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원에 핀 제비꽃-106화 (99/208)

00106  피어오르는 꽃봉오리  =========================================================================

“아가씨, 정신 차려보세요 아가씨.”

앤이 그녀의 몸을 닦아주는 것이 느껴졌다. 성력을 썼던 탓일까, 몸에 다시 열이나 피를 토했다. 앞으로 이틀 후면 신전으로 가는것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다시 악화되어버린 몸에 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니엘 도련... 아니 그 남자는 떠났다고 해요.”

“........”

식은땀을 흘리는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분명 그녀는 잘못한게 없다. 잘못한 게 없는데도, 죄책감이 들었다.

“첫째 오라버니는?”

“아시잖아요.”

앤이 말했다. 비올렛은 말라붙은 입술로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언제나와 똑같은 사람이겠지. 그러나 비올렛은 분명히 그의 눈에 있던 한조각의 감정을 목격했다.

“용서할 수 없어요, 친오빠처럼 따랐던 아가씨를, 어떻게, 어떻게.......”

“모두가 이 일을 알고 있어?”

그녀의 물음에 앤이 고개를 저었다. 비올렛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앤, 나는 괜찮아 나는 별로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정말이었다. 의외로 비올렛은 크게 타격받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겪지 않은 순수한 아가씨였다면 이 일이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겠지만 그녀가 삼년정도 꽃의 거리에 머물렀던 순간들을 생각한다면 그 충격역시 줄어들었다. 다니엘을 상상하는 것은 소름끼치도록 싫었고 배신감마저 느꼈지만 그저 그 뿐이었다. 그나마 그것을 다행이라 해야 하나. 비올렛이 씁쓸하게 생각했다. 우선 몸이 아프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또 다를지도 몰랐다.

“나 생각보다 약하지 않아.”

“거짓말 마세요 아가씨.”

앤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앞으로 계속 같이 있을거니 각오 하셔야 해요.”

“알았어.”

비올렛이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겨우 붙잡았던 의식은 멀어졌다. 멀어진 의식 사이로 누군가가 다녀간다. 에이든과 시수일레의 목소리도 들렸다. 작별의 시간에는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조금 더 멋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몸은 꾸준히 회복을 요구했으며, 그녀는 계속 의식을 잃었다. 신은 아무래도 그녀에게 작별마저 허용치 않으려는 듯 했다. 검은 의식이 몸을 지배할때면 이따금 악취와 악기(惡氣)가 그녀를 괴롭혔다. 붉은 두 눈이 그녀를 지켜본다. 예전부터 지켜보고 있던 그 시선은 지금와서 너무나 강대해졌다. 선잠과 깨어나지 않는 의식 속, 비올렛은 계속 괴로워 했다.

“삼켜라.”

낮은 목소리가 다정하게 들렸다. 따스한 감촉이 차갑게 식어내린 얼굴에 닿았다. 갑작스럽게 입술이 벌려졌다. 부드럽고 말캉한 감촉이 느껴지며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비올렛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것은 피였다. 누구의 피일까. 밀어내고 싶었지만 비올렛은 그것을 삼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차가운 몸에 따스한 기운이 올라왔다. 온 몸에 서린 고통이 사라져간다. 그녀를 응시하는 붉은 눈동자가 그 열기를 거두었다. 꿀꺽, 꿀꺽. 그녀는 그것을 삼키었다. 그녀는 그것을 마시면 회복될 것을 알고 있었다. 입에 머금어 뜨거어진 붉은 피는 비올렛의 생명이 되었다. 냉기만이 돌던 몸에 온기가 피어났다. 피를 준 남자는 부드럽게 비올렛의 이마를 쓸었다.

피는 몇번이고 계속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비올렛은 그것을 삼켰다. 손에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그 손의 감촉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그는......

*

비올렛이 눈을 뜨자 창에는 아침햇살이 가득 쏟아져내렸다. 그것이 눈을 따갑게 찔렀기에 비올렛은 커튼을 치려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몸이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이상하게도 몸이 가뿐했다. 침대에서 내려가자 다리가 조금 떨렸지만 그녀의 몸을 제대로 지탱해 주었다.

“.......아가씨?”

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깜짝 놀라 비올렛을 보았다. 비올렛이 제발로 서 있었다.

“앤, 어제 누가 왔었어?”

비올렛의 물음에 앤이 고개를 저었다.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생각했다. 따스한 꿈이었다.

“이제 시간이네요.”

“.......”

아, 그래. 이제 신전에 가야할 시간이 다가왔다. 비올렛은 굳은 얼굴이었다. 정말로 짖궂은 신이 아닌가. 돌아갈때가 되어서야 이렇게 몸이 회복이 되다니 말이다. 마치 신전으로 걸어들어 오라는 것 같았다. 비올렛은 치지 못한 커튼을 바라보았다. 새들이 짹짹거리는 맑고 청명한 겨울의 아침이었다.

*

“그동안 고마웠어 앤.”

머리를 하나 하나 정돈시켜주는 앤에게 비올렛이 말했다. 작별이라고 하지만, 어쩐지 와닿지가 않는다. 거의 7년동안 같이 있었던 사람이다. 떨어진다는 사실이 와닿을리가 없다.

“아가씨, 정말로. 정말로 제가 없어도 되는건가요? 나는 같이 있고 싶어요.”

“그건 싫어. 아마 오라버니는 앤이 계속 있는걸 원할걸.”

“네?”

“후작님 말이야. 이제 후작님이라 불러야지.”

“후작...님이요.”

앤이 말을 흐렸다.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앤을  보며 비올렛이 말했다.

“너의 아가씨는 나중에 생길거야. 오라버니가 결혼을 하고 애를 낳으면, 어여쁜 딸이 태어나겠지. 그러면 그때 내게 해주었던 것 처럼 앤이 돌봐주면 돼.”

“아가씨....”

그녀는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입을 꼭 다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거울에 비친 앤은 붉은 얼굴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목을 끌어안을 뿐이었다.

무엇을 하느냐, 무엇을 하지 않느냐는 정하지 않았다. 신전에서 어떤 행동을 할 것이냐, 그녀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도 몰랐다. 이제 운명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중요한 것은, 비록 타의에 의하기는 했어도 비올렛은 그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훌쩍이는 앤 뒤로 새하얀 죽은자가 입을 수의가 보였다. 곧 입어야 할 그 옷을 그녀는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

모든 이들이 모인다. 비올렛을 알고 있던 이들은 너무나 적었다. 시수일레가 훌쩍이고 있었다. 다니엘은 당연하겠지만 이곳에 올 수 없었고, 에이든은 보이지 않았다. 에셀먼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어째서인지 모두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비올렛은 자신이 그렇게 우울해 보이나 생각했다. 라이셀 백작 부부가 고개를 끄덕이자 시수일레가 뛰어가 비올렛의 목을 끌어안고 울었다. 비올렛은 그 포옹을 받아들였다.

“다시 볼 수 있는거지?”

“물론이지.”

비올렛은 대답했다. 착한 친구. 비올렛이 그녀에게 짜증을 냈던 것은 시수일레가 그것을 받아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토록 비올렛은 어렸다. 그녀의 상처만이 너무 크다 생각해서 시수일레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다. 라이셀 백작 부부가 그녀와 비올렛이 어울리는것을 막았어도 그녀가 꾸준히 다가왔다는 것을 생각했어야만 했다. 그녀가 비올렛을 대하는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고 서로 다가갔다면 더욱 더 행복한 나날을 보낼수도 있었겠지. 그러나 이젠 이미 늦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비올렛과 라이셀 백작부인이 인사했다.  젊었던 그녀의 얼굴은 세월의 흔적이 드러나보였다. 아,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던 것인가. 비올렛은 생각했다. 미워하고 원망하는데 시간을 모두 써 버린 것 같았다.

“미안해요 성녀님.”

그 말에 비올렛은 미소지었다. 백작 부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제 속세와의 비올렛은 사라지고 진정한 성녀 비올렛만이 남는다. 아직 완벽한 성녀가 아님에도 비올렛은 성자처럼 웃고 있었다. 무엇을 해도 다 받아줄 것 처럼, 자애롭게.  그것이 얼마나 서글픈 슬픔을 뒤로 한채 피어난 것인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백작부인이 시수일레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이상했다. 영원히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었다.

그래도 날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 있구나. 내가 간다니 슬퍼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언제나 날을 세우며 살았던 그녀의 주변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저 멀리 앤이 울고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상하게도 하녀들 몇몇도 울고 있었다. 잭은 아이고 성녀니임, 우리 성녀님 간식은 누가 책임져주나, 라며 울고 있었다.  저 멀리 칼츠 경 역시 서 있었다. 분명 이곳을 싫어했다. 그럼에도 떠난다 생각하니 놀랄만큼 사랑스러운 곳이 되어 있었다.

그때 에셀먼드가 눈에 보였다. 그 뒤를 에이든이 따라왔다. 에셀먼드는 푸른색이 섞인 하얀 예복을 입었고, 에이든은 군청색 옷을 입었다. 모두 다 그들의 머리색과 잘 어울렸다.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수근거렸다.

아, 이제 되었다.  비올렛은 미소를 지었다. 에셀먼드는 여전히 냉정한 표정이었다. 마지막인데 웃어주었으면 했다. 비록 이 마음을 마음에 품고, 점점 버려갈지언정 조금이나마 웃어준다면, 그 웃음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도 나쁘지는 않을 텐데. 비올렛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언제나 어두운 색 위주의 옷을 입던 에셀먼드가 밝은 옷을 입자 그의 준수한 얼굴이 부각되어 보였다.

“...밝은 그 옷색이 오히려 더, 잘어울리시네요.”

비올렛이 말했다. 에이든이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에이든의 그 웃음 소리는 누가 들어도 억지로 밝은 척 하는 웃음이었다.

“그렇지? 나도 형이 이런 밝은 옷이 어울리는지 처음 알았어.”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에셀먼드는 자신의 옷을 물끄러미 내려보다 비올렛을 보았다. 그리고, 그 얼굴에 약간이나마 곡선을 그렸다. 아, 그가 웃었다.

이상하게도 마음을 버리려 했는데 그것에 가슴이 뛰었다. 어울린다고 하니 좋아해주는구나. 처음부터 마음을 알고 그를 믿었더라면 어쩌면 더욱더 많은 모습을 간직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이것이 무슨 소용이랴. 그는 이제 다른 이에게 미소를 지을 것이다. 냉정한 그의 성격 상, 누군가에게 활짝 웃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후작이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듯, 그의 자식에게 이따금 그런 미소를 지어줄 것이다. 그는 다정한 사람이니 아이들은 그를 분명 좋아하겠지.

마지막이 비록 엉망이었을지라도 괜찮다. 그녀 때문에 그는 스스로 형제를 버려야만 했다. 비올렛이 이따금 느끼던 이 집에 와서 화를 만들었다는 죄책감과는 별개로 이 남자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언제나 한결같은 사람. 그래서 좋아했다. 그러니 이 사람의 인생을 지켰다는 것으로 자부심을 가지며 영원히 살아갈 수 있었다. 불행을 불러들였던 그녀는 이곳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비올렛은 이제껏 보지못한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살짝 지었던 입술의 미소를 그녀가 평생 마음에 담아두고 살듯이, 그도 비올렛을 떠올릴 때마다 언제나 독기에 차 저주를 퍼붓던 것과는 달리, 이렇게 웃는 모습을 기억해 주길 바랐다.

일자로 깔린 푸른 비로드를 따라 늘어선 사람들을 바라보며, 비올렛은 그 사이를 걸었다.   에르멘가르트가의 상징인 포효하는 늑대 깃발 앞에 선 그녀는 붉은 추기경이 눈 앞에 와 있는 것을 보았다. 체자레는 그녀에게 다가가며 통이 넓은 수의를 입느라 제대로 정돈되지 않은 그녀의 머리를 제대로 정돈 해 주었다. 머리가 아찔했다.

“몸이 회복되어 다행입니다. 후작께 약을 드렸는데, 제대로 마시고 기운을 차리신 것 같군요.”

체자레가 미소지었다. 아, 약을 주었나. 그렇지만 그 약을 먹은 기억은 없는데. 아니, 앤이 가져온 약 중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어차피 그가 약을 준 목적은 이렇게 쉽게 그녀를 데려가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는 어딘지 이상했다. 비올렛이 생각하는 그는 비올렛을 손에 넣을 수 있어 기쁜 얼굴을 하고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체자레는 묘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시선이 비올렛을 향한다. 그것은 동정일까. 어쩌면 체자레도 이것을 겪었을지도 몰랐다.

“이제 베일을 쓰십시오.”

비올렛은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 그들을 바라보았다. 다시 만날 수 있음을 안다. 영원한 이별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서글펐던 것은 이제 품어왔던 마음을 버리리라 결심했다는 것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무엇이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녀는 너무나 어려서 지금도 에셀먼드가 말한 그대로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그 어리고 나약한 겁쟁이라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으려 했다. 신전의 시녀들이 가져온 수의의 베일을 그녀는 뒤집어 썼다. 그녀의 눈은 시야를 가리기 전 까지 비올렛은 에셀먼드 쪽으로 시선을 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는 그의 얼굴은 언제나와 같았다. 마지막까지 냉정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형제를 버린 것을 후회하고 있을까. 정말로 괜찮을까. 묻고 싶었다. 이제는 완전히 시야를 가려버린 천은 무척이나 두꺼워 앞을 전혀 볼 수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숨쉬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본디 성인이 된 성녀가 신전으로 가기 전에 치렀던 의식이었으며 이것을 따라서 신관들이 속세와 인연을 끊는 결별 의식의 기원이었다. 약 백여년 후 만에 다시 열리는 이 의식은 어째서인지 엄숙하다는 느낌보다는 슬픔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나 신의 대리인 비올렛 에르멘가르트는 오늘 부로 신의 대리자가 됩니다. 속세의 모든 인연을 끊고, 속세의 모든 권리를 포기합니다.”

비올렛 에르멘가르트.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그 이름을 써 보았다. 후작이 남겨준 유산 같은  성을 버리기 위해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젠 후작은 아버지가 아니다. 에셀먼드도  오라비가 아니다. 에이든도 가족이 아니다. 이 집에서 떠나야 했던 것 처럼, 이 집에서 머무르게 했던 기본적인 '성'이 사라졌다.

“이 순간 부터 저는 비올렛 에르멘가르트가 아닌, 아그레시아의 성녀, 비올렛입니다.”

그녀는 낭랑하게 죽음을 선언한다. 죽음을 상징하는 수의를 입은 채. 이제 비올렛은 성녀다. 신에게 매여 사랑도 결혼도 용납되지 않는 진정한 신의 대리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전 성녀들은 어떠했을까. 아그레시아는? 아나스타샤는 어떤 마음으로 이것을 받아들였을까.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서글픔은 아마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비올렛은 문득 새파란 하늘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 하얀 베일은 하늘을 볼 수가 없다.

아아. 이제 번민하던 마음도 끝난다. 이곳을 눈에 담는 것도 마지막.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마지막으로 후작, 작별인사를 하십시오.”

체자레의 말에 에셀먼드가 움직이는 듯 했다. 그때 수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검은 그림자가 그녀에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뚜벅거리는 소리. 비올렛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러다 심장이 멎는 느낌이 들었다. 몸을 감싸는 압력이 느껴졌다. 후작은, 그는, 비올렛을 꽉 껴안았던 것이다. 그렇게 애정을 담아서. 그의 호흡이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비올렛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터졌다. 의연하려 했지만 울음으로 등이 떨렸다. 에셀먼드는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따스한 포옹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리하여 비올렛은 절감한 것이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이제 정말 그를 기억할 수 있었다. 얼굴과 미소 뿐만이 아니라, 온기까지 기억할 수 있으니. 정말로 오늘은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때 옆에서 철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검의 소리로서, 옆에 온 사람은 기사인 듯 했다. 오른쪽으로 걸어온  사내는 에셀먼드와 그녀의 포옹을 멈추게했다. 분명 이런 일을 할 사람은 로디온 경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로디온 경이 뻗은 그 손이 그녀를 꽉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을 잡는다는 것에 어쩐지 에셀먼드와의 일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에셀먼드와는 손을 잡았다.

처음 왕궁에서 만났을 때도, 아나블라의 괴롭힘에 나가지 못하게 된 애녹시 글로리에 혼자 서재에 틀어박혀 있었을 때도, 무도회 때도 모두 다. 그 손, 그 손 때문에 비올렛이 마음을 품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안정되며 로디온 경의 손도 에셀먼드의 손 처럼 다정하게 느껴졌다.

그의 손을 잡고 비올렛은 무언의 작별의 인사를 했다. 그들의 오라비들에게, 이 저택의 모든 것들에게.

야옹, 야옹,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시녀들의 손에 소중하게 들렸을 그 고양이들은 신전에서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이것 역시 에셀먼드가 그녀에게 주었던 선물이었다. 이 미물들의 울음은 그와 이곳을 추억할 수 있게 하리라.

잊을거라고, 버린다고 말하면서도 비올렛은 필사적으로 잊고싶지 않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잊는것을 갈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아픈 마음도 퇴색된다는 것을 안다. 3년동안 꾹 눌러 참던 마음이 다시 흘러넘쳐버렸지만, 언젠간 그 마음도 말라붙어 버릴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잘있어요. 비올렛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녀가 떠나는 이 집이 그에게 행복의 보금자리가 되길 바랐다. 평생을 바친다는 맹세만으로도 미움을 벗어날 수 있었으니, 자신에게 지어주었던 작은 미소보다는, 더욱 더 활짝 웃을 수 있을 만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로디온 경이 조심스럽게 그녀를 마차로 올려주었다. 꽤나 커다란 마차였는지 시녀 둘이 그녀의 양 옆에 타서 그녀의 수의를 정돈해주었다. 로디온경도 뒤이어 마차에 올라탔다.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얼굴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그러나 베일에 가려지는 것이 다행인 것은 그녀가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베일이라는 것은 어쩌면 신의 품으로 들어가는 자들을 위해 마련된 장치였을지도 모른다.  이전의 성녀들도, 신관이 될 소년들도 모두 이 베일 뒤에서 눈물을 삼키고 있었을 것이다.

또 다시 그녀의 세상은 끝났다.

마차는 돌아간다. 이제 그녀의 앞에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교황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유일하게 아는 인간인 체자레는 믿을수가 없었다.

시야가 차단되니 내면에 집중할 수 있었다. 결국 그녀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말룸에게 죽으려 했었다.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까.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저 알 수 있는 것은 이제 그녀가 머물 곳은 교황의 옆이었다는 것이었다.

“성녀님, 추기경 예하께서 드리라 하였습니다.”

시녀중의 한명이 약병을 내밀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귀잠에 드는 약입니다.”

“성하께서 특별히 하사하신 말로 일정이 더 빨라질 예정이오나, 몸이 회복이 덜된 성녀님께선 분명 무리가 갈 것입니다. 잠에서 일어나시면 성에 당도해 있을 겁니다.”

비올렛은 망설이다 그 병을 들이마셨다. 수도에서 교황령까지는 약 삼일정도 걸린다. 그것을 눈을 뜨고 지내는 것은 고문임이 틀림없다. 아마 그 시간동안 더욱 더 슬퍼질 것이었다. 비올렛은 그 약을 마셨다. 약효는 그대로 드러나 졸음기운이 퍼졌다. 비올렛은 꾸벅꾸벅 졸았다. 뒤이어 시녀들이 그녀를 폭신한 소파위에 눕히는 감촉이 느껴졌다.

*

“도착하였습니다.”

잠이 들었나 싶더니 도착한 것은 금방이었다. 로디온 경이 내미는 손을 익숙하다는 듯 잡고 비올렛은 마차에 내렸다. 다리가 풀려 넘어질 뻔한것을 그가 잡아주었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지금은 낮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녀를 모시던 시녀 한명이 말했다.

“겨울인데 따스하네요.”

“교황령은 성하의 가호를 받아 언제나 이런 날씨가 계속됩니다.”

그러고 보니 달콤한 꽃향기가 그녀의 코를 찔렀다.

“잠은 푹 주무셨습니까?”

체자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체자레의 목소리가 들리자 안심이 되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이곳은  냄새도, 온기도 낯설었던 것이었다.

“제가 손을 잡아 드릴까요?”

그렇게 말하자 로디온 경이 손을 꽉 쥐었다. 덕분에 비올렛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벌써부터 그와 척을 지어서 좋을것은 없었다. 체자레는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알겠다고 말한뒤 그녀를 대 예배당으로 데려갔다.

“이제 이곳에서 성녀님께서는 신의 대리자가 되었으며, 신전 소속임을 다시 증명할 것입니다.”

체자레가 말했다. 어디선가 부드러운 음악소리가 들렸다. 레기우스 살바나 때 들었던 아름다운 목소리의 하모니, 그 대합창은 마치 이곳이 천국처럼 느껴지게 했다. 이곳 교황성은 무척이나 복잡한 구조였기 때문에 비올렛은 몇번이고 넘어질 뻔 했다. 그리고 거대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음악소리는 바로 그곳에서 나고 있었다. 넋을 잃을만큼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비올렛은 그 아름다운 울림에 잠시동안 눈을 감았다. 그녀가 보이는 것은 새하얀 천 밖에 없었지만 대충 진한 색은 구분할 수 있었다. 알록달록한 색깔, 아무래도 색유리를 입힌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는 곳에 온 듯 했다. 그러나, 색유리는 너무나 호사스러운 물건이라 왕궁의 예배당에도 그것은 거의 없었다. 얼마나 커다란 유리가 그곳에 있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색유리만으로도 교황성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가 디딘 곳이 폭신했다. 아무래도 이곳은 비로드 위인 듯 했다. 그는 로디온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떼었다.

한 걸음, 어린 비올렛의 악몽이 스쳐지나간다. 너무나 끔찍했던 일을 당한 비올렛은 후작가에 와서 울고 있었다.

한 걸음, 신관에게 끌려갈 뻔해 도망갔던 비올렛에게 왕자같은 사람이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에셀먼드, 그는 그녀를 왕자가 아닌 그녀의 오라비라 말했다.

한 걸음, 엄격한 훈육에 심한 매질을 당한 그녀를 그가 발견했다. 그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던 비올렛의 상처를 눈치챘으며, 앤을 만나게 해주었다.

한 걸음, 납치되었던 그녀가 흘린 피로 겨우 자라난 초록의 새싹을 발견해 구하러 와 주었다. 이자카의 말대로 그누구도 발견하지 못했을 그 작은 새싹을 발견한 것은 그 뿐이었다.

한 걸음, 고립되었던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이 순간 그는 가혹한 현실에서 그녀를 구한 동화속의 마법사였다.

한 걸음, 그는 비올렛의 소원을 들어 애녹시 글로리때 같이 나가주었다. 그때 그녀는 그가 거스름돈도 모르는 도련님이라는 것을 알고 그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한 걸음, 공작의 성에서 겁을 집어먹은 비올렛의 부탁을 들어주어 집으로 귀환했다. 왕명을 어기는 것이라, 그 자신이 어떻게 될 줄 알면서도......

한 걸음, 선물을 주지못해 미안해 하던 비올렛에게 그대로 있어 달라 말해주었다.

한 걸음, 그녀에게 사죄를 했다. 평생을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왕의 명령에 억지로 떠나야 했으면서도 스물 한살이 된 지금까지도 맹세를 지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 그녀가 품었던 원망과 미움의 세상도, 애달픈 외사랑이 가득찬 괴로운 세상도 끝이 났다.  그 세상이 지옥이라 한다면, 이젠 또다른 지옥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비올렛은 로디온 경과 어느 지점에서 멈춰섰다. 눈물은 계속해서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들의 발걸음이 어느 장소에 머물자 그와 동시에 신성한 노랫소리는 멎었다. 적막이 감도는 가운데 체자레가 말했다.

“선언하십시오.”

체자레의 말에 비올렛은 앞을 보았다. 천 너머로 비치던 알록달록했던 색은 없어지고, 다시 새하얀 어떤것만이 앞에 서 있었다. 아마 그것은 어렸을적 체자레에게 들었던 거대한 아그레시아의 동상일 것이다. 이곳에서 비올렛은 다시한번 선언했다.

“신에게 내 삶을 바칠 것을 맹세합니다. 내 삶은 신에게 귀속될 것이며, 신의 뜻은 나의 뜻이 되오며 신의 의지는 곧 나의 의지가 될 것이니, 나는 신이 내린 나의 신성한 사명을 다하며 신이 내린 은총을 모든 신민들에게 베풀 것입니다.”

비올렛의 목소리는 고요한 예배당에 차분하게 울려퍼졌다.

“그녀의 베일을 벗기고 가디언으로서 충성 맹세를 하십시오.”

드디어 이 베일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의 손이 베일을 향했다. 하얀 천이 들어올려지며 비올렛은 눈을 깜빡거렸다. 로디온 경의 얼굴이, 아니, 로디온 경이어야 ‘할’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신이시여, 신이시여, 신이시여, 제발! 멈춰주세요! 그녀는 애타게 속으로 소리쳤다.

색유리의 오색찬란한 빛을 정면으로 받은 그 남자는, 비올렛이 그토록 원했던 남자였다. 잊으리라 결심하던 남자는 그렇게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 언제나처럼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는 그 냉정한 표정으로 아무 언어도 담지 않은채. 그녀가 떠나온 후작가에서 처럼 그렇게.

*

체자레와 왕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서 있는 기사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처음으로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체자레의 얼굴은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그는 살기마저 띤채 에셀먼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왕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분노를 억지로 가라앉히고 있었다.

“하, 하하! 그리하여, 그렇게도 기를 쓰고 이기려 했던 것입니까! 이러한 목적이 있어서! 로디온 경도, 그 이국의 칸도!”

체자레가 날카로운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여린 제자도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는 체자레의 금안이 무섭도록 섬뜩한 빛을 띠었다.

“전도 유망한 부단장께서, 고개를 숙이시고 가디언에 들어가겠다? 폐하, 내가 이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까.”

그가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왕에게 물었다. 왕 역시도 똑같은 태도였다. 두 지배자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기사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맑고 깊은 파란 눈으로 말하는 것이다.

“나라의 지배하는 왕과, 신성의 지도자의 대리인께 다시 한번 요구합니다.”

정중하게, 그러나 강한 어조로 남자는 말한다.

“신 앞에서 맹세했던 ‘레기우스 살바나’의 약속을 이행하여 주십시오.”

그의 푸른 눈은 결코 흔들림이 없었다. 레기우스 살바나, 신성한 무술을 이루는 대회의 우승자는 교황과 왕의 맹세에 따라 어떤 소원이든 이룰 권리를 갖는다. 그리고 이 남자는, 검의 명예를 짊어질 사내는 단 한가지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소박하며,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과분한 소원을 이루어 달라 말하는 것이었다.

“저의 소원은 성녀 비올렛의 ‘가디언’이 되는 것입니다.”

그 누가 저 남자의 피가 철로 이루어졌다 하겠는가, 그 누가 저 남자를 차가운 얼음과 같다 하겠는가. 무릎을 꿇은 남자의 두 눈에 서린 것은, 붉은 피로 이루어진 뜨거운 불꽃과도 같은 갈망이었다.

*

왜? 라는 의문을 가지고 물어보기도 전에 새하얀 제복을 입은 남자는 검을 뽑아들어 가운데에 박아 넣었다. 캉, 하는 소리가 대 예배당 안에 울려 퍼졌다. 어찌나 검이 깊게 박혔던지, 검은 손잡이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옆에는 아마 다른 가디언들도 무수히 박아 넣었을 검의 흔적이 보였다. 에셀먼드가 절도있는 동작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기사의 서약과 같은 예식이었다.

“신과 신의 대리자 앞에서 맹세합니다.”

이건 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언약을 입에 담고 있었다.

“나의 이름은 에셀먼드 에르멘가르트, 허나 오늘부로 에르멘가르트의 성은 버릴 것이며-”

비올렛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이것이 체자레의 약을 먹고 꾸었던 꿈이라면 끔찍한 꿈이다. 악취미인 꿈인 것이다. 빨리 깼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멍하게 생각했다

“당신의 검이며 방패가 될 것입니다.”

그는 손을 뻗은 채 그녀의 손등에 입술을 맞추었다. 그 입술은 꿈이나 환상치고는 데일것 처럼 뜨거웠다.

“당신의 곁을 ‘다시는’ 떠나지 않으며-”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됐으니 이제 그만 절 깨어나게 해주세요! 제발! 나중에 깨어나면 더 서글픔이 될것이 두려워 비올렛은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어서 나를 좀 누가 깨워줬으면 좋겠다. 이런 덧없는 꿈에서 부터 누가 제발 나를 구해줬으면.......

“신께서 허락하실 나의 시간을 모두 다 바쳐 당신을 수호할 것을 맹세합니다.”

그녀의 가슴은 쿵쿵대며 숨은 거칠어졌지만 에셀먼드는 얄미울 정도로 그대로였다. 그러나 비올렛은 에셀먼드의 두 눈빛에 서린 간절함을 보았다. 그것이 어떤 것에 기반되는 간절함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눈빛은 그녀를 옭아맸다. 그것은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푸른 불꽃이었다.

“나는 당신의 ‘가디언’ 에셀먼드입니다.”

그녀도 안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그녀의 간절한 상상이 맺은 환상이 아니다. 만약 환상이었다면 이런 잔인하고 지독한 꿈을 꾸는게 아니라, 조금 더 행복한 꿈을 꾸었으리라. 그녀는 성녀가 아닐 것이며 에셀먼드는 가디언의 맹세를 하지 않은채, 그들은 이 곳 안에서, 남녀로서, 부부로서 맺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꿈이 아닌 현실. 순백의 웨딩 드레스는 사자의  ‘수의’였고, 붉은 사랑 대신  푸른 ‘수호’를 맹세하며, 아름다운 반지 대신에 차가운 ‘검’으로  영원을 맹세한다.

이런 잔혹한 현실이 꿈일리가 없었다.

아아, 바보같은 남자. 끝까지 어리석다. 이젠 사죄하지 않아도 된다 했건만, 이 남자는, 이 멍청한 남자는 결국 그녀에게 평생을 걸쳐 사죄할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아도 했건만, 그의 작위를 버리면서까지 그렇게 그의 인생을, 빛나는 미래를 바치려 하는 것이다.

에셀먼드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간절함만을 담은 두 눈은, 어서 맹세를 허락하라 재촉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맹세를 받아들이지 않고 에셀먼드를 돌려 보낼 수 있었다. 그것이 옳았다. 지금의 후작위를 계승한 것은 에셀먼드가 아닌 에이든일 것이다.

그의 행복을 지켜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행복은 비올렛의 슬픔이었다.  이제 더이상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그의 고고하며 순수한 맹세를 비올렛은 마침내 그녀의 욕망이 충족되었다고 기뻐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해야 할 이 신성의 장소에서 가장 깨끗해야 할 성녀가 가작 추악한 마음을 품어버린 것이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충족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환희한 것이다. 기뻤다. 기뻐서 어쩔줄 몰랐다. 그녀의 마음은 처음으로 느끼는 지극한 행복에 젖어있었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성녀의 곁은 너무나 초라한 장소이다. 그는 나라의 검이 되어야 했다. 겨우 그녀의 검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녀의 옆에 있다간 그의 미래마저 가로막게된다. 혼인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나 기뻤다. 그녀를 선택한 것이 너무나 기뻐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항상 선택받지 못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그녀를 선택해 준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처음으로 환희라는 것을 경험한 몸과 마음은 그녀를 쉴새없이 유혹한다. 겨우 억눌러 막아놓으려던 마음이 범람해 흘러넘쳤다. 멈출수가 없었다. 왜 나타난 것인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억울할 정도로 초연했다.

“이 서약으로 당신은 나 비올렛에게 영원히 매인 몸이 될지어니─”

그만해, 안 돼, 그를 위해서는 거절해야만 해. 제발. 비올렛은 속삭였다. 목소리 역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극한 기쁨을 느껴버린 그녀의 마음은 몸을 지배하고 이성마저 지배했다.

“나의 시간과 생명, 그리고 운명을 당신의 검에 맡깁니다.”

차분한 목소리가 파문이 일듯 떨렸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간절하게 원했던 것이다. 너무나도 원해서 망가뜨리고 싶어했을 만큼, 간절하게 원하던 것.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남자의 남은 인생을 망쳐버릴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 저열하며 불결한 탐욕의 불길에 몸을 맡겼다. 이것이 그를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비올렛의 눈에 눈물이 떨어졌다. 그가 꽂은 검에 푸른 빛이 나더니 바닥에 박힌 틈에서 빠져 나왔다. 검의 형상이 갈라지는가 싶더니, 조각이 비올렛의 손등에, 그리고 에셀먼드의 손등에 들어가 박혔다. 따끔하는 감촉과 동시에 손등에 초승달과 같은 문양이 새겨져있었다.

「그로서 성녀와 수호자는 영원한 신의 맹세에 얽매였나니,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고결한 맹세였다.」

-역사는 밝혀낸 사실을 기록하고, 동화는 꿈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는 역사도 이따금 피와 권력의 싸움이 아닌  아름다운 꿈을 그려내고는 한다. 이것은 동화가 아니라 ‘사실’로 기술된 가장 유명한 기록으로 역사상 가장 유명한 기사 에셀먼드가 역사상 가장 천한 성녀 비올렛에게 행했던 맹세는 그만큼 숭고하며, 고귀했던 것이다.-

2부 피어오르는 꽃봉오리 完

============================ 작품 후기 ============================

2부 완결기념 추천과 코멘을 안주실건가요! !!!어제는 우리둘다 미쳤기 때문에 큽... 그것만은 바라지 않지만.. 여러분이 느꼈던 감정만큼..추천을..퐈아아악..눌러주시면..감사하겟습니다..

추천이 낭낭하지못하면 기분이 퐈악 상해버리니.. ㅠㅠ

열두시 좀 넘어서 후기 올리겠습니다. 오자마자 조금 점검하고 바로 올리는거라 다시 좀 수정 들어갈게요.

너무 늦게와서 죄송합니다.  이거 거의 40키바니.. 봐주세여..(비굴비굴)

bgm은 사실 설정하려 했으나, 극적인 효과에 대한 임팩트를 모두 음악에 의존하는건

아무래도 제 발전에 저해가 될 것 같아 그냥 두려 합니다 ^^

브금은 아마 중요한씬 하나1, 완결때 하나로 하지 않을까요?

여튼 열두시 후기에 3부 예고, 그리고 미삭제씬(체자레와 키쮸하는씬)이 있으니

보러 와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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