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9 제비꽃, 피어나다 =========================================================================
(중간에 중복구간이 있어 수정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입니까, 성하!”
“성하, 이게 지금 무슨!”
“예하, 부디 아니라고 말씀하십시오!”
“증좌, 증좌를 대보십시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신관들은 갑작스럽게 불거진 추기경의 추문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씁쓸함을 머금은 린도의 미소가 더욱 짙어질수록, 체자레는 얼굴을 싸늘하게 굳어갔다. 신관들은 자신들의 지도자인 교황이 그 추문을 공론화 시켰다는 것이 믿을 수 없는 듯 했다. 린도는 그런 신관들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입으로 추기경 체자레를 파문시키라 말한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오로지 나만이 유일하게 그의 부정을 알고 있다. 그는 신관 된 자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부정, 간음의 죄를 지었다.”
체자레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고, 린도의 어조는 확신에 차 있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 교황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의 어조는 진실을 이끄는 힘이 있었다. 신관들은 서서히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교황이 양위만 받는다면, 그들의 승리였다. 그러나 이 어리고 부족한 교황은 모든 것을 망치려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성하, 이 일은 나중에 하십시오, 지금은 더 급한 일이.”
“신관의 계율을 어긴것 보다 더 중한 일이 어디 있는가. 네이르트 신관, 그대가 신관이라는 자각이 있는가? 우리들, 신관들에게 신이 내린 계율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 말에 신관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신을 섬기는 입장이고, 신을 거부하고 성녀를 감금한 것에 대항하여 군사를 일으켰다. 그것은 그들이‘신관’으로서 당연히 분개해야하고, 들고 일어나야 했었던 것이었다. 표면적으로 신관들에게는 신의 뜻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어찌 보면 왕은 기본 4대 계율을 3개나 어겼기 때문에‘반역’이 ‘성전’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을 수 있는 것이다. 4계율이 신관의 기본이듯, 그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는 교황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에 혹여 반론이라도 하다가는 자신들도 파문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이제 그들이 원하던 나라가 가깝지 않은가?
“그 증좌가, 증좌가 필요합니다, 성하!”
“증좌를 물었겠다? 감히 교황이 하는 말에, 의심을 하는 것인가?”
그는 허, 하고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신관들을 바라보았다. 비올렛은 린도의 얼굴이 실망으로 물드는 것을 보았다. 이런 자들이었다. 비록 신을 섬기는 자들이라 했지만 그들은 인간이었고, 탐욕스러웠다. 서서히 가면을 쓰듯 딱딱한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린도는 비올렛을 바라보았다. 비올렛은 왜, 라고 묻고 싶었다. 린도가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황금빛 눈이 더없이 따스했다. 그것은 마치 초콜렛을 선물했을때의 린도의 표정과도 같았다. 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니, 부디 봐달라고 하는 천진한 어린아이의 표정을 하며, 남자의 모습이 된 린도는 비올렛을 보았다.
“여기 증좌가 그대들의 눈앞에 서있느니라.”
린도는 다시 체자레에게 몸을 틀었다. 살짝, 청년의 입술이 떨리고 드디어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버지.’”
그말에 사람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체자레와 린도를 향했다. 교황이, 그 교황이, 설마 추기경의 아들이었단 말인가? 모든 이들이 침묵했다. 이 거대한 진실은 그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 누구도 아무런 말도 말할 수 없었다. 말하는 즉시, 마치 목이라도 잘릴 것 처럼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바로 부정해야 함에도 체자레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린도를 보고 있었다. 린도 역시 체자레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보았다.
“당신은 제가 다섯살, 아주 어렸을 때 저를 교황으로 올렸습니다.”
린도의 코 끝이 붉게 물들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지만, 그 목소리는 깨끗했다.
“어린 저를 지도자로 세우고, 모든 걸 알아서 하겠노라고, 나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말하며 모든 것을 당신께 맏기라 하셨지요. 저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저를 드러낼 수 없었습니다. 당신은 그 금안이 국왕에게 위협이 될 것이며, 그것을 숨겨야만 나라가 평온하다고 했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제 자신을 숨겼습니다."
린도는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눈가를 어루만졌다. 그리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새하얀 벽에 갇혔다시피 했던 어린 저는 괴로워 하고 외로워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당신은 널 위한 신의 안배는 ‘성녀’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성녀만 계속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성녀가 오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으니까요.”
“........”
그리고 그가 비올렛을 살짝 바라보았다. 비올렛은 드디어 린도의 그 맹목적인 성녀에 대한 사랑이 이해가 갔다. 어려서 부터 린도는 체자레가 해주는 성녀 이야기를 듣고 약 30년의 시간동안 그녀를 기다려 온 것이었다. 지금에서야 보니, 린도와 체자레의 눈은 매우 흡사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아버지가 ‘성녀’의 이름을 말했던 것은 제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우정과 애정, 그리고 맹목적인 사랑을 성녀가 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올렛이 제게 주어야 할 것이 아닌, 당신이 제게 주어야 할 것들이었습니다.”
비올렛은 린도가 말한 ‘아버지’라는 것이 체자레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오밤중에 악몽을 꾸었다고, 말하며 비올렛을 끌어안은 린도가 생각났다. 그는 간절했고 절실해 보였다. 이제야 알았다. 린도가 나이에 비해 어려 보였던 이유를, 그의 지식은 비록 30년이 넘는 생활로 축적되었을지언정, 그는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마치 순수한 아이처럼 그렇게 신전에만 갇혀 자랐던 것이다. 바로 체자레에 의해서. 성녀 이외의 그 누구도 친구가 될 수 없었고, 그 누구도 그를 사랑할 수 없었다.
“당신이 나를 아들로 보았는지, 그저 편리한 꼭두각시로 보았는지는 모릅니다.”
“…….”
“그러나 저는 이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 스스로 일어설 것입니다. 더 이상 아버지는……제 곁에 있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혀로 입술을 축이고 눈을 빛냈다.
"아버지께서, 틀리셨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린도의 얼굴은 창백해져 갔다. 그러나 연약해 보이는 몸에도 불구하고 그 금색의 눈동자만은 불꽃을 담은 듯 뜨거웠다.
"아버지가 제 판단을 보고 비웃으셔도 좋고, 절 역겨워 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에
게 이젠 모든 것을 의존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 결연한 의지는 린도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타고 흘러 퍼졌다.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둘을 보고 있었다.
“저는 이제 혼자 서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이제 물러나주십시오.”
그러나 체자레가 순순히 물러날리가 없다고 비올렛은 생각했다. 어떤 약초에 두 사람의 피를 섞으면 그것이 판단이 가능하다 말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불확실했다. 콘차카족이 부리는 주술로 구분이 가능하다 했지만 그런 것은 이단으로서 정식 증좌가 되지 않았다. 린도는 너무나 무모했다. 겨우 자신이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체자레의 부정이 증명될 리가 없었다. 그러나 비올렛은, 교황의 눈에 물기가 서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어린아이처럼 나약해 보이지 않았으며 영원히 깨지지 않을 다이아몬드처럼 강하고 찬란했다.
“이런 저를 부정하실 생각입니까, 아버지?”
비올렛은 체자레의 금색 눈이 커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아주 어떤 것을, 처음 보는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마치 망치를 얻어맞은 것처럼, 체자레는 린도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린도는 체자레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체자레는 저 멀리 샤를루스를 보았다. 그 어린 소년왕 역시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보고 있었다. 국왕과 교황, 자신의 혈연들을 보고 있던 이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것이 분노가 아니라, 웃음이었다. 그는 시원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웃음을 터트렸던 것이다.
“아, 아하하하!!”
체자레는 처음으로 제대로 웃었다. 심지어 그는 배를 잡기도 했다. 그 웃음소리는 비웃음소리 같기도, 환희의 웃음소리 같기도, 그리고 오열하는 웃음소리 같기도 했다. 한참동안이나 그의 웃음소리가 침묵의 알현실에 울려 퍼졌다. 그의 금색 두 눈에는 눈물마저 맺혀 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 그 기괴한 웃음소리는 잦아들었다. 그리고 체자레는 허리를 똑바로 피며 린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서려 있었다.
“내가 졌습니다. 린도.”
그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린도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래요, 당신은 내 아들입니다.”
부드러운 얼굴로 린도를 바라보던 그는 린도의 앞에 한발자국 다가갔다. 화려한 성복이 허름한 옷의 린도와 대비되었다. 그러나 체자레는 그 허름한 차림의 소년 앞에 주저 없이 무릎을 꿇었다. 사람들은 이 엄청난 사태에 어떤 말도, 심지어는 놀라움의 신음소리도 내지 못했다.
“저는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성하. 성하께서 제게 내리시는 파문의 죄, 달게 받겠습니다.”
린도의 한쪽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교황은 흐르는 눈물을 닦으려 애쓰지 않은 채, 서늘한 얼굴로 고개 숙인 추기경을 보았다.
“신관 체자레를 추기경직에서 파문한다. 이제부터 그대는 신의 종이 아니며 속세의 사람이다.”
린도는 조용히 선언했다. 비올렛은 그 일련의 장면을 보고 있었다. 서로 부자였다. 저 둘은, 부자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어머니는 누구인가? 그러고 보면 린도는 단 한 번도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 한 적도 없었다.
체자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모든 이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여유로운 미소인지, 아니면 다시 한 번 그들을 조롱하는 것인지 모른다. 체자레와 그녀의 눈이 마주했다. 혼란스러워 하는 비올렛을 보며 체자레가 미소를 지었다. 비올렛은 도저히 체자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그 아버지를 자신의 손으로 버린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것을 받아 들였다. 린도가 신관들을 바라보자 신관들은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가장 믿음직스러운 추기경이 신관직을 상실했다. 교황을 유일하게 다룰 수 있는 자가 사라진 것이다. 그들은 지도자를 잃었고, 그들의 유일한 지도자는 린도밖에 없었다.
그들은 린도를 차마 끌어내릴 수도 없었다. 그들은 린도가 가진 성력이 두려웠고 그 성력을 성도의 신자들이 추앙하며 숭배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녀가 없었던 동안 교황은 성녀의 대신이었고, 그들은 그런 교황을 끌어내릴 수 없었다.
체자레는 자신이 차고 있던 신의 문양이 세심하게 새겨진 로자리오를 린도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들은 오래 서로를 응시했다. 그리고 체자레는 뒤로 물러선 채, 비로드 옆에 서 있었다. 비록 파문되어 교황파를 이끌 어떠한 명목이 사라졌어도, 국가 유일한 공작이었고, 이 결과에 대해 지켜볼 책임이 있었다. 린도는 그런 체자레를 바라보다 그에게서 등을 돌리며 샤를루스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이제 다시, 교황과 왕이 마주했다. 샤를루스는 방금 벌어진 사태에 대해 무척이나 놀란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교황이 자신 쪽으로 다가오자 침착하게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전포고는 성녀가 감금되었다는 것에 분노한 제 경솔한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전쟁에 대한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폐하. 폐하는 제게 책임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린 동등한 위치 아닙니까, 도대체 왜 제게 공대를 하십니까, 성……. 아니, 교황.”
샤를은 자신보다 훨씬 더 커버린 그 청년을 보았다. 그는 거대했으나, 어쩐지 자신과 닮아 보였다. 샤를루스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이 교황이라는 자가 자신의 혈연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고 동정심에 그런 것도 아니었다.
교황과 왕, 그들은 서로 너무나 무거운 왕관을 쓰고 있었다.
그 둘은 서로의 유일한 이해자였다. 이상한 주술이 걸린 것처럼, 놀랄 만치 닮은 그들은 서로를 응시했다. 사람들을 등진 린도가 살짝 미소를 짓자, 샤를루스 역시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샤를루스는 다음의 행동을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비올렛 역시도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승전한 교황이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댔다. 허름한 옷 위로 그가 가진 아름다운 은발의 머리카락이 바닥에 흘러내렸다.
“그대의 조부에게 받은 인사, 그대에게 돌려드립니다.”
승전한 교황이, 패전한 국왕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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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드디어 밝혀졌습니다. 체자레 비밀 1개봉!
내일부터 4일간 휴재합니다. 외전집 배송건으로 4일간 서울에 있을 예정입니다.
다른 작가님들도 만날 예정이에요.
원래는 오늘까지 3부를 다 끝내고 서울을 갈 예정이었지만 역시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죠.
서울 잘 다녀오고. 만약 가능하다면 비축분도 퇴고해서 올려보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
+아니 이거 갑자기 왜 복사돼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