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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핀 제비꽃-44화 (44/208)

00044  움트는 새싹  =========================================================================

거의 매 끼니마다 후작가의 사람들과 밥을 먹게 된 비올렛은 볼 때마다 후작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자신이 또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몸을 움츠렸지만 언제나 엄격한 에셀먼드도 조용했고, 앤도 별 말이 없기에 그저 에이든과 같이 그들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에셀먼드 역시 이따금 후작의 얼굴이 찡그려지는 것에 염려를 하는 것 같았는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생각해보니 얼마전 꿈속의 여자가 조심하라고 했으니, 더욱더 그러했다.

특히나 오늘은 더 그러했는데, 식사를 하기 전 왔던 편지를 뜯어보던 후작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경직되는 분위기에 어쩐지 식사가 입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후작은 아침 식사를 마치며 그녀에게 말했다.

“성녀님, 오늘 방문객들이 있을 예정입니다.”

방문객들.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비올렛의 심장이 떨렸다. 그러나 웬일인지 올게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

“그들의 방문은 아주 짧게 끝날 겁니다.”

후작이 애써 다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서린 딱딱한 기색은 감출 수 없었다.

“누가 방문하는 건데요?”

비올렛이 물었다.

“열 명의 대신관들이 방문할 겁니다.”

그 말에 비올렛의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하지만 왜 그걸 지금까지 말해주지 않았던 것일까. 비올렛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하듯 후작이 말했다.

“여태껏 본가는 신관들의 알현요청을 거절해왔습니다. 사실 성녀님 께서는 어느정도 신학에 대해 습득하셔야 할 때였고 신학자를 데려와 가르칠 생각이었으나 그것을 신전측에서 눈치챘습니다. 그들은 성녀를 가르치는건 대신관들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대신관 열명이 모여 알현하겠다는 통보를 우리는 거절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

그냥, 내가 만나고 싶다고 하지 않으면 되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올렛은 자신이 그럴만한 지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신학에 대해 습득해야 했고 그저 한번 거절한다고 피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비올렛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신관에게 신학을 배우라니. 비록 그 은발의 소년 신관과, 그 붉은 머리의 청년 신관 덕분에 신관에 대해 거부감은 옅어졌으나, 그녀는 신관들이 이중적이라는 것을 알고있었다. 이 가문의 신전에 대해 배척하는 분위기도 그러했고 신관들을 거절한 것도 그 이유중의 하나였으므로. 그녀는 왜 그동안 후작의 얼굴이 어두웠던지 알았다. 이것은 그녀때문이었다. 비올렛은 물었다.

“그럼 제가 누구를 선택하면 되는 건가요?”

“선택을요?

오히려 후작이 되물었다. 후작이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마치 못들을 것이라는 것을 들은 것 같은 얼굴에 비올렛은 덜컥 겁이났다. 무슨 무식한 말이라도 했나? 그저 물어봤을 뿐인데. 비올렛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렇습니다.‘선택’이란 방법이 있었군요.”

그는 알수 없는 말을 했다. 비올렛은 의아했다. 후작은 얼굴을 찌푸리며 곰곰히 생각하는 듯 했다.

“성녀님, 그들은 당연히 누구를 성녀님의 스승으로 옹립할지 이미 결정하고 왔을 것입니다.”

“아...”

비올렛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하긴, 그녀가 선택을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열명이 대신관이 온다기에 그녀는 선택을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역시나 무식한 발언이었다.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제가 잘못생각하고 있었네요”

“아니요, 최상의 생각입니다. 성녀님이기에 할 수 있는.”

비올렛은 후작의 말에 깜짝놀라 그를 보았다.

“성녀님, 저들은 지금 우리를 압박하기 위해 굳이 열명이 모두 모여 이곳으로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으로 우리가 이것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비올렛은 후작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녀가 했던 말에 후작의 눈이 빛나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 누가 성녀님의 선택을 가로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 누가, 그 선택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그가 말했다. 비올렛은 후작이 ‘선택’이라는 단어조차 떠올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성녀님, 이곳에서는 비록 성녀님의 지위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지는 못하였으나, 신전에서는, 특히나 고위사제인 대신관으로서는 성녀님을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합니다. 실제로 그렇든 그렇지 않든 말입니다. ”

비올렛은 후작이 지금 하는 말을 알았다. 그녀만이 유일하게, 대신관들을 억누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후작이 그 대신관들을 억누를 힘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할 수 있었지만, 후작은 할 수 없는것도 있는 것도 있었다.

“그럼, 저는 정말로 누굴 선택하면 되는 건가요?”

그 말에 후작이 생각에 잠겼다. 설마 열 명의 신관 전부 다 안좋은 신관이 아닐까? 그녀는 걱정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꺼냈다.

“열 명의 대신관은 모두 당연하겠지만 신전쪽 사람들입니다만. 단 한명 에스테반 대신관은 저희 지방의 신관장으로서 그나마 청렴결백하며 저희에도 우호적인 편입니다.”

에스테반. 그녀가 중얼거렸다.

“어떤 외모를 가지셨어요?”

“특출난 외모는 아닙니다만 다른 대신관들에 비해 나이가 젊은 편입니다. 이마에 흉터가 있어 한눈에 알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비올렛은 고개를 끄덕였다. 젊고 이마에 흉터가 있는 사람. 비올렛은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어쩐지 그녀의 생각이 후작에게 채택된 것같아 뿌듯했다. 자신도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비올렛의 볼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대신관들이 오기전에 비올렛은 앤의 도움을 받아 몸을 정갈하게 했다. 그녀가 입혀주는 드레스를 입으며 비올렛은 자신의 키가 조금 컸다는걸 느꼈다. 갑작스러운 방문이었지만 비올렛은 올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렇게 평탄하게 사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이미 예정되어 있던 일을 치르는거다. 그녀는 되뇌었다. 긴장이 되었지만 비올렛은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하인들은 이 갑작스러운 방문에 비상이 걸렸다. 에셀먼드 역시 기사단에 출근하지 못하고 집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그야말로 비상사태였다.

후작 가 안의 사람들은 저마다 불안감에 떨었다. 시간이 지나갈 수록, 그리고 그들의 불안감이 전해질 수록, 비올렛은 불안하며. 또 그들에게 미안했다. 만약 그녀가 없었으면 겪지도 않을 일을 그들이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신학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비올렛은 일렬로 들어오는 신관들을 보았다. 대신관들은 하얀 신관복을 입고 있었는데 두건을 쓴채 얼굴을 감춘 신관들도 있고, 두건을 벗은 신관들도 있었다. 비올렛은 들어오는 사람 중에 이마에 흉터가 있는 남자를 보았다. 에스테반으로 추정되는 남자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어쩐지 후작을 닮은 것 같았다. 비올렛은 그에게서 다른 이들보다 강하고 성결한 기운을 느꼈다.

아그레시아를 10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그 중 한 구마다 커다란 대신전이 존재하고 그 곳에는 대신관이 거하며 종교를 이끌어 나간다. 이 열명의 대신관이 모이는 것은 아마 그 누구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비올렛은 신관은 모두 다 어딘지 모르게 비틀린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야비할 것 같다는 그들은 전부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비올렛은 그녀가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열명의 대신관들은 어딘지 모르게 거역할 수 없는 위압감이 존재했다. 후작가에 방문한 그들은 자신들을 마중 나온 비올렛을 보았다. 유일한 신의 대리인을 향해. 그리고 그들은 그녀를 향해 망설임 없이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신의 대리인을 뵙습니다.”

그들은 마치 살아있는 신을 보는 것 과 같이 행동했다. 하지만 비올렛은 그들이 보낸 경외감이 이제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어나세요.”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대신관들은 다짜고짜 비올렛의 옆에 서 있던 후작에게 말했다.

“후작, 이제 더이상 신의 부름을 무시할 수는 없을 거요. 성녀님께 해왔던 짓에 대해 어떤 대가를 치르시려고 그러셨습니까.”

한 눈에도 보이는 적대감이 어린 얼굴에 비올렛은 얼굴을 찡그렸다. 높으신 나으리 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후작에게도 인사조차 하지 않은 채 다짜고짜 먼저 경고의 말을 던지고 있었다. 후작은 귀족이었다. 그것도 이 나라에서 손꼽히는 고위 귀족.

하지만 대신관들의 태도는 마치 그를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느낌이었다.  슬쩍 에셀먼드를 보니 그는 언제나와 같은 무표정이었다. 다니엘 역시도 읽을 수 없는 얼굴로 입을 다물었고 에이든 역시 괜히 도련님이 아니었든지 표정관리는 했지만 눈만 빛나고 있었다. 다니엘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은것이 보였다. 그는 에이든의 어깨를 꼭 쥐고 있었다.  모두 다 저마다 읽을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비올렛은 그들이 모두 불쾌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녀 역시 불쾌했다. 어쩐지 비올렛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도 이 사람들과 같은 것을 느꼈으니, 정말로 이 가족의 일원이 된 것 같았다.

“제 아버지이십니다. 절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쳐 그런 것이니 노여워 하지 마십시오.”

웃으면서 말하려고 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말투가 딱딱하게 된다. 아나블라와 대할 때와는 다르다. 신관들은 그녀의 차가운 말투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물론 천민 입양아 따위를 딸로 여겨 사랑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믿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후작을 두둔하자 그들은 다소 강경한 태도를 누그려뜨린채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올렛은 자신들을 관찰하는 신관들의 시선을 알고 있었다. 그 시선에 가슴이 뛰었다. 그때 비올렛은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따스한 손길을 느꼈다. 후작이었다. 그 온기가 손에 닿자 왠지 안심이 되었다. 비올렛은 그를 올려다 보았다. 하지만 후작은 굳은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회장에 다다르고 그들은 준비되어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하녀들이 바삐 움직여 그들에게 차를 가져다 주었다. 비올렛은 가운데에 있는 상석에 앉았다. 후작은 그녀의 오른쪽에 앉았고, 삼형제들은 왼쪽에 줄지어 앉았다.

“아시다 시피 성녀님, 성녀님께서는 신의 말씀에 대해 공부해야 할 시기가 한참이나 지났습니다.”

“맞습니다. 이미 공부를 하셨어야 했는데 너무도 늦었습니다.”

“신의 대리인께서 신의 말씀에 대해 무지하다니, 안 될 일입니다.”

모든 것은 그녀를 향해 하는 말이었으나 또다시 후작을 향해 말하는 말이었다. 이상하게도, 비올렛은 그들이 어떤 의도로 말을 하는지 알아 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제가 글을 깨우치지 못하여 그런 것입니다. 이 모든것이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에이든이 자신도 모르게 푸훗, 하는 소리를 차가 목에 걸려 켁켁대는 소리로 겨우 위장했다. 조용히 콜록거리는 그가 웃고 있다는것을  비올렛이 모를리가 없었다. 비올렛으로서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계산하지 않고 했던 말이지만 한순간 신관들에게는 그 말에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민이 열에 일곱은 글을 모르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려운 자국어를 습득한데에는 그정도 시간이 걸릴만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후작이 신전 측에 성녀를 넘겨주지 않으려고 했다는 사실에 그를 공격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지, 실제로 비올렛 자체가 지금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차마 그녀의 무식을 탓할수가 없었던 그들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였다.

“아직도 저는 제 배움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비올렛은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더욱 더 배움을 늦출수는 없었다. 비록 비올렛 개개인은 아무힘도 없었지만 ‘성녀’는 이 나라의 근간이었다. 후작의 손에 커 반신전파가 되기 전에 그녀를 끌어와야 했다.

“허나, 이젠 배우셔야 합니다.”

“충분치 않다고 게을리 하시면 더더욱 늦습니다. 더 정진하셔야 합니다.”

그 말에 비올렛은 갑자기 억울해졌다. 그녀가 비록 빈둥빈둥 노는 것 같지만 아직까지도 그녀는 이곳이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그녀가 여태 했던 노력은 헛것이란 말인가. 게으른 것이란 말인가. 비올렛은 그들이 자신에 대해 신경쓰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대신관이래봐야 모두 다 똑같은 것이다. 그저 성녀가 필요한것이다. 천민임에도 귀족의 탈을 쓰며, 성녀의 탈을 쓴 비올렛이 아니라.

“네, 배움이 부족하다 하여 이대로 멈추먼 정진할 수 없을 겁니다. 하여 저는 이제 제 스승을 선택하려 합니다.”

비올렛은 준비해왔던 말을 그대로 이었다. 다행이다. 후작의 얼굴을 힐끔 보니 그는 그녀에게 응원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말에 전부 다 당황한 것 같았다. 에셀먼드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니엘 역시 이 사실에 대해 몰랐던 듯 굳은 얼굴로 흘낏 보았다. 에이든만이 흥미로운 표정이었다.

그때 한 신관이 손을 들어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성녀님, 도대체 선택하는 기준은 어떤 것입니까. 성녀님은 저희를 선택할 학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비올렛의 머리는 하얗게 질렸다. 그래, 맞다. 그녀는 선택한다고 했지 기준에 대해 따로 생각해 둔 것이 없었다. 그때 비올렛은 어디선가 뿜어져 나오는 성결한 기운을 느꼈다. 비올렛은 말했다.

“학식을 배우려 스승을 선택하는데 제 짧은 학식으로 결정하는 것은 어불 성설입니다. 저는 신관들께서 발휘하실 수 있는 신의 힘으로 결정하고자 합니다.”

그 말에 그들의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그것은 성력으로 결정하겠다는 말과 똑같았다. 조금 무리수였으나 생각해보면 못할것도 없었다. 그저 에스테반, 그만을 선택하면 된다. 그때 에스테반이 손을 들어 말했다.

“그렇다면 성녀님, 저희는 모두 얼굴을 가리겠습니다.”

============================ 작품 후기 ============================

지 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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