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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핀 제비꽃-129화 (122/208)

00129  제비꽃, 피어나다  =========================================================================

“너 왜 몸을 성장시켰어?”

비올렛의 물음에 린도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몸을 일부러 성장시킨 게 아니야, 몸이 커진 거야 비올렛, 아무리 나라도 매일 내 모습을 속이는 건 힘들어. 진짜 모습이 자란거야 신기하지?”

그러니 그 소년의 몸이 커졌다 이런 말인가. 비올렛은 린도의 얼굴을 보았다. 길어진 은발과 날카로워진 눈매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넓어진 어깨 역시도. 이젠 여성적인 아름다움은 사라졌으나 여전히 모두를 매료시킬만한 아름다움이었다. 하지만 저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건 그녀의 착각일까. 린도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존재다. 체자레가 다른 이유로 알 수 없어 께름칙했다면, 린도는 마음은 알아내긴 비교적 쉬웠지만 그 외적인게 비밀 투성이이었기에 또 다른 거부감이 들었다. 더군다나 가장 큰 이유는 린도 그 자신마저 그것을 숨긴다기 보다는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 더욱 컸다. 왜 린도는 성장이 멈춘 것일까? 왜 체자레역시 그런 것일까. 그리고 왜 엄청난 성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비올렛.”

린도가 아름다운 손가락으로 비올렛의 창백한 뺨을 쓸었다. 뺨 위로 느껴지는 그의 손가락은 따뜻하고 보드라웠다. 행위에 집중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황금빛 눈동자가 제법 진지한 빛을 머금었다.

“에셀먼드 경에게 자세한 이야기는 들었어. 다시는 그러지 마.”

그는 뺨을 만지던 손을 내리며. 비올렛의 손등을 보았다. 손등 위에는 에셀먼드와 그녀의 계약의 인이 있었다. 슬며시 에셀먼드를 보자 에셀먼드는 그 뒤에 물러나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자신들을 보고 있을까?

“뭘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거야?”

그녀의 말에 린도가 말했다.

“네가 지금 하고 있는 거 말이야. 다음부터는 나를 불러. 내 이름을 대. 네가 비난 받는 건 이제 지긋지긋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비올렛이 린도를 올려다 보았다.

“넌 나와 달리 똑똑하니까 모든 걸 철저하게 계획했던 거겠지.”

린도가 다시 손을 올려 비올렛의 등뒤로 늘어진 머리카락을 쓸었다.

“그거 알아? 네가 일이 해결되자 마자 끝난것도. 네가 성력으로 너에게 온 그 병을 누르고 있어서야. 네가 일부러 천을 안두른 것도 알고 있어. 나는 알아. 네가 했던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

비올렛은 그 태도에 그제야 그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린도는 그녀가 어떤 일을 했는지, 왜 그러한 일을 했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기분 탓일까. 그에 린도에 대해 가졌던 적개심이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마. 다음부턴 그런 상황이 없도록 내가 노력할게. 알았지?”

그녀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간절해 보였다. 비올렛은 그녀의 태도에 또다시 그가 상처받은 표정을 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린도는 그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것은 상처받은 이의 얼굴보다는, 예상하고 있던 반응에 대한 씁쓸함이었다.

“네가 그때 내게 했던 말, 하나도 잊지 않고 있어.”

“응.”

그 말에 비올렛이 대답했다. 대답이라도 했다는 것이 긍정인 신호라는 것을 알아 차린 건지 린도가 비올렛의 눈치를 힐끔 보다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미안해 비올렛. 네가 그렇게 되었던 건 나 때문이었어.”

“.......”

비올렛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린도가 말했다.

“그 마을출신 고아들은 데려온 의원들에게 교육받기로 했어 또 어린 하급 신관들도 의료는 필수적으로 배울 거야. 그렇게 하도록 명령했어. 역병에 망해버린 마을은 어쩔 수 없지만 신관들을 파견해서 재건을 최우선으로 삼을거야.”

“그래.”

더할 나위 없는 결정이었다. 비올렛은 내심 린도의 상식적인 결정에 깜짝 놀랐다. 여느때와 같이 추기경이 알아서 잘 할거야. 라는 말이 없었다는 것도. 그러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성력이 안듣는 탓이라 솔직하게 말했어.”

“뭐?”

린도의 말에 비올렛이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어차피 모든 게 끝났으니 말을 해두는게 좋을지도 몰랐다. 그들도 성력이 완벽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했다.

“그런데 우스운 게 뭔줄 알아? 아무도 우리가 무력했다는 것을 말하는데도. 그들은 우리가 무능하다는 것을 믿지 않았어. 아니 듣지를 않았어. 분명히 그들이 살았던 것이 네 덕분이라 말하는데도.......”

비올렛이 쓰러지고 의원 한명과 신전에 실려가고 나서 린도는 자신이 직접 사후처리를 맡았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신은 교황이며, 사람들은 비올렛 덕분에 목숨을 구명한 것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가 교황이라는 것 이외에 어느 것도 믿지 않았다.

“성스러운 몸이 이곳에 강림하사, 우리가 구명 받나이다.”

사람들은 무릎을 꿇으며 기어와 린도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린도는 그들을 내려다 보았다. 그는 차갑게 말했다.

“치워라, 너희들을 구명한 것은 성녀이니라.”

린도의 말에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릎을 꿇은 채 신을 부르짖으며 신에게 구원받았노라 눈물을 흘렸다. 비올렛이 그렇게 냉정하게 신에게 버림받았다 이야기 했다. 그러나 교황인 것을 밝혔다고 이들은 또 다른 구원자의 등장에 기뻐했다. 성력이 통하지 않아 의원을 불렀다 말해도, 교황이 의원을 불러온 행위 자체가 ‘신의 뜻’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 논리는 통하지 않았다.

린도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비굴할 정도로 찬양하며 숭배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불편했다. 사람들의 열정적인 시선이 그를 따라붙었다. 아니었다. 그가 바라던 것은 이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런 행복을 가지길 원하지 않았다.

이들은 신을 믿는게 아니다. 그저 신을 믿고싶어하는 것이다. 비올렛이 그들의 입장에서 ‘실패하며’ 대체제인 린도가 나타나니 린도를 구원자로 떠받드는게 그러하였다

이러한 사람들을 누가 만들었는가. 저 무지한 자들을 누가 무지하게 만들었는가 신관들도 추기경도 아니다. 그들을 이렇게 만든 것이 자신이었다. 그저 그들은 그들이 믿고 있던 신이라는 존재가 무력하길 바라지 않는 것이다. 그 사실을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린도는 마을에서의 상황을 생각하며 비올렛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꽉 막힌 곳에서 며칠동안 힘든 사투를 벌여왔을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비올렛 역시 린도의 씁쓸한 표정을 보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 대해 알아차렸다.

“내 걱정은 하지 마. 어차피 말룸을 없애면 손바닥 뒤집듯이 바뀔 사람들일테니.”

애초에 사람에 대한 기대따윈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에 신경써주는 린도가 새삼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린도는 입술을 깨물었던 것이다.

“비올렛, 나 정말 반성했어.”

“........”

그 말에 비올렛의 하늘색 눈이 그를 향했다. 투명한 하늘색 눈과, 황금색눈이 얽혔다.

“나 앞으로 더 노력할게. 이젠 추기경에게 일도 그만 떠맡기고, 나 혼자 서려고 노력해볼거야.”

“........”

그렇게 말하던 린도가 비올렛의 손을 꼭 쥐었다. 그 손은 왼손, 계약의 인이 없는 손이었다. 노력한다고 말하는 그의 시선은 이전과 다르게 텅 비어버린 듯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나 소원하나만 들어주라........”

“소원?”

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자신이 바뀌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대가를 왜 비올렛에게 요구한단 말인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서서히 기분이 나빠지던 비올렛이 뭐라고 하려던 찰나. 린도가 깨물던 입술을 열고 말했다.

“그러니까 비올렛, 나 이제 그만 미워하면 안 돼?”

또 그 말이었다. 비올렛은 그 말에 너무 어이가 없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겨우 소원이랍시고 빌었던 것이 겨우 자신에게 미움받지 않는 것이라니. 이상했다. 황당해서 그것이 진실이냐고 물어보려 했지만 저 겁먹은 듯하면서도 진지한 눈빛이 알려주는 것은 그가 진심으로 그것을 바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한 나라의 교황이 지금, 성녀에게 미워하지 말아 달라 애걸하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린애같다 생각했더니 참으로 어린애 같지 않은가?

비올렛은 린도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했다. 린도는 다른 사람들과 접촉했던 횟수가 적었다. 그는 하얀 신전에서 자신만을 기다렸노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무지했던게 아닐까. 자신 역시 마찬가지이듯 말이다.

비올렛은 웃음을 터트렸다. 린도는 자신의 앞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웃은 비올렛을 보며 오히려 당황해하고 있었다. 방 안에 있는 두 남자의 시선이 활짝 만개한 제비꽃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아냐, 사실은 미워했던게 아니라 화가났던거야. 널 미워하지 않아 린도.”

비올렛의 말에 린도의 얼굴이 환하게 물들었다. 그 얼굴의 변화에 비올렛은 자신의 추측이 맞다고 깨달았다. 린도에게는 자신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린도는 이렇게 자신에게 매달리는 것이다.

“정말 날 미워하는 게 아니야?”

비올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린도는 애녹시 글로리의 등을 처음으로 날려보는 아이의 얼굴처럼 환하게 물들었다.

“그러면 다시 다른 소원으로 바꿔도 돼?”

“이번엔 뭔데?”

린도가 비올렛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내가 더 노력하면 날 더 좋아해 줄 수 있어?”

비올렛은 웃음기 어린 얼굴로 말했다.

“그래.”

그 말에 린도의 얼굴이 밝아졌다.

*

린도가 신이 나서 나가고, 에셀먼드가 비올렛을 보았다. 무슨 할 말이 있나? 에셀먼드를 보았지만 그는 그 특유의 표정으로 속내를 감추었다. 일어나니 몸을 씻고 싶었다. 비올렛은 리체를 불렀다. 리체는 오랜만에 깨어난 자신의 주인의 목욕시중을 들어주며 그동안 신전이 얼마나 조용했었는지, 얼마나 사람들이 슬퍼했는지 떠벌거렸다.  리체의 수다를 들으며 몸을 씻어내리자 마음이 개운해진 것같았다.

아직도 무거운 마음이 가라앉지는 않았다. 꿈 속에서 역병을 퍼트렸다는 그 신의 모습이 아직도 떠올랐다.

이것은 그녀가 린도에게 말을 했어야 했던 것일까? 아니면 체자레에게 말이라도 했어야 했나? 아니 말을 했어야했다면 이젠 린도에게 말해야 한다. 이곳의 최고 지도자는 린도였으므로, 그녀 역시 린도를 존중해야만 했다. 생각해보니 비올렛마저도 린도가 아닌 체자레를 실질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룸이 다가온 것일까. 점점 시간이 다가오는 것은 느껴지는데, 말룸이 온다는 징조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다. 역병이 그 징조인 것일까?

그녀는 에셀먼드와 같이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이제 초여름에서 완연한 여름으로 바뀐 정원은 푸른 잎사귀들이 그 생명을 불태우고 있었다.

비올렛은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겨우 역병처리만 했고 사후 처리도 하지 않았음에도, 무거운 마음과 홀가분한 마음이 공존했다. 에셀먼드 쪽을 보니, 그는 다른 곳에 생각이 팔려 있는 것 같았다.

“경?”

비올렛이 먼저 말을 건네자, 에셀먼드가 비올렛을 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말을 걸었던 비올렛은 어물어물 했다. 비올렛의 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에셀먼드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적어도 30년은 더 살았던 사람입니다.”

“네?”

무슨 말을 하는거지?

“제가 태어날 때 부터 있었던 사람입니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자 입니다.”

그녀는 에셀먼드가 린도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너무 마음을 내 주진 마십시오.”

그 말에 비올렛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비올렛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녀와 에셀먼드는 한참을 말없이 걸었다. 우선 너무나 넓은 이 교황성의 정원을 거닐었다. 그러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린도가 예전 끌고갔던 새들이 많은 숲을 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들을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 그쪽으로 발걸음을 했다.  그녀는 못마땅해 하는 에셀먼드를 입구에 세워두고 새들을 부를 수 있는 공터를 향해 오솔길을 걸었다.

“어.”

이미 공터는 새들로 가득 차 있었다. 비올렛은 발걸음을 멈추고 공터에 서 있는 사람을 보았다. 그녀는 순간 그가 린도라 착각할 뻔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알 수있었던 것은 멀리서 보여도 보이는 그의 붉은 머리카락 색 덕분이었다.  긴 붉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새들이 그의 손가락에 어깨에 앉아 재잘거리고 있었다.

체자레는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 미소가 속에 어두운 것을 내재한 어떤 것이 아닌, 그저 순수하게, 짓는 웃음이라는 것이 이상했다. 그는 아이처럼 천진하며, 순수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순간 그의 모습이 너무나 선해보였다.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훔쳐보려고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훔쳐보는 기분이 들었다. 비올렛이 뒷걸음질 치며 다른곳으로 향하려 하자 그가 고개를 돌렸다.

“어딜 가십니까?”

체자레가 그녀를 불렀다. 체자레가 그녀쪽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체자레의 미소가 달라졌다. 아이의 천진한 미소는 온데간데 없이, 어딘지 모르게 사라질 것 처럼 아련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비올렛은 체자레의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의아했다.

“몸이 다 나으셨나봅니다. 이리 오십시오. 비올렛.”

그리고 다시 지어지는 미소. 이젠 아이의 천진한 미소도, 어딘지 모르게 씁쓰레한 웃음도 사라졌다. 지금의 미소는 비올렛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미소였다.

============================ 작품 후기 ============================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향할때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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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처가 없어서 포장만하고 택배를 보내지못하였음니다. ㅠㅠ

2. 여러분 드디어 제 수족냉증을 해결할 난로를 찾았습니다.. 바로바로바로 발디어요!!

라는난로인데 책상까지 따숩게해줘 제 손이 따스합니다..넘나 좋아요 ㅠㅠ 이거 제 인생템임

3. 후..오늘 열한시 반까지 오늘 분량 못채우면 트위터에서 노래부를 각이었는데 다행이 써서 올리네요. 트윗 아이디는 @MsG2387이랍니다 언제든지 팔로 걸어주세요.. 제 개드립을 볼수있답니다.

오늘하루도 너무 감사드립니다. 격일연재라 죄송합니다. 되도록이면 빨리 일일연재로 복귀하도록 할게요 ^0^

후제꽃은 큰 변수가 없으면 2월말, 또는 3월초에  완결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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