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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핀 제비꽃-56화 (56/208)

00056  피어오르는 꽃봉오리   =========================================================================

“오늘은 성력에 대해 다시 공부해봅시다.”

준비 되어 있는 꽃병을 보며 체자레가 말했다. 이론적인 교리는 거의 다 배웠고, 열 두살의 그녀는 이제 성력의 활용을 배우고 있었다. 아직 동물의 말을 알아듣고 꽃을 피우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지만 그녀는 성력의 다른 활용을 바랐다. 아그레시아나 아나스타샤가 그랬던 것 처럼 가뭄을 물러나게 하고, 사람을 치유하는 신의 기적을 행하고 싶었다.

“아직 꽃을 지게 하는 것은 못하시군요.”

“네, 사실 그게 너무 어려워요.”

비올렛이 말했다.꽃을 지게 하는 것은 그녀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성력이 뭐라고 했죠?”

“의지라고 했습니다.”

“그 ‘의지’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비올렛은 말했다. 의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다.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의지가 된다. 하지만 어떻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꽃을 시들게 할 수 있는가. 비올렛은 체자레의 힌트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은 큰 원동력이 됩니다.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강력한 의지를 가지게 되죠. 성력을가지고 태어나는 자들은 그것을 단련해야 합니다. 그것을 단련하지 않으면 성력은 소멸되고 사라지고 말죠.”

체자레가 말했다. 사실 그건 이미 한번 들은 소리였다. 대신관 들중 몇명에게 성력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까. 왜 체자레는 그런 대신관들을 방치하는 것일까. 비올렛은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도 어떤 이유가 있으리라. 그녀는 다시 자신의 성력에 생각이 미쳤다. 만약 단련하지 않고, 의지가 없다면 그렇게 되는걸까. 비올렛이 생각했다. 그녀는 손을 뻗었지만 꽃은 그대로 생생했다.

“저, 잘할 수 있을까요? 만약 제 성력이 사라져 버리면 어떻게 하죠?”

“물론입니다. 당신이라면 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녀의 성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체자레가 그녀를 안심시켰다. 과연 성력을 자유 자재로 쓸 수 있을까. 말룸을 처단하기 위해 성력을 제대로 써야 한다고 하던데. 어린 비올렛은 그 불안함에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체자레가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는 언제나처럼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모든것을 받아 줄 것처럼, 그렇게.

“성녀님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가 다시 강한 어조로 말했다. 무엇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걸까. 어린 비올렛은 생각했다. 체자레의 말과는 달리 그녀는 너무도 걱정할 것이 많았다. 그런데 그는 그녀의 모든게 괜찮다고 말한다. 너무도 따스하고 다정하게. 체자레는 한번씩 무한한 애정에 가득 차 어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주 소중한 것을 보는 얼굴로 말이다. 그는 참으로 알 수없는 사람이었다.

*

“야, 진짜야?”

에이든이 마차에 타서 그녀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비올렛은 상념에 잠겨있다가 깼다. 확실히 체자레는 그녀에게 많은 유용한 가르침을 주었다. 그러나 한번씩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는 했다.  사랑. 그는 아주 이상한 것을 가르쳤다. 비올렛은 체자레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도 신을 불신한다. 그러나 그는 어째서인지 사랑이라는 고귀한, 그러나 비현실적인 것을 가르쳤다. 그의 가르침에서 얻을 것은 단 한가지, '의지'였다. 그리고 그녀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뭐가?”

그녀가 물어보니 에이든이 답답한듯 가슴을 펑펑 쳤다. 비올렛은 에이든의 말에 전혀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

“너, 정말로 성력을 못쓰는 거야?”

그 말에 비올렛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옆에 앉아있던 앤이 굳은 얼굴로 그녀를 보는 게 느껴졌다. 비올렛은 그저 눈썹을 찡그렸다. 참 귀찮기도 하지. 요사이 자꾸 말을 붙이는 에이든을 보며 비올렛이 싸늘하게 물었다.

“내 힘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아?”

“그럼 관심이 없겠냐?”

에이든의 말에 비올렛이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다. 그렇게 말하니 사실 비올렛으로서도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오빠를 자청하는 그가 관심을 가지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언제나 저렇게 바보 같았다. 그렇게나 한결같이 혐오하며 그를 거부하는데도 상처받는것도 그때 뿐, 포기 하지 않고 온 마음으로 부딪혀왔다. 그녀는 에이든의 그런 점이 싫었다. 그래서 그녀는 대답하는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답답한 듯 그녀를 쳐다보던 에이든이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니엘 형이라면 말해줬겠지?”

“아마도?”

비올렛이 말했다. 대놓고 말하는 차별에 더 에이든은 더 기가 막히다는 얼굴을 했다. 이번에 그녀의 대답에 그는 확실히 기분이 상했다. 그래 봤자 그는 또 똑같이 그녀에게 다가서겠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비올렛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녀는 마차 안 등받이 쿠션에 머리를 기댔다. 큰 일은 끝이었다. 다니엘이 말하는 대로 언제나 과시하기 좋아하는 체자레의 특성상 그가 이 나라의 열명의 신관을 끌고 오는 것은 예상된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앞에서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것은 그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체자레가 간과한 점이 있다면 그 사람들이 결코 체자레의 의견만을 따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많은 자들은 그의 의견에 명분을 준다. 하지만 한번 명분을 잃으면 그것을 회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체자레는 명분과 위신을 중요시 하는 귀족이었다.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깨끗해야 하는 신관이기도 했다. 그에 비해 비올렛은 별로 잃을것이 없었다. 어차피 천민이라는 낙인이 찍힌 이상 그녀의 평판이 떨어지더라도 그녀의 생활에 영향은 가지 않았다. 성력을 못쓰는 성녀 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도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어쨌거나 그녀는 유일무이한 성녀였고 체자레는 결코 그녀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았다. 교황의 명령이거나 체자레 본인의 의지이거나.

어쨌거나 우습게도, 어느 귀족도 함부로 못하는 체자레는 비올렛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또 무슨 수를 써서 그녀를 신전으로 끌어들이겠지. 어차피 그녀는 성력을 쓰고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녀가 성력을 쓸 때는 말룸이 나타날 때 뿐이다.

*

“저는 성녀님께서 망설임 없이 신전에 가리라 생각했습니다.”

도착하자 마자 그녀는 후작의 부름에 그의 집무실로 향했다. 후작은 머리가 아픈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요 사이 그는 건강에 이상에 생겼는지, 어쩌다 한번씩이면 약초의 냄새가 풍겨져 올 때가 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신전에 가시는게 당신에겐 더욱 더 이롭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당신을 더욱 더 대우해줄겁니다. 우리와는 다르게.”

맞는 말이었다. 우선 4년전 체자레의 집에 갔을 때도, 체자레의 사용인들은 그녀를 마치 살아있는 신으로 여기듯 호들갑을 떨었으니.

“스승님께서는 절 아주 귀하게 대접해 주시겠죠. 아름답고, 찬란하게.”

그 어린 날이 꿈꾸었던 모습처럼. 체자레는 정말로 비올렛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 줄 것이다. 자신을 만나기를 고대한다던 그 늙다리 교황도 아마 그러겠지. 신관들도 어쨌든간 표면적으로 그녀를 대우해 줄 것이다.

“그의 방의 장식되어있던 인형처럼 말이에요.”

그러나 철저히 그의 취향대로 요리 되어 이용당할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지하실에는 또 그것을 방해하는 자들의 고통받는 자들의 시신이 쌓여가겠지.

“나는 그들의 손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어요. 설령 나에게 남은 시간이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에요.”

그 차분한 대답에 후작은 잠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하지만 왜? 성녀님께서는 우릴 용서하지 못했던게 아닙니까?”

“용서.”

비올렛이 말했다.

“용서는, 살아있는 사람만이 할 수있는거죠. 제가 어떻게 죽은사람들에 대한 용서를 대신 할 수 있겠어요?”

그녀는 대답했다.

“나는 휘둘리지 않으려고 해요. 나를 휘두를 수 없는 곳에 머무르는게 당연하잖아요?”

“........”

“신전이 나를 가져간다면, 그 자체로 이득이지만. 이곳은 글쎄요. 나를 데리고 있는게 득일지 실일지는 모르죠. 자신에게는 쓸모없는 카드일지언정 남에게 최고의 카드라면 넘겨주지 않아야 하잖아요?”

그 말에 후작이 입매를 굳혔다. 그것은 비올렛을 데려올 때 라이셀 백작과 국왕, 자신이 했던 대화중 하나였다. 그들은 성녀를 그렇게 말했다. ‘카드’라고. 심지어 에르멘가르트 후작은 이 소녀가 자신의 영지에서 나왔고, 이 소녀가 있던 곳을 파괴했던게 자신이라는 것을 제대로 고려하지 조차 않았다. 말 그대로 카드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녀는 너무도 평범한 사람이었고, 이렇게 미소지으며 자신을 카드라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슨 계획이십니까? 이젠 여기서 말룸이 나타날 때 까지 머무르실겁니까?”

“머무르게 해주실건가요?”

비올렛의 물음에 후작은 말했다.

“당신이 원하신다면.”

그 말에 비올렛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그저 찻잔에 손댔다.

“성녀님께서 진정 원하는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을 이곳에 받아들였고, 당신이 우리 가문의 이름을 가진 이상 당신이 머무를 곳은 여기입니다.”

“아, 그게 호의가 아니라 강제였단 말이군요.”

비올렛이 빈정댔다. 그녀는 별로 기분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여느 때와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후작을 바라보고 있을 뿐.

“그러나 성녀님께서 신의 선택을 받은 이상은, 당신은 당신의 의무에 따라주셔야 합니다.”

“..........”

그녀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후작가에 벗어나려 한다면 그녀는 또 신전에 끌려갈 것이다. 후작가에 있으려면 의무정도는 해주어야 한다.

“당신에게 폐하의 뜻을 들어달라 강요하진 않겠습니다. 그저.”

“그저?”

“성녀님의 의무를 다하십시오.”

비올렛은 후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그래, 후작은 언제나 이러했다. 언제나 이렇게 의무를 강요하곤 했다. 개인에 대한 고려 없이, 이렇게. 물론 비올렛은 게으름을 피우려고 하지도 않았다. 왕도 신전에도 스지 않은 채로, 그저 중립을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또 중립을 그럴만한 힘이 있었고 아무런 기반이 없는 그녀는 그저 의무만을 다 해야했다.

“어떤 의무를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나라의 얼굴이 되어주셔야 합니다.”

“아.”

그래, 이 나라는 신성왕국. 성녀의 나라다. 성녀가 성년이 되었는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건 이 나라의 종교를 따르는 타국들의 의혹을 살 것이다. 비올렛으로서는 별로 거리낄게 없었다. 타국을 접대하는 것은 국왕의 편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교황의 편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녀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알고 나가려는 비올렛을 향해 후작이 말을 걸었다.

“정말로 성력을 잃어버리신 겁니까?”

그에 비올렛은 대답하지 않고 후작의 접시에 있던 사과 하나를 집어 들었다. 청색과 은색의 빛이 나더니 붉은 사과에 스며들었다. 껍질이 사라져 사과의 살이 스러지고 새하얀 사과의 살과 대비되는 초록의 싹이 돋았다. 후작은 멍하게 그 '기적'을 보고 있었다.

“서, 설마.... 정말로.”

“한낱 신을 섬기는 자들이 어떻게 신의 대리인의 힘을 가늠하겠습니까.”

그녀가 서늘하게 미소지었다.

============================ 작품 후기 ============================

조아라 지금 터진걸까요..?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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