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3 피어오르는 꽃봉오리 =========================================================================
올해 열한 살이 되는 샤를 왕자는 왕실에서도 인정한 얌전한 소년이었다. 사실 표현은 얌전하다는 말 뿐이었지, 그는 숫기가 없었다. 왕비인 어머니는 상냥했지만 아버지가 엄했기 때문에 샤를은 어려서부터 위축되었고, 아버지는 그것을 왕의 위엄을 보이지 못한다고 말하며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그에 또다시 자신감을 잃어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어린 샤를도 나름대로 노력은 했으나, 사실은 뜻대로 되지 않아 자신도 너무나 답답했다. 오늘은 왕실 사냥대회의 날이었다. 이런 사냥 대회에서는 그 무섭다던 티게르난 공작도 참여하니, 샤를로서는 긴장이 되지 않을리가 없었다. 티게르난 공작은 샤를에게 친절했지만 아버지는 그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사냥대회에 여러 사람들이 참여한다고 했다. 사실 어린 샤를은 위험하기에 참가하면 안되었지만 그는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부탁이라는 것을 해 보았다. 아버지는 티게르난 공작 때문에 꺼리는 것 같다가도, 다른 기사들을 보며 무엇인가 자극이 되는것은 있을거라며 그를 동행에 허락해 주었다.
대장군인 에르멘가르트 후작은 아버지의 호위를 한다고 하지만 무용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그의 아들인 에셀먼드 에르멘가르트 경이 사냥 대회에 참전한다고 할 정도면 엄청난 대회가 일거라고 생각한다. 에셀먼드의 무용은 익히 들었기 때문에, 그는 오랜만에 에셀먼드가 꼭 보고 싶었다.
꽤나 화려한 행진 후에 그들은 가장 가까운 산에 자리를 잡았다. 샤를은 처음으로 보는 풍경에 신이 났다. 물론 오전까지는 말이었다. 모두 다 자리를 잡고 샤를이 향하는 곳은 그가 기대했던 사냥터가 아니라 휴식처였다. 샤를은 왕비와 함께 자리에 앉아 여자들의 담소를 담고 있었는데, 그 주제는 바로 성녀에 대한 것이었다.
“아이참, 천박하기도 하지요. 세상에,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곳에까지 올 줄이야. 그 무례한 언동좀 보세요.”
“신을 모시는 성녀라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이제 열 여섯을 넘겼다고 하던데 신전에서는 데려갈 생각이 없나보죠?”
“신전에서도 처음에는 눈독을 들이다 이젠 포기 한 것 같은데요. 티게르난 공작님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서로 사제간이라지요? 그런데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은걸 보면.”
험담을 여자들의 목소리가 악의에 가득찼다. 샤를은 그런 말들이 듣기싫었다. 왜 굳이 이곳까지 왔는데 여자들의 험담을 들어야 하는 지 몰랐다. 게다가 성녀라면 아그레시아의 심장이 아니던가. 왜 저들은 저렇게 이 나라의 심장을 미워하는것인가. 그것은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어머니는 조용히 샤를에게 귓속말을 해주는 것이다.
“그건, 성녀님이 천한 신분이라서 그런거란다.”
“천한 신분이요?”
샤를의 목소리가 컸던 것일까. 성녀에 대해 험담을 하고있던 귀족 부인들이 그 소리를 듣고 깔깔 웃었다. 그것이 보기 싫었으나 그의 어머니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있었다.
“왕자님이 계시는데, 아그레시아의 심장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름다운 얼굴의 여자가 부채를 팔락거리며 이야기했다. 샤를은 그가 재상의 아내인 라이셀 백작부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않은 아름다운 여자였다.
“잊으셨나본데, 성녀님은 제 제자랍니다? 그것을 모두가 다 잊으신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그녀에 대해 험담을 하는건 저에 대해 욕을 하는것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일겁니다.”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지만 팔랑거리는 부채의 속도는 꽤나 빨랐다. 라이셀 백작부인의 나지막한 경고에, 그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며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샤를은 성녀라는 사람이 궁금했다. 그가 다섯 살 즈음에 성녀가 발견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에르멘가르트 후작가에 입양이 되었다는 것도. 아, 생각해보니 그 성녀는 어렸던 그를 호위해 주었던 에르멘가르트 경, 그러니까 에셀먼드 경의 동생이 된다는 소리이다. 하지만 에셀먼드, 그러니까 에드 경은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다. 성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샤를은 성녀라는 사람이 궁금했다. 듣자하니 이곳에 있다는데 왜 여자임에도 이곳에는 없는 걸까. 고개를 두리번거두리번 거려도 성녀같은 사람은 없었다. 하긴, 은발에 푸른 눈을 가진 성녀가 눈에 띄지 않을리가 없었다. 게다가 성녀의 앞에서 무분별 하게 성녀의 험담을 할 리도 없었다. 샤를은 성녀님이 어디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저 여자들에게 비웃음을 살까 무서워 말하지 못했다. 그저 그는 아버님을 기다릴 뿐이었다. 지루한 시간이 끝나고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사냥감이 왔다는 소리리라.
이에 모두가 일어났다. 샤를도 일어나 아버지가 잡아온 사냥감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아, 에셀먼드 경은 어떤 사냥감을 잡아 왔을까. 샤를은 기대에 찬 나머지 무방비하게 그곳을 향해 뛰어갔다. 우와아, 사람들은 저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토끼 한 마리를 가져와 웃음을 산 자도 있었고, 아무것도 못잡아 온 자들도 있었다. 샤를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와, 샤를은 환호성을 질렀다. 에르멘가르트 경은 커다란 숫사슴을 사냥해왔다. 그 숫사슴의 뿔이 마치 작은 나무 한 그루 같았다.
아버지를 보니 아버지 역시 늑대 굴을 발견한 듯 은색의 늑대를 등에 매달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왜 저마다 다른 곳을 향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토끼도, 숫사슴도, 여우도, 늑대도 시선을 주지 않은채 한곳만을 향하고 있었다. 샤를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에 사람들은 불평하려했지만 상대가 왕자라는 것을 알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가 자리의 앞에 서서 겨우 그 전리품들을 볼 수 있을때 갑자기 꺄악, 하는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잡아, 잡아!”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며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뭐지? 왜저러는거지? 샤를이 궁금해 하며 그쪽을 쳐다보는 순간 어떤 금빛 물체가 튀어 나왔다. 샤를은 깜짝 놀랐다. 그것은 거대한 황금색 호랑이였다 그 호랑이는 방금 묶여있었던듯 목에는 줄이 감겨 있었다. 그렇다면 이 호랑이는 지금 풀려났다는 말이었다. 호랑이가 노란 눈으로 샤를을 노려보았다. 히익, 샤를은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았다. 누가 제발 도와 주세요, 샤를은 외치고 싶었다. 주변에 사람들을 보니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모두들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것이냐! 잡아라!”
노호성을 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호랑이가 그를 주시하고 있다. 이 거대한 생명체의 발톱이나 이빨은 샤를을 단 한번에 죽일 수 있으리라. 샤를은 정말로 그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호랑이가 거대한 울음소리를 내지르며 그에게 뛰어들었다.
하지만 퍽, 소리가 나며 어떤 길쭉한 무언가가 호랑이의 목을 꿰뚫었다. 어찌나 빠른 속도로 그것이 날아왔던지 샤를에게도 날카로운 한줄기 바람이 스쳤다. 그 산과 같은 거대한 호랑이는 그 화살 한방에 나가떨어졌다. 자세히 보니 그 화살은 샤를이 평소 보던 화살보다 훨씬 두껍고 길었다. 누가 이것을 쏜거지? 그 쪽을 바라보니 한 말을 탄 여자가 보였다. 샤를은 그곳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여자의 머리색이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여자의 머리 색은 금발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푸른 빛이 감도는 은발이었다. 그리고 그 여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왕자님?”
그녀의 목소리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샤를이 듣던 목소리중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그저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맑은 소리를 가진 종이 울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자는 아름다운 은발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쪽으로 땋아내렸는데 빗어넘긴 그녀의 고운 이마에는 성흔이 새겨져 있었다. 저것은 샤를이 익히 본 신전의 문장이었고 신의 표식이었다. 걱정이서린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은 연한 보라색이 섞인 새파란 색이었다.
아, 그녀가 성녀다. 샤를은 생각했다. 그 천한 신분이라던 성녀가 눈 앞에 있었다. 하지만 샤를은 그녀가 정말로 천한신분이라 생각이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는 왕자인 그를 보면서도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다른 여자들보다 다른 기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찮다는 샤를의 말에 그녀가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샤를을 일으켜준 후 자리에서 일어나 호랑이가 쓰러져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호랑이는 숨이 붙어 있는지 가슴을 헐떡이고 있었는데 성녀는 호랑이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샤를은 어머니가 그를 끌어안고있음에도 성녀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는 없었다. 마치 여전사의 얼굴같지 않은가.
“잠깐, 그건 티게르난 공작이 잡으신 호랑입니다!”
“.......”
그 말에 모든 분위기가 싸하게 물들었다. 티게르난 공작이 잡은 호랑이, 그리고 그 호랑이가 왕위 계승권자를 해치려고 했다. 그것을 소리친 티게르난 공작의 기사가 아차 싶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티게르난 공작이 물었다.
“왕자님 괜찮으십니까?”
“네, 네, 괜찮습니다.”
티게르난 공작의 금안은 마치 호랑이의 눈 색인 것 같았다. 금안이 왕실의 혈통을 상징한다고 하지만, 샤를은 금안을 물려받지 못한채 애매한 호박색 눈동자를 타고 자랐다. 가끔가다 아버지가 노하실 때의 눈과, 웃고있는 티게르난 공작의 눈이 비슷하다고 생각하고는 했다. 소란이 조금 진정이 되는 듯 하자 성녀가 물어보는 것이다.
“이 호랑이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너무나 의외의 물음에 사람들이 성녀를 보았다. 성녀는 호랑이의 앞에서 티게르난 공작의 기사에게 호랑이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고 있었다. 샤를은 그녀가 엉뚱하다 생각했다.
“아마......이대로 숨통이 붙은 채로 이 호랑이를 잡으신 티게르난 공작각하에게 가죽으로 만들어져 바쳐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사가 떨떠름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 스승님께 드릴 호랑이 가죽이로군요.”
“.......”
그 말에 성녀가 생긋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서늘해보이는 미소였다. 그리고 은빛이 번쩍였다. 그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성녀는 허리춤에 찬 얇은 검을 꺼내들어 놀라운 속도로 숨만 헐떡이던 괴물같은 호랑이의 목을 쳤다.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호랑이의 목과 몸이 분리되었다.
여자들이 꺅, 하고 작게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샤를마저 잔인한 광경에 눈을 질끈 감았다. 호랑이의 목을 친 성녀는 그것만으로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호랑이의 몸통을 여러번 찔렀다. 그리고는 피에 젖은 검을 집어 넣었다. 아직 숨이 붙어있던 생명을 완전히 죽인 그녀의 깨끗한 옷에는 붉은 핏자욱이 튀어있었다.
“송구합니다, 스승님. 왕족을 시해하려던 호랑입니다. 스승님이 입으시면 혹 변고를 당하실까 그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예의 그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티게르난 공작이 잡아온 호랑이를 죽이다니, 게다가 호랑이의 가죽은 무척이나 귀한 가죽이다. 그럼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망치고, 웃으면서 말하는 성녀의 모습에 샤를은 기가 질렸다. 그러나 아버지가 어찌하지도 못하는 티게르난 공작에게 그렇게 한방 먹일 수 있다는게 너무나 우스웠다. 샤를은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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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조아라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저번편이 안올라갔네요...분명 수정까지 거치고 후기가지 써서 올렸는데... 세상에..... 지금 너무 황당합니다. 결국 청년기 편을 먼저 등록해버렸네요. 저번편이 먼저고 다음편이 이겁니다... 아 너무 황당하고 화가나서...
30키바는 커녕 40키바를 썼네요...후.........역시 저는 할수있었습니다
와..와타시 짱짱걸!!!!
내일은 비축분을 쌓아놔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