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9 제비꽃, 피어나다 =========================================================================
린도는 로디온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비올렛이 있는 산쪽으로 가는 길에는 크리처가 없는것이 분명했다 비올렛이 보낸 새들이 '거기 안위험, 거기 안위험!'이라고 말했으니 아마 확실할 것이다.
“성문 안으로 다시 돌아가야겠습니다.”
“하지만 비올렛은......”
“시체가 살아돌아온다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시체들을 태워버려야 합니다.”
에이든은 그제야 바로 앞에 서 있는 로디온이 생각났다. 시체들이 살아서 크리처화 된다면 백작 성에서는 이것을 알고 처리를 해야한다. 하지만 모두 다 함께 가야 하는 것인가?
“비올렛을 기다리지 않을 겁니까?”
에이든의 말에 린도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기다릴 수 없는 겁니다.”
린도가 데려온 신관들과 기껏 열이 되는 성기사들은 모두 린도를 보호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성벽 안에는 린도가 남겨둔 소수의 신관만 자리했다. 그러나 이들의 성력을 린도는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다 해서 딱히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린도는 비올렛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려야만 했다. 기다리고 싶었다. 그러나 입술을 꽉 깨물었다.
“가디언이 있으니 괜찮을 겁니다.”
에셀먼드의 존재를 떠올리며 린도는 주먹을 꽉 쥐었다. 별로 미덥지는 못했지만 그 녀석이 자신이 믿는 저 로디온보다 더 대단하다면, 그리고 그 마음이 대단하다면 성녀정도는 지켜줄 것이다. 이 와중에 그 가디언에 대한 신뢰에 헛웃음이 나왔다. 지켜주는 것이 에셀먼드의 의무라면 자신은 비올렛이 찾아 올때까지 완벽하게 안전한 장소를 마련하면 된다. 그것이 설령 자신의 능력을 모두 쏟아 붓는 것일지라도.
“카라엘.”
“네. 신관님.”
ㄹ
린도의 심복 신관중 한명이 그에게 다가왔다.
“혹시나 모르니 베일을 내게 주십시오."
린도의 조용한 말에 카라엘이 속삭였다.
“성하, 어쩌자고.......”
“괜찮을 겁니다.”
그의 걱정어린 시선에 그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옆에 있던 그 신관은 린도를 걱정스레 보고 있었다.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던 이 순수한 교황은, 언제부터인가 인간적으로 변했다. 린도는 비올렛이 내려올 산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숨을 들이마셨다.
“에르멘가르트 경 께서 비올렛이 걱정 되신다면, 그곳에 가 계십시오, 동물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산 근처에 크리처들은 없다고 합니다.”
에이든은 그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을 보았다. 이 청년은 어딘가 모르게 다른 신관들과 다른 구석이 있었다. 마치 비올렛과 같은 청량한 느낌이 났다. 린도는 묻고 있었다. 따라갈거냐, 이곳에 머물러 기다릴 거냐.
에이든은 비올렛과 에셀먼드를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 어린 지휘관으로서 온 것이다. 그저 보고싶다는 마음만으로는 어떤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였다가 아마 에셀먼드 형이 화를 낼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데, 아무런 성장없이 그대로 머물러 잇으면 그것처럼 부끄러운 일은 없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자 결심은 확고해졌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
성문 안으로 돌아갈 때 쯤, 본성 족에서 위급의 불꽃이 올라왔다. 그들은 말을 타고 내달렸다.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 구역은 크리처들이 없었던 청정 구역이었는데 누군가 독기에 감염된 사람이 들어갔던게 분명했다.
린도는 자신의 앞에 펼쳐진 지옥도를 보았다. 죽고 도망가며, 싸우며. 스러져가는 이곳. 언제나 신전에서 ‘죽음’을 외면해왔다. 체자레의 말에 따라 그것을 어쩔 수 없는거라며 치부했다.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길 따윈 없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비올렛이 화를 냈던 이유도 역병에 죽어가는 도시에서 겨우 깨달았을 뿐이다. 그 역병이 퍼진 고요한 마을의 슬픔따윈 없다. 죽어가는 이들에 대한 애도와 슬픔, 절망만이 들어찬 그 마을과는 달리, 이곳은 끔직하게도 격렬하고, 생동감이 넘쳤다. 광기와 공포가 들어찬 이곳에서. 그는 신의 존재를 어디서도 느낄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올렛이 아니었다면, 아마 이곳은 멸망했을것이다. 더 참혹하고 무력하게 한 도시가 지도에 사라지는 것이다. 이 도시에 사람들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말룸이 나타날 예상 지역이었기에, 말룸이 나타날 최후의 징조가 도래한다면. 사람들은 모두 이곳을 떠나야 하는것이다. 성녀와 말룸의 유일한 전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린도는 이전, 그 말을 들었을때 사람들을 모두 죽여버리면 된다. 왜 굳이 이주를 시켜야 하는가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사람이 눈 앞에서 죽는건 싫다. 그러나 서류상에 있는 사람이 죽으라 하는것은 이토록 쉬웟다. 이 얼마나 모순되고, 어리석단말인가.
부족한 신관들과 넘치는 병력들이 검을 들고 싸운다. 옆에 서 있던 에이든 역시 린도의 곁을 벗어낫 말을 타고 내달려 크리처들을 하나 둘 베어간다. 신관들 역시 싸우고 있었다. 본성(本城)쪽에서 역시도 불꽃이 일고 있다. 린도역시 달려나갔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 역시 사람이 죽는건 싫다. 무섭다. 두렵다. 이들이 비록 신의 품에 안길지언정, 이들은 이 지상에서 발붙고 살아가는것을 원하는 자들이다. 린도는 처음으로 비올렛의 눈물을 이해했다. 그는 비올렛이 슬플거라는 것에 분노할 뿐, 비올렛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비올렛은 이들처럼 낮은 신분이었으며. 이들 처럼 맥없이 스러져 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처절함속에 희생되고, 상처받은채로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 비올렛에게 린도는 선택을 강요했다. 분명 화가 나 복수하고 싶을테니, 에르멘가르트 가문과 자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질투에 멀어 벌인 짓이었지만 그가 했던 행위는 비올렛의 슬픔을 자극했던 행위였다. 게다가 그녀는 비올렛이 있던 곳을, 비록 그녀가 힘들었을지언정 그녀가 사랑했던 곳을 더럽다고 표현하지 않았던가.
“나는.....”
왜 진작 알지 못했던 것일까. 린도의 두 눈에 눈물이 흘렀다. 문득 린도는 무너진 집의 폐허 아래 쓰러진 여자아이를 보았다. 여자아이는 작고 가녀렸다. 처음만났을때, 겁에 질려있었던 비올렛처럼. 여자아이는 목에 상처를 입고있어 곧있으면 크리처가 될 아이였지만 위협적이지 않아 그 누구도 죽이지 않은 것이었다. 말에서 내린 린도는 여자아이에게 다가갔다. 새하얀빛이 터져나오며 아이를 깨끗하게 치료했다. 붉은 눈동자를 가진채 멍하게 누워있던 아이의 눈 색깔이 돌아왔다. 보라색, 옅은 보라색이었다. 비올렛의 눈동자에 남아있던 그 흔적과도 같은.
“조금 있으면 끝날거야.”
린도가 속삭였다. 여자아이는 맑아진 정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자신의 앞에 선 천사같이 아름다운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작은 손을 내밀어 린도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린도는 웃었다.
“어서 도망가, 아니면 꼭 숨어있어. 알았지?”
여자아이가 린도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말에 오른 린도는 부상을 입은 군사들에게 하나 하나 성력을 썼다. 병사들 몇십이 크리처화 되어서 결국 동료의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린도는 한숨을 내쉬었다. 본성으로 가려면 마을과 본성을 잇는 안전한길은 경작지를 지나는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우회하지 않고 바로 일직선으로 도시와 도시사이를 가른 본성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다리를 건너 본성으로 향하자, 그들은 본성 주변의 주도(主都)를보며 그는 경악했다. 이곳은 크리처들이 점령해버린지 오래였다. 그때의 시체들이 일어났다. 꼭 마치 린도가 없어진걸 기다렸다가, 백작의 성을 침범한것 같지 않나. 전투 태세를 갖춘 기사들이 또다시 살육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백작 령의 사람 모두를 몰살시켜야 해결이 되려나. 린도가 허탈하게 생각했다. 아니, 이곳에서도 숨어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불꽃이 터진 것은 몇시간 전, 아직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살아 있을 것이다. 다만 걱정인것은 신관들의 체력 상태였다. 몇십의 신관이 겨우 천이 되는 군사를 치료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신을 섬기는 자라면 해야 할 몫이었다.
싸움 한복판에 서 있던 린도는 죽어있는 크리처들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들은 분명 살아있는 상태에서 크리처화가 되어 기사들에게 죽은 것일 터였다. 그러나, 원래부터 죽은 시체들을 크리처로 만들어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죽기 전 크리처가 된 시체들은 왜 칼질에 죽고, 죽고 나서 변이한 시체들은 이렇게나 끈덕진 것일까.
살아있는 상태에서 독기에 지배당하여, 꼭두각시화 되었다면. 죽은 시체들이 다시 일어나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지 않을까? 그때 마침 썩어버린 육신을 한 크리처가 그에게 다가왔다. 린도는 자신도 모르게 성력을 쏴 방어했다. 얕은 성력이었지만, 성력은 확실하게 그것에 먹혀 크리처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이거다.
린도의 얼굴에 또르르 땀이 굴러떨어졌다. 그 역시 지친상태였지만 방금 알아낸 수확은 괜찮았다. 시체들이 살아 움직이는것이 생명으로 인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독기때문이라면 소량의 성력으로도 대응이 가능한 것이다.
린도는 그 말을 하려 신관들을 보았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또다른 지옥도. 사라져가고 있는 생명들이었다. 신관들은 상처입은 군사들을 구하지 못하였고, 기사들역시 신관들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린도 근처에 있는 성기사들 몇명역시 크리처의 이빨과 손톱에 계속해서 상처를 입고 있었다.
“에르멘가르트 경!”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린도는 저 멀리 에이든이 어깨에 상처를 입은것을 보였다. 날카로운 손톱은 그들이 입은 갑주만큼 단단해 어느새 에이든의 갑주를 깨버렸다. 크리처들 몇몇이 에이든에게 다가갔다. 에이든은 이를 악물며 말 위로 달려드는 크리처를 찌르고 있었다. 그의 근처에 신관들은 없다. 린도의 심장이 뛰었다 단 한번도 그렇게 많은 성력을 쓴 적은 없다. 비올렛이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는지 보진 못했지만 너무나 걱정되어 알아본 소식으로는 거의 한달동안 거동이 힘들어 했다는 것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피까지 내어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선택권은 없었다. 할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것고, 무력한 것은 다른것이다. 그는 시야를 가리는 베일을 썼다. 시야는 흐릿했지만 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변이를 풀었다 이제부터 그가 벌일 짓은 무모한 짓이었기 때문에 그는 만에 하나라도 그의 황금색 눈동자가 왕도의 기사들에게 보여질 경우의 파문을 예측하고, 방비해야 했다. 린도는 더이상 희미한 성력으로 자신의 눈색과 머리색을 유지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새하얀 베일을 쓴 린도는 그들을 둘러보았다.
이제 다신 저들을 외면하지 않겠다. 자신이 잘못했다면 그 과오를 갚겠다. 린도는 하늘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공기의 흐름이 그의 새하얀 팔에 느껴졌다.
“성ㅎ...!”
“여기서 그말을 하게 된다면 나라가 어떤 꼴이 날지는 알고 하는 말이겠지.”
린도의 서슬퍼런 말에 성기사가 입을 다물었다. 성기사들은 모두들 걱정이 되어 린도를 보았다. 공기의 흐름이 진동하며 이완되기 시작했다. 린도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피어올랐다. 온 몸을 타오르는 듯한 작열감에 온몸이 괴로웠다. 성녀인 비올렛처럼 대규모로 그런 성력을 쓰는 것은 아무리 교황인 린도라도 무리였다. 하늘에 뻗은 손이 벌벌벌 떨려왔다.
입에 울컥, 하고 피가 샜다. 그러나 베일 뒤에 있는 이 청년이 어떤 표정으로 하늘을 보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시체의 사취(死臭)를 머금은 비릿한 공기에 향기로운 생명력이 스며들어간다. 그것은 린도의 팔 끝에서 뻗어나오는 신성이었다.
새하얀 빛이 폭사되었다. 눈이 부신 빛의 광휘에 사람들이 잠시동안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밤이 되어가는 어둑한 빛에 청명한 달빛이 전해졌다. 크리처로 변모해가던 기사들과, 숨어있던 사람들이 나와 그 빛을 맞이하였다.
빛의 광채는 이 도시와 그 주변 마을을 집어삼켰다. 린도의 입에서 흘러나온 피는 결국 베일 밖을 벗어나 하얀 신관복까지 물들였다 . 빛이 사그라들자 기사와 병사들은 모두 자신들의 상처가 나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성녀가 일으킨 기적 같지 않은가. 사람들이 베일을 쓴 신관을 바라보았다.
“신관!”
생각해보니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나보네. 기사들 사이에서 이미 여자같은 신관, 얼굴 반반한 신관이라고 불리던것같지만. 린도는 쿨럭, 하며 피를 토해냈다. 시체에서 되살아난 크리처들이 모두 다시 시체로 돌아갔다. 남은것은 살아있는 상태에서 크리처가 된 이들 뿐. 기사들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 그들을 차례대로 처리했다. 어쩐지 이들의 움직임이 둔해졌기 때문에 그것들의 처리는 너무나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에이든이 다가왔다.
“신관 방금 무슨 짓을!”
“비올렛을...데려오십시오. 이젠 안전할겁니다 어서.”
피가 후두둑 쏟아져내렸다. 쓰러지려는 린도를 부축한 에이든은 베일 사이로 반짝이는 은빛머리카락을 보았다.
“신관, 머리색이....”
린도는 몸을 움찔했다. 은발의 머리카락이 들켰다. 혹시나 공연한 의심을 살까 그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신관들, 성력을 많이 쓰면 머리가 새어버리는겁니까?”
아아. 다행이다. 저 사람이 바보같아서. 예전 비올렛에 대해 조사할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비올렛은 분명 저 사람을 좋아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저 사람이 비올렛을 좋아해주었던 만큼.
비올렛, 네가 그리워했던 사람중의 한명이 널 데리러갈거야. 반짝거리는 보석도, 아름다운 옷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너지만 초콜렛을 좋아해주던 너라면, 분명 너는 기뻐하겠지?
린도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 작품 후기 ============================
짧아서 죄송합니다! 다음편에 우리 좀비파트가 끝나네여!! 워후~~ ~_~
에이든의 멍충함은.. 쓰러지는 린도도 웃게 만들었...
여러분 저 석고방향제, 소이캔들도 만들었으니 이제 천연비누에 도전해볼까해요!!(핵노답)
넘나 재밌을것같아! 실용성도 있궁!!
다음화는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갈때 뵈어용!어쩔수없어여 ㅠㅠ 제가 다른 작품 외전집을 내고 있는데 마감이 월요일이라 밤샘각임니다 ㅠ.ㅠ
눈이 많이 내리는데 여러분이 내리는 지역은 어떤가요?
밖에서일하는 분들이 있다면 고생 안했으면 좋겠어여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