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9 피어오르는 꽃봉오리 =========================================================================
다행히도 왕과 왕자가 도착하지 않았기에 소집장소에는 귀족들만이 모였을 뿐 사냥 대회는 시작이 되지 않았다. 물론 체자레가 도착하지 않았기에 사냥대회가 시작되지는 못했을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말이었다. 말을 빌려준다는 체자레의 요청을 거절하고 비올렛은 여분의 말을 얻었다. 어차피 왕실 사냥대회이다. 무기와 활정도는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난듯 에이든에게 물었다.
“생각해 보니 너 정말 네 마음대로 해도 되는거야?”
“뭐가?”
“너 날 잘도 졸졸 따라다니는데, 견습 기사잖아. 그렇게 해도 돼?”
“그래.”
에이든이 대답했다. 그러다 그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는 것이다.
“너 나 걱정하는구나?”
“.........”
비올렛은 저런 바보에게 대화를 기대한게 잘못이었다고 투덜거리며 활을 골랐다. 그녀는 조그마한 것 보다는 길고 파괴력이 있는 화살을 선호했다. 에이든은 건들거리며 서 있다 물었다.
“항상 생각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길고 무거운 화살을 쓰는거야? 근력도 별로 좋지도 않으면서.”
비올렛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화살을 매고 막사를 나갔을 뿐이다. 에이든은 또 무시 당했어, 또! 라고 소리치며 그녀를 뒤쫓았다. 비올렛은 가는 도중 에셀먼드와 서 있던 후작을 보았다. 후작은 그녀의 옷차림새를 보며 당황한 듯 했다. 후작은 오늘 사냥 대회에 참여하는게 아닌, 이 나라의 대장군으로서 그저 심사위원이었는데, 그는 비올렛의 차림에 깜짝 놀란 듯 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저도 그냥 이곳에 참여하려 합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말을 쓰다듬었다. 후작은 뭐라고 더 말하려고 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그녀가 원하면 그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의사는 그 무엇보다 존중받아야 했으므로.
“어차피 표면적으로만 참여 할 생각이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혹시나 해서 말하자 역시나 에셀먼드가 나섰다.
“제가 호위하겠습니다.”
역시나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남자다. 비올렛은 에셀먼드를 바라보았다. 그는 언제나 처럼 읽을 수 없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게 호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누가 감히 제 목숨을 노리겠습니까. 에이든 오라버니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녀가 딱 잘라 말했다. 에셀먼드가 서늘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힐난하는 것 같은 얼굴에 그녀는 시선을 돌렸다. 에이든은 뭐가 그렇게 신이 난지 밝게 외치는 것이다.
“봐, 형! 나도 할 수 있다니까. 우리 성녀님이 나만으로 충분하시다고 하잖아!”
어깨를 으쓱하는 그를 보며 후작이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
“널 믿어서 곁에 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만 알아둬라, 에이든.”
비올렛은 그들에게 혼이 나든지 말든지 에이든이 혼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올렛은 이쯤되면 자신에게 향하는 타 귀족들의 시선을 걱정했으나 고개를 돌리면 에이든이나 에셀먼드, 후작 밖에 없었으므로 그다지 주목 받을 일은 없을 성 싶었다.
이윽고 왕이 도착했다. 비올렛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건 아닌지 걱정했으나 다행히 왕의 손수건은 왕비가 전달했다. 사냥대회의 풍습이 있다면 집안의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걱정과 승리를 기원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호감을 가지는 이성에게 역시 손수건을 주며 마음을 표현한다. 에르멘가르트 후작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집안 유일한 여자는 지금 같이 사냥복을 입고 사냥대회에 나간다고 했다. 물론 그녀가 사냥복을 입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에게 손수건을 줄 리는 없었다. 물론 에이드리언이나 에셀먼드에게 손수건을 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그들은 그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비올렛은 그러한 의식을 아무 생각 없이 지켜보고 있다가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여자를 보며 다가갔다. 생글생글 웃고있는 소녀는 시수일레였다. 그녀는 숲과는 대비되는 매혹적인 장밋빛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그것이 시수일레의 피부톤과 잘 어울렸다.
“비올렛! 다치지 말고, 많이 많이 잡아와야해?”
“.........”
“아까 정말 멋있었어, 나중엔 나도 데리고 나가야한다?”
“그래.”
“우리 아버지는 이런데에 약하셔서 참여하지도 못해. 누구에게 줘야하나 걱정했는데, 그래도 너한테 줄 수 있어 너무 기뻐.”
시수일레가 그녀에게 비단손수건을 쥐어 주었다. 손수건에는 그녀의 이름과 그녀의 가문의 표식인 백합과 뿔이 달린 도약하는 말이 삐뚤빼툴 수놓아져 있었다. 비올렛 이 서투른 솜씨가 역력한 손수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혹여 시수일레가 비웃음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그녀 주변을 살펴보자 여자들은 비올렛을 보는 대신에 늠름한 남자들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사람들은 티게르난 공작의 매력적인 외모에 정신이 팔리는 듯 했다. 뭐 그녀에게 신경을 쓰며 비난하는 것 보다 신랑감이나 잘생긴 남자를 보는 시간이 더욱 더 효율적이긴 했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시수일레가 하는 행동은 전혀 주목받지 않았다.
“비올렛! 토끼 한마리만 잡아와! 아니다, 조그마한 아기참새 한마리만 잡아줘! 아니다 랑이처럼 귀여운 고양이도 있으면 잡아줄래?!”
그녀가순수한 얼굴로 말했다. 성년이 지났음에도 그녀는 마치 열한살의 소녀 같았다. 비올렛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토끼가 제발로 그녀를 따라올리도 없거니와 아기참새는 엄마참새와 같이 있어야 살 수 있었다. 또 산고양이는 자유로워서 누구의 밑에 따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녀는 이런 류의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철없는 귀족 아가씨의 말이니 적당히 넘겨듣는게 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수일레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철없는 시수일레는 그녀가 이곳에 나가는 사람중에 하나라는게 무척이나 자랑스러운 듯 했다.
비올렛은 말을 숲속으로 몰았다. 후작은 왕의 곁에 가 있었고, 에셀먼드는 자신의 종자와 함께 있었다. 비올렛과 에이든은 처음부터 사냥을 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따로 종자가 필요하지 않았다. 에셀먼드는 마지막으로 그 둘을 보더니 숲속 깊은곳으로 들어가 버렸다. 에이든은 처음으로 참여하는 사냥대회에 상당히 신이 난 모양이었지만, 그녀는 그저 이 숲을 유람온 기분으로 말과 함께 천천히 걸었다.
“저쪽은 가면 화살을 맞을지도 몰라. 이쪽으로 가자.”
자꾸 다른 말들이 갔던 깊은 숲속으로 향하려하자 비올렛이 다정하게 속삭이며 말을 달랬다. 그리고 이 순한 말은 그대로 그녀의 의견을 따랐다. 에이든이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야, 너는 내가 말보다 못하지?”
“무슨 소리야?”
“나한테도 그렇게 말해 봐라. 내가 말이 돼서 널 업고다닐테니.”
무슨 또 멍청한 소리래? 그녀는 그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말을 몰았다. 몰이꾼들이 동물들을 몰아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숲 가장자리는 한산하고 조용했다.
“아, 나도 활 쏘고 싶다. 동물 잡고 싶다. 사냥하고 싶다.”
“....시끄러.”
비올렛이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비올렛은 새소리를 들으며 개울가 근처 바위에 걸터 앉았다.
“그래, 공작의 말대로 네가 사냥을 싫어한다는 건 잘 알겠다. 사냥대회를 나간다는데 그래도 명색이 성녀가 뭐 하나라도 잡아야 하지 않겠냐?”
“명색이 성녀라고?”
“왜, 뭐가 잘못됐냐?”
“내가 만약 동물 한마리라도 잡아오면 저 쪽 사람들은 나한테 신이 잉태한 모든 생물에 자애로워야 할 성녀가 유희거리로 살생을 했다고 물어 뜯을걸.”
“와. 너무해.”
“사실이야.”
비올렛은 그렇게 말하며 부츠를 벗어 맨발에 물을 담구었다. 저 멀리서 나팔소리와 함성소리가 들렸다.
“아, 심심하다. 나 잠깐 뭐하고 있는지 보고 와도 돼?”
“네 맘대로.”
비올렛이 에이든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하자 에이든이 말했다.
“삼십분 만이야 모르는 사람 따라가면 안 된다.”
“하루 종일 거기 있어도 돼.”
그 말에 에이든이 입술을 삐죽였다. 하여튼 정없는 계집애, 라고 말하는 걸 똑똑히 들었으나 비올렛은 그 말에조차 대꾸하지 않았다. 결국 잔뜩 골이난 에이든은 말을 타고 사냥터 쪽으로 가버렸다. 비올렛은 숲속에서 평화로운 휴식을 즐겼다. 그녀에겐 평화롭겠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별로 평화롭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비올렛이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멍하게 보고 있을 때 였다. 발바닥에 차갑게 감기는 물이 시원했다.
그때 어딘가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들렸다. 뭐지? 비올렛은 그쪽으로 향했다. 걸어가면서 그녀는 허리춤에 찬 검 손잡이를 쥐었다. 어차피 사냥 대회 한복판에서 그녀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는 간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발걸음을 죽이며 수풀 사이로 들어간 순간......
“왁!”
“꺅!”
비올렛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뒤로 넘어가려 하자 손이 튀어나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뭐야 이건 또. 비올렛이 화를 내려고 소리가 들리는 쪽을 보았다. 생글생글 웃고있는 소년의 얼굴이 보였다. 햇빛아래에 붉은 빛을 머금은 은발이 반짝거렸다.
“너, 너,”
“와, 정말 보고싶었어. 왜이렇게 얼굴보기 힘드니.”
비올렛이 얼굴을 찌푸리며 소년을 보았다. 은발에 금안을 가진 소년이 해맑게 웃으며 그녀를 보고 있었다. 옷은 언제나 처럼 새하얀 신관복 차림이었다. 숲이라 더러워질법도 하건만은 그녀는 혀를 찼다. 이제는 대충 이 소년의 정체도 파악했다.
“너 티게르난 공작을 따라다니는 거지?”
“우와, 이젠 바로 알아차리네?”
비올렛의 말에 소년이 신기하다는 듯 금색 눈을 깜빡 깜빡거렸다 .그를 만났을 때마다 공작이 방문했었다. 에르멘가르트 영지에서도 체자레가 방문 했을 때, 그녀는 애녹시 글로리에서 소년을 만났다. 단 두번이긴 했지만 신관과 추기경의 관계를 생각하고, 또 에셀먼드에게 검이 겨누어졌을때 티게르난의 이름을 대던 소년이었으니. 그는 체자레의 수하라 봐도 무방했다. 소년은 거의 자라지 않은 것 같았는데 자세히 얼굴을 보니 그래도 약간은 성장한 것 같았다. 쑥 커버린 비올렛에 비하면 아주 소소한 변화였지만.
“너 정말 많이 자랐다. 키도 많이 자랐는데?”
그는 따스한 금색 눈으로 비올렛을 훑어 보며 감탄했다. 그리고 그녀 주변을 한바퀴 걸어다니며 다 자란 그녀의 모습을 감상했다. 불쾌하기보다는 비올렛으로서는 황당했다. 네 쪽이 성장이 느린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하다간 기분이 상할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거슬렸던 점을 지적했다.
“그런데 말이야 너.”
그녀의 심각한 얼굴에 신관소년의 얼굴이 덩달아 굳었다. 소년은 비올렛의 굳어진 얼굴을 바라보며 다음에 나올 말을 기다렸다. 그들 사이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가득찼다.
“왜 나한테 반말이니?”
============================ 작품 후기 ============================
소년 왈: 아니아니 추워가지고;
비올렛:
비올렛아... 그거아니야... 너 그거 중2병이야....그러지마...왜 소년한테 뭐라 그래...
반말할수도 있지.... 왜 일진짓해...
오랜만에 신관 소년이 나왔어요!!!!!!!! 여러분들이 기다리시고 기다렸던 캬...
아 드디어 플롯을 거의 완성했네요.. 100퍼는 아니지만 큰 사건은 전부다 구상했습니다
이제 전 걱정없이 쓰기만 하면 되어요.. 쿡..
제 전작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후후후 저 한번 박자 타면 빠르답니다 후후훟후ㅜ후후후(거만 거들먹)
이러다가 막 10월에 완결내는거 아냐? (거들먹 거들먹)
농담입니다 여러분.....ㅎㅎㅎ...열심히 할게요. 추천 코멘트 너무 감사드립니다.
뭐라 할게 있었는데 기억이 안남...
오타는 항상 보고 고치고 있습니다. 코멘트 삭제된건 네놈의 코멘트가 나의 심기를
상하게 하였다 사.라.져.라(쿸..) 이게 아니라 삭제를 안하면 어라.. 내가 이거 고쳤나? (본격 멍충루트)
이렇게 되어서...
3일동안 푹 쉴걸 그랬어요...체력이 즈질입니다. 그래도 제가 사랑하는거 아시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