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0 피어오르는 꽃봉오리 =========================================================================
“요사이 피곤하십니까?”
왕자의 물음에 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으려고 했다. 그렇게나 표가 났나. 왕자는 섬세한 편이었으므로 그녀는 언제나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 칸이라는 자가 아직도 스승님을 괴롭힙니까?”
“괴롭히는건 아닙니다.”
그래, 괴롭히는건 아니었다. 그저 그녀의 옆에 꼭 붙어있으려고 해서 문제였지. 그가 옆에 있으면 조금 힘들었다. 게다가 그녀는 성녀이자 나라의 대표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저번에 졸려서 넘어질 뻔 했을 때와 같은 실수를 할 수 없어서 더욱 그러했다.
“괴롭히는 ‘건’아니라는건 비슷한건 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녀는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샤를의 얼굴에 걱정의 기색이 서렸다. 비올렛은 이 자그마한 소년에게 미소를 지었다.
“전하는 참 다정하시군요.”
비올렛의 갑작스러운 말에 오히려 샤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샤를은 어버버 하더니, 말했다.
“아니, 저는 스승님이 걱정이 되어 그런겁니다. 그게 어째서 다정한게 되는겁니까.”
“사실 걱정을 드러내고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는 많지 않아요.”
그 말에 샤를이 볼을 긁적였다. 샤를은 꼭 제 나이대의 소년으로 보였다. 그는 눈을 굴리다 말했다.
“저는 사실 스승님을 칸에게 빼앗긴 것 같아서 싫습니다.”
“그래요?”
비올렛이 동그랗게 눈을 떴다. 이자카 때문에 사실 샤를과의 수업시간도 조금 짧아졌고 그녀역시 상대적으로 샤를에게 덜 신경을 쓰게 되긴 했다.
“아슈카바드의 칸은 매력적인 젊은 남자라고 들었습니다. 무력도 뛰어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그를 따른다고 하지요? 게다가 부족들을 통합시키는데 모두가 그를 따랐다고 합니다.”
“........”
“아버님은 아마 그런 남자가 아들이었기를 원했을 겁니다.”
샤를의 침울한 얼굴을 보며 비올렛은 생각했다. 그리고 다니엘이 떠올랐다. 형을 질투해서 그렇게 비뚤어져버린 그 모습. 이 소년도 그렇게 되어버릴까.
“하지만 전 전하가 더 좋습니다.”
“정말이십니까?”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간절한 호박색 눈동자가 보였다. 누구에게서라도 어떻게 해서든 존재의 가치를 찾으려는 그 절박함에, 그리고 하필 그 대상이 자신이라는 사실에 비올렛은 그저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저는 왕자님의 다정함과 사려깊으신 점이 좋습니다.”
“.......”
“무력은 생명을 해치기 위한 힘입니다. 그것이 높다고 해서 용맹하다 말할 순 있겠지만 저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스승님.”
“부족들을 통합한 영웅이라 하셨나요? 그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을 까요?”
비올렛이 말했다. 샤를은 비올렛의 눈에서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처음 만난 비올렛은 검을 들었다. 그리고 호랑이의 목을 망설임없이 베어버렸다. 검에 대해 배웠어도 그녀는 검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라를 지키는데에 필요한 힘입니다.”
“그렇게까지 전하의 가치를 낮추고 싶다면 계속 그러십시오.”
비올렛의 답지 않은 차가운 말에 샤를이 울컥했다. 하지만 그것이 또 자신을 위하는 말이라 화를 낼수는 없었다.
“피를 안흘리는게 제일입니다. 피를 흘리는걸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피를 부르는 힘이 좋은게 아닙니다.”
샤를은 비올렛의 얼굴이 씁쓸해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게 굴어 비올렛을 귀찮게 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은 이래서 문제였다. 그는 자신을 반성했다. 그러나 화제를 돌리려고 꺼냈던 화제가 별로 좋은 화제가 아니라는게 문제였다.
“그래서 스승님은, 에셀먼드 경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것입니까?”
“글쎄요.”
비올렛은 그저 애매하게 미소지었다. 샤를은 앗차, 하고 자신의 혀를 깨물고 싶었다. 항상궁금해 하던거라 너무 불쑥 물어보았다. 다행히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에셀먼드 경은 연무장쪽 기사단 건물에서 수련을 하거나 업무를 보고 있을 터였다. 다행히 비올렛도 그다지 기분나빠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는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샤를에게 있어서 비올렛은 언제나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가끔씩 느껴지는 다정함이 의아했다. 샤를에게 거리를 두는 비올렛이었으나, 어쩔때 얼핏얼핏 보이는 따스함때문에 샤를은 그녀를 좋아할 수 밖에 없었다.
비올렛은 여느 때와 같이 수업을 시작했다. 열린 창문으로 열리는 선선한 바람에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비올렛이 망설임 없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비올렛이 그가 더 좋다고 말한 것은 진심이었다. 샤를은 헤헤, 행복하게웃었다. 비올렛은 괜히 빼앗긴것 같다는 샤를의 말을 신경쓰고 있는 것인지 마지막 부분에서 칸보다 훨씬 이해력이 좋다고 칭찬했다. 그것만으로도 샤를은 뿌듯해서 날아갈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난 후, 문을 열었지만 언제나 처럼 마중나와 있던 에셀먼드가 없었다. 그저 몇몇의 제 1기사단과 2기사단 소속의 기사들 만이 서 있었는데, 에셀먼드가 없자 조금 허탈한 기분이 되었다.
“항상 절 호위하느라 밀린 일이 좀 많았나봅니다.”
비올렛으로서도 언제나 시간에 맞추어 귀신같이 와 있던 에셀먼드가 없어서 조금 허전함을 느꼈다. 그리고 허전함을 느끼는 자신에게 놀라며 그것을 애써 부정했다. 왕자의 수업을 마지막으로 퇴궁할까 했지만 비올렛은 자신이 며칠동안은 왕자에게 상당히 사무적으로 대했다는 것을 알았다. 왕자도 아마 빼앗긴 기분이라는게 그런 것을 의미하겠지. 샤를은 외로움을 많이 타는 소년이었고, 가끔가다 예전에 자신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연무장까지 같이 가요, 전하.”
그 말에 샤를이 활짝 웃었다.
샤를과 궁 안을 거니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호위기사를 뒤로 하고 조용히 거리를 걸었다.해는 길었으나 몇시간 후면 떨어질 것이다. 쓰르라미의 소리가 들렸다. 날은 더웠지만 걸어가자 기분좋을 정도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스승님의 머리 색은 참 신기합니다.”
“뭐가요?”
“해가 물들면 금색으로 반짝거립니다."
비올렛이 빙그레 웃었다. 샤를은 확실히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바람에 나뭇잎사귀가 부딪히는 시원한 바람소리가 들렸다. 그림같은 왕궁의 풍경에 갑자기 새의 날카로운 울음소리에 비올렛은 왕자를 감쌌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어깨를 스치고 화살이 바닥에 내리꽂혀졌다.
“스승님!”
왕자가 소리쳤다. 호위기사들이 재빨리 달려왔다. 화살을 겨눈 살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비병!”
호위기사 중 한명이 소리쳤으나 소리를 내기도 전에 목이 꿰뚫렸다. 그 장면을 샤를이 볼까봐 비올렛은 샤를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호위기사 몇몇이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일곱여명 정도 되는 암살자들이 궁 안에 들어온 것인가. 아, 혹시. 비올렛은 생각했다. 교황이 보낸것은 아닐까. 성력을 쓸건지 안쓸건지 판단해 보기 위해, 일부러 보낸........ 왕자가 죽으면 체자레가 계승자가 된다.
다시 한 번 화살이 비올렛을 스쳐지나갔다. 비올렛은 샤를을 안고 재빨리 땅바닥을 굴렀다. 샤를이 깜짝 놀란듯 숨을 헐떡이는걸 달래며 그녀는 목이 꿰뚫린 죽은 호위기사곁에 엉금엉금기어가 팔을 뻗어 검을 뽑아들었다.
그때 기사 하나를 더 처리한 암살자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검은 복면아래의 암살자는 상당히 그녀를 우습게 보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비올렛이 검을 든 자세를 보고 그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저기 가 계십시오 전하!”
비올렛이 소리쳤다. 샤를은 보이지 않았다. 캉, 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악력이 느껴졌다. 남자가 든 것은 휘어진 모양의 대도였다. 비올렛의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스승님!”
“성녀님!”
샤를의 목소리와 함께 호위기사 몇몇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도 비올렛을 도와줄 여력은 되지 않았다. 바들바들 떨림에도 비올렛은 이를 악물며 악착같이 그것을 견뎠다. 그리고 애써 그것을 흘려보내고 다시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그녀는 왜 후작이 동물을 죽이면서 까지 이런 짓을 시켰는지 잘 알고 있다. 검으로 살을베여내는 감촉은 언제나 끔찍했다. 그녀는 남자의 허리를 베었지만 그것은 남자에게 긁힌 상처정도 밖에 되지 않는 듯 했다. 그녀가 다시 자리를 잡자 그가 다시 검을 내려쳤는데, 그 힘이 어찌나 쌨는지 손에서 쥐어진 그녀의 검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암살자가 그녀를 걷어 찼다. 그녀는 땅바닥에 굴렀다. 콜록 기침을하며 그녀는 누운채 다가오는 암살자를 보고 있었다. 주변에 검이 있나 봤지만 검은 없었다. 어차피 죽어도 그만, 살아도 그만 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목숨을 끊는것은 그녀의 선택이지, 이렇게
누군가의 타의로 이루어지는 것은 사절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죽으면 샤를도 죽는다.
누워있는 그녀가 두 손을 모았다. 그녀는 성력을 쓸 작정이었다. 왕자나 호위기사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성력을 쓴다면 문제야 없겠지만 성력을 감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왕궁 내에 있을 경우, 꼼짝없이 들키게 되어 신전으로 강제로 가야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검을 든 암살자는 그녀가 힘을 쓰기도 전에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괜찮나 피아케?”
고끄라진 그 앞에 이자카가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피묻은 곡선으로 휘어진 칼이 들려 있었다. 덜덜 떨리는 팔을 들어 몸을 일으키자. 샤를은 구석에 웅크려 있었다. 그녀는 얼른 샤를에게 다가갔다. 이자카의 가신들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자카는 혼자였다.
“괜찮습니다 감사...윽!”
그녀가 윽, 하는 소리를 내며 어깨를 감싸자 이자카가 인상을 찡그렸다. 샤를이 스승님, 하고 소리쳤다. 그때 새가 다시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냈다. 그것은 경고음이였다.
“위험해요!”
비올렛의 말과 동시에 다른 살수들이 나타나 거의 이자카의 등을 밸 뻔했다. 그녀의 경고와 동시에 이자카는 몸을 틀어 갑작스럽게 공격에 들어온 암살자들의 허리를 베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비올렛이 중얼거렸다. 암살자들 몇몇이 달려들자 이자카가 검을 휘둘렀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그들의 목이 날아갔다. 그 끔직한 장면을 샤를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비올렛은 재빨리 다시 샤를의 머리를 감쌌다. 샤를은 너무 놀란 모양인지 바들바들 떨며 그녀의 팔을 꼭 쥐고 있었다.
“전하!”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셀먼드의 얼굴이 보였다. 에셀먼드가 은빛의 검을 꺼내들었다. 에셀먼드의 뒤로 기사들이 검을 뽑아 잔당들을 없애기 시작했다. 화살이 날아다녔다. 비올렛은 그저 그 아수라장에서 샤를을 끌어안고 있었다. 고함소리, 쇠붙이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되자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시체들이 바닥에 널려 있었고 어떤 자들은 팔이 잘려 재갈이 물린채 포박되어 이동되고 있었다.
어깨에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긁힌 정도라 괜찮았다. 살수를 받아내서 팔이 덜덜 떨렸지만 샤를의 충격보다는 덜할것이다. 샤를은 보기도 애처로울 정도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이자카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다행히 그 역시도 상처를 입은 모습은 아니었다. 이자카가 다가가 손을 뻗으려 했지만 비올렛을 일으켜 세운것은 에셀먼드였다. 언제 등 뒤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몸을 경직시켰던 그녀는 에셀먼드에게 기댔다.
“괜찮으십니까.”
“저보다는 전하가 먼저이지 않습니까.”
“단장님이 계십니다.”
샤를은 기사단장인 브라운슈바이크 경이 돌보고 있었다. 몸이 멀쩡해 그녀는 진정이 되자 혼자 설 수 있었는데, 그러자 에셀먼드의 옷이 보였다. 그 역시도 제복이 찢어져 있었는데 특히나 팔 쪽이 심하게 찢어져 있었다. 그리고 검은 제복 안에 보이는 하얀 셔츠는 붉게 물들어있었다.
에셀먼드가 다쳤다. 멍했던 정신이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에셀먼드는 그녀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다쳤다는 것, 그러니까 이렇게 심하게 다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라버..”
그녀가 놀라 팔의 상처를 보자 에셀먼드가 얼굴을 찌푸리더니 팔을 재빨리 내려 그녀의 시야에서 팔을 가렸다. 에셀먼드는 지금 이 순간 무척이나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그 상처에 대해 말을 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날 뻔했다.”
이자카가 다가왔다. 에셀먼드에 비해 일찍 와서 다수를 상대했음에도 그는 상대적으로 멀쩡했다.
“칸 덕분에 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에셀먼드가 말했다. 비올렛은 에셀먼드의 팔에 시선이 자꾸만 향했다. 쪼개지듯 찢어져있는 옷가지 사이로 깊게 패인 상처가 보였다. 팔을 타고 흘러내린 피가 에셀먼드의 손에 있었다.
“단장님!”
브라운슈바이크 경이 시체를 보고 있던 기사 한명에게 불렸다. 에셀먼드도 기사의 부름에 시체쪽으로 향했다. 비올렛 역시 그쪽으로 걸음을 했다. 시신의 얼굴을 들어보니 갈색 피부가 보였다. 게다가 검 역시도 이자카의 것과 비슷한 휘어진 검(샴쉬르shamshir)를 쓰고 있었다.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너무도 명백했다.
암살자들은 모두 군나르족이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이자카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그에 비해 이자카는 이것을 예상한 듯 평온한 표정이었다.
============================ 작품 후기 ============================
추천을 하면은 건강이 좋아져요 쾌변해요!!!(배에서 꾸르륵소리가 들리며 등록버튼을 누르자 마자 화장실로 직행한다..)
에드가 다쳤어!! 근데 이자카는 안다쳤어.. 인기도 이제 이자카가 많아지는데 너 어떠카니 8ㅅ8(강건너 불구경)
여러분!! 걱정 마십시오. 에드의 외전 다니엘의 외전 제가 누굽니까(업신업신 거만거만)
다 써드리겠습니다~~~~~ 사실 외전이 아니라 본편에 있는 정규 챕터입니다.
요새 막 플롯이 짜졌다고 거만하게 자랑을 하고 다니다가 19금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는데
완결 내고 남자별로 19191919한 외전집을 낼까 합니다.
1. 에드 2. 다니엘 3. 이자카 4. 체자레(별표 백개)
벌써 구상이 다 끝났어... 빨리 완결내야게썽......근데 아직도 멀어써. ㅠ.ㅠ
그롬 200000!
즐거운...(사실 힘들겠지만) 월요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