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3 제비꽃, 피어나다 =========================================================================
비릿하게 번지는 피냄새가 코끝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잠시동안 비틀 거리던 비올렛은 체자레를 보았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 처럼 멍했다. 겁에 질린 사람들과는 달리 비올렛의 얼굴은 의연했다.
“추기경.”
비올렛이 불렀던 것은 린도가 아닌 체자레였다. 린도의 정체를 아는 측근 신관들은 교황이 아닌 추기경을 부르는 성녀의 태도에 의아했다. 교황이 최근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실세인 추기경과 정 반대의 행보를 걷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태에서 추기경을 부르다니? 추기경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인가? 린도 역시 얼굴을 살풋 찡그린채 그녀를 보았다. 비올렛은 따라오려는 에셀먼드를 만류하고, 예배당 바로 옆에 위치한 기도실로 들어갔다.
“아무리 급한 일이나 신관들에게 벌을 줘야겠습니다.”
방금 일어났던 끔찍한 일과는 다른 태연자약한 표정과 말투로 체자레가 비올렛을 보며 말했다. 비올렛은 자신이 얇은 잠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예의에 어긋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혹여나 흠이 될 수도 있었다. 체자레는 자신의 신관복을 걷어 비올렛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스승님은 이런 상황에서 제 옷차림이 보이십니까?”
“당연한것 아닙니까? 지금 제게 가장 중요한건 비올렛입니다.”
비올렛은 체자레를 보았다. 짙은 장미향이 풍기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것이 꿈속에서 맡았던 악취를 떠올리게 했다.
“제게 꿈에 대해 말하셨죠, 대체 아는게 무엇입니까?”
비올렛은 진지했다. 예전부터 만났던 그 여자가 말룸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믿을 수 없었다. 체자레는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냐고 물어본 것이 분명했다.
아직도 납득이 가진 않았다. 왜냐하면 꿈속의 여자는 비올렛에게 다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어를 알리지 않았나?
'비올렛.'
그렇게 생각하던 그녀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녀는 말룸으로부터 도망 갈 기회가 있었고, 성녀의 의무로서 도망가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말룸은 그녀의 도주를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 그랬던 것이다. 그녀의 머리는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고 체자레는 그것을 냉정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말룸이, 말룸이 꿈에 나타났습니다 스승님.”
비올렛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래요, 말룸이 꿈에 나타난거로군요.”
“스승님!”
비올렛은 체자레가 무언가를 알려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체자레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무슨 말을 했습니까?”
“내게서 벗어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벗어나선 안된다고, 달아나선 안된다고.......”
“그렇습니까?”
그의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묘했다. 그는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슬픈듯 울상을 짓고 있는것 같기도 했다.
“비올렛, 나라고 모든걸 아는게 아닙니다. 그저 어렸을 적 왕궁에 있던 기록을 보았을 뿐이랍니다. 성녀는 언제나 꿈속에서 계시를 받았으며 불길한 징후를 예언했지요. 신으로부터 말입니다.”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었다. 기록상에서 본 것을 물어본거라니, 오히려 무엇을 물어보려던 비올렛이 할 말이 없어졌다. 체자레가 웃으며 말했다.
“조금 더 공부가 필요할 것 같군요 비올렛.”
“그런 기록은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비올렛 역시 성녀로서 지식을 쌓았다. 비록 체자레에게 배우지는 않았더라도 왕궁에 있는 신학 서적을 읽고 학식을 쌓아왔던 것이다. 그런 구절을 읽은 적은 없었다.
“불타오르던 왕궁에 있는 책이니 당연히 못 읽을 법도 합니다.”
“하지만 왜 이곳, 신전에서는 없는 겁니까? 왜 린도는 모르고 있었나요?”
비올렛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도 체자레의 얼굴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거야, 내가 읽었던 것은 소실된 전대 성녀 ‘아나스타샤’의 일기였기 때문입니다.그녀는 일기를 쓰는 버릇이 있었거든요.”
“........”
그에 비올렛은 입을 다물었다. 일기가 똑같은게 두 개 있을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선대왕이 아나스타샤를 일방적으로 사랑했고, 선대왕이 아나스타샤와 신전에 관련된 모든 것을 증오하여 불태운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군요.”
허무한 결론이었다. 체자레는 언제나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언제나 이렇게 찝찝함만을 남긴다.
“들어가 쉬십시오.”
“스승님?”
“분명 꿈을 꾸느라 힘들었을 겁니다. 쉬세요.”
“.....알았습니다.”
비올렛은 몸을 돌려 기도실에서 나가려 했다. 하지만 긴장이 풀린 탓인지, 아니면 아직도 긴장한 탓인지 다리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체자레가 걸쳐준 붉은 옷이 땅으로 흘러내렸다. 체자레가 나지막이 한숨을 쉬며 다시 겉옷을 씌워 주며 그녀의 팔을 잡아 그녀를 부축했다.
“성장만했지 아직도 이렇게 약하셔서 어쩌잔 것입니까.”
체자레의 말에는 다정한 염려가 섞여있었다. 왜 갑자기 그러냐고 물어보려 해도 그럴 수 없었다. 체자레는 원래 그러했던 자였기 때문에. 비올렛이 체자레를 보자 체자레는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전 괜찮습니다 스승님.”
“아니요. 보는 제가 괜찮지 않습니다.”
체자레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기도실을 나와 다시 예배당을 가니 에셀먼드가 바깥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체자레와 비올렛을 번갈아 보더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체자레가 에셀먼드를 바라보았다. 비올렛은 고개를 숙이느라 그들이 어떤 시선을 주고 받았는지 몰랐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십시다.”
비올렛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 가기 전, 그녀는 다시 한번 거대한 석상을 바라보았다. 저곳은 에셀먼드의 충성맹세가 이루어진 곳이기도 했다. 아그레시아가 흘리는 피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을 닦으려는 신관들과 공포에 질려 탄식하는 신관들이 보였다.
붉은 눈을 한채, 붉은 피를 흘리는 여자와 아그레시아가 순간 겹쳐보였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멍한 그녀를 에셀먼드가 잡아 끌었다.
방으로 따라온 에셀먼드가 비올렛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려 입을 열었다.
“이제.....”
“경.”
비올렛은 가냘픈 목소리로 에셀먼드를 불렀다. 방으로 돌아온 자신이 덜덜 떨고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지금은 여름이었고 오히려 더우면 더웠지 춥지는 않다. 체자레가 씌워준 붉은 신관복이 다시 흘러내려 하얀 어깨가 보였다.
에셀먼드가 굳은 얼굴로 비올렛을 보았다. 아까까지 그녀는 조금 비틀거렸지만 표정은 의연했다. 그러나 지금의 비올렛은 덜덜 떨고 있었다. 또 억지로 태연한 척 한 것이다. 앞에 놀라 서 있는 리체에게 진정하는 차를 타오라 에셀먼드가 시키자 리체는 재빨리 차를 준비하러 나갔다.
“성녀님.”
“아니, 아니 괜찮습니다.”
제대로 마주하지 않던 실체가 없던 적을 제대로 마주했다. 더군다가 말룸이 자신을 노린다는 것을 알았다. 절대 말룸은 그녀를 도망치게 두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직감적인 깨달음이었다. 그 썩은 악취와 저주를 담은 붉은 눈동자가 머릿속에서 자꾸 떠오르며 휘몰아친다. 자신이 신을 저주한 것에는 비할 바가 없는 말룸, 신을 저주하는 자 라는 신어의 말 그대로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저주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것이 꿈이 아니라는 듯, 아그레시아의 석상에 흘러내리는 피눈물은 말룸이 내비치는 경고였다. 본디 그녀는 삶에 대한 짙은 미련이 없었다. 미련이 없었기에 두려움도 없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그녀는 제대로 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꿈에서... 말룸이 나왔습니다...”
비올렛이 겨우 말했다. 그 말에 에셀먼드가 덜덜 떨고 있는 비올렛을 보았다. 그 꿈 속에서 잠시나마 느꼈던 공포에 대해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비올렛은 자신이 생각보다 그 여자를 신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말룸인줄도 모르고....신이라 생각했어요......”
어려서부터 나타났던 그 여인을 믿었다. 자신에게 독니를 드러내려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채로.
“허면, 계속 꾸시던 악몽에서 말룸이 나왔단 말입니까?”
에셀먼드의 말에 비올렛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억지로 억누르던 떨림이 멎지 않았다. 이렇게나 두려운 존재였나. 몸이 달달 떨렸다. 무섭다. 두렵다. 저걸 상대해야 한단 말인가. 저렇게 악한 존재를? 저렇게 두려운 것을? 그 거대하고 두려운 악기가 모인 그것을? 혼자서 어떻게? 어떻게 그것과 대적할 수 있단 말인가? 저 어마어마한것에?
“악취가 났었어요. 빨리 깨달았어야 했는데......어떻게 그렇게 무서운.”
뒤늦게 그 꿈에 대해 회상하자 억눌려왔던 공포가 밀려왔다. 어렸을적 들었던 이야기와 차원이 다른 공포였다.
“성녀님.”
비올렛이 고개를 들었다. 에셀먼드가 바로 눈 앞에 서 있었다. 아마 분명히 ‘마땅히 해야 할 의무’라며 그는 그녀의 의무에 대해 설명하며, 더욱 더 강해지라 말할 것이다. 그리고 비올렛은 그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 미안해요 경 이제 그만.....”
“실례하겠습니다.”
“뭐, 잠깐 경!”
공포에 질려 있던 심장이 다른 의미로 쿵쿵거리며 뛰었다. 두꺼운 제복 위의 단단한 가슴팍이 느껴졌다. 한순간 머리가 하얗게 물들었다. 그녀의 이마는 에셀먼드의 몸에 기댔고, 어깨는 그의 팔에 감싸여있었다. 고개를 들려 했지만 붉게 달아오른 뺨으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어깨를 감싼 그의 거대한 팔이 그 힘에 비해 살짝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비올렛이 뿌리치려 하면 언제든 뿌리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다는 것 정도 는 알고 있다. 그러나 비올렛은 그것에 몸이 굳어버렸다. 그의 온기가 전해져 왔다. 당황스러워 어떻게 할 줄 몰라 눈만 깜빡거리자 오른쪽 귓가에 에셀먼드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의 싸움엔 같이할 수 없을겁니다. 그러나 끝까지 곁에 있겠습니다.”
귀에 속삭이는 듯 낮게 내려온 목소리. 비올렛은 그가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새 떨림이 멎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으로 그와 몸이 밀접하게 접했다. 비올렛은 용기를 내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에셀먼드와 눈이 마주친 순간, 다시 머릿속이 녹아 내릴 것 같았다. 눈물이 고일 것 같았다. 비올렛은 착각하지 말자고 자신의 마음을 추슬렀다. 에이든이 그녀를 안아주었던게 오라버니의 마음이었다면 에셀먼드 역시 그러할 것이다. 이것에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된다고 그녀는 되뇌이고 또 되뇌었다.
“고마워요 오라버니.”
비올렛의 대답에 에셀먼드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울고 있던 어린 비올렛을 쓰다듬듯이. 머리르 쓰다듬던 그의 손이 머릿결을 타고 내려가 그녀의 머리 끝자락을 만지작거렸다. 비올렛은 자신의 대답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았다. 비올렛이 살짝 미소를 짓자, 에셀먼드가 끌어안던 팔을 내려 몸을 그녀로부터 떼어냈다. 그와 동시에 차를 가져온 리체가 들어왔다.
*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비올렛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니, 잠을 자는게 무서워서 못잔게 맞았다. 잠을 잔다면 꿈에서 말룸이 그녀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창 너머 새들이 아직도 날카로운 울음을 울고 있었다. 불길함은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그때 또 다시 노크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비올렛은 자신이 오늘 하루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회의장으로 들어가자 린도와 체자레의 얼굴이 심각했다. 앉아있던 사람들은 모두 비올렛을 보았다. 비올렛은 자신의 등장이 사람들에게 묘한 안심을 주고 있는 것도 알았다. 크리처의 등장이란 신화적 현상의 발현, 그리고 신이 선택한 신의 대리자인 비올렛. 아마도 이런 시선에는 더욱 더 익숙해져야 하리라. 회의장을 주욱 둘러보니 대신관들은 아직 오지 않은 듯 했다.
“그런가?”
체자레가 비올렛을 보며 말했다. 린도는 휘장안에 있었다. 회의는 신관들의 보고를 통해 시작했다. 전서구와 봉화를 통해 온 급박한 필기체가 종이 너머로 비추었다.
“시스벨 남작의 전령입니다. 크리처가 나타났고 인근 후버백작령까지 퍼질 것 같습니다.”
“그런가?”
신관들이 수근거렸다. 후버 백작은 명백한 국왕파 귀족이었다. 후버 가는 왕비의 외조카가 이끄는 가문이었다.
“그곳은 국왕쪽이 알아서 처리하겠지요.”
그들이 말했다. 물론 당연히 그것은 거짓이었다. 비올렛은 그 발언을 한 신관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신관께서는 공부가 더 필요할 것 같군요. 크리의 독기에 감염되면 또 똑같은 크리처가 되는 것을 아시고 하시는 말입니까? 크리처는 절대 신관없이는 처리가 불가능합니다. ”
“.......”
비올렛의 차가운 말에 신관은 목을 움츠렸다. 체자레 역시 얼굴을 굳히고 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나가십시오.”
체자레의 말에 신관은 뭐라 말하려 했지만 회장에서 쫓겨나고야 말았다. 신관들이 불안하게 수근거렸다. 크리처에 대해 공포는 알면서도 그 심각성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그들을 보았다.
“그렇다면 신전에서 다른 지방 신관들을 끌어모아 지원을 나갑시다.”
생각 외로 합리적인 답안을 하는 신관을 보며 비올렛은 안심했다.
“다만, 신관들이 지원을 나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왕국에게 그 대가를 받아내야 합니다. 그만한 보상이 지급된 후, 그때 신전이 지원을 나가면 됩니다..”
“......!”
이거였나. 사람들은 그 신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성기사들과 신관들이 파견을 나간다. 그리고 그 대가를 국왕에게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와주지 않는다. 그 예전, 선대왕이 무릎을 꿇었을 때 처럼, 역병을 ‘일부러’ 도와주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국왕은 이것을 거절할 수 없다. 신관들의 없이 퍼져나간 역병과 비슷하다. 아니, 역병보다 더 악질이다. 국왕이 거절하다간 나라의 기둥이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까지 해야하는 것인가. 보상이 이루어질때까지 죽어갈 사람들은? 그녀는 그들의 태도에 답답했다.
“불허한다.”
교황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올렛은 휘장이 쳐진 채로 분노하는 린도를 보았다.
“그대들은 생명을 가지고 저울질을 하는가. 장사치들과 다를바가 없는 천박함이라.”
불과 약 두달 전, 역병이 돌았을때 취했던 태도와는 다르다. 린도는 확실히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성하, 그렇다고 해서 신관들과 성기사들의 목숨은 헛된게 아닙니다.”
다른 신관이 말했다. 비올렛은 크리처를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 크리처들이 나타나 퍼진다면 그것은 재난이 아닌 재앙이었다. 한 도시가 거의 멸망한다 봐도 무방한 것이다. 신관이 있어도 자칫 잘못하다 신관들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 특히나 성기사들은 그러했다. 그들의 목숨에 대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본다면 타당한 말이었다.
“신을 모시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닌가? 신을 배반한 배덕의 무리들에게 철퇴를 행하는데 망설임이 없어야 옳다.”
“성하!”
그러나 린도의 정책은 린도의 감정에 따라 이루어진다. 인력의 손실이 이루어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국왕과 협력하는 방안은 없는 겁니까?”
“......?”
비올렛의 말에 신관들이 모두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어차피 나라를 위하는 일 아닙니까? 신전과 왕궁에서도 꼭 해야만 할 일입니다. 누구 하나의 책임으로 보상을 얻어야 한다면 둘이 동시에 책임지면 해결 될 일 아닙니까. 하버 백작령의 영지는 우선왕국군이 파견될 때까지 주둔된 병력으로 해결이 가능할겁니다. 주변 신관들을 기다리는 것 보다, 폐하가 파견한 군대가 더욱 더 위력적일 겁니다.”
“......”
그것은 사람들이 차마 생각하지 못했던 말이기도 했다. 국왕과 교황이 서로 합동한다? 오랜 세월 반목 해온 그들이? 절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신전에 주둔한 병력을 모두 끌어다 그곳에 가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우선 이곳은 성도였고, 병력보다는 신관들이 많았다. 현실적으로 백작령이라는 거대한 지역에 지원을 나가는 것은 아무리 신전이라도 무리가 따랐다. 그리하여 신관들은 무리해서라도 주변 신전을 모은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간을 따지자면 일주일정도가 걸렸다. 게다가 보상까지 원한다면 시간은 더욱 걸리리라. 그러나 누군가가 신전에 가서 국왕의 군대를 데려온다면 왕도는 후버 백작령으로 통하는 길이 있으므로 시간이 사흘 정도로 단축되는 것이다.
“역사서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 아닙니까. 무엇이 잘못된겁니까?”
“서, 성녀님,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실현가능성이 없을 뿐입니다.”
신관중 한명이 쩔쩔매며 말했다. 그들은 차마 비올렛의 분노를 살까봐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도 있던 사실이었다. 이들은 논리적으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국왕과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에 협력하기 싫다는 말을 차마 꺼낼수가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나라의 위기였다.
“신관들과 기사들의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서로 반목하다 상황이 악화 될까 두렵습니다.”
“목숨을 앞에 두는데도 뭐가 중요한지 모르는 이들이라면 차라리 신에게 돌아가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비올렛의 말에 결국 체자레가 웃음을 터트렸다. 비올렛은 갑자기 큰 목소리로 웃음을 터트리는 체자레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지만 사실이 아닌가? 왜 신관들은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일까. 에셀먼드를 보았더니 에셀먼드 역시 비올렛을 보다 고개를 돌렸다. 체자레의 웃음소리가 적막한 회의장을 압도했다.
“죄송합니다 성녀님, 너무나 옳은 말씀을 하신지라.”
체자레는 그림으로 그린듯한 미소를 지었다.
“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국왕폐하를 직접 설득하실 생각입니까?”
비올렛은 그 말에 말을 할 수 없었다. 이것이 성녀의 역할이라면, 역할이었다. 왕과 교황의 사이 가운데에 서서 그들을 중재하는 것이 대대로 내려온 성녀의 역할이라면 가는 것이 옳았다.
“아니요, 저는 바로 저길 가겠습니다.”
그러나 한시 빨리 저곳에 가서, 크리처들을 없애는게 옳았다. 그 예전 역병 사건으로 인해 비올렛은, 더 이상 소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신전에게 이용당하지 않는 선에서 그녀는 나설 것이다.
“추기경이 가시지 그럽니까.”
“제가요? 제가 간다면 국왕폐하는 이야기도 듣지 않고 도움을 거절하실겁니다. 절 매우 증오하시는 분이라서요.”
그는 웃으며 엄청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비올렛이 당황했다.
“차라리 제가 보상을 요구한다면, 국왕폐하는 허락하실지 모릅니다. 확실한 목적에 따른 행동은 보는 이로 하여금 확실한 신뢰를 가지게 하니까요.”
체자레가 속삭였다. 도움을 요구한다는 것은 신전과 국왕이 반목한 이래 한번도 없던 일이었다. 그런 의미모를 찝찝한 도움보다는, 보수가 더 납득이 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또 보상을 요구하며 국왕과의 관계를 악화시킬수는 없지 않은가?
“신전에 적임자가 있소.”
교황이 말했다.
“누굴 말하는 겁니까, 성하.”
체자레가 대답했다.
“그것을 내가 말해야하오? 그대라면 바로 알텐데?”
그 말에 체자레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기는 듯 하다가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비올렛은 인상을 찡그렸다. 누굴 말하는 것일까?
“아아, 그를 보내실 생각일 모양이군요.”
“그렇소.”
그들의 사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비올렛은 그들을 보고 있었다. 신관들을 보니 그들도 마찬가지 인 듯 했다.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난 듯 했다.
*
비올렛은 준비를 하고 있었다. 린도가 적임자가 있다 하니, 그것을 믿어보기로 했다. 허리춤에 검을 차면서, 이런것을 예감이라도 해서 그동안 연무장을 갔었던 건가. 생각했다.
“비올렛.”
린도가 비올렛을 찾아왔다. 린도는 교황의 성복이 아닌 또 신관복을 입고 있었는데, 어딘가 여행이라도 떠날 채비였다.
“린도, 어디 가?”
비올렛의 물음에 린도가 말했다.
“적임자 말이야.”
“응?”
비올렛이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바로 나거든.”
“뭐?!”
비올렛이 소리쳤다. 린도가 비올렛의 반응에 키득대며 웃었다.“
“무슨 말을 하는거야.. 너.”
“내가 가서 설득시키고 오면 돼. 추기경이 가면 정말 악화될거야. 추기경이 이곳에 남아서 성도를 지키고, 나는 끌어오겠어. 내가 가는게 비올렛 너도 안심아니야? 왕국군은 나랑 같이 있으니 안전할걸.”
“
린도의 말이 맞았다. 게다가 린도가 가는게 가장정확했다.
“하지만 왜 교황으로서가 아닌 신관으로서 가는거야.”
“사실 내가 교황이라는걸 드러내고 싶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잖아? 교황이라는 걸 드러내서 후폭풍으로 정신없는 것 보다 그냥 내가 날 모시는 신관들을 데려가는게 더 나아. 혹여 무슨일이 있더라도 내 선에서 해결이 될거야.”
비올렛은 린도를 바라보았다. 린도는 황금색 눈을 반짝이며 빛내고 있었다.
“다 비올렛이 원하는거잖아?”
“응?”
“비올렛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걸 나도 알아. 그리고 나는 그런 비올렛의 마음이 좋아. 그래서 지켜주고 싶어.”
린도가 비올렛의 손을 잡아 끌더니 뺨을 부볐다.
“내가 생각하는 낙원에는 모두가 다 행복해졌으면 해. 그렇지만 사람이 적으면 역시 재미가 없어. 그렇지 비올렛?”
황금색 눈이 비올렛을 향했다. 예전 비올렛보다 약간 키가 작았던 소년이 이젠 비올렛을 내려다보고있었다. 부드러운 미소에 얼굴이 빛나고 있었다. 린도는 확실히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 투명한 순수함이 비올렛의 눈에는 보였다.
“내가 이런말 하면 이상하겠지만 역시나 나는 사람들이 죽는게 싫어.”
“........”
물론 비올렛, 널 괴롭히는 사람들은 제외하고 말이야. 그가 속삭였다. 비올렛은 린도가 에이든의 나이,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그 나이대의 소년으로 보였다. 린도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자 비올렛은 린도가 보였다. 생각해보면 그는 자신의 사람에 대해 친절한 편이었다. 에셀먼드가 신전기사단에 검을 휘두를 때도 화를 내기까지 했다.
“그러면 왜...?”
비올렛이 말에 린도가 대답했다. 그는 비올렛이 왜 그런데 그동안 가만히 있었어? 라고 말하고 싶어했던것을 알고 있었다.
“난 추기경을 무척 좋아하거든. 비올렛 널 좋아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말이야.”
뺨을 부비던 린도가 비올렛의 손바닥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뜨거운 입술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나 좋아해 줄 수 있는거지?”
린도가 되물었다. 비올렛은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언제나 원하던 애정이 어딘가 색을 달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금안은 누군가를 떠올리게했다. 이자카, 그래, 이자카 처럼 말이다.
============================ 작품 후기 ============================
후 오늘좀 용량 많다. 뿌듯뿌듯. 다른것도 얼른써야하는데...
저번편 반전에서 많이 놀라셔서..넘나 뿌듯하긴 개뿔..
여러분 후제꽃 별명 순서 제가 시기별로 정리해봤어여
고구마물->발암물->성장물->피폐물->좀비물->공포물
*주의: 본 소설은 '로맨스 판타지'장르입니다.
내 친구가 보면서 깔깔웃었네여...후 담편부터 이제 우어어어어어엉
으으어어어어 어어어어어 가 나오겠구나...
(알아서 해석바람니다.)
오늘은 마법의 고통에 너무 힘들었어여 ㅠㅠ 그래서 글도 참느리게썼네여 ㅠㅠㅠ
아이고 다시 빠른 금잔화로 돌아가야 하는데 어휴
여러분 감기 조심하세요(뜬금
사랑합니다아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