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4 제비꽃, 피어나다 =========================================================================
"예하, 예하!”
말을 타고 있던 체자레에게 전령이 당도했다. 그들은 지금 수도로 진군하고 있었고, 수도의 남동쪽 제 3관문(Gate), 블룸버그 백작이 수호하는 성벽에 서 있었다. 이미 소식을 받은 교황파 귀족들은 뜻을 같이 하여 체자레에게 원군을 보내고 있었다. 이미 교황파 귀족들과 국왕파 귀족들의 전쟁들의 소규모 탐색전이 일어나고 잇었다.
천년동안 제대로 된 전쟁한번 일어나지 않았던 나라다. 그러나 에르멘가르트 가문을 비롯한 몇개의 무가(武家)들 덕에 이 나라의 군사 체제는 형편없는 정도는 아니었다. 4관문 너머 3관문이 남았다. 수도로 가는 길, 왕의 직할령의 외성(2관문) 내성(1관문) 그리고 유리성벽과도 같은 수도 성벽만을 넘어 진격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무슨 일인가!”
체자레의 앞을 막아 선 성기사가 신전의 깃을 단 전령을 경계했다. 전령은 문서를 내밀었다. 성기사는 그것을 유심히 보다 허, 하는 숨소리를 내며 그것을 체자레에게 내밀었다.
성도 아우베르트 함락.
신의 도시이자 믿는 자들의 낙원이라 불리는 그곳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자세하게 소식을 읽어 보았다. 서쪽 케스투니스의 칸인 타르크가 성도로 진격하여 교황령 내 성도의 주변 도시를 점거하였고, 성도까지 함락시켰다는 것이었다. 성도는 구자르트가 쳐들어온지 단 하루만에 제대로 된 방어 구축도 채 못한채 공략되었고, 현재 교황이 죽었고 시신이 발견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식이었다. 시기를 보아하니 이정도 규모의 군사가 올 정도였으면 꽤나 오래전 부터 준비가 이루어져야 마땅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너무나 명백하지 않은가. 국왕과 구자르트는 이전부터 손을 잡고 있었다.
“구자르트의 침략이라. 꽤나 하는군요.”
체자레의 어조는 언제나 처럼 나른하고 평이해서, 승전보를 접하는 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어찌해야 하는 겁니까. 성하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성하의 시신이요?”
체자레가 물었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성하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자르트에서, 왕도에서 성하의 외양을 정확히 아는 이가 있습니까? 성하의 시신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기록된 것에 따르면, 구자르트 인들은 신관들을 닥치는 대로 도륙했다니 그것이 더 소름끼쳤다. 그들의 교황은 이제 겨우 젊은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교황은 신관인 척하고 성도를 돌아다니는 것을 즐기긴 하지만 이런 종류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학습되지 않은 아이같은 사람이었다.
“성하는 괜찮을 겁니다.”
성기사는 어쩐지 굳은 믿음보다는 자신을 안심시키길 바라는 듯 되뇐다 생각했다. 체자레는 아주 깊게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그는 한참 후에 생각을 정리해서 말했다.
“근방에 있는 가문이... 그렇군요, 네르실라 백작과 헤링턴 백작 가문이 있군요. 중립의 가문이겠지만 성도에 이어 자신들의 영지까지 이민족들이 쳐들어 오는 것은 바라지 않는 일일 터, 군사를 파견하여 성도를 재탈환하라 이르십시오. 그리고, 기사들 몇을 파견하여 성하를 찾아오라 이르십시오.”
체자레의 금안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언제나 여유롭게 미소짓고있는 체자레의 얼굴이 굳어지자 사람들의 불안감이 번져 나갔다. 그렇지만 그것도 한 순간, 그의 얼굴이 다시 가면을 쓴듯 평온하게 굳어졌다.
“신의 가호가 성하를 보살펴 줄 것입니다. 바로 성하가 아니십니까.”
체자레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 평이한 어조에 성기사들이 안심했다. 그들은 체자레가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렇게 하지 않고서야 견딜수가 없었던 것이다. 성하를 왕으로 옹립시키기 위해 하는 전쟁에서, 성하를 잃어버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러나 추기경은 높은 성벽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조용히 말했다.
“아무래도 기다림은 미덕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신관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신관들은 체자레가 읽어준 서류를 읽은 성기사들이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자 분개하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이교도놈들을 끌여들여서, 왕이 미쳐도 단단히 미친게 분명합니다!”
어떤 내용인지 전해들은 신관 한 명이 화를 내며 떠들었다. 복수심에 미쳐서, 다른 나라까지 끌어들이려 하다니. 그것은 정말로 국왕이 전쟁에서 제대로 된 명분을 세우기를 포기 한 것이었다. 왕도에만 틀어박혀 신관들을 배제시켜서 그런지 이 나라의 신앙의 힘을 무시한 것일까. 그러나 체자레는 신관과 성기사들의 분노, 그리고 그를 따르는 귀족들의 경악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언제나처럼 미지근한 어조로 부드럽게 말했다.
“온 나라가 불길로 타오르겠군요. 어쩌면 그래요, 모든 나라가 불길에 휩싸일지도 모르겠어요.”
마치 내일이 축제가 벌어지는 듯, 그렇게 기대감마저 어린 말투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니, 걱정하는 것 보다는 ‘어찌되든 상관없다’, 설령 이 나라가 멸망해도, 그것은 그들의 선택인 것을. 그는 그저 선택의 기회를 주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하는 것은 언제나 지극히 이기적인 방식이었다.
아그레시아가, 세상이 붉게 되어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붉은 그가 만들어 피비린내나는 또 다른 붉음이라. 체자레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보고 있습니까?”
그것에 대답따윈 있을리 없다. 그저 하늘이 알려주는 것은 신의가 아닌, 눈이 올 것이라는 잿빛 구름이 뿐이었다. 그는 다시 붉은 웃음을 지었다.
*
샤를루스의 상태는 더 좋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서서히, 아주 서서히 나빠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쓰러져 있는 자가 깨어나지 못하면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샤를의 볼살은 며칠 사이에 쭉 빠져버렸고 창백한 그의 낯빛은 이제 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그는 가끔씩 신음소리를 흘리고 꿈을 꾸는 듯, 헛소리를 내뱉고는 했지만 완벽하게 의식을 되찾지는 못했다.
착잡한 심정으로 커튼 너머 샤를루스의 그림자를 보던 에이든은 한숨을 쉬었다. 왕비의 울음소리가 들리며 그는 착잡한 한숨소리를 냈다. 샤를루스를 보면 언제나 기분이 가라 앉았다.
결국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해독제에 대한 추적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그 독한알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지출한 가문역시 보이지 않았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에이든은 상당히 지쳤다.
국왕은 결국 외세를 끌어들여서 까지 통일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으며, 이에 국왕파는 분열하기 시작했다. 앞날이 어두컴컴해지는 것이다. 어쩌면 국왕은 성도 아우베르트가 함락되고 교황이 잡히면, 모든 것이 끝난다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전술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적군의 허를 찌른 것이었으니!
그러나 그 야만인들은 교황이고 아니고 구분 없이 신관들을 전부 학살했고, 추기경은 수도로 향하는 진군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교황이 죽지 않았으며 발각되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게다가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교황이 왕실의 핏줄을 가지고 있는 금안의 소유자라는 것이었다!
왕이 실정(失政)했을 경우를 대비해 마련한 왕의 핏줄이라니, 신관이 되면 자동적으로 왕위계승권이 포기가 된다. 그러나, 교황은 신관이 될때 계승권의 포기를 을 공개선언하지도 않았으며, 일반 신관이 되는 자라면 응당 그랬어야 할 계승권에 대한 포기를 왕궁의 문건으로 남기지 조차 않았다. 왜냐하면 그 당시 살아있던 대신관들과 추기경 체자레가 교황 린도의 옹립을 강하게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전대 교황의 술수였던 것이다. 체자레가 공작 위를 받음으로서, 다시 왕위 계승권이 생겼지만 그는 그것을 포기했다는 것도 왕족인 교황을 숨기기 위한 연막이었다.
에이든은 국왕만이 전쟁을 준비했다 여겼다. 하지만 교황파 역시도, 시대를 거슬러 올라 가, 이런 상황을 염두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아주 오래전 부터, 교황과 국왕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기득권싸움을 계속해서 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터진 것이다.
“이러다 비올렛, 내가 너보다 먼저 죽을지도 모르겠어.”
곧있으면 출정일이 가까이 다가왔다. 전투 경험이 없는 가주가 군대를 이끌 수는 없었다. 그것이 혹여나 국왕파가 승리하게 된다면 가문의 입지가 좁아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지만. 그는 많은 군사들의 목숨을 떠안을 자신이 없었고, 경험이 부족했다. 가문을 위해 미숙한 자신이 병사들을 희생시킬 수 없었다. 자신과 같은 나이에 전쟁터에 있던 형은 아마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이라도 외성 바깥으로 나가 3관문으로 가서 교황군을 타파하고, 군공을 세워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형은 언제나 그런 대단한 사람이었으니. 졸지에 떠안게 되며 거느리게 된 기사들은 너나 할것없이 모두 에셀먼드를 그리워 하고 있었다. 심지어 기사들의 소문에 의하면, 당시 콘차카족과의 국경 사수 전투에서 세웠던 공을 지휘관이 가로챘다는 에이든마저 모르는 소문을 그들은 알고 있었으며 에셀먼드를 기사로서 존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형은 알면 알수록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알면 알수록 그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알게되어 형은 안쓰러워 지기도 했다.
에이든은 착잡한 마음으로, 회랑에서 정원으로 향했다. 뭔가 맑은 공기라도 쐬어야 진정이 될것 같았다. 그때 어디선가 썩은내가 났다. 순간 드는 불길한 느낌에 에이든은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이것은 시체썩는 냄새였다. 정원에는 꽃 향기가 있어야 정상이 아닌가. 그 이질적인 냄새에 에이든은 코를 킁킁 거리며 그 악취를 쫓았다. 이윽고 발견한 악취의 근원을 본 에이든은 허탈하게 숨을 내쉬었다. 왕자의 방으로 이어지는 창틀 아래에, 고양이가 혀를 쭉 빼어문채로 죽어 있었다. 에이든은 이번데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첫번 째 한숨이 허탈한 한숨이었지만 두번째 것은 착잡함에서 나오는 한숨이었던 것이다.
‘루비!’
비올렛이 키우는 고양이와, 왕자가 키우는 고양이는 형제로서 모두 에셀먼드에게서 선물된 고양이었다. 샤를루스가 그 고양이를 얼마나 아끼는지는 에이든이 잘 알고 있었다. 먹을 것을 줄 때만 애교를 부려서 샤를루스는 에이든의 만류에도 고양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자주 만들었고, 그 결과 고양이는 이렇게나 뚱뚱해져 버렸다.. 뚱뚱하면 빨리 죽는다니까, 왜 말을 안들어서 전하는....... 그래도 뚱뚱한 모습조차고 귀엽다고 꼭 껴안아 볼을 부비는 천진한 왕자의 모습이 두 눈에 선연히 어렸다 에이든의 두 눈에 눈물이 어렸다.
이 어린 왕자가 깨어나는 것을 기다려 주었어야 할 무심한 고양이는, 주인을 먼저 두고 세상을 떠나버렸다.
============================ 작품 후기 ============================
3천 넘었네요 ㅎ..?앞으로 한편만 더 올리면 되려나? 이따가 한편 또 올릴게여 ^0^
코멘코멘 많이 많이 남겨주셔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