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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핀 제비꽃-141화 (134/208)

00141  제비꽃, 피어나다  =========================================================================

비올렛은 시스벨 남작령의 성문 밖에 서 있었다. 후버 백작령의 크리처들을 소거 하고 나서 하루 뒤, 그들은 남작 령을 탈환하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후버 백작은 왕의 봉신이었으며, 시스벨 남작은 교황측 가문의 봉신이었다. 어쩌면 만약 후버 백작이 남작을 돕기 위해 움직였다면, 서로간의 비극은 최소화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아 차린 것인지, 살아남은 후버 백작 역시도 이곳에 동행하기로 했다. 백작령의 남은 병력과 백작령 내의 신관, 그리고 몸을 회복해야 하는 린도는 백작령에 남아 있었고, 움직이는 것은 비올렛이었다.

남작령은 도시 하나, 마을 두개로 이루어진 작은 곳이었고, 온전히 왕국군과 국왕파인 후버 백작령의 병력으로, 교황의 봉신인 남작령을 ‘구명’하러 가는 것이었다.

이것이 훗날 긴장상태에 놓여있던 교황파와 국왕파의 대립의 완화의 시발점으로 역사서에는 적힐 지라도, 정작 역사서에 오른 당사자들은 이것이 역사적인 사건이며, 거의 120년 만에 처음으로 이루어진 화합이라는 것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이것은 어떠한 정치적 계산 하에 이루어지는 행동이 아니었다. 그저 미래를 위해, 그리고 현재 살아남기 위해 하는 행동이었다.

비올렛은 자신의 옆에 선 에셀먼드와 로디온을 보았다. 로디온은 비올렛이 말려도 기어코 그녀를 보좌하겠다고 따라 붙었다. 흑마를 탄 에이든 역시 굳은 표정으로 성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문이 열렸다.

문을 열자마자 크리처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둑을 연 강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그들을 사람들이 도륙해 나갔다. 크리처의 끈적한 피가 튀고, 썩은 악취가 코를 자극했다. 그러나 이전처럼 망설임은 없었다.

한차례의 폭풍과 같은 크리처들의 떼가 지나가고,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곳곳에 살기와 악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달려든 크리처들의 수가 생각보다 적었다. 침묵하는 마을이 그렇게나 소름끼치는 곳인지 그들은 처음 알았다. 보병들은 길을 걷다 붉은 눈의 크리처가 자신의 얼굴을 깨물까 공포에 떨었다. 기사들은 신관들의 주변에서 촉각을 곤두세웠다.

에이든이 눈쌀을 찌푸리며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그리고 에셀먼드와 눈짓을 주고 받았다.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정적이 마을을 맴돌았다.

“성녀님!”

비올렛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정적을 깼던게 그녀를 부르는 소리라니, 지나치게 놀랐다. 그러나 그녀를 부르는 소리는 근처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바람이 불며 흙먼지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 먼지 너머에 사람들의 형체가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신관들과 기사들이 자신에게 뛰어오고 있었다. 비올렛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살아있는 성기사들과 신관들이 희망에 차서 환희하는 소리가 들렸다.

“헤이트 경!”

로디온이 반갑다는 듯 말을 몰고 그곳으로 가려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에셀먼드가 말로 그를 막아 세웠다. 로디온이 에셀먼드에게 욕설을 내뱉으려 할 때였다. 로디온은 에셀먼드가 아무 이유 없이 그럴 자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왜? 라고 물으려 했지만 이상한 긴장감이 그들 사이에 흘렀다.

“성녀님.”

검과 칼, 창을 들고 있는 성기사들이 비올렛을 보았다. 에셀먼드가 검으로 그들을 막아 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생존자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비올렛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성녀님.”

절실한 듯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살아남은 기사들이 비올렛을 찾고 있었지만, 비올렛은 야속하리만치 무표정으로 그 소리를 흘려듣고 있었다.

“에르멘가르트 경.”

“네, 성녀님.”

에이든은 비올렛이 자신을 부르자 내심 당황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생존자들과 달려가 얼싸안아도 모자랄판에, 갑자기 그의 이름은 왜 부른단 말인가?

“전투를 지시하십시오. 그들은…….”

비올렛의 음성은 차가웠으나 에이든은 그녀의 음성이 어쩐지 잠겨 있다는 것을 알았다. 흐릿한 흙먼지의 시야 너머 그리고 투명한 하늘색 눈동자가 눈물을 머금은 듯 촉촉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명령과 동시에 생존한 기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녀님, 성녀님, 성녀님, 성녀님, 성녀님, 성녀님, 성녀님, 성녀님, 성녀님, 성녀님,”

바람이 멎으며 휘날리던 흙먼지가 가라앉자 시야가 깨끗해졌다. 지척가지 다가오는 생존자들은 모두 붉은 눈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비명과 함께 욕설을 내뱉으며 검을 빼들었다.

크리처들이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모두 그녀와 함께 했던 기사들과 신관들이었다. 사제들이 모두 비올렛만을 보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고저 없는 그 말투는 원한을 담은듯 하기도 했고, 분노를 담은 듯 하기도 했고, 원통함을 담은듯 하기도 했다. 몇백의 영혼들이  비올렛을 부르고 있었다. 어떤 감정을 담은채. 끊임없이.

성녀님. 성녀님. 성녀님. 성녀님. 성녀님. 성녀님 성녀님!

비올렛은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뒤쪽에 도열해 있는 왕국군들도, 그리고 시체가 되어 크리처화 되어버린 성기사들도, 모두 다 비올렛을 보고 있었다. 숨이 틀어 막히는 것 같았다. 에이든이 비올렛에게 다가갔다. 모두 다 그녀를 보고 있었다. 비올렛은 입술을 꾹 깨물고 말을 앞으로 몰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에셀먼드가 쫓았다.

비올렛이 말했다.

“미안해요.”

그 말은 너무나 작아서, 들리진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주변에 있던 성기사들과, 에셀먼드, 그리고 에이든에게만은 똑똑히 들렸다

“미안해요.”

비올렛은 바르르 떨리는 입술을 깨물어 에이든을 보았다. 에이든은 차마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만약 이것이 신이 내린 시련이라면 이것은 너무 그녀에게 가혹하고, 철저하게 잔인했다. 비올렛의 얼굴은 평소와도 같이 무표정이었다. 그러나 에이든은 그 두눈에 품은 슬픔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하늘색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모두 죽이십시오.”

그녀의 명에 에이든이 검을 든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기사들이 모두 검을 든 채로 그들에게 달려나갔다. 떨어지려는 눈물을 행여 남들이 볼새라 쓱 닦으며 비올렛은 활을 집어 넣고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말을 타고 달려나가 크리처들을 하나 둘씩 베어 나갔다. 활로 누군가를 싸서 죽이는 것은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작이라고 린도가 말했던 게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녀는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검을 타고 내리는 죽은자들의 썩은 육신의 감촉이 느껴졌다. 피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마치 비올렛이 오길 바랐던 듯, 기사들은 모두 비올렛의 검을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갑자기 호랑이가 생각났다. 목덜미에 화살이 꽂혀 발버둥 치던 호랑이. 비올렛은 손수 그의 목을 잘랐었다. 죽어있는 그들의 눈빛은 왜 그 호랑이를 떠오르게 하는 것일까.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흘릴 수가 없었다. 비올렛은 깨달았다. 이것은 말룸이 그녀에게 보여주는 지옥이었다.

그때 비올렛은 누군가 검을 든 자신의 손을 잡는 것을 느꼈다. 에셀먼드였다.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 에셀먼드는 비올렛에게 말했다.

“같이 싸우려면 활을 드십시오.”

이전에도 그는 비올렛에게 활을 배우라 하고 활을 가르쳐 주었다. 비올렛은 그것이 에셀먼드의 배려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가 당신의 검입니다. 검을 쓰는건 제가 할 겁니다.”

비올렛은 에셀먼드의 검푸른 눈이 간절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눈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에셀먼드 나름의 배려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올렛은 검을 집어 넣었다

에셀먼드가 망토를 휘날렸다. 그의 검은 번개와도 같이 빨랐으며, 언제나 처럼 잔혹하리만치 깔끔한 선을 그려냈다. 에셀먼드는 비올렛이 검을 드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 나름의 다정함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말하게 되면, 자꾸 의지하게 되어 버린다. 항상 강해지라고 그녀를 몰아갔던 주제에, 이렇게 결정적일때 모든것을 받아들일 것 처럼 행동한다.

비올렛은 다시 차오르는 눈물이 흐르는 시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후, 하고 한숨을 쉬며 활을 들었다.

*

경작지 너머 마을로 향했던 후버 백작이 성공적으로 귀환했다. 부상자는 50명 남짓이었고, 모두 치료를 받았다. 귀환을 알리기 위해 성녀와 에르멘가르트 경을 찾아갔던 후버 백작은 말을 타고 있는 피에 젖은 여인의 모습을 보았다.

“…….”

잠시동안 백작은 그 모습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국왕파로서 에르멘가르트 후작 쪽과 친분이 있던 그는, 성녀가 자라면서 귀족 영애들과 같은 훈육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후작이 훈육했던 대로, 그 소녀는 누군가에게 지켜졌던 성녀도, 그렇다고 기다리기만 하는 귀족의 영애도 아니었다. 새하얗게 빛이 난 은발과 신관복은 붉은 피로 더럽혀져 있었다.  그러나 어찌하여 그 모습에 고귀함이 느껴지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만큼 그 붉은 성녀는 그녀 주변이 은은하게 빛이 난다고 착각이 될 정도였다.

지켜지지 않고 스스로 싸운다. 어쩌면 천민 태생의 성녀가 신의 대리자로 선택되었던 것은 신이 내린 안배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성결하디 성결한 하얀 옷을 입고 신을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성녀의 모습이 아닌, 무기를 든 채 피를 뒤집어 쓴 성녀는 신성불가침의 고결한 영역이 침범되어 타락한 듯 저속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왜 그녀를 향해 경외감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그는 작년 겨울의 그 기적을 목도한 적도 없는데도 그러했다. 규모가 작은 남작령의 크리처들은 얼마 안가 모두 소탕이 되었다. 린도가 알려준 방식대로, 소규모 접전이든 신관들이 성력을 주입시키면 성력이 강하고 약하고에 관계없이 시체가 되어 되살아난 이들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

시스벨 백작 성에 다시 도착한 비올렛은 살육의 흔적을 보았다. 썩은내와 함께, 눌러 붙은 살들을 보며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영지의 사람들은 몰살을 당했고, 이 곳 근처에 있는 자들은 없다. 아마 그녀가 말룸을 무찌를 때 까지 이곳은 사람의 출입이 금지될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성에는 크리처가 없었다. 비올렛은 크리처들이 전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린도의 측근 신관들은 대부분 성도에 린도의 수발을 들던 신관들로서, 견문이 좁은 편이었다. 왕국군의 기사들 역시, 이렇게 대규모로 신관들과 협력한 적이 없었다. 당연하겠지만 이들은 이들 나름 대로 반목하며, 서로 손가락질 해댔다. 기사들은 신관들이 그저 지켜지기만 한다며 그들을 손가락질했고, 신관들은 왕국군이 성기사들과는 달리 신실함이 없으며, 무식한 무지랭이들만 있다며 비아냥 거렸다. 게다가 자신들의 소중한 성하가 정체를 숨기고 피를 토하고 쓰러진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기사들을 원망했다. 이들은 모른다. 교황 성하가 얼마나 큰 희생을 했는지!

그러나 그것도 이젠 끝이었다. 기사들은 신관들이 피를 토하면서까지 자신들을 치료해 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 반반한 신관이 꽤나 노력했다는 것도. 그리고 신전쪽에 몸을 의탁한 성녀역시 검을 들고 함께해왔던 것도. 그 누구도 그저 지켜지기만 바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뻔뻔한 이들은 없었다. 기사들은 언제나 신만을 부르짖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줄 알았던 멍청한 신관들이 그렇게 필사적으로 행동할 줄은 모르고 있었다.

신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기사들이 아닌 일반 기사들이 거의 목숨을 걸고 자신을 지키려 했던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서로가 필요에 의해 협력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게 끝났다. 정말로 모든게 끝이났던 것이다! 그들은 살아남았고, 말로 설명해도 믿지 못할 동화속에 나오는 크리처들을 모두 섬멸했다. 신의 축복이 내렸다. 국왕에게, 교황에게 영광있으라!

마지막 크리처를 베어 없앤 순간, 그들이 환호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들은 하늘을 덮는 그림자를 보았다. 벌레들의 우글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공기가 끈적하게 눌어붙였다.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 하며 위를 돌아보았다.

“말룸, 말룸이다!”

사람들이 소리쳤다. 그것은 하늘에 둥둥 떠 있었다. 일반 사람보다 덩치가 큰 크리처였다. 다만 그의 등에는 마치 사람의 손가락을 크게 해서 길게 늘인듯한 손가락에 둘러진 피막이 날개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그 기괴한 모습에 성기사들이 겁에 질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비올렛을 찾았다.

============================ 작품 후기 ============================

추천이 많으면~ 열두시에돌아오지 아~아 미운 쏴람~~ (사랑함니다 여러분)

자꾸 러브씬만 좋아하셔서 ㅠ.ㅠ 판타지 올리기 엄청 눈치보여요 ㅠ.ㅠ 그거 알아여?

3부는 오히려 정치적 대립과 상황 이해관계가 주를 이룰 예정인데 막 추천수가 넘 차이나서 겁이남..

아 수더수 외전집 외전 퇴고 끝났고, 열두시에 돌아올게요. 사실 어제부터 하루종일 모니터 화면만 보고 있어서

안구건조증이 심하게 와서 한쪽눈이 너무 아프네요. 막 고춧가루 눈에 부은듯 열이 확확 오르는것같아요.

분량이 이것밖에 없어서 너무 죄송해요. 조금 회복해서 열두시에 돌아올게요!

그럼 뿅!

**아 근데 진짜  저 허접공지에 저렇게 추천수가 많다니.. A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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