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2 제비꽃, 피어나다 =========================================================================
눈내리는 평원, 비올렛은 말을 탄 채 서 있었다. 그의 옆에는 언제나 따르던 그의 가디언이 아닌, 성기사 로디온과 샤를루스와 에이든이 있었고, 왼편에는 린도가 말을 타고 있었다. 그들은 저 멀리 나열되어 있는 군사들의 무리를 보았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폐하, 안에 들어가셔야 함이 아닌지요.”
어린 나이임에도 샤를루스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 분명 갑옷이 무거울 텐데도 그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직 채 자라지 못한 소년의 그러한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태해 보이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괜찮습니다, 스승님. 에이든 경도 있고, 그리고 저들은.”
그런 염려를 알아차린듯 샤를루스가 비올렛을 보며 말했다.
“패잔병들이잖습니까.”
바로 그것이 맞았다. 지금 그들은 군나르 족의 패잔병들을 쫓고 있었다. 국왕 샤를루스 등극 한달 째, 샤를루스가 먼저 한 일은 군나르 족을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라는 성명문을 작성하여 보낸 것이었다. 군나르 족은 선대왕과의 동맹을 주장하며, 돌아갈시, 자신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주장하였고, 샤를루스는 그것을 공식적 외교 협약이 아니라 말하며, 이것에 대한 반박서한을 보냈으나 군나르족은 그것에 반발하여 도시를 점거했다 샤를루스에게 충성을 보이기로 약조한 귀족들은 자신들의 영지를 점거한 군나르족을 군사를 동원하여 격퇴했다. 체력이 떨어진 군나르 족은 점거하던 성을 효과적으로 지켜낼 수 없었다. 잇달아 패한 그들은 자신들의 거점인 성도로 내려갔지만 그 조차도 그들에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상대적으로 남동쪽이 따뜻한 편이긴 하나, 성도가 언제나 봄날처럼 온화했던 것은 린도가 자신의 성력을 성도에 뿌렸기 때문이었다. 주인이 없어진 그 교황령은, 겨울의 북풍에 노출되었다. 당연하겠지만 린도의 성력의 가호 아래 놓여져 있던 성도의 사람들이 겨울 옷을 준비했을 리가 없다. 그리하여, 이곳은 그들에게 최악조건이었고 에셀먼드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성도는 다시 재탈환되었다. 그리고 그것의 선봉장에 선 것은, 대장군도, 장군들도 아닌 에셀먼드였다. 에르멘가르트의 가주인 에이든은 전쟁 경험이 지나치게 없었고, 군사들을 이끌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으며 현 대장군인 브라운슈바이크는 재상 라이셀 백작과 함께 수도를 군사적, 정치적으로 안정시키는데 주력해야만 했다.
전란중 왕이된 샤를루스는 군사적 기반이 무척이나 약했으나. 샤를루스는 국왕된 자로서 백년만에 일어난 군나르족의 ‘침략’에 강경하게 대응해야만 했다. 그리고 비올렛은, 에셀먼드를 장수로 지목하였고, 에셀먼드는 몇번의 거절 후, 나라를 지키는 것이 성녀를 지키는 것과 같다는 말에 겨우 납득하여, 임시로 장수의 직책을 맡았다.
비올렛은 그때 에셀먼드의 진정한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저 그가 선봉에 서는데도, 마치 누군가가 마술이라도 부린 것처럼 기사들의 사기가 올라갔다. 그는 달변으로 병사들을 고무시키는 지휘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손짓, 그리고 그가 든 검 하나의 번쩍임 하나마저도 찬란했고, 기사들은 그를 따랐다. 그 자리는 에셀먼드를 위해 만들어진 자리와도 같았다.
비올렛은 그런 그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조용한 후작가와, 그녀의 가디언으로서의 에셀먼드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어딘지 모르게 더욱 생기가 있었고, 반짝거렸다. 그가 승기를 쥐고 구자르트가 다시 도망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패잔병들은 두갈래로 나뉘었고, 에셀먼드는 지형상 도주로를 확보하기 쉬운 강 쪽으로 향했다. 아마 그곳에 배가 정박해 있을 것이고, 그 도주로를 가는 쪽이 구자르트의 장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비올렛이 어떠한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그의 판단 하에 척척 이루어졌다. 그제야 비올렛은 다시 깨달았다. 에셀먼드는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 것 보다 지시를 내리는게 익숙한 사람이었다.
말을 타고 달려나가는 에셀먼드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비올렛은 샤를루스와 에이든과 함께 나머지 패잔병들을 쫓았다. 다행이 눈은 내리지 않았으나 지형은 아득한 평원이었고, 겨울의 말라붙은 풀과 돌덩어리, 건조한 바람이 흩날렸다. 패잔병들 역시 더 이상 도주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전세를 가다듬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달고 있는 깃발은 황금색 술이 달린 포도주색이었으며, 두 마리의 황금색 물고기와 포도가 그려져 있었다. 비올렛은 그것이 구자르트 내의 케스투니스의 깃발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화려한 갑주를 입은 그들 중 한명이 나와 소리쳤다.
“너는 우리의 함정에 걸려들었다. 국왕과 성녀 교황이라니. 차라리 날 쫓아온 것은 그 검을 든 사내여야만 했다. 그는 운이 참 좋구나.”
비올렛은 숨어있던 군나르 족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매복된 군사들이었다. 그제야 그들은 깨달았다. 이들은 전력이 분산됨을 노려, 교황, 성녀, 국왕중 한명을 그들의 함정에 끌어들이려 했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곳에는 나라의 셋, 교황과 성녀, 국왕이 있었다. 에셀먼드 쪽에 주력군대를 보냈기에 패잔병들의 군대보다 샤를이 이끈 군대가 생각보다 적었다. 이들이 독이 오른 것을 생각한다면 불리한 상황일지도 몰랐다.
“국왕의 목을 베어 성녀를 데려가리,”
그러나 그것을 예상하지 못했냐, 한다면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에셀먼드와 굳이 떨어져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것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비올렛은 말에 내려 자신을 지칭하는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화살이 위협적으로 그녀에게 스쳤으나, 그녀는 별로 개의치 않아했다.
“비올렛!”
에이든이 그녀를 불렀으나,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에이든이 그녀를 쫓아가려 했으나 샤를루스가 이를 만류했다.
“스승님이 무언가 생각이 있으신 것 같소.”
“........그렇지만!”
“무언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여기 중에서 가장 강한 건 비올렛일걸. 어엿한 나라의 성녀를 과보호 하는 것도 우스워 보일 뿐이야.”
린도가 얼굴을 찌푸리며 에이든에게 말했다. 교황과 국왕이 그렇게 나와버리니 에이든은 움직일 수 없이 비올렛의 가녀린 뒷모습을 보았다. 저들의 거대한 창과 샴쉬르에 비해 비올렛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것은 얇은 검이었으며, 기다란 화살뿐이었다. 이것은 군나르 족에게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을 정도였다. 군나르족의 여전사들에비해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비올렛은, 그들의 조롱어린 농담이 쏟아짐에도 제일 앞에 서있던 거대한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그 사내역시 입에 비릿한 미소를 띠우며 말에서 내린 채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사내가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쩌렁쩌렁 소리치는 것이었다.
“제 발로 이곳까지 벌써 항복하러 온 건가? 이미 나는 네가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 네 그, 가슴이라도 까서 보여준다면, 널 무사히 데려다 줄 수 있다.”
아그레시아의 성녀를 향한 낄낄거리는 질 낮은 조롱에 군나르 족 언어를 배운 성기사들 사이에서 분노가 퍼졌다. 에이든과 샤를 역시 이를 알아듣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린도는 그것에 화를 삭이려는 듯 후, 하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금안만은 살기를 띤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가 타르크인가.”
비올렛은 구자르트어를 쓰며 물어보았다. 타르크는 그 말에 만족스러운 듯 큭큭 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굳이 가르칠 필요가 없어서 좋구나!”
번들거리는 시선이 비올렛의 하얀 얼굴과 목을 향했다. 경갑옷과 망토가 그녀의 굴곡진 곡선을 가렸음에도, 그 훑어보는 시선이 마치 옷 아래의 알몸을 감상하듯, 음흉하기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비올렛은 태연한 표정으로 타르크를 보았다.
“그래, 내가 타르크, 케스투니스의 칸이다. 그리고 곧 카칸이 될 자이지.”
비올렛이 그 이름을 듣고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 얼굴이 꽤나 봐줄만 해 타르크는 그것을 보고 그녀를 첩중에 하나로 삼아도 될 것 같다 생각했다.
“그대의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네 이복동생인 아슈카바드의 칸을 만났다.”
그에 타르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타르크는 이자카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혐오스러운 듯 했다.
“그 약골 놈과 날 형제라 하지 마라, 아마 그놈은 이미 사막에서 죽었어도 한참 전에 죽었을 것이다. 너, 이 자리에서 알몸으로 우리 병사들에게 던져줄수도 있다. 우리 전사들은 지금 많이 굶주렸거든.”
그 수위 높은 말에 군나르족의 병사들이 와하하 웃었다. 샤를루스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금 저것을 보고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성하?”
그 말에 린도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비올렛의 의중은 언제나 알기 힘듭니다.”
“.........”
“그러나 언제나 가장 나은 행동을 하고는 합니다.”
그러더니 린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주변 사람들이 걱정한다는 것도 모르고 언제나 자기 혼자 모든 걸 해결하려는 점이 그렇습니다. 그 ‘약속’역시도 그렇지요.”
그 ‘약속’이라는 말을 들은 샤를루스의 얼굴 역시 어두워졌다.
“...에셀먼드 경이 화낼 겁니다.”
“....그렇겠지요.”
에이든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른다면 저들의 대화를 그저 넘길수도 있었지만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있어 그것이 불편해 견딜수가 없었다. 그때 에이든이 붉은 화기를 보고 앞을 보았다.
“.......!”
앞쪽에 서 있던 무녀들의 손에 불덩어리가 맺혀 있었다. 분명 그것은 성도를 속절없이 함락시켰던 그 ‘마법’이었다. 불덩어리들이 비올렛에게 향하고 있었다. 아까 타르크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한 위협인 듯 했다.
“어떠냐, 성녀. 너는 지금 움직일 수 없지? 그리고 그 자랑스러운 성력또한 쓸 수 없을 것이다.”
비올렛은 자신의 발밑에 있는 마법진을 보았다. 아마 샤를의 성명서를 받았을 때부터 이들은 이러한 함정을 계획했을 것이다. 비올렛은 팔을 움직이려 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너희들은 모두 지금 마법의 영역안에 있다. 너희들은 절대적으로 이길 수 없다.”
그제야 병사들 역시 자신들이 서 있는 곳이 드문드문 작은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 한발만 걸치거나 한 팔만 걸친 이들은 영향에서 벗어났으나. 완벽한 원안에 있던 병사들은 무력화 되어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이라는 것에 병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폐하!”
샤를역시도 자신이 발을 딛고 서있는 곳이 마법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불덩어리들이 위협적인 불빛을 내뿜었다. 타르크의 거대한 손이 비올렛의 턱을 잡아 올렸다.
“지금 당장 네년의 옷을 벗겨, 그 하얀 살결을 보여주어도 넌 저항할 수 없다는 말이다.”
비올렛은 새파란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욕설을 내뱉을 거라는 타르크의 예상과는 달리 비올렛의 입가에 지어진 것은 미소였다. 그녀는 드디어 ‘아그레시아’ 공용어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아나스타샤가 너희들을 격퇴한 이후로 그대들은 어떻게 하면 성녀를 데려올 수 있나, 어떻게 하면 그 힘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가만 연구했다.”
“.........”
“그러나 너흰 어리석어 백 사십년 이후에도 변한 것이 하나도 없구나.”
그 서늘한 미소에 타르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가 디디고 있는 이곳은 석벽이 아닌, 땅이다.”
그는 비올렛의 말을 전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리디 여린 아그레시아의 계집이 이상황에 비웃음을 지었다는 것이 타르크의 신경을 자극했다.
“약해 빠진 전사도 못된 계집이라 아껴준댔더니, 말을 함부로 하는구나!”
얼굴을 붙잡힌 상태에서도 비올렛이 입술을 열었다.
“тресат”
그것은 공격의 마법도 아니었으며, 병사들에게 생명력으로 그들로 하여금 투지를 불태우는 마법도 아니었다. 그것은 너무나 간단한 마법이었고, 그들을 무력화시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말들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말들은 그들을 가둔 채, 야생성을 욱여넣어 그들을 억지로 가두고, 불타오르는 대지를 밟게 한 고통에 대한 분노를 터트렸다. 말을 탄 그들은 몸을 마구 흔드는 그들을 진정시키려 했으나, 말들은 진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굴러떨어진 병사들이 말발굽에 퍽, 퍽, 하고 밟히기 시작했다 그들은 고통의 비명을 질렀고, 기마에 뛰어난 군나르 족들은 말로부터 도망가기 시작했다. 타르크는 비올렛의 얼굴에서 손을 놓은 채 뒤를 보았다. 붉은 피의 아비규환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다, 어째서 그려졌던 마법진이 통하지 않은 것인가? 그러다 타르크는 비올렛이 걸어온 걸음 주변으로 싹튼 식물들을 보았다. 그 새싹들이 마법진을 천천히 지워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расте”
비올렛이 말에 메마른 황야에 초록의 물결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그것은 일찍이 수도에 사는 자라면 누구나 보았던 기적이었다. 날뛰던 말들이 서서히 진정했지만 말에 밟힌 기수들은 뼈가 으스러져 일어날 수 없었다. 무녀들이 불꽃의 마법으로 비올렛을 해하려 했으나 비올렛에게 그것은 애초에 통하지 않았다. 그녀는 강하게 성력을 개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비올렛의 발 아래로 뻗어간 성력이 땅을 타고 가 봄을 기다린 채 잠을 자고 있던 생명들을 ‘모두’ 깨우기 시작했다. 작은 면적이었기에 씨앗들은 빠르게 일어나서 기지개를 펴, 초록의 땅 위에 고개를 내밀었고, 고개를 내민 씨앗은 곧이어 굵은 뿌리가 되었다.
“대체 무슨 사술을 쓴 거냐!!”
타르크가 비올렛에게 고함을 치며 그녀를 내려쳤지만 비올렛은 그것을 가볍게 피했다. 잿빛의 하늘이 걷어지며 다시 밝은 태양이 떴다. 그러나 그렇게나 원하던 따스한 기온이 서렸는데도 군나르족들은 움직일 수 없었다. 마법이 아니라 발밑에 있는 나무뿌리가 그들을 옭아맸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처음 보는 종류의 아그레시아식 ‘마법’은 공포였다.
“그만 이걸 멈춰, 좋은 말 할 때 멈추어라!”
비올렛의 투명한 푸른눈이 빛났다.
“그것을 멈추고 싶으면, 또다시 그 마법으로 무력화 시키면 되는 것이다. 강자에게 굴복하는 것이 너희의 방식이 아니던가?”
그 차가운 조소에 타르크는 살의를 느껴 그녀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성큼 다가오자 그것을 막기라도 하듯 억센 식물들이 그를 감쌌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너흰 절대 이 땅을 침범할 수 없다.”
타르크는 자신을 옭아매려는 식물들의 줄기를 힘으로 억지로 뜯어 그녀에게 칼을 내지르려 했다. 그러나 비올렛이 살짝 뒷걸음질 치자 이번에는 굵은 뿌리가 그를 옭아맸다. 이들은 겨우 비올렛 한명에게 무력화 된 것이다. 검으로 그것을 끊어버리려 했지만 굵은 뿌리줄기는 그들을 묶어서 놔줄 생각이 없었다. 마치 뱀처럼 또아리를 틀어 그들을 조이고 또 조였다. 군나르 족의 전사들 역시 힘으로 그것들을 끊어내려 하면 끊어낼수록 식물들이 집요하게 그들을 조였다. 그리고 비올렛은 단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니엘의 말대로 비올렛이 무력화 되는 저주를 쓰기 위해 열명의 무녀가 희생되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일시적으로 성력을 억누르기만 했을 뿐,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다니엘이나 선대왕이 비올렛의 감금장소를 북쪽의 탑으로 지정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만약 그곳이 지하감옥과도 같은 땅이었으면, 비올렛은 식물로서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이들은 그것을 막을 방법만 생각했지, 생명들을 모두 다룰 수 있는 그녀의 특성은 고려하지 않았고, 생명이 없는 돌바닥만 아니면 너무도 쉽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들의 힘이 강대할 지언정, 그 누구도 비올렛을 이길 수 없었다. 너무나 당연했다. 비올렛은 ‘신이 선택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신이 선택한 사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리고 초록 물결에 덮여버린 군나르 족을 보았다.
군나르족은 홀로 서 있는 가녀린 여자를 향했다. 그녀는 맑은 하늘과 같은 밝은 푸른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 주변에 피어난 상서로움에, 그들은 패배를 절감했다. 이전 아나스타샤 한명에게 군나르족이 아그레시아의 땅에 발도 디디지 못하고 물러났듯, 지금 저 성녀에게 다시 막혀버린 것이다.
갑자기 대지를 울리는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것을 보고 있었다. 타르크의 환희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곳에 달려오고 있던 것은 대군이었다. 저 평원 너머로 먼지를 일으키며, 군나르 족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있었으며, 검을 들고 있었다.
“오오 카칸께서 드디어 원군을 보내주셨구나!”
타르크가 환희에 차 소리쳤다. 비올렛은 흙먼지 너머로 보이는 원군의 수를 보고 기겁했다. 당장 군사 오천만해도 땅이 울리는데 지금은 지진이라도 일어나는듯 우렁찬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건조한 겨울의 흙먼지가 뿌옇게 시야에 들이찼다. 그 군사들은 다짜고짜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칼을 뽑아들었다. 햇빛에 그들이 샴쉬르가 번쩍였다. 당연하겠지만, 모두 다 구자르트의 군사들이었다. 선봉에 섰던 장수들이 무력화 된 구자르트의 전사들을 지나 타르크 근처로 왔다. 타르크가 승리에 확신한 미소를 지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가장 빨리 잡아야 할 세놈년들이 다 모였으니, 이젠 이 나라도 우리의 땅이 되겠구나!”
“........”
“네 너를 특별히 데려가 가장 웃음거리로 만들어 줄 것이다. 우선 네년의 옷을 갈갈이 찢어 마음껏 귀여워 해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사지를 잘라 돼지우리…….”
비올렛은 날아온 창날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비올렛이 피하지 않은 것은 그 창이 그녀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앞에 한심하게 무력화 된 타르크를 향해 던져졌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창은 빗나가 타르크의 발에 꽂혔다. 타르크는 자신의 발이 창에 의해 뭉개졌다는 것을 알고 분노의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창이 날아 온 것이 자신의 아군이라는 것을 알고, 분노에 차 아군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그는 경악했다.
“어떻게 아슈카바드의 깃발이 이곳에, 도대체 왜 이곳에 있는 것이냐!”
사람들의 시선이 그 대군쪽을 향했다. 어두운 초록색 문양의 달 모양이 떠 있는 화려한 깃이 나부꼈다.
“그런 더러운 소리는 다 듣기 전에 활로 혀를 쏴버려라, 피아케.”
어딘지 모르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나 그러했다. 비올렛은 자신에게 걸어오는 청년을 보았다. 밀빛머리, 그리고 녹음을 생각하게 하는 초록색 눈동자. 겨울에 맞추어 온 듯, 그는 검은색 털옷과 갑옷을 입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연독률이 많이 떨어지네.. 여러분.. 이거 완결나면 출판사 사정에 따라 습작 빨리 될수도 있어여 ㅠㅠ 따라와주시는게 좋을건데..ㅠㅠ...
여러분 연참약속 지켰어요~ 추천수 천넘었으니 한편 투척~^0^
이따 열두시에 봬요!
아맞다. 저 사실 후원 쿠폰란을 확인안하는데
후원쿠폰 남겨주신 분들 넘나많아서.. ㅠㅠ 여튼 남겨주신분들 언제나감사합니다.
나중에 치킨.사먹구 힘내서 글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