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8 제비꽃, 피어나다 =========================================================================
“어쩌자고 이러신 겁니까.”
음성에 배여 있는 은은한 분노의 기색에 비올렛이 말했다.
“혹여나 있을 불상사를 위해 리체를 안에 들여놓았습니다. 케이든 경도 마찬가지고요.”
비올렛의 말에도 불구하고 에셀먼드의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그는 엄한 기색으로 비올렛을 보았다. 린도는 비올렛의 옆에서 자고 있었다. 이것이 잘못된 것임은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비올렛은 한참을 비올렛의 허리를 안고 울었던 린도를 놔줄 수 없었다. 그것은 경험하는 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무엇인지 모르는 애절함에 비올렛은 그를 차마 쫒아낼 수 없었다. 그리하여 비올렛은 린도와 케이든을 방 아래 들였다. 리체라면 몰라도 케이든 경은 신전기사로서, 이러한 사항에 대해 절대로 거짓은 말할 수 없으니. 혹여라도 있을만한 구설수엔 절대 오르지 않을 것이다.
“혹여나 퍼질 수도 있는 소문은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에셀먼드의 말에 비올렛은 반박하려 했다. 린도는 대외적으로 교황이라고 알려지지 않았고, 혹여나 이번 일에 대해서는 케이든 경이 말하면 된다. 그녀의 명예에는 아무 손실이 가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반박은 이미 묻혀버렸다.
“죽여버리면 돼.”
“린도?”
자고 있던 린도가 몸을 일으켰다. 햇빛을 받아 그의 붉은기가 도는 은발이 반짝거렸다.. 새하얀 도자기같은 피부가 빛이났다. 나른한 고양이처럼 눈을 두어번 깜빡이던 린도가 기지개를 피며 말했다.
“그런 소문을 퍼트리는 것들은 죽여버리면 돼.”
순수한 아이와같이, 신화속 그 무엇보다 자비로운 신성한 이의 얼굴을 하며. 그는 장난스레 ‘죽음’을 이야기한다.
“아, 비올렛. 아침부터 가디언의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았는데. 너무해.”
“...린도, 그런말 하지 마.”
린도는 하품을 하며 내려왔다. 그러나 에셀먼드의 얼굴은 여전히 서늘했다.
“밤중에 성녀를 찾아오더니 어찌된겁니까. 아무리 성직에 몸을 담그셨더라도, 밤중의 여성이 있는곳엔 남성이 발을 들인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무서운 협박을 하는 린도에게, 에셀먼드가 대놓고 말했다. 비올렛은 내심 놀랐다. 린도에게도 예를 갖추는 에셀먼드가 처음으로 린도에게 화를 냈다. 심지어 인사조차도 하지 않은 것이다. 린도는 웃었다.
“하지만 그 때가 제일 보고싶었던 것을 어떻게 해?”
어라. 비올렛은 생각했다. 그때 그가 얼마나 겁에 질렸는지 비올렛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감정의 여운은 찾아볼 수가 없다. 단순히 잠을 자고 일어나서라기엔 그때의 그 감정의 무게와 농도가 너무나 크고 짙어서 비올렛마저도 잠시 판단력을 상실할 정도 였다. 그러나 그 문제의 주인공인 린도는 마치 어제의 일은 없었다는 듯, 언제나의 개구진 얼굴로 그들을 대하고 있었다.
“........”
에셀먼드도 린도도 마찬가지다. 에셀먼드는 그저 침묵을 한다면 린도는 그것을 웃는 가면으로 장난스레 덮었다.
“가디언께서는 무엇을 착각하는지 잘 알겠어. 음, 아주 잘 알지.”
린도가 비올렛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비올렛의 손을 잡았다. 린도는 언제나 처럼 그 아름다운얼굴에 홀릴듯한 미소를 지었다.
“린도.”
비올렛이 말했다. 린도는 나머지 한손에 비올렛의 볼을 잡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비올렛은 깜짝 놀랐다. 에셀먼드의 얼굴에서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를 자극시키고자 했던 행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밤을 새워야했던 리체와 케이든이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비올렛의 볼에 입을 맞춰도. 내가 비올렛의 입에 입을 맞춰도. 그 누구도 내게 거역하지 못해. 가디언.”
린도는 가디언에게 존댓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비올렛은 정말로 순수하고 깨끗한 성녀거든. 그러니 그녀의 명성에 삿된 오물을 퍼트리는 것은 이단며, 악이야. 그렇다면 이단은 나의 낙원에 필요없어. 모두 죽이면 간단한 일이야.”
“.........”
그것은 의심도, 사실도 묻어버리겠다는 말과 똑같았다.
“여긴 왕의 도시가 아니야, 바로 나의 도시야. 왕의 도시에서 비올렛은 천출이었을지언정 이곳에서는 살아있는 여신이야. 그대처럼 속된 마음을 품는 사람들은 없다는 소리야.”
아이의 얼굴을 하며 린도는 에셀먼드에게 두드러진 적개심을 가지고 이야기 했다.
“비올렛의 가디언이기에 몇번 참았어. 다시 한번 거슬리다간, 그대, 정말 죽여버릴거야.”
갑작스럽게 살기가 터졌다. 비올렛은 린도의 감정의 폭에 놀랐다. 아까, 아니 방금까지도 린도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에셀먼드를 죽이려하다니? 비올렛은 에셀먼드를 보았다. 과연 기사답게 그 거대한 살기를 받아치고도 아무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렇게 말하셔도, 제가 있는 한 성녀님의 방에 밤중의 무단 출입은 그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
린도가 에셀먼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대 참 재미있구나? 그대가 그렇게 필사적인것은 그대가 가장 걱정하는 음심이 그대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대는 걱정하는거야. 그대의 마음속에 그게 있으니, 내게도 그게 있지 않을까. 다른 머저리들의 마음속에도 그것이 있지 않을까. 왜냐면 간단해, 그건 그대의 마음속에 가장 깊숙하게 파고들어있는 욕구니까 말이야!”
“린도!”
이번에는 에셀먼드마저 미약하게 살기를 흘리고 있었다. 린도는 완벽하게 오해하고 있었다. 에셀먼드가 이성의 침입에 필사적으로 막았던건 다른 이유때문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다니엘 때문이었다. 린도는 그것을 모르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방금 그것은 에셀먼드의 마음을 모욕한 것이었다. 기사로서의 긍지를 위협당한 에셀먼드의 눈빛에 커다란 분노의 감정이 어린 순간 물러난 것은 린도였다.
“이런, 가디언 경의 마음을 내가 모욕해버렸군. 미안해. 밤에 찾아온것도 자제하도록 할게. 추기경도 나를 혼낼거야. 반성할게.”
그는 그렇게 말하며 에셀먼드를 보았다. 에셀먼드는 아무말도 하고 있지 않았다. 린도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보더니 비올렛을 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또보자, 비올렛.”
린도는 손을 흔들었다.
*
그 일 이후로 에셀먼드역시도 린도에게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사람을 싫어하는 것을 바깥으로 드러내는게 드물었던 에셀먼드였다. 그런 그가 저럴 정도면, 에셀먼드는 린도를 싫어하는것이다. 그러나 린도는 교황이었고, 에셀먼드는 비올렛의 가디언이었다.
왜 신전은 부패를 용인하는 것일까. 비올렛은 생각했다. 그렇게나 순수한 린도는 왜 그렇게 신관들의 부패를 그대로 방관하는 것일까. 꽃의 거리에서 비올렛이 거부감을 느꼈던 것은 바로 신관들의 행패때문이었다. 이들이 귀족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여자들에게 가혹했던 것은 신관들이었다. 귀족들도 부패한 자들이 있듯, 신전도 마찬가지 인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신관’이기 때문에 그들의 부패가 더 눈에 들어 왔던 것일까.
신전의 중앙부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관들 중에 성력을 잃은 이가 있을지언정 언제나 이곳은 바쁘게 돌아갔고, 나름의 체계가 잡혀 있었다. 티타임을 핑계로 찾아온 린도를 향해, 비올렛은 물었다. 왜 부패를 용인하냐고.
“어라? 추기경이 알아서 해 주겠지.”
체자레가 모든 것을 총괄하고 있다는 것은 비올렛도 느낀 바가 있었다. 추기경은 린도를 혼냈다. 마치 아이처럼.
“무엇인가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랬을거야. 추기경은 그걸 두고 볼 사람은 아닌걸.”
린도가 말했다. 비올렛은 그 말을 듣고 께름칙함을 느꼈다.
“린도, 너는 추기경이 모든 다 할거라 생각하니?”
“당연하지.”
비올렛은 그말에 뭐라 대답할 수 없었다.
“린도.”
“응?”
“너는 날 왜그렇게 좋아하니?”
비올렛이 물어보자 그는 아찔할 만큼 아릿하게 미소지었다.
“너는 성녀잖아.”
“응. 그래.”
성녀를 기다린 교황. 이 얼마나 신성한 단어인가. 하지만 린도가 말하니 그것은 신성하지 않고 로맨틱한 느낌이 되었다.
“네가 나타나길 기다렸고, 네가 나타났어. 묻겠는데, 너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있어?”
비올렛은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 말이었다. 좋아할 이유를 물었더니 좋아하지 않을 이유를 되묻는다.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너는 내가 성녀라서 좋아하는거니?”
그 말에 린도의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
“네가 성녀가 아닐수도 있어?”
“성녀가 아닐수도 있지.”
비올렛의 말에, 린도의 대답은 너무나 시원스러웠다.
“그래도 상관없어.”
“응?”
오히려 그 말에 당황한 것은 비올렛이었다. 그의 결론은 너무나 확실했던 것이다.
“비올렛은 다정한걸.”
“.........”
“무서운 꿈을 꿔도 괜찮다 해주고. 나는 따뜻한 비올렛이 좋아.”
그것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린도가 어떤 꼴을 하고 그곳에 나타났는지, 얼마나 절박해 보였는지는 보는 사람만 알 수 있었다. 신전기사단인 케이든 경이 당황했을 정도면, 그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알 수 있었다.
“비올렛, 나에 대해 많이 궁금하지?”
“.......”
“그런데 나도 나를 잘 몰라. 알 수 없어.”
그는 대답했다.
“정말이야, 널 속이는게 아니야. 난 왜 나이를 먹지 않는지, 왜 이렇게 널 앞에 두고도 네가 그리운지 잘 몰라.”
사람을 앞에 두고도 또 그리는 기분이란 어떤 기분일까. 비올렛은 고개를 갸웃했다. 린도랑 대답할때는 이렇다. 린도가 미심쩍다. 하지만 린도에 대해 무작정 캐내고 몰아붙일수가 없는게 아름다운 외모때문인지, 가끔씩 보여주는 처연함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린도에게 악의가 있냐 하면 악의가 없다는 것은 비올렛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난 행복해 비올렛, 여긴 낙원이거든. 아직도 꿈을 꾸는 것같아.”
봄날은 따스했고, 이곳은 더욱더 화사하고 아름다워졌다. 만물의 생명력을 피워내는 봄은 이곳에 녹아들고싶을 정도로 달콤했다. 그러나 정체되어 있는 이곳은 답답했다. 때때로 검을 휘두르고 활을 쏜다. 그렇다고 그녀가 에셀먼드와 같은 무인이 아니니 답답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창가를 바라보는 비올렛을 바라보던 소년의 황금색 눈이
“비올렛, 보여주고 싶은 꽃이 있어.”
“응?”
“너와 닮은 꽃이야.”
비올렛은 눈을 크게 떴다. 린도는 엄마에게 자랑하는 아이처럼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것을 에셀먼드가 나중에 봤다면 잔소리를 했겠지만, 불행히도 에셀먼드는 이번 시간은 교대하는 시간이었고. (린도는 항상 이때만 노려 그녀에게 왔다.) 호위기사는 린도의 명에 이미 할일을 잃은 뒤였다.
“네가 쓸쓸해 보였던걸. 난 정말로 이 꽃이 너같아서, 심어두라고 했었어.”
설마 제비꽃이라도 심어둔 것일까. 당연하겠지만 화려한 미의 극치인 이곳도 제비꽃은 없었다. 제비꽃은 하찮은 꽃이었기 때문이었다.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비올렛이 제비꽃을 볼 수 있다는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보라색의 물결을 볼 수 있다면, 그녀는 어찌되었건 이 무료함을 견뎌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후작가의 후원에 핀 제비꽃을 떠올리며 비올렛은 살짝 기대에 찼다. 제비곷은 너무나 하잘것 없는 꽃이라, 이것을 신전, 그것도 교황성의 정원에 피게 했다면, 그것이 비올렛을 위한 것이라면, 비올렛은 어쩐지 린도에게 마음을 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린도역시 여느때와는 달리 비올렛이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활짝 웃었다. 그들이 당도한 곳은 예상과는 다른 곳이었다.
“.......”
왠 호수가 있지? 비올렛은 생각했다. 호수위에 피어 있는 연분홍색 꽃들을 보았다. 신기하게도 꽃들은 호수 위에 둥둥 떠올라 있었다. 비올렛은 내심 실망했지만 그래도 물 위에 뜨는 꽃은 분명 신기하고도 화려함을 가지고 있었다.
“신기해.”
비올렛이 말했다.
“그치? 난 정말 이 꽃이 좋아.”
“그래?”
“마치 너 같거든. ‘연꽃’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비올렛은 저 꽃들과 자신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지 못했다. 왜 그것이 자신을 닮았다고 하는 것일까?
“연꽃은 가장 더러운 곳에서도 이렇게나 아름답게 생명을 터트리잖아. 그게 너와 닮았어. 처음에 추기경이 저 꽃을 가져왔을때, 그런 느낌이 들었지 뭐야.”
비올렛은 연꽃을 바라보았다. 가장 더러운 꽃에서 싹을 틔우고 아름다워지는 식물이라. 꽃은 확실히 아름다웠다. 그것이 피어나 이렇게 아름답기까지 얼마나 인고의 세월을 버텼어야 했을까. 하지만 그것을 보며 비올렛은 깨닫는것이다.
“더러운 곳?”
비올렛이 물었다. 린도가, 교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꽃의 거리라는 ‘더러운’곳에서 네가 나고 자랐잖아. 그리고 너는 이렇게 아름답게 성녀로 피어났지.”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그저 '믿고 싶었던' 허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작품 후기 ============================
일단 여러분 11월 3일에 돌아올게여. 공지에도 올렸다시피 내일은 제 여동생 결혼식이랍니다.
동생년이 저보다 먼저 가네요. 덕분에 남동생느님이 휴가나오심 ㅎㅎㅎ
여튼 이 결혼식이 막 양가 친척들 다 모이는자리라서 저도 막여기저기 불려다니고
아주 시집언제가냐 소리듣고 아마 3일에서4일로 넘어가는 시각에 돌아오겠습니다.
여러분 향초만들기 저 성공했어요
근데 ㅠㅠㅠ 석고방향제 만들기 자꾸 실패했어요..
자꾸 기포생기고..ㅠㅠㅠ 막 스마일로 막 울 독자님들 웃으라고 주고 싶은데
스마일은 커녕 스마일 이상하게 나와서 빨간마스크처럼 입찢어지쟈나..ㅠㅠㅠㅠ
넘나 속상한것..ㅠㅠㅠ
힝힝 두번째 시도는 진짜로 이벤트 할거여요!
향도 내맘대로 해야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