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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핀 제비꽃-41화 (41/208)

00041  움트는 새싹  =========================================================================

“네, 참 고운 분이시죠 저는 성녀님이 그렇게 귀여운 분이신지 처음 알았다니까요.”

“.......”

저 너머에서 비올렛이 이번엔 작약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머리에 새 한마리가 짹짹거렸다. 그럼에도 한숨을 폭 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저 얼굴에 왜 수심이 피어난 걸까요.”

그가 힘없이 말했다. 비올렛  아가씨가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저 기사가 저렇게 빠진 것일까. 칼츠 경이 돌아가고 난 후 앤은 비올렛에게 다가갔다.

“아가씨, 칼츠 경이랑 아는 사이세요?”

"응."

"칼츠경에게 뭘 용서해줬나요?"

"어...흡!"

그녀가 무의식중 말하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비밀을 숨기는 것이었다. 그러다 앤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던 비올렛이 말했다.

“그게, 내가 사실 저번에 시장에 나갔을 때, 잠깐 아주 잠깐! 길을 잃었거든.”

“네에에!?”

앤이 소리를 쳤다. 만약 또 다른데에 끌려갔다면 아주 심각한 일이 벌어질 뻔 했다. 에셀먼드가 목을 자르는 걸로는 끝나지 않을만한 그런 문제. 아아, 칼츠 경, 이 어리버리한 기사님은 도대체 어떻게 그녀를 관리했길래! 뭐라 말을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비올렛이 머쓱하게 웃었다. 귀여워서 화도 낼 수가 없다.

“아니야, 잘 찾아왔어. 정말 정말 잠깐이었어.”

“.........”

“그런데 첫째 오라버니에게 말하고 죄를 받겠다지 뭐야.”

“........”

“그런데 정말 혹여 목이라도 잘리면 어떡해.”

잠시동안 앤은 심각한 얼굴을 했다. 그때의 기억은 달갑지 않은 기억이었다. 충격을 받은 비올렛은 열병을 앓아 사흘동안 눈을 뜨지 않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상처였던 것일까 그래서 기사의 실수마저 관대히 넘어간 것이다. 비올렛은 앤의 얼굴이 풀리지 않자 사고였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이해가 안갈 상황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그래서 그냥 덮고 넘어가기로 했어. 그래도 기분이 안좋아 보이길래........”

그녀가 입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빙긋 웃었다. 앤이 귀를 가져다 댔다.

“내가 토끼 인형을 사준다고 말하면 잊어주겠다고 했거든. 그런데 난 사실 토끼 인형이 필요 없어.”

“뭐에요, 그래서 칼츠 경이 사줬나요?”

“응, 사줬어.”

앤은 비올렛의 방에 장식되어있던 조그마한 하얀 토끼 인형을 떠올렸다. 하긴 에셀먼드가 그런걸 사줄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그거 들고 고맙다고 하니까. 아니라고 울먹이는거야. 나는 남자가 그렇게 말하는걸 처음봤어.”

“..........”

“그 후로 칼츠 경이 내게 친절하셔. 아마 내가 뇌물을 받아서 동지라고 생각하는거야.”

비올렛의 말에 앤이 웃음을 흘렸다. 아, 이런 매력때문에 칼츠 경이 헤어나오지를 못하는 거였군. 귀족의 어법을 배우고 습득해도 그 안에 서린 천진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끔씩 그것이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비올렛의 매력이었다. 앤도 가끔씩 어린 그녀를 꼭 껴안아주고싶은 심정을 억누를 때가 많았으니까.

“아, 정말 그런데 아가씨 뭐때문에 고민하는지는 안 알려주실거에요?”

비올렛이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앤은 내가 지킬거야.”

“???”

그녀가 모시는 이 아가씨는 정말 똑똑하고 착하고 순수해서 다 좋았는데 가끔씩은 생각이 너무 많아 탈이었다.

*

“아가씨.....”

마차에 오른 비올렛은 더더욱 풀이 죽어 있었다. 영지 사람들과 헤어지는게 슬플리는 없었다. 그렇지만 왜? 저건 마치 사형장에 끌려가는 죄수의 얼굴이 아니던가. 에이든이 기웃기웃 거리며 그녀의 기분을 살폈지만 그녀는 겁에 질린 것 같았고 말을 걸어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

마치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다. 설마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시는 건 아니겠지? 앤은 그녀에겐 길었던 1년을 떠올렸다. 핀의 일 이후로 경계심이 많아진 소녀를 믿게 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던지... 비올렛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스스럼 없이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장장 4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비올렛은 자신의 옆에 있는 인형을 보았다. 곰인형과 후작이 선물해준 예쁜 여자아이의 인형. 그리고 토끼 인형. 그것을 보며 손으로 장난을 쳤다. 그때 마차가 멈추었다. 문이 열리고 에셀먼드가 보였다.

“잠시동안 쉬어간다.”

수도 까지는 만 하루가 걸렸으므로, 비올렛은 갑갑한 마차에서 벗어났다. 중간에 언덕길이 있었던 모양인지 문을 열자 시원한 숲의 향기가 코를 찔렀다. 탁 트이는 느낌에 비올렛의 기분이 조금은 풀렸다. 다니엘은 책을 읽는지 마차에서 나오지 않았고, 에이든은 옆에 개울이 있다고 비올렛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비올렛은 그저 바위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성녀님, 이것좀 드셔보십시오!”

앤은 칼츠 경이 준 것을 보았다. 빨간 과실이었다.

“어? 앵두네요?”

비올렛이 그를 빤히 보며 말했다. 그러다가 새빨간 그것을 받아들이며 살풋 미소지었다.

“감사해요, 칼츠 경.”

비올렛이 미소지었다.

“어디 걱정이 있으십니까?”

그 말에 칼츠 경이 바로 파고 들었다. 비올렛은 씁쓸한 얼굴로 바로 고개를 저었다. 뭘까, 저 초연한 표정은. 앤은 생각했다. 그때 앤은 에셀먼드가 이쪽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앵두와 가장 만만해 보이는 칼츠 경의 상관관계도. 참나. 앤이 얼굴을 찡그리며 에셀먼드를 바라보자 그는 고개를 돌렸다.

“저 앵두 정말 좋아해요. 그런데 앵두는 초여름에 날텐데.”

“이쪽 앵두는 어째서인지 꽃이 먼저 떨어지고 빨리 여물더라고요. 게다가 달콤하죠.”

“정말 감사해요.”

그녀가 입술을 열어 빨간 앵두를 씹었다. 칼츠 경은 기쁨이 서린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는 돌아가더니 와아, 앵두를 드셨다, 성녀님이 앵두를 드셨어! 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남자들이 뭐라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들의 거친 목소리가 섞이자 무슨 말인지는 못알아 먹었는데 거친 욕이 섞여있는 것을 들었다. 비올렛을 슬쩍 내려보니 그녀는 앵두를 먹는데 정신이 없는 듯 했다.

*

비올렛은 수도로 돌아간다고 들었을 때 기뻐서 어쩔줄 몰랐다. 사실 그녀는 수도의 생활이 더 좋았다. 앤에게는 미안했지만 그래도 이 곳은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비올렛은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후작은 무서운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는 벌써 두 번이나 사고를 쳤다. 하나는 토미와 성을 무단으로 탈출한 것이었고, 하나는 후작님의 여동생, 그러니까 에이든의 고모님의 뺨을 때리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우선 그녀가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였지만 아직 그것이 그 위치를 쉽게 생각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녀는 아직도 이 모든 것이 힘이 들었고, 후작은 그녀가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사람 중 가장 어려운 사람이었다. (사실 제일 힘이 든 것은 에셀먼드였지만, 에셀먼드는 거스름돈 사건 이후로 대하기 힘든 사람의 순위1위에서 2위로 내려갔다.)

후작님은 아나블라를 퍽 예뻐하셨다는 다니엘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것이 걱정되어 견딜 수 없었다. 하드퍼드 백작 모녀는 수도의 후작 가에 들린다고 하던데, 만약 이상하게 말했으면 어떡하지? 아나블라가 또 엉엉 울면서, 비올렛이 어떠했는지 일러바치면 어떡하지?  비올렛은 그 따스하던 다니엘이 변하는 것을 보았다. 에셀먼드는 사실 상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에이든은 그녀를 믿어주었지만 개인적인 호불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믿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다니엘처럼 그들에게 호의적이었다던 후작님은 어떻게 나오실까.

일단 비올렛이 백작 부인의 뺨을 때리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니 분명 화를 내실 게 틀림없다. 그렇게 분별없는 짓은 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할지도 몰랐다. 이전처럼 매질에 대해 공포는 없었지만 그녀는 아직도 후작이 두려웠다. 앤에게 이런 고민을 했다가는 앤 역시 고민하게 될지도 몰랐다. 앤 역시, 피해자가 아니던가. 앤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그녀를 벌하는 대신 앤을 벌할지도 몰랐다. 아나블라는 앤이 자기를 잘못모셨다고 말했으니 말이다. 앤은 걱정이 없는 듯 했다. 앤, 하지만 이건 정말 심각한 일인 것 같아. 그 고민을 말하지 못하고, 비올렛은 혼자 끙끙 앓았다.

이제 분명 수도를 넘어가는 산길에서 쉬웠으므로 한 시간 정도면 후작가일 것이다.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애, 앤이 혼나면 안되니 내가 잘 해야해. 그녀가 생각했다. 또 이상한 의무감에 혼자 다짐하는 비올렛을 보고 앤이 고개를 갸우뚱 했다.

이미 쫓아 보냈는데 다시 또 쫓아내는건 아닐까. 아니야, 신전에 넘겨버릴지도 몰라. 아니야, 또 이상한 파티같은걸 열어서 그녀를 창피를 주면 어떡하지? 생각해 보니 털옷같은 것도 준비하지 않았어. 비올렛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자 앤이 몸을 움찔 했다. 울퉁불퉁하던 길이 잘 닦인듯 마차가 매끄럽게 굴러갔다. 이제 수도로 온 것일까. 창문을 열었던 비올렛은 깜짝 놀랐다.

“흡!”

그녀는 창문을 다시 닫았다.

“왜그러세요?”

앤의 물음에 비올렛이 대답했다.

“아, 어, 첫째 도려.. 아니, 첫째 오라버니가 창문에 가득차있었어.”

“........”

“눈도 마주쳤어.”

그것은 앞으로 그녀의 인생이 암울하리라는 경고가 아닐까. 그녀의 얼굴이 더욱 더 심각해졌다. 앤이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참나, 창문도 안열렸는데 왜 마차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담? 앤이 중얼거렸다.

“아, 아무도 없는것 같아요.”

비올렛은 안심하고 다시 창문쪽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예상대로 수도로 돌아왔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안에서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올렛이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그리고 마차가 멈추었다.

“.........”

마차의 문이 열리고 앤이 먼저 마차에서 내려서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비올렛은 조심히 치맛자락을 걷었다. 설마 백작 모녀가 있으면 어떡하지, 후작님이 화를 낸다면 어떡하지? 그녀의 심장 박동은 최고조로 뛰었다.

에이든과 다니엘은 이미 마차에 내려 서 있었다. 에셀먼드는 말을 옆에 두고 가장 앞에 서 있었다. 이윽고 후작이 보였다. 그는 변함 없이 무뚝뚝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가기싫어. 그녀는 생각했다. 후작이 에셀먼드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그러다 다니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는데, 다니엘의 뒷모습이 어쩐지 외로워보였다. 그리고 에이든을 보며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뭐라고 잔소리를 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후작의 반응은 점점 더 나빠졌으며, 이렇게 가다가는 자신의 차례에 그들은 이제 마구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를 것 같았다. 후작이 사형장에 끌려가듯 걸어오는 그녀를 보았다. 앤의 손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그것이 예법에 어긋남을 알고 있어서 그저 굳어있었다. 후작역시 그녀에게로 걸어갔다. 변함없는 무뚝뚝한 표정이다. 그녀는 자신이 지은죄를 자꾸 떠올리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후작이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성녀님을 뵙습니다.”

비올렛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대답했다.

“이, 일어나세요 후작님.”

그녀가 후작을 올려다 보았다. 얼굴을 찌푸리며 화를 낼 것 같은 후작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 그녀는 눈을 크게떴다.

“다치신 데는 없으십니까?”

다정한 어조였다 비올렛은 그 어조에 깜짝 놀랐다. 후작은 비올렛의 얼굴을 보았다.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어.”

비올렛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전혀 화가 난 것 같지 않았다. 비올렛이 우물쭈물 하자. 후작이 말했다.

“보고싶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매 편지마다.”

어? 그건 앤이 예의라고 해서 쓴 건데, 왜 저렇게 기뻐하시는 걸까. 그러자 비올렛은 아아, 하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그녀는 앤이 자신을 놀렸음을 알았다. 앤은 당연히 보고싶다고 쓰는 것이 예의라고 했다. 그래서 다니엘에게도 보고싶다고 썼고, 에이든에게도 보고싶다고 썼고, 당연하겠지만 후작에게도 보고싶다고 썼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익어버릴 것 같았다. 그녀는 앤을 째려보고 싶었지만 그럴수가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정한 목소리가 설마 거짓일까 생각했지만 그녀의 몸이 들어올려졌다. 그녀가 꺅,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후작의 단단한 팔에 안겨 있었다. 이름난 무장이라더니, 정말로 그녀가 무겁지는 않은 듯 했다. 그녀의 눈 높이에 후작의 얼굴이 바로 보였다. 그리고 후작이 말하는 것이다.

“저도 보고싶었습니다. 성녀님.”

그것은 정말로, 오랜만에 딸을 만난 아버지가 말하는 것 같았다. 이상했다. 그 말을 들으니 정말 집에 온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캬하!! 코멘이 반토막이 났네여 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평온한 편이라 그럴만도 해여 이해합니다..!!

여러분!! 체자레와 신관소년 ㅠㅠㅠ 다릅니다 신관소년은 신관소년! 체자레는 공작.... 둘다 신관이라는 사실만 같을 뿐이랍니다. ㅠㅠㅠㅠ

이번편은 앤의 입장에서 본 비올렛에 대해 서술해보았습니다.

1인칭에 가까운 3인칭을 쓰고 있어서 타인이 표현하는 비올렛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했는데

비올렛은 생각이 많지만 사실 말수가 드물답니다. 자기가 머리가 좋은 편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편이고요.

이 평화는 조금만 더 즐겨봅시다 8ㅅ8!!!

오탈자 지적은 언제나 화녕!! 아이고 감사하여라 사랑하여라 ㅠㅠㅠ

선작이 5000넘으면 외전이라도 하나 쓰고싶지만 이건 공모전이라..흡.ㄴ..으ㅏㅂ그비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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