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6 피어오르는 꽃봉오리 =========================================================================
그 남자는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생김새가 약간 다른 이들의 강렬한 눈빛은 부담스러웠다. 그는 가장 화려한 상아색의 옷을 입고 있었으며, 제복과는 비슷한 복식이었으나 동그란 단추가 있는 아그레시아의 복색과 달리, 세로로 긴 단추가 있었다. 커프스가 없이 접혀져 말려 올라간 외투 아래 검은색의 통이 큰 시원한 재질의 옷이 보였는데, 검은 색과 대비된 금실이 수놓아진 옷은 비올렛도 처음 보는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딱봐도 이 남자가 칸이었다.
“환영합니다. 이국의 이들이여.”
비올렛이 조용하게 말했다. 군나르 족 언어는 서투루게나마 배워두긴 했지만, 외교라는 것은 다른 나라 언어를안다고 해서 그나라의 언어를 함부로 써서는 안되었다. 남자가 성큼거리며 다가왔다. 그 남자는 키 뿐만이 아니라 덩치도 컸는데, 조금 위협적이게 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팔을 들어 고개를 숙였다.
“너를 봐서 기쁘게 생각한다.”
분명 군나르 족은 자신들의 언어를 쓸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서투르지만 공통어를 쓰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갈색의 피부 아래 선명한 초록색 눈이 보였다. 비올렛은 그 눈을 어디서 본 것 같다 생각했다. 남자가 화려한 모자를 벗자 소박해보이는 짧은 밀빛 머리카락이 보였다. 남자는 여전히 강렬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 시선의 연유를 알 수 없었다.
“너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의 목소리는 굉장히 낮았다. 그저 평범하게 이름을 묻고 있었으며 크게 소리치고 있지 않았지만 이 방안에서 큰 울림을 주어 가슴을 뛰게 했다.
그러나 이 남자의 목소리와 외양에 보다 비올렛은 이 서투른 외국어를 하는 외국인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만약 그가 외국인이 아니라면 그의 어투는 무척이나 고압적이고 무례했지만, 그가 외국인이고 이 어려운 언어를 배웠다는 것을 참작해야만 했다. 군나르 족과는 변경의 상인들을 제외하고는 공식적인 교류가 없었으므로 그들이 이런 서투른 말을 쓸 경우를 대비했어야 했다. 곧 왕이 올텐데 왕에게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거람? 그러다 다시 남자에게 시선이 가자 남자가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그래 이름을 물어봤지?
“비올렛.”
“비올렛?”
그녀의 이름이 그의 입에서 낮은 울림이 되어 울려퍼졌다. 그는 몇번이고 되뇌었다. 어딘지 모르게 외국인에게 자신의 나라를 가르치는 느낌이었다. 비올렛은 참을성 있게 그 남자를 기다렸다.
“너는 내게 꽃으로 불리길 바라는것인가?”
“무슨 소리를 하십니까?
“너는 꽃의 이름을 말하고 있다.”
비올렛은 이 남자가 비올렛의 이름이 꽃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것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꽃의 이름에서 따와 제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제 이름은 비올렛입니다.”
“그렇군, 너는 우리식대로 말하면 ‘피아케(fyake-제비꽃)’다.”
“피아케?”
그곳에도 제비꽃이 있었나보다. 피아케, 라고 중얼거리자 그가 다시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 딱딱해보이는 얼굴에 살짝 미소가 어려있었다. 왜 이렇게 자신을 쳐다보는 것일까. 부담스러웠지만 그녀는 이윽고 자리에 앉아 건녀편에 있는 그들을 마주보았다. 남자는 오만한 자세로 앉아 그녀를 똑바로 보았다. 잠시동안 그들은 서로 마주보았는데, 그 정적 이후 그가 불쾌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너는 나의 이름이 궁금하지 않은가, 피아케?”
“.........”
아, 너무 시선이 강렬하다보니 이름을 묻는 기본적인 것 조차 잊고 있었다. 아마 그것을 왕이 보았다면 못마땅해 했으리라. 그녀는 혼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 실례했습니다. 당신의 성함을 알려주십시오, 칸.”
“나는 카칸 브라함의 여덟번째 아들 아슈카바드의 칸인 이자카다.”
이자카. 낯선 이국의 이름을 몇번이고 되뇌었다.
“알겠습니다, 칸.”
비올렛이 말했다. 하지만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아주 불쾌한 듯 말하는 것이다.
“나는 칸이 아니라 이자카다. 너는 내게 이자카라 불러야 한다.”
비올렛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그레시아나 신성국가의 신앙을 따르는 국가들 처럼 저 나라에서도 호칭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칸이라는 것은 왕자라는 뜻도 되었으며, 아슈카바드의 칸이라는 것은 카칸국 아래의 아슈카바드라는 곳을 지배하는 지배자라는 뜻이다. 고로 그의 호칭은 칸으로 불려야 하며, 그녀가 배운 군나르 족 책에서는 그를 칸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았다. 이름을 부르는 자는 친한 친우이거나, 아니면 연인, 아내 뿐이었다. 자신이 그에게 호감을 주었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는 강렬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고, 그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군나르 족 문화도 제대로 조사한 책이 아니므로 그 사이에 풍습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이자카.”
그렇게 말하자 그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만족스러워 보이는 미소에, 비올렛은 역시 자신이 뭔가 호감을 살 일을 했나보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저 남자가 험상궂은 표정과는 달리 다정한 사람이거나. 그때 옆에서 빠른 언어로 누군가가 말했다. 전부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주의를 주는 듯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가 크게 소리쳤다.
“issib dak!”
나의 것? 이번에는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크게 지르려던 목소리가 아님에도 조금 언성을 높였을 뿐인데도 어찌나 목소리가 컸던지 비올렛은 자신도 모르게 귀를 막을 뻔했다. 비올렛은 그들의 대화를 전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들끼리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바라보자 이내 뭐라고 말을 하던 청년이 이자카를 달래는 듯 하더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성녀여. 저는 이자카님의 종인 라이니그입니다. 저희의 왕이신 이자카의 무례를 사과드립니다.”
아, 이제야 제대로 된 말을 하는 사람이 보인다. 어쩐지 못마땅해 보이는 이자카는 여전히 그녀를 보고 있었다.
“아닙니다. 마음에 담아 둔 바 없으니 심려치 마십시오.”
그 말에 이자카가 흠, 하는 한숨을 쉬었다. 명백하게 뭔가 못마땅해보이는 숨소리였다. 아마 이자카는 그녀의 말을 알아듣는듯 했다.
“그대의 명성은 이곳까지 들어 알고 있습니다. 120년만에 나타나신 절대신이 보내주었다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대가 악, 디아볼로스(diávolos)가 보낸 자를 퇴치할 존재라는 것도.”
“.......”
“그리고 150년 전, 우리 구자르트 족을 저지한 빛의 여인, 아나스타샤의 후계자라는 것도.”
비올렛은 그 말을 듣고 표정을 굳혔다. 구자르트 족은 아그레시아를 침략하려 하다가 아나스타샤의 힘에 의해 그들이 살던 척박한 땅으로 되돌아갔다고 했다. 그들은 성녀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일까? 비올렛이 그들의 표정을 살펴보았으나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국왕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체자레가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그는 여름을 맞아 다소 시원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자카는 거만하게 앉아 왕이 오는것을 지켜보았다. 라이니그가 뭐라 말하자 그는 일어났다. 왕은 그들을 환대해주었다. 비올렛의 걱정과는 다르게 통역사인 라이니그가 예의바르게 대답했기 때문에 비올렛이 처음에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체자레 역시 언제나 처럼 잘생긴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그가 가진 화려함과 이자카의 화려함은 어딘지 모르게 상반된 느낌이었다. 조금 부드럽게 분위기를 이끌어가던 왕과는 달리 체자레는 처음부터 대뜸 물었다.
“개종을 하겠다는 연유는 무엇입니까 칸?”
어찌나 부드러운 말씨였는지, 비올렛은 차가 맛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갑작스럽게 찌른 정곡에 이자카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왕보다는 그에게 흥미가 동한 것 같았다. 비올렛이 걱정스럽게 체자레를 바라보자 체자레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우리 나라가 몇천년동안 이 신앙을 가졌듯 당신들의 나라도 마찬가지 일 겁니다. 멏천년의 신앙을 왜 바꾸는 건지 납득할만 하게 설명해주셔야 될것입니다.”
“공작.”
왕이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체자레는 언제나처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폐하, 저는 이 자리에 교황을 대리해서 온것입니다. 저는 추기경입니다.”
그 말에 왕이 얼굴을 굳혔다. 보통 국왕의 말을 정정해 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마 그것은 구자르트도 마찬가지이겠지. 민감한 질문과 더불어 왕과 공작의 기세싸움에 정적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비올렛은 그둘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문득 그녀를 돌아본 체자레가 안심하라는 듯 그녀에게 미소지었다.
“신앙이라는 것은 그들이 절대적인 믿음의 기반입니다. 세월이 짧다고 무시할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길다면 더더욱 우습게 볼 것이 아니지요. 이 나라에 신앙을 알고 싶다면 납득할 만한 이유를 가르쳐주어야 할 것입니다. 성하께서는 그 이유를 알아오시라 명하셨습니다.”
그 말에 더더욱 분위기가 싸하게 굳었다. 저들을 믿을 수 없다고 대놓고 말하는 것에 비올렛은 기가 질렸다. 왕도 비슷한 태도였다. 도대체 무슨 이유때문에 저렇게 말한단 말인가. 구자르트 쪽에서도 그 말을 알아듣고 얼굴이 굳었다. 그때 이자카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성큼거리며 체자레에게에게 다가갔다. 라이니그를 비롯한 몇몇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네가 그 교황인가?”
“아닙니다. 저는 교황의 대리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널 납득시킬 의무가 없다.”
“........”
위압적인 말투에도 체자레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이자카의 단호한 태도는 체자레로서는 생경할 것이다. 비올렛은 자신 이외에 체자레를 저렇게 대할 사람이 또 나타났다는 것에 대해 놀랐다. 왕 역시도 그의 태도에 놀란것 같았으나, 왕은 그저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실례했습니다 칸. 저는 단지 당신들이 왜 신앙을 바꾸려는지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무례했다면 부디 노여움을 푸십시오.”
체자레는 아주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러나 이자카의 험상궂은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오만한 자세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는게 어떤가. 카칸 브라함은 나라를 통일했으나, 절대신을 믿는 신앙국가들이 많아 교류가 원할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교도에 오랑캐 취급을 받으며 배척당했다.”
“........”
“우리는 우리의 나라가 풍요로워지길 원한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에 답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을 말하는 이자카의 얼굴은 진지했다.
“우린 우리의 판단을 믿을 것이다. 우리의 눈으로, 절대신의 신앙을 믿는 자들의 나라에 방문해서, 빛의 여인 아나스타샤와 같은 여인이 있다면 그 신앙이 믿을법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같은 신앙을 믿는 나라를 외면할 리는 없을 것이다. ”
아나스타샤라는 말에 체자레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감입니다만, 우리 성녀님께서는 지금 신의 힘을 잃어버린 상태이십니다.”
그 말에 비올렛도 왕도 깜작 놀라 체자레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숨겨야 할 일이었다. 성녀를 보고 개종을 결정하려던 민족에게 성녀가 성력이 없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된단 말인가. 비올렛은 당황했다. 그리고 이자카 측도 당황한 듯 했다. 왕은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그역시 당황한 듯 했다. 이자카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성녀가 힘을 드러내는 것은 성녀의 자유다. 그대는 그 힘을 우리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건가?”
“아닙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위대한 정령도, 정령의 계시를 받은 무녀도 이곳에 답이 있다고 말하였다.”
“호오, 그 ‘위대한 정령’께서 그런 신탁을 내리셨답니까?”
“‘신탁’이 아니라 ‘계시’다.”
이자카가 말했다. 그의 강렬한 시선이 비올렛을 향했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신앙을 바꾸라는 것 역시 ‘위대한 정령’의 계시라면 그것을 따를 것이다.”
체자레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그것도 그 ‘계시’가 있기 때문에 바꾸는 것이군요. 훨씬 납득할 만 합니다.”
비올렛은 체자레가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몰랐다. 이자카는 자신이 체자레의 의도에 따라 말했다는 것을 깨달은듯 했다. 그는 체자레를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그래, 하여 우리는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곳의 신앙을 배울 것이다. 그리고 어엿한 나라로서 이 나라를 세운 전사들에게 풍요로운 땅을 물려줄 것이다.”
그의 말에 체자레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왼손에 손을 얹는 신관식 인사를 하며 정중히 말했다.
“이 체자레, 최선을 다하여 도울것을 약속드립니다.”
“아니.”
이자카가 딱 잘라 말했다.
“나를 도와줄 것은 피아케(비올렛)다.”
그가 말했다.
“이 나라의 신앙의 근원이 성녀라면, 그 성녀가 직접 내게 알려주어야 한다. 저 여인이 힘이 없더라도 상관없다.”
이자카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확인하듯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피아케가 나를 도운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
그의 눈에는 그녀를 향한 강한 열망이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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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을 하면은 더위에도 싱싱하게 피어날겁니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조아라 자꾸 해킹 일어나네요... 아..왜 자꾸 공격한대..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