원을 담고 있었으며, 생존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이 깃들어 있었다. 눈을 감고 그들은 그들의 신에게, 그리고 신이 내려 보내준 그 신의 딸에게 기도를 올렸다.
비올렛은 그 기도에 숨이 턱 하고 막혔다. 그 모든 기원들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성녀가 아니었다면 그녀도 그렇게 생각하며, 마차를 타는 성녀에게 기도를 올렸으리라. 어쩐지 울고 싶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다른 이들을 찾았다. 그러나 옆에 서 속도를 맞춘 채 말을 타고 있는 로디온 경을 비롯한 성기사들도, 저 앞에 있는 린도도 그녀를 보지 않았다. 그저 그녀는 오롯이 홀로 그 기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비올렛이 수도 입구에 세워진 성문을 지나가려 할 때였다.
“........”
비올렛은 눈을 크게 뜨고 성문위의 망루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기도의 행렬 속, 심지어 그의 곁에 있는 기사들마저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그는 유일하게 비올렛을 보고 있었다.
신에게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비올렛은 그 남자를 보며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사이에 마차는 성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비올렛은 앉아있던 몸을 세워 그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성녀의 행렬을 통제하기 위해 파견된 왕실기사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그의 모습에 그토록 저주하던 신에게 감사라도 드리고 싶었다. 그는 그녀가 지키고 싶어했던 세상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욕심을 내, 그를 끝까지 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죄송합니다 170화에 말룸이 생길것같네여..
일단 사실 다 써놨는데 용량이 많으니 오늘 열두시에 올리도록 할게요~ 음악은 170화 브금으로 들어주세요.
이빨은 음.. 당연히 치과를 가야 옳았지만 제가 다니던 치과 예약이 다 차버려서 월요일에 갈 것 같아요! 걱정하지 마세요!!올리기로 한 파트는 올리고 휴재 할겁니다.
오늘 자정에 한편올리고 2월 1일까지 휴재 들어갈것같아요.
출간작의 오타와 비문에 대해 우려는 감사합니다만.
일단 개인이 검토하는 개인지와는 달리 출판사내의 여러분들이 모여서 검토하기 때문에
그분들이 많이 도와주실 것 같아 우려하지 않으셔도 되실 것 같습니다.
저야 항상 뭐. 이런 고질적인 문제를 안는 캐릭터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저말고 제출판사를 믿어주세요! 물론 제가 더잘 노력하겠음니다...(하핫)
구롬 열두시에 봬용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