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원에 핀 제비꽃-149화 (142/208)

00149  제비꽃, 피어나다  =========================================================================

모든 일이 끝나자, 사람들이 다시 시선을 돌려 저마다의 이야기에 열중했다. 마치 ‘없던 일’처럼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벌어졌다. 비올렛은 국왕과 눈이 마주쳤다. 그 금안에 서린 싸늘함에, 자신이 그렇게 미운 짓을 한 건가 생각하다, 설마. 하며 얼굴을 굳혔다. 하지만 때가 아니지 않은가. 비올렛은 그저 왕의 뒷모습을 보았다.

“괜찮으십니까 성녀님?”

체자레가 비올렛에게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수일레가 다가왔다.

“속이 다 시원하다 저 계집애.”

그 말에 비올렛이 다시 웃었다. 에이든이 걸어왔다. 그는 비올렛을 그냥 지나쳐, 하드퍼드 백작에게 향해, 그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갔다. 상황은 완벽히 정리 되었고, 홀의 음악이 연주되어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춤을 추기 시작했다. 샤를 왕자역시 단에 내려와 하나 둘 사람들에게 인사하기 시작했다. 안정된 분위기를 지켜본 비올렛이 그제야 자신의 옆에 선 남자를 보고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비올렛이 체자레를 보며 말했다. 체자레는 미소를 지은 채 비올렛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위에 손을 얹었다. 체자레의 귀에 걸린 붉은 가넷 귀걸이가 반짝 빛이 났다.

“당연한 일입니다.”

“.........”

시수일레가 얼굴을 붉히며 체자레를 보는 것을 보았다. 체자레의 외모는 완벽한 조각상과도 같았다. 그러고 보니 그 미소가 린도와 약간 닮은 것도 같았다.

“왜요.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체자레가 즐겁다는 듯 웃으며 그녀를 보았다. 비올렛은 시수일레의 시선을 물리치고 말했다.

“스승님의 얼굴에서 조금이나마 진실을 찾아내고자 쳐다본 겁니다.”

툴툴거리듯한 말에 체자레가 미소를 지었다.

“같이 춤이라도 출까요?”

그 말에 비올렛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졌다. 당연하겠지만, 성녀로 간택받은 비올렛은 남자와 춤을 춘다는 연애와 관련된 행동은 하지 않았다. 아니, 일단 그 누구도 그녀에게 춤을 신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순간에 춤이라니. 비올렛이 얼굴을 찡그리자 체자레가 미소를 지었다.

“몸을 움직이면 기분이 전환 될 겁니다.”

“스승님과 저라면 이목을 받아 별로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 말에 체자레가 나른한 웃음을 지었다.

“제가 어린 성녀님께 가르치는 걸 미처 잊었군요.”

꺅, 시수일레의 작은 소리와 함께 비올렛의 허리가 끌어당겨졌다.

“하찮은 이의 시선 따윈 그저 그것대로 두면 됩니다.”

귓가에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소 무례한 춤 신청이었지만, 비올렛은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춤을 배웠지만, 그것을 춰본적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심지어 성년식 때도 그녀가 저지른 일 때문에 춤을 추지 않았다.

“정말, 알 수 없는 분이시군요, 스승님.”

비올렛이 그를 뿌리치려 했지만 단단히 잡힌 허리에 그것을 뿌리친다면 소란이 일 것 같았다. 상황도 정리되지 않는 마당에 갑작스럽게 손을 뻗는 그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장갑을 낀 손에 입을 맞추며 체자레가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생각해보니 어린 제자와 춤을 한번도 춰본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건.”

“아니, 제자는 한번도 춤을 춘적이 없었나요?”

무어라 말할 수 없었던 비올렛이 그의 시선을 피하자 체자레가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성녀님과 춤을 출 시간을 주십시오.”

그는 비올렛의 손을 부드럽게 이끌었다. 비올렛이 시수일레를 바라보자 시수일레가 싱글벙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는 플로어에 나가자 그들에게 다시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아무와도 춤을 추지 않던 성녀가 누군가와 춤을 춘다는것, 그사람이 공작이라는 것이 조금 충격인 듯 했다.

“이건 이상합니다. 성녀가 춤을 춘다는 건…….”

“아나스타샤님도 추었을 것이고 루치아 님도, 아피아체레님도 추셨을 겁니다. 성녀가 드레스를 입는게 금지되지 않듯, 춤을 추는 것 역시 금지된 것이 아니니까요.”

그가 다정하게 말했다. 비올렛은 한숨을 쉬었다.

“설마 처음이라 긴장하신 건 아닙니까?”

열일곱 살때까지 춤을 한번도 제대로 쳐 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긴장이 되는 것을 체자레는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스승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소곤거리자 체자레가 한 손은 비올렛의 손을 잡고 한손은 허리위에 올리며 말했다.

“아니요, 이미 늦었습니다.”

그가 속삭였다. 다른 사람들이 공간을 마련하려 비켰다. 다행히 몸으로 기억하는 것은 소질이 있던지라 비올렛은 예전 라이셀 백작부인에게 배웠던 것을 그대로 학습하고 있었다. 그러나 긴장이 되어 발 밑을 보자 체자레가 미소지었다. 발과 발이 위태로운 궤적을 그렸으나, 체자레는 아주 능숙하게 그녀를 이끌었으며 잔뜩 긴장하여 뻣뻣이 굳어있던 비올렛도 조금은 자연스럽게 춤에 임할 수 있었다. 샹들리에 불빛이 드레스를 더욱 더 환하게 빛나게 해 주었다. 안정을 찾은 그녀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성녀의 새하얀 어깨의 선과 치마의 곡선이 빛났다. 그녀가 한바퀴 몸을 돌자 무거운 드레스 자락이 풍부한 속치마를 살짝 드러내며, 구두를 신은 하얀 발목과 발을 살짝 보여주었다.

“것 보십시오, 잘하시지 않습니까?”

체자레가 속삭였다. 비올렛은 체자레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몸을 이렇게 밀착하다니. 그래도 이상한 것은 체자레의 몸에서 온기가 느껴지자 그가 사람처럼 느껴져 안심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언제나 비인간적인 구석이 있었다. 비올렛이 속삭였다.

“저를 보호해주려 하신 거라면, 꼭 이렇게 요란스러운 방법을 쓰시지 않아도 되셨잖습니까.”

그녀가 살짝 발을 삐끗하자, 허리를 잡은 체자레의 손에 힘이 실렸다.

“이런, 성녀님과 춤 한번 추겠다는게, 그렇게 거창한 의미가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그의 말에 비올렛이 그를 보았다.

“그저 정말로 춤을 춰보고 싶었습니다. 비올렛은 나의 소중한 제자니까요.”

“.........”

비올렛이 체자레를 보며 눈을 내리깔며 웃었다.

“그것이 제게 베푸는 동정입니까?”

그 말에 체자레의 걸음이 잠시동안 멈추었다. 그에 비올렛이 다시 한번 몸의 중심을 잃을 뻔 했으나. 체자레가 허리를 끌어안아 팔에 기대 우스꽝스럽게 넘어지는 꼴은 면했다. 짧은 순간, 체자레는 표정을 지우며 비올렛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예의 그 얼굴로 돌아왔다.

“아니요, 사랑입니다.”

그가 열정적으로 속삭였다. 비올렛은 그 금안에 서린 노골적인 열기를 느꼈다. 체자레는 비올렛을 보며 미소지었다. 그의 팔이 풀리며 몸을 감싸던 온기가 사라졌다.

“유감스럽게도 오늘 이후 저는 다시 성도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성하가 편찮으셔서 정무가 밀렸다 들었습니다.”

“네.”

비올렛의 말에 체자레가 미소를 지어 주더니 등을 돌렸다. 교황파의 귀족들과 따라온 신관들 몇이 그를 따라 연회장을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고 비올렛은 한숨을 쉬었다.

*

체자레가 그녀와 춤을 춘 것이 정말 그가 원해서 춤을 춘게 아니라는 것 쯤은 잘 알고 있다. 추기경이자 공작이라는 그의 특수한 상황과 비록 한풀 꺾이긴 했어도, 교황파의 거두라는 것은 커다란 매리트를 제공했으며 비올렛에게 알게 모르게 기웃대는 사람이 많아짐을 뜻했다. 시수일레에게 돌아가려 했으나, 비올렛은 시수일레와 에이든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언제나 발랄하던 시수일레와, 에이든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은. 눈을 크게 뜨며 그 모습을 담는다. 그냥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의례적으로 춘 것이라기엔, 에이든의 얼굴은 어딘가 달랐다. 설마 에이든이 사랑에 빠진 걸까. 몇몇 사람들이 다가오려 하자 비올렛은 그것을 쳐내며 연회장 바깥으로 나갔다. 나가기 전 홀을 보니 샤를은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다. 나중에 다시 들어가게 된다면 그때 다시 축하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시원한 정원을 향했다.

1년, 이 1년 사이에 너무나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완전히 에르멘가르트 가문과 인연이 끊어졌고 신전의 정식 성녀가 되었다.  왕궁은 하나도 변한게 없어 보였다. 판에 박힌 사람들, 어리석은 사람들. 비올렛이 꽃의 커다란 꽃망울을 보자 누군가가 앞에 다가왔다. 밤에도 찬란하게 빛나는 것 같은 머리를 어여쁘게 땋아 올린 페트리샤였다.

“성녀님을 뵙습니다.”

페트리샤는 아나블라와 다르게 예의를 차리며 비올렛의 곁에 다가왔다. 아마 그녀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따라 오는 듯 했다.

“벌써 1년이 지났나요? 저는 그때 성녀님을 처음 뵀는데.”

그녀의 말에 비올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1년이 지났네요.”

그때, 에셀먼드가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때 그녀는 어떠했었나. 사랑을 부정하고 또 부정하면서도 가라앉은 기분을 숨길수가 없었다. 그때 어찌했더라. 비올렛은 저 영애의 태양과 같은 금발을, 그 아름다운 얼굴을, 그 여유만만한 미소를 질투했었던 것도 같다.

“잘 지내셨나요?”

“어떤 의미로 물어 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럭 저럭 잘 지냈습니다.”

비올렛은 이 여자와 도저히 친해질 수 없었다. 페트리샤가 비올렛을 보며 말했다.

“하드퍼드 백작 영애가 무례했지만, 저는 그 말이 틀린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실제로 소문이 돌았던 것도 사실이고요.”

같은 푸른 눈이라도 어쩜이렇게 다를까. 사파이어같은 푸른 눈을 한 페트리샤는 단호한 얼굴로 비올렛을 보았다.

“저는 하잘것없는 싸움에 당신을 끌어들이려 한게 아니에요. 다만, 에르멘가르트 가문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아셔야 할 거에요.”

“그래서 무엇을 원하는 거죠?”

비올렛이 물어보자 페트리샤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 감정도 들지 않는건가요? 후작 가는 후계자를 잃었어요.”

“관련도 없는 가문의 후계구도에 그렇게 관심이 있을 줄 몰랐네요.”

“저를 하드퍼드 백작 영애와 똑같이 취급하지 마세요.”

페트리샤가 차갑게 말했다.

“꼭 같은 말씀을 하시는데 왜 다르게 취급해야 합니까.”

비올렛의 말에 페트리샤가 말했다.

“에셀먼드 경이 불쌍하지 않으세요? 그분은 미래를 포기하며, 당신 곁에 서 있어요. 에르멘가르트 후작이 지금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보이시지 않으시죠?”

비올렛은 대답하지 않았다.

“후계자로서 전혀 교육받은 점이 없으신 경은 겨우 열 여덟살에 가주가 되어 혼자 짐을 떠맡았어요. 라이셀 백작님께서 도와주시는 것 같지만 그분도 그분 나름 바쁘셔서 한계가 있어요. 연회장에서 에셀먼드 경이 왔을 때 기사들의 눈빛 못 보셨나요? 언제나 집에만 계셨기에 실감을 하지 못하시는 모양인데 모든 기사들이 에셀먼드 경이 되는 것을 꿈꾸곤 했어요. 그는 나라 모든 기사들의 상징이자 가장 존경받는 기사에요.”

비올렛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기사들의 존경을 받은 것은 알고 있다. 그가 무엇을 포기해야 했는지도 알고 있다. 매일 그의 얼굴을 볼때마다 곱씹고 또 곱씹은 거니.

“그래서 무엇을 원한다는 말입니까?”

“그거야, 당연히, 당신이 가디언 계약을 파기........”

계약 파기. 그것을 말할 줄은 알고 있었다. 계약을 파기하고 에셀먼드가 제자리로 돌아간다면 정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계약을 파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그 단어에 대해 생각하느라 비올렛은 페트리샤의 말이 끊긴 것도, 그녀의 낯빛이 하얗게 질린 것도 모르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서늘한 압박감에 비올렛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에셀먼드가 서 있었다.

“찾았습니다.”

그의 말투는 부드럽고, 정중했다. 그러나 비올렛은 그의 목소리완 다르게 그가 상당히 분노했음을 알 수 있었다. 여자에게 향하는 것 치고 과할정도의 압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페트리샤가 입술을 덜덜 떨며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경. 그러니까, 저는........”

그녀가 애처로울 정도로 에셀먼드는 화를 내고 있었다.

“신성한 계약에 대해 그 누구도 강제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고저가 없었지만 서늘함이 느껴졌다.

“경, 경도 분명 아시잖아요? 루체 경도, 에버하르트 경도, 그리고 칼츠 경도 얼마나 경을 그리워했는데요!”

그 사람들은 비올렛이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들이었다. 특히나 루체경과 칼츠 경은 비올렛을 호위까지 했던 사람들이다. 비올렛은 에셀먼드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에셀먼드의 얼굴은 흔들림 하나 없이 냉정했다. 그것이 마치 북풍에 얼고 또 얼어버려 절대 녹지 않는 단단한 얼음과도 같았다.

“그들의 그리움과 내 선택이 무슨 소용입니까?”

“저는 그들의 신의를 저버렸다고 말하는 겁니다. 경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말이에요.”

그것이 에셀먼드를 더욱 화나게 하는 듯 했다.

“내가 ‘원래’ 있어야 할 자리라는 게, 한낱 백작 영애의 입에서 정해지는 것임을 미처 몰랐습니다.”

싸늘한 냉소, 페트리샤는 그것에 대해 상처받은 듯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비올렛은 이 공방을 더이상 보기 힘들었다. 자리를 떠나려 살짝 뒷걸음질 치자, 마치 집착처럼 손목을 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손목은 꽉 쥐어져 있지만, 에셀먼드는 페트리샤를 보고 있었다. 페트리샤는 겨우 자신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성녀님의 입이 정한 것도 아니죠.”

그 말에 에셀먼드가 품은 온도가 내려갔다 그가 말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내 선택에 의해 내가 정합니다. 또한, 그곳이 영애의 곁이 될 일은 영원히 없을 겁니다.”

더이상 할 말이 없는 듯, 에셀먼드는 비올렛을 보았다. 어쩐지 화를 내는 듯한 그의 얼굴표정에 비올렛이 어쩐지 오싹해져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붙잡힌 손목 때문에 벗어날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패트리샤의 눈이 드디어 잡힌 손목을 향했다.

“설마.........”

그녀는 겨우 들릴듯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리더니 눈을 크게 뜨며 에셀먼드를 보았다. 비올렛이 그녀를 쳐다보기도 전에 드레스자락이 펄럭여지며, 페트리샤가 도망치듯 뛰어가 버렸다. 비올렛 역시도 못지않게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지금 그의 얼굴을 별로 보고싶지는 않았다. 혼자 있을 장소가 필요했다. 비올렛 역시 등을 돌렸다. 상황도 끝났겠다 손목을 놔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에셀먼드는 손목을 놔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녀를 조금 거칠다 싶게 끌어당겨 그녀의 앞에 세워졌다. 비올렛은 에셀먼드의 싸늘한 눈동자를 마주해야 했다.

“경, 왜 제게 화를 내고 계시는 거죠? 누가 오해할 겁니다. 어서 손목좀 놔주세요. 아파요.”

그의 말에 손목이 느슨해졌다. 그것은 강압이라기보다는, 절박함이었다. 그는 분노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힘을 조절하지 못할 정도로 냉정을 잃었다. 그러나 비올렛은 그가 화가 난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팔을 잡아 빼려는 힘겨루기가 멎었다. 비올렛은 그 말에 손에 힘을 풀었다. 그러자 에셀먼드 역시 손목을 부드럽게 놔 주었다. 아플정도로 잡힌 손목을 그가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쓰는 감촉이 느껴졌다.

“후회하지 않으니, 다음번엔, 부디 반론하십시오.”

그 눈빛에 흔들림은 없었다. 가디언 맹세를 했던 그때의 얼굴처럼 에셀먼드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비올렛에 의해 강압된 선택이 아닌가. 책무를 갚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 과연 그가 하고싶어 했던 선택인 것일까? 페트리샤의 말이 맞았다. 에셀먼드가 원래 있어야 할곳은 이곳이지 성도가 아니었다. 그저 죽지 않는 성녀의 호위기사를 하기에 그는 너무나 뛰어났다.

“아시겠습니까!”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비올렛은 에셀먼드가 그렇게 격앙이 되었던 것은 다니엘의 일을 제외하고 본 적이 없었다. 그에 비올렛이 깜짝놀라 눈을 크게 뜨며 그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는.....”

“다시는?”

“저를 차선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 에셀먼드는 알고 있었다. 검을 소유할 수 있는 그는 아나블라에 대해 즉결 처분이 가능했다. 그러나 에셀먼드를 그 일에 끌어들이지 않은 것은 아나블라가 그녀의 사촌동생이기 때문이었다. 성녀에게 충성을 맹세하여 자기 혈족에게까지 검을 들이댄 무도한 자라는 오명을 쓰게 할 수도 없었고, 꼭 오명이 아니더라도 애초에 그것을 그에게 시킬 수 있을리가 없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의 곁에 섰습니다. 검을 쓰는데 있어 제게 주저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당신의 검입니다. 당신이 말한대로 유일한 당신의 소유물입니다. 검을 드는데에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겁니다.”

어쩐지 그의 말이 많아졌다. 그는 그만큼 필사적으로 자신을 말하려 하고 있었다. 비올렛은 그것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지금 그녀는 너무나 괴로워 견딜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한결같은 그의 기사도를 이야기 한다.

비올렛은 그를 소유했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에게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것을 안다. 마치 이 드레스와 보석처럼 말이다.

“부디 대답해주십시오.”

그 재촉에 비올렛은 자신이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눈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는 것도. 그것을 애써 진정시키며 에셀먼드에게 말했다.

“그럴게요.”

그녀의 말이 서늘했다. 에셀먼드가 그녀의 어깨를 부여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그는 손을 다시 뻗어 손가락으로 비올렛의 눈에 맺힌 눈물에 눈물을 쓸었다. 그것에 비올렛은 자신의 마음 중 가장 약한 곳을 내보냈다는 수치심이 들었다. 눈물을 쓸어내린 에셀먼드의 얼굴은 무어라 정의할 수 없었다. 자신을 내려다 보는 얼굴에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 그러나 비올렛은 그와 눈을 마주하는걸 피했다.

참으로 야비하지 않은가. 에셀먼드는 그저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저질렀던 죄과에 대한 속죄로서, 그녀가 했던 양보와 용서에 대한 대가로서. 그녀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한참 후에,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에셀먼드였다.

“바람이 차갑습니다.”

그 목소리는 평소와 같이 고저가 없었으나 확실히 누그러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비올렛은 그저 바람을 쐬고 있었다. 그렇게 해야 달아오른 얼굴이 식어질 것 같아서였다. 그녀를 보고 있던 에셀먼드가 외투를 벗으려 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것에 에셀먼드는 단추로 향하려던 손을 멈추고 비올렛을 보았다. 비올렛은 그러다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에드 경.”

다시 그의 애칭이 불리자 에셀먼드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비올렛은 어쩐지 그것이 안심하는 듯 들려 의아했다.

“내일은 그 옷을 조금 더 얌전한 것으로 입을 수는 없습니까?”

그 말에 비올렛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왕궁 안은 난방이 잘 되고 드레스 자체도 정숙하지 못한게 아닙니다. 설마 이런 드레스가 어울리지 않다고 또 말하려는 건가요?”

비올렛의 말에 에셀먼드가 그녀의 말을 정정했다.

“첫번째는 아직 드레스를 입을 때가 되지 않았다 말했던 것이고, 두 번째는 성녀답지 않다고 말했던 겁니다.”

도대체 그 말이 그 말과 뭐가 다를까. 비올렛은 성녀인데 말이다. 게다가 그동안 후작가에서 입어온 드레스는 보통 유행에 따른 보편적 디자인이었고 비올렛은 그저 그 유행에 맞춘 드레스를 입을 뿐이었다. 어떤 유행의 드레스를 입어도 그녀다운 옷이 아니라면 결국 그 말은 드레스 자체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소리 아닌가?

“역시 드레스는 제게 안 어울린다는 소리인가요?”

그녀가 물어보자, 에셀먼드가 이번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는 답답한 듯 했다.

“어울리지 않다는 게 아름답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 말에 비올렛의 눈이 커졌다. 방금 칭찬을 들은 것인가. 또다시 심장이 쿵쿵대며 머리가 하얗게 물들었다. 에셀먼드가 이런 말을 할 줄도 알았다는 게 너무나 놀라울 따름이었다. 비올렛이 더 물으려고 입을 벌렸을 때 에셀먼드가 그녀의 손을 잡아 왕궁으로 이끌었다. 비올렛은 자신의 붉어진 볼이 달밤아래 가려지길 바라고 또 바랐다.

============================ 작품 후기 ============================

추천이 없다면 에드는 또 철벽을..칠거야......

아나... 나 너무 용량 많아... 내일부터 좀 줄여서 연참을 해야하는 거신가...라고 하지만 오늘 아침에 이미 연참해버렸어..

새해복 많이 받으십시오! 제가 왜 저번화에 인사를 안드렸냐면

새해는 열두시 땡~!하면 해야하는게 아니겠어여? 헤헤헤

에드가 왜 병풍이냐면.. 비올렛이 병풍으로 만들어서요..

비올렛이 자기 사촌여동생에게 검을 겨누는 에드를 보고싶을것같나요..

또 뺨을 때리거나 사형, 멸문을 시켜야하신다 하셔야하는뎅.....

여러분 사이다는 여러분이 마시지만 그뒷수습은 비올렛이 한답니다...

앞뒤가리지 않고 사이다를 던지는 건 좋으나.. 그런천둥벌거숭이같은 비올렛은

여러분도 싫죠...?

여러분 다니엘 많이 좋아하시구나..많이찾으시네... 다니엘  다담편에 등장할거에영 다음편은 음....

다다음펴도 음..

새해 첫시작다운 편을 쓰려구요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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