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1 제비꽃, 피어나다 =========================================================================
에이든이 후작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저택 안이 얼어 붙었다. 그 모두들 부동자세로 문을 연채 이 침입자를 보고 있었다. 에셀먼드가 갑자기 저택에 찾아왔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열어주지 말라고 하는 집주인의 허락도 없이 무단 침입한 에셀먼드를 후작 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후작가 내에 거하고 있던 기사단 몇명이 놀라 달려왔다.
“겨, 경!”
“.........”
“아무도 들지 못하라 명했다.”
창문 너머 서슬퍼런 에이든의 목소리에 기사들이 검을 뻗었으나, 에셀먼드의 기세역시 만만치 않았다.
“여기서 기사들을 다치게 하길 원하는 겁니까 후작.”
“그놈의 후작! 아주 그쪽에게 들으니 지긋지긋하군요!”
에이든이 결국 창문을 열며 비아냥거렸다. 조그마한 비아냥거림이라면 당연히 들리지 않았지만, 에이든은 목소리가 큰 편이었고, 숨기려는 생각이 아닌 들어라고 하는 소리였기 때문에 후작가에 쩌렁쩌렁 울렸다.
“성녀님이 모셔오라 했습니다.”
그말에 에이든이 소리쳤다.
“아하~그래, 아주 성녀님이 제일 대단하시겠지! 비올렛이 죽으라곤 명령안했습니까? 그래줬으면 속이 시원할텐데.”
그 말에 에셀먼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후, 하고 한숨을 쉬더니 다시 참을성 있게 대답했다.
“성녀님이 모셔오라 했습니다.”
“아! 그 말밖에 못하십니까! 원래부터 심심했는데 더 재미없어졌네. 재미없는 신관들이랑 같이 있더니, 글러먹었네! 글러먹었어.”
차가운 에셀먼드의 얼굴이 위험한 빛을 띠었다. 앞에 막으려고 서 있던 기사들의 표정이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저것은 연병장 백바퀴를 돌라 명령하기 전 얼굴이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후작님.”
“아 가디언 나리께서 경고씩이나! 아이고 무서워라!”
저 깐죽거리는 입을 치워버리고 싶다. 세상에서 지워버리고 싶다. 아무리 후작이라도 대놓고 죽으라고 이러는 거라니. 에셀먼드에게서 뿜어나오는 위압감에 기사들이 차마 그와 눈도 못 마주치려던 찰나였다.
“다리를 부러트려서라도 데려가겠습니다.”
이런 미친! 에이든과 기사들의 표정이 싹 변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지만 그 말이 서린것은 진심이 담긴 경고였다.
“성녀님이 가만 두지 않을 겁니다만? 비올렛이 얼마나 착한데.......”
“성녀님도 윤허한 일입니다.”
“아, 그 애는 진짜 그 더러운 성격 고쳐야 해!”
에이든이 빽, 소리치고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기사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저택의 문이 열렸다. 집사가 반가움을 표시했으나, 에셀먼드는 집사와 눈도 마주하지 않고. 마련되어 있는 응접실로 성큼 걸어들어갔다.
*
한참이 지나 처음으로 서로 화해라는 것을 해본 그들은 또다시 문제와 조우하게 되어 왕궁으로 이송되어가고 있는 도중이었다. 성녀 시해사건이라니, 처음에는 에셀먼드 역시 급하게 말을 몰았으나,치안대들에게 끌려가느라 그들은 말을 탄채 느릿느릿 호송되어가고 있었다 에셀먼드가 말의 옆구리를 걷어 찬 것은 순간의 일이었다. 창과 칼에 겁에 질려있던 말이 뒷발로 일어서자 포위하던 병사들이 말발굽에 행여나 치일까 도망갔다.
“형!”
에이든이 무엇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에셀먼드가 검을 꺼내들었다. 그것은 병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었다. 그들은 정식 기사도 아니었으며, 에셀먼드가 뿜어내는 기세에 겁에 질려 있었다.
“자, 잡아라!”
그러나 에셀먼드는 그 찰나의 망설임 조차 기회로 만드는 사람이었다. 공간이 생기자 마자 그는 말을 다시 앞으로 몰았다. 어찌나 맹렬한 속도였던지, 말이 달리는 소리가 바람소리와도 같았다. 치안 대장이 얼른 말을 타고 에셀먼드를 쫓았다. 그러나 에셀먼드는 이미 점이 되어 버린지 오래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에이든은 망연하게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론은 하나였다.
에셀먼드가, 긍지높은 그의 형이 지금 도주한 것이다.
*
“어쩐 일이십니까.”
린도는 체자레의 방을 찾았다. 전령이 도착한 것은 사건 발생 후 사흘이 지난 후였고, 전령의 목을 보냈으니 그들도 이제 본격적으로 전쟁준비를 활발히 할 것이다. 성도의 병력이 보이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다소 시간이걸렸다. 기사들이 전쟁준비로 한창일 때, 린도는 조용히 체자레를 찾아갔다. 이틀 후가 출병일임에도 체자레는 느긋한 차림으로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심지어 그것은 전술서도 아닌 그저 그런 시인의 낭만시 중에 하나였다. 편한 수면 가운을 입고 있는 그의 등으로 어깨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이 어두운 루비색으로 빛났다. 그것은 기이하게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평화롭고 아름다워, 기묘한 안도를 주는 장면이었다.
“불안하셔서 오신 겁니까?”
마치 아이를 다루는 듯한 말투였다. 자신과 똑같은 체자레의 금색의 눈빛을 보던 린도는 눈을 들어 체자레의 손에 끼인 반지와 화려한 귀걸이를 보았다.
“전시임에도 언제나처럼 화려하십니다, 추기경.”
“완벽한 승리가 예정되어 있는 싸움에 그에 맞는 행동을 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까?”
책이 사르락 거리며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체자레의 얼굴에 미소가 서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오신 겁니까. 아니, 무엇을 묻고 싶어서 오신 겁니까.”
그 말에 린도가 물었다.
“전쟁 말입니다. 비올렛을 구출해 내기 위해 일으키는게 맞습니까?”
그 말에 체자레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이런, 당연한 말을 하십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금된 성녀님의 목숨이 위험합니다. 나라 존속이 달린 일이기도 하지요.”
체자레의 얼굴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은 추기경이 일으키고 싶었던 것이 아닙니까?”
린도가 싸늘하게 물었다. 말하는 사안이 어마어마함에도 체자레의 얼굴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어찌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린도가 대답했다.
“보고를 들었습니다. 한달 전, 다니엘 하드퍼드와 공작령에서 접촉을 가졌다지요? 그리고 독술사가 그곳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린도의 얼굴이 싸늘하게 물들었다.
“왕자가 시해된 것이 우연입니까? 비올렛은 누명을 쓴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우리에게 명분이란게 있습니까? 전쟁은 그쪽이 아니라 우리가 일으킨 것이 아니냔 말입니다.”
그 말에 체자레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아주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듯한 태도였다. 린도는 그 기만적인 웃음소리를 고요한 얼굴로 듣고 있었다.
“처음부터 추기경은 비올렛을 이용할 생각이었던 겁니다.”
“아니, 아니!”
체자레가 웃움기 서린얼굴로 말했다.
“성녀에 대한 제 사랑은 진짜랍니다! 저는 비올렛을 아주 아끼고 있어요. 린도, 아주 많이 발전했군요. 사람을 심어서 절 감시하다니.”
억지로 끅끅거리며 참는 웃음 소리가 귀에 거슬렸지만 린도는 그것을 막지 않았다.
“하지만 린도, 제가 그에게 준 것은 독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에 린도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거짓을 말하지 마십시오! 성녀가 눈앞에 있었는데도 치료하지 못하고 왕자가 사경을 헤매고 있다면 분명 보통의 독은 아닐 겁니다. 이 나라에서 그런 독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 독술사 외엔 없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를 소개시켜 준 것은 맞으나, 독을 건네준 것은 제가 아니랍니다.”
“추기경!”
린도가 소리쳤다. 그는 체자레를 적수라도 되는 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 위압에 기가 죽을 만도 하건만, 체자레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 전쟁을 멈추겠습니다. 출병은 없습니다.”
“호오.”
그가 흥미로운 듯 린도를 보았다.
“당장 추기경을 구금하라!”
린도의 목소리에 밖에 서 있던 기사들이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체자레는 느긋하게 린도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성하. 전쟁을 막겠다니,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국왕에게 정식으로 요청하겠습니다. 말룸이 있기에 성녀가 있다는 것은 교리상 당연한 지라 그 모순을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독살에 대해서는 증명할 수 있겠지요. 추기경이 아니라 하셨으니 오해는 분명 밝혀지리라 믿습니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신관들과 기사들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교황과 추기경의 대립에 사람들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저는 말입니다 성하. 때로는 성녀를 닮은 성하의 천진함이 역겹습니다.”
체자레의 금안이 서늘함을 품었다. 똑같은 황금색 눈을 가진 맹수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체자레의 몸에서 죽음의 기운이 뿜어나오고 있었다. 린도는 자신에게 역겹다는 표현을 들은 체자레에게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성녀는 언제나 순수하며 천진해도 됩니다. 왜냐면 그렇게 태어난 존재니까요. 평화를 좋아하고 온화함을 좋아하는것, 때로는 그것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성하는 다릅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이미 벌어진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겨우 시해범을 찾는 것으로? 주사위는 던져졌고 왕은 전쟁을 ‘선택’했습니다. 성녀가 중요하다 일렀건만, 사랑스러운 비올렛의 순진함에 감화되는 교황 이라니, 그 모습이 너무나 어리석고 구역질나 못봐줄 것 같습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하얀 수면복위로 그의 긴 붉은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그는 손을 들어 그 머리를 정리하더니 말했다.
“성하를 모셔라.”
“무슨!”
그 말에 성기사들이 일제히 린도의 곁에 서서 그의 팔을 잡았다. 린도는 앞에 서 있는 체자레를 노려보았다.
“무슨 짓이냐.., 지금 교황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이렸다!”
린도의 몸에서 위험한 기운이 뽑아져 나왔다. 그의 경악이 서린 얼굴에 비해 체자레는 느긋하게 린도의 앞에 섰다. 그의 손이 린도의 은발을 쓸어내렸다.
“아직도 멀었습니다. 얼굴도 드러내지 않는 교황이 제대로 성무에 나선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누구를 더 신뢰할까요.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교황일까요, 아니면 저 일까요?”
린도는 자기 앞에 선 남자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처음부터 여유를 잃지 않고 있었다.
“사람을 붙였다 하셨지요? 제가 그것을 정말로 모른다고 생각하셨습니까?”
그의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그는 매력적일 정도로 아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동안 그가 지었던 미소보다 더더욱 환하며 잔혹한.
“그 동안 성하의 성장을 기쁘게 봐왔습니다만, 이런 어리광은 나중에 부리셔야겠습니다. 제게 이를 들이대려면 조금더 자세를 낮추시고 자신을 숨기셨어야죠.”
속닥거리는 목소리가 린도의 귀에 들려왔다. 린도가 이를 악물고 체자레를 노려보았다.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나. 자신이 움직이기만 한다면 체자레의 사람들이 자신의 사람들이 될거라 생각했다. 그는 성도의 지배자이기에, 그동안 체자레를 용인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반대였다. 린도는 체자레가 그동안 그를 ‘봐주고’있었음을 깨달았다. 교황이라는 권위가 절대적이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체자레의 손에 있었다. 자신이 교황이 된 것은 체자레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하를 모시고 두어라. 출정때, 아니, 출정때 이후로도 성 밖으로 나설 수 없다.”
“추기경!”
성력을 쓰고 싶었지만, 쓸 수 없었다. 써 봤자 힘만 낭비하는 것이다. 린도는 자신이 실각(失脚)했음을 깨달았다.
*
에이든이 북쪽 탑의 방으로 올라가자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쳐진 쇠창살 아래 기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는?”
“전혀 안드시고 계십니다.”
기사 한명이 걱정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그 역시도 착잡한 마음에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전 크리처 토벌때 차출되었던 기사 중 한 명이었다.
“경, 저는...... 성녀님이 도저히 전하를 독살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입 조심해라.”
에이든이 서늘하게 눈빛을 보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니까.”
“이전이라면 신전놈들의 수작질이라고 생각할텐데, 이번에는 그런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그놈들은 성녀밖에 모르는 좀 모자란놈들인데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질렀겠습니까. 크리처 토벌건에서 질리도록 봤습니다 그것이 결코 거짓은 아닐것입니다.
잡혀온 그 아르센이라는 기사도, 잡혀간 요리사도 사실 전혀 상관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아르센경은 문초를 받으면서도 성녀님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게...... 사실 기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다들 한번씩은 족쳐본적이 있는 기사들인데... 정말 모르는 것 같다고.”
“그래?”
고문기술자 옆에서 고문하는 것을 지켜보던 기사들이었지만, 그들 역시도 어느 정도는 결백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물론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닌 그저 정치적인 이유에서 무죄인가 유죄인가였다.
에이든은 얼굴을 찌푸렸다. 비올렛을 따르던 아르센 경을 비롯한 성기사들, 그리고 요리사와 몇명의 시녀들 역시 문초를 당하고 있었다.
“그 ‘초콜렛’이라는 것은 만들기가 상당히 까다로워서 고가의 냉각제가 필요한데, 준비 된 것은 한번 만들 분량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만들때 다 같이 만들어졌다고 하던 겁니다. 따라서 한꺼번에 만들어 주었다는 요리사의 증언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에르멘가르트 경의 하녀가 받은 초콜렛 역시도 아무런 독이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왕자님과 그 하녀에게 드릴 초콜렛 모양 같은 것은 성녀님이 직접 선택했다고 합니다. 요리사의 말과 성녀님의 말 역시 일치합니다. 그렇다면 초콜렛이 만들어 진 후에 독을 넣은 것이 맞습니다. 독은 가루 형태로 뿌려져 있다고 하던데. 또 어떤 부분은 뿌려져있고, 어떤 부분은 뿌려지지 않았습니다. 성녀님이 드신 것은 독이 들지 않은 초콜렛부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상자는 안에 있는 초콜렛이 녹지 않게 특수제작된 것으로서, 밀랍과 같은 접착제로 살짝 봉인된 것이었습니다. 즉, 누군가가 중간에 열어볼 수 없는 구조였다는 겁니다. 성녀님은 상자를 그때 처음 열어 본 것이라 주장하시고 있습니다. 그 상자는 성녀님을 따라 호위차 궁으로 돌아온 아르센 경이 그것을 맡았다고 합니다. 몸수색에서 독약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신전에서 이곳으로 마차를 타고 와서 증거가 인멸된 위험성은 있지만..... 이 끔찍한 사건에 대해서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에이든이 한숨을 내쉬었다. 전쟁준비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에이든이 할 수 있는것은 비올렛의 결백을 밝히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비올렛의 결백이 밝혀진다고 해도, 신전에서 비올렛을 이용했다는게 드러났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국왕이 던진 전쟁의 불꽃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독은 흔하지 않는 독이라 하던데.”
“네, 아주 희귀한 독입니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디스트렌이라는 돌에서 추출된 분진형태로서 최소의 약으로도 즉사.... 죄송합니다”
“그런데 마침 해독제가 있었다는게 좀 석연치 않아. 마치 전하를 죽여놓고서 살리려던 느낌이야.”
“하지만 그것은 왕궁의가 아는 의원에게 가져온 것으로서.......”
“해독제의 출처를 조사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독이라면 분명히 가격도 어마어마하겠지?”
“네, 이 무색 무취, 즉사의 독으로 당연하겠지만 이 독은 타국에선 이 독 한알이 집 한채의 값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이 독에 대해 정보가 거의 없어서.....”
“최근 수도의 귀족을 중심으로 그만한 자금이 빠져 나간 가문이 있나 찾아봐야겠다.”
“네? 왜 하필이면 중앙귀족들을 찾아본다고.......”
“이건 내 감이야. 정말 근거 없는감. 어쩐지 신전이 아닌 다른곳에서, 전쟁을 위해 장난질을 쳤을지도 모른다는 감.”
“.........”
에이든이 얼굴을 찌푸렸다.
“아, 이런 것에 대해 지시를 내리려 방문한게 아니었는데 미안하다. 지금 성녀님은 잘 있나?”
“아니요. 곡기를 끊으셨습니다. 불쌍도 하시지.”
“.........”
에이든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가 말했다.
“폐하는 성녀님이 마녀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는 성녀님을 보았습니다. 수도에서도 한번, 후버 백작령에서 한번. 신을 맹신하진 않았지만, 그렇지만 성녀님을 보고 신의 존재를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다른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수도에 있는 평민들 역시 ‘성녀가 마녀’라는 말에 흔들리고 있고요. 선대 교황과 선왕폐하께서 내린 유언이라니... 그 출처역시 명확하지 않습니다.”
“지스킬 경!”
“죄송합니다.”
에이든의 일갈에 그가 입을 다물었다. 에이든에게 이런 소문이 들어올 정도라면 사람들사이에서 동요가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우린 신앙국가입니다. 성녀의 이름으로 따서 지어진 ‘아그레시아’라는 말입니다. 지금에야 어르신들처럼 우리가 신앙이 두텁지는 않지만 어렸을때부터 말룸과 성녀에 대해 귀가 떨어지도록 듣고 자랐습니다. 실제로 아그레시아님의 동상을 보고 평온을 느꼈고요.”
예배당이 없는 귀족의 집이 없었다. 교황과의 사이때문에 수도이 있는 대신전 역시 사람들이 가끔가다 기도를 하는 곳이었다. 물론 귀족들이 기부금을 내서 세금이 세탁되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지만. 그 대신전을 보면 어쩐지 안심이 되는것이 아그레시아인들의 국민성이었다.
“전쟁을 극구 반대하시던 라이셀 백작께서는 저택에 구금되셨습니다. 지금 우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아그레시아라는 성녀를 부정해버린 왕, 그렇다면 이 나라는 신성의 나라,‘아그레시아’로서 존속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같은 종교를 가진 동맹국으로서 아그레시아의 위치는? 성녀가 나타나서 말룸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성녀를 죽이면 된다. 이 위험한 도박을 그 누가 좋아할 것인가
*
“비올렛, 나 왔어.”
비올렛은 눈을 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든이 서 있었다. 며칠이 지났는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그저 느껴지는 것은 돌바닥의 차가운 감촉뿐이었다. 몸을 일어나자 지탱하던 팔이 덜덜 떨렸다.
“밥은 왜 안 먹어.”
“그냥 들어가지 않아서.”
그 목소리가 갈라졌다. 비올렛의 성복도 그 아름다운 은발 역시 깨끗했지만 비올렛의 생기는 사라져가고 있었다.
“다니엘 형이 다녀갔다더라?”
“응.”
“무슨 일 없었어? 또 널 때린 건 아니지?”
“아니야, 아주 잠깐 보고 갔어.”
기사가 했던 말과 일치했다. 에이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올렛은 며칠동안의 조사에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독살 조사에 있어서 그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것을 말했다. 상자, 초콜렛, 아르센 경. 등등, 사실 그러나 그것이 결백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성녀를 부정하겠다는 왕을 믿을수가 없었다.
“전하는 무사하셔?”
“아니 불행하게도 아직 깨어나지 못했어.”
그의 말에 비올렛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렇구나.”
“에드 경은 어떻게 됐어?”
“비올렛.”
에이든은 차마 수도의 외성으로 도주하는 에셀먼드를 보았다는 사람이 있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지금 에셀먼드는 비올렛을 버리고 도망간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 줘.”
“그게, 수도로 갔어. 아마... 성도로 가서 누군가를 데려오려는게 아닐까?”
그 말에 비올렛이 피식 웃었다. 그녀역시 에이든의 말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것이 눈에 보였다. 만약 에셀먼드가 그녀를 구해내려 했다면, 적어도 그는 수도에 남아서 기회를 엿봤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수도를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아르센 경도... 내가 데려온 요리사는 고문받고 있는거지?”
비올렛은 어려운 질문만 계속 해댔다. 에이든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올렛의 얼굴은 간절해보였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비올렛의 얼굴이 더 흐려졌다.
“다니엘이 전쟁이 일어난다고 했어. 나 때문에.”
“너 때문이 아니야!”
에이든이 소리쳤다. 비올렛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나 사실은, 진범을 찾으려고. 그 독이 특이한거라서 잘만하면 진짜 독이 어디서 들여왔는지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 말에 어쩐지 비올렛의 얼굴은 더욱 더 어두워졌다. 그녀는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듯 에이든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까 너도 좀 힘내봐. 오빠가 꼭 네 결백을 밝혀줄게.”
왕이 성녀를 마녀로 몰고있다는 것을 차마 밝힐 수 없던 에이든은 그저 비올렛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그마한 머리가 손에 쏙 들어왔다. 어떻게 폐하는 이 아이를 죽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에이든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밥, 먹을 거지? 내가 신경써서 가져다 달라고 할게. 뭐가 들어있진 않을거야.”
비올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편한건 없어? 막 화장실 같은거 말이야 냄새나지는 않아?”
그 말에 비올렛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비록 이곳이 낡고 허름하긴 했어도 왕족을 유폐하는 방이라 지하감옥보다는 대우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다는 어두운 것만 제외하면 그러했다. 정말로 나쁘진 않은 대우였다.
“뭐가 더 필요한거 없어? 오빠가 후작이잖아 괜찮을거야.”
어쩐지 그 말에 눈물이 나오려 했다. 에셀먼드는 수도에서 떠나버렸고, 다니엘은 상황이 최악으로 달릴거라고, 절망할 준비나 하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니엘은 모르고 있었다. 절망은 언제나 비올렛의 인생의 동반자였다.
============================ 작품 후기 ============================
비축을 많이 써두긴 했어요. 내일 까지 해서 3부 거의다 끝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3부 끝까지 쓰면 또 털어낼테니 여러분 추천추천!!
지겹지만 재밌는 전쟁파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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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과 국왕세력의 갈등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답니다.
샤를 독살에 대한 힌트는 이미 3부 초반에 드러냈습니다. 읽어보시면 아실거에요ㅎㅎ
사실 에이든과 에셀먼드의 화해에 대한 대화는 이미 써놨는데 이건 나중에 에드시점에서드러내도록 합시다.
저 어제 치과간다고 말했는데 기다리면서 글쓰라하시다니.. 아파서 병원가는데... 글쓰라 말하시는거 넘나 서운한것.. ㅜㅜ......
여튼 추천이 많으면 모다? 내가 내일 3부를 끝내는 비축분을 쓰고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