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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핀 제비꽃-96화 (89/208)

00096  피어오르는 꽃봉오리  =========================================================================

비올렛은 손이 묶인 채 방 밖으로 끌려나갔다.  방 밖에 서 있는 모두가 붙잡힌 채 서 있었다.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서 있었는지 모른다.  그녀를 잡아 가는 죄목은 비올렛이 성녀를 사칭한 ‘가짜 성녀’라는 것이었다. 창과 칼의 위협에 에워싼 채 호송되는 비올렛은 후작가의 입구 쪽에 끌려나온 후작을 보았다. 아까까진 열에 의식을 잃었던 후작이 눈을 부릅 뜬 채 꼿꼿이 서 있었다. 그는 죄인처럼 끌려나온 비올렛을 보더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지금 무슨 짓이오, 티게르난 공작.”

후작의 목소리는 반쯤 쉬어있었으나, 분명히 타오르는 듯한 기운이 있었다. 비올렛마저 그찌릿찌릿한 것을 느낄 정도였다.

“저는 추기경으로 이곳에 와 있습니다 후작. 성하의 명령입니다. 후작께서는 감히 가짜 성녀를 세워, 무도한 자들에게 신성의 권위를 훼손하셨습니다.”

“.........지금 책임지실 말을 하시고 계십니까? 이 나라의 성녀님이십니다. 이마의 성흔, 생김새가 그러합니다.”

“생김새는 조작이 가능합니다.”

체자레의 말에 후작이 그를 노려보았다. 그녀가 알아차렸던 것 처럼 후작 역시 체자레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낸 듯 했다. 체자레는 비올렛이 성력을 드러내는 것을 원하고 있다. 그리고 비올렛은, 그것을 숨기느냐, 드러내느냐를 선택할 수가 있다. 비올렛의 머릿속엔 방 안에서 체자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가족의 원수를 갚아야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당신에게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그가 속삭였다. 마치 악마처럼, 부드럽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그저 가만히 침묵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다 끝날 테니까요. 당신이 손에 넣고싶었지만 손에 넣을수 없는 것들, 모두가 당신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손에 넣을수 없다면. 적어도 망가트리는 것은 가능하지요.’

가족의 원수. 그리고 가질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 아아, 그는 어쩌면 이렇게 악마 같은가. 붉은 추기경의 성복을 입은 체자레는 비올렛에게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 침묵하면 에르멘가르트 가문은 파멸이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죠?’

비올렛이 물었다. 비올렛이 만약 드러내어 후작의 무고를 증명한다면 반대로 교황 측도 그만큼의 위험부담을 가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째서 그들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성녀를 몰아 넣은 교황 측을 사람들이 더이상 신뢰할 리가 없다. 그럼에도, 체자레는 왜, 어째서 이런 요란한 수단을 쓰는 것이냔 말이다.

체자레는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성하가 그것을 원하시니까요.’

교황이 그것을 원한다고 했다. 왜 갑자기 에르멘가르트 후작 가를 교황이 노리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그것이 데후바스와 에셀먼드의 혼약때문에 일으켜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비올렛은 끌려가며 다른 사람들을 보았다. 우선 에셀먼드를 비롯한 후작 가의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방에 구금된 듯 했다. 교황의 군대가 분명히 진을 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후작만은, 그녀와 함께 끌려갈 것이다. 비올렛이 후작을 바라보았다 후작의 머리카락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안심 하십시오. 그렇다고 당신에게 성녀를 사칭한  죄를 묻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저 당신은 그늘에서 조용히 해방된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 입니다.’

만약 성력이 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대로 신전에 끌려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교황의 꼭두각시가 되어 이용당하겠지. 왜냐하면, 그녀는 어떠한 기반도 없는 천민이었으니 말이었다. 비올렛이 이곳에 있기를 고집했던 이유는 그저 그 누구에게도 이용당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왕은 성녀에게 딱히 가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신분’에서 그녀는 최하위 계층이었기 때문이었다. 고귀한 태생의 성녀가 왕을 지지해도 그것은 별로 큰 효과가 없는 일이었다. 비올렛이 왕측에 몸을 담근 것은 왕에게 그녀가 필요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권력은 평등하게 유지된다. 신전 측도 비올렛이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다. 교황의 입지를 부정하거나, 신전을 규탄하며 교황과 적대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도 권력의 저울추를 가운데에 둔 행위중에 하나였다. 그렇지만 그녀가 신전에 진짜로 가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비올렛이 신전에 가게 된다면, 샤를의 입지가 위험하게 된다. 성녀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왕측과는 달리 교황은 적극적으로 그녀의 존재를 활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신전에게 눌리는 무력한 왕가보다는 교황의 오른팔인 체자레에게 힘이 실릴 것이다.

체자레가 왕이 정말로 되기 싫은건지는 모른다. 그러나 교황파 귀족들은 체자레가 왕이 되는것을 원한다. 체자레의 수명이 얼마나될지는 알 수 없다. 만약 그의 젊음이 영원하다면 그들은 영원한 젊은 왕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교황보다 왕권이 낮으나. 왕이 할 수 있는 것과 교황의 역할은 차이가 있었고, 왕을 압박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그들 세력에서 왕이 나오는게 편한 일이었다.

샤를.

그녀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샤를, 그래, 샤를이 위험했다.  비올렛은 그 환하고 순수한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비올렛이 세상의 비정함을 깨닫듯, 샤를도 그렇게 될 것이다. 비올렛을 대놓고 혐오하는 왕의 모습이 떠올랐다. 비올렛도 샤를도 천진함을 가졌듯 왕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샤를도 왕처럼 변하겠지. 어떤 것이 옳은 방법인지 모른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약해진 후작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의 결정 하나에 비올렛의 부모가 죽은 것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 했다. 그녀는 그것을 혐오했다.

체자레는 후작과 비올렛을 교황성으로 끌고가지 않고 왕성으로 데려갔다. 체자레는 후작에 따른 예우로 그것을 모든 시시비비가 정확하게 가려진다면 그때야 죄인으로서 후작을 교황성으로 호송한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모든 귀족들에게 보이는 경고인 것이다.

“말도 안되오, 그것이 어떻게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이오!”

라이셀 백작이 말했다. 그는 ‘대리 성녀’를 세웠다는 후작의 혐의를 부인했다.

“분명 성녀님께서 발견된 그 당일날 빛이 터졌소. 그런 기록도 있단 말이오.”

“그것은 발광석으로도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한 겁니다.”

체자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애초에, 성녀라 주장하는 소녀가 가진 것은 성흔, 눈, 머리색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얼만든지 바꿀 수 있는 사실입니다.”

“눈 색을 어떻게 바꾼단 말이오!”

국왕파 쪽 귀족중의 한명이 반격했다. 체자레가 고갯짓을 하자, 성 기사단중 한 명이 아이들을 끌고 왔다. 묵여있던 비올렛은 깜짝 놀랐다. 아이들의 눈은 비올렛과 같은 옅은 푸른 눈이었다.

“저런 눈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지 못할 건 아니지요. 아그레시아에는 저런 눈 색을 가진 사람이 없지는 않습니다. 머리색을 염색하고. 이마에 성흔을 새긴다면, 성녀를 사칭하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그들은 체자레가 치밀하게 이것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서운 사람이었다. 비올렛이 성력이 없다고 말했을 때 그는 이러한 계획을 꾸며, 실행에 옮겼다면? 레기우스 살바나때도 느꼈지만 체자레는 그녀를 ‘봐주고’ 있었다. 그녀의 발버둥은 맹수 앞에 팔랑이는 나비와도 같았다. 비올렛은 체자레를 도무지 그녀의 상식 내에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여유롭다. 그러나 예상외의 일에도 그것에 따른 대응책을 차분히 마련하며 여유롭게 웃는다. 모든 진실을 알며 그녀를 조종한다. 그러면서도 그녀를 아주 애정하는 것 처럼 굴다가도 그녀를 괴롭힌다. 그리고 그녀가 바라왔던 가장 매력적인 제안을 하며 그녀를 꼬드기는 것이다. 도대체 그가 원하는게 무엇인가. 왕위일까. 비올렛은 알 수가 없었다.

“성녀님께서는 ‘힘을 잃었다’라고 하며 그 어떤 자신을 증명할 만한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매마른 대지에 초록을 틔우는 것이요? 꽃을 피우는 것이요? 그것은 사실 재능이 있는 신관이라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신관은 모두 남자지 않소!”

“글쎄. 그것은 사실 신전측이 우선시 하는 성별이 ‘남성’이고 한 쪽 성별만 우선시 하기에 남자만 데려오는 것이지. 사실 여자들도 찾아보면 신관이 될 만한 재질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신을 모시는 여인은 성녀 하나뿐으로 충분하니까요.”

체자레는 이리저리 웃으며 비올렛과 비슷한 눈 색의 아이들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아이들은 눈을 데록데록 굴리며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일례로 성녀는 신어(神語)를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비올렛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녀가 눈을 크게 뜨며 체자레를 바라보니 체자레가 미소를 지었다.

“역대 성녀들이 성력을 발현하는 것은 신어였습니다. 하지만 이 중 누군가가 그녀가 신어를 말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말에 비올렛을 향한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체자레는 일부러 그녀의 출신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올렛의 출신과, 그녀의 행적을 따져보면 사실 수상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만.”

왕이 손을 들었다. 비올렛은 옥좌위에 앉은 왕이 그녀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더러운 것을 보는 얼굴이었다. 비올렛은 그 얼굴을 보며, 차라리 자신은 정말로 후작에 의해 심어진 대리성녀라고 주장할까 생각했다. 그녀는 이런 시선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자신들 멋대로 권력에 의해 이용당해 또 가짜라고 팽을 당하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가짜’라는 것을 밝히면 그만한 모욕은 없겠지.

“공작, 그대가 그렇게 말한다면 응당 그럴만한 증거는 있겠지.”

왕의 금안과 체자레의 금안이 맞부딪혔다. 체자레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를말입니까 폐하.”

그는 그렇게 말하며 살짝 허리를 숙이며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녀 후보가 한 명 더 계시기 때문입니다.”

체자레가 알현실의 입구 쪽을 손으로 가리키자 하얀 제복을 입은 성 기사단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모두 그것에 시야를 빼앗겼다. 비올렛 마저도. 새하얀 은발을 길게 늘어뜨린 여성이 들어왔다. 여성의 얼굴은 베일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으나. 이마만은 비올렛과 똑같은 푸른 성흔이 박혀 있었다. 여자가 한걸음 걸을 때마다 은사가 섬세하게 짜여진 새하얀 옷이 부드럽게 펄럭였다.그녀의 걸음은 아주 우아했으 아름다운 곡선을 그려 저절로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 끌었다. 베일로 가려진 틈 사이로 희고 고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 입술 역시.  성기사들은 그녀를 아주 정중하게 그녀를 대했다. 그곳에는 로디온 경도 있었다. 그녀는 알현실을 쭈욱 둘러보았다. 그리고 비올렛에게 머물렀다. 아주 오랫동안 비올렛을 바라보는 그 여자는 드러난 붉은 입술에 미소를 지었다.

“반갑습니다. 신의 대리인이시여.”

“.........”

마치 그녀를 희롱하는 것 처럼. 그녀는 비올렛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왕을 바라보았다.

“이 나라를 지배하는 왕이시여, 인사드립니다. 저는 라즈니라는 이름을 가진 신의 사자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부드럽고, 비올렛과는 다른 힘이 있었다. 비올렛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체자레를 보았다. 체자레는 비올렛에게 눈길조차 던지지 않고, 라즈니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걸어오더니 묶여있던 후작을 보았다.

“추기경, 나는 아직 진정한 신의 대리인인지 입증이 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것은 너무 과한 처사가 아닙니까.”

그녀가 차가운 목소리로 체자레를 힐난했다. 비올렛이라면 절대로 체자레를 향해 그런 말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비올렛으로서는 절대적인 산으로 보이던 체자레를 꾸중하고 있다.

“폐하. 저는 신의 대리인이라 감히 주장하지 않을 겁니다. 저기 계신 저 신의 대리인이라 주장하는 분과는 다르게, 저는 제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까요.”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가 후작에게 다가왔다. 베일 뒤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비올렛을 한번 본 그녀는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녀는 후작에게 말하는 것이다.

“обновување”

알 수 없는 언어가 흘러들어왔다. 청은빛이 터지듯 발광하더니 후작에게로 흘러들어왔다. 그 찬란한 빛에 잠시 눈이 멀었다 시야가 돌아오자, 비올렛의 눈 앞에는 어느샌가 회복한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폐병이 낫지 않은 듯 그의 숨소리는 거칠었지만 안색은 한결 편해보였다. 후작 역시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에 경악하고 있었다. 비올렛은 저것이 체자레가 말하던 ‘신어’라는 것을 알았다.

“아프신 분께 측은지심도 없으십니까. 저는 그렇게 까지 제 자리를 입증하고픈 욕심은 없습니다 체자레 추기경.”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 그리고 비올렛의 한가지 가정이 흔들린다는 것을 알았다. 어렸을 적 의심하고 의심하다가 겨우 받아들였던 절대적 사실이 흔들리고 있었다. 체자레가 그녀를 신전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그녀를 이용했다고 하지만. 어쩌면, 체자체는 그녀가 성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게 아닐까? 천민 태생인 그녀가 애초에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그녀는 신어를 모른다. 알지 못한다. 체자레가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아니, 그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점점 바뀌어가는게 느껴진다. 긴가민가했던 사람들도, 모두 다 후작의 옆에 서 있는 비올렛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은 점점 더 짙은 혐오로 바뀌어가 그녀를 몰아간다. 비올렛이 생각하는 의심을 그들 역시 감히 품고 있는 것이었다. 불신의 눈초리가 일제히 비올렛을 향한다.

============================ 작품 후기 ============================

(돌이 날아오려는걸 필사적으로 막는다.)

때.. 때리지 마세요.. 때.. 잘못했어여 근데 고구마 전개 아님.. 안심하세여 그리고 이번사건 이후 당분간 고구마 전개는 없을거임..(아마도)

아 제가 코멘이 하루에 걍 백개가넘으면 그날은 무리해서라도 돌아온다는 말이었지..

백개가 넘으면 바로 돌아온단 말이아니었어여.제가 오해가 가게 공지를 썻군여 ㅋㅋㅋ

여튼 제가 코멘 100개에 대해 환상이 있어서 막.. 100개가 넘으면 뭔가 기분이 좋아지고 그래요 ㅋㅋㅋㅋ

추천 부탁드리겟습니다. 추천 또는 코멘 아니면 둘다는 저의........저의......언제나 저의 활력소......나로 하여금 글쟁이가 되게 만드는...크흡..(코멘변태)

석류스프님이..제 외전을 올려주셨네요..큽..ㅇ니 왜 스프님께서는 제껄 단독으로 올리신답니까 이번편보다 저쪽편이 더긴장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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