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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핀 제비꽃-94화 (87/208)

00094  피어오르는 꽃봉오리  =========================================================================

“나는 네가 정말 끌려가버리는 줄 알았지 뭐야!”

시수일레가 생글생글 웃었다. 이자카가 돌아가고 나서 이튿날, 시수일레가 찾아왔다.

“아, 다행이야. 나는 비올렛이 열 번째 첩이 된다고 생각했다구!”

“그래 그래.”

비올렛이 대답했다.

“어떻게 그런 뻔뻔한 남자가 다 있지? 비올렛에게 그렇게 구애를 하다니 말이야. 내 열번째 아내가 되어 달라니!”

“이미 떠났잖아. 그리고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어.”

이자카의 공개선언으로 그가 비올렛을 탐내고 있다는 것을 들켰으니 저런 말이 나올만도 했다. 그동안 이자카의 행동들이 알음알음으로 퍼져나갔겠지. 시수일레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어떤 말들이 퍼져나가는 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찾아와 주는 그녀가 고맙다고 해야하나. 비올렛이 살풋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시수일레가 눈을 크게 떴다.

“비올렛. 기분 좋아?”

“아니, 나는 평소와 같은데?”

왜 저럴까. 비올렛이 생각했다. 시수일레는 그것에 뭐가 그렇게 기쁜지 이것 저것 떠들었다.

“어라! 랑이야!”

시수일레가 야옹, 거리는 고양이를 보며 말했다. 비올렛은 고양이들을 내려보았다. 아, 털날리잖아. 비올렛이 짜증스럽게 생각했다. 이 고양이는 천연덕 스럽게 야옹, 하며 시수일레의 다리에 얼굴을 비볐다.

“인간아, 인간아, 자, 거기 저 맛고 달콤한 하얀 덩어리를 다오.”

케이크를 달라는 소리였다. 비올렛은 어휴, 저 성격이 어딜 가냐 고양이를 보며 생각했다.

“이 바보같은 여자야! 너희들이 먹고 있는 것을 내 놓으란 말이다. 내가 친히 얼굴을 문대주지 않느냐. 어서!”

그 말투가 내포된 것이 많아봤자 들리는건 그냥‘야옹’이었다. 시수일레가 고개를 갸웃 했다. 야옹(내놔라) 야옹(냉큼 내놓치 못할까!)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고민하다 결국 답을 내렸다.

“아! 먹을걸 주라는 걸까?”

시수일레가 하얀 케이크를 보며 말했다. 우유 크림이 들어간 거니 저건 먹을 수 있으려나. 그래도 시수일레가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을 알았는지 고양이는 꼬리를 일자로 세웠다.

“아이 귀여워라.”

“그래, 멍청한 인간여자. 드디어 내 말을 듣는 군.”

참나. 서로간에 대화가 통하는지 안통하는지를 모르겠다. 그렇게 그 둘의 교감을 보던 비올렛이 말했다.

“쟤 임신했어. 그거 주면 안 돼.”

“........”

그 말에  시수일레의 손이 멎었다.

“아, 그래? 그러면 이런건 먹으면 안되겠다.”

냐아아아앙! 고양이의 불평하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시수일레도 알아듣기 쉬운 듯 그것에 킥킥 웃었다.

“야, 이 극악무도하며 잔인한 집사야! 너는 이 뱃속의 아이들을 살리기 위한 엄마의 고군분트가 안보이느냥? 먹을거 벌기 힘들단 말이다냥! 생선을 먹으려 할때 확 독수리가 채가버리기나 해라!”

요사이 어디에 새끼를 낳을 아지트를 만들었는지 방에 들어오지도 않는 고양이를 내려다 보며 비올렛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시수일레는 배가 튀어 나온 고양이를 보며 귀엽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고양이는 꼬리를 바닥에 탁탁 두드리며  불쾌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물론 귀에 울릴 만큼 많은 이야기가 고양이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참 말많다. 비올렛은 얼굴을 찡그렸다.  궁궐에 있는 오빠 고양이랑 성격이 판박이다.

“비올렛, 어디 아프니?”

갑자기 다시 어두워진 비올렛의 얼굴을 보며 시수일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아니야.”

그녀의 말에 시수일레가 안심하여 웃었다. 시계를 보니 다섯시가 넘었다. 곧 있으면 해가 질 시간이었다.

비올렛이 시수일레를 배웅했다. 후작가 사람들이 올 시간이었다. 어쩌면 또 패트리샤가 온다고 할지도 모르겠군. 비올렛은 생각했다. 요사이 패트리샤는 이 저택을 방문하지 않았는데 아마 에셀먼드의 차가운 반응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온다. 들어갈까, 들어가지 말까 생각하다 오늘은 랑이의 아지트를 찾아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대로 가면 겨울에 새끼를 낳게 된다. 차라리 가서 먹을걸로 설득시키는게 좋지 않을까. 그런 가벼운 생각을 하며. 오랜만에 정원이 아니라 후원을 향했다. 후원을 그동안 가지 않았던 것은 계절이 바뀌어서 그런건지 어쩐건지는 몰라도 텅 빈 공터만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앞에서는 잘 보이지 않으니 상관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저택의 뒤를 빙글 돌 때였다.

“.........”

이게다 뭐지. 비올렛은 생각했다. 우선 이성적인 생각보다는 쉴새없이 가슴이 뛰었다. 쌀쌀한 바람에 향기가 불어오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 향기는 짙은 향이 아니다. 비올렛의 코를 가져다 대야 겨우 향을 내어주는 그런 소심한 꽃이었으므로.

“........”

봄이아니라 늦가을이다. 이럴리가 없다. 하지만 비올렛은 이것이 가을에도 종종 피어난 다는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퍽 반가워 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꽃들은 본적이 없었다. 보라색 물결이 살랑살랑거리고 있었다. 마치 다시 만나 반갑다고 말하는 듯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것이  너무나 감수성이 많은 여린 소녀의 것이라 해도 상관 없었다. 비올렛은 신을 벗었다. 그녀는 맨발이었다. 억센 꽃이 아닌, 귀족들 사이에선 들꽃이라며 취급조차 되지 않는 이 꽃밭을 맨발로 올라갔다. 그리고 간만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마치 아이로 돌아간 것 같았다.

후원에, 제비꽃들이 피어 있다.

지는 노을에 주홍빛으로 물든 보라색의 물결이 하늘하늘 그녀의 가슴을 울렸다. 이 지체높은 귀족 가문에, 화려한 꽃들만이 그들의 품위로 인정되는, 나라에서 손꼽히는 이 어마어마한 가문에, 절대로 있을리가 없던, 절대로 볼 수 없으리라던 제비꽃들이 피어 있었다. 얼마나 섬세하게 관리를 하는 것인지 한송이 한송이 다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소박하며 풋풋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제비꽃. 눈물마저 날 것 같았다. 꼭 마치, 너는 이곳에 있어도 된다고. 이곳은 너의 집이라며 말해주는 것 같았다, 너무나 다정한 속삭임에 그녀는 그곳을 거닐다 무릎을 꿇었다. 드레스 자락이 흙으로 물들어도 상관 없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럴만했으니, 아니, 이것은 ‘그런’ 꽃이었다.

제비꽃을 닮은 눈동자라 해서 비올렛이라 이름붙여졌다. 그것이 꽃의 거리의 여자들을 지칭하듯, 천한 이름이라 해도. 그녀는 그 이름을 좋아했다. 성녀의 뒤에 붙기엔 소박하며 천박한 이름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지금은 잃어버린 눈의 색깔이지만, 비올렛은 제비꽃색의 눈동자를 지닌 자신의 눈을 참 좋아했다. 어딘지 모르게 잃어버린 것 같은 아득한 추억이 기억이 날 것도 같았다.

“미안해. 하지만 너희가 너무 반가워서 그래.”

비올렛은 그렇게 속삭이며 꿇어앉아 꽃을 한두송이 꺾었다. 절대 시들게 하지 않을 생각이다. 비올렛은 그렇게 생각하며 한아름의 꽃을 안아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주 사랑스러운 것을 본 마냥 끌어안고 미소지었다.

“마음에 드나 보다?”

그 목소리에 비올렛이 고개를 들었다. 에이든이 서 있었다. 그는 멋쩍은듯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었다. 비올렛은 이게 누구의 작품인지 깨달았다. 예전에 그녀는 제비꽃이 없다고 해서 에이든에게 말하다 비웃음당한적이 있었다. 에이든은 그것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는 놀릴지언정, 그녀를 이렇게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그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 가을에 피어나게 하는데 힘들었어. 들꽃이 저렇게 피워내기 힘들 줄이야. 누가 알았겠....!”

에이든이 그렇게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비올렛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는 노을 해에 주홍색으로 물들어 상기된 비올렛의 두 뺨은 보이지 않았지만. 입술에 서린 호선은, 마치 옛날의 소녀가 지어주던 미소와 비슷했다. 그 옛날의 잃어버렸던 미소, 그리고 따스하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 더러워진 드레스자락. 신발은 맨발. 비올렛은 지금껏 봤던 얼굴 중에 가장 천민다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마력이 있었다. 에이든이 그것에 기뻐하며 머리를 긁적이며 씨익 미소 지었다.

정말로 기막힌 것을 준비한다 했더니, 정말로 기가막힌 선물을 준비했구나. 에이든은 단 한 번도 비올렛의 마음에 든 선물을 한 적이 없었지만 처음으로 마음에 쏙 들었다. 눈물이 날 정도였다.

“처음으로 마음에 들었어.”

“어?”

“네가 준 선물치고 처음으로.”

그 말에. 에이든이 그것이 마음에 안든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누가 보기라도 하는 듯 고개를 두리번 거리더니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그동안 해줬던 선물이 필요 없었다 이거지?”

비올렛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비올렛은 되도록이면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는데,  그렇다고 대답해서 이 분위기를 깰 생각은 없었다.

“아니.... 뭐, 하아.”

왜 자꾸 한숨을 내쉬는거지. 나는 좋다는데. 그렇게 피워내기 힘든 꽃이었나?

“응? 왜그래?”

“아니, 아니야.”

에이든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러다 누군가를 찾아 가는 듯 했다. 뭔가 바쁜가? 모처럼 어울려 주려했더니 말이야. 그러나 잃어버린 그 색을 다시 본 비올렛은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어? 비올렛은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착각인가? 비올렛은 얼굴을 찌푸리며 생각하다 꽃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화병에 꽂아두어야겠다. 그녀는 생각했다. 발 밑에 그녀의 무게에 눌린 꽃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밟혀도. 제비꽃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정말로 굳게 닫혀있을거라 생각했던 마음은 겨우 이것 하나에 풀려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고마워, 고마워, 에이든, 언제나 고마워. 비올렛은 속삭였다.

후원에 제비꽃이 피었다. 누구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저택의 뒤쪽, 비밀스러운 에르멘가르트 후작 가의 후원에 보라색의 제비꽃(Violet)이.

============================ 작품 후기 ============================

여러분.. 뭐가 부서지는 소리 안나나요?

코멘트 반토막나는 소리 ^^... 큽..여러분..추천과 코멘은 작가의 숨결...에너지원!!동력원!!!!!!!!!!!!!!!!!!!!!!1

표지 에드로 다시 바꿨어요.

여튼 전 자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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