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8 꽃이 지다 =========================================================================
“비올렛.”
“응?”
새하얀 벽에 빛이 반사되어, 방안은 초 몇 개만으로도 환하게 빛이 났다. 비올렛은 푹신한 쇼파 위에 앉아있었다. 몸의 고통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지금은 말끔했다. 그럼에도 린도는 비올렛의 방에서 떠나가지 않고 비올렛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올렛은 아무 말 없이 그저 홍차만 마시고 있었다. 결국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한 린도가 비올렛을 부른 것이다 막상 그녀를 부르면서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린도를 향해 비올렛이 말했다.
“정말 괜찮아. 악몽을 너무 실감나게 꿨을 뿐이야.”
“실감나게 꿨다고 그렇게 괴로워하진 않아.”
린도의 말에 비올렛이 그런가, 생각했다. 아주 가끔씩 말룸이 자신을 지켜보는 꿈을 꾼다면 비올렛은 하루종일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말룸에게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곤 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 아니듯 이것 역시 착각이 아닌가? 그 꿈이 주는 후유증은 칼에 찔렸던 고통이 아니라, 칼에 찔렸을 때 느꼈던 아릿한 기분이었다. 피웅덩이 속 쳐박힌 생명을 잃어가는 남자의 잔상이 머릿속에 떠올라 사라지지 않았다.
분명 꿈속의 그 여자는 쓰러진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그 이름은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그저 기억에 남은 것은 절망과 비탄에 얼룩지던 금색의 눈동자였다. 비올렛은 린도를 뚫어져라 보았다. 이 꿈이 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냥 단순한 악몽인 것일까.
“비올렛?”
갑자기 비올렛이 린도의 금안을 바라보자 오히려 린도가 당황했다.
“어, 갑자기 왜 그래.”
내가 잘생겼어? 라고 너스레를 떨 성격은 못되었기에 린도는 비올렛의 얼굴이 올곧게 자신을 바라보자 두 뺨이 붉게 물들었다.
“린도.”
“어, 응? 비올렛.”
린도가 대답하자, 비올렛은 린도의 눈을 보며 말했다.
“스승님, 아니, 티게르난 공작과 연락하니?”
그 말에 린도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갔다. 비올렛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아차, 싶었다.
“아버지는…….”
린도가 한숨을 쉬듯 말했다.
“연락 같은걸 한다고 해서 답장을 해주실 친밀한 사이는 아니야.”
그 말에, 비올렛은 입을 다물었다. 하필 왜 체자레가 떠올랐을까. 알 수 없었다.
“아버지가 궁금했나 보구나? 하긴, 아버지는 나보다 널 더 아끼셨으니 말이야.”
린도가 차갑게 조소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싸늘한 얼굴은 놀랍도록 체자레를 닮아 있었다. 그런 그가 비올렛을 바라보다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비올렛에게 말했다.
“딱히 너한테 화내는 거 아니야.”
“…….”
그의 기분을 가라앉게 했다면 체자레의 이야기를 꺼낸 비올렛의 잘못이었다. 그럼에도 비올렛의 눈치를 보며 린도는 슬금슬금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음 연락을 해보긴 했는데, 답장 같은 건 없었어. 그래도 이야기를 들어보니 공작령에서 잘 지내고 계시나봐. 언제나와 같이 말이야.”
“그래.”
비올렛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성격임에도 그가 잘 못지내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했다. 체자레에 대해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만약 안부를 알고 싶었으면 그녀가 직접 편지를 보내는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몸이 괜찮은지 물어보려 했는데, 아버지 이야기를 하는구나? 꿈에서 아버지라도 나온 거야?”
“그러게.”
명쾌한 해답이라도 내려진다면 린도에게 상황설명이라도 해줄 수 있겠건만, 그녀 역시도 그저 직관적으로 떠올라 물어본 것이라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체자레의 진홍색 머리카락과 금안이 떠올랐다. 전쟁을 벌였던 파괴적인 행동을 벌였던 것과는 다르게, 그는 아주 깔끔하게 퇴장했다. 비올렛에게 그 ‘일기장’이 진짜 라는 실마리만 던져준 채로.
“아버지, 만나고 싶어?”
린도의 물음에 비올렛이 고개를 갸웃 했다.
“내가 만날 수 있어?”
“널 누가 막을 수 있겠어?”
린도가 기가차다는 듯 물었다. 공작령에 출입시 국왕인 샤를루스의 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 비올렛은 해당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알아들은 비올렛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성도로 돌아가면, 한번 다녀올 생각인데, 그래도 될까?”
“…….”
비올렛의 말에 린도가 입을 다물었다. 진심이냐고 묻는 시선에 비올렛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룸을 없애기 전에, 아무래도 그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린도는 굳은 얼굴로 비올렛을 보고 있었다. 한참 후에 린도가 말했다.
“그럼 같이 가자.”
“응?”
“같이 가자고. 너 혼자 보내는 거 걱정돼.”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린도에게 비올렛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보면 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된 시점이고, 교황인 그가 티게르난 공작과 접선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동으로 보일 수 있었다. 그런 우려를 린도 역시 알고 있을 터였다.
“나 역시 아버지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하려 했는지 알 수 없어. 고백하지만 비올렛, 나는 단 한번도 추기경, 아니 아버지의 의중을 안적이 없어. 나는 그저……”
린도가 말을 골랐다.
“아버지의 꼭두각시였거든.”
그래도 린도라면 어느 정도 체자레에 대해 알 거라 생각했다.
“나, 내 어머니가 누구인지, 왜 아버지가 날 교황으로 세웠는지 몰라. 왜냐하면 난 그냥 정신을 차렸더니 존재하고 있었거든. 그렇게 살았어.”
가장 물어보고 싶었던 어머니에 대한 화제가 나와버렸다. 그 허무한 대답에 비올렛은 눈을 깜빡였다. 린도가 딱히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생각해 보니 그녀는 그녀 자신의 삶의 무게에 짓눌려 체자레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왜 그는 언제나 그렇게 기만적이며, 배덕적인 행위를 한 것일까. 왜 사람을 악(惡)으로 몰아넣고, 그것에 따른 사람의 반응을 ‘관찰’하는 것일까. 마치 시험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행위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전쟁이 불가피 하다는 것이었다면, 왜 린도를 보고 그 행동을 멈춘 것일까. 왜 그녀가 가장 행복할 때를 골라서 에르멘가르트 후작가와 그녀 사이에 얽힌 비밀을 밝혀 그녀를 절망하게 한 것일까. 신전에 가는 것을 거부한 비올렛이 성력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흘러가는 대로 그녀를 방치했고 결국 그녀는 에르멘가르트 가문에 대해 복수와 용서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가장 오래 그와 붙어있던 린도마저도 체자레에 대해 파악하지 못했다. 비올렛은 드디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가 추구하던 것은 무엇일까.
“나, 가볼게. 쉬어.”
어쩐지 우울해 보이는 린도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이 화제가 린도에게 별로 좋은 화제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삼십년을 넘게 아버지와 살아오면서 아버지의 의중 따윈 아무것도 모른 채 꼭두각시로 살아온 린도에게 있어서 체자레란 인물 자체가 어떻게 다가올지 비올렛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린도의 뒷모습을 보며 비올렛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다 그 이상한 꿈 때문이다. 체자레에 대한건 성도에 가서 그를 찾아보면된다. 체자레는 언제나 그녀에게 사실을 이야기 해주지 않았을지언정 거짓말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만나면 그는 아마 솔직하게 모든 걸 다 이야기 해 주리라.
식어버린 찻잔을 보며 리체를 불러 새로 뜨거운 물을 내올까 하다가, 리체역시 수도에 올라오느라 피곤할 것을 생각하여 가만히 있었다. 무엇을 할까, 주위를 둘러본 비올렛은 테라스로 통하는 유리문을 발견했다. 가장 좋은 방 답게, 왕궁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마련된 테라스를 향해 비올렛은 발걸음을 옮겼다.
밤의 궁정은 조용하며 아름다웠다. 등지기가 키고 간 가로등마다 불빛이 반짝여 비올렛은 저녁 궁의 적막을 즐겼다. 그녀가 저녁의 왕궁을 보았을 때는 대부분 연회 때문이라 아무 일도 없는 평소의 왕궁의 고요는 낯선 것이었다. 저 멀리 왕성 바깥을 바라보던 비올렛은 정원을 볼 생각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비올렛은 잠시동안 굳어 있었다. 테라스 아래에 서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친 탓이었다.
“…….”
에셀먼드가 비올렛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비올렛은 눈을 크게 뜬 채로 굳어 있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두 번이나 마주하다니. 표정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서 이는 감정의 파도가 무색하게도 에셀먼드는 지극히 태연한 얼굴로 살짝 목례를 했다. 왜 이사람이 여기 있지? 생각해보니 그가 왕실 근위기사단 단장이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다. 아마 교황의 방문으로 이 주변의 순찰이 강화되어 그가 이곳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가 비올렛에게 품은 감정이 미움이건, 증오이던 간에, 그는 자신의 감정과 자신의 할 일을 분리하는 사람이었으니.
아까는 미처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잘 지내는 것 같아 진심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가슴이 아릿했지만, 그녀가 가장 원하던 모습이 아니던가. 혹여 후작위에 다시 오르지 않거나 관직에 오르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말끔히 사라졌다. 가로등의 희미한 조명 탓일까, 그림자진 그의 얼굴은 갸름했으며, 그의 짙푸른 눈은 안광이 서린 것처럼 보였다. 비올렛은 어찌할까, 인사를 해야할까 망설였다. 그러나 목례를 마친 그는 용무가 끝난 듯 등을 돌려 다른 쪽으로 가버렸다. 가슴이 철렁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비올렛이 고민하는 것과는 달리 그저 그는 순찰을 온 것일 뿐이다. 그 뒷모습을 보며, 비올렛은 한숨을 내쉬었다.
익숙해져야 하겠지. 이젠 익숙해져야 할 때다. 그녀가 선택한 길이 아닌가. 이렇게 그가 그녀와의 만남을 피하지 않듯, 그녀 혼자 이렇게 신경 써서는 안될 일이다. 어차피 모든 게 끝나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는지조차 불분명하지 않겠는가. 가슴이 아릿하지만 그 뒷모습이라도 눈에 담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제야 비올렛은 지금 그녀와 에셀먼드의 위치를 절감했다. 그는 이제 비올렛 위주의 삶을 살지 않을 것이며, 이전처럼 그녀에게 모든 것을 바치지 않는다. 그는 왕국을 위한 기사이며, 가문만을 위해 살아간다. 후작으로 복귀한 에셀먼드와 혼약으로 맺어질 가문들은 많을 것이다. 그는 젊은 가문의 수장이 아닌가.
하지만 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왜 그는 가자마자 후작위를 받은 것인가. 어쩌면이라는 단어는, 정말로 ‘어쩌면’에서 끝이 났다. 그녀가 뒤에 품었던 것이 마치 망상이라 비웃는 듯, 그는 너무나 쉽게 후작을 선택했다. 자신을 ‘검’이라 칭하던 그 답게, 그는 검과 같이 매섭게 그녀를 잘라냈다. 작아지는 뒷모습을 보며,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가진 서늘함에 몸이 떨리는 것 같았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가 완벽한 타인이 되니 깨달았다. 그는 아마도 다신 그녀에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다시 깨닫고 깨닫는 것이다. 어쩌면 그녀의 삶이란 그것을 계속 절감하고, 깨닫는 순간일지도 몰랐다. 그녀는 자조했다.
*
“그래서 말이야, 에이든이 나한테 뭐라 한 줄 알아?”
“뭐라고 그랬는데?”
비올렛은 차를 마시며 자신을 찾아온 시수일레에게 물었다. 요사이 부쩍 물이 오른 듯 아름다워진 시수일레는 만개한 꽃처럼 미소를 지었다.
“머리를 잘랐냐고 물어보는 거야! 아니 머리핀을 새로 산 것을 왜 머리를 잘랐냐고 물어보는 건데! 머리는 오히려 길었잖아! 정말 둔하다니까!”
“원래 그러잖아.”
“맞아!”
그녀는 투덜거리며, 쿠키를 베어물었다. 그리고 그 입안에 있는 딱딱한 쿠키가 에이든이라도 되는 듯 오독오독 씹어먹었다.
“그래도 에이든을 이제 거리낌 없이 만날 수 있어서 그거 하나는 좋아.”
“그래?”
“이전엔 알잖아. 우리 가문의 후계자가 나밖에 없어서……”
시수일레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에 비올렛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에이든이 후작이 되었으면서 포기해야 했던 것은 시수일레였다. 시수일레 역시 라이셀 백작의 유일한 후계자여서 데릴사위가 필수였고 에이든은 에르멘가르트 후작이므로 그들은 맺어질 수 없었다.
에셀먼드가 후계위를 포기함으로서 생긴 어그러짐의 가장 큰 피해자를 꼽자면 그것은 에이든이었다. 당시 전쟁이 끝난 후, 성을 머물던 비올렛은 에이든과 시수일레의 사랑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녀가 에셀먼드를 욕심내면서 에이든의 인생마저 망쳤다는 것을 절감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에이든도 시수일레도 비올렛을 탓하는 말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에셀먼드 경이……아!”
시수일레가 눈을 크게 뜨며 비올렛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은 것 같았다. 그녀가 그런 말실수를 했던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으므로, 비올렛은 그것에 크게 상처받거나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아니야 괜찮아.”
비올렛의 말에도 시수일레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갑자기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나 정말이지, 너에게 언제나 상처만 주는구나.”
“응?”
언제나처럼 호들갑을 떨며 미안해, 라고 할 줄 알았던 시수일레가 조용하게 말했다.
“나만 행복하고 또 그걸 너에게 떠들고 있었어. 네 생각은 하지 못했어. 그러지 않으려 하는데 미안해.”
비올렛은 갑자기 시수일레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믿겨지질 않았다. 오히려 기가죽은 채로 말하는 그녀에게 미안했다.
“아니야, 나도 행복해.”
“정말?”
시수일레가 비올렛을 보며 물었다. 비올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시수일레는 그것에 별로 납득하지 못한 듯 했다.
“비올렛이 에르멘가르트 후작님과 가디언 계약을 해지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무슨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
“어?”
생각이 있긴 했니? 비올렛은 시수일레에게 굉장히 실례되는 생각을 떠올려 그것을 지우려 노력했다.
“네가 후작님을 정말 많이 좋아해서 놓아줬구나, 그런 생각을 했거든.”
“…….”
생각 외로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말에 비올렛의 얼굴이 굳었다. 그렇게 표가 났을까?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소문이 난 게 아닐까? 그것은 비올렛의 명예보다 에셀먼드의 명예에 누가 되는 것이다.
“걱정 마. 사실 의견이 분분하지만, 다들 네가 폐하와 성하의 설득으로 그를 놔준 거라 알고 있어.”
“…….”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시수일레가 갑자기 그것을 말하는 것에 비올렛은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잠시 몰랐다. 모르는 척 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는 게 나았다. 그렇게 언제나처럼 그를 좋아하려던 마음을 ‘부정’하려 입술을 열 때였다.
“비올렛은 원래 사람을 좋아하면 가까이 두려 하지 않잖아. 좋아한다고 말하지도 못해.”
“…….”
“비올렛은 나도 많이 좋아하지? 사실 우리 어머니 때문에 비올렛이 날 멀리하나 생각했는데, 그런데 나는 네게 그만큼 다가갔단 말이야? 너는 내가, 어머니 따윈 상관하지 않고 다가간다는 것을 알았을 거야. 내가 너랑 가까이 지내면 나까지 웃음거리가 될까봐 가까이 오지 않았던 거지? 나 다 알고 있었어.”
“…….”
“에이든이 그랬어. 너는 무언가가 좋으면 좋다고 표현하는 걸 극도로 꺼린다고, 그래서 성격이 이상한 애라고 그랬어. 나는 그게 비올렛의 다정함이라 생각해.”
그 녀석이 진짜. 비올렛이 뭐라 말하려 했지만 시수일레는 그저 고개를 숙이며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난 비올렛이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말했으면 좋겠어. 에이든과 나는 그냥 조금 좋아하는 사이야! 세상엔 멋진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둔한 에이든 따위보다 말이야! 으음.”
“시수일레.”
한눈에 거짓말을 하는 것이 보였다. 이 여자아이는 자신이 에이든을 포기할 테니, 에셀먼드를 잡으라 말하고 있었다.
“설령 내가 에드경……아니, 후작을 좋아한다고 해도 우리 둘은 영원히 맺어질 수 없어. 그런 사이니까.”
“좋아하는데 그런 게 어디 있어! 친남매도 아닌걸?”
“…….”
“답은 간단하잖아. 성녀가 결혼해서는 안 되는 법은 따로 없고, 그것이 손가락질 받을 일이라면 도망가 버리면 되는 일이잖아.”
“…….”
“비올렛이 만약 후작님을 좋아한다면, 왜 비올렛은 행복해 질 수 없는거야? 난 후작님도 비올렛을 좋아한다고 생각해. 참 이상해. 비올렛은 왜 행복해지면 안되는 거지? 넌 진짜 성녀라서 욕심도 없는 거니? 넌 이렇게나 힘들었잖아. 세상을 구해낼 비올렛이 행복해지지 못다면 그 세상이 무슨 의미가 있어? 그런 세상을 만든 신은 나한테 엄청 혼나야 한다구.”
그 근원적인 물음에 비올렛은 시수일레를 보았다. 예전 오랜만에 보았을 때는 연회에서 잠깐 본 것이라 비올렛은 시수일레의 순수하면서도 날카로운 면을 보지는 못했다. 왕의 도시의 귀족답게 신앙심은 옅어져, 그녀는 이제 신보다 비올렛이 우선이라 말해주고 있었다. 비올렛은 이 철없는, 그러나 따스한 귀족 소녀가 좋았다. 친구라고 말할 수 있음에 행복해서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비올렛이 손을 내밀자 시수일레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후, 하고 결심한 얼굴로 비올렛을 응시했다.
“나는, 후작님께서 맹세를 하신 게 정말 보통생각으로 하신 것 같지 않아. 답이 너무 명확하잖아?”
“……그건 그 가문에서 나에게 저지른 잘못 때문이야. 그래서 그런거야. 시수일레, 난 후작을 좋아하는 게 아니야. 후작께서 내게 가디언 멩세를 한 것은 죄책감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어. 가디언 계약을 해지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없었어. 이제 그를 용서했을 뿐이야. 혼자서 의미부여 하지 마. 나는 괜찮지만 혹여 후작의 명에 누가 된다면 어떻게 해.”
“너는 지금에 와서도 후작님의 명예에 대해 생각하니? 그래서……!”
시수일레는 그렇게 말하려다 비올렛의 엄한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비올렛은 한마디만 더하면 화를 낼 생각이었다. 그것을 알아챈 시수일레는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잠시 동안 분위기가 가라앉아 그들은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혼례는 언제라고?”
“아직은 멀었고, 아마 말룸이 나타나고 모든 게 정리가 되고 난 후 아닐까?”
“……그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에이든과는 좋은 감정으로 만나는 것으로서, 나는 그 둔한 남자보다 더 섬세한 사람이 나타나면 당장 갈아 탈거야! 물론, 지금 본 남자중엔 에이든이 제일 괜찮지만……”
“알았어.”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비올렛이 말했다. 그러면서도 비올렛의 신경은 시수일레가 했던 말에 가 있었다. 보통 감정으로 맹세를 한 게 아니라니, 시수일레는 그들 사이에 있던 일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가 어린 비올렛에게 했던 맹세도, 그것을 지키지 못했던 것도. 생각해보면 에르멘가르트 가문과 그녀 사이는 정말로 헤어날 수 없는 깊은 골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비올렛은 한숨을 쉬었다. 이제 와서 그가 어째서 맹세를 했는가, 그 감정의 기원을 분석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비올렛은 시수일레의 수다를 들으며 멍하게 생각했다.
*
수도의 애녹시 글로리 아침부터 부산했기에 비올렛은 잠에서 일어났다. 신왕의 등극 이후 처음 있는 축제인지라 중앙 지방귀족들이 전부 궁정으로 모여 들었다. 아침 조회 때부터 복잡한 알현실에 샤를의 옆에 서있던 비올렛은 조용히 귀족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들중 절반이 교황파 귀족들이었고, 국왕파 귀족중 절반이 샤를루스를 배신했다. 지금 서 있는 그들은 샤를루스에게 한발자국이라도 더 다가갈 생각으로 그의 말을 경청하는 듯 했다. 린도는 살짝 얼굴을 찌푸렸고, 샤를루스 역시 미미한 불쾌감이 서린 얼굴로 조회를 끝냈다.
“에르멘가르트 단장, 부디 왕궁의 순찰에 유의하도록 하시오. 에이든 에르멘가르트 경 역시 마찬가지요. 도시 주변에 철저한 통제가 필요하오. 화재가 일어나서는 안될 것이오.”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에셀먼드와 에이든이 동시에 대답했다. 비올렛은 그 모습을 일부러 무덤덤한 얼굴로 보았다. 가디언 계약 해지에 대해서 얼마나 뒤에 말들이 오가는지는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이것을 가지고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축제 준비에 왕성 역시 그 오늘 열리는 연회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바빴다 린도의 지시로 오늘 저녁에도 성녀님이 가장 아름다워야 한다며 성도에서 온 시녀들은 이상한 경쟁심으로 비올렛에게 입힐 드레스를 고르느라 바빴다.
한참 후에 보라색의 드레스를 입은 비올렛은 그에 맞는 자수정 귀걸이를 귀에 찼다. 그것이 마치 이전 그녀의 눈동자 색과 같아 비올렛은 그것을 한참동안 보고 있었다.
이마의 성흔이 잘 보이도록 앞머리 없이 가르마를 탄 머리에는 백금과 자수정으로 장식된 머리띠를 했으며, 탐스러운 은색의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렸다. 등이 파여져 있는 드레스라 비올렛은 뒤에 머리를 푼다는 것이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드레스에 대해 비올렛의 요구를 최대한 들어준 듯, 그녀가 입은 옷은 풍성한 속치마로 이루어진 다소 둔중해 보이는 곡선보다는 시원스럽게 쭉 뻗은 직선의 드레스였다. 얇은 속치마가 가벼워 비올렛은 이 옷이 마음에 들었다.
바깥에 나가니 기다리고 있던 로디온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로디온은 비올렛의 꾸민 모습을 보고도 별 감흥이 없는 듯 그저 손을 내밀었다. 그때 비올렛의 등 뒤에 해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와, 예쁘다 비올렛! 로디온 경, 레이디에게 예쁘다는 찬사는 아무리 해도 부족하다, 기사의 소양이 부족하군.”
린도가 다가와서 말했다. 린도는 화려한 교황의 옷과 함께 손에는 백금으로 만든 롯드를 들고 있었다. 성화에 나오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듯 린도는 드레스를 입은 비올렛보다 더욱 더 성결해 보였다. 그러나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겨우 ‘비올렛, 예쁘다’라니.
“어찌 신의 대리인의 외모에 대해 제가 함부로 말합니까. 그런 것은 성녀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아, 그래, 네가 독실한 신자인걸 내가 잊었다. 교황인 나보다 본받을 만 하구나.”
린도가 얼굴을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로디온은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가 교황인 린도를 깎아내렸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듯 했다. 그러나 린도는 개의치 않은 듯 비올렛에게 손을 내밀었다.
“원래 에스코트는 기사의 몫입니다.”
로디온 경이 억울한 듯 말했다. 광신자 수준의 로디온은 비올렛과 접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황송한 듯 부담스러워 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할 일을 교황이 뺏었다는 것이 불만스러운 듯 했다.
“어허 성녀가 아닌가. 교황과 성녀가 나란히 걷는 게 더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
로디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는 저래 보여도 린도의 나이가 로디온보다 한참 더 많다는 것을 되뇌는 듯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비올렛은 그들의 실랑이 아닌 실랑이에 살짝 미소 지었다.
“봐, 비올렛도 경이 말하는 게 가당치도 않다 생각해서 웃잖는가. 나 린도가 직접 성녀를 이끌 거라네.”
린도는 그렇게 말하며 로디온을 권력으로 찍어 누른 후, 희희낙락하여 비올렛의 손을 잡았다. 로디온이 비올렛의 담당 호위기사가 되면서 고생만 시키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아 스승님!”
중앙 성의 복도에 다다르자 샤를루스가 비올렛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집무관과 고문관 몇몇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아 아무래도 정무가 제대로 끝나지 않은 듯 했다. 비올렛은 그 뒤에 서 있는 에셀먼드를 보았다. 그 역시도 서류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아 오늘 궁정 수비건에 대해서 이런 저런 검토를 요청하고 있는 듯 했다.
“스승님.”
샤를루스가 비올렛에게 다가와 활짝 웃었다. 그러다 그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비올렛과 에셀먼드를 번갈아보았다. 정작 당사자들은 그렇게 크게의미를 부여하지 않음에도, 린도도 그렇고 샤를루스도 그렇고 지나치게 신경 쓰고 있다. 샤를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비올렛과 린도를 보며 인사했다. 에셀먼드 역시 비올렛과 린도쪽으로 몸을 돌렸다. 착각일까? 그의 눈동자가 얼핏 비올렛과 린도가 잡은 손에 머무른 듯 했다. 그러나 에셀먼드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기 위해 자연히 시선이 그곳에 갔다는 것을 깨닫자 그녀는 자신의 자의식과잉을 속으로 꾸짖었다.
“오늘은 이미 지쳤습니다.”
‘오늘’이라는 것이 이제 겨우 정오가 지났음에도 샤를루스가 비올렛에게 징징거렸다. 징징거릴 때 징징거리는 것을 보면 아직 영락없는 어린 아이였다.
“안 됩니다 폐하, 축제 건으로 진행해야 할 일이 산더미입니다.”
“라이셀 재상께 일임하시오.”
“그러다간 제가 재상님께 혼이 납니다.”
그 실랑이를 물끄러미 보던 린도가 비올렛에게 속삭였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다, 그치?”
“에스테반 추기경과 네가 자주 하는 짓 아니니?”
그 말에 린도가 킥킥 웃었다. 새로 임명된 에스테반 추기경은 예전 에르멘가르트 후작이 비올렛의 스승으로 점찍었을 정도로 중도에 섰던 사람이었고, 린도와 지향하는 점이 맞아 린도는 다시 그에게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린도가 게으름을 부리면 언제나 저런 실랑이가 벌어지고는 했다. 성도도 수도도 사실 마찬가지인 것이다.
“몰라, 추기경이 또 성도로 돌아가면 내게 할 일을 많이 남겨놨을 텐데. 아아, 불쌍한 폐하, 불쌍한 나, 불쌍한 우리 존재.”
린도가 징징거렸다. 그러자 비올렛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린도가 그녀의 얼굴에 서린 미소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으며 손을 잡아 끌었다. 그것에 찌르는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샤를루스는 여전히 집무관에게 못하겠다고 투덜거리고 있었다. 에셀먼드는 저 실갱이가 오래 될 거라는 것을 예상한 듯 서류를 읽고 있었다.
“왜 그래?”
린도의 얼굴을 보니 린도는 어쩐지 기분이 좋아보였다.
“아니.”
비올렛이 대답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오늘은 말이야 비올렛, 나랑 계속 ‘같이’ 있자.”
“어차피……”
“알았지?”
어차피 린도와 비올렛의 일정은 똑같았다. 해가 지면 풍등을 날려보내고 연회에 참여하는 것. 왜 굳이 그 ‘같이’를 강조해서 말하는 것인지. 비올렛은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폐하 저는 가보겠습니다.”
에셀먼드의 무감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곳으로 시선을 주니, 샤를루스가 머쓱한 얼굴로 가보라 말했다
“경은 시간이 되면 잠시 부단장에게 일임하고 에르멘가르트 가문의 대표로 풍등을 날려야 하오. 알겠소?”
“알겠습니다.”
예전 비올렛이 성녀를 증명했었던 수도의 광장의 탑에서 귀족들은 모두 다 같이 풍등을 날리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에셀먼드 역시도 에르멘가르트 가문의 수장으로서 같이 행사에 참여해야 하는 듯 했다. 또 그를 봐야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에셀먼드가 그녀를 스쳐지나갔다. 비올렛은 스쳐지나간 그를 돌아보지 않은 채 샤를루스를 보았다. 샤를루스는 어쩐지 기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등뒤에 걸어가고 있는 에셀먼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
성녀 증명때 거의 죽을 각오를 하고 자결했던 곳을 보는 느낌은 기묘했다. 느껴지지 않았던 고통을 떠올리던 비올렛의 얼굴이 구겨졌다. 린도 역시 갑자기 조용해졌는데, 린도는 자신 때문에 비올렛이 자결하려 했다는 것이 떠오른 듯, 그녀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펴보았다.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고, 황혼의 주홍색 노을이 점점 사라져갔다. 광장에는 모든 귀족들이 원을 그리며 서 있었으며, 에이든을 비롯한 기사단과 왕궁의 병사들이 경계를 이루고 선 바깥에는 평민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접혀진 풍등을 들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찾아온 평화이다. 이들이 얼마나 절박한 소원을 이룰지 비올렛은 잘 알고 있었다. 비올렛이 샤를의 옆으로 나가자, 사람들이 모두 환호했다. 성도의 사람들과 같은 열렬한 환영에 비올렛은 깜짝 놀랐다.
린도와 비올렛, 샤를은 조용히 해가 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해가 지고 하늘에 홍색의 잔흔마저 없어져 파란 색이 그득했다. 어슴푸레한 푸른 빛이 그들을 감돌 때, 샤를과 비올렛, 그리고 린도는 동시에 풍등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아래 귀족들 역시 풍등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귀족들이 불을 붙이자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이 천천히 불을 붙였다. 그 붉은 물결이 천천히 퍼져 나가는 것은 언제나와 같은 장관을 연출했다.
“아그레시아의 국민들의 한해의 무사평안을 기원합니다.”
“신의 사랑이 그대들에게 골고루 전해지기를 기원합니다.”
“사랑과 축복, 평화가 지속되기를 기원합니다.”
샤를, 린도, 비올렛이 차례대로 말했다. 탑에서 내려다 본 광장은 반딧불이 같은 풍등의 붉은 불꽃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동시에 팔을 올려 풍등을 떠올려 보냈다. 세 사람의 풍등이 사이좋게 하늘로 올라갔다. 두둥실 떠오르는 풍등이 얼마나 사이좋게 어울려 올라가는지 비올렛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옆을 보니 샤를역시 활짝 미소 짓고 있었다. 린도 역시 묘하게 기쁜 얼굴이었다. 샤를보다 더 아이 같은 린도의 얼굴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그 셋의 풍등이 높이 올라가 푸른 빛 밖에 남지 않은 하늘을 수놓았다. 비올렛은 에셀먼드와 풍등을 날려 보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그녀가 날려 보냈던 풍등은 에셀먼드의 풍등을 태워버렸다. 그것은 꼭 마치 앞날을 암시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 사이좋게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풍등을 보니, 예감이 좋았다. 그렇게 생각하려 할 때였다.
“…….”
비올렛은 할 말을 잃고 하늘을 보았다. 왜? 라고 묻지는 않는다. 당연한 일이었으니. 그렇지만 마치 그들이 날린 풍등이 푸른 하늘을 붉게 불태우는 것과 같았다. 그것은 황혼의 주홍색의 노을빛이 아닌 섬뜩한 붉은 색이었다. 마치 피와 같은.
풍등이 계속 올라간다. 마치 하늘이 피를 흘리는 것처럼, 구름이 불타는 것처럼,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는 하늘에 계속해서 붉음이 퍼져나가고 퍼져나간다. 그것은 ‘핏빛’이었다. 축제로 떠들썩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멎었다. 수도에 있는 모든 이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 하늘을 보았다. 광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지상을 불태울 것 같은 땅의 촛불, 그리고 하늘이 흘리는 선혈과도 같은 붉은 핏빛의 하늘.
하늘을 본 비올렛은 고개를 내렸다. 아까까진 시선이 여러개로 분산되어 시커매 보였던 군중들의 군집이 살색의 뭉텅이로 보였다. 이들이 전부 다 몸을 돌려 비올렛을 보고 있는 것이다. 먼곳을 바라보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모든 귀족들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비올렛은 그 중에 에셀먼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비올렛은 조용히 좌우를 둘러 보았다. 샤를과 린도가 비올렛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충격을 먹은 듯, 차마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비올렛은 깨달았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가장 비천한 천민부터, 평민, 귀족, 그리고 왕과 교황까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그녀를 보았던 것이다. 마치 무서운 꿈을 꾸면 그것을 달래줄 절대적 존재를 찾는 꼬마아이처럼. 기이한 두려움이 퍼져나간다. 그러나 그 공포속에 존재하는 것은 비올렛이라는 희망이었다. 비올렛은 그 두려움을 상쇄시킬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 숨막히는 공포가 서린 긴장과 고요 속에서. 모든 이들의 기대와 희망이 그녀를 짓눌렀다. 비올렛은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때가 도래한 것이다.
============================ 작품 후기 ============================
내일 다음편 올리고. (말룸이랑 뚜샤뚜샤!!)
저 아마 약 일주일가량휴재 들어갈듯요...
왜냐면..출판사에서 1부 교정본을 보내주셔서.. 제가 여기에 집중하려구...(1월말까지 보내야한대요..).네네 빨리 보내야 책이 빨리나오죠.. 출판사의 일정에 되도록이면 이상이 없길 바라서요!
다음편도 브금을 준비했어요. 이번에는 찾기 어려울건데 일단 말은 합니다.
'Point Zero'입니다. 물론 페이트 제로에 나왓던 ost맞아요! 이 웅장함!!! 너무좋은것./
오늘도 용량 대박이죠? 빨리 칭찬해주세요... 근데 내가 휴재때리려고 그런거라서..흑...넘ㅈ나 죄송한것. ㅠㅠ
여튼 드디어 말룸이네요. 자 우리
맞바람을 핀다는 것의 작가 손세희*(구앰버 구 로잘리 작가님)을 환호해주세요...
저분이 막 저.. 막..나. ㅠㅠ..에드 삽질로 10화를 채우려 하니까 하지말고 빨리 말룸이나 쳐 나타나라 해서 그런것..............................................................
(추가)
아니..님들아 저 내일도 돌아온다고요 내일 한편올리고 휴재한다고...
말룸이랑 뭘 또 얼마나 지지고 복고하려고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