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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핀 제비꽃-127화 (120/208)

00127  제비꽃, 피어나다  =========================================================================

비올렛이 신전을 출발했을때, 린도는 단단히 화가났는지 그 무엇도 도와주지 않겠노라 선언하고는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어차피 그럴거라 예상은 했으므로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그저 그 유치함이 기가막힐 뿐이었다. 다만 비올렛 덕분에 역병 구역으로 파견된 중급신관과  신전기사단들이 지척까지 같이 동행했기 때문에  성녀로서 정체를 숨겨야 한다던가. 에셀먼드와 단 둘이 있어 곤혹스러운 상황은 없었다.

말을 타고 오며 역병에 불탄마을 몇개를 보았다. ‘검은 사신’이라고 불리는 병은, 발병하면 고열이 계속되며 땀을 흘린다. 때때로 구역질도 하게 된다. 사흘이 지나면, 그 사람은 더이상 고통 받지 못하게 된다. 이미 그 사람의 몸에 고통을 느낄 생명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을 전해 들은 비올렛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하급 신관들도 떼죽음을 당했다고 하던데, 그만큼 강한 성력이 필요한 것인가? 원래대로라면 소거될 마을이었다.  성녀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도 아니고, 교황과 대립각을 세우기 위해서도 아니다. 성녀라는 지위와 직함을 가지고도 언제나 목표의식없게 살아왔으나 그래도 소위 말하는 높은 사람들의 결정에 아랫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두고볼 수 없었다.

비올렛은 이 일만은 무슨일이 있어도 실수 없이 완벽하게 끝내겠다고 다짐했다. 다행히 그녀의 몸은 건강했다. 성력을 발휘하는데 문제는 없을거라 생각했다. 오히려 모든 일이 끝나면 다른 마을까지 들려 사람들을 치료할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역병을 겪어본 적은 없었으나, 죽음이라는게 사람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마을 안을 들어가니 성녀가 온다는 통보를 미리 받은건지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비올렛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이 그녀가 읽었던 책과는 전혀 다른 대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작가에 있었을 당시에 읽었던 책에서 역병의 나쁜 기운은 드러난 신체, 특히나 얼굴을 통해 전해지므로 역병이 일어난다면 사람들은 입을 막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에셀먼드역시 똑같은 생각을 한건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그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이 죽어가는 마을에서 사람들은 이런 기초적인 행동도 안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저 비올렛이 오니 그것만으로도 살았다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차려진 식사는 지나치게 화려할 정도였다. 어렸을적 마을에서 살았던 비올렛은 잘 안다. 이사람들은 무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보급품따윈 가져오지 않았음에도 이러해도 되는 것인가? 비올렛의 표정이 좋지 않자 사람들이 걱정하는 듯 서로 눈치를 보며 죄송하다고 앞으로는 입맛에 신경쓰겠노라고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저 그것이 성녀의 자비라 생각하는 듯 했다.  비올렛은 알 수 없는 갑갑함을 느꼈다.

문제점은 이뿐만이아니었다. 병에 걸린 사람들. 역병은 병에 걸린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모아서 구분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이 사람들은 환자들을 집에 놔두고 같이 생활하고 있었다. 비올렛은 옆에 서 있는 에셀먼드를 보았다. 에셀먼드가 바로 눈을 마주한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품은 의문이 합당하다는 뜻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지시한것이다. 환자들을 모두 신전에 모아두게 했다. 사람들은 신전에 감히 더러운 역병환자를 두라는 사실에 놀랐으나 그것을 명령하는게 다름아닌 비올렛이기 때문에 납득한 듯 했다. 사람들은 정말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환자들을 옮기는 것을 지켜보던 비올렛은 환자가 한명 있디는 외딴집에 들어갔다. 허름한 집이 마음에 쓰였기 때문이었다. 의식을 잃은채 누워있는 여자를 보고 비올렛은 자신의 성력을 사용했다.

“........”

뭘까. 비올렛은 움찔 했다. 성력은 분명히 그 여자의 몸안에 퍼져 나갔다. 그러나 안색의 변화가 없다. 똑같았다. 다시 한 번.

그러나 통하지 않는다. 비올렛은 집 밖으로 나섰다. 에셀먼드가 그녀를 뒤따라 왔으나, 그대로 서 있으라 하고, 다른 환자의 집에 들어갔다.

끙끙거리며 노인이 앓아누워있었다. 그녀는 이번에 있는 힘껏 성력을 써 보았다. 하지만 듣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누군가를 치료할때, 느껴지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비올렛은 그 노파의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다른집도, 또 다른 집도 들어가 성력을 써 보았다. 그리고 비올렛은 깨달은 것이다.

이 역병에, 성력은 통하지 않는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가 믿어오던 절대적 가치가 무너져 버렸다. 몸에 무엇인가 있나 생각해서 자신의 팔을 긁어 성력으로 치료해보았지만, 상처는 문제없이 사라졌다. 왜? 아니, 왜 라는 의문은 소용이 없다. 그것을 파헤치기에 이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생명력이 깎아 나가는 것이다.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한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이 병에 성력이 통하지 않는 이상 그녀는 그저 외모가 특이한 한 여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에셀먼드의 물음에 일단 비올렛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환자를 운반한 이들에게 손을 씻으라 말했다. 사람들은 비올렛의 말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손을 씻었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이 모두 기대라도 하는 듯 비올렛을 바라보았다.

살아남은 사람 아이를 포함하여 단 서른명 남짓, 그리고 예배당에 누워있는 죽어가는 사람들 오십명. 여자, 남자, 노인, 아이, 예배당의 단 위에서 아그레시아의 석상 아래에 선 비올렛은 이들을 내려다 보며 아찔함을 느꼈다.

자신은 이들을 구할 힘이없다.

살아있는 현신을 보는 듯 소망이 담긴 간절한 얼굴을 하고서, 사람들은 비올렛을 올려다 보았다. 하지만 비올렛은 기도를 명목으로 예배실로 들어가 버렸다. 초조함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손이 덜덜덜 떨렸다. 이 사람들을 구해내야 한다. 무슨일이 있어도. 하지만 어떻게? 비올렛은 기도실에 있는 신의 형상을 올려다 보았다. 욕설이 나왔다. 어떻게 하라고 이런 역병을 보냈단 말인가. 정말로 말룸이 나타날 징조이기라도 한 것인가? 하지만 기록상에 이런 병은 없었다. 아니, 발견되지 않은 것인가. 그녀는 손톱을 깨물었다.

기도실 바깥을 나섰다. 에셀먼드가 비올렛을 보았지만, 비올렛은 그 시선을 무시했다. 행여나, 에셀먼드가 이 사정을 알까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사정을 아는 것은 그녀하나만으로 족하다. 에셀먼드에게 부담을 줄 수는 없다 .

그러나 그와 반대로,  이 마을사람들은 비올렛이 성력을 쓰지 않음에도, 그저 기다리는 것이었다. 비올렛은 그런 사람들이 이상했다.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을까. 왜 그저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이러한 때에도 신을 모시는 신전은 깨끗이 해야 한다며, 건강한 사람들이 신전을 청소하는 것을 보고 비올렛은 착잡한 심정이었다.  저녁이 되고 나서 사람들이 잠을 자러 돌아갔다. 이 사람들은 간호라는 개념도 제대로 가지고 있지 않다. 방밖의 에셀먼드는 마을 지리를 파악하러 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그에 안심한 비올렛은 환자들이 모여있는 예배당을 향했다. 다시 펼쳐진 환자들을 보며 비올렛은 한숨을 내쉬었다.

“.......”

새하얀 신전. 자애로운 아그레시아의 석상 앞에 이렇게 신에게 버림받은 자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신에게 받은 힘이 소용이 없는 병이라면 이들은 정말로 신에게 버림받은 것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해야하지. 우선 비올렛은 빛이 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사람들에게 성력을 밀어 넣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무것도 안하는 것 보다는 나을것이기 때문이었다.

“성녀...님?”

비올렛은 자신을 붙잡은 가느다란 팔목을 보았다. 깡 마른 여자아이가 보였다. 기껏해야 여덟살 남짓한 소녀. 비올렛은 멈춰서 그녀의 옆에 꿇어 앉았다.

“성녀님이 해주신거에요? 몸이 좀 편안해..졌어요.”

“다행이구나.”

그래도 정말로 효력은 있었나보다. 비올렛은 소녀를 내려보았다. 지저분한 갈색 머리카락은 땀으로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더더욱 애틋했다. 그녀는 손을 들어 그 이마를 쓰다듬었다. 소녀는 흐릿한 눈으로 비올렛을 보며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내 잠들었다. 비올렛은 한숨을 푸욱 쉬며 성력을 환자들에게 일일이 주입시켰다. 병을 없앨 방법은 없다. 그저 이렇게 하는 방법밖에는. 일을 다 끝낸 비올렛이 예배당 바깥을 나설 때였다.

“경!”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에셀먼드가 그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푸르스름한 달빛이 에셀먼드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의 눈빛은 비올렛의 얼굴을 향해 있었다. 그 짙은 푸른 눈이 비올렛의 모든 것을 낱낱이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제가 성녀님께 저의 이야기 하듯, 당신도 이야기 해주어야 한다 말했습니다.”

힐난하는 어조에 비올렛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그는 무언가 이변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비올렛이 고개를 숙였다.

“애초에 당신이 생명을 가지고 시간을 끄는것 자체가 말이되지 않습니다.”

그 말에 담겨있는 신뢰에 비올렛은 입을 다물었다. 그 사건이 원인이 그저 비올렛의 마음이 아닌, 무슨 일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단정지어서 묻고 있었다. 흔들림 하나 없는 표정, 에셀먼드는 자신에게 털어놓으라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결 방법이 없다. 아마 이 사실을 알게된 에셀먼드가 무슨 말을 하게 될지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에셀먼드는 이유를 알 때까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방으로 가서 이야기하죠.”

비올렛은 에셀먼드가 후 하고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묘하게 안심하는 것 같은 숨소리라 잘못 들었나 했다. 방에 들어가 사람들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마자 비올렛이 말했다.

“성력이 통하지 않습니다.”

거두절미하며 본론부터 말하자 에셀먼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병에 성력이 통하지 않는 다는 말입니까?”

에셀먼드가 물었다. 비올렛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력 자체가, 먹히지 않습니다. 그저 조금 힘을 되찾게 하는 정도입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신성한 힘을 가진 성녀로서 이렇게 서 있는데 그녀의 힘이 무력하다는 것을 털어놓는게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에셀먼드는 그녀의 예상과 한치의 다를바가 없는 말을 하는 것이다.

“신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바로 이렇게. 신전으로 들어가 그녀의 무능에 대해 수치를 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였다. 성녀가 성력으로 이들을 고칠수 없으면 그 누구도, 심지어는 교황도 고칠수 없다. 신전으로 돌아간다면 의미는 딱 하나. 이들의 소거를 의미했다.성력이 듣지 않는다는 것은 신전의 무능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신전은 그 증거를 소각하려 할 것이다. 린도라면 몰라도 체자레라면 그럴 것이다.

“경.”

비올렛이 말했다. 에셀먼드의 얼굴은 단호했다.

“돌아가야 합니다. 성녀님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 이들이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그 위험으로 부터 나를 지키는게 경의 책무입니다.”

그녀가 날카로운 어조로 대답했다. 안다. 이성적으로도 그녀도 알고 있다. 신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것은 버림받는 다는 것을 의미했다. 병의 근원인 이 마을을 소거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어떻게 저들을 버린단 말인가. 비올렛이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사람들이, 병자들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을 잊지 못한다. 그것이 비록 지나쳤을지언정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비올렛이었다.

“제가 가면. 이들이 죽을걸 알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겁니까?”

죽음이 어쩔수 없다는 것을 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소를 어떻게 함부로 희생시키는가. 에셀먼드에게 그것이 쉬웠을 지언정, 비올렛은 그것이 너무나 어려웠다. 지금 그녀가 그 ‘대’라고 구분될지언정. 그녀의 본심은 언제나 소에 속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습니다.”

에셀먼드가 망설임없이 대답한다. 그 말에 그녀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래서 말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니까요.”

비올렛이 말했다. 화풀이를 하는 것인가. 무력감에 몸서리쳐진다.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마을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 외에는.

“성녀님이야 말로 아직도 자신의 자리의 위치를 모르십니다.”

“아뇨,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에셀먼드의 말에 비올렛이 말했다. 그녀의 위치는 지금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팔십 명의 기원이 지금 그녀에게 닿아 있는 것이다. 나아질 거다. 괜찮아 질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실겁니까.”

“방법을, 찾아볼겁니다.”

비올렛의 말에 에셀먼드가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러나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알고 있다. 그래서 말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답을 했다고 해서 그에 대해 원망이 들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버림받는 쪽의 입장을 모르고 있었다. 이럴때 마다 그녀와 에셀먼드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이다.

에셀먼드가 결국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혼자남은 비올렛이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버려야하나? 정말로 버려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녀를 잡은 소녀의 가느다란 손목의 감촉을 잊을 수 없었다. 비올렛은 한숨을 내쉬었다. 밤은 길었다.

다음 날이 되자 비올렛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간호를 ‘명령’했다.  그들은 찝찝한 표정이었으나. 비올렛이 시키자 어쩔 수 없이 했다.이들은 그 무엇이든 그녀가 시키면 할 것이다. 성녀가 있으니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했기에, 그녀의 명령 하나에 의문을 품어도 무슨 뜻이 있겠거니, 넘겨버리는 것이다.  지금 그러한 태도가 도움이 될지언정 저것이 진정 옳은 태도인가. 그녀의 눈치만 보며 행여나 심기가 상할까 그녀에게 치료를 재촉하지 않는다. 그저 눈빛, 그 기대에 찬 눈빛만이 다였다. 비올렛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곳에서, 비올렛은 절대로 떠나서는 안된다.

그녀는 이곳에 유일한 별, 희망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가치를 훼손시켜서는 안된다. 성력이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안다면, 사람들은 절망할 것이다. 이들은 신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다. 에셀먼드의 말과는 달리 이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들은 절망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으로 이 마을을 멸망하게 만드는 것이리라.

해보자. 성력을 계속 주입시켜보자. 어쩌면 나을지도 몰라. 절망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비올렛은 틈이 날때마다 성력을 주입시켰다. 성력을 제대로 감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빛이 터져나오지 않게 손으로 계속 밀어 넣었다. 생명력은 아주 조금 회복되고 심하게 깎여 나갔다. 결국 이들의 죽음은 그저 늦추는 것 만이 가능한 것이다. 둘째 날의 새벽까지도 비올렛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만 사람들은 삼일이 넘겨 죽어야 할 사람들이 살아있다는 것에신의 의지가 이곳에 있다며 기뻐할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역병은 입을 막고 손을 씼는 것 만으로 더이상 퍼져나가지 않았으니.

성력을 시간이 날때마다 쏟아붙는 비올렛이 녹초가 되면 에셀먼드가 그것을 못마땅하게 지켜보았다. 그가 말하는 바는 안다. 당장이라도 돌아가자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에셀먼드가 강제로라도 그녀를 데려가려 한다면, 그녀는 명령을 내리든 어쩌든 그것을 거부할 생각이었다. 비올렛은 도저히 그들을 버릴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변덕스럽고 기이한 성녀로 보이는 한이 있더라도 이들의 곁에 있을 것이었다.

“성녀님 왜 저는 낫지 않아요? 왜 낫게 해주시지 않는 건가요?”

아이들이 묻는다. 그럴때마다 그녀는 그저 침묵을 지킬뿐이었다. 그런 병자 아이들의 부모들이 오히려 아이들을 나무란다. 성녀님께 불경하다고, 어찌 감히 부탁을 하냐 한다. 비올렛은 그럴때마다 찡그려지는 얼굴을 애써 무표정하게 만들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오해를 산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라리 몸을 보완하는 약초라도 먹이면 좋을텐데. 그러나 마을에 한명정도는 있는 의원도.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비올렛은 그녀의 주변을 얼쩡거리는 소녀를 불러 의원이 없냐 조용히 물어보았다.

“신관님께서 있는데, 왜 왕도의 의원이 필요하나요?”

“그렇다면 너희는 다칠때 어떻게 하니?”

“신관님을 불러요.”

“그렇다면 그 신관님이 없을때는? 치료를 해주지 않을때는?”

“그야 그것은 신의 뜻인걸요. 어쩔수 없죠 뭐.”

“죽는다 해도?”

“음...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의원이 없고, 신관만을 기다린다. 신관이 없으면 신의 뜻이 없다고 생각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비올렛은 이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웬만한 병은 성력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위중한 병은 치료가 불가능하다.  예전 후작이 그러했다. 높은 체력으로 병마와 오랫동안 싸울 수 있었지만 병마는 오랫동안 자라 비올렛이 성력을 써도 소용이 없도록 만들었다. 팔이 다치면 붕대를 동여맬 의원이라도 있어야 했다. 몇백이 살고 있는 이 큰 마을에서 그런 의원이 없다는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들은 그렇다면 계속 이 곳에 있는 신전만 바라보고 있었단 말일까?

그러다 비올렛은 갑자기 생각이 미쳤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교황의 영향력이 미치는 땅에 역병이 피해갔던 경우는 있어도, 왕이 있는 곳에 역병이 피해갔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후자의 상황이었다. 전자 역시도 신관들이 역병을 모두 소거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 그렇다면 역으로 따지면 왕도에서는 이미 그 역병에 대해 해결을 본 것이 아닐까?

비올렛은 에셀먼드에게 달려갔다. 거의 말도 안하던 비올렛이 상기된 얼굴로 에셀먼드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팔을 잡자 에셀먼드가 움찔했다. 그러나 그것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비올렛의 머리는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에셀먼드를 후원까지 잡아 끌었다.  에셀먼드의 눈이 반짝거리는 그녀의 시선을 향했다.

“경, 아무래도 방법을 찾은 것 같습니다.”

“숨을 고르십시오.”

에셀먼드가 말했다. 그는 여전히 비올렛을 보고 있었다.

“왕도에 있는 의원을 불러야 할것 같습니다.”

“왕도에 있는 의원 말입니까?

에셀먼드가 납득이 안된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왕도에만 역병이 피해갈 수 있을리가 없습니다. 역병은 이미 왕도에서 해결이 된 것이 아닐까요? 너무나 간단하게 말입니다.”

비올렛의 말에 에셀먼드의 표정이 변했다. 그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어째서 그렇게생각하십니까?”

“그 옛날, 선대왕의 역사를 기억합니까? 왕이 교황에게 무릎을 꿇었던 사건 말입니다.”

“기억합니다.”

“역병으로 민심이 흉흉해졌기에, 사람들은 신이 노해 왕을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신전이.....”

“혹시나 해서, 성녀의 이름을 걸고 말하는데. 린도는 역병을 다룰수 없습니다.”

왕도의 사람들, 특히나 국왕파 사람들은 그것을 교황의 공작이라고 말했다. 교황이 일부러 역병을 퍼트린 것이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경, 교황은 그때 성력으로 역병을 치료했습니다.  그저 그 뿐인겁니다.”

그때는 이런 병이 없을 터였고. 성력으로 치료가 가능했을 것이다. 아니면, 성무회의에서 간단히 결론 내렸던 것 처럼, 그들은 ‘소거’라는 것을 통해 마을을 지도에서 지워나갔을 것이다. 그리하여 교황령에는 역병에 걸린 이들이 없을 것이고, 반대로 왕도에서는 신전의 도움이 없었으므로 역병이 퍼져나갔을 것이다.  이‘소거’는  역사적으로 이것은 계속 반복되어 나간 것이다. 왕도의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교황의 힘의 실체란 이러한 것이다.

비올렛의 단언에 에셀먼드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왕도의 의원이 이 것을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에셀먼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에셀먼드가 말했다.

“그때 성도에 병이 퍼지지 않던 이유가 성력을 통한 치료가 이유라면, 왕도에 이 역병이 없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가?”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성력의 절대성은 깨졌다 그리고 이제 기대를 걸 곳은 없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의원을 데려온단 말인가. 에셀먼드가 데려올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에셀먼드는 그녀의 생각을 꿰뚫기라도 하듯, 자신은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노라 말했다. 그리하여 생각한 것이 수도의 사람들이었다.

“에이든.”

비올렛이 말했다.

“에이든에게 보내달라 말하면 됩니다.”

“에이든이요?”

못미덥다는 얼굴이 바로 눈에 보였다.

“에이든에게 말하려 한다면 왕자전하에게 주십시오. 에이든은 미덥지 못한 녀석입니다.”

“작위를 그에게 주면서도 그렇게 말하시나요?”

비올렛이 대답했다. 마음이 급했다. 한시라도 빨리, 말을 전해야만 했다. 비올렛은 결국 에셀먼드의 강요아닌 강요로 샤를에게 편지를 썼다. 국왕의 귀에 들어가게 될까 그것이 염려스러웠지만, 비올렛은 샤를을 믿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산비둘기를 하나 어르고 달래, 심부름을 보냈다. 산비둘기의 시각으로 지리를 말하는 것은 힘들었지만, 다행히 그 산비둘기의 친구인 집비둘기가 성에서 날려보낸 출신이라 길을 알려주겠노라 말하며 같이 떠났다. 굳이 산비둘기에 편지를 묶었던 것은, 저 집비둘기가 전서구라 검열을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쉬지않고 날아간다면 반나절을 예상해야한다.

날은 저물었고, 사람들의 희망어린 시선을 억지로 외면했다. 의원이 이곳에 온다면 이틀정도는 걸릴 것이다. 제발, 신이시여. 그대의 뜻이 나와 함께하다면 제발, 이들을 살리소서. 제발. 비올렛은 처음으로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했다.

다시 아무도 없는 새벽 예배당을 가니, 사람들의 숨소리가 옅어져 있었다.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죽음은 다가오고 있었다. 삼일이 넘어 생존한 자들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성력이 효과가 없는것은 아니었다.

제발, 제발, 제발.......

왕도의 의원들이 해결책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그리고 이 사람들도 살아야 한다. 아무도 죽어서는 안된다. 버림받았던 생명들이라 해서, 죽어서는 안되었다. 비올렛은 이제 이들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었다. 이들의 죽음이 다가오는것이 느껴진다. 순수한 의문을 표하는 어린아이들과는 다르게 이들은 비올렛을 재촉하지 않았다. 모든것은 그저 신의 뜻이려니 하는 것이다. 이 절대적인믿음의 근거는 무엇인 걸까. 비올렛은 이들이 애달펐다.

“성녀님.”

소녀의 목소리에 비올렛이 얼른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처음 그녀에게 다가갔던 소녀였다 이미 얼굴은 상접해있고, 얼굴은 새파랗다 못해 새까만 반점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알고 있다. 이것은 죽음의 징조였다. 검은 사신이 소녀를 데려가려 온 것이다.

“자고있어야지.”

“하지만 이때 눈을 떠야 성녀님을 볼수있는걸요.”

비올렛은 소녀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원래도 몸이 약한 아이일 터였다. 병을 낫게 하지 않은 비올렛이 원망스러울 터였다. 그럼에도 이렇게 순수하게 비올렛을 바라본다.  가래가 끓는소리가 난다. 비올렛은 소녀의 머리를 만졌다. 불덩이였다. 소녀가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기침을 하는것만으로도 온 몸이 아플 것이었다. 소녀는 콜록, 하고 기침을 하더니 몸을 바르르 떨며 입에서 별로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토해냈다. 입가가 타액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비올렛이 깨끗한 천으로 닦아냈다.

“성녀님....”

비올렛이 다시 그녀를 보자 소녀가 말했다.

“나 성녀님이 엄청 애쓰는거 알고 있어요. 성녀님이 내 머리를 만지면 나 조금 편해지는걸... 다들 아마 알고있을거에요...”

그 말에 비올렛은 순간 울컥했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소녀는 입가에 침을 흘리고도 뭐가 그리 좋은건지 싱글방글 웃었다.

“성녀님, 나중에 제가 일어나면. 제가 과자 구워드려도 될까요? 그리고 또 한번만 마차에 태워주세요 그리고.....그리고 또.....”

“물론이야. 뭐든지 다 해줄게.”

비올렛이 속삭이며 소녀의 이마를 쓸었다. 갑자기 소녀가 몸을 뒤틀며 숨을 헐떡였다. 하악, 거리는 숨소리가 예배당에 가득 찼다. 비올렛은 깜짝 놀랐다. 성력을 퍼부었지만 소녀는 계속해서 몸을 뒤틀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발작이 다시 잦아들었다. 하아, 비올렛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하루, 하루만 견디면 나을지도 몰라. 그러니 제발 힘 내줘. 그렇게 말하려 할때 소녀가 입을 열었다. 아픔에 떨리는 목소리가 아닌, 맑고 따스한 목소리였다.

“성녀님의 등뒤에 새하얀 날개가 있어요.”

그것은 비올렛이 어렸을적 들었던 천사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옛날 신이 있었을 적에, 신의 심부름꾼이었다는 천사에 관한....

비올렛이 천사의 이야기를 해주려 소녀를 내려다 볼 때였다. 소녀는 더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그녀는 한참을 굳어 있었다. 처음에는 소녀의 호흡이 너무나 얕았기 때문에 그럴거라 생각하며 작은 입에서 나온 숨을 계속 기다렸다. 그러나 잔인할 정도로 호흡은 나오지 않았다. 바들바들 떨며 그녀는 검게 변해가는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예배당의 아그레시아 석상을 올려다 보았다.

증오스러워. 당신이 제일 미워.

당장이라도 욕설을 내뱉고 싶었다. 그녀가 아는 모든 저급한 말을 동원해서라도 신을, 아그레시아를 모욕하고 깎아내리고 싶었다 그녀가 아는 저주가 있다면 모든 저주의 말을 다 퍼붓고 싶었다.

신은 언제나 이렇게 잔인한것이다. 언제나 희망을 보여주며 절망만을 선물한다.

***

“화를 내는 법도 잊으셨습니까?”

소녀의 죽음에도 감사하다는 말을 향해 비웃었다. 내가 잘못한거다. 아니 처음부터 희망을 주는게 아니었다. 저 사람들의 순수한 믿음이 가소로웠다. 자신은 그럴만한 사람이 아닌데 감사하다고 하고 있었다. 저들이 왜 이러는지 알고 있다. 소녀는 아마도 정신을 차리면 성녀에 대해 이야기 했겠지. 그들은 자신들의 탓이라며, 자신들이 소녀를 나약하게 키웠노라고 자신들을 탓하고있었다. 하지만 탓하지 않았으면 했다. 잘못은 모두 그녀 자신에게 있었으니.

“그렇게 자기를 위안하시면 행복하십니까? 나를 그 신으로 여기신다면 나는, 그대들의 신은 그대들을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감사합니까? 제가 성력을 썼다면, 이 아이는 분명히 살았을 겁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 그러나 이것이 나았다. 그녀에게 희망을 가지고 기대게 해서는 안된다. 소녀의 죽음으로서 희망이 무너져버린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의 무능으로 인해 그러했다고 말하면 안된다. 분노와 최저한의 희망이 공존해야 했으니, 설령 그녀에게 저주가 날아와도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어찌 이러실수 있습니까!”

“네가 조금만더 빨리 치료했었으면 우리 세이라는 살 수 있었어!”

자신에게서 이유를 찾지 말고, 신을 원망해 주세요. 그리고 그 신에게 선택받은 나를 원망해 주세요. 나 같은건 신에게 선택받을 자격이 없었어.

아그레시아나, 아나스타샤였으면 더욱 더 현명한 방법으로 이들을 구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발버둥이 그녀의 최선이었다  소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비올렛은 그것을 감수하려고 했다. 그때였다.

“무엄하다. 어찌 성녀의 몸에 함부로 접하려 하는가.”

에셀먼드가 나서서 그녀를 밀어냈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힘 조절이 잘못되었는지 여자가 내던져지다시피 했다. 그것에 놀라 여인을  부축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조차 없었다. 차라리 미움받는것이 나았다. 오히려 그것이 더 편했다. 애써 허세를 부리며, 그들을 차갑게 비웃으며 그녀는 기도실로 향했다.

“성녀님.”

에셀먼드가 붙잡으려는 것을 비올렛이 말했다.

“다가오지 마세요.”

에셀먼드가 무엇을 말하려는 지 모른다. 그가 그녀를 나무라던, 아니면 비웃던, 위로하던 어느것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그러면 그럴수록 마음은 더욱 더 비참해 질 뿐이었다.

“명령입니다.”

비올렛의 말에 에셀먼드가 그녀를 붙잡으려다 말았다. 그녀는 그 길로 기도실로 들어가버렸다.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시 추한 모습이리라. 이렇게 모날수가 또 있을까. 비올렛은 신을 보았다.  왜 이 병을 내려준건가. 이 병이 있다면 치료를 할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았는가. 왜 나를 선택했나. 어둡고 부정적인 감정만이 지배했다. 그러나 눈물은 끝내 흘릴 수 없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슬퍼해서는 안되었다. 원망을 받아야 할 대상이 울어야 하지 않는건당연한 일이 아닌가. 증오스러운 희망이 되어 남아 있으리. 신의 의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신에게 분노한다면, 그리고 그 분노가 그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면 오히려 이들의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비올렛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녀에게 식사가 나왔다. 그럼에도 힘을 가지고 있는건 그녀이기에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대접해줘야 했다. 하지만 비올렛은 그것을 거부했다. 또 밤이 되어 아침이 되기 전 , 죽어가는 자들에게 틈틈히 성력을 퍼부어 주었다. 이젠 정말로 한계였다. 내일 오지 않으면 이젠 정말로 죽는 것이다.

신관들이 찾아왔음에도, 비올렛은 그저 기도실에 조용히 있었다. 아마 그녀에게 연락이 없어 린도가 파견한 자들일 터였다. 그러나 의외로 이곳에 온 것은 린도였다. 그의 목소리에 눈을 뜬 비올렛은 린도를 보았다.

이순간, 비올렛이 가장 미운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신, 그다음은 자기 자신, 그 다음은 린도였다. 순수한 얼굴로, 그저 그녀만을 탓하는 린도를 보며. 자신의 잘못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린도를 보며 비올렛은 마음껏 비아냥거렸다.

린도가 조금만 더 잘했다면. 그가 조금만 더 덜 의존적으로 만들었다면. 적어도 왕도의 것을 천시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소거하려 했던 주제에, 사람을 죽였다고 그녀를 탓하는게 우스웠다.

왜 이들은 신만을 부르짖는가. 왜 성녀인 그녀를 원망하는 법도 모르는가. 그런 맹목적인 신앙을 가지게 한 것이 저 종교의 지도자였다. 그도 가해자이다. 심지어 그는 이것을 버리려 했다.그럼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신민을 생각한다 말한다. 비올렛은 그 위선이 싫었다. 왜 그는 그의 모순을 모르는 것일까?

“왜 한 번도 신을 원망하지 않지? 원망조차 못한다면 왜 그 원인 자체를 자신들에게 찾으려 하지 않지? 왜 이들은 행복마저 자신들의 행복이 아닌 ‘신이 내려준 행복’ ‘신이 내려준 생명’이 되어야 하는걸까? 왜 이들은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이유 만으로 내게 얼마 남지 않는 식량을 쏱아부어 내게 음식을 호화롭게 차려주었던 걸까? 이들의 신앙은 뭐지? 심지어는 나 때문에 그 여자애가 죽었는데도 그들은 내게 고맙다고 했어 어리석지, 웃기지 않아?”

이들은 고맙다는 대신, 나를 미워했어야 했는데 말이야. 일부러 성력을 쓰지 않는 비올렛에게 그들은 증오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런데도 자신들의 탓만 했다.

“그래서 그 여자애가 죽어가는 걸 그대로 두고 본거야?”

린도의 물음에 가슴이 칼로 찔리는 것 같았다.  여자아이의 마지막 말이 귀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허망하게 죽은 시신조차도.  비올렛은 린도의 말을 들어주기 힘들었다.

“맞아. 내가 그 여자애를 죽게 했어. 그런데 어떻게 하니? 나는 이미 선택받아버렸는데.”

처음부터, 신은 자신을 선택하면 안되었다.

신관들을 피해 비올렛은 후원에 나가 있었다. 다행히 사람들은 없었다. 에셀먼드는 전서구를 받고 그들을 데리러 나갔다. 샤를은 약속을 지켜주었던 것이다. 이제 의원이 오면 그녀가 했던 결정이 옳은것인지 아닌지 명백해 질것이다. 그녀는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왠일인지 그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느껴졌다.

이제 모든게 끝났다. 팔십명의 소원을 받아들이며, 혼자서 전전긍긍해 하던 것도 이젠 끝난것이다. 홀가분한가? 홀가분할리가 없다. 그저 애통할 뿐이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자 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조금 더 성력을 제대로 썼다면 해결방안이 있지 않았을까? 의원을 더 빨리 생각해 냈더라면, 괜찮았을지도 몰랐다. 조금더 소녀에게 신경서야 했지 않았나? 아니 마을사람들에게 솔직히 말하고 의원을 불러왔어도 되었을지도 몰랐다. 이토록 후회는 계속해서 그녀를 옭아맸다.

-성녀님의 등뒤에 새하얀 날개가 있어요.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녀의 소박한 소원을 들어줄수도 있었는데, 마차를 태워줄수도 있었는데......

울음을 참으려 했지만 몸이 바르르 떨린다.

“잘 견디셨습니다.”

“........”

그때 에셀먼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몸이 휘청거렸다.

“의원은 왔나요?”

“네, 방금.”

에셀먼드가 대답했다. 별다른 말이 없으므로 아마 괜찮을 것이었다.  잘 견뎠다. 그 한마디에 모든게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기력이 다한 탓일까. 몸이 덜덜 떨렸다. 필사적으로 울지 않으려 했지만 숨죽여 흐느꼈언 울음이 터져나오기 시작햇다.

“경, 제발 가주세요 제발 혼자있고싶어요.”

그것이 너무 추해 가달라 했지만 이 가디언은 움직이지 않았다. 명령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웅얼거려 나오지 않았다. 울음을 참으려 끅, 하며 숨을 멈추니 에셀먼드가 말하는 것이었다.

“우십시오. 지금은 그 누구도 보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당신이 보고 있잖아요, 비올렛은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터져나온 눈물과 울음, 그리고 며칠동안 자지 않고 누적된 피로는 겨우겨우 유지해왔던 그녀의 가면을 깨트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에셀먼드가 아주 조용히 말했다. 그러니 자기 앞에서 편하게 울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말할필요 없이 그녀는 엉엉 울고 있었다.  그 어린날의 무력한 여자아이처럼. 후회만을 되뇌며.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필사적으로 자신을 탓했다.

“에셀먼드 경! 치료할 수 있는 병입니다. 약초는 이미 찾았습니다.”

데려온 의원인가? 낯선 남자가 소리쳤다. 그 말이 신호가 된듯.  긴장이 풀렸다.

“아, 앗! 성녀님을 뵙습니다.”

울음기를 지우려 노력하며 비올렛이 물었다.

“그러면 환자는 전부다 살 수 있습니까?”

비렛의 물음에 남자가 대답했다.

“약초만 달여 먹이면 삼일 내로 회복이 됩니다. 역병이 퍼지지 않게 조취를 잘 취해놓으셔...... 성녀님!”

왜 갑자기 저남자가 뛰어오는지 알 수 없었다. 허물어지려는 어깨를 누군가 꽉 붙잡았다. 하지만, 의식은 이미 컴컴한 저편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다행이다. 그녀는 진심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으으 이번거 40키바... 으으으으으ㅡ 여섯시부터 썼는데 열한시반까지 썼네요.. 퇴고가 퇴고가아아아아아악 40키바인ㄴ데 추천 안해주실거에여? (초롱초롱)

원래 두편 나눠 연참공야아앙가 하려고 했으나. 이미 다알고있는 스토리를 연참해서 뭐해~ 담편이 궁금한 스토리를 해야 님들도 저도 기분좋은 이득이죠 아닌가여!!!

그리고 선삭관련건에 대해서; 그분을 욕해달라는게아니고 떠나가버렸어 사랑이 떠나가버렸네 엉엉 이런 말ㅇ를한거지 ㅠㅠ 그분들의 선택이 잘못되었다 비꼬는게 아니어요 오해마셔요..(굽신굽신)

ㅠㅠㅠ

이번 주말에 이벤트 상품 제작해서 월요일 또는 화요일에 배송갈게여!

일주일간 주소를 기다렸음니다... 주소를 주지 않은자들 상품을 안받는거라 생각할거야....

사실 이변편을 쓰기전에 정말 고민을 많이했어요. 비올렛이 욕먹을건 알아서.. ㅠㅠ

하지만 비올렛아... 매도 빨리맞는게 나아....

다음편은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갈때 찾아갈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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