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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핀 제비꽃-90화 (83/208)

00090  피어오르는 꽃봉오리  =========================================================================

검술 수련은 후작이 직접 지도해 주는 것이었다. 어린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후작은 그녀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꽤나 냉정하게 그녀를 가르쳤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따랐다. 생각해보면, 차라리 아무것도 안한다고 투정을 부리는 것이 그의 입장에선 더욱 더 곤란한 일이 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채, 이를 악물고 그것에 따랐다. 검을 배울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그녀가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것도 같다.

아무리 귀족 여자아이보다 체력이 나쁘지는 않았어도, 그녀는 여자아이였다. 그러나 그는 용서없었다. 다리에 몸살이 날 정도로 뛰었고, 손에 물집이 터져 피가 날 정도로 검을 휘둘렀다. 검을 휘두르기에 망설임이 있다는 것을 알자. 그녀에게 생물을 살해하라고 까지 했다.

에셀먼드는 한번씩 그녀를 보러 왔다. 그녀는 에셀먼드를 무시했다. 그러나 그는 끈질겼다. 그녀가 도망가기라도 할 것 처럼 그녀를 지켜보고는 했다. 검술에 대해 조언을 하는 것도 아니였다. 그렇다고 그녀를 힐난하지도 않았다. 다그치지도 않은채 그냥 서 있었다. 억지로 죽여야 했던 토끼를 죽이며 울고있던 비올렛에게 손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여러번이고, 계속. 말없이. 그리고 어느 날은 차라리 활을 쓰라고 했다. 그리하여, 손수 죽이는 감촉을 느끼게 하는 검 보다 활을 더 쓰게 되었다.

용서 따윈 없을 거라 했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감정을 신경쓰지 않았다. 비올렛이 신을 저주한 것도, 세상을 저주하는 것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세상 안에 있는 조그마한 점인 그녀 따위가 세상을 저주해봤자 무엇을 어찌하겠는가. 그녀의 분노는 허망하게 사라질 뿐이었다.  시수일레가 왔던 것도 후작의 배려일지도 몰랐다. 다루기 쉬운 여자애를 만드는것이 그의 목적이라면. 그것은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그녀는 더욱 더 마음을 닫았다.  그쯤가서 에이든이 천민이라 말했다. 다니엘이 다정하게 위로해주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와닿지 않았다.

그렇게 지옥같은 일년이 지났다. 그리고, 그녀의 생일이 다가오는 어느 날이었다. 그 날은 아주 맑은 달밤이었다. 활을 비록 쓰긴 했지만 후작은 검술훈련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흘투성이가 된 그녀는 조용히 달을 바라보았다. 아주 맑은 달이었다. 예전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달을 바라보았다.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예쁘다는 순수한 느낌도, 그것에 파생되는 행복조차도 느낄 수가 없었다. 멍하게 손을 바라보았다. 피가 묻어 있었다. 무덤을 만들어 주고 오는 길이었다. 추운 날씨임에도 기사들이 피워놓은 모닥불이 있는 곳에 앉아 있었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붉은 빛과 손에 묻어있는 붉은 피를 비교하며 고개를 갸웃, 했던 것도 같다. 그리고 에셀먼드가 나타났다. 예전에는 그만 보면 격렬하게 그를 거부했다. 하지만 한번도 그 요구는 받아들여진 적이 없었다. 그녀의 의사따윈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타닥타닥, 거리는 모닥불을 자세히 보며 에셀먼드는 비올렛의 앞까지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언제나 처럼 고요하고, 아무 표정이 없었다. 비올렛은 에셀먼드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미안하다.”

절대로 들릴 수 없는 말이었다. 비올렛은 그 말이 어떤 말인지 몰랐다. 그 단어는 절대로 그녀가 아는 에셀먼드 에르멘가르트에게서 나올 수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그는 말했다. 눈물도 보이지 않는다. 샛노란 달빛을 담은 눈은 희미하게 빛이 났다. 비올렛은 그제야 그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는 비올렛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버지를 더이상 원망하지 마라. 왜냐하면, 네 마을을 지워버리라 명령을 내렸던 것은 바로 나였으니.”

비올렛이 정신을 차리고 그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그 사실을 일년동안이나! 비올렛의 얼굴에 서린 증오를 에셀먼드는 담담하게 받아 들였다. 죽여버릴까. 그렇게 생각도 했던 것 같았다. 비올렛의 주위가 위험한 바람으로 휘몰아 쳤다.

“나는 네가 온지 이틀째 되던 날, 처음으로 내 사람의 목을 베었다, 이 손으로.”

그는 그의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는 길지 않았다. 차라리 변명의 기미가 보였다면 변명 하지 마라며 소리라도 질렀을 텐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 그녀는 입을 다물고 듣기만 했다.

어렸지만 기사가 되었던 그는 형처럼 따르던 기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윌. 비올렛은 그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어디선가 들어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에셀먼드는 무뚝둑한 그를 형처럼 챙겨주었다고 말했다. 에셀먼드는 그를 신뢰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에셀먼드가 군사를 이끌일이 생겼다. 바로 영지에 출몰한 산적 소탕건이었다. 영지 일을 맡아서 했으나, 군대를 이끄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전적으로 옆에 있는 윌의 의견을 묻고 그것에 의지했다.

윌은 꽃의 거리가 위험하다고 했다. 범죄의 온상, 몸을 파는 여자들. 더러운 여자들, 그 아이들이 산적이 되는 것이라 말했다. 산적들과 창녀들은 관련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것을 믿었다. 그는 꽃의 거리를 지도에서 지우라 명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비올렛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후작이 잡아온 산적들은 꽃의 거리는 인신매매의 장이었을 뿐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다. 그의 결정 하나에 모두가 죽었으니 목숨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추궁했다. 그리고 윌이 꽃의 거리에 자주 들락거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조사하자 나온것은 어린 에셀먼드가 신뢰했던 윌이 아닌 영지에 올 때마다 꽃의 거리를 들락날락 하며 오히려 그들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그 그 점주들이 그것을 빌미로 협박을 해 왔기 때문에 그 마을을 지도에서 지운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결말은 똑같았다. 에셀먼드는 그의 목을 베었다. 직접 그의 손으로.

“네게는 평생 사죄 할거다.”

정말로 증오스럽게도, 그렇게 말하는 그는 눈물한방울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 네 소중한 마을이었을지도 모르는 그곳을 습격하도록 명령했던 것은 내 오만과, 어리석음에 따른 결과라는 것을 안다. 용서하라고는 하지 않을 거다.”

그래, 그는 오만했고 어리석었다. 윌이라는 기사를 신뢰한 그의 마음이 어리석었고, 그가 믿는 사람이 그와 같은 마음일 거라 믿었던게 오만했다. 그가 그 결정을 내렸던 것은 열다섯. 그가 아무리 뛰어난 후계자였지만 어린 그가 했던 결정은, 경솔하고도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가 그 기사에 대해 말하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변명하는 자가 아니다. 오히려 변명하려 했으면 그는 끝까지 이것을 후작의 탓으로 숨겨야만 했다. 그는 진실만을 정했고. 열 셋, 이 어린소녀에게 판단을 맡겼다.

“그러니 네게 평생을 바치겠다.”

달빛을 담은 맑은 짙은 푸른 눈이 보인다. 밤하늘과 같은 색. 그 눈이 비올렛을 담았다. 그에게 저주라도 퍼붓고 싶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냐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아냐고. 너도 목이 잘렸어야 했다고. 하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그에게 그렇게 폭언을 퍼부을수가 없었다. 평생을 바치겠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절대로 저주할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남자를 결코 밀어낼 수가 없었다.

그 이후 에셀먼드는 그녀가 있던 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 대화도 그들 사이에는 오가지 않았다. 비올렛도 그를 찾지 않았다. 여전히 하루는 그녀에게 버거웠다. 그러다 그녀는 문득 자신이 에셀먼드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를 보고 싶었다. 비올렛은 그리하여, 언제나 아침이 되면 검술 훈련을 핑계로, 나가는 그를 지켜보았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그것은 계속되었다. 괴로웠다. 언니들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 에셀먼드라는 것이 너무나. 그러나 그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평생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미움을 버릴수가 있었다. 용서할 수가 있었다. 용서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삶에 생긴 것이었다. 편해지고 싶었다. 누구나 미워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누군가를 증오하는 마음은 그것을 가지는 것 만으로 그녀를 지옥에 몰아 넣었다. 누군가를 믿고 싶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용서하고 싶었다. 다시 웃고 싶었다. 그리하여, 비올렛은 다니엘에게 에셀먼드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너, 형이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알고는 하는 소리야?”

“응 오라버니는 내게 다 말했어.”

비올렛이 다니엘의 다정한 어조에 말했다.

“말도 안돼.”

다니엘이 말했다.

“이건 말도 안됀다고! 그 형이 네게 미안하다고 했다고 모든걸 말했단 말이야??!”

다니엘은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말했다. 절대 믿을 수 없다는 듯 몇번이고 중얼거렸다. 사과를 했다고? 형이? 비올렛 역시 믿을 수 없었던 일이기에, 다니엘의 혼란을 이해했다.

“오라버니를 불러줘, 다니엘.”

비올렛의 의사는 확고했다.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후원에서 에셀먼드를 기다렸다. 달밤에 눈이 내렸다. 어쩐지 가슴이 떨렸다. 에셀먼드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다. 이제 신경쓰지 말라고, 나에게 평생을 바치지 않아도 된다고. 감사하다고.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그가 있으면 분명히, 힘든 생활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오라버니니까. 무거웠던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고양이도 선물로 주었고, 이대로 있어도 된다고 말했다, 무서운 티게르난 공작의 성에도 그녀를 데리고 나와 주었고, 그녀가 죽인 온갖 짐승들도 같이 파묻어 주었다. 언제나 함께 해 주었다. 그러니 이제는 그녀가 이대로 있어도 상관없다고 말하면 된다. 하지만 그는 나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비올렛은 생각했다. 오랫동안 후원에 서 있던 비올렛은 앤에게 끌려들어갔다. 눈내리는 겨울밤 늦게까지 서 있던 것 때문에 미약한 열이 났다. 비올렛은 자리에서 일어나. 에셀먼드를 찾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떠났다고 했다. 어제 새벽에 이미 변방에 자원해서 떠났다고. 그때는 부끄러움도 모르고 그의 방을 찾았다. 그러나 그녀를 맞이하는건 떠난 그의 물품을 정리하는 사용인들이었다.

“....비올렛, 진지하게 묻는데. 에드 형이 네 용서따위가 중요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던 거니?”

“........”

“나는 형에게 말했어. 분명히.”

다니엘이 말했다. 영도 분쟁 콘차카 족과의 전쟁에 자원했다고 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그 변경에서 국경을 수호한다고.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한다.

“평생을 마치겠다고? 웃기지도 말라 해. 형은 후계자인걸. 너한테 바칠 평생은 없을 걸? 너에게 평생을 바치기엔 형은 너무 바쁜 사람이거든. 네가 말 잘듣는 사람이 되라고 거짓말을 한 거야.”

“..........”

“그러나 어쩌니, 비올렛? 거짓말은 바로 들통이 나는구나. 국왕 폐하의 눈에 들고 싶어서 일부러 자원한거겠지. ‘자원’해서 갔다는게 중요한거야, 알지 비올렛?”

다니엘이 다정하게 그녀를 안았다. 그 손길을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믿을 수 없었다. 배신당했다. 사과하겠다고 했다. 평생을 바치겠다고 했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설령 그가 미안하다고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가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했다. 용서를, 사죄를 하는 것 없이 그저 미안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사과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에드는, 자신이 편해지고자 미안하다는 말을 끝으로 그녀를 피하고, 그녀를 떠나버렸다.

분명히 아름다웠을 햇빛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비올렛은 다시 자신이 지옥에 떨어졌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용서하고 한결 편해지려고 했다. 하지만 용서할 수가 없었다. 용서는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으니. 그래서 또다시 그녀는 미움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미워하고 또 미워했다.

하지만 그 여름날, 꽃이 피고 풀냄새가 나던 그 여름날. 비올렛은 그를 기다리던 자신을 발견했다. 매일 매일, 어렸을 적 그를 기다리던 곳에서 에셀먼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열 네살이 된 비올렛은 깨달아 버린 것이다. 정말로 구제불능이었다. 인정하기 싫었다. 수치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애타게 기다린다. 어떻게 그것을 인정한단 말인가. 이렇게나 그를 미워하는데 이렇게나 그를 그리워 하고 있었다. 이건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나 버렸다. 그것을 인정한 순간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기다리고 기다린다. 그리움에 비롯된 그 행동은,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자신의 오라버니를 마음에 담았기에 그런 것이다. 그렇게나 비정한 남자를 마음에 담아버렸던 것이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그를 기다리며 그녀는 그녀의 마음에 종지부를 찍기로 했다. 그녀가 없어서 곤란할 세계라면, 차라리 곤란해 하면 된다. 멸망할 세계라면, 그녀의 죽음 뒤에 멸망하는게 옳았다.  햇빛이 내려쬔다. 창을 열어 풀내음을 한참동안이나 맡던 비올렛은 몸을 던졌다. 그러니 이 부끄러운 감정이. 이 수치스러운 마음이 들키지 않기를, 죽음이라는 끝으로 영원히 숨겨지길 바라며.

*

그래서 비올렛은, 그 삼년동안 기다렸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비밀스러운 감정이라. 이미 끝내기로 마음 먹었던 감정이라. 말할수가 없었다. 말하게 되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그저 원망만 할 뿐이었다. 에셀먼드는 언제나 처럼 냉정한 두 눈으로 비올렛을 보고 있었다. 그도 알 것이다. 비올렛이 얼마나 대답을 요구했는지.

“내가 왜 그것을 말해야 하지?”

그래.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순식간에 올라왔던 피가 싸악 식어내리는 느낌이었다. 용서와 평생이라는 말을 들어서 흥분했다. 에셀먼드가 무엇을 맹세했건 간에, 그렇다고 그는 정말로 평생을 함께 할 맹세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에셀먼드는 가만히 비올렛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지도하도록 냉기어린 시선으로 언제나 그녀를 바라보던 것 처럼. 그래, 여전한 것이다. 다니엘의 말 처럼 그녀가 용서를 하고 하지 않고는 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그가 검을 들어 싸우는 것은 그가 말하는 이유 뿐만이 아니다. 성녀를 이곳에 잡아두기 위해, 체자레가 원하는 바를 이루지 않기 위해. 그저 사람을 위하는게 아닌 명분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그곳에 비올렛은 당연히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에셀먼드가 화를 냈다고 해서, 지나치게 감정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녀를 의무에게서 도망가게 하지 않기 위해, 신전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기 위해 이곳에 잡아두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당신이 말한 사죄인가요.”

비올렛이 조용히 물었다. 화는 나지 않았다. 여기서 화를 낸다면, 정말로 이성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이 사람에겐 비올렛의 관심조차 거슬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저런 얼굴을 하는 것이다. 비참하게 만든다고? 그래, 결국 그녀에게마저 받는 관심은 얼마나 비참할까.

평생에 걸쳐 사죄한다는 것은 잊고 있었다. 그것이 이루어질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 말에 에셀먼드가 입을 다문채 말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알았어요.”

그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팔을 잃고 미래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그 역시 또다른 권력자들의 장기말이라는 사실에 분노해 이곳으로 뛰어왔다. 그럼에도 그는 고고한 자존심을 지키려 한다. 어리석게도 그것을 알면서 이용당하면서도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왜 그가 3년전에 사라진 것인지, 아니, 이제는 그것도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말로만 했던걸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만큼 더 미워했던 거니까. 비올렛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과가 어떻게 끝나든 이젠 그녀의 손에서 떠났다. 그녀의 도움 따윈 애초에 원하지도 않았다. 그저 ‘비참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상. 어차피 그가 생각한 것이라고는 뻔했다.

“아슈카바드에 가더라도 내 의무를 누구에게 떠맡길 생각은 없어요. 그건 걱정 마세요.”

끝은 이미 정했으니. 비올렛은 뒷말을 생략했다. 그녀는 에셀먼드에게서 몸을 돌렸다. 방을 나갈때 까지 그녀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문을 열자 칼츠 경과 루체 경이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들에게도 얼굴을 마주하며 따로 인사하지 않았다. 복도를 걷는다. 그리고 그녀의 자리로 다시 가 앉았다. 시간은 삼십분 정도 남아 있었다.

“스승님! 에셀먼드 경은 괜찮은겁니까?”

샤를의 물음에 비올렛이 고개를 저었다. 팔을 잃을수도 있다. 기껏 방어만 할 수 있는 그가 도대체 어떻게 이기겠는가.

“전하. 에셀먼드 경은 질 겁니다.”

“말도 안돼!”

신관과 샤를이 동시에 소리쳤다. 피곤했다. 체자레가 부르라고 시켰던 레퀴엠이 귀에 맴돌았다.

어쩌면 그녀가 꾸었던 꿈은 이것을 말하는 지도 몰랐다. 무리하게 팔을 잃어버린 에셀먼드. 어느것하나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목숨을 잃을수도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떠하랴. 비올렛은 구자르트에 간다. 행복하냐, 행복하지 않느냐는 어차피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히 그녀가 ‘살아갈 것’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러나 비올렛이 꿈꾸었던 것은 정 반대였다. 살아갈 욕망이 있다면 죽음으로 가는 욕망도 있는 법이다. 애초에 끝은 그렇게 매듭지었다.

어떤 것도 없다.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슈카바드에 가겠다고 말했던 자신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비올렛은 그저 멍하게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시간은 지나고, 다시 경기가 재개되었다. 각오는 했다. 그러나, 그것이 정당한 승부가 아닌 억울한 결과에 의할 줄은 몰랐을 뿐. 에셀먼드와 이자카가 다시 마주했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검을 빼들었다. 호각소리가 들리며 그들이 다시 맞붙기 시작했다. 이자카의 검은 곡선을 그렸다. 그리고 에셀먼드가 그것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캉,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뒤를 돌아 보았다. 어떻게 된거지? 그녀가 체자레를 바라보자 체자레가 턱을 괴더니 미소를 지었다.

“아, 어쩔수 없는 분이시군요.”

체자레가 그렇게 말하며, 비올렛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미소를 짓는 것이다. 비올렛은 에셀먼드를 바라보았다. 팔이 나아 있었다. 그때 에셀먼드 곁의 칼츠 경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성녀님, 이제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가 비올렛에게 소곤거렸다.

“이미 알고 있어요.”

비올렛이 멍하게 중얼거렸다. 저 몸놀림, 검광, 소리, 알 수 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남자가 아니었다. 곡선을 그리는 이자카의 검술을 그저 단순한 동작만으로 양단해버린 에셀먼드가 그에 연속해서 들어오는 검을 피한채 허리를 숙였다. 재빠른 동작과 함께 허리를 피는 대신에 자신에게 날아오는 검을 있는 힘껏 막았다.

“기뻐하십시오, 성녀님, 이제 이깁니다.”

칼츠 경이 들뜬 어조로 말했다. 아직 승부는 점칠 수 없다. 비올렛은 기대있던 의자 등받이에 허리를 떼어 뒤를 돌아보았다. 모두가 다 똑같은 표정이었다. 모두가 다 환한 얼굴로 에셀먼드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승리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그저 상처가 나았을 뿐인데 이렇게 확신에 찬 얼굴로, 희망에 찬 얼굴로 에셀먼드를 바라보고 있을까.

“하지만 칼츠 경, 오라버니는 분명히 하쉬샤신의 습격 때 상처를 입었어요.”

“승리는 상처로 점칠 수 없습니다, 성녀님.”

칼츠 경이 말했다. 비올렛은 이자카를 바라보았다.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검을 받아내고 있었다. 몇합이 지났는지도 모른다. 금속 소리만 울리고 있었다.

“하쉬샤신은 군나르 족입니다. 따라서 군나르 족의 검술을 씁니다. 그리고, 부단장님께서 군나르 족과 검을 제대로 맞댄 건 처음일 것입니다.”

“.........”

“그러니, 익숙한 쪽과 익숙하지 않은 쪽에서 차이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자카의 검이 에셀먼드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베는것이 주 특기인 샴쉬르와, 에셀먼드가 들고 있는 양날검이 계속해서 부딪혔다. 하쉬샤신은 군나르 족이 만든 암살단이다. 그리고 확실히 이자카는 그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검술과 공격에 익숙해 졌기 때문에 상처를 하나도 입지 않은 것이다. 반면에 에셀먼드는 그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부단장님은 절대로 패배하지 않습니다.”

칼츠 경이 말했다. 에셀먼드의 검이 큰 원을 그렸다. 햇빛에 검광이 번쩍여 비올렛이 잠시 시야를 잃었다 다시 찾을 때, 비올렛은 무릎을 꿇은 이자카를  발견했다. 쿨럭, 하며 그는 피를 토해냈다.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웃고 있었던 것이다. 환호성이, 함성이 그녀의 귀를 때렸다. 절대패하지 않는 기사. 에셀먼드가 이겼다. 절대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 했던 그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아직도 꿈같아 믿겨지질 않았다. 그가 살았다. 살아난 것이다. 비올렛은 자신이 그의 승리를 갈망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적이 일어났다'라고 생각 한 것은, 그녀가 그 누구보다 기적을 열망해왔던 것을 드러냈다. 그녀는 에셀먼드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그가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아슈카바드에 가고 싶어했던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무사하게 이겼다는 것 만으로도 그녀는 그 사실에 희미한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이유가 어떠했던간에 자신을 위해 검을 들었고 승리했다. 비틀린 욕망일지언정 비올렛의 심장이  기이한 흥분으로 두근거렸다.

그녀는 그가 이기는 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그녀는 서서 그 기사를 보았다. 무패의 기사라고 불리는 나라의 검이 될 청년을.  에셀먼드는 그럼에도 승리에 도취되는 젊은이 특유의 흥분도 없이 그저 냉정한 얼굴로, 아주 당연한 것을 해냈다는 듯이 그의 주군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올렛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마치 어떠냐고 묻는 것 같았다.

무엇을 바라는 건지 모른다. 여전히 차갑고, 무뚝뚝하며.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주제에 무엇을 보려 주려고 했는지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비올렛은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에셀먼드에게 다가갔다.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는 모른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대립의 가장 큰 주제는 성녀였고, 그 성녀는 이제 이민족들 손에 끌려가지 않아도 되며, 지켜졌으니 말이다. 그녀는 이 레기우스 살바나의 주인공이었다. 그 먹먹한 함성 소리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무슨 기적이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에셀먼드에게 다가가자 그가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그레시아의 기사 에셀먼드 에르멘가르트, 당신을 지켜낼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

“이곳은 당신의 나라입니다.”

설마 정말로 이런 것을 위한 우승이 아니길 바란다. 멍하게 놀렸던 손을 잡아 그가 입술을 맞추었다. 이 순간 비올렛은 마치 그가 자신의 것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휩싸였다. 여인에게 하는 기사의 의례적인 인사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의식했는지 조금은 오래 그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에셀먼드의 두 눈이 비올렛을 향했다. 에셀먼드는 가끔씩, 무슨 감정을 담고 있는지 모르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는 했다. 아까도 그러했으며, 지금도 그러했다. 어두운 푸른 눈에 혼을 빼앗기듯, 그녀는 그것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코멘 많아서 고마워요... 감사해요.. 사랑해요.....오신김에 추천도 해주시면 감사하게씁니다 ^0^

그런데 어쪄죠..저는.... 힘이 없어요...(아마 지니어스 보는 사람들은 알듯)

타자칠 힘이 빛났다!!사라져.......

참고로 여러분.. 저는 결국 무도를 포기한 채 글을썼답니다.. 과거 회상편만 쓰려다가

그래도 여러분이 원하는 장면은 따로있을 것 같아 덧붙였습니다. 원랜 다음편 분량이었다능...

후......아직도 힘이 빠져.......

이휴....으그으그ㅏ 그냥 지니어스는 데스매치 선공개때 망한것같아요

그랜파이널인데 뭔가.. 걍 답답함..시즌 1때처럼 그게 없어요.

으어... 소설이야기보단 이이ㅑ기를 했다...

여러분...비올렛이 마음을 깨달은게 아니라.. 이미 좋아하고 있었던거에여.

이제 이해안가던게 이해가 갔나여?

그리고 본디 제 캐릭터에 과도한 욕은 별로 안좋아합니다... 뭐 그렇다고요.

그리고 비올렛이 구른만큼 에드도 구른다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드는 여러분이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구를겁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한 연애에 대해 자꾸 요청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아직 절반도 안왔고, 꽁냥꽁냥은 없습니다. 한번씩 코멘이 제게 보내는 메세지라는걸 잊으시고 짜증내시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꽁냥이 언제나오냐고요? 아직도 멀었고, 당분간 안나올 수도 있습니다.

여긴 로맨스 '판타집'니다. 로맨스가 주가 되긴하지만 로맨스로서 벌어지는 사건 보다는

사건이 먼저고 그 다음에 로맨스 순으로 전개할생각입니다. 로맨스 50판타지 50이에요.

로맨스가 낭낭한건 저보다 뛰어나신 다른분들 소설도 꽤 있으니 그 분들 소설을 보시며 즐거워 해주시면 되십니다. 여기서 로맨스를 원하기엔 여러분도 개연성이 문제가 된다는거 아시잖아여 ㅠㅠㅠ

. 꽁냥꽁냥을 기대하기에 이 소설은 피폐하며 성장물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완벽하고 시원시원한 애들은 없을 거에요. . 게다가 비올렛이 성녀이고, 에드가 오라버니라는걸 잊지 말아주셨으면 해여. 가끔가다 한번씩 코멘트를 보면 답답해 집니다...

또한 에드에 대해 표현한 것은 정말 아주 아주 소소한 단편적인 것들 밖에 없어요. 비올렛의 시점이니까 당연히 그럴만도. 에드의 심정에 대해 벌써 이해가 가신다면 여러분들은 정말 실력이 뛰어나신분들입니다!!진짜에여 ㅋㅋ 소설 쓰셔도 되실분들이심ㅋㅋ 여튼 이해를 못하는게 당연합니다. 짝사랑 할때 상대의 감정을 어느정도 눈치채는 사람도 있는 방면 정말 모르다가 고백받을때도 있죠 남주감정은 최대한 절제하며 쓸겁니다. 그러나 가장 필요하 곳에는 아끼지 않고 표현할 겁니다.

여러분. 완벽한 남주와 여주가 있는 로설도 있지만. 저는 절대 완벽한 주인공들을 쓰지 않을겁니다. 나도 완벽하지 않듯 여러분들도 완벽하지 않을테니까요. 남주도 부족할거고 여주도 부족할겁니다. 너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며 노골적으로 싫다 하면 우리애들 상처받아요 8ㅅ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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