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0 피어오르는 꽃봉오리 =========================================================================
그 순간 신관 소년의 입가에 물음표가 띄워지더니 푸핫, 하고 미소가 서렸다. 그리고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거의 배를 잡고 웃었는데 비올렛은 얼굴을 찡그리며 그 모습을 지켜 보았다.
“그러게요 성녀님, 제가 왜 반말을 했을까요.”
그러면서도 깔깔대는 모습이 보기 싫은 모습은 아니었다. 순전히 즐거워 웃는 모습이 햇살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각인되었다.
“나는 네게 반말하기 싫어, 우리 사이가 그 정도로 사이는 아니 잖아?”
소년은 당당한 태도였다.
“너 정말 정체가 뭐야?”
비올렛이 물었다. 소년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이젠 알아. 너 눈이 금색인거, 그거 왕족이라는 뜻 아니야?”
비올렛의 물음에 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글쎄, 나는 왕이 아버지였던 적이 한번도 없어서 말이야.”
그가 노래를 부르듯 말했다. 비올렛은 입을 다물고 그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분명 나이를 먹었을 텐데 별로 자라지도 않은채 아직도 나이 어린 소년처럼 걸어다닌다. 그가 손을 뻗자, 새들이 날아왔다.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모습이었다. 비올렛은 마치 진짜 성녀를 본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녀는 저런 아름다움과 여유로움이 없었다. 소년이 비올렛을 보며 미소 지었다.
“봐, 비올렛. 새들이 네가 좋다잖아.”
“.........”
“사람은 속일 수 있을 지언정 동물은 속일 수 없다니깐. 사람들보다 예민하단 말이야?”
“.........”
“‘여전히’ 너는 사랑받고 있어.”
그 말에 비올렛의 표정이 굳었다. 순간 그의 몸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져 그녀는 뒷걸음질 쳤다. 무엇인가를 경고하는 듯 한 몸짓이었다. 소년이 한 발짜국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에 매여진 청색 리본을 바라보았다.
“티게르난 추기경님이 매어주셨구나.”
그가 손을 들어 그녀의 땋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치사해. 나도 못 만져본 머리카락인데.”
그는 심통이 난 듯 했다. 꼭 질투하는 어린아이의 태도다. 그 말에 어이가 없어진 비올렛이 물었다.
“너 이러는 거 추기경께서도 알고 계시니?”
비올렛이 물었다. 추기경이라는 말을 듣자 신관 소년의 얼굴이 히익, 하고 일그러지더니 말했다.
“아니, 전혀 모르시지!”
“큰 벌을 받게 될 거야.”
“아냐, 추기경님은 다정하다고. 날 죽이진 않으실거야.”
여기 또 체자레에게 농락당한 영혼이 있다. 철이 안든건가 아니면 멍청한 걸까. 비올렛은 속으로 혀를 차며 이 순진한 신관을 보았다 얼굴은 순수했지만 의미심장한 말이 마음에 걸렸다. 무슨 말을 한 것일까. 동물들은 속일 수 없다니. 비올렛은 그것을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물어본다면, 왠지 어마어마한 소리가 나올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소년이 물었다.
“아직도 날 따라오지 않을거야?”
“아직이라니. 영원히 따라가지 않을거야.”
“그래? 그렇구나.”
소년은 슬픈 듯 미소를 지었다.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나는 괜찮아, 언제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까.”
“..........”
소년이 말했다. 비올렛은 소년에게 존대를 쓰라고 말하는 것도 포기했다. 마치 그녀를 친구처럼 격없이 대하는 그에게 자신이 신의 대리인이고 대우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던 탓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녀가 신의 대리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신관소년은 그러했으니.
“그렇지만 나는 네가 가끔 너무도 보고싶어.”
“나를 왜?”
“그야, 나는 널 정말 사랑하고 있거든.”
“뭐?”
어이가 없어진 비올렛이 물었다. 이제 자란 그녀와 키가 비등비등한 이 소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가 그녀의 뺨에 입술을 내리 눌렀다. 보드랍고 말캉한 입술의 그 감촉에 화가 난 비올렛이 뭐라고 말하려 하자 소년이 생글생글 웃었다.
“미안, 봐주라 봐줘! 어쩔 수 없잖아. 널 자주 볼 수는 없으니 말이야. 네 잘못이야.”
“너, 정말!”
“내가 말 안했구나, 너 정말 예쁘다는거. 볼에 뽀뽀라도 하지 않으면 안됐다고.”
“........”
“사랑하는데 예쁘기 까지 해서 더욱 더 사랑해버렸잖아. 이런것도 거부당하다니 난 정말 불행해.”
소년이 어린아이처럼 보챘다. 이상한 호감이다. 무슨 저런 놈이 다있담. 체자레에게 말해서 주의라도 주고 싶었으나, 혹여나 지하실에라도 가게 될까 말할 수 조차 없다. 만약 그것을 알고 이런 짓을 저질렀다면 천하에 나쁜놈이다.
“추기경님한테 말하면 안 된다! 나 갈게, 안녀어엉!”
비올렛의 표정이 변해가자, 그가 배실배실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뭐지 이 소년은?
“잠깐만!”
비올렛이 그를 다급히 불러세우려고 하자 그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다. 정말 뭐란 말인가 저 인간은. 머리색도, 눈 색도 어느것 하나 수상하지 않은점이 없었다. 공작에게 물어볼까 생각 했지만. 물어 볼 수가없었다. 왕족의 금안에 성녀의 머리색에 가까운 은색의 머리카락 저 사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
이름을 물어보는 것도 깜빡 했다. 다음 번에는 이름을 물어보리라. 그리고 저 신관 소년에게 주의를 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자신을 퍽 반가워 하던 소년의 얼굴을 어쩐지 잊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을때 말소리가 들렸다.
“오빠왔다! 잘 있었냐?”
“.........”
아마 저 소리를 듣고 그 소년이 사라지지 싶었다. 조금 더 파헤치고 싶었는데 에이든이 나타나서 망했다.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기색에 에이든이 말했다.
“형이 다시 안돌아가면 내 머리를 쏴 맞춰버리겠대.”
“그럼 안돌아 가고 계속 거기 있지 그랬어.”
“야!”
에이든이 소리쳤다. 비올렛은 얼굴을 찡그렸다.
“아 맞다, 형이 수사슴을 잡았어! 엄청 큰 놈이야.”
“수사슴?”
“응, 수사슴.”
불쌍한 사슴같으니라고. 비올렛은 생각했다. 어쩌다가 저런 남자를 만나서 가버린걸까. 부디 한번에 목숨이 끊어지길 진심으로 바랐다. 예전 토끼를 자기 손으로 죽였을 때가 떠올랐다. 손을 덜덜 떠느라 명줄을 제대로 못끊어서 토끼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비올렛에게 그것은 악몽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비올렛이 멍하게 생각이 잠겨있다 에이든이 말했다.
“왕께서는 여우 굴을 발견하신 모양이야. 그 곳에 가셨다나? 티게르난 공작은 뭘하는지 보이지도 않고. 그냥 참새나 잡아라.”
그가 투덜거리며 저주 아닌 저주를 내렸다. 에이든은 다시 털썩 주저 앉았다.
“지루하면 가라니까?”
“싫어, 머리에 구멍뚫리는건 사양이야.”
그는 자연스럽게 비올렛의 옆에 앉았다.
“그래도 정말 오랜만이네.”
“뭐가.”
“너랑 이렇게 단 둘이 있는거.”
“.........”
에이든의 말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비올렛은 다시 졸졸졸 흐르는 시냇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술 수련이외에는 항상 다니엘 형이랑 붙어 있었잖아. 그리고 또 공부, 공부, 공부.”
“..........”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에이든 역시 딱히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나는 네가 성인식 다음날 떠나는 줄 알고 걱정했어. 정말로 그럴줄 알았어.”
에이든은 진지한 모습이었다. 바람이 부는 소리와 함께 나무가 흔들렸다. 물이 흐르는 소리만이 그들의 귀에 들렸다. 비올렛은 갑자기 분위기를 잡는 에이든이 불편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그녀는 언제나 혼자 밥을 먹었고, 검술 수련 역시도 따로 받았기 때문에 만날 일은 없었다. 덩치가 큰 멍청이라고만 생각 했더니 저런 진지한 구석도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신에게 감사해.”
“.........”
“아무리 그래도 기회가 생긴 거잖아? 오빠로서 널 지킬 기회, 곁에 있어 줄 기회, 그리고 우리가 용서 받을 기회.”
그녀는 에이든을 노려보았다. 용서란 존재하지 않는다. 신에게 감사한다라. 비올렛은 날카롭게 웃음을 터트렸다.
“에이든, 너는 항상 멍청해. 그래서 난 네가 싫어.”
비올렛이 말했다.
“내가 오빠라고 가끔 부른다고 정말 오빠라고 된 듯 착각하는게 정말 혐오스러워.”
에이든이 바닷빛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두 눈은 다른 사람을 연상하게 했다. 그녀의 불쾌감은 배가 되었다. 에이든은 언제나 처럼 상처받은 얼굴이었다. 비올렛은 자신의 얼굴에 서린 혐오와 경멸을 숨기지 않았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에이든이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비올렛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때, 어렸을 적, 비올렛이 그가 내민 손을 뿌리치고 욕설을 퍼부었을 때, 그때 만약 그녀를 끌어안아 주었다면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증오도 어느정도 사라졌을까. 그때 그는 어리고 유치한 마음에 똑같이 화를 내고 천민이라 어쩔 수 없다며 빈정대며 같이 욕했다. 그녀가 화를 냈던 이유는 결코 누군가 자신에게 욕을 했기 때문에 했던 것과는 다른 이유였음에도.
비올렛이 창에서 떨어졌던 것은 비올렛이 열 네살의 되던 해의 여름이었다. 첫째 형이 떠나고 에이든과 비올렛이 서로 무시한 지는 오래 되었고, 아버지 역시 모든 것을 거부하는 비올렛에게 잔인한 배움을 더욱 더 강요했다. 에이든은 열 두살, 그때 이후로 검을 잡기 시작했던 비올렛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혼자서 훌쩍이던 일이 많았었다. 칼을 무서워 하고, 검을 무서워 했다. 그리고 피 역시 무서워 했다. 하지만 그것은 검을 배워야 할 이에게 필요치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그녀는 더이상 훌쩍이지도 눈물 흘리지도 않았다. 그저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에이든은 비올렛에게 거의 관심이 없었으며, 다니엘과 비올렛이 가끔씩 붙어다니는 것만 보고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런 날이 계속될 거라 생각했던 여름. 비올렛이 창에서 뛰어내렸다.
아침은 앤의 비명소리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비올렛의 작은 몸은 지상 위에 허망하게 누워 있었다. 에이든은 아직도 그 순간을 기억한다. 소녀는 잠든 듯 얌전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머리를 부딪힌듯 풀어헤쳐진 은발의 머리가 붉게 적셔져있었다. 새하얀 네글리제 역시 피로 물들었다. 잠든 듯 보이는 얼굴과 대조되는 잔혹함. 그러나 더욱 더 음산한 것은 그녀가 떨어진 자리에서만 풀들이 비정상적으로 길게 자라있었던 것이었다. 그녀의 피가 퍼지자 다른 풀들이 싹을 틔우더니 이름 모를 꽃이 서서히 피워지기 시작했다. 짙은 초록 속에 파뭍인 하양, 그리고 그것을 물들여가는 붉음. 그 붉음속에 피어나는 다른 색깔의 꽃들, 섬뜩할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아버지는 처음으로 당황해서 의원을 불렀다. 죽을거라 생각되었던 비올렛은 일주일 후에 일어났다. 상처를 모두 회복 한 채 흉터 하나 없이. 에이든은 비올렛이 누워있는 침대에 간 적이 있었다. 힘없이 누워있는 작고 여린 존재를 보며 에이든은 처음으로 알았던 것이다. 자신들은, 이 가문은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것을.
‘이게 뭔데.’
‘아기새야! 내가 잡았지롱! 에드 형도 도와줬어. 네가 좋아할거라는데?’
‘어서 빨리 놓아주지 못해? 엄마를 찾잖아 불쌍해!’
‘저, 정말?’
‘진짜야!’
그때 창문 너머로 날아온 어린 새가 에이든의 머리를 사정없이 쪼았다. 에이든이 그것에 아파 손을 놓자 조그마한 아기새가 호로롱 날아가버렸다. 정말이었어. 에이든이 비올렛을 신기하다는 얼굴로 보자 비올렛이 깔깔 웃었다.
‘오빠 머리 좀 봐. 진짜 새집이 되었어. 새들이 여기서 잠을 잘거야.’
처음에 들어왔을 때 어두웠던 소녀는 이제 에이든을 오빠라 하며 스스럼없이 부르며 웃음을 터트렸다. 비올렛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 에이든은 화를 내다가 자신도 거울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렇게 오래도록 웃었는지는 모른다. 그저 이 순간이 좋았다.
그래서 에이든은 비올렛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주 짧은 어린 시절 분명히 서로는 서로를 가족으로 인식하고 있던 때가 있었다. 아무 일 없이 웃음짓던 때가 있었다. 천민도 성녀도 아닌 그저 동생으로서 그리고 비올렛에게도 증오스러운 에르멘가르트 후작가의 아들이 아닌 그저 오빠이자 친구로서.
그의 말에도 비올렛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언뜻 보이는 경멸, 그리고 무관심. 외면. 단절, 비올렛의 얼굴은 인형처럼 굳어있다. 언젠가 다시 웃어줄 수 있을까. 언젠가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 행복해 질 수 있을까.
비올렛, 너는 언제쯤 다시 웃을까.
============================ 작품 후기 ============================
추천을 하면은건강이좋아지고 작가도 힘이나고.....!! 연참도 하고!! 글도 많이쓰고!!
다음편이 빵빵할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