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8 제비꽃, 피어나다 =========================================================================
“왕자, 자리에 앉아라.”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국왕이 그에게 차갑게 말했다. 이젠 왕자와 접촉하는 것도 싫다는 것인가. 이전 왕자의 스승이었을 적, 국왕은 비올렛을 스승으로서 제대로 대우해 주었다. 비올렛을 높이는 것이 샤를왕자를 높이는 것이었으니. 국왕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알았으나, 이젠 대놓고 적개심을 표할 정도다. 신전에 거하며 신전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한 것일까? 그렇다고 일국의 국왕이라는 자가 성녀에게 이렇게 감정을 사사로이 드러내도 되는 것인가? 알 수 없다.
“전하, 자리에 앉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샤를은 뒤에 서 있는 에셀먼드에게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해 못내 서운한 듯 했다. 연회는 삼일이 지속된다. 그러니 연회장에서 몇번이고 만날 수 있다. 또한 연회가 끝나고 샤를루스를 찾아갈 여유조차 있으니, 샤를과 비올렛에게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비올렛은 웃었다. 몸은 컸지만 여전히 어리숙했다. 하긴 열 세살은 그렇게 어려도 될 나이였다. 비올렛은 열 세살이 되어 지옥에 떨어졌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비올렛은 자신의 생각을 수정했다. 샤를은 자리에 앉지 않고, 단 가운데, 왕의 옆에 서서 말했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바이오. 그대들이 내 생일에 와준 것은, 부족한 내가 훗날을 위해 더욱 정진하라는 그대들의 격려인것을 알고있음에 내 어깨가 더욱 무겁소.”
비록 변성기에 목소리가 변했으나 또랑또랑한 목소리는 분명 이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언제나 주눅 들어 수줍어 보였던 소년은 분명히 작년과는 달랐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왕위를 계승할 적통의 왕자임을 돌려 말하고 있었다. 슬쩍 체자레를 보니, 체자레는 왕자를 보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체자레는 공식적으로 왕위 계승을 포기했기 때문에 샤를루스가 왕이 되는 것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왜 왕은 저렇게 불쾌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는 것인가.
“그러면 그대들 모두, 내가 마련한 연회를 마음껏 즐기시길 바라오.”
그 말에 사람들은 웃으며 자유롭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비올렛은 아까부터 자신과 눈이 마주치려 애쓰는 소녀를 보며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올렛이 드레스자락을 팔랑거리며 단에서 내려오자 단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힐끔 거리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경, 경께서도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세요.”
비올렛이 속닥거렸다. 에셀먼드가 무어라 말하려 하자 그녀가 웃었다.
“시스랑 저는 여자들만이 하는 이야기를 할 거예요. 부탁드려요.”
여자들만이 하는 이야기라는 말에 에셀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드러운 권유의 말이었으나, 자칫하다간 과잉호위가 되어 보일 수가 있었다. 비올렛은 이곳에 온 에셀먼드가 비올렛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후작가에 비록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그는 부하가 있었고, 그를 따르는 자들이 많았다. 어쩌면 벗도 있었을 것이고, 에셀먼드가 아버지처럼 따랐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성녀님!”
맑고 그리운 목소리가 들렸다. 비올렛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시수일레가 눈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변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눈짓하자 에셀먼드가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에셀먼드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며 비올렛은 시수일레를 보았다.
“잘 있었습니까, 영애?”
“아이 참, 비올렛! 그렇게 서운하게 말하면 어떡해!”
그녀가 속닥거리며 말했다. 그 점이 에이든과 똑 닮았다. 시수일레가 그 조그마한 손을 뻗었다.
“아, 너무 보고싶었어, 비올렛! 어떻게 소식하나 없을 수 있니!”
“그러는 너는 편지 한통도 없더라?”
“그건 아버지가 보내지 않는게 좋다고 하셨는걸 아무래도 구설수에 오를 위험이 있다고. 힝.”
신전으로 편지를 보내는 국왕파 귀족의 여식이라. 라이셀 백작의 판단이 맞았다. 사실 서운했냐 물어보면 서운했던 것도 같다. 그럼에도 웃을 수 있던 것은 이 감정을 제대로 숨기지 못하는 여자애가 그 말에 미안해하면서도 반가움을 주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꼭 강아지처럼 말이다.
“시스, 그렇게 하면 어머니가 뭐라하지 않니?”
“괜찮아, 성녀님이니 이해할 거야.”
그렇게 말하며 손을 흔드니 라이셀 백작 부인이 그녀에게 걸어왔다.
“성녀님을 뵙습니다.”
분명 비올렛은 그녀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멀리했다. 그러나 그런 그녀마저도 비올렛을 반가워 하자, 비올렛도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이에요 백작 부인.”
비올렛의 말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부드러운 눈동자가 그녀를 향했다.
“성녀님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많은 곳에서 활약하셨다지요.”
“크리처 건에 대해서는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백작 부인이 미소를 지었다.
“제가 성녀님을 가르쳤다는 것을 감히 드러낼 수 없을 만큼 성녀님은 드높은 사람입니다.”
비올렛은 그것이 백작 부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성도가 어떠한지 물었고, 화려한 궁의 내부에 놀란 듯 했다. 그러더니 언젠가 찾아가 보겠다는 말을 하고는 다시 시수일레와 그녀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었다.
“어머니가 저렇게 칭찬하는건 처음이야. 아마 분명 집에서 너를 닮으라고 구박할거야.”
시수일레가 그렇게 말하자 비올렛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비올렛, 너 정말 왜이렇게 예뻐졌어? 너만 이렇게 예뻐지다니, 치사해.”
“예뻐지다니.”
“몰라, 얼굴은 변하지 않았는데 예뻐졌어.”
“정말?”
“꼭 사랑에 빠진 여자처럼 말이야. 그러면 예뻐지잖아.”
비올렛은 시수일레에게 성직자에게 사랑에 대해 논하는 것은 부정의 죄를 물어 파직될 수 있는 민감한 문제임을 알려야 할지, 수긍해야 할지 고민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하는 어떤 분이셔?”
비올렛은 그에 시수일레가 라이셀 백작의 명을 받고 그녀를 캐보는지 판단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순진한 친구는 그것이 오해를 받을만한 말이라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냥, 날 많이 좋아해주셔.”
“정말? 으, 그런데 할아버지가 좋아한다면 싫겠다.”
비올렛이 다시 웃었다. 방금 그 말은 린도가 들으면 아니야라고 소리지를게 뻔했다. 억울해 하는 린도의 표정이 상상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린도는 자신을 노인으로 가장하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이 교황을 어떻게 보는지 들어 볼 필요가 있었다. 비올렛의 웃음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비올렛을 향했다.
“흥, 멀쩡한 가문 하나를 파탄시켜 놓고, 잘도 웃네.”
비아냥 거리는 목소리에 등 뒤를 돌아보니 붉은 드레스를 입은 아나블라가 서 있었다. 시수일레가 뭐라고 하려는 것을 멈춰서며, 비올렛은 고개를 돌렸다.
“백작 영애께선 방금 저를 보고 하신 말씀이십니까?”
나긋하게 미소지으며 아나블라를 보자 아나블라가 말했다.
“에드 오라버니를 빼앗고, 다니엘 오빠를 쫓아냈잖아요? 불쌍한 에이든 오빠. 얼마나 외로울까.”
그 말에 묘하게 비올렛을 주목하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와 아나블라를 향했다.
“수도에선 지금 어떤 소문이 돌고 있는 줄 아나요? 에셀먼드 오라버니를 성녀님이 꼬셔서 데려가버렸다고 하더라고요. 사람을 봐가면서 데려왔어야 한다니까. 돌아가신 숙부만 불쌍하지.”
하드퍼드 백작 부인이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비올렛은 느긋하게 말했다.
“‘소문’이라니 재미있네요. 영애.”
그녀가 웃었다. 아나블라는 그 말에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왜 어렸을 적엔 저 여자아이가 무서웠을까. 저 멀리서 체자레와 에셀먼드가 지켜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비올렛은 에셀먼드에게 손을 들어 다가 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소문이라면 분명 다른 사람 입에서 입을 타고 갔겠죠? 그 누가 말하던가요?”
비올렛의 말에 아나블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소문이란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그 여러사람이 누구인가. 당연하겠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했다 나설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거야 성녀님의 권력이 무서워 침묵하는 거겠지요, 대다수의 귀족들이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그러면서도 잘도 뻔뻔하게 이곳으로 왔네요.”
비올렛은 그 말에 살짝 고개를 갸웃 했다.
“저에게 권력이 있다는 것은 처음안 사실이군요. 대다수의 귀족들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요?”
“물론이죠.”
“그렇지만 증명할 수 없으시죠.”
“그거야 잘나신 성녀님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영애는 내게 증명할 수 없는 사실을 주장하며 절 몰아가는군요.”
비올렛이 차갑게 말했다. 멍청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아나블라의 저 어리석은 놀이에 동조할 귀족은 없었다.
“에르멘가르트 가문은 이젠 저와 관련이 없는 가문입니다. 그 가문 내에 일어났던 것에 대해 저는 발언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 말에 아나블라가 미소를 지었다.
“그거야 분명 뒤에서 찔리는 구석이 있어 그러시는게 아닙니까?”
“함부로 타 가문에 대해 언급할 권리가 없을 뿐입니다. 그것이 예의이고, 법도니까요.”
그녀가 나긋하게 말하며 아나블라를 지나치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채 그녀를 보고 있던 하드퍼드 백작 부부에게 다가갔다. 더 나이든 모습의 그 백작 부인은 이 사태에 겁에 질려 있었다. 하드퍼드 백작역시 창백한 얼굴로 비올렛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아나블라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알고 있었다.
“영애의 재미있는 ‘소문’잘 들었습니다. 부인.”
비올렛이 미소지었다.
“비록 혈연이 맺어져 있다 하나, 타 가문의 후계에 대해 사사로이 언급하며 모욕을 준 부분에 대해서는 에르멘가릍트 후작이 알아서 잘 해결하실 거라 믿습니다.”
비올렛은 저멀리 서 있던 에이든을 보고 말했다. 에이든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가문의 수치를 함부로 떠벌린다는 것은 그 가문과 척을 지겠다는 의도였다. 이곳은 후작가의 봉신들도 와 있었다. 본을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비올렛이 말했다.
“왕족을 모독할 경우 왕족 모독법이 있고 신관들을 모독할 경우 신성 모독이 성립됩니다.”
어차피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을 굳이 설명하는 것은 아나블라가 자신의 죄를 알았으면 했기 때문이다. 비올렛은 싸늘한 눈으로 부부를 보았다.
“아그레시아의 역사서에 누누히 새겨져 있으련만. 단 한 번도 집행하지 않아 미처 있다는것을 영애는 잊은 모양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비올렛은 몇걸음 뒷걸음질 쳤다. 여기서 가장 쉬운 방법은 에셀먼드를 부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올렛은 그의 시선을 외면하며 다른 곳을 불렀다.
“추기경.”
그녀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울려퍼졌다. 어느새 멈춰있는 사람들 속에서 가죽신의 맑은 발소리가 울려퍼졌다. 체자레가 비올렛의 곁에 다가왔다.
“부르심을 기다렸답니다. 성녀님.”
그가 부드럽게 말하며 비올렛의 옆에 섰다. 사람들이 체자레의 모습을 보고 뒤로 물러났다. 티게르난은 나라 최고의 지위를 지닌 공작이었고, 그는 신전파의 거두였다. 그러나 그는 지금 비올렛을 섬기는 신관의 추기경이었다. 그의 금안이 조소를 머금은채 죄인들을 바라보았다. 체자레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저 귀여운 아가씨에게는 당연하겠지만 왕과 신전에 모독죄가 성립하듯 성녀에 대해서도 모독죄가 있다는 것을 설명 드려야 할 것 같군요. 나라의 심장이자 살아있는 상징인 성녀에 대해서 어찌 성현(聖賢)들이 보호조차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까?”
공작은 여자의 혼을 빼앗는 미소를 지었다. 비올렛은 체자레의 말이 끝나고 아나블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귀족이 천민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비올렛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아나블라가 울컥 한듯 독기를 품은채 그녀를 쏘아보았다. 알고 있다. 저 여자애는 천민출신인 주제에 성녀랍시고 국왕과 추기경 사이에 앉아, 가장 뛰어난 기사였던 에셀먼드의 호위를 받아 차기 국왕인 샤를루스의 애정을 받는 것이 못마땅하고 질투가 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신전에 들어가기전엔 허용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정식으로 신전에 들어가 성녀가 된 그녀는 달랐다. 질투의 대상조차 되어선 안되는 것이다. 그 질투라는 것도, 격이 같은 사람에게나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대들과 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다 하여, 그대들과 같은 신분으로 보입니까?”
어쩌면 국왕도 뒤에서는 소문이 돌고, 교황역시 소문이 돌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공론화 시키며 남의 평판을 깎아내리려 시도 했다는 것은 분명 모독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왕족 모독죄와, 신성 모독죄와 똑같이 이것은 당연히‘즉결집행’이었다.
그녀와 에셀먼드에 대한 소문이 어떻게 돌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비올렛은 그 소문의 진창에 같이 굴러줄 마음은 없었다. 이제 소문이라는 것은 앞에 일어날 일에 비하면 너무나 하찮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이길 생각 까진 없었다. 아나스타샤가 살아있었던 시절은 분명 이런 무례한 자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겨우 사교계 내의 하잘것 없는 기싸움에 그녀를 초대했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는 일인 것이다.
그저 생각이라는 것을 조금만 했다면 말룸을 격퇴해야 하는 성녀가 나라를 존속시키며, 신앙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교황과 왕은 성녀에 대해 절대적인 보호와 권리의 보증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았을 터였다. 아나블라가 씩씩거렸다. 국왕은 방관하고 있었고, 샤를은 놀란 얼굴로 이곳을 보고 있었다. 체자레의 손짓에 근처에 서 있던 무장한 기사들이 머뭇대며 다가왔다.
“성녀님 여식의 부족함을 너그러이 봐주십시오.”
상황판단을 빨리 한 것은 하드퍼드 백작이었다. 하지만 체자레는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지켰다.
“성하 앞에서나 폐하 앞에서는 차마 못하였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백작?”
체자레의 서늘하며 매끄러운 목소리가 흘러나갔다. 그 말에 백작의 얼굴이 푹 숙여졌다. 딸을 교육시키지 않은 그의 잘못이었다.
“이 모든것이 성녀님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은 나의 죄가 아니겠습니까?”
체자레가 성녀를 내세워 무언가를 하지 않았음을 한탄한듯 말했다. 크리처 토벌이라는 비올렛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외하고, 비올렛은 기도회나 봉사같은 신전의 이름을 내세운 어떠한 것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것이 신전에게 힘을 실어줄 거라는 계산 하에서였다.
“제가 여식을 잘 가르치겠습니다.”
비올렛은 이순간 성녀의 생리를 잘 이해했다. 아니 어쩌면 이전부터 알았을지도 몰랐다. 체자레가 그녀를 떠받들었기 때문에 그녀의 명예가 유지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하려면 다른 누군가를 내세워야만했다. 서글프게도 그러했다.
“뭐하느냐! 당장 성녀님께 사과드리지 않고!”
“자, 잘못했습니다!”
아나블라는 또 억지로 눈물을 쏟아내며 비올렛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불쌍해보이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만.”
사람들이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리자 국왕이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국왕은 서늘한 금색 눈을 빛내며 그들을 보고 있었다. 아마 수복들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나온 듯 했다.
“이 무슨 한심한 작태인가 하드퍼드 경!”
그의 노호성에 비올렛은 잠시 심장이 쿵 내려 앉는 듯 했다. 비올렛은 국왕이 화를 내는 것을 단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샤를이 언제나 기죽어 있던 것이 이해가 갈 정도였다. 국왕까지 나오자 아나블라는 도저히 슬피 우는 척 연기를 할 수 없었다. 국왕까지 나와 자신의 아버지에게 소리를 지르니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깨달았던 것이다.
“송구합니다. 폐하.”
그가 고개를 숙였다.
“나를 봐서라도 이 건에 대해서는 넘어가 주시게.”
국와의 서늘한 금안은 더이상 일을 키우지 말라 경고하고 있었다. 자신을 봐서라도 국왕파 귀족이 모욕을 당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는 것일 터였다. 비올렛은 국왕을 쏘아보았다. 그는 비올렛이 아닌 백작을 옹호하고 있었다.
“아뇨, 간과할 수 없습니다.”
비올렛이 뭐라하기 전에 체자레가 나왔다. 그러자 팽팽해진 공기가 삽시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국왕의 눈에는 불길이 튀는 것 같았다.
“공작, 나는 성녀에게 말하는 것이오.”
“그렇다면 교황의 대리로서 성녀님께 간언하겠습니다. 안됩니다.”
그 서늘한 말에 비올렛은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이것이 국왕과 또 교황의 대립이 되었을 줄이야. 당연하겠지만 비올렛은 이 일을 크게 키울 생각이 없었다. 그저 본보기가 필요할 뿐이었다.
“추기경 말이 맞습니다. 안됩니다.”
비올렛이 말하자 국왕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는 성녀와 추기경이 자신의 권한을 무시하고 있다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을 봐달라서도 넘어가 달라 부탁하는 것을 단번에 거절한 성녀에게 좋은 감정이 들리는 없었다.
“영애의 진심어린 사과와 앞으로 1년동안의 사교게 출입을 금하는 것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그 말에 체자레와 국왕이 동시에 그녀를 보았다. 처벌이라기엔 지나치게 관대했고 이 일에 대한 것을 가문이 아닌 영애개인에 대한 죄로 돌렸으니 이것으로 일단락 된 것이었다. 그러나 아나블라는 그 두개 다 납득할 수 없는 듯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뭐하는가, 영애.”
국왕의 분노에 깔린 목소리가 들리자 아나블라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비올렛의 앞에 섰다.
“죄, 죄송합니다. 성녀님 제가 예의에 대해 무지하였나이다.”
그렇게 무시하던 천민에게 예의가 없었다 사과하는 것은 분명히 아나블라에게 굴욕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1년간 사교계에 출입할 수 없다니. 그녀는 결혼 적령기였으며, 남자를 만날 가능성은 그곳에서 꿈도 꾸지 못할 일이되었다. 게다가 그녀가 사리분별도 못하여 가문을 위기에 몰았다는 것 까지 공개적으로 알렸으니 혼사역시 막혔다 봐도 무방했다. 물론 그렇게 만든 것은 그녀 자신이며, 비올렛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비올렛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비롭게 웃었다.
“앞으로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래, 그 앞이라는게 과연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냉정하게.
============================ 작품 후기 ============================
시원하면 추천추천! 드디어 아나블라를 재기 못하게 밟아버린 비올레엣!
굿모닝임니다. 이따저녁 열두시 쯤에 코멘트 100개가 넘어가거나(중복안댐안댐안댐) 추천수 500이 넘으면 또 돌아올게여 한해도 수고 많으셨어요!
어쩐지 1시간 미션인데 조회수랑 추천수가 너무 적다 생각했더니
오늘 연기대상 연예대상이 있었군요!
제가 글쓰는데 집중하느라고..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