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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핀 제비꽃-102화 (95/208)

00102  피어오르는 꽃봉오리  =========================================================================

아직도 신성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던 사람들 사이에 경악이 퍼져나갔다. 심지어 왕조차도 그의 그런 말을 예상하지 못한 듯 했다. 교황파의 토대를 이루는 것은 왕의 숙부인 체자레의 왕위 계승권이 구심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것을 너무나 쉽게 포기하는 체자레를 보았다. 무슨 생각일까. 그가 생각없이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었다.

“이날, 이 순간부터 저는 황금의 눈을 가진 왕족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포기할 것입니다. 저는 왕족이 아닙니다.”

체자레는 다시 한번 왕쪽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국왕의 얼굴이 눈에띄게 일그러졌다. 그는 무엇인가 말하려 하지만 다시 한번 표정을 갈무리 하며 말했다.

“받아들이겠다.”

체자레는 그 다음으로 비올렛을 바라보았다. 왕위 계승권에 대한 것에 대해 말할 권리가 비올렛에게 있는 건가. 비올렛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체자레의 눈동자는 대답을 종용하고 있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이것이, 국왕파인 후작가에 대한 체자레의 선물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비록 체자레가 왕이 될 생각이 없다고 한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를 왕으로 만들 생각이 있었다. 벌써 대경하여 서로 쑥덕이는 그들을 보며, 비올렛은 체자레가 어느 누구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참 비겁하다. 체자레 자신은 왕이 될 생각이 없었고, 그에게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리 오십시오.”

체자레가 라즈니를 불렀다. 라즈니는 그 부름을 무시하고 찬찬히 비올렛을 바라보았다. 라즈니는 비올렛을 본게 퍽 반가운 듯 그 아름다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비올렛은 그의 시선을 싸늘하게 무시했다.

그 누구도 성녀의 행세를 한 라즈니를 탓하지 않았다. 이미 그녀는 처음부터 자신이 성녀가 아님을 밝히고 있었다. 처음부터 비올렛을 신의 대리자라 지칭하였고, 그녀에게 먼저 인사했다. 그러면서도 성녀로 비견될 만한 성력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모두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신전을, 교황을 두려워 했다. 이토록 신전은 무시무시한존재였다.

“조만간 데리러 갈게, 비올렛.”

라즈니가 비올렛의 귀에 부드럽게 속삭이며 체자레에게 걸어갔다. 성녀에 대한 재판은 끝이났다. 모든 것이 이제 끝이 난 것이다. 비올렛은 맑개 개인 하늘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흩어지는 사람들의 행렬이 보였다. 체자레가 순백의 옷을 입은 신관들과 라즈니를 데리고 광장을 벗어났다. 그는 스쳐지나가면서 잠시 에셀먼드에게 멈추어 있었다. 무어라고 소리를 들은 건지는 모르지만 에셀먼드의 시선이 비올렛을 향했다.

*

모두가 후작 가의 사람들을 극진히 모셨다. 혐의가 풀려난 그들은 왕이 보낸 마차를 타고 후작가로 가는 도중이었다. 에셀먼드는 어쩐지 비올렛과 마차를 타는 것을 고집했는데 비올렛은 이전처럼 그것에 거절하지 않았다.

마부의 채찍질에 마차가 굴러갔다. 에셀먼드의 시선은 노골적으로 비올렛을 향하고 있었다. 비올렛은 그를 보지 않았다. 그녀의 신경은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차라리 에셀먼드가 있어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비올렛은 눈꺼풀을 들 힘도 없었기에 눈을 감고 핑그르르 돌아가는 의식을 어떻게든 잡아 눌렀다. 아니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숨이 거칠어졌다. 아까까진 검으로 배에 구멍을 뚫었으니, 분명 수복하더라도 후유증은 남을 것이다. 땅에 떨어져 자살을 시도했을때도 그러했으니.

얼마지나지 않아 마차가 멈추었다. 광장은 수도의 중간에 있었으므로, 금세 당도할 수 있었다. 에셀먼드가 나가고 비올렛이 비틀거리며 마차를 나섰다. 에셀먼드가 내미는 손을 바라보던 비올렛은 그것을 잡지 않았다.  후작가는 어쩐지 기이한 침묵이 자리해 있었는데 사용인들의 표정은 모두 엄숙했다.  아직 남아있던 성기사단의 사람들 역시 그녀를 신기한 것을 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외경의 시선과는 달리 후작가의 분위기는 무엇인가가 이상했다.

하지만 비올렛은 분위기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서 방에 들어가야 한다. 어서. 비올렛은 저택 안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당장이라도 뛰어가고 싶었지만 그러할 힘도 없었거니와 넘어지기라도 했다가는 금방 표가 날 것이다.

피에 젖은 드레스에 나는 비린내가 역했다. 비올렛은 빨리 몸을 씻고 싶었다. 가까스로 방에 들어온 비올렛을 맞이하는 것은 빈 방이었다. 앤이 있어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그곳이 자신의 공간이라고 안심하는 순간 드디어 참았던 구역질이 왈칵 밀려들어왔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검으로 배를 찔렀을때 역류했던 피가 다시 입에서 나와 쏟아졌다. 비릿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그것이 더 역겨워 비올렛은 한참동안이나 울컥거리며 피를 토했다. 숨을 내쉴수도 없었다. 귀에 가득찬 것은 땅빠닥에 흩뿌려지는 토사물의 소리였고, 몸안의 모든 것을 게워내려는 장의 비명소리였다. 쓰러질 것 같은 그녀를 누군가 받쳐 들었다.

“....의원을 불러라 어서.”

에셀먼드의 목소리였다. 그의 품 안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밀어낼 힘도 없었다. 바들바들 거리는 손의 힘이 밀어내려던 그의 옷깃을 잡았다. 그녀는 에셀먼드의 품에 안겨 있었다.

“여, 여기있습니다!”

의원은 어째서인지 너무나 빨리 그녀에게 당도했다. 그것은 에셀먼드역시 마찬가지로 의문을 가지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대가 빨리 당도한 거지?”

비올렛의 눈이 느릿하게 깜빡였다. 숨을 쉬기 힘들었다. 이제보니 코에서도 피가 나오고 있었다.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아마 저 에셀먼드가 이런 행동을 할 정도면 그녀의 상태는 심각했으리라.

“후작님께서 신의 품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비올렛은 의식을 잃었다.

**

후작은 창문으로 쏟아져 내리는 청은색의 빛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그때만은 그는 건강한 사람이었다. 한참동안이나 그 신의 기적을 몸소 체험하던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정한 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분.”

그녀가 택한 것은 용서에 기반한 마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용서였고, 구원이었다. 후작은 타오르는 신의 빛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것이 비올렛이 한 일이라 의심치 않으며.

‘폐하의 명령을 따라라. 나 역시 찬성했다. 거부할 명분은 없다.’

‘아버지. 저는.’

‘네가, 어떤 마음을 품은지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하지 마라 에드. 너는 내 아들이다.’

후작이 차갑게 말했다. 에셀먼드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변명하지 않고, 반항하지 않은 것은 언제나 처럼 누군가에게 피해가 갈까 입을 다문 것이었다. 그가 혹독한 후계자 수련을 참아냈던 게 몸이 약한 다니엘에게도 이런 일을 시킬 수 없어 입을 다물었던 거라면 그의 마음 역시도 누군가에게 누가 될까봐 표현하지못 한 것이다. 언제나 그의 침묵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침묵이었다. 슬픔, 고통, 외로움을 호소하는 것은 짐이다. 그들은 한 땅을 책임지고, 기사들을 이끌며 나라를 지키는 수호자였으니, 그들의 피 역시 철이되어 흘러야만이 마땅한 것이다.

‘죄책감에 만들어진 그릇된 마음이다.’

‘저는 갈 수 없습니다. 그 아이의 곁에 있어야 합니다.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성녀님께 말하는 방법이 있겠구나. 공작 가에서 그녀를 데려온 덕분에, 폐하가 진노하시어, 너를 보내는 것이라고. 너를 사지로 보내라는 설득을 하라 부탁드려야겠구나. 아직 어린 그 아이에게.’

언제나 후작이 택하는 것은 이런 방법이었다. 후작의 아버지도, 그의 할아버지도 모두 다 이런 방법을 택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고통의 비명은 목뒤로 숨겨졌으며, 감정은 같은 사람의 피부임에도 마치 철  드러내지 않았다.

‘다니엘이 네가 그 아이에게 진실을 말했다고 했다.’

‘.........’

‘어떤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그건 자식을 잘못 키웠던 내 잘못이지 네 잘못이 아니다 에드. 너는 그 아이에게 평생을 바쳐선 안된다. 너는 이 가문의 후계자다. 폐하를 보필할 사람이야.’

‘......그럴순 없습니다.’

에셀먼드는 언제나 그의 말을 따랐다.  그리고 따르게 될 것이다. 언제나 그러했으니.

‘그 아이는 널 보고 싶지 않아한다. 널 피해다니는 걸 보면 모르겠느냐? 널 보는 것은 괴로움일 것이다. 네가 그애를 위한다면 사라지는게 좋다. 잊지마라. 그녀는 이 나라의 유일무이한 고결한 성녀이고, 너는 그 아이의 오라비다.’

에셀먼드는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그의 얼굴이 어떠했는지 후작은 알 수 없었지만 짐작만이 가능할 뿐이었다.

‘나와 폐하를 실망시키지 마라. 이것은 불명예로서  너는  자원의 형태로 그곳에 가게 될 것이다. 그곳에 있다 보면 네 그릇된 마음도 사라지겠지.’

‘........’

‘어떻게 해야할 지 알 것이다. 다니엘이 그 애를 잘 돌봐줄 거야. 너와 나와는 달리 그 아이는 네 어미를 닮아 다정한 아니니까 말이다.’

‘아버지.’

후작은 에셀먼드의 대답을 듣지 않은채 냉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충실하게 폐하와 그의 명령을 따랐다. 그리고 후작은 남아있는 여자아이를 보았다. 상처입고 눈물지어가는 그 여리고 약한 존재는 철저하게 파괴당했다. 그리고 후작은 깨달은 것이다.

여자아이는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절대 보고 싶어하지 않았던 게 아니다. 피해 다녔던 게 아니다. 그저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는 그 뒷모습이 서글펐다. 절망하고 또 증오하는 와중에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채 애가탄 소녀의 모습을 후작은 한참이고 바라보았다.

그것이 외사랑이 아님을 알았지만 후작은 침묵했다. 그것이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아주 당연히 해야만 했던 일이다. 마음을 억누르고, 또 억눌러 그것이 터지게 되더라도 그들이 할 수 있는것은 억누르는 것 밖에 없으니. 그는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가르쳤다. 이루어지지 못하며 서로를 갈망할 거라면 처음부터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나았다.

그러나 마음은 자라고 자라 이렇게 터져버렸다. 이것은 그녀의 슬픔이었다. 이것은 성결한 신의 기적이 아닌 그녀의 사랑이었다. 그녀의 자애가 아닌, 슬픔이 만들어낸 기적. 그 어떠한 것이 아닌 그녀의 까맣게 죽어버려 터져나온 마음이었다. 후작은 알 수 있었다.

후작은 그 아름다운 신성함을 보며. 손을 뻗었다.

“....죽지 마십시오.”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비올렛은 말룸에게서 죽음을 택할 거라는 것을. 자살 시도 후에 그렇게 죽음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살아갔던 것은 그녀가 죽을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세상이 그녀의 인생을 철저히 기만하며 나락으로 빠트렸다면. 그 세상 역시도 그녀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될 수 있는 법이다. 그것이 인과였으니, 후작은 그것을 받아들이려 했다.

비올렛은 성스럽지 않다. 그녀는 결코 이전의 성녀들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저 평범하며 사랑스러운 여자아이였다. 빛이 사그라들며 기적은 사라진다. 후작의 몸에 다시 힘이 빠진다. 후작은 그 아름다운 빛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두번째 광휘가 터져 나왔다.그는 빛에 휩싸였다.

인생이 스쳐지나간다. 그의 아버지처럼, 조부처럼 똑같은 침묵을 입에 걸며 충성을 하며 살아왔던 그의 덧없는 인생 전부가. 다정한 소년이었던 에셀먼드가, 몸이 약했던 다니엘이, 어머니를 잃고 관심을 끌기 위해 장난을 쳐야만 했던 장난꾸러기 막내 아들이, 그리고 슬픔에 물들어 있는 제비꽃 같던 여자아이가 스쳐지나간다. 분명, 아내가 있었으면 이 아이들을 모두 다 품었으리라.  그러나 어머니인 아내는 없고 아버지가 아닌 가주인 그만이 남았으니, 그것이 비극이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상향을 바라보던 후작은 눈을 감았다. 용서는 없다. 속죄도 없다. 구원은 없다. 그러나 다정한 여자아이의 마음만이 새하얀 빛이 되어 그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그는 평온과 안식을 얻었다.

============================ 작품 후기 ============================

죄송합니다 제가 통화를 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25분만에 500넘은건 너무한거 아닙니까... 이사악한 비글독자님들아ㅋㅋ

전 이제 자러갑니다.. 여러분들도 저 기다리지 말고 자세요.

내일 일어나자 마자 확인한 뒤 올릴게여~~

굿나잇

오야스미나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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