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원에 핀 제비꽃-119화 (112/208)

00119  제비꽃, 피어나다  =========================================================================

자신을 제비꽃이라 생각했더니, 진흙에서 피어난 연꽃이라 칭한다. 그녀가 디디고 섰던 그 토대가 썩은 진흙이라 말한다. 디디고 있는 땅이 푹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넌, 내가 자라왔던 곳이 더럽다 생각하는구나. ”

비올렛이 말했다. 그 음성이 차가워졌지만 린도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몸을 파는 여자들이 있는 곳인걸. 그런 곳에 당연하겠지만 너는 어울리지 않아. 너는 언제나 깨끗하고 아름다운걸. 그리고 이렇게 내 눈앞에 나타나기도 했고 말이야.”

다시 확인을 시켜주듯 린도가 말했다. 그것은 잘못 말했을 거라는 마음까지 잘근잘근 짓밟았다. 비올렛은 어쩌면, 하는 희망이 있었다. 그녀가 모든 억압받는 것들의 대표는 아니었고 그녀는 자신이 그렇다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죽은 언니들에 대한 애정은 애매한 소속감이 되어, 그녀가 천민의 입장에서도 설수 있게 했다. 왕도에서 그녀는 천출이라 차별당했고, 무시당하며, 조롱당했다.

그러나 신전은 달랐다. 그들은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라도 되는 것 처럼 너무나 귀하게 그녀를 대했다.린도는, 체자레는 그녀가 천출이라도 상관이 없다고 했다. 그것이 신전은 비올렛이 속해있던 천하디 천한 천민까지 감싸는 것이라 믿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 믿고싶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천출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더이상 천출이 아닌 성녀이기 때문에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비올렛은 자신이 제비꽃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싹을 틔운곳이 비록 좋은 흙은 아닐지언정 그래도 같은 사람들과 디디는 흙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자랐던 흙이라 생각했던 그 토대는 흙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다. 같은 흙에 있는 사람들을 린도는 주저없이 '썩은 진흙'이라고 표현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더럽다고 말도 했다. 린도가 그런 생각을 품었다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올렛?”

비올렛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들고, 홍조가 서린 얼굴이 창백해지자 린도가 불안한 듯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 역시 비올렛의 이변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비올렛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은채 한참동안 그녀를 닮았다고 말하는 연꽃들을 보았다. 새하얗고 탐스러운 꽃들은 화려하게 피어났다. 하얀색, 연분홍색. 색색들이 아름답고 정결한 그것은 그 누가봐도 성녀의 꽃이라 할만했다. 그녀는 머리를 숙였다.

“어디 아파?”

린도는 심지어 비올렛이 기분이 상했을 거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도 못한 채 묻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비올렛은 린도가 손을 잡으려 팔을 뻗자 그것을 쳐냈다. 숨이 턱 막혔다.

“악몽을 꾸었다고 내가 널 달래줬지?”

비올렛이 고개를 들어 천천히 말했다. 비올렛의 얼굴을 본 린도의 얼굴 역시 서서히 굳어갔다. 린도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겁을 집어 먹은 듯 했다. 그도 이제 그녀가 화가 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나 그거 그 더럽다는 언니들한테 배운거였어. 내가 악몽을 꾸면 그 언니들이 다정하게 해줬거든 그거랑 똑같이 너에게 해 준거야.”

“........”

“몸을 파는 여자가 했던것을 따라해서 더러웠니?”

비올렛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쉽사리 알아챌 수는 없었지만 지금의 이 얼굴은 너무나 명백한 실망과 노기를 띄고 있었다.

비올렛은 린도를 보았다. 역시, 라는 생각이 들었고 슬픔이 밀려들어왔다. 더러운 진흙들. 모든 사람들에게 그녀들은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그것이 다를거라 생각했는데 신전역시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다 자기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았던게 아니야. 엄마가 창녀라 창녀가 된 아이들도 있었고. 납치된 애들도 있었고, 부모가 팔아치운 사람들도 있었고, 나 처럼 부모를 잃고 팔려온 사람들도 있었어. 다들 선택하고 싶어서 선택한게 아니란말이야.”

비올렛은 린도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내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처음 내보였던 것이  부정적 감정이라는 것에 있었다. 린도는 비올렛이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실감하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서 비올렛은 언제나 다정하며 순수한, 그만의 여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그의 생각에 들어가지 않았다. 비올렛은 한마디로 완전히 그의 이해의 범위 밖에서 행동하고 있었다.

“더럽다고?”

그녀가 다시 물었다.

“날 팔아치운 그 도적들은? 포주들은? 돈을 주고 학대했던 귀족들은? 겉으로는 제일 깨끗한척 하면서 가장 더럽게 학대했던 신관들은, 그사람들은 더럽지 않은거야? 신을 모신다는 신관들이 내가 보기엔 제일 더러워보이는데?!”

“비올렛!”

신관을 비난하자마자 린도가 말했다. 역시 린도라고 다르지는 않았던 것이다. 비올렛은 차갑게 웃었다.

“그들은 더럽지 않은거니? 고작 더러운게 거기서 언제나 당해야 했던 꽃의 거리 여자들이야?”

“그 여자들과 넌 달라.”

“뭐가 다르다는거야!”

그녀가 소리쳤다. 비올렛은 숨을 헐떡였다. 비올렛은 린도가 아집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잠시동안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생각에 잠시 머리가 하얗게 물들었다. 다시 정신을 차린 그녀가 린도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

“너, 정말로 그 신관들이 나한테 손대지 않았을거라 생각했니?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던 거야?”

린도의 얼굴이 충격으로 일그러졌다. 비올렛은 얼음장 같이 싸늘하게 미소지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차가운 조소가 걸려 있었다.

“비올렛, 너 설마.......”

그녀는 린도의 굳은 얼굴을 보더니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이제 감정까지 사라졌다. 비올렛은 린도를 거의 경멸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다르다는게 있다면, 난 그 신이라는 작자에게 선택을 받았고 그들은 받지 못했다는거지. 그래서 선택 받지  못했던 그 더럽다는 여자들은 지금은 목이 잘려서. 땅바닥에 시체로 굴렀다는거고. 나는 여기서 이렇게 살아있고.”

“.........”

“난 저런 고고한 연꽃같은게 아니야. 만약 싹을 틔운 곳이 진흙이었다면, 나 역시 똑같은 진흙이겠지. 난 씨앗조차 아니야. 이미 꽃이 될 수 조차 없어.”

그녀가 말했다. 린도는 할말을 잃은 듯 했다. 그녀는 린도에게서 등을 돌려 걸어갔다. 린도는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걸어가며 비올렛은 생각했다.

이제야 어렸을 적 생각이 났다. 왜 그녀가 신관들에게 불쾌감이 느꼈는지, 그 원인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녀가 그곳으로 팔려간지 얼마 되지 않아 술취한 신관이 잡일꾼이었던 어린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고 몸을 더듬은채 방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것을 언니들이 막아준 적이 있었다. 그 대가로 가장 친근하게 대해주었던 언니는 신관에게 그만큼 혹독한 꼴을 당해야 했어야 했다. 비올렛은 그것이 너무나 공포스러웠다.

다니엘이 강제로 안으려 했던 것 처럼 직접적인 접촉은 없었고 그땐 그것이 무지했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는 몰랐고 그 끔찍한 일은 두번다시 일어나지 않았기에 잊고 살았다. 그러나 그 경험은 알게 모르게 신관을 무서워 하며 경계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 어린 비올렛은 에르멘가르트 가문을 선택했던 것이다.

비올렛은 린도가 오해할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오해일줄은 알았지만 굳이 그 오해를 풀려 하지 않았다. 신관이 그녀를 건드리려 했던 것은 사실이니. 육체적 결합을 가진 것이 더러움의 기준이라면, 신관들도, 귀족들도 평민들도 모두 다 마찬가지가 아닌가. 교합은 없었지만 어려서 희롱당했던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더러움의 기준이라면. 그녀는 이미 더러웠다.

살기 위한 그들의 인생은 그저 ‘더럽다’라는 말로 규정되어 버리며, 그 빛깔을 잃어간다. 그리하여 그들의 인생은 제비꽃과 같은 인생도 되지 못한채 연꽃을 피어내기 위한 썩은 진흙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비올렛이 그들과 다른점이라는 것은 겨우 신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그녀가 만약 선택을 받지 못했으면 아마 언니들처럼 남김없이 ‘소거’당했을 것이다. 만약 살아남았더라도 꽃의 거리의 여인이 되어 몸을 팔았겠지. 그런 삶이 ‘더러운 ’삶이라 말한다. 그것이 비올렛의 또다른 삶이 될 수 있었는데 그것을 너무 쉽게 부정한다.

-이것도 살아가는 한 방법이야. 너는 우리가 더럽다고 생각하는게 아니지?

이젠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못하는 한 언니가 비올렛에게 말했었다. 고개를 끄덕이니 그녀는 미소지었다. 얼굴은 기억이 안난다. 그저 그 미소가, 그 미소가 순수하고 아름다웠다는 것만 기억난다.

비올렛은 다리에 힘을 잃었다. 지나가던 신관들이 그녀에게 인사했지만 그녀는 언제나처럼 철저한얼굴로 그것을 무시했다. 그래도 그들은 그녀가 그러는 것에 어떠한 의문도 품지 않았다. 만약 창녀인 비올렛이 그랬다면 그들은 더욱 더 잔인했으리라.

비올렛은 백궁에 가려고 했지만 갑자기 그곳에 돌아가려니 답답하게 느껴졌다. 화려한 꽃들을 보면 더욱 더 화가 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린도가 있는 쪽으로는 가고싶지 않았다. 결국 돌아 선 곳은 다른 곳이었다. 발 닿는 곳 아무곳이나 가려고 발걸음을 떼었다.

“어딜 가십니까.”

비올렛은 목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가슴이 다시 두근 하고 뛰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에셀먼드가 서 있었다. 비올렛과 얼굴을 마주한 에셀먼드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다. 비올렛은 아마 자신이 아주 못난 얼굴을 하고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녀는 얼굴을 애써 갈무리했다.

“그곳은 신전기사단과 병사들의 숙소가 있는 곳입니다.”

“아.”

비올렛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가 가는 길목마다 꽃과 조각상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지만 이곳은 다른 곳보다 삭막한 편이었다. 보아하니 날카로워 보이는 쇠창살들이 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이 달랐다. 만약 여기로 쭉 갔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 당황한 신전기사들과 병사들을 볼 수 있었으리라. 그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비올렛은 하아, 하고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돌아갑시다. 모시겠습니다.”

에셀먼드가 말했다. 비올렛은 그의 얼굴을 보았다. 언제나처럼 정복을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은 그 누가 봐도 고고한 기사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는 어렸을 적, 판단의 실수로 비올렛의 언니들을 죽였다. 용서하려 했다. 원망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지만 신전도 에셀먼드도 마찬가지였다. 똑같이 더럽다 생각했기에, 그런 결정을 내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가 미워졌다.

“괜찮습니다. 경. 조금 돌아보고싶어서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호위 기사도 없이 말입니까?”

에셀먼드가 물었다. 그의 눈썹이 치켜올라갔으나. 그녀는 그저 알 수 없는 억지 미소를 지었다.

“여기 어디서도 절 노릴만한 사람은 없잖아요.”

그녀는 자신이 품은 마음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그건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혼자가 되셨으면 차라리 저를 부르셨어야 했습니다.”

에셀먼드의 말에 비올렛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여전히 충실하다. 자신을 생각하는 그에게 차마 화를 낼 수 없었던 비올렛은 그저 속으로 자신의 감정을 눌러참았다.

“먼저 들어가 보세요. 저는 나중에....”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에셀먼드가 말했다. 왜 고집일까. 그녀는 다시한번 울컥 했다. 사실 에셀먼드로서는 그것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들어가세요, 이건 명령입니다.”

비올렛이 말했다. 그녀의 음성은 차가웠다. 에셀먼드는 그에 대답했다.

“들을 수 없습니다. 명령보다는 당신을 지키는게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비올렛은 더이상 참지 않았다.

“혼자있고 싶어서 그러는거예요, 알고 있으면서. 눈치챘으면서 왜 그렇게 고집을 피우시나요?!”

비올렛이 소리쳤다. 에셀먼드에게 화를 내고 싶지 않았다. 이미 다 털어내고 용서했다고 했으면서 원망을 내비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올렛은 결국 화를 내버리고 말았다. 자괴감에 차마 얼굴은 찡그리지 못하고 주먹을 꽉 쥐는 그녀를 향해 에셀먼드가 말했다.

“혼자있고 싶다고 말하지 않으면 저는 모릅니다.”

“.......”

그 말에 비올렛은 깨달았다. 그래, 그 누구도 그녀가 어떤 감정을 품었는지 알아줄 수 없다. 에셀먼드역시 마찬가지였다. 에셀먼드는 그녀가 될 수없다. 그의 입장에서 그녀가 괜한 짜증을 내는 것으로 느꼈을 것이다. 얼마나 추한 모습일까. 이렇게 투정부리는 모습에 넌더리가 날지도 모른다.

“미안해요.”

그녀가 말했다.

“저, 혼자있고 싶어요. 오라... 아니 에셀먼드 경.”

비올렛이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렸다. 에셀먼드는 그 말에 그대로 서 있었다. 지금 그 말을 들어주지 않는건가.  그녀가 울컥 하고 무엇이라 말하려고 했을때 에셀먼드가 말했다.

“오라비라 여긴다면 오라비라 생각해도 좋습니다. 힘들다면 그렇게 굳이 이름으로 부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비올렛은 그것이 아니라 말하려 했다. 아직도 비올렛은 가끔씩 그를 이름이 아닌 오라버니라고 부르고는 했었다. 아마 그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올렛이 에셀먼드를 올려보았다. 어딘지 모르게 손등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한점의 흔들림없는 시선에 비올렛이 그 눈을 피했다.

“화를 내도 괜찮습니다. 다만 저에게 의무는 다하게 해주셔야 합니다. 그게 당신과 나 사이에 맺어졌던 맹세이자 계약입니다.”

“.......”

에셀먼드의 말은 틀린게 없었다. 그녀를 지키기 위한 가디언이 겨우 그녀의 감정하나에 호위도 포기한채 사라지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기사들을 아무나 불러주세요.”

“...성녀님.”

비올렛의 고집에 에셀먼드가 이번에는 얼굴을 찌푸렸다. 고집을 부리는 아이같아 보였을 것이다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당신은 제게 이야기 하라 했습니다. 내가 오늘의 이야기를 이야기 해준다면, 당신도 제게 이야기를 해주어야 합니다.”

“........”

에셀먼드가 드물게 말이 많아진 지도 모르는 채 비올렛은 에셀먼드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잊으셨나본데, 저는 유일한 당신만의 것입니다.”

그 말에 비올렛은 기가 막혔다. 참으로 낭만적인 말이 아닌가. 그러나 그처럼 냉정하며, 꾸짖듯이 말하는 사람은 그 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낯뜨거운 말이든간에 그 말이 의미한 것은 명백했다. 비올렛이 에셀먼드에게 말했던 것을 그대로 말하며, 그는 그에게 모든것을 털어놓으라 종용하고 있었다.

무엇을 말해야할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말하기 싫다면 말하지 말라는 말도 없다. 참으로 배려없는 사람이다. 그는 그녀의 모든 것을 알아내야 겠다는 듯 단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였다. 비올렛은 그 반발심에 결국 이야기를 꺼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내가 더럽나요?”

순간 에셀먼드의 굳은 얼굴이 잠시나마 변했다.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의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이 말 그대로의 질문이라는 것만 유추할수 밖에 없자, 그의 얼굴이 눈에 띄게 차가워졌다. 그는 평범하게 말했지만 어째서인지 비올렛은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아니에요.”

“성녀님.”

그녀가 말을 끊자 에셀먼드가 말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누가 그런 것이냐 에셀먼드는 물어보고 있었다.

“아니, 더럽다는 소리를 들은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비올렛이 말했다.

“제가 태어난 곳  말이에요, 그리고 제가 태어나 자란 곳. 그러니까 그곳이 더럽냐는 말이었어요. 나는 더러운곳에 태어난건가요? 그래서 저는 지금 더러운걸까요?”

에셀먼드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질문의 의도를 그제야 깨달은 것 같았다. 그는 비올렛을 보았다. 그리고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그곳은 더러움의 온상입니다.”

“........”

역시나. 비올렛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그녀는 그가 그렇게 대답할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에셀먼드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비올렛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후작 가의 후계자로 태어났고, 어렸을 적 부터 후작 령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귀족중의 귀족인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별반 다르지 않을 말이었다.

“국가가 금지했던 인신매매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살인과 폭행은 밥먹듯이 일어납니다. 여자는 욕정에 찌든 사내들에게 돈 몇푼에 몸을 가져다 바치며  사내들 역시 평민, 귀족, 신관들을 가리지 않고 여자과 교합하려 눈에 불을 킵니다.”

“........”

비올렛은 노골적인 그의 말에 할말을 잃었다. 그래, 그가 더럽다고 여기는 이유는 당연했다. 사실 그 사실을 그녀가 납득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비올렛은 울컥 했다. 분명히 그도 그녀가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빈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렇군요, 경의 의견 잘 알았습니다.”

비올렛이 힘없이 말했다. 그녀는 애써 밀려오는 것을 삼켰다. 린도와는 달리 에셀먼드가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도 막상 들으니 서글펐다. 정말로 그들이 더럽다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사실 그에게 특별한 의견을 기대한 것 부터가 잘못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더러움의 온상에 있다 하더라도 누군가를 더럽다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것은 아닙니다.”

에셀먼드가 말했다.

“나는 에셀먼드, 경의 판단을 물었습니다.”

“제 의견을 물어본 것이라면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내가 판단할 자격자체가 없다 생각합니다. 성녀님이 어떤 의도로 질문하시는지 잘 알았습니다.”

“........”

그는 빠르게 대답하고 있었는데, 그 대답으로 인해 비올렛은 에셀먼드가 그녀를 속이려거나 기만하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더럽다 여길 자격이 있다 생각하십니까?”

“.........”

에셀먼드의 반문에 눈을 크게 뜬 것은 비올렛이었다. 비올렛은 그의 일침에 놀랐다.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에셀먼드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거라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평가받는 것이 너무나 익숙하여 그 평가를 당연하게 여겼다.

“내가 당신의 터전을 파괴한건 당신이 더러워서 그런게 아닙니다. 그들이 영지의 법률을 어겼다 판단하여 행한 일이었습니다.”

“........”

그 말에 죽은 언니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법률을 어기지 않았다. 이것이 린도와 에셀먼드의 차이였다. 그는 사람을 판단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은 영지민들이었고, 영주의 아들로서 그는 심판을 내렸던 것이다. 그것이 비록 잘못된 판단일지언정.

“묻겠습니다. 제가 더럽다 말한다면 그들이 더러워지는겁니까? 그들은 확실히 더러웠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더러운곳에 있으니까, 더러움에 물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비올렛이 꼭 다물었던 입술을 열고 소리쳤다.

“아니에요! 언니들은, 더럽지 않았어요. 모두 다 끌려오고 팔려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

비올렛은 에셀먼드가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 깨달았다. 사람에 대한 판단은 누군가에 대한 판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사람을 함부로 판단할 자격은 없다. 그러나 그 판단을 내리는것이 필수불가결하더라도 그것을 규정하는데 절대적인 것은 타인의 의견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이었다.

“이걸 말하고 싶었군요.”

비올렛이 힘이 빠져 중얼거렸다. 해답은 간단했다. 비올렛의 입장에서 따스한 언니들이었다면 그녀는 더러운 이들이 아닌, 누구보다 깨끗하고 순결한이들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우울한 미소를 지었다. 비올렛은 린도를 떠올렸다. 주저없이 사람에게 ‘더럽다’말하던 그의 잔혹한 솔직함은 아직도 칼로 가슴을 에이는듯 아팠다. 여러 감정들이 날뛰고 있었다.  잊어버렸던 기억, 신전에 대한 적개심의 이유, 에셀먼드에 대한 원망, 린도에 대한 원망, 죽어버린 언니들에 대한슬픔.  그녀는 그러한 감정들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녀가 알아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언니들은 그녀가 더럽다 생각하지 않다고 말했던 것으로 활짝 웃었으니. 이미 언니들은 그걸로 되었던 것이다.

“에셀먼드 경. 마지막으로 하나 더 물어도 되나요?”

“........”

그 말에 에셀먼드가 그녀를 보았다. 마치 말해보라는 듯 하는 그 얼굴에 그녀는 목에 걸렸던 질문을 꺼냈다.

“저를 보면 어떤 꽃이 떠오르나요?”

비올렛이 물었다. 무척이나 이상한 질문이었다. 정말 귀족아가씨가 사랑하는 낭군에게 연서를 보낼때 보낼법한 낯뜨거운 말이었다. 그러나 비올렛은 묻고싶었다. 에셀먼드는 별로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그야 당연히 제비꽃이 아닙니까.”

비올렛은 너무나 당연한 대답에 허, 하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너무나 당연했다. 이름부터가 제비꽃인데, 어떻게 제비꽃이 아닌 다른 꽃을 떠올릴 수 있겠는가.

“이름때문에요? 아니면, 제가 제비꽃처럼 흔하디 흔한 삶을 살아서?”

아니면 아름답지 못하고 특징없이 평범해서? 그녀는 여러 말들을 삼켰다. 막상 자신을 제비꽃이라 여길지언정 들꽃이 생각난다는 소리를 들으니 그 말이 너무나 미묘했다. 에셀먼드가 비올렛의 물음들에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대답에 비올렛의 심장이 다시 뛰어서 견딜수가 없었다.

“당신의 눈동자가 본디 제비꽃 색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하는 그만의 기사는, 색을 잃어버린 그녀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말했다. 비올렛은 하. 하고 나지막이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는 성녀의 자비의 미소가 아닌 여인의 수줍음의 미소가 서렸다. 그리고 그녀의 수호자는, 남자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그것을 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사실 더러움의 온상입니다. 이부분에서 끊으려 했는데. 에드가 너무 욕먹을까봐.... 두 편이어서 씁니다~ 비축분따윈 원래부터 없었어요 꺄핳

돌아올땐 목요일에서 금요이이 되는 자정에 돌아갑니다.

아이고 치킨먹어서 배부르다

저 요즘 열일하고 있어요 칭찬해죠요!!

막 나 수더수 외전도 쓰고있고 프로젝트 프롤로그도 쓰고 이번주 계획 절반 쓰고잇지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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