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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핀 제비꽃-145화 (138/208)

00145  제비꽃, 피어나다  =========================================================================

" 왜 다니엘  얼굴을 왜 한번도 안보시는거죠, 여보?”

“병에 걸린 아이요. 죽을 수도 있는 아이요. 우리 가문에서 이렇게 약한 아이가 태어난 것은 본적이 없소.”

후작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울려퍼졌다. 열린 방 문 틈,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렇게 싸우고 있었다. 누군가가 귀를 막아주었다.

“들을 필요 없어.”

“알아.”

형의 거친 손이 얼음장처럼 서늘했다. 겨울밤에 죽어가는 소년에게 형은 조용하게 찾아왔다. 다니엘은 알고 있었다. 어린 애 치고 무뚝뚝하며, 과묵하고 알 수 없는 아이라는 소리를 듣는 형. 그러나 그 형이 얼마나 가족들을 사랑하는지도.

“살아야해.”

짤막한 말. 다니엘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짙은 푸른 색 눈동자는 혈연의 표식. 형은 거친 손으로 그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난 에이든에게 좋은 형이 되어줄 수 없어.”

“응.”

까슬한 손바닥의 감촉. 이마를 쓰다듬어주었던 그의 손은 작았고, 여렸으나 굳은 살이 배겨 있었다. 목은 부어서 목소리가 나오지는 않았다. 형은 성을 뛰어다니는 자그맣고, 어린 아이의 존재에 대해 말한다.  같은 색의 눈동자가 서로를 본다.

“그러니까 살아.”

그것이 온기를 담고 있음을 소년은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고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보는 형이 제일 증오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천사처럼 웃는 것이다. 언제나처럼, 그렇게 독기를 품은 채.

*

평화로웠다. 샤를은 창문을 보며 생각했다. 구름은 둥둥 떠가고 있었고, 왕궁의 관리가 잘 된 꽃들이 저마다 향기를 뽐내고 있었다. 절대 파괴 될 리 없는 일상의 평화. 그러나 샤를루스는 어두운 얼굴로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바깥은 전혀 평화롭지 않았다. 에이든이 싸우고 있다. 날아온 소식에 의하면 크리처들은 정말로 존재했고, 협력하기로 되었던 성기사단원들과 신관들이 모두 죽었다. 그리고 실종된 성녀까지.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샤를은 꽃주변을 계속해서 맴돌았다. 오늘 따라 화려하고 큰 입새의 꽃들이 마음에 차지 않았다. 꽃대에 비해 커다란 꽃망울은 비정상적으로 커보였다. 아름답게 관리된 꽃들을 보며, 샤를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전하?”

귀에 들리는 목소리는 바람처럼 부드러운 미성이었다. 그 사근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금발에 깊은 푸른 눈을 가진 청년이 서 있었다.

“누구?”

“다니엘 하드퍼드입니다. 전하.”

“아.”

얼굴을 보지 않아서 그 모습을 잊고 있었다. 다니엘 이라면 에셀먼드 경의 동생이자, 에이든 경의 형이다. 최근 무슨 일로 가문에서 파문당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샤를의 얼굴이 경계의 빛을 띠었다. 슬며시 호위기사들이 서 있는 곳을 보니, 호위기사들이 검에 손을 쥐고 있었다.

“그저 저 역시 마음이 심란하여 온 것 뿐입니다.”

당연하겠지만 관료들은 언제나 몸수색이 이루어지고 몸에 칼이 없는 것이 확인한 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니 저 청년이 그에게 해를 끼칠 이유는 없었다. 다니엘의 외모는 특출나게 뛰어나지는않았으나, 환한 금머리카락과 창백한 듯한 피부, 붉은 입술은 여인들을 매혹시킬만한 준수한 외모였다. 심지어 그를 앞에 둔 샤를마저도 그리고 에이든이나 에셀먼드에 비해 평범한 심지어는 왜소해보이는 체격을 가진 그에게서 딱히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다.

“심란하다뇨?”

그 말에 다니엘이 말했다.

“형과 동생을 사지에 보내고 마음이 심란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있습니까? 게다가 비올렛까지 실종이 되었다고 하던데요.”

“아.”

생각해보니 비올렛이 그를 가르치러 궁에 들락날락거렸을때, 다니엘과 몇번 이야기를 나눈 것은 본 적이 있었다. 이 둘째와는 접할 기회가 몇번 없었지만 멀리서 보면 비올렛과 다니엘은 항상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이 다니엘이라는 문관은 쓸쓸해보였다. 그가 어떤 부서에서 어떤 직책을 맡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했다. 게다가 친절해 보이는 그의 외모와 사근사근한 말투,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혈연관계라는 것은 샤를의 경계심을 허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가문에서 축출된 사람이다.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왕족은 그러한 후계싸움에 대해 언질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었다. 샤를은 이 남자가 마음에 들었으나, 주의해야 한다는 것은 숙지하고 있었다.

“아. 송구합니다 전하. 제가 주제도 모르고 전하에게 말을 걸었나봅니다.”

“아, 아니요.”

“비올렛과 함께 있는것을 멀리서나마 뵌적이 있습니다.”

샤를은 나도 그렇다, 라고 대답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이런, 미안합니다. 비올렛과 저는 친밀한 사이라서 저도 모르게 비올렛이라 말하네요. 에이든도 가끔가다 이런답니다.”

“맞아요, 에이드리언 경도 그래서 에셀먼드 경에게 많이 혼났습니다.”

“네, 잘 보셨습니다. 에이든은 언제나 우리 형제중에서 그런 것으로 제일 많이 혼났었죠.”

그리고 그는 평화로운 푸른 하늘을 본다. 그리고 아주 아련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비올렛이 전하의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정말입니까?”

샤를이 그에게 서서히 반응을 보이자 다니엘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어쩐지 애달프고 아련해서 샤를의 가슴을 울렸다.

“네, 아주 사랑스럽고 귀여우시다고. 말했어요. 무척이나 어리숙하다고.”

“귀, 귀엽다니 무슨!”

샤를루스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주근깨가 사라져 가는 그의 두 뺨에 홍조가 서렸다. 스승님도 참, 아무리 그래도 사내한테 귀엽다고 쓰다니 얼마나 어리숙해 보였으면 이러는 걸까! 그는 속으로 울상을 지었다.  다니엘은 그 순진한 왕자의 얼굴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어린 형을 앞에 둔 병약한 소년이었던 그 때처럼.

*

“성~녀~니이이임!”

리체가 해맑게 웃으며 뛰어왔다. 그러다가 비올렛의 얼굴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쌀쌀한 가을 공기를 마신 비올렛은 어둑해져가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입은 옷이 얇은 여름옷이라 추웠다. 초록이 무성한 잎사귀는 이제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저녁마다 진하게 울리는 풀벌레 소리는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비올렛은 백궁의 정원에 나가 저물어 가는 해를 보고 있었다.

“성녀님, 성녀님!”

리체가 그녀를 불렀다. 요 사이 그녀의 성녀님은 멍하게 하늘을 보고 있는 경우가 잦았다. 비올렛은 그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니, 리체?”

상냥한 자신의 성녀님! 어쩜 저렇게 얼굴도 곱고 마음씨도 고우실까. 예전 시녀 언니들이 성녀님은 얼굴에 표정이 없어서 무섭다고 말한 것에 빽 하고 화를 낸 기억이 났다. 그저 드러나지 않을 뿐, 얼마나 세심한 성녀님이신데. 혹시나 자신이 잠에서 깰까 조심스럽게 모든 일은 다 해결하려 하시고, 역병때도, 심지어는 크리처 토벌 건으로 시스벨 남작령으로 떠나셨을때도 자신을 데려가지 않았다. 그녀를 지키는 인력도 아깝다는게 비올렛의 말이었지만 알고 있다. 자신을 염려해서 그런 것을!

성녀님을 두고 차가운 성품이라 말한다니 용서할 수 없다. 어느새 노을지는 하늘에 비올렛의 기다란 은발의 머리카락이 주홍색으로 빛났다. 황혼, 그 속에서 그림처럼 성녀님은 웃고 있었다. 아, 어쩐지 신성한 빛이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음, 드레스가 들어왔어요!”

“드레스?”

그녀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사실 성녀님은 그녀에게 특별히 맞추어진 성복 차림으로 돌아다녀서드레스가 필요 없었다.

“왕자 전하의 탄신일 연회 말이어요!”

“아, 그렇구나.”

그렇게 말하며 살짝 미소 짓는 얼굴을 보자, 리체는 자신이 남자였다면 성녀님께 사랑에 빠졌을거야!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보러 가자꾸나.”

“네!... 그런데 가디언님은 어디 계시나요?”

“저기 있단다.”

왜? 언제나 성녀님을 가까이서 수호하던 가디언님이 저 멀리 서 계시는 거지. 리체의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듯 비올렛이 말했다.

“잠깐, 혼자서 저무는 해를 보고 싶었을 뿐이야. 에드 경도 불러오겠니?”

그녀의 말에 리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종 뛰어가던 발걸음이 회납을 달아놓은 듯 무거워졌다. 신전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그 쪼끄만 성하도, 붉은 추기경님도 아니다. 그건 바로 이 가디언님이다.

리체의 실수를 언제나 그냥 넘어가주는 비올렛과는 달리, 이 가디언님은 귀족가의 후계자이셨는지 그녀가 실수를 하면 성녀님이 모르는 사이 그녀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심지어는 지나가는 말로 무어라 혼난적도 있었다. 뭐 사실 그것도 그녀가 겁을 먹어 움츠린체 그를 보자. 어째서인지 가디언은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 화를 내려던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혼을 내지 않았다. 그래도 무서운 것은 무서운 것, 시녀 언니들이 가디언님을 흠모하는지 알고 있지만, 리체는 그가 무서워서 도저히 그럴 마음도 들지 않았다.

쭈뼛거리며 에셀먼드에게 다가가니, 에셀먼드가 곧바로 눈을 마주쳐왔다. 그녀를 앞에 두고서도 수호의 임무에 열중하듯, 성녀님을 보고계셨다.

“성녀님이 이제 안으로 들어가쟤셔요.”

리체가 말하자 에셀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별 말씀 없으셨더냐?”

“네?”

“성녀님 말이다.”

드물게도, 에셀먼드가 말을 걸었다. 누구보다 친밀한 두사람 아니었나? 심지어 리체마저도 뭘까? 라고 생각할 정도로. 하지만 그것도 오라버니의 걱정이겠지. 불경한 생각을 하면 안돼, 리체!

“성녀님은 아무말씀 없으셨어요, 그냥 저무는 해가 보고싶으셨나봐요!”

그 말에 무서운 가디언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뇌까렸다.

“지는 해라......”

리체의 하루는 평범했다. 백궁의 방에 꽉 찬 드레스와 장신구를 보고 성녀님이 질끈 거리는 이마를 붙잡고, 성하에게 뛰어간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성녀님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있었다. 자신에게도, 가디언에게도, 성하에게도. 그리고 추기경에게도.

============================ 작품 후기 ============================

오늘은 일이 있어서 정각 업데이트를 못할것같아요.

일단 퇴고를 거쳤지만 급하게 나가는거라서, 좀 미흡할거라 생각합니다.

내일부터 3부 완결까지 비축분좀 쌓을게요! 그럼 20000!

내일부터 되도록이면 일일연재 또는 1일 2연재로 전환하겠습니다.

저급하게나가봐야겠어여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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