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4 피어오르는 꽃봉오리 =========================================================================
“스승님.”
샤를은 힐끔힐끔 비올렛의 눈치를 보았다. 비올렛은 예의 그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한없이 다정한 미소였지만 샤를은 한기를 느꼈다. 샤를은 우물쭈물하며 안색을 살펴도 여전히 얼음이 깡깡 언 것같은 단단한 미소만이 되돌아 왔다. 그때 고양이가 야옹, 하며 다가왔다. 비올렛이 웃으며 고양이에게 시선을 던지자 고양이가 하악, 하는 소리를 내며 갑자기 털을 세우더니 재빨리 그의 다리 뒤로 피신했다. 루비는 겁에 질린 것 같았다.
“스, 스승님.”
“무슨 일이신데 자꾸 저를 부르십니까?”
비올렛의 미소에 샤를은 우물쭈물 했다. 미소라는게 저렇게 무서울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어제 에르멘가르트 경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직도 경께선 고양이가 여자애라고 주장하셨습니까?”
“아, 아니요.”
무섭다. 샤를은 진심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어제는 무표정이라 몰랐는데 지금 보니 알겠다. 비올렛은 에셀먼드를 싫어했다. 그것도 아주, 매우, 격렬하게. 그래도 에셀먼드 경은 비올렛을 그렇게 싫어하는 걸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경은 성녀님의 말이 맞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그 말에도 비올렛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아마 스승님은 자신역시 싫어하는게 분명하다며 샤를은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죄송합니다.”
소심한 그가 고개를 푹 수그리자 비올렛의 얼굴에 서린 한기가 조금이나마 가셨다. 그녀는 왕자가 너무도 쉽게 고개를 숙여 내심 당황했다. 자신이 너무 감정을 드러낸 것은 아닌지 그녀는 반성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쉽게 고개를 숙인 왕자에게 물었다.
“무엇이요?”
“아, 저, 에르멘가르트 경, 그러니까. 에드 경께서 고양이를 두 마리 주웠는데, 그중 한마리가 제게 와 있었고, 나머지 한마리가 성녀님께 가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둘이 형제 고양이라고........”
“........”
“그래서 고양이에 대해 물어보셨을거라고 에드 경이 해명했습니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네?”
“아니, 아닙니다. 전하께선 전혀 신경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왕자 전하의 마음을 헤아렸어야 하는데, 모두가 제가 부족한 탓 입니다. .”
“아, 아닙니다!”
샤를이 황급히 부정했다. 어제 냉기를 날리며 비올렛이 떠난 방에는 샤를과 에셀먼드 만이 남았다. 샤를이 에셀먼드를 바라보자 그는 흠흠, 하며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그녀가 간 곳을 계속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이 맞다고. 혈통을 물었던건 그가 주었던 고양이와 닮았기 때문에 그리 물어본 것일거라고. 그렇게 말하는것이었다.
“경께서 스승님께 고양이를 선물했다는 말입니까?”
“그저 나머지 한마리를 드렸을 뿐입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성녀님은 어떻게 행동하셨나요? 고양이를 싫어하시진 않으셨나요?”
“아니요.”
에셀먼드는 잠시동안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정적의 끝에 그가 말했다.
“활짝 웃었습니다.”
샤를은 에셀먼드의 얼굴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미묘했다. 성녀는 분명 샤를에게 친절했지만, 그것은 그저 틀에 박힌 미소에 불과했다. 호의가 조금 담긴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윤활유 같은. 그녀의 스승이 활짝 웃는 모습은 어떤 얼굴일까.
“스승님께서 웃는것은 어떤 모습인가요? 태양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나요? 달처럼 곱나요?”
그의 물음에 에셀먼드가 말했다.
“아니요, 평범합니다.”
“평범하다뇨?”
“그저 평범한 소녀의 미소입니다. 조금 사랑스러운.”
에셀먼드는 그렇게 말하고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평범한 소녀의 미소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사랑스럽게 웃었다니, 에셀먼드의 입에서 나온 보기 드문 칭찬이었다. 샤를은 그 '사랑스럽다'는 미소를 상상했다. 하지만 언제나 조용히, 미소짓는 비올렛과 활짝 웃어 사랑스러운 비올렛은 겹쳐지지 않았다.
샤를은 그 대화를 비올렛에게 말하고 싶었다. 정말로 활짝웃으셨냐고. 하지만 에셀먼드를 싫어하는 비올렛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간 화를 풀지 않을지도 모른다. 왕자는 비올렛에게 미안했다. 생각해보면 에셀먼드경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에셀먼드의 말대로 첫 수업부터 자신을 울려 그녀의 입장이 상당히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그는 언제나 생각없이 일을 저질러 아바마마와 어마마마에게 꾸중을 듣곤 했다.
“스승님도 그 고양이를 좋아하십니까?”
갑자기 튀어나온 그 말에 비올렛의 얼굴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만약 고양이를 싫어한다고 말한다면 에셀먼드 경이 거짓을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대답은 의외였다.
“네, 조금 시끄러운 구석이 있습니다만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자신의 고양이를 떠올리는 듯 했다.
“와아. 저도 제 고양이가 하는 말을 듣고 싶어요. 루비는 언제나 조용하거든요.”
그 '조용'하다는 말에 비올렛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지만 그는 신경쓰지 못했다.
“저도 지금은 듣지 못합니다. 하지만 한가지 듣는다면 별로 정신건강에 좋지는 않을 겁니다.”
“네?”
“세상에는 몰라도 될 일들이 많습니다. 정말로요.”
비올렛이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보아하니 완전히 화가 풀린 것 같았다.그리고 그녀는 다시 수업을 시작했다. 샤를은 비올렛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비올렛의 말투는 차분하고 조용했다. 천민이라고 했지만 억양 역시 고급스러운 억양이라 그녀는 마치 왕족처럼 보이기도 했다. 고운 목소리를 가진 그녀가 말하는 것을 보노라면, 아름다운 사람들을 많이 봐왔던 샤를 로서는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였다. 몇 번 만나지는 않았지만, 샤를은 비올렛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열 여섯이면 성년이 지나고 혼인을 할 나이라고 지났다. 그는 몇번 망설이다 물었다.
“스승님.”
“네, 전하.”
비올렛이 대답했다.
“스승님은 애인이 있으십니까?”
“네?”
이번에 그녀는 정말로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언제나 굳어 있었던 얼굴이 당황으로 굳어있었다.
“그렇기도 한게, 열 여섯이 아닙니까? 보통은 약혼을 하여 혼인을 할 나이라고 들었습니다.”
샤를의 말은 전혀 악의가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한참동안이나 샤를을 바라보다 말하는 것이다.
“성직자는 혼인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정확히 말한다면 혼인을 하려면 성직을 포기하면 됩니다.”
비올렛의 말에 샤를이 물었다.
“그렇다면 스승님이 결혼을 하고 싶으시다면 어떻게 하시면 되는 겁니까?”
“글쎄요, 아마 성녀가 혼인을 했다는 기록은 없는지라........”
그녀가 애매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정말입니까? 하지만 어떻게 여인이 혼인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답니까.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는 것입니까?”
“여인이라고 해서 꼭 혼인을 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살아가는데 불편할 뿐이지요.”
그 말에 샤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렇게 생각하는 법도 있구나.
“하지만 스승님께서 결혼을 하는게 금지된다면 사랑하는 이가 생겨도 결혼하지 못한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조금 이상합니다.”
그 말에 그녀의 얼굴이 굳었다. 조금 납득이 가지 않았다. 성직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면 성녀가 되는것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이가 생겨도 혼인하지 못한다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닌가. 그가 느끼는 불합리함에 비해 비올렛의 얼굴은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 냉정해보이는 얼굴에 살짝 미소까지 띠는 것이다.
“어차피 천민인 저와 혼인하고 싶어하는 이는 없습니다.”
“.........”
그것은 체념보다는 조금 다른 무엇인가였다. 그것은 단정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해도 그 사람이 자신과 혼인하고 싶어할 리가 없다, 그녀는 그것에 불합리함을 느끼는 가정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샤를에게 그것은 너무도 어렵게 느껴졌다.
“전하, 공부에 집중하시는게 어떠십니까.”
샤를은 비올렛의 지적에 깜짝 놀라 다시 공부에 집중을 했다. 말도 안된다. 아바마마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정치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천민은 행복해 질 수 없는건가? 왜 성녀가 결혼을 못한다는 것 보다는 천민이라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샤를이 비올렛을 바라보았다. 단정한 눈썹이 보이며 푸른 신의 표식이 보였다. 그렇다면 신은 왜 성녀를 만들었을까.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 신에게 사랑받는 이가 성녀라는데 정말로 그런 것일까.
“전하?”
“아니, 아닙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신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것임에도, 신에게 불신이 생기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샤를은 이 어린 누나같은 스승이 참으로 색달라보였다. 천민이되 비굴하지 않고, 성녀라고 자신을 높이지 않는다. 성녀라고 신전에 붙지 아니하며, 그렇다고 아버지인 왕을 멀리하지도 않는다. 샤를은 정 가운데에 있는 그녀가 정말로 신기했다.
*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금잔화꽃입니다. 저 하루 잘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 다행히 20키바가 나와 연참이 가능하더라고요. 헤헿!!!
우선 제가 저번편에 말을 잘못했는데 2n년생도 다돼따 이건..흡.. 제가 잘못말한거에요 저 그렇게 안어립니다... 벌써 2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고 이써여.. 혹여라도 제 한숨에 불쾌하셨던 분들이 있다면 사과드립니다.. 미아내여..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