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8 제비꽃, 피어나다 =========================================================================
“괜찮아.”
엉엉 울고 있는 비올렛을 향해, 여자가 다가가 가만히 감싸주었다. 우는 것은 간만의 일이었다. 비올렛은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여전히 눈을 감은 여인은 포근하게 비올렛을 감싸주었다. 악취는 계속해서 비올렛의 코를 찔렀다. 왜 악취가 나는 것일까. 그 누구보다 성결해 보이는 저 신이라는 존재에게서?
“비올렛,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뭐가 괜찮다는 거에요!”
괜찮지 않다. 여자애는 이미 죽었으며 사람들은 그녀를 비난하겠지. 그런것을 괜찮다고 넘길수 있을리가 없다. 오해받고 미움받는것은 지긋지긋했다. 꿈 속에서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 그녀는 마음껏 울었다. 그렇게 우는것이 마치 도움이 되는 것 처럼. 여자는 그렇게 우는 비올렛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 울음 자체에 연민을 가지다가도 그것이 더없이 사랑스럽다는 듯이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널 탓할 필요 없어, 네 잘못이 아니야.”
“알아요, 나도 안다고요!”
노력 할만큼했다. 하지만, 그러나, 만약이라는 가정은 몇번이고 비올렛에게 그녀 스스로를 몰아갈 빌미를 주는 것이다. 스스로를 탓할 이유가 전혀 없다. 남들이 이런 사정이었다면, 아주 당연하게 너는 최선을 다했노라 말할 것이다.
“그 역병을 보낸건 나란다.”
그 말에 비올렛의 피가 싸악 식어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을 품에 안은 여자를 밀쳐내며 비올렛이 말했다. 여태껏 그녀를 신이라고 부르면서도 신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그녀는 신이었다. 그 역병을 보낸게 ‘나’라니? 어떻게 그럴수가 있단 말인가. 그 자애로워 보이던 사람이 맞는가?
“정말로 신이셨군요.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러신 거에요? 왜 이런 병을 보내신거죠? 제가 고통스럽기를 바라신건가요?”
비올렛이 분노하여 소리치자 여인은 그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눈을 감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그 병을 퍼트린건 어쩔수 없는 일이었단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요?”
그리고 그 차분함이 비올렛을 더욱 더 자극했다. 이 여자는 이상하다. 신인데, 신이 아닌것같았다. 슬퍼 보이는 그 얼굴을 보며 신에 대한 존경일까.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비올렛은 계속해서 하고싶었던 말을 말했다.
“신에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게 도대체 어디있죠? 사람들이 죽는게 어쩔 수 없는 일인가요? 아니면 또 뭔가 제가 헤아릴 수 없는 깊은 뜻이 있었나요? ”
여자는 아무말 없이 비올렛의 얼굴을 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여자의 얼굴은 푸르스름한게 유난히 창백해 보였다. 그녀는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 깊은 뜻을 위해 도대체 몇명이 죽어야 하죠? 전지하고 전능한 신께서는 왜 제게 의무를 주었던 건가요! 왜 나를 선택한거예요 안그랬어도 됐잖아요!”
그녀의 말은 통곡이 되었다. 이상한 무게에 짓눌린채 발버둥 치는것도 너무나 지겹다. 그녀의 인생은 산적들에게 습격당했을때나, 꽃의거리에서 끝났어야 했는지도 몰랐다.
“네가 최고의 선택이야.”
그녀가 서글프게 속삭였다. 무엇이 최고의 선택이란 말인가. 기록상의 성녀들이 빛을 흩뿌릴때 비올렛은 언제나 의심당하고 배제당하며, 소외당하며 경멸받았다. 전대 성녀들이 어렵지 않은 일들이 비올렛에겐 어렵게 느껴졌다. 여자는 비올렛이 우는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을 울고 있던 비올렛이 고개를 들자 여자는 사라졌다. 그래도 왜인지 느껴지는 허전함에 주위를 둘러보니 푸른 초원의 색이 갈색으로 바라져 있었다. 새파란 하늘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붉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을때 비올렛은 눈을 떴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는 신전 안의 자신의 방에 돌아와 누워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몸이 젖은 솜처럼 눅눅히 가라앉아 무거웠다. 입안이 모래알을 삼킨 것 처럼 까끌거렸다. 또한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누워있던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얼마나 잠들어 있던 것일까. 일어나기 버거웠지만 몸을 움직일만했다. 그와 동시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에셀먼드였다. 어떻게 깨어난 줄 알고 노크를 한 것일까.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신전에 돌아와서 시간이 꽤나 지났는지, 에셀먼드역시 지저분한 옷을 깔끔하게 갈아 입은채로 서 있었다.
문가에 에셀먼드는 말없이 서서 비올렛을 보고 있었다. 문득 자신의 얼굴이 이상한가 비올렛은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깨어나신 줄 알았습니다.”
에셀먼드의 목소리는 잠겨있던듯 갈라졌다. 어떻게 안 것일까? 묻는 듯한 시선으로 그를 보니 에셀먼드가 자신의 손등을 가리켰다. 이런 것 정도는 감지가 가능하구나. 머리가 띵하게 아파 이마를 부여잡았다. 에셀먼드가 그녀가 앉아있는 침대로 다가가 허물어지려는 몸을 부여잡았다. 이마의 두통이 어느정도 진정이 되자 비올렛이 물었다.
“사람들은, 경, 사람들은 무사한가요?”
그 말에 에셀먼드가 비올렛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뭐지, 뭔가 안좋은 결과라도 나온 건가? 어쩐지 긴장이 되어 그의 얼굴을 보자 그가 조용히 대답했다.
“.......무사합니다. 역병은 모두 치료 되었습니다.”
아. 다행이다. 비올렛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사람들의 절반이 죽어버렸지만, 그래도 나머지들은 살아서 어떻게든 마을을 재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비올렛은 죽어버린 한 소녀를 떠올렸다. 갑자기 그 소녀의 얼굴이 떠오르자 가슴이 아릿해졌다. 비올렛은 침대위의 시트를 꼭 쥐었다. 묵직한 후회가 밀려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눈물은 현실에서도, 꿈속에서도 많이 흘려 더이상 나오지는 않았다. 멍하니 모은 손만 바라보고 있는 그녀에게 에셀먼드가 조용히 말했다.
“역병에 걸리셨었습니다.”
걸릴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다른 이들, 심지어 에셀먼드마저 입을 헝겊으로 막았지만 오로지 비올렛만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거기서 그녀까지 그런 행동을 했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불안해 했을거라는 판단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어차피 금방 나았겠죠.”
딱히 아팠던 기억도 없었다. 어차피 금방 나았을 터였다. 꿈속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생생했다.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끝나지 않는 악몽의 지속이 된다. 언제까지 이런 꿈을 꾸는 것일까. 꿈속의 여자가 역병을 퍼트린 것이 정말로 사실일까. 착잡한 마음으로 비올렛은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일동안이나 의식이 없으셨는데도 말입니까?”
에셀먼드가 말했다. 비올렛은 말없이 천장을 보았다. 오일. 그렇게나 오래 쓰러져 있었나. 꿈속에서 그저 울기만 했던 그 짧은 순간에 오일이 지났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혹시나 해서 여쭙니다. 성녀님께서는 자신이 병에 걸릴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계셨습니까?”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할까요. 그러나 죽지는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비올렛이 말했다. 죽지 않는 것, 그것이 진실이었다 어차피 아파서 몸을 뒤틀어봐도 고통은 사라지고 다시 평온이 찾아온다.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려도, 칼로 배를 무자비하게 찔러도, 이렇게 역병에 걸려도 죽을 수 없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두 번째 침묵이 찾아왔다.
에셀먼드는 포개어져 있던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까끌한 입술의 감촉이 손등에 닿았다 떨어진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비올렛은 그것을 막으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이 에셀먼드가 비올렛에게 맹세를 각인시켜 주려는 것임을 깨닫자 마자. 그녀는 자신이 무슨말을 해야 할지 깨달았다. 우선 끝까지 무언가를 책임지지 못하고 쓰러져 버려, 에셀먼드가 고생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아마 자신을 걱정했을 터였다.
“제가 쓰러져서 고생이 많았겠군요. 걱정을 끼쳐드려 미안합니다. 경.”
그 말에 갑자기 에셀먼드의 손에 여전히 잡혀있는 손등이 따끔했다. 계약의 인이 있는 부분이 따끔한 것이었다. 이게 갑자기 왜 그런 것일까. 손등을 보니 입술이 닿았던 계약의 인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왜 그런 것일까. 그것을 물끄러미 보다 에셀먼드를 보니 에셀먼드의 얼굴은 언제나 처럼 냉정해보였다. 아니, 그래, 냉정을 가장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어쩐지 그렇게 느껴졌다.
“혹시 화가 나신건가요?”
입술에 뭐라도한 것일까. 따끔 따끔한 감촉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에셀먼드가 비올렛을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제가 어떻게 화를 낼 수 있겠습니까?”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의미가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았다. 화가 나지 않았다는 말일까? 아니면 화를 내고싶어도 낼 수 없다는 뜻인건가.
“이젠 당신에게 화를 낼 수 없습니다.”
그는 그렇게 대답하며 손을 놓았다. 따스한 감촉이 사라진 손이 허전함을 느꼈다. 바로 눈 앞에 있는 에셀먼드의 얼굴이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 했다. 비올렛이 도대체 왜 그러냐 물어보려고 한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노크도 하지 않은 이 침입자에 대해 에셀먼드가 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 무법자가 누군지는 비올렛도 에셀먼드도 예상하고 있었다.
“비올렛!"
그러나 들어오는 이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면서 낯설었다. 비올렛은 에셀먼드듸 등 뒤까지 다가온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어.”
비올렛이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된 조화일까.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온 이의 모습을 보았다.
“이제 깨어난거야?”
“........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본다. 그러나 그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비올렛?”
단발이던 은발이 약간 더 자라있었다. 거의 보이지 않던 목젖이 툭 튀어나와 잇었다. 어깨역시 더욱더 벌어져 있었다. 중성적이던 아름다운 외모역시도 어딘지 모르게 남성스러워졌다.
“린도?”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황금색 눈에 미소를 머금었다. 열 여덟살? 마치 에이든 또래의 연경으로 보인다. 새하얗고 긴 손가락이 비올렛의 볼을 향한다. 커다란 손은 비올레의 뺨을 가렸다.
“깨어났구나, 이제 다 나은거지?”
마치 비올렛에게 아무런 말도 듣지 않은 것 처럼 그는 순수하게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쓰러지기 전에 린도에게 돌이킬 수 없도록 화까지 낸 비올렛이 당황했다. 언제나 흐릿해보이던 눈이 가진 시점이 또렷해졌다. 어쩐지 이렇게 눈을 마주한 것이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올렛.”
“...린도 너.”
“응, 비올렛.”
말투는 그대로였지만 너무나 많은게 달라져 있었다. 영원한 소년으로 남아 있을 것 같던 린도는 훌쩍 자라있었다.
“다행이다.”
린도가 말했다.
“다행이야, 비올렛. '너'를 정말로 많이 걱정했어.”
외모가 바뀌었기 때문일까, 눈빛이 달라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더 깊어진 목소리 때문일까. 어딘지 모르게 그 말이 다르게 느껴졌다.
============================ 작품 후기 ============================
추천을 해주시면 제가 힘이나여~
왜 용량이 작냐고요? 날려먹었거든요 ㅎ...ㅋ.... 망알..아래아한글..
수족냉증 손시려운거 꼭 참아가며 20키바를 섰는데 인생의 농간임 신의 농간! 더 쓸수 있는데
파멸적으로 글을 쓰는걸 거부해서. 이만큼 쓰고 올립니다.
네 여러분 이번 편 너무 중요한거 몰빵아닌가여 인간적으로?후.
린도가 자랐음니다. 드디어.
우리 똑순이 독자님들은 이미 다 아시고 계시겠지만 굳이 제가 첨언하자면
린도는 성녀 덕후 근데 그 성녀가 비올렛이라 성녀 비올렛덕후에서 드디어 비올렛만을 보기시작했어요!
그리고우리 기사님은 비올렛을 보며 화도 못내시고. (왜 화를못내는지는 에드시점에서 다룰예정)
사실 오늘 체자레랑 만나는 장면까지 나왔는데.. 스승과 사제의 오랜만의 대화인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빨리 한글을 원망하고 저주해주소서..
오늘 상품만들려 했는데 넘나 추워서 못만드러써여 ㅠㅠ 젠장 일어나자 마자 만들어 택배를 보낸다(그리고 또 화요일에 보낸다)
수더수 외전집때문에 바빠서 이제 격일연재모드 들어갑니다. 내일모레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