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0 제비꽃, 피어나다 =========================================================================
철문이 부서지듯 열렸다. 비올렛이 숨을 헐떡였다. 새하얀 빛이 손을 타고 흘러들어와 철로된 성문의 틈을 만들었다. 그 틈으로 에셀먼드와 비올렛이 들어갔다. 농도 짙은 신성이 광범위하게 내려온 여파는 엄청 났다. 비올렛은 성력이 이렇게 대단한 것인지, 비로소 남이 쓰는 성력을 보고 깨달았다. 죽음을 머금은 비릿한 공기가 청량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일으키는 기적이 거대하면 거대할수록,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고 있었다.
에셀먼드가 끌어온 말을 타고, 비올렛은 성력의 파동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곳을 향해 내달렸다. 비올렛은 평소 린도가 얼마나 성력을 제대로 갈무리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말룸을 대신 없애겠노라 말한것도, 그저 작은 농담이 아니었던 것이다. 크리처들이 달려드는 것을 에셀먼드가 검으로 베어냈다. 겁에 질린 말은 지나치게 빠르게 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형!, 비올렛!”
도시를 잇는 언덕을 지나가자 말울음소리가 들리며 그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낯익은 목소리, 에이든이었다! 말을 언덕을 내려오는 에이든을 보며 비올렛은 잠시동안 멍하게 서 있었다. 소년의 에셀먼드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던 탓이었다. 검푸른 머리카락, 짙은 눈썹. 그리고 어두운 색의 검푸른 눈 까지, 조금 말라보였던 어깨는 더욱 듬직해졌고. 말에 타면 말에 비해 조금 작아보였던 몸은 완벽하게 말과 어울려 보였다.. 비올렛은 에셀먼드를 보았다. 에셀먼드는 가만히 그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하는 것이다.
“성녀님께 예의를 지키십시오, 에르멘가르트 경. 보는 눈이 많습니다.”
뒤에 서 있는 기사들도, 병사들도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에이든은 그 말에 울컥 한 듯 말했다.
“누가 그걸 몰라서....”
에셀먼드와 비슷한 얼굴인데 표정은 너무나 다르다. 에이든은 표정이 거의 없는 비올렛과 에셀먼드를 보고 실망한 듯 했다. 그의 눈시울이 붉어져 눈물이 맺혔다. 그 모습은 형제를 만나 기쁜 청년이 있었지 도저히 한 거대한 가문을 이끄는 후작이라 느껴지지 않았다. 억울할 법도 했다. 우선 그들은 위협에서 겨우 살아돌아왔으니, 에이든으로서는 주체가 되지 않는 감정일게 뻔했다. 그는 눈물을 쓱쓱 닦은 뒤 입술을 꾹 깨물었다.
“오랜만입니다. 성녀님, 비올렛.”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절도있는 동작으로 팔꿈치를 올리며 살짝 허리를 숙이며 약식 인사를 했다. 비올렛역시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에르멘가르트 후작.”
에셀먼드 역시 같은 인사를 하더니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에르멘가르트 후작각하.”
그 말에 에이든이 고개를 들었다. 완벽한 존칭이었다. 가문을 버린 형과, 가문을 이어받은 동생이 재회하고 있었다. 에이든은 그 말에 충격을 받은 듯 얼어 있었다.
“그리고 살아계셔서 다행입니다.”
그 말에 비올렛은 그가 에이든을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가문을 버려도,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들의 가족을, 형제를 사랑해왔다.
“저야말로, 살아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이든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 에이든이 비올렛을 친동생처럼 여기고, 아주 잠시동안 남매였다면. 지금은 그 적을 벗어나 완벽한 타인이었다. 에셀먼드와 에이든이야 말로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였으니, 더욱 그러할 것다. 꿈과 같은 극적인 재회는 없었다. 주고받는 말은 딱딱했다. 그러나 비올렛은 알고 있었다. 보고싶어 했고, 그리워했던 마음은 같았다.
*
린도의 희생으로 도시와 심지어는 백작령 전체에 하얀 빛이 터져나왔다. 비올렛은 린도가 이 순간 얼마나 성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지 알았다. 그때, 성녀의 힘을 터트렸던 비올렛과는 다르게, 린도는 자신을 상처입히지 않고 성력을 퍼트렸다. 린도는 성력을 다루는데 익숙했다.
새하얀 휘장이 드리워지면 신관들과 성기사들이 그들을 지키고 있었다. 에이든은 그 방에 들어가지 못해 바깥에 있었고, 비올렛과 에셀먼드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린도.”
비올렛이 다가가 휘장을 걷었다. 새하얀 시트 위로 붉은 자국이 보였다. 적은발의 청년이 누워 있었다. 붉은 피와 대비된 새하얀 청년이 누워 있는 모습은 예술품과 같았다. 백작 성에 린도는 그림처럼 누워 있었다.
몸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숨을 쉬는 것 만으로 고통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저 꽃이 피게하고, 새들의 말을 알아듣는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강렬한 의지를 밑바탕으로 자신의 생명력을 소진시키는 것, 비올렛이 깨달은 성력은 그런 것이었다.
“린도. 괜찮아?!”
비올렛의 말에 린도가 설풋 눈을 떴다. 은색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피가 말라붙은 붉은 입술이 미소짓고 있었다.
“아 역시 무사했구나.. 다행이야, 비올렛.”
언제나 생명력이 넘치던 린도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마치 죽어가는 사람과도 같아 비올렛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을 그녀를 향해 뻗자 그녀 역시 손을 뻗어 그의 손을 매만져주었다. 흐릿한 금색 눈동자가 그녀에게 가자 환하게 빛을 머금었다.
“린도 미안... 내가 했어야 했어.”
“절대 안돼 비올렛.”
린도가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아프면, 난 분명 더 아플거야.. 매일 성녀에게만 모든걸 맡겨놓다니, 그런건 교황으로서 실격이잖아. 그렇지?”
더듬거리며 겨우겨우 내뱉는 말에 비올렛의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울지마. 응? 나 네 동생도 데려왔고. 왕국군도 데려왔는걸? 그리고 옆 영지에서도 신관들이 오기로 했어.‘
“그래, 잘했어.”
비올렛이 말했다.
“바보야, 에이든은 동생이 아니라 내 오빠야.”
“아 맞다. 바보같아서 동생이라 생각했어.”
그가 킥킥 웃었다. 그러다 콜록이며 기침했다. 기침을 하자 마자 피가 튀었다. 온 내장이 뒤틀리고 있을 그상태를 알기에 비올렛은 눈을 질끈 감았다.
“신관들은 물러나십시오.”
비올렛이 말하자 신관들이 눈치를 보았다.
“무엇을 하십니까. 물러나라는 말을 못들으셨습니까?”
그녀의 서슬 퍼런 말에, 그들이 뒤로 물러났다.
“에드 경도 나가주세요.”
“무슨 짓을 하려 그러십니까.”
에셀먼드의 말에 비올렛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물어보지 말라는 뜻 이었다.
“경, 나가서 에이든과 이야기라도 하고 계세요.”
“성녀님, 아니, 비올렛.”
그의 엄한 표정에도 비올렛은 그저 한숨을 쉬었다. 분명 싫어할걸 알고 있다. 린도가 황금색 눈으로 비올렛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비올렛 하지마.”
린도는 비올렛이 무슨 짓을 벌이려는지 알고 있었다.에셀먼드도 비올렛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그만두십시오.”
“괜찮습니다. 별로 아픈건 아니예요, 금방 나을 거에요.”
비올렛은 린도를 억지로 일으켰다. 몸이 움직이는것도 고통이겠지만, 린도는 입을 꾹 다물며 고통을 삼켰다.
“그렇다면 차라리 제가 보는 데에서 하십시오.”
에셀먼드가 말했다.. 비올렛은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린도는 침대 옆에 세워진 벽에 기댄채 비올렛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입모양은 계속해서 하지마 비올렛, 아프잖아. 비올렛. 하지마. 라고 말하고 있던 것을 알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것은 방만이었다. 린도는 자신의 할일을 무리하게 하려다 이렇게 괴로운 것이었다.
“에드 경, 명령입니다.”
비올렛의 서늘한 최후 통첩에, 에셀먼드의 빠른 숨소리와 함께 그가 방문을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비올렛은 그것에 마음을 쓸 수 없었다. 문이 닫히고, 린도와 비올렛이 둘만 남았다. 린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비올렛을 보고 있었다. 그는 마치 비올렛의 행동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했다.
“네 소중한 에드 경이 화를 내며 나가버렸잖아.”
린도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비올렛은 린도를 보았다.
“어쩔 수 없잖아.”
에셀먼드는 언제나 비올렛을 최우선시한다. 그렇지만, 때로는 자신을 최우선으로 할 수 없는 때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그런 때는 많았고 선택의 여지가 없어 억지로 했던 경우가 많았으나. 그래도 지금은, 선택하고 싶었다.
비올렛은 너덜한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린도는 아직도 당황한듯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단추가 풀리며 새하얀 피부와 가느다란 어깨 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딘가를 본 린도의 눈이 싸늘한 빛을 품었으나. 비올렛은 자신이 하던 일에 몰두했다. 손가락으로 목선을 더듬으며, 단검으로 주저없이 목덜미를 찔렀다. 손목을 찌를까 했으나, 활을 들어야 했으므로 내린 선택이었다.
“비올...”
찝찔한 고통과 함께 어깨의 능선으로 따뜻한 피가 흐르는것이 느껴졌다 비올렛은 한 손을 들어 흐르는 피를 놓여있는 병에 넣었다. 린도는 흐릿한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는데, 그 두 뺨이 붉게 달아오른 것 같았다. 어쩐지 방 안의 공기가 뜨겁게 달아오른 것도 같았다.
“너, 진짜 비올렛...”
그가 한숨을 쉬었다. 비올렛은 한숨을 내쉬며 어깨의 피를 적당히 닦아냈다. 그리고 비올렛은 침대에 앉아 벽에 기댄 린도에 다가가기 위해, 침대 위에 올라갔다. 그녀는 한손으로는 린도의 어깨를 받치고 한 손으로는 병을 내밀어 린도에게 기울였다. 린도의 창백한 입술에 핏방울이 뚝, 떨어졌다. 그는 힘겹게 그것을 마셨다. 순식간에 비릿한 향이 퍼졌다. 한 두 방울씩, 그것은 아주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다. 비올렛은 인내심을 가지고 린도가 자신의 피를 한방울, 두방울 삼키고 있는 것을 지켜 보았다.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린도의 팔이 비올렛의 허리를 지탱했다.그리고 그가 피를 모두 삼킨 순간 린도가 말했다.
“이제 됐어 비올렛.”
그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비올렛은 그가 왜 그런 얼굴인지 알 수 없었다. 린도의 흐릿한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으나 움직이지 않고 비올렛에게 안겨 있었다. 비올렛의 허리를 잡는 린도가 비올렛을 보았다. 그 시선이 어쩐지 묘했다.
“다시는.”
손을 뻗어 비올렛의 얼굴을 쓰다듬은 린도가 비올렛의 팔에 기댔던 몸을 들어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상처입은 비올렛의 목덜미를 느긋하게 쓸었다. 깜짝 놀라 몸을 움찔하며 그를 받친 손을 빼려하자 린도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을 쇄골깨로 느른히 움직이며 가슴으로 다가갔다. 가슴에 느껴지는 손가락의 감촉에 비올렛은 그제야 자신이 가슴골이 보일 정도로 단추를 풀고 잠그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린도의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단추를 채웠다.새하얀 속살과 굴곡진 가슴, 가녀린 어깨가 셔츠로 가려진다. 그리고 아까 찔렀던 목덜미의 상처가 붉게 물들었다.
“이렇게 무방비한 꼴로 내 침대에 올라오지 말아줘.”
비올렛은 그의 손이 생각보다 어른스럽다는 것을 알았다.
“알았지?”
그 말은 부드러운 부탁 또는 권유였으나, 위험한 경고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 단호하며, 아름다운 금색 눈동자를 마주한 비올렛은 살짝 부끄러움을 느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린도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나 이제 걸을 수 있어, 나가자.”
*
린도와 함께 방을 나서자 신관들과 에이든은 어디로 불려간 것인지 사라지고, 에셀먼드만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신관들은?”
“몇몇 부상자들이 생겨 치료차 불려갔습니다.”
에셀먼드의 말에, 린도가 흐흥, 하고 웃었다. 황금빛 눈동자가 싸늘하게 에셀먼드를 바라보았다.
“난 정말 그대가 싫어.”
그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비올렛은 갑자기 적개심을 보이는 린도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비올렛이 성혈을 줬어. 비올렛은 어깨가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어야 예쁘겠더라.”
린도의 말에 비올렛의 뺨이 붉어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그러면서 린도는 검지손을 들어 아주 천천히 그의 입술에 묻어있던 비올렛의 피를 닦아냈다. 어째서인지 린도는 비올렛이 아니라, 에셀먼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관들은 어디로 가 있지?”
에셀먼드가 조용히 어딘가를 가리키자 린도가 웃으며 말했다.
“옷 갈아입고 와, 비올렛. 저쪽 방에 있을거야.”
비올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린도, 기분이 좋아?”
“방금 죽는줄 알았는데 너 덕분에 살아 났잖아. 왜 기분이 안좋겠어?”
그가 빙긋 웃었다. 린도는 언제나 종잡을 수 없었다. 에이든의 말에 따르면 린도가 크리처의 약점을 알아냇기 때문에, 일이 수월하게 되었으며 후버 백작령 전부 크리처들이 소거되고 있다 하니, 기분이 좋을 만도 했다. 그렇지만 왠지 다른 의미로 들뜬것 같아, 비올렛은 그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옷이 마련되어 있을 거라는 린도가 일러준 방으로 들어가서 비올렛이 올때를 대비해 신관들이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으려 했다. 비올렛의 여벌 옷은 강 너머 남작령에 있으므로. 그녀는 신관복을 입어야만 했다. 당연하겠지만 신관복은 남자를 위한 옷이라 비올렛에게는 너무나 컸다. 다른 옷을 찾아보고 싶었으나, 이곳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기껏해야 안주인의 드레스가 다 일 것이다. 활동성 있는 옷이 없으니 또 치렁치렁한 치마를 입게 된다는것인데, 치마를 입고 말을 탈 수가 없으니 그게 문제였다. 우선 바지는 가장 작은 것을 줬는지 허리 끈을 꽉 졸라메 어떻게든 유지했다.그러나 문제는 겉옷이었다.
길이는 땅에 끌리지만 않으면 되고, 긴 소매야 접어 입으면 되지만, 가운같은 이 옷은 이대로 보면 앞섶이 벌어져 처참하게 가슴이 드러날 것이다..그렇다면 앞으로 묶는 허리 끈을 한번 더 뒤로 묶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일단 고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목의 상처가 낫지 않아 손을 뒤로 하면 따끔거려 상쳐가 벌어질게 뻔했다. 낑낑거리며 허리끈을 묶으려던 비올렛은 결국 한숨을 쉬며 문을 열었다.
“에드 경.”
비올렛의 조용한 말에 문에 서 있던 에셀먼드가 눈길을 주었다. 생각해보니 에셀먼드는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못했다. 게다가 어딘지 모르게 기세가 흉흉해보이는 그를 보고, 겨우 허리띠를 매달라고 부르다니 미안해졌다.
“아, 아니에요.”
“무슨 일이십니까?”
에셀먼드의 시선이 옷의 앞섶을 꼭 쥐고 있는 비올렛의 작은 손을 향했다.
“옷이 몸에 안맞으십니까?”
“아...네.”
옷 시중을 들어달라니 미쳐도 한참 미친거다. 에셀먼드가 도련님이었고, 후작이었다는것을 생각해주지 못했다. 그리하여 무리해서라도 혼자 입어야겠다 결론이났다.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에셀먼드가 성큼 다가왔다.
“들어가겠습니다.”
“아!”
비올렛이 뭐라 만류하려 했지만 에셀먼드는 못들은건지 못들은 척 한 건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 덕분에 꼭 쥐고 잇던 손이 놓여져, 꼭 잡고 있던 옷의 앞섶이 벌어져 속옷을 입은 가슴이 드러나버렸다. 호수에서의 일이 떠올라 재빨리 앞섶을 쥐려 하자 에셀먼드가 비올렛의 손을 잡아 만류했다.
“옷이 틀어지셨습니다.”
“......”
그가 말려들어간 옷깃을 세워주었다. 조금 불편했던 이유가 이런 이유였구나. 리체가 없으니 불편하네 따위의 생각을 하며 비올렛은 생각에 잠겼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떠받들어지는 생활에 익숙해진 모양이라고 생각할때였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 목소리에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비올렛은 그가 맨 어깨를 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거친 손가락의 느낌이 강렬하여 머리를 찌릿 하고 울렸다.
“아직도 피가 안멎었습니다.”
“걱정마세요, 금방 멎을 거에요.”
조금 아프긴 했지만 치명상도 아니었고, 피도 그렇게 많이 흘리지는 않았다. 아찔하긴 했어도 린도와 비올렛의 상성이 잘 맞는건지, 생각보다 린도의 회복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꼭 이리하셔야 했습니까?”
그의 물음에 비올렛이 뒤를 돌아 에셀먼드를 보았다. 상처 부위에 열이 오르는지 에셀먼드의 손이 차갑게 느껴졌다. 비올렛은 에셀먼드의 얼굴이 생각보다 가깝다는 것을 알고 심장이 내려앉는줄 알았다. 뒷목에서 느껴지는 옅은 숨소리가 빠르다는것이 느껴졌다. 에셀먼드는 화가 나 있었다.
“어쩔 수 없었어요, 린도... 에드경!”
비올렛은 상처자국에 입술을 가져다 대는 에셀먼드를 보았다. 그는 아물어가는 비올렛의 목덜미에 입술을 대고 있었다. 시선을 어찌할 줄 모르다 앞을 보니 마침 거울이 그곳에 거려있었다. 비올렛의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엇다.
에셀먼드가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허리 끈이 그의 손에 있으니 마치 옷을 벗기려는 모습같기도 해, 꼭 남녀가 교합하기전의 야릇한 모습같아 민망했다. 입술이 주는 질척하고 뜨거운 느낌과 함께 비올렛은 자신도 모르게 나오려는 비음을 숨기려 입술을 살짝 깨물었지만 깨문 사이로 더욱 야릇하게 새어나왔다. 그러자 갑자기 그가 두른 팔에 힘을 꽉 주었다. 마치 사랑받는 여인의 모습 아닌가. 비올렛은 그가 껴안은 팔에 심장의 고동소리가 들릴까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는 한참동안 그녀의 목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입술이 닿은 목덜미에 열이 올라, 비올렛은 목덜미에 전해지는 입술의 열기를 온기로 착각하고 있었다. 한참 후, 그는 허리를 들어 협탁위에 놓여진 부드러운 헝겊으로 그녀의 목을 닦았다. 비올렛이 뒤를 돌아보니 에셀먼드는 엄지 손을 쓸어 그의 입술에 묻은 붉은 피를 닦았다 다시 한번 뜨거운 숨결이 닿았다.
“응급처치라 생각하십시오.”
“........”
누가 봐도 응급처치라 생각하진 못할 것이다. 다른 기사가 한다면 꿈도 못 꿀일이었으나. 누구보다 가까운 에셀먼드가 했던 일이라 비올렛은 묘하게 납득이 갔다. 에셀먼드가 조금 화가 나 있던 건, 비올렛이 상처도 제대로 치료하고 있지 않아 답답해서 그리한걸지도 모른다. 어렸을적 손가락에 상처가 나면 그것을 빨았던 것처럼 말이었다. 그저 그가 조금 화가 난것뿐이었다. 어쩌면 이런 일을 시켰다고 더 화가 났을지도 몰랐다.
“알았어요, 에드경. 앞으로 상처에 대해서는 주의할게요.”
비올렛이 태연하게 말하자 에셀먼드역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언제나 처럼 서늘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어느정도 화가 누그러진 듯 해 다행이었다. 그러나 비올렛이 미안한 것은 다른 일이었다.
“그리고. 다음부턴 이런 일은 시키지 않을게요 에드경, 제가 너무......”
에셀먼드가 비올렛의 얼굴을 바라보다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숨의 숨결까지 맨 살에 닿아서 호수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어쩐지 알몸으로 그의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그녀를 내려다 보는 그의 시선은 깊었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 오묘했다.
“아니요 이런 일은 절 불러주어야 하는게 맞습니다.”
한참만에 에셀먼드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허리띠를 잡고 있던 손을 풀더니, 그는 손수 그것을 조여서 묶었다. 허리가 조이는 느낌이 나자, 비올렛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옷을 입자 조금 떳떳한 느낌이 들어 에셀먼드를 보며 말했다.
“아뇨 오라버니가 귀족이셨던 입장을 제가 생각 못했어요. 미안해요.”
비올렛의 말에 에셀먼드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저는 이 일에 더없이 만족합니다. 비올렛.”
어쩐지 단호해보였다.
“그리고 오라버니는, 이젠 다시는 부르시지 마십시오.”
비올렛은 에셀먼드의 엄한 눈빛에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든이 서운해 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고, 에셀먼드가 저번에도 부탁한게 있었으니. 그래야 마땅했다. 다만, 어쩐지 린도나 에셀먼드 두 사람이 그녀에게 꼭 무언가를 강요하는 기분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이번 편에 추천수가 없다면 에드는 다신 비올렛에게 키스하지 않으리...
에드가 에변태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고있는것같지만..
린도가 먼저 에드를 도발했잖아여?
아 비누.. 잘만들었어요 여러분
저 좀 재능있는듯(<-핵노답각.. )
저오늘 열심히 했다구여? 인형도 리페인팅 작업들어가고, 비누도 만들어꼬
오늘 21키바나 쓰고.. 다만 좀비가 이번편에 끝나지 않아서 문제지..
담편은 월요일에서 화요일로 넘어갈 때 오겠음다. 제가 진행하고 있는게 패러디 소설 외ㅈ전집이어요..
원고는 다 썼는데 마지막으로 퇴고하려하는데 그 시간이 좀 많이 걸릴것같아서..
여튼 오늘도 즐거운 토욜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