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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핀 제비꽃-115화 (108/208)

00115  제비꽃, 피어나다  =========================================================================

“요즘은 좋아보이는구나.”

대뜸 물어오는 시선에 비올렛은 눈을 떴다. 푸른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이 보였다. 풀내음이 푸익고 있었다. 비올렛은 걸어오는 눈을 감은 여자를 보았다. 열 살의 어린 비올렛이 이젠 열 일곱이 되었는데도 꿈속 답게 여자의 모습은 변하지 않는 그대로였다. 그것이 놀랍지 않은 것은 아무래도 린도와 체자레의 탓이 컸다.

“좋아보여요?”

비올렛이 물었다. 여자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젠 이런 만남도 자연스러웠다. 성녀 증명이후로 처음 만나는 여자를 보며 비올렛은 물었다.

“신이시여.”

그 말에 여자는 비올렛을 바라보았다. 그 무엇도 이야기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그 모습에 비올렛은 망설였던 이야기를 꺼냈다.

“왜 이렇게 꿈속에 절 찾아오시나요?”

비올렛이 물었다. 어렸을 적에 종종 찾아오던 그녀를 의지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이 꿈속의 여인은 신비로웠고, 자애로우며 의지가 될만했다.

“내가 당신에게 선택받았다는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왜 저를 찾아오는 거예요?”

눈을 감은 그녀는 웃었다. 후후후, 하는 목소리가 아름다웠다. 하지만 비올렛은 그녀의 웃음소리가 섬뜩하게 들려왔다.

“이제야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거구나.”

그녀가 말했다.

“나는 네가 성장하길 바랐어.”

웃음기 서린 목소리에 비올렛이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나의 어린 아이.”

그녀는 손을 들어 비올렛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성장, 그래 성장을 위해 곁에 있어준다. 그랬다. 어렸을 적 성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비올렛에게 그녀는 성력을 어떻게 쓰는지 알려주었다. 성녀 증명때 신어(神語)를 알지 못하자 신어를 알려주었다.

“말룸을 물리쳐야 하기 때문에?”

비올렛이 물었다. 그녀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본디 창녀가 되어야 했던 그녀가 성녀가 되었던 것이 이런 이유가 아니었던가. 별로 놀랄만한 이유는 아니었다. 신이 원하던 것은 말룸의 소멸이었다.

“하지만 왜 말룸은 소멸하지 않는거죠? 왜 대리인을 보내신건가요?”

비올렛이 물었다. 그녀는 애매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말 이상하다. 말룸과 성녀, 왜 이것들이 있다는건가. 마귀가 말룸을 내보냈다면, 신이라면, 성서에서 말하는 '전지전능한' 존재라면 그것을 없애는 것은 쉽지 않겠는가. 왜 신은 자신의 대리자를 보내, 대신 그것을 없애게 하려한다는 건가.

이것은 아그레시아 신화 자체에 대한 기반이 흔들렸다. 그녀는 비올렛의 얼굴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너는 똑똑하구나.”

“똑똑한게 아니에요.”

33명의 성녀들이 과연 이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지 않았을까? 비올렛은 생각했다.

“아니, 그녀들은 감히 그러한 의문을 품을 수 없었단다. 설령 품었어도 그러한 의구심들은 사라져버렸지.”

“........”

“그녀들은 신에게 뭔가 뜻이 있으리라 믿었단다. 성녀들은 성녀답게, 신이 내린 숙명을 받아들였지. 그저 그 뿐이란다.”

비올렛은 처음부터 신을 믿지 않고 의심했다. 신이 자신을 선택한 것은 무엇인가 착오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신을 저주하고 믿지 않았다. 체자레가 잘 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것인가. 그가 부렸던 수작 때문인지 그녀는 신을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비올렛은 아직도 그녀가 선택 받은 것은 신의 착오라 생각했다. 자신은 성녀가 될 수 없었다. 신의 존재는 믿었을지언정, 그 신의 존재를 저주하고 증오하고 있었으니. 그러나 저주하는 마음도 누그러졌다.

“왜 신이 직접 하지 않냐고 물었지?”

“.......”

“안할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단다.”

“그게 무슨?”

비올렛이 물었다. 그녀는 기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말룸을 보낸 자를 단순한 ‘마귀’라 부르는 것은 잘못된 말이란다.”

달콤한 향기에서 무엇인가 스며들어 오는 것 같았다. 그녀가 붉은 입술을 움직여 무어라 했지만  비올렛은 들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비올렛이 잠에서 깨어났기 때문이었다. 어두운 천장이 보이며 머리가 아팠다. 자다 일어나면 으레 그렇듯, 갈증이 났다.

물이라도 마실까 침대에서 벗어나 테이블로 다가갔다. 그러다가 의자가 쿵, 하고 넘어졌다. 비올렛은 얼굴을 찡그렸다.

“성녀님.”

문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에셀먼드의 소리였다. 그 일 이후로 신전 기사단들이 번갈아 그녀를 호위했지만 야간은 에셀먼드의 비중이 높았다.

“괜찮아요.”

정강이를 잡고 비올렛이 낑낑댔다. 물좀 마시려 했는데, 아무래도 리체가 초를 갈아두지 않아 초가 꺼진 것 같았다. 비올렛이 더듬어 주전자를 들고 컵을 잡으려 하자 컵이 손에 미끄러져 떨어졌다. 물론, 그 컵이 쨍그랑 소리가 나며 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셋을 세고 들어가겠습니다.”

“........”

정확히 셋을 세고 에셀먼드가 들어왔다. 비올렛은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문이 열리자 복도에 있는 횃불의 빛이 비올렛의 방  안을 비추었다. 그는 횃불을 들어 방에 불을 밝혔다. 비올렛은 서 있었고, 컵은 깨져 있었다.

“불과 손이 나으신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러십니까.”

손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아물어 비올렛은 삼 일 정도만에 붕대를 풀 수가 있었다. 에셀먼드의 잔소리에 비올렛은 난감한 얼굴이었다. 생각해보니 이 남자 잔소리가 좀 많다.

“이런건 시녀를 부르셨으면 되실 일입니다.”

“겨우 물을 마시는 일인걸요.”

비올렛이 적응이 되지 않은 일이 있다면 누군가를 부리는 일이었다. 앤은 사실 비올렛이 말하기 전에 알아서 챙겨주는 타입이라 비올렛이 무언가를 요구할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겨우 물한잔 먹자고 리체를 부르는 것은 사실 내키지 않았다. 결과는 이것이었다. 비올렛이 조심스럽게 발을 올리려 할 때였다.

“잠깐!”

에셀먼드가 소리쳤다. 비올렛은 깜짝 놀랐다. 비올렛이 신고 있는 것은 얇은 천으로 만들어진 슬리퍼였으므로, 만약 함부로 발을 내딛었다간 유리 파편에 찔릴게 분명했다. 잠이 덜깨서 이런 상황 판단도 잘 안되나보다. 비올렛은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찔려봤자 성력만 쓰면 회복이 될텐데, 그도 참 어지간하다. 가디언들은 다 이러는 것일까. 비올렛이 생각할때였다.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십시오.”

에셀먼드가 다가왔다. 그는 정복을 입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두꺼운 신발을 신고 있었다. 불편하진 않는걸까. 비올렛이 생각했다. 에셀먼드가 바로 앞에 다가왔을때 까지 비올렛은 앞으로 그가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르고 있었다.

“오, 오라버니!”

비올렛은 당황했다. 에셀먼드는 비올렛의 허리를 잡아 들어올렸던것이다. 갑작스럽게 허공에 붕 뜬 발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에셀먼드 목을 끌어안았다. 잠옷 너머로 그의 체온이 느껴졌다.

“무, 무겁습니다. 내려주십시오.”

“발을 다치실겁니다.”

“그러면 하다못해 침대에 라도 내려주세요!”

비올렛이 소리쳤다. 저녁이라 다행이었다. 얼굴이 빨개지는 것도 모르니. 그가 다시 자세를 받춰 무릎 아래를 받쳐들어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그것과 이건 다른 문제였다. 왜 침대에 내려 주지 않는 것일까. 그 소란에 리체가 퉁퉁 부운 얼굴로 곁방에서 나왔다.

“어머, 성녀님, 이게 무슨 일이에요!”

“치워라.”

에셀먼드의 말에 리체는 겁을 먹은듯 고개를 끄덕이며 청소도구를 가지러 갔다.

“무겁습니다. 내려주십시오.”

비올렛이 말하자 에셀먼드가 말했다.

“침대에도 유리 파편이 튀었을지도 모릅니다.”

“거기 까지 파편이 튀나요?”

“생각보다 멀리까지 튑니다.”

“.........”

그렇다면 그냥 조금 먼곳에 내려버리면 될 텐데, 왜 굳이 이렇게 안고 있는 것일까. 이런것도 가디언의 임무에 포함된 것일까. 비올렛은 생각했다.

“무겁지 않나요?”

“무겁습니다.”

말도안돼! 그래서 설탕을 줄였는데 아직도 무겁단 말인가. 비올렛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실 초콜렛이나 쿠키를 몇개 먹긴 했는데, 정말로 그것까지 포함이 된 것일까. 사실 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비올렛은 요사이 설탕과 살의 상관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요리사나 제빵사가 몇명이 뒤바뀐지도 모른 채 비올렛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청소도구는 곁방(수발시녀들이 거주하는 작은 공간)근처의 창고에 마련되어 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는 동시에 우당탕 무언가 쓰러지고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하아.”

비올렛과 에셀먼드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무거우니 복도에라도 내려주세요. 경.”

비올렛이 견디다 못해 말하자 에셀먼드가 대답했다.

“잠옷을 입은 모습은 남에게 함부로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참 답도 없었다. 그의 품에 안겨서, 지금 리체가 저 파편들을 모조리 치울때 까지 기다리라는 소린가. 두근두근거리는 그녀의 심장박동이 그의 두꺼운제복에 가려 느껴지지 않기를 바랐다.

“무슨 꿈을 꾸신겁니까?”

“....아.”

무슨 꿈을 꿨더라? 분명히 그 ‘신’을 다시 만났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잊어버렸어요.”

비올렛이 말했다. 에셀먼드는 그 대답이 못마땅 한듯 했다. 머리에 다시 두통이 일어났다.  그녀는 팔을 들어 이마를 가렸다. 왜 두통이 나나 생각했더니, 이마에 있는 성흔에서 두통이 일어난 것도 같았다. 성흔에서 뜨거운 기운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에셀먼드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이마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신이 전지전능하다 한다면, 만약 그 꿈속의 여자에게 물어본다면 해답은 간단히 나오지 않을까? 그녀는 생각했다.

리체가 다시 돌아와 빗자루를 쓸었다. 에셀먼드는 가만히 그녀를 안고 있었는데, 무겁다는 말이 마치 거짓말인 것 처럼  흔들림 없는 자세로 그녀를 안아 들었다. 다소 민망한 자세로 안겨 있음에도 리체는 세속에서 남매셨다니 사이가 정말 좋으시군요! 따위의 말을 하며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그제야 에셀먼드는 비올렛을 침대에 내려 주었다.

그런데 에셀먼드가 나가지 않았다. 왜 그런가 해서 그를 보았더니 그는 비올렛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왜 그는 나가지 않는 것일까? 리체도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가버렸는데. 비올렛이 생각했다.

“어떤 꿈을 꾸셨습니까?”

에셀먼드는 조금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대화를 원하시지 않았습니까? 무엇을 숨기는게 있습니까?”

“아니.....”

“‘그 때’의 악몽을 꾸시는 걸 혹 제게 숨기시는게 아닙니까?”

슬프게도 ‘그 때’라고 지칭할 만한 일이 너무 많아 비올렛은 에셀먼드가 무엇을 물어보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 그녀를 수호하는 그의 임무에서 그녀가 꾼 꿈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오늘 일어난 일은 그저 자다가 잠에서 깬 그녀가 물을 마시려다 바보같이 컵을 깬 것이었다. 그것으로 끝내면 되는 일을 이렇게....

“오라버니. 참 다정하셨군요.”

비올렛이 자신도 모르게 무심결에 말했다. 그래, 다정했다. 이 남자는 다정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평생을 바쳤다. 심지어 죽은 선 후작마저도 ‘어쩔수 없다’라고 넘겨버렸던 일을 넘기지 못하여.

그렇구나, 다정한 사람이었다. 가슴이 뛰었다. 꽉 닫았던 마음은 흘러넘쳐 깊은 강을 만들어낸다. 막아낼수가 없다. 알면 알수록 그를 더욱 더 좋아하게 되었다.  에셀먼드는 비올렛의 입에서 나온 말이 예상 밖이었는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말했다.

“대화를 원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말은 정답이었다. 그녀가 대화를 원했다고 해서 그것을 지키려 하는 것도 다정함이었다. 비올렛이 말했다.

“정말로 아무 꿈도 아니에요.”

죄책감이 그를 붙잡고 있는 것이지만, 에셀먼드가 괴로워 하지 않길 바랐다. 그는 이렇게나 꼼꼼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왜 오해했을까. 비올렛은 멍하게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에셀먼드 경께서 옆에 있으면, 저는 잠을 이루지 못할 거예요, 나가 보세요.”

비올렛이 말했다. 그러자 에셀먼드는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어두운 방 안, 그가 나간 것만으로도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비올렛은 에셀먼드가 나간 방 문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 작품 후기 ============================

원랜 다른 사건하나를 더 집어넣어야 하는데. 에셀먼드가 자꾸 고집을 피워서 에피소드를 두개만 집어넣엇네여 ㅡㅡ 이놈의자식!!

참고로 에셀먼드의 말이 맞습니다. 유리는 깨질때 정말로 사방팔방 튀어올라요. 그러니까 깨먹으면 그 주변은 샅샅히 조사하는게 옳아요. 참고로 저도 그걸 모르고 했다가.. 진짜 제대로 된 유혈사태를  경험했습니다. 무언가에 찔리다라는 경험은 그게 처음.. 유리를 깼는데 그게 의자에 있었던것도 모르고 앉았다가 허벅지에..후..아직도 흉터 있어요.

여튼 이건 옳아요! 조심하세요 물론 이 기사님께서는 사심충족에그걸 이용한거지만

아차, 그리고 가상캐스팅은 제가 한게 아니고 독자님이 팬심으로 하신겁니다.

제가 한거에 대해서는 당연히 아쉽네 좋네 이렇게 말이 나올수도 있지만..

같은입장인 독자님이 하신걸 아쉽다 어쩐다 표현하는건..실례가 아닐지..

이걸.. 어울리네 안어울리네 말하는것은 팬아트나 팬픽을 잘썼네못썼네 하는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시간들여서 해주신분께서 맥이 빠지실것같아여.. 이부분 조금만 생각해주심 감사하겠습니다.

이건 비단 한분만 말하는게아니구, 다른 독자님들께도 부탁드리는거에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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