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원에 핀 제비꽃-89화 (82/208)

00089  피어오르는 꽃봉오리  =========================================================================

체자레가 웃으며 경기장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하얀 소년들을 바라보았다. 천상의 목소리를 노래하고 있는 소년들은 모두 다 꿈결처럼 아름다운 외모들이었다. 아름답다. 그러나 깨끗한 음은 소년들은 모두 장송곡을 부르고 있었다. 모두가 다 그 아름다운 노래에 신전의 위세와 권위에 대해 실감한다. 그것이 누군가의 혼을 위로하는 검은 죽음의 노래라는 것을 모른채.

오랜만에 보는 이자카가 아름다운 소년들에게 에워싸였지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노래가 주는 불길함과 음울함을 알고는 있는 것일까. 이자카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에셀먼드가 나왔다. 언제나 정시에 나왓던 에셀먼드 치고는 조금 늦은 편이었다. 에셀먼드는 언제나 처럼 읽을 수 없는 무표정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주군, 왕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흘낏 본 왕의 얼굴은 차가웠다. 그러나 그는 그 차가운 얼굴에 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는데, 그 얼굴이 체자레와 비슷해서 소름이 끼쳤다.

“.......”

호각소리가 들리고 환호성이 들린다. 아마 이곳에 있는 이 모두가 다 에셀먼드를 응원할 것이다. 아그레시아의 검인 베오른 에르멘가르트의 후계자, 에셀먼드 에르멘가르트. 비록 본선부터 참여하긴 했지만, 왜 본선부터 참여했는지에 대해 사람들의 불만을 눌러버린 장군의 아들이자 기사. 그는 자신의 검을 들었다. 그리고 이자카가 자신의 샴쉬르를 들었다. 마치 초승달처럼 휘어진 검신은 에셀먼드의 검보다 길었으며 새하얀 광택을 지녔다. 그 검을 비올렛은 본적이 있었다.

서로간에 무어라 대화를 나누는지 이자카의 입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서로 빈틈을 보며 기다릴 거라 생각했던 예상관느 다르게 이자카가 다짜고짜 검을 휘둘렀는데, 휘리릭, 하는 소리가 이곳까지 들린다는 착각이 들 정도 엄청난 속도로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에셀먼드를 향해 찔러들어왔다. 휘어있는 샴쉬르는 직선인 검보다 속도가 빨랐다. 그러나 에셀먼드는 그것을 막아냈다. 환호성을 지르던 사람들의 외침이 점점 멎어들었다. 그리고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혔다.

모두가 에셀먼드의 패배를 점친다. 하지만 이상하다. 에셀먼드는 꽤나 잘 막아내고 있었다. 오히려 불필요한 동작을 넣는 이자카가 조금 떨어지나 싶을 정도로. 그러나 비올렛은 에셀먼드의 팔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방어만 하지 공격을 할 수 없는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방어만 했기에 상대적으로 빠른 이자카의 검보다 에셀먼드의 검이 더 잘 보였는데, 비틀린 자세를 하며 검을 취하고 있었다.

휘릭, 하는 소리가 들리며 계속 철과 철이 맞부딪힌다. 에셀먼드가 구석에 몰렸다. 그의 한 뺨엔 이미 아슬아슬한 피하기로 생채기가 나 있었다. 불안했다. 이자카는 뭐라고 에셀먼드에게 말하는 듯 했다. 하지만 에셀먼드는 입을 다문 채 경기에 집중했다. 땀에 젖은채 머리가 달라붙은 에셀먼드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이 경기가 주는 더위라기엔 무엇인가 이상했다. 그것은 이자카 역시 마찬가지인듯 했다. 문득 이자카가 틈새를 보아 에셀먼드의 어깨를 들이 받았다. 쿵, 하는 소리가 나며 에셀먼드가 뒤로 물러났다. 그는 하마터면 뒤로 쓰러질 뻔 휘청했으나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이자카는 뒷걸음질 치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무척이나 분노한 얼굴을 하고 에셀먼드에게 무엇이라고 소리치고 있었는데, 비올렛 역시 이자카의 분노의 이유를 알아 차렸다. 에셀먼드가 입은 것은 검은 갑주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경기장의 하얀 대리석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분명 신관에게서 치료받아야 했을 어깨가 하나도 낫지 않았다.

이자카가 다시 한 번 소리친 것은 그와 동시였다. 그는 아주 커다란 모욕을 받은 듯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뭐라고 고함을 쳤다. 그리고 이글이글한 두 눈으로 체자레쪽을 바라보았는데, 체자레 역시 그것을 묘한 미소를 지으며 응수하고 있었다.

호각소리가 두번 울렸다. 경기를 중단하는 것이었다. 앞으로 두시간 후에 경기는 재개된다. 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체자레와 함께 있는 것 보다는 편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려는 듯 했다. 어수선한 자리에 비올렛은 얼굴을 일그러트린채 처음으로 이성을 잃었다.

“이게 무슨 장난질입니까, 스승님!”

이때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깊은 상처를 입었다.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기억한다.

“로디온 경께서 단단히 복수를 결심하셨나 봅니다. 이단심문관인 로디온경을 거스르다간 이단으로 몰려서 죽기 십상이거든요.”

체자레가 말했다. 사람들은 떠들썩한채 에셀먼드의 상처에 대해 수근거리고 있었다. 신관을 욕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에 비해 체자레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그게 지금, 잘 된거라고....! 경기가 아닙니까! 목숨을 잃을수도 있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비올렛께서 이렇게 화를 내시다니, 재미있군요.”

체자레가 미소지었다. 왕, 성녀, 체자레를 비롯한 왕가의 사람과 체자레의 최 즉근이 있는 곳은 다른 곳들보다 더 튀어나와 있었고 충분히 소란스러웠으므로 비올렛의 목소리가 다소 컸음에도 그들의 대화는 묻혀서 들리지 않았다.  샤를과 신관 소년이 그녀를 바라보는 것을 알았으나, 그녀도 체자레도 신경쓰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성력을 다시 쓰시면 되실 일이 아닙니까?”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성력을 쓰지 못한다고 말했을 텐데요!”

“그렇다면 저대로 두는 수 밖에 없군요.”

“그건 스승님께서 흔히 말하는 아름다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미, 로디온 경이 패한 시점에서, 신전은 오명을 뒤집어 썼습니다. 대신관들도 두려워 하는 이단심문관의 뜻을 누가 말리겠습니까?”

“스승님!”

비올렛이 소리쳤다. 체자레가 그녀를 찔러들어올거라는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할 거라 예상하지는  못했다.

“스승님은, 제가 아슈카바드에 가는 것을 원합니까?”

“그게 사랑스러운 제자의 소원이라면. 응당 들어줘야죠.”

“........”

“아슈카바드 측에서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성녀님께서는 아슈카바드 소속이 되지만, 말룸에 대해 퇴치만 하시면 되십니다. 성녀님. 사실 성녀님이 계실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백이십년동안의 성녀의 부재에 왕도, 교황도 당신을 잊은지 오래입니다. 당신의 자리는 이미 없었단 말입니다. 이미 아시고 계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리하여, 중도를 선택하셨고요.”

“........제게, 그렇게 성력을 쓰게 만들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이렇게나 하니 말입니다. ”

체자레의 말에 비올렛이 한쪽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체자레는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아아, 역시나 이 말을 믿어주지 않는군요. 제 나름대로 독하게 말했는데 말입니다. 사실 저로서는 당연히 성녀님이 우선입니다. 나의 제자, 당신이 있을곳 따위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어요. 당신을 위해 증명하라면 얼마든지 증명해 낼수 있습니다 비올렛.”

체자레가 비올렛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분노에 찬 비올레의 뺨에 체자레의 차가운 손이 겹쳐졌다.

“그러나 비올렛, 뺏긴다면 다시 뺏어오면 될 일입니다. 당신을 지금 잃는다고 평생 잃는게 아니에요.”

그가 속삭였다. 그의 금안이 반짝였다. 체자레는 비올렛을 이자카 측에 보낼 각오까지 하고 에셀먼드를 치료해 주지 않았다. 그를 치료하면 신전측에 넘어가고, 치료하지 않으면 에셀먼드의 필패이다. 체자레는 비올렛이 성력이 없는 척 연기하고 있다는 것 따위 잘 알고 있었다. 성력이 그를 상회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그러나 이런 식으로 파고들게 될 줄 알았으면 어쩌면 처음부터 신전에 가는게 옳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아직도 애송이였다. 체자레가 왜 아직도 그녀가 어리다고 말하는지, 그녀의 발버둥이 보인다는지 알았다. 그녀를 몰아 넣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얼마나 큰 오만이었나.

비올렛은 뒷걸음질 쳤다. 체자레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순순히 그녀를 놔 주었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리 국왕이 이런 사실을 몰랐을리는 없다. 이 경기는 레기우스 살바나. 주최하는 것은 ‘나라’이며 왕성측에서 기획한다. 그러므로 신관들이 치료를 거부했고 에셀먼드가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국왕은 알고 있으리라. 그런데 국왕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국왕이 명령한다. 교황이 최고 권위자이지만 왕의 명령을 거역할 신관은 없다. 그렇지만 왕은 에셀먼드를 방치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던 비올렛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체자레에게 제시했던 조건을 국왕측에도 제시했다고 후작은 말했다. 그러니, 에셀먼드가 이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체자레에게 가서, 민중을 현혹시켜 왕권을 낮출지도 모르는 존재를 군나르에 보내는게 더 낫다고 판단했던 국왕. 에셀먼드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던 국왕.

에셀먼드의 상처를 보고 로디온 경이 개입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면 국왕 역시 이것을 이용한 것이 아닐까. 체자레가 비올렛을 데려가려는 목적이었다면, 국왕은 이자카에게 비올렛을 던져주고, 신전에 대한 여론을 나빠지게 하며, 에셀먼드의 패배를 정당화 시키는게 목적은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구역질이 났다.

누가봐도 에셀먼드의 상처는 심하다. 하지만 신관은 치료해 주지 않았다. 그 심한 상처에 패배해도 그것을 탓할자들은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이미 에셀먼드는 로디온 경과의 시합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다소 성녀를 빼앗겼더라는 리스크는 크겠지만 국왕은 그정도로 신전을 증오하는 것이다. 비올렛은 선왕이 교황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굴욕적인 사건을 학습해서 알고 있었다.

아. 왜 후작 가의 분위기가 이상했는지 알아차렸다. 왜 에셀먼드의 패배를 그렇게 확신했는지도.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에셀먼드를 모두가 다 믿고 있었다. 그러나 패배를 점쳤다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 상처를 입고 승리할 리는 없었다. 에이든이 몇번이고 그녀에게 무언가 말하려 망설였던 것은 비올렛에게 성력을 쓰도록 부탁하려려는 이유였다. 에이든은 비올렛이 성력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앤 역시 마찬가지였다. 후작이 비올렛에게 부탁하지 않은 것은 국왕의 명령 때문일 것이다.

하... 하하. 비올렛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비올렛은 에셀먼드가 있을 곳으로 뛰어갔다. 비올렛은 정말로, 정말로 싫었다. 넌덜머리가 났다. 이곳 아그레시아가 증오스러웠다. 아니, 그냥 이런 것도 세상이라고 창조해낸 그 절대신이라는 작자도 미웠다. 비올렛은 복도에서 눈물바람으로 뛰어오는 패트리샤를 보았다. 그녀는 비올렛을 보더니 멈춰섰다.

“더 가지 말아요. 에셀먼드 경 께서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 하셨어요.”

그녀가 훌쩍이며 말했다. 하지만 비올렛은 그녀의 말을 무시한채로 걸어갔다.

“비올렛, 제 말을 무시하나요?! 경 께서는 출입을 금하셨어요, 당신은 갈 자격도, 갈 능력도 없단 말이에요!”

그 말에 비올렛이 차갑게 대꾸했다.

“자격과 능력을 재단할 권리를 누구에게 준 거죠, 데후바스 양?”

서늘한 그녀의 얼굴에 데후바스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비올렛에게 무례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에드 경은 당신을 들여보내주지 않을 거에요.”

“누가 이 나라에서 높은 사람인지 시험해 보고 싶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죠.”

그녀는 냉소적으로 말하며 그곳으로 뛰어 갔다. 긴 복도의 끝에 문앞에 서 있는 칼츠 경과 루체 경이 보였다. 칼츠 경은 그녀를 보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언제부터 경들께서 절 막을 권한이 있었죠?”

비올렛이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칼츠경은 괴로운 얼굴이었다.

“보여주고 싶지 않아 할 겁니다.”

“제가 보고 싶습니다.”

언제나 웃긴 사람이다. 생각해보면 정말로, 에셀먼드는 언제나 괜찮은 척, 덤덤한 척 했지만 저런 상처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에드 경과 저, 둘중 어느 한사람이 높은지에 대해 설명해드려야 하나요?”

비올렛의 말에 칼츠 경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마 그녀가 물러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아 차린 것 같았다. 문을 열었다. 비올렛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방 안에는 소파가 놓여 있었다. 쾌적해 보이는  방이었지만 그 방 안에서 피 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에셀먼드는 그 방에 웃통을 벗은 채 등을 돌린채 서 있었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을텐데?”

싸늘한 그 목소리에 비올렛은 한숨을 내 쉬었다. 새하얀 붕대에 붉은 피가 비치는 게 보였다. 그는 이제 갑주를 벗고, 붕대를 새로 갈려고 한 것 같았다. 에셀먼드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또다시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비올렛에게 시선을 고정했고, 그녀 역시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당신이나 나나.”

비올렛이 말했다. 그것은 에셀먼드를 처음으로 오라버니라고 지칭하지 않은 말이기도 했다. 귀족이라고 별거인줄 알았더니. 이용이나 당한다. 그녀를 노골적으로 노려보는 에셀먼드에게 다가갔다.

“나 따위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팔을 주세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에셀먼드가 대답했다. 비올렛은 에셀먼드의 인내심에 감탄했다. 표정은 여전한 냉정한 에셀먼드 그대로인데, 정면으로 본 어깨의 상처는 심각했다. 만약 여기서 이자카가 제대로 검을 휘둘렀다면, 그는 팔을 영원히 잃었을지도 몰랐다. 정말로 여기까지다. 체자레의 수에 넘어가는 것은 분했지만, 어쩌면 패배의 가능성도 있지만 그래도 이것이 그녀가 선택할 길이었다. 하나 밖에 없지 않은가.

“어떻게 되든 끝이니까.”

비올렛이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에셀먼드의 얼굴과 그녀의 얼굴이 마주했다. 비올렛은.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우악스럽게 에셀먼드에게 붙잡혔다. 이렇게 거친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는 잠시동안 냉정을 잃은 듯 했다. 그의 행동에 비올렛이 움찔 놀라자 에셀먼드가 손목을 쥔 손에 힘을 뺐다.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보면 몰라요? 치료하려는 거잖아요, 이 상태로 검을 쓰면 정말 팔을 영영 못쓸 수 도 있어요.”

그 말에 에셀먼드가 말했다.

“억지로 숨기고 있는 거 아니었나? 네가 이걸 드러낸다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을텐데?”

“신전에 끌려가겠죠, 빨리 끌려가냐 늦게 끌려가냐의 차이에요.”

에셀먼드의 얼굴은 다시 냉정한 얼굴로 돌아와 차분한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고 있는 상태였다. 그에 설득이 되었다고 착각한 비올렛이 어서 손을 치워달라고 에셀먼드를 바라보자, 에셀먼드의 얼굴이 삽시간에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 노골적이고 알기 쉬운 표정 변화에 비올렛이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에셀먼드가 그녀를 끌어당겼다. 살짝 허리를 숙이고 있던 비올렛이 갑작스럽게 끌어당기는 바람에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 손목은 다시 힘이 들어가 있었고, 이번에 그녀는 그것에 작게 저항했지만 손아귀의 힘 때문에 뗄수가 없었다. 에셀먼드가 비올렛에게 얼굴을 가까이가져다 댔다. 얼음을 담은 듯한 눈이 갑자기 분노의 열기를 머금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푸른 불꽃같은 분노가 그녀를 향했다.

“너는, 대체 나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 생각이지?!”

“오..라버니?”

그 말에 에셀먼드가 소리쳤다.

“그래, 나는 빌어먹게도 네 오라비이며, 이 나라의 기사이다. 그리고 너는 이 나라의 건국 신화의 화신이며, 신의 대리인이지.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이 나라의 의무에서? 네가 있어야 할 ‘이 곳’에서?”

비올렛은 멍하게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에셀먼드가 처음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물론 그가 짜증을 내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이성을 잃고 화를 내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를 만나고 난 후 처음이었다. 평민 여자와 노파의 목을 자를 때도 그는 언제나 처럼 냉철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완벽하게 화가 난 사람 그대로의 얼굴로 일그러져 있었다.

“........”

“신전 속에서, 교황의 꼭두각시가 되어, 그렇게 살고 싶은가? 아니면 이민족에게 이용당하여 네 의무를 다른 이에게 떠맡긴 채 편안한 삶을 누리고 싶은가? 하지만 난 그걸 두고보지 않을거다. 너는 네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며, 네가 스스로 설때까지 네 의무에서 달아나지도 도망치지 못해. 나는 널 그렇게 놔두지 않을거고, 놔주지 않을 거다. 네가 나를 용서하지 않더라도 나는 평생!”

의무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한다. 스스로 일어서라고 한다. 놔주지 않을 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곳에 있으라고 말한다. 평생,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용서’와‘평생’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비올렛도 참을수가 없었다. 에셀먼드가 써서는 안될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용서’와‘평생’이라는 단어였다.

“그렇게  당신을 용서 못하는 나를 평생을 잡아두고 싶었다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에셀먼드를 노려 보았다.

“3년전에는 왜 떠났던 건가요!”

비올렛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모른다. 저 사람은 모른다. 알지 못한 채, 저런 말을 쓰는거다. 안다. 이 사람이 돌아오고 나서 비올렛은 흔들리고 있었다. 다니엘의 목소리를 따라 그를 증오하기로 했다. 미워하기로 했다. 용서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녀가 끝을 내기로 했다.

‘미안하다.’

열 여덟살의 남자가 열 세살의 소녀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흡사 기사의 맹세와도 같다. 그러나 소녀는 가혹한 검술훈련 때문에 얼굴도 옷도 흙투성이었다. 그에 비해 소녀의 앞에 무릎을 꿇은 남자는 말끔했다. 그럼에도 남자는 그것에 개의치 않고 무언가 말하는 것이었다.

‘네게는 평생 사죄할거다.’

‘.........’

‘그래, 네 소중한 마을이었을지도 모르는 그곳을 습격하도록 명령했던 것은 내 오만과, 어리석음에 따른 결과라는 것을 안다. 용서하라고는 하지 않을 거다.’

‘........’

‘그러니 네게 평생을 바치겠다.’

남자의 말에 소녀는 울음을 터트렸다. 한참동안 울음을 터트리는 그녀를 달래지도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잘못을 비는 이의 비굴함은 없다. 언제나 처럼 그는 고고하다. 그러나 달빛에 물든 맑은 눈동자가 비치는 것은 순수한 참회였다.

용서라는 것은 타인이 사과를 했을 때만 가능하다. 사과가 없는 이상, '용서'라는 것은 성립할 수가 없었다.

신을 저주한 분노만을 품었던 어린 소녀가. 그 증오라는 질척하고 힘든 감정을 껴안기는 힘든 것이었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행복해 지고싶었던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욕구였다. 용서조차 빌지 않고 당연하다 여겼던 후작과는 달리 처음으로 에셀먼드는 사과라는 것을 했다. 모든 일을 다 말하며. 일어난 사실만을, 절대로 가감하지 않은 채 그녀에게 판단을 맡겼다. 변명이라도 하는거냐고 비웃고 싶었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그녀도 알았다.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후회하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평생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린 소녀는 용서하려고 했다. 그래, 사실은 처음에는 용서하지 않으려 했다. 증오를 품고 그를 저주하려고 했다. 하지만 소녀는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소녀는 결코 그가 잘못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녀는, 어린 열세 살의 어린 소녀는, 비올렛은. 참회하는 그 기사를 열 여덟살의 소년을, 남자를, 에셀먼드를 마음에 품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미 그 마음은 비올렛의 마음에 스며들어 있었다. 편지위에 떨어진 눈물방울로 번져버리고 만 잉크의 색깔처럼, 서러운 빛깔로 서글프게.

============================ 작품 후기 ============================

여러분 그냥 저 왔어여 ㅋㅋㅋㅋ 읍.. 역시 불가능했군. 근데 오늘 조아라 섭 터진거까지 고려하면

여러분들이 분발 했다는 것 정도는 저도 알 수 있죠!

대신 여러분 이번편은 코멘 기대해도 되죠? ㅎㅎㅎㅎㅎ 100개가 넘어쓰면

조케써여............나는................................독자님들을........사랑하니까.....큽..

그랬으면 좋겠... (금잔화꽃 (2x)/코멘갈취범)

다음편은 더 재밌을 텐데! 일단 내일 무리해서라도 올릴까 생각하고 있어요. 만약 그걸 원하신다면 추처어어언 참고로 내일은 지녀스랑 무한도전 해서 ㅋㅋㅋㅋ 진짜 무리해야해요 ㅋㅋㅋㅋ

아참. 연재 일정에 대한것은 휴재하려면 트윗으로 공지합니다.

@alsxm2387등록해주시구요. 연재일정은 트위터로만 남깁니다.

이틀에 한번, 아니면 매일.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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