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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핀 제비꽃-43화 (43/208)

00043  움트는 새싹  =========================================================================

“무슨 소리야?”

신을 믿냐니, 성녀인 비올렛의 바로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비올렛은 신의 대리자였고, 신을 믿을 수 밖에 없는 위치였다. 그는 고개를 돌리며 아그레시아의 동상을 바라보았는데 그저 빤히 바라보았지만 어쩐지 그 시선에는 어딘지 모를  슬픔과 원망이 들어있는 듯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날, 신에게 기도했어. 하지만 신은 오지 않았지. 아마 형도 에이든도 기도했을걸, 그 아버지도 말이야.”

“.........”

“하지만 나만큼 신에게 거절당한 사람은 없을거야. 그래, 신은 언제나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어.  비올렛, 나는 신을 믿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다니엘이 어쩐지 슬퍼보였다. 그는 언제나 환하게 웃었지만, 지금은 눈을 내리깔고 있었는데, 그 새하얀 얼굴에는 짙은 어둠이 서려 있었다. 비올렛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의 볼을 매만졌다. 그 시선에 그가 아릿하게 웃었다. 그는 자신에게 뻗어진 손을 보더니 그녀의 손을 마주잡아 깍지를 꼈다.

“비올렛, 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야. 알지?”

다니엘의 시선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어딘가 흐릿해보이기도 했다. 그는 어딘가 절박해 보였다.억눌리는 분위기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다니엘이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순간 숨결이 스쳐지나간다. 다니엘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소년의 입술이 불에 덴듯 뜨거웠다. 비올렛은 그 키스에 깜짝놀라 다시 뒷걸음질 쳤다.

“넌 내거야 비올렛.”

“.........”

다니엘이 말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이었다. 그가 다시 한번 그녀의 볼을 감쌌다. 손이 뜨거웠다. 어쩐지 비올렛은 그가 두려워졌다. 낯선 시선, 낯선 행동을 하는 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다니엘을 밀어냈다. 다니엘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미, 미안해 다니엘.”

그녀는 예배당을 빠져 나왔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무슨 소리를 들은 걸까. 한 걸음으로 뛰쳐 나온 그녀는 잠시 동안 화원을 돌아 다녔다. 왠지 모르게 저택을 돌아가면 다니엘을 다시 만날 것 같았다. 그는 낯설었다. 조금 복잡한 심정으로 심각한 고민에 빠졌던 그녀는 다니엘이 역시 외로웠나보다, 어머니가 없어서 그녀가 느꼈던 것과 같은 똑같은 쓸쓸함을 느낀 것이라 단순한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만 그의 눈빛은 어쩐지 잊혀지지 않았다.

*

그녀는 몇번이고 다시 정원을 서성거리다 버릇대로 자신의 앞에 있는 식물 두어송이에 손을 대었다. 은푸른 빛이 나며 식물이 자라났는데 이름 모를 짙은 주황색의 꽃이었다. 향이 좋았던 것인지 나비들이 몇마리가 날아왔는데. 꽃에 꿀을 빨던 나비도 있었지만 비올렛에 전혀 위협을 느끼지 못한건지 비올렛의 머리에 앉은 나비들도 잇었다. 팔랑거리는 날개짓이 아름다웠지만, 그것이 자꾸 비올렛의 머리에서 나는 달콤한 향기 때문에 앉는 건 이야기가 달랐다. 더군다나 그녀의 귀 근처에서 팔랑대는 소리는 앵앵거리는 소리로 들릴 수 밖에 없었다. 나비도 비올렛의 입장에서는 징그러운 곤충인지라 그녀는 꺅 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나비를 떼어내려 미친듯이 머리를 흔들다 이내 그들에게 도망치며 뛰어다녔는데. 나비들이 그녀를 쫓아왔다. 나비의 수는 한마리가 아니라 갑자기 여러마리로 늘어났는데, 그것이 어찌나 공포스러웠던지 비올렛은 드레스 자락을 손으로 걷고 뛰었다.

“오, 오지마!”

거의 죽을 기세로 뛰던 비올렛은 누구와 쾅 하고 부딛힘으로서 그 추격전을 멈추었다. 하녀와 부딪히기라도 했나. 그녀는 머쓱한 기분에 고개를 들었다.  비올렛은 할말을 잃었는데, 후작님이 거기 서 계셨고, 그 뒤에는 에셀먼드가 있었다. 아무래도 퇴궁하여 돌아오는 길인 듯 했다. 비올렛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하도 뛰어서인지 머리는 엉망이었고 나비들은 포기하지 않은 듯 그녀의 주변을 맴돌았다. 하지만 후작이 그것을 손으로 휘휘 쫒자 그것들은 얄밉게도 팔랑팔랑 날아가버렸는데, 덕분에 비올렛은 민망해졌다. 온지 하루만에 이 꼴을 보였구나.

“죄송합니다.”

자신과 같은 사람을 딸로 여길리가 없었다. 얼마나 한심할까. 비올렛은 고개도 들지 못했다. 특히나 에셀먼드의 한심하다는 얼굴이 눈에 들어와 더욱 그러했다.

“성녀님을 뵙습니다.”

“인사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채 어물어물 말했다. 아, 당장이라도 뛰어가 방문을 닫고싶다. 어떻게 된일인지 들으면 앤이 잔소리를 할지도 몰랐다.

“같이 들어가시겠습니까?”

“네, 네.”

그 대답 이후 후작은 아무 말이 없었는데, 아마 비올렛을 데려온걸 후회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저렇게 멍청한 짓을 벌이는 여자애를 왜 다시 데려와 보고싶다 했을까,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후작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는데 옆에 에셀먼드를 보니 그는 언제나 처럼 무표정이었는데, 비올렛은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것을 보았다. 비웃음이다. 비올렛은 생각했다. 거스름돈도 모르는 주제에! 비올렛은 투덜거렸다. 저택에 들어가자 앤의 아버지인 집사가 마중나왔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지금 바로 드시겠습니까?”

“그래야겠군.”

후작이 말했다. 시간을 보니 벌써 저녁시간이었다. 해가 길어지니 몰랐다. 앤이 기다리겠다, 방에 가서 저녁을 먹어야겠다 생각하며 후작에게 인사를 한 후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그때  후작이 그녀를 불렀다.

“성녀님.”

“네?”

그녀가 흠칫 놀랐다. 아무래도 혼날 성 싶다. 비올렛은 겁을 먹었으나 태연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이제 같이 식사할 때도 되지 않으셨습니까?”

“네?”

비올렛은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며 후작을 바라보았다. 후작은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다행이다.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런데 식사를 같이 하자니? 분명히 그녀의 얼굴이나 무례함이 보고 싶지 않아서 방에서 혼자 따로 식사하라고 하지 않았나? 비올렛이 고개를 갸웃 하자 물었다.

“아직도, 저희와 밥을 먹기에 불편하십니까?”

어렵다. 사실이 그랬다. 하지만 비올렛은 그들이 자신과 식사를 거절했다는 것에 대해 슬펐다. 결과적으로 따로 식사를 함으로서 그녀는 편했으나, 분명 그녀는 언제나 혼자 하는 식사에 대해 씁쓸함을 느끼곤 했었다. 그리고 식사를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은, 그녀가 그들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 했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불편하냐고 물어본 것은, 분명 배려의 말이다. 그들은 그녀가 불편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비올렛에게 불편할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것은 확실하게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비올렛은 물었다.

“제가 보기싫지는 않나요?”

비올렛은 물었다. 그것은 처음으로 그녀가 후작에게 던지는 의문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이런 물음을 한번도 던진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매질이 두려워서, 두번째는 체념해서.

“저는 제가 보기 싫어서 그런줄 알았어요.”

그녀는 후작이 대답하기도 전에 말했다. 후작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동안 자신이 했던 행동중 어떤 것이 그렇게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 사실 후작 역시도 억지로 떠안은 이 소녀에 대해 익숙하지 않음과 불편함을 가지고 있느라, 이 섬세한 여자아이에게 어느정도 상처를 주었을 거라는 생각이 미쳤다. 그간의 일로 조금 단단해져 왔으나 비올렛은 언제나 후작을 두려워했다. 그의 냉정한 인상도 한몫했지만. 사실 그는 무뚝뚝한 편이라 여기저기에서 오해를 많이 샀다. 사실은 아내에게마저 그러해서 가끔 다툼이 있을 정도였다. 언제나 일방적으로 아내가 화를 냈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저, 저는 성녀님께서 밥을 먹을때만이라도 편안한 시간을 보내시길 바랐으니까요.”

그 말에 비올렛이 멍하게 서 있었다. 그 말은 비올렛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사실은 비올렛도 알고 있었다. 마음 속 깊이 엄마를 닮은 하녀를 잃은 것에 원망하고 있었으나, 핀이 사실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고 은연중 그녀를 무시하고 있엇다는 것도, 자작 부인이 가고 나서 라이셀 백작 부인이 오고 나서 그녀는 더이상 매질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도 모두. 결과적으로 그녀에게 좋은 일들만 일어났다, 다만 부족한 것은 충분한 설명 뿐이었다.

그녀는 후작의 눈치를 보았다. 놀랍게도 후작이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색하긴 하지만 그녀는 손을 뻗었다. 사실 아버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허망하게 죽어버린 친아버지가 떠올라 죄책감이 들었던 것도 있지만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비올렛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것이 실례라는 것을 알았지만 도저히 말을 꺼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색한 상황에서 후작의 옆에 서 있던 에셀먼드가 움직였다. 그는 먼저 식당쪽으로 가버렸다.

후작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더니 그녀의 손을 쥐었다. 에셀먼드보다 더 거친 감촉이 느껴졌다. 비올렛은 그 손을 잡고 그곳으로 갔다. 가자마자 에이든이 폴짝 뛰었다.

“아, 배고파 죽겠단말이에요, 빨리 오세요 아버지. 어? 너는 뭐야?”

에이든은 볼멘소리로 불평하다 비올렛을 보며 물었다.

“여기서 밥먹을거야?”

“응.”

그 말에 에이든의 얼굴은 미소인지 놀람인지 모를 표정이 되었다. 하녀들이 재빨리 의자를 가져다 식사를 준비했다. 건너에 다니엘이 보며 미소를 지었다. 부드러운 그 미소에 비올렛은 역시나 자신이 뭔가 예민했다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식사가 시작되고 에이든이 말했다.

“야, 이것도 먹고.”

그가 구운 오리 고기를 잘라 주었다. 비올렛은 지금 와서 보니 저 녀석의 예절이 형편없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그 모양 그 꼴인데 지적을 했단 말인가? 갑자기 억울해졌다.

“이것도 먹어.”

비올렛은 어쩐지 에이든이 못마땅해졌다. 저렇게 먹고 죽으라는건가 뭔가. 보다못한 후작이 에이든을 말렸다. 그리고 그녀는 편안하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사실 남들과 밥을 같이 먹는게 너무나 오랜만이었고, 어려운 사람들이라 사실 불편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기분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

“그래서 같이 밥을 먹게 되었어요.”

비올렛의 말에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마치 그녀의 행복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자신의 주변에는 (비록 꿈속이지만)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많을까. 비올렛은 생각했다.

“네가 너무 고생했구나.”

“아니에요, 그래도 신님이 있어서 모든걸 다 말할 수 있는걸요.”

비올렛의 ‘신’이라는 호칭에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어느샌가 비올렛은 그녀의 무릎에 얼굴을 파뭍고 조잘조잘 이야기 하고 있었다. 풀냄새, 파란 하늘. 향기로운 내음이 풍긴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사라져갈 듯한 악취도.

“참, 에이든은 제가 배가 터져 죽었으면 좋겠나봐요.”

“왜?”

“언제나  막 이것저것 음식을 준다니까요? 사실 옛날에는 그녀석이 도련님인줄 알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형편없어요. 꼭 바보같다니까요. 제가 왜 쟤를 보고 겁먹었는지 모르겠어요.”

그 말에 여자가 웃음을 터트렸는데.  그녀가 말했다.

“그건 네가 성장한 증거가 아니겠니?”

“.........”

“예전, 도련님들 사이에서 무서워 울던 비올렛이 아니잖니.”

여자의 말에 비올렛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수줍게 네,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에이든이라는 아이는 정말로 널 생각해 줘서 그런거야. 사실 똑똑한 넌 알고 있잖니?”

“그럼 그렇게 바보같지는 않을거에요.”

“남자아이는 모두 다 바보란다.”

그 말에 비올렛은 여자가 맞는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느라 아주 즐거운 표정이었는데, 갑자기 그녀의 머리를 만지던 그녀는 얼굴을 굳히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가 오는구나.”

“누가요?”

비올렛이 물었다. 그녀의 얼굴이 슬프게 일그러졌는데, 그녀가 말했다.

“너를 보고 있었구나, 한결같이.”

“.........”

“어리석구나. 본래 없다가 생기는 것에 집착하고 더 애착이 생기기 마련인데 말이야.”

여자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올렛은 그녀를 따라 하늘을 보았다. 새파란 하늘에 새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평화로운 오후의 꿈속. 오랜만에 만난 여자. 여자가 비올렛의 손을 잡았다.

“그를 조심하렴.”

“........”

그녀가 속삭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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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청자입니다..)

다니엘 너이자식..

신관소년은 그냥 여자 같이 예쁜 신관 처음만났던 왜 우니? 신관, 은발.

체자레는 두번째로 만난 청년, 붉은 머리카락. 꽃을 시들게 했던 남자. 자신의 이름을 이미 체자레라고 밝힘.

제가 묘사를 너무 어렵게 쓴건가요...다른  사람께 물어보니 구분이 가능하다 하시는데 자꾸 헷갈리시는분들이 계셔서 8ㅅ8..

이제 유년편이 여덟편 남짓 남았네요. 더 빨리 끝날수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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